[공모전] 유니폼 - 홍정은(2021 제2회 청소년 노동안전보건 콘텐츠 공모전 수상작)

 

2021 제2회 청소년 노동안전보건 콘텐츠 공모전 "알권리, 안전을 외치다" 수상작


유니폼

홍정은

 

추운 바람에 아직 녹지 않은 눈이 쌓여있는 하굣길. 담요로 치마 위를 덮어 추위를 피하는 여학생, 삼삼오오 모여 피시방을 가자며 소리를 지르는 남학생, 그런 학생들을 횡단보도 앞에서 통제하는 경비 아저씨 그리고 차를 가지고 와 자신들의 딸, 아들을 데리러 오는 부모님. 예인은 그런 것들을 부러워했다. 친구들과 모여 하교 하는 것도, 친구들과 피시방을 가는 것도, 부모님이 데리러 오는 것도. 예인은 하지 못하니까. 예인은 학교가 끝나면 유일하게 가족으로 남은 동생을 찾으러 가야 하니까. 그리고 돈을 벌러 편의점으로 발걸음을 향해야 했으니까.

 

예인 학생, 종일반이 끝나서 유인이는 돌봄 교실에 가 있어요 유인이 선생님

 

유인의 선생님한테서 문자가 왔다. 예인은 그 문자를 보자 급하게 유인의 유치원 쪽으로 발걸음을 빨리했다. 머릿속에서 부러움은 지우고 현실을 생각하며 볼을 무섭게 스치는 차가운 바람을 뚫고 걸어간다. -! 문자가 하나 왔다. 예인은 발걸음을 멈춰 세우고 문자를 본다. 문자를 본 예인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하늘도 그런 예인이 마음을 아는 걸까 어두운 하늘 위로 눈이 퐁퐁 내리기 시작한다.

 

예인아, 너 일찍 와서 일 좀 도와라. - 사장님

 

예인은 자신의 일그러진 얼굴은 상관도 안 쓴다는 듯 얼굴을 더욱 찡그리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곤 사장에게 알겠다는 문자를 보낸 뒤 눈 때문에 물기 어린 핸드폰을 소매로 대충 닦고 교복 재킷 속 주머니에 깊게 넣는다. 발걸음을 돌린다. 교실에 혼자 남을 유은을 생각하며 걷던 발걸음을 자신을 기다리며 화를 낼 사장 수희에게로 향한다. 차가운 바람이 분다. 차가운 바람은 예인의 볼을 파고든다. 하얀 눈이 예인의 머리에 녹는다. 예인은 그런 차가운 바람과 눈에 고개를 목도리 속으로 파묻으며 걸음을 빨리할 뿐이다. 얼마나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걸었을까, 목도리를 뚫고 들어오는 매서운 바람에 목도리 속으로 파묻은 볼은 빨개졌고 머리에 닿자마자 녹는 눈에 머리는 꽤 축축해졌다. 그리고 여전히 예인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다.

 

어느새 편의점 앞이다. 예인은 일그러져 있는 자신의 표정을 그제야 인지했는지 애써 입꼬리를 올려 보이며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간다.

 

띠링~

 

- 어서 오세요! CS17입니다~!

 

사장 수희는 예인이 들어오는 종소리를 듣자 손님인 줄 알고 미소를 활짝 피우며 인사를 건넨다. 하지만 예인인 것을 확인하고 활짝 피웠던 미소를 지운다.

 

- 아 예인아 좀 빨리빨리 좀 다녀라! 나 약속 있는데 늦었잖아!

- 저 아직 근무시간 아닌데요……. 사장님이 부탁하셔서,

- - 모르겠고 나 간다~ 물건 들어오면 잘 정리하고 알았지?

 

사장 수희가 자신이 입고 있던 유니폼을 예인의 품으로 던지며 가방을 들고 편의점을 나선다. 예인은 그런 수희가 떠밀 듯 던지고 간 유니폼을 잡고 카운터로 들어간다. 카운터로 들어간 예인의 얼굴은 아까 애써 입꼬리를 올리던 노력이 무색할 만큼 다시 일그러져 있었다. 이번엔 얼굴을 애써 다시 풀어보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 대신 한숨만 쉴 뿐이었다. 예인은 한숨을 쉬며 학교 마크가 그려져 있는 교복 자켓을 벗고 편의점 마크가 그려진 유니폼을 입었다.

 

유니폼을 입은 예인은 편의점을 둘러본다. 아무 소리 없이 매대를 환하게 비추는 형광등 불빛만 있는 편의점은 예인의 얼굴처럼 적적하다. 예인은 그런 적적함이 싫은지 노래를 틀어 편의점의 적적한 분위기를 없애본다. 그리곤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다.

 

첫 일은 시재 점검하는 것이다. 예인은 포스기를 열며 자신의 첫 시재 점검, 부모님 허락확인은커녕 근로 계약서조차 쓰지 않았던 알바 첫날을 회상해본다.

첫날 오자마자 인상을 잔뜩 쓰며 최저시급에 못 미치는 8천 원 밖에 못 준다고 뻔뻔하게 말하던 사장 수희, 매대를 밝게 비추던 형광등, 편의점 문에 달린 종을 딸랑이며 들어오는 손님들, 예인은 어수선한 그 속에서 복잡하기만 한 포스기 다루는 법을 배웠다. 예인은 자신이 첫날 어리숙하고 서툴렀지만 잘 해냈다며 안심을 했다. 하지만 안심을 하기 무색하게 문제가 생겼다. 예인 타임 정산에서 8천 원이 비었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수희는 바로 예인에게 잘못을 따졌고 예인이 그 8천 원을 물어내기로 하였다. 그래서 최저시급조차 못 받는 예인은, 한 시간에 8천 원만 받는 예인은, 알바 첫날 월급에서 8천 원이 까였다. 그렇게 알바 첫날 끙끙대며 어수선한 편의점에서 1시간 동안 열심히 일했던 것은 없었던 일이 된 격이었다. 그 이후에도 정산이 잘 안 맞는 날들이 종종 있었다. 역시나 그럴 때마다 사장 수희는 예인의 월급에서 빈 돈을 깠다.

나중에 예인이 알게 된 사실로는 정산 속 돈이 비었다는 사실을 수희에게 알린 것도 백명이었으며, 정산 속 빈 돈을 가지고 있는 것도 백명이었다는 것이었다. 예인은 그 사실을 알고서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백명에게 따지지도, 사장인 수희에게 일러바치지도 않았다. 그냥 집에 있는 동생을 생각하며, 자신의 통장에 줄어드는 잔고를 생각하며, 침묵하고 애써 입꼬리를 올리며 다시 일할 뿐이었다.

 

-! 문자가 오는 알람 소리에 옛날 회상을 하던 예인이 번쩍 정신을 차린다.

 

언니야 오늘 늦게 오는 거야?ㅠㅠ 돌봄교실 선생님

 

예인의 동생이었다. 동생의 문자를 본 예인은 고개를 떨군다. 아까 바로 데리러 간다는 게 수희의 부름에 얘기조차 못 하고 혼자 교실에 머물게 한 게 미안한 모양이다. 입술을 뜯으며 예인은 그냥 늦는다고 문자를 할까 생각하다, 혼자 있을 동생과 늦게까지 자신의 동생을 돌봐줄 선생님께 미안해 전화를 걸어본다.

 

- 여보세요?

- 네 선생님 저 유인이 언니인데요. 혹시 유인이 한 번만 바꿔주실 수 있으실까요?

- 언니??

- 어 언니야, 바로 일하러 왔어 미안해.

- 아냐. 나 여기서 기다릴게

- 알아서 좀만 기다려- 끝나고 바로 갈게.

 

예인은 의기소침해진 유인의 목소리를 걱정한다. 그리곤 돌봄 선생님께 자신이 갈 때까지만 봐달라며, 죄송하다며 거듭 사과를 한다. 유인의 선생님과 전화를 끊은 예인의 표정이 한결 나아진다. 예인은 한시름 놓았다며 살포시 웃으며 포스기를 닫는다. 그리곤 카운터에서 나와 또 다른 일을 한다. 새로 들어온 물건 수량 체크하기, 매대가 비어있으면 물건 채워 넣기, 꽉 채워져 있는 쓰레기통 비우기 등을 말이다. 사실 이런 것들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다. 허나 사람들 상대하는 것이 어려울 뿐.

 

오늘같이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손님들은 계속해서 온다. 원래 진상이 오는 날에는 진상만 오는 건지 오늘따라 힘든 손님들만 온다. 앳된 얼굴로 카운터에 서 있는 예인에게 다짜고짜 반말로 이거 달라 저거 달라 명령하는 사람, 초저녁부터 술을 먹고 들어와 술주정하는 사람, 아이와 같이 와서 교복을 입고 일을 하는 예인을 보며 아이에게 공부 열심히 해야 해, 안 그러면 저 언니처럼 어릴 때부터 이런 일 하는 거야.’라며 다 들리게 말하는 사람까지 이러한 사람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예인의 앞에 나타났고 예인의 얼굴은 그때마다 수척해졌다.

예인은 오늘도 그런 사람들은 몇 번이나 스쳐 보내고, 매대를 정리하고, 매장 청소를 했다. 그리곤 시계를 본다. 지금 시각은 오후 10시 드디어 퇴근 시간이었다. 예인은 포스기를 열고 정산을 한다. 그리곤 백명을 기다린다. 하지만 백명은 10분이 지나도 오지 않는다. 밖의 하늘은 더욱 어두워지고, 내리는 눈은 이제 쌓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찰을 돌기 위해 순찰차를 몰고 거리를 도는 경찰까지 보인다. 그런 바깥의 풍경을 보는 예인은 초조해지기 마련이다. 예인은 그런 순찰차를 보며 의자에 걸려있던 교복을 숨긴다. 사장이 불러 일찍이 일을 시작해 다른 때보다 힘들었고, 거기다 늦은 밤에 자신을 기다릴 동생에 걱정만 늘어가는 것이었다. 예인은 결국 오지 않는 백명에 사장 수희에게 전화를 건다.

 

- ....... 상대방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역시나 전화를 받지 않는 수희였다. 예인은 마냥 기다릴 수 없어 편의점 전화기로 백명에게 전화를 건다. 연결음이 가는 내내 예인의 다리는 쉴 틈 없이 떨고 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건가? 백명은 전화를 받는다.

 

- 여보세요?

- 네 저 CS17 편의점 전 타임 임예인이라고 하는데요,

- 아 뭐야 사장인 줄 알고 놀랐네!

- 지금 제 타임이 끝나는 데 안 오셔서 전화 드렸거든요.

- 아 지금 가고 있어, 아 좀만 기다려-

- 빨리 와주세,,,

 

.....

 

예인은 끊긴 전화기를 들고 땅이 꺼질 듯 한숨을 쉰다. 그리곤 가방을 싸기 시작한다. 이때 예인의 핸드폰이 울린다. 발신자는 사장 수희였다.

 

- 여보세요

- 예인아 전화했네?

- 네 그게, 다음 타임 알바생이 안 와서요.

- 에이 뭘 그런 거로 전화를 하니, 좀만 기다리면 올 텐데

- 지금 10시도 넘었고 동생도....

- 아니다. 마침 잘됐네, 나 너한테 할 말 있었다.

 

할 말이 있다는 수희의 말에 예인의 얼굴이 살짝 굳어진다.

 

- ?

- 다른 게 아니라 다음 주부터 알바 안 나와도 될 것 같다.

 

갑작스러운 해고통보에 예인은 한숨이 덜컥 나온다. 마치 편의점 전체가 침체되는 것처럼 순간 조용해지기까지 했다.

 

- 다음 주부터 나오지 않아도 된다니 이게 무슨 말이세요?

- 최저시급이 더 오른다네 나도 사정이 힘들어 어쩔 수 없다.

- 원래 저 최저시급에 못 미치게 주셨잖아요-!

- 그건 너도 동의하고 시작한 거였잖아.

- 저 억울해요. 저 오늘도 그렇고 초과근무수당 받은 적도 없고 정산 빌 때마다. 제 실수 아닌데도 제 월급에서 깎였는데 갑자기 다음 주부터 나오지 말라니 무슨 소리세요?!

- 예인아 청소년 받아주는 편의점 몇 없다. 그냥 이때까지 일한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해.

- ....

- 그럼 다음 주부터 안 오는 거로 알고, 이번 주 월급까진 통장으로 넣어줄게

 

.... ... ....

 

전화가 끊겼다. 예인은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카운터 의자에 털썩 앉는다. 예인은 한숨을 땅이 꺼질 듯 내뱉고, 고개는 땅에 처박힐 듯 떨어뜨린다. 띠링~ 자신의 또래로 보이는 교복을 입은 학생이 들어온다. 핸드폰을 급히 자켓 깊숙이 넣는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손님은 온다. 허나 백명은 아직도 오지 않았다. 예인은 허망한 눈빛으로 자신의 또래로 보이는 손님의 물건을 계산한다. 손님이 나가고 예인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난다. 그리곤 편의점 로고가 박혀있는 유니폼을 벗고 학교 마크가 새겨져 있는 교복 자켓을 입는다. 띠링~! 편의점 종소리가 울리고 가방을 멘 예인이 편의점 밖으로 나간다. 아직도 백명은 오지 않았다. 하지만 예인은 개의치 않는다. 예인은 자켓 깊숙이 놓여있던 핸드폰을 꺼내 유인에게 전화를 건다.

 

- 여보세요? 언니?

- 어 언니야. 언니 일 끝나서 이제 집에 갈게-

- 언니 빨리와~~!!

- 알았어 얼른 갈게

 

... ... ..

 

어둑어둑한 밤하늘 위로 흰 눈이 내려온다. 예인의 검은 머리통에도 흰 눈이 소복소복 쌓인다. 유인과의 전화를 끊은 예인은 살짝 울먹인다. 눈에 살짝 고인 눈물을 훔치며 애써 입꼬리를 올려본다. 아까 편의점에 들어올 때와 같이 말이다. 그리곤 사장 수희에게 전화를 건다.

 

- 사장님 저 예인이에요. 저 잘리는 거 아니고 제가 그만두는 거예요.

 

예인은 울컥했다. 바람에 흔들려 소리를 내는 편의점의 종, 여전히 매대를 밝게 비추는 형광등의 잔상, 그리고 그런 밝은 편의점 밖에 서 있는 예인이다. ‘사장님 저 예인이에요…….’ 이 오래 작은 응어리 하나가 터지니 봇물이 터지듯 말이 쏟아져 나왔다.

 

- 저 여기서 1년 넘게 일했으니까 퇴직금 주세요. 또 제가 지금까지 못 받았던 주휴수당, 추가 근무수당 다 주세요. 안 주시면 저 다 신고할 거예요... 근로 계약서 안 쓴 처음부터 부당해고하는 것까지 모두.

- -! 예인아 그게 무슨 말.

 

... .... ...

 

전화가 끊겼다. 이번에는 예인이 먼저 끊은 것이다. 아직도 추운 바람이 분다. 어쩌면 아까보다 세게 부는 것 같다. 눈도 아직 내린다. 길가에는 눈이 쌓였다. 예인은 가방을 다시 고쳐 매고 목도리에 볼을 파묻는다. 하지만 고개를 움츠리진 않는다. 뽀드득뽀드득 눈 밟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뻔뻔하기만 했던 수희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이내 머릿속에서 수희의 얼굴을 지워본다. 예인의 핸드폰은 계속 울린다. 하지만 예인은 받지 않는다. 자켓 깊숙이 핸드폰을 숨기지도 않는다. 전화벨이 울리는 핸드폰을 들고 눈을 밟으며 유인에게로 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