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2월_특집1] 필수 노동자 지원 대책 '보호 및 지원'을 넘어 일상의 권리로 진전해야 / 2021.02

[필수노동자 대책에 노동권 보장은 필수다]

 

필수 노동자 지원 대책 '보호 및 지원'을 넘어 일상의 권리로 진전해야 

 

류현철/소장, 직업환경의학전문의

 

  사스(SARS), 조류 인플루엔자, 신종 플루, 메르스에 이어 2019년 겨울 등장한 코로나바이러스는 두 번의 겨울을 거치면서도 전 세계에 맹위를 떨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의 상황 속에서 우리나라는 비교적 모범적인 방역국가로 주목을 받았고, 정부도 K-방역을 치적으로 삼기에 여념이 없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자못 삭막한 방역 구호와 더불어서 펼쳐지는 방역 행정에 지쳐가고 있지만, 우리의 삶은 대체로 유지되고 있다.
  어떤 노동의 덕분이며 누구의 덕인가? 매일 수만 명에 대한 검사를 통해 쏟아져 나오는 수백 명의 확진자들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의료시스템을 지탱해 온 이들이 가장 먼저 조명 받았다.
  그들만이 아니다. 바이러스 창궐 속에 눈보라와 혹한이 몰아쳐도 필요한 것들은 여전히 문 앞까지 도달하며, 배달 음식은 식기 전에 식탁에 오른다. 휴일이나 명절에도 연로한 부모나 아픈 가족을 찾아가는 것조차 행정명령 위반의 죄가 될까 두렵지만 그들의 곁은 돌봄 노동자들이 지키고 있다. 코로나 19의 시대에 필수 노동자들이다.

필수노동자 지원 대책이 등장한 배경

  필수 노동자들의 현실은 의료인의 과로와 소진, 택배노동자의 과로사망, 배달 노동자 사고사망, 돌봄노동자의 감염, 콜센터 노동자들의 고위험 노출과 감염 등의 문제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초기에 코로나 방역에 실패했던 서구에서는 실업률이 치솟고 실업보험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대두되는 상황에서 일자리 유지를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일터로 나가는 노동자들의 현실과 그들이 수행하는 노동이 통상의 이동이 멈춘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 돌아보는 기사와 논문, 여러 가지 보호와 지원대책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K-방역'을 해치는 빌런들을 성토하는 데 쓰는 열의에 비해 필수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진전은 더디기만 했다. 그런 와중 지난 2020년 9월 방역 성과로 반등했던 정부여당에 대한 지지가 다시 내려앉던 정치적 상황에서, 서울 성동구 의회에서 바람직하면서도 일면 느닷없는 '필수노동자 보호 및 지원에 관한 조례'가 등장했다.
  대통령이 각별한 관심을 표명하자 노동부는 '필수 노동자 안전 및 보호 강화 대책'을 내놓았고, 필수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범정부 태스크포스(TF)가 출범했다. 성동구를 필두로 2021년 1월까지 행정안전부 자치법규정보시스템에서는 23개의 광역 및 기초지자체에서 필수노동자 보호나 지원과 관련된 조례가 확인됐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는 작년 11월부터 필수노동자 보호와 지원에 관련된 4건의 법안(민형배, 김영배, 송옥주, 이해식 의원 발의안)이 올라와 있다. 정부에서는 작년 12월 14일 관계부처합동으로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필수노동자 보호·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팬데믹 시대에 필수노동자 보호와 지원 대책의 대유행이다.

 

▲   코로나19가 드러낸 노동 불평등의 면면을 신중히 들여다 봐야 한다.

 

협소한 논의 지형, 지원 대책의 한계

  논의를 촉발한 지자체 조례들은 코로나19 대유행과 같은 재난 상황에서 필수노동자들을 위해 지자체가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수준이다. '필수노동자'를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로 두고 있는 점은 분명한 한계다. 필수노동에 종사하지만, '근로자'로 인정되지 않는 노동자들이 가장 문제적임에도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국회에 계류 중인 법률안들은 대동소이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필수 노동과 필수 노동자들에 대한 포괄적 정의, 국가와 지자체의 책무, 구체적인 필수 업종을 지정하고 기본계획·실태조사·시행계획 등을 수립할 위원회 조직구성을 담고 있고, 일부 법안에서는 추가수당 지급, 예방접종, 필수노동자 가족 돌봄서비스 등 구체적인 지원내용이나 필수노동자협회 등 당사자 조직 설립 등을 포함하고 있다.
  민형배 의원안을 제외한 3개의 안은 필수노동자를 근기법상 근로자뿐 아니라 '노무종사자'로 확장해두고 있다. 현재 소관위에 접수되어 있는 법률안들이 당장 필수노동자들에게 실효적인 보호와 지원을 가져올 수는 없다. 그러나 많은 사회적 논의가 입법이라는 형태로 귀결되는 상황에서 필수노동자 문제를 논의의 장으로 들어오도록 해야 한다.
  필수노동에서 수반되는 위험들에 대해서 국가와 정부, 광역지자체, 기초지자체가 각각 수행을 분담하고 협조해야할 사항을 큰 틀의 국가재난안전관리계획의 차원에서 조망하고 기획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비필수노동과 필수 노동의 경계는 모호하여 어떤 재난인지에 따라, 감염병이라도 유행 수준에 따라 유지해야 할 사회기능을 어떤 것으로 볼 것인지는 달라질 수 있다.
  필수노동과 필수노동자에 대한 규정과 정의를 누가 언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결정해야 하며, 재난 상황에 따라 재원 마련, 지원 우선순위 결정, 집행은 누가 언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원칙을 제시해야한다. 필수노동자들에 대한 방역과 안전대책은 국가재난안전계획에 포함시키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적 가치가 낮게 매겨져 있던 그림자 노동과 그것을 수행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드러내고 사회적으로 논의하는 계기로서 입법과정이 아닌 '필수노동자 지원'이라는 정치적으로 매우 그럴싸해 보이는 문구에만 매달리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재난 시기뿐 아니라 일상의 시기에도 지속가능한 '안전과 건강' 대책은 건너뛰고, 위험을 감수하거나 강제하게 만들 경제적 금전적 지원에만 집중하게 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필수노동자 보호·지원 대책 추진목표 및 전략. 2020년 12월 14일 관계부처 합동발표 자료 중 발췌

 

바람직한 필수노동자 정책방향은?

  작년 12월 관계부처합동으로 내놓은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필수노동자 보호·지원 대책(아래 필수노동자 대책)'은 추진목표를 필수노동자 보호 및 중단 없는 필수업무 수행으로 두고 정책방향으로 코로나 19로 가중된 위험에 대해서는 필수인력 확충, 감염·산재에서 보호하고 취약한 근로여건에 대해서는 종사자 처우개선, 사회안전망 등 제도개편으로 잡았다.
  전체적 정책방향에 동의할 수 있으나 구체적 추진전략으로 제시된 총괄대책과 분야별 '맞춤형' 지원방안은 기존 고용노동부의 사업계획을 이리저리 나열해 놓고 지도와 감독을 중심으로 하는 방역대책을 끼워 넣은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맞춤형'이라는 표현은 전체 제도의 조망 속에서 적절한 부분을 찾아가는 방식이라기보다 예외적인 상황을 만들어 정책을 교란하는 방식을 일컫는 것 같기만 하다. 진행형인 코로나 시기에 위험에 노출되고 있는 노동자들은 누구이며, 위험 노출의 결과로 나타난 노동자들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되고 있는지 실증적으로 살펴야만 한다.
  정부대책인 2021년에 필수노동자를 대상으로 마스크를 38억 원어치 지원하는 등 국가(공공)지원을 강화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더불어 한시적 조치를 넘어서서 일상적인 안전보건조치에 대한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 것인지 살펴야 한다. '방역조치 지도·점검 강화'라는 두루뭉술한 이야기가 아니라 요양보호사나 택배·배달노동자의 감염 예방을 위한 보호구 지급 및 보호 조치는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누가 책임져야하는 것인지, 어떤 법과 규정에 따르라고 지도하고 감독할 것인지 정하고 감독해야한다.
  당장 2배 넘게 증가하는 택배물량으로 작년에만 16명의 택배기사가 과로사하고 새벽 출근과 심야 업무에 시달리는 택배노동자들에게 직종별 특화 건강진단 비용을 지원하겠다는 대책은 핵심을 빗겨나간다. 작년 12월 노동부 스스로 성수기 택배노동자들은 주6일 이상 근무가 97.3%(일주일 내내 근무 12.4%), 10시간 이상 근무하는 경우가 92.9%(14시간 이상 근무 41.6%)라는 조사를 발표했음에도 이런 살인적인 노동을 줄이기 위한 적극적인 정책 개입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작년 9월부터 연이어 정부가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을 내놓고 사회적 합의기구를 만들어도 기업의 이해관계를 좀처럼 넘어서지 못한다. 5인 이상 모임 금지, 각종 시설과 영업장에 대한 집합금지 행정명령 등 단호한 방역 대책이 내려지고 있다.
  코로나로 인한 국내 50세 미만 전체 사망자수와 같은 16명의 택배기사가 과로사 했는데 택배물량을 기준으로 적정 인력을 제시하여 분류 작업을 분리하고 배치를 강제하는 행정력 동원은 왜 가능하지 않은가?

필수노동자들에게 노동권 보장은 필수다

  고용노동부를 중심으로 내놓은 대책에 포함된 노동자의 안전보건 방침과 처우개선, 사회안전망의 확대에 대한 기존의 계획을 코로나 19를 계기로 국민들에게 필요성을 적극 호소하고 실현되도록 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대책 전반에 노동자들의 적극적인 권리를 신장하고 옹호하도록 법제도를 구성해야한다는 관점은 드러나지 않는다. 장기적 관점에서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복원력(resilience) 확보는 필수노동에 대한 정당한 가치 인정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노동자들의 권리 보장과 사회안전망의 강화에서 비롯된다.
  실제 사회적 가치에 비해 현저히 저평가된 필수노동이 어떻게 정당한 대접을 받도록 할 것인가, 필수노동자들의 사회적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를 따져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대유행의 시기 이후에 필수노동은 다시 그림자 노동, 불안정 노동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좀 더 나아가면 필수노동자라면 '노동을 해야만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험에 대해, 비필수노동자라면 '노동을 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위험에 대해서 국가는 사회가 함께 나눌 책임을 살펴야 한다. 현행 법제도에서는 고용된 사업장의 규모, 고용계약의 형태나 관행에 따라 같은 일을 하는 '필수노동자' 사이에도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적용여부가 달라지고 결국 권리나 보호 수준에 차별이 발생한다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대책에 포함된 소득기반 제도 전환을 염두에 둔 전국민 고용보험과 전속성 기준을 폐지하는 전국민 산재보험 적용은 환영할만하다. 그러나 이러한 확장이 '특고'라는 기괴한 범주를 전제로 하고 있다면 한계가 분명하다.
  5인 미만 사업장의 필수노동자, '가사사용인'으로 분류되는 돌봄 노동자, 배달·택배 특수고용직 노동자, 프리랜서 등 근로기준법의 외부에 있는 노동자들을 살펴야 한다. 21세기에는 노동관계나 고용계약의 관행도 변화하고 있다.
  근로자성의 기준을 포함하여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고용보험법 등 법제도 개정을 통해서 사회적 안전망에 포섭되지 못한 노동자들을 제도 내로 포섭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서 현재 사회적 권리에서 배제되어 발생하는 필수노동자들의 문제에 대한 포괄적 해결을 도모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핵심적이다.
  '필수노동자 지원 법'은 그 사이 당장에는 노동자의 기본권과 건강권 관련 법제로 보호받기 어려운 필수 노동자들에 대해서 기본적인 긴급방역 및 안전보건조치, 감염 가능성이나 감염으로 인해 더 이상 '필수노동'을 수행할 수 없을 때의 대책을 강구할 근거를 마련하는 보완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정
  부대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생활물류법', '사회서비스원법', '가사근로자법' 등 보완적인 법안의 제·개정에는 현장 노동자들의 현실적인 요구를 반영할 수 있는 사회적 논의과정을 밟는 것 역시 반드시 필요하다.
  '보호 및 지원'을 넘어서 필수 노동자들이 사회 전체의 일상성과 안전을 위해 위험을 감수할지언정 이윤을 위해 위험을 강제 받지 않도록, 긴박한 시기의 위험수당으로서가 아니라 일상의 시기에서도 안전하고 건강할 수 있는 권리로 진전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