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응어리진 아픔들을 말하도록, 더 크게 말하도록-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경기지부 양선희 노동안전보건위원장 / 2021.02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응어리진 아픔들을 말하도록, 더 크게 말하도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경기지부 양선희 노동안전보건위원장

 

김다연/상임활동가

 

  눈빛은 속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양선희 노동안전보건위원장(아래 노안위원장)이 노동안전보건 활동에 뛰어든 계기와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오래 남았던 건 양선희 노안위원장의 눈빛이었다. 나의 삶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일, 나의 많은 힘을 기꺼이 할애하고 싶은 일을 이야기할 때의 눈. 그런 눈은 다른 빛을 낸다. 이번 <일터> 2월호에서는 그 빛 뒤에 있는 이야기들을 나누고자 한다.

산재 대신 내민 종이에 노조 활동을 시작했다

- 원래 어떤 일을 하셨고, 어떻게 노조 활동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저는 급식일을 2003년부터 시작했어요. 조리실무사로요. 처음엔 너무 행복했어요. 내가 해 주는 밥을 아이들이 맛있게 먹고 가는 것만큼 뿌듯한 일이 없었어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사고가 잦아졌어요. 2009년에는 큰 화상을 입었고요. 당시 사용하던 야채 절단기는 잘못하면 손가락도 절단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위험했는데, 사용하다가 손가락 살점 일부가 잘려 나갔어요.
  잘못된 가이드를 받아 절단된 살을 버리고 병원으로 갔죠. 어쩔 수 없이 발바닥 살을 떼어서 손가락에 붙였어요. 12년이 지난 지금도 겨울이면 항상 그 부위가 시려요. 그렇게 당한 두 번의 사고와 이른 출근 시간대, 감당해야 하는 엄청난 양의 급식을 생각하니 고등학교에서 더 일하는 게 어렵겠더라고요. 2010년 중학교 조리사로 이직을 했죠.

  2013년쯤부터 밤에 잠도 못 잘 정도로 양팔이 아팠어요. 급식실에선 일단 작업복 착용하면 나도 모르게 몸 아픈 건 잊고 기계처럼 일을 해요. 2~3개월 참다 병원에 가니 양팔에 테니스엘보가 왔다고 하더라고요. 의사 선생님께서 이 정도면 급식 일을 좀 쉬거나 그만뒀으면 좋겠다고 말했어요. 아니면 수술을 해야 하는데, 그 병의 수술 예후가 좋지 않고 그 이후 삶은 어떻게 할 거냐고 하면서요. 전 10년 넘게 급식 일을 했고 천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러면서 그분이 제 병은 산재라고 얘기하셨어요. 그 말을 듣고 저도 산재신청을 하려고 했죠. 그런데 학교에서 산재가 아니라고 해요. 일단 유급/무급 병가와 방학기간을 사용해서 3~4개월 정도 치료받고 많이 회복했어요. 복직하러 가니까 학교에서 동의서를 내밀더라고요. 뭔지 읽어보려 하니 언제부터 이런 거 읽어보고 사인했냐면서 그냥 하라고 했어요. 일단 급하게 사인했죠.
  알고 보니 조리사에서 조리실무사로 변경하는 건에 대한 동의서였어요. 교육청에서 기존 조리사에 대한 학교의 임의적인 직위변경을 금지했는데도요. 복직하고도 힘든 일들이 많았어요. 그러다 노조 소개를 받았죠. 갖가지 문제들에 대한 이의제기를 노조와 함께하고, 그 길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 노동안전보건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당시 어떤 활동들로 시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다치기도 했고, 몸도 아프잖아요. 그러니까 아픈 사람이 문의를 해 오면 더 관심이 가는 거예요. 임금도 중요하지만 일단 몸이 안 아파야 일을 할 수 있으니까. 당시 안양지회장이셨던 김영애 전국교육공무직본부 부본부장이 양어깨 회전근개파열로 수술도 하고 산재승인을 받으셨어요. 저는 비슷한 시기에 아팠어도 노조도 노안활동도 몰라 산재신청도 못했지만요.
  김영애 부본부장이 그러더라고요. 우리도 노안활동을 해야 한다고요. 경험이 있다 보니 그 말이 더 와닿았죠. 노안활동을 2015년부터 했어요. 지회에서 누군가 아프다고 문의를 해 오면,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노무사님들의 도움을 받아 산재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일로 시작했죠. 조합원들과 산재교육을 진행하면서 우리의 병은 산재승인 받을 수 있다고 홍보도 했고요. 처음에 지회 조합원 60~70명으로 시작했는데, 그런 활동들이 계기가 되어 현재 500명 이상까지 늘어났어요.

 

▲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경기지부 양선희 노동안전보건위원장

 

폐암, 갑상샘암... 말 못 하는 이들을 위해

- 교육공무직에 포함되는 직종에서 주로 문제가 되는 질병은 어떤 건가요?

  "일단 교육공무직에는 조리사, 조리실무사, 영양사, 사서 등 수십 개가 넘는 직종이 있어요. 직종마다 질병도 다양하죠. 일단 제가 경험했던 급식실 쪽을 이야기하자면, 근골질환은 기본적으로 있고요.
  급식실은 공기순환이 잘 안돼서 폐암도 많아요. 후드는 있어도 공조기는(후드에 연결되어, 후드로부터 올라오는 이물질을 빨아들여 밖으로 배출하고 새 공기를 넣어주는 기구) 없는 학교가 많거든요. 조리할 때 음식에서 나오는 연기가 폐에 아주 안 좋아요. 급식실에 그 연기가 자욱해요. 특히 겨울에는 후드를 켜고 일하면 너무 추우니까 끄는 경우가 많아요. 옷 이물질이 들어갈까 봐 두껍게 껴입지도 못하니 더 춥거든요.
  또 갑상샘암도 많아요. 한 사업장에 2~3명씩 동일한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어요. 직업성 암인지 조사해야 해요. 얼마전엔 락스 중독사고도 있었죠. 아주 독한 오븐 크리너 3종은 2~3년 전에 없어지고 세척력이 좀 약한 1종으로 바뀌었죠. 그런데도 중독사고가 났어요.
  미화선생님들도 근골질환이 많아요. 아파도 참고 일하고 마치면 치료받고. 지난 2020년 2월에 한 분이 테니스엘보로 수술하면서 산재 신청을 하셨고 승인을 받으셨어요. 그걸 계기로 다른 선생님들도 더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청소가 힘들잖아요.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 많으시고요. 6시간 안에 그 큰 학교를 다 청소해야 하니 굉장히 바쁘고 몸에 무리가 많이 가죠.
  초등학교는 아이들이 화장실을 깨끗하게 못 써서 일이 더 많다고 하시더라구요.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 포함되지 않은 직종 중에서 행정실무사 선생님들은 테니스엘보나 손목터널증후군, 회전근개파열이 많아요. 컴퓨터를 많이 쓰니까요. 목도 안 좋은 경우가 많고요. 또 특수건강검진 대상이 되기도 한 과학 선생님들은 각종 화학물질들을 관리하시다 보니, 그로부터 발생하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죠."

- 2020년 여름부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아래 한노보연)와 '굴뚝속으로 들어간 의사들(이하 굴뚝책) 책 읽기 강좌'를 진행하고 계신데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희 지부 박정호 국장이 지회마다 노안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우선 노동안전보건에 대한 감수성을 기르는 교육과정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셨어요. 노안활동은 저 혼자 할 수 없어요. 지회마다 노안활동가들이 있어야 하죠. 특히 자기가 아프다는 말을 하기 어려운 위치에 계신 분들이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너무 아픈데 말 못하는 분들이 많아요.
  제가 조리실무사로 있을 때, 하루는 몸이 막 떨릴 정도로 아팠어요. 출근 못한다고 전화했죠. 그랬더니 저한테 '야 너 때문에 난리났어, 기어서라도 빨리 출근해' 라고 하더라고요. 하루 종일 이를 악물고 일을 했어요. 식은땀 뻘뻘 흘리면서. 내가 조리사가 되면 그 말 만큼은 안 하고 싶더라고요. 동료가 아프다고 하면. 조리사 되고 나서는 아프면 쉬라고 하고, 거기에 대해선 토를 못 달게 했어요.
  쉬어야 다음 날 다시 일할 수 있잖아요. 그런 날은 진짜 내가 뛰어다니면서 일을 했어요. 대체인력 쓰는 건 지금도 잘 안 돼요. 그 시절부터 일하시던 분들은 지금까지도 그게 머리에 박혀서 하루도 제대로 못 쉬어요. 그런 분들이 밖으로 자기 이야기를 어떻게 하나요.
  올해 8월 말이 정년이신 분이 계세요. 목 디스크, 허리디스크, 양팔 테니스엘보, 회전근개파열이 왔대요. 오래 서 있을 수도 누워있을 수도 앉을 수도 없어요. 학교는 출근 안 한다고 난리가 났고요. 제가 무조건 쉬라고 했어요. 자기 곧 정년인데 뭐 아쉬울 게 있냐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나는 그분한테 '선생님이 여기서 이겨나갔으면 좋겠다고, 선생님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다음 사람을 위해서라도 그래줬으면 좋겠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그리고 4개 질병에 대해 한 번에 산재신청을 했어요. 보통 이 정도로 아프면 학교에서도 규정 들이대지 않고 질병 휴직하게끔 해줘요. 그런데 그 학교는 이 선생님을 자르고 싶은 거예요. 그 분이 유급/무급병가를 다 썼고, 취업규칙상 질병 휴직 쓰려면 8주 진단서 필요한데 없으니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경기도교육청에 말 했어요. 어느 의사가 4주 이상 진단서 떼 주냐고요. 그러던 차에 그 선생님 어깨도 너무 망가져서 수술을 하게 되셨고, 그 때문에 8주 진단을 받아 질병휴직 들어가기는 했어요.
  얼마 전에 그분과 통화를 했어요. '네가 아니면 이런 용기도 못 냈지만, 20년 넘게 급식실에서 몸 생각 안 하고 죽기 살기로 일 한 게 억울하다고. 어느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데 누구를 위해서 이 일을 했을까' 그 생각만 든대요. 산재 진행하는 동안 학교 때문에 너무 비참했대요. 저는 그 분께 정년퇴임 하셔도 이 활동 계속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현장은요, 근골격계 문제에 앞서서 이미 마음에 병들이 너무 많아요. 제가 노조 활동을 하면서 느낀 게, 난 진짜 교육을 잘못 받았구나. 저는 학교 다닐 때 부모, 선생님께 순종해야한다고 배웠어요. 안 그러면 큰일 난다고요. 나라에 충성해야한다는 교육은 당연히 받았죠. 내가 왜 그 말을 잘 들었지? 억울해요.
  이런 분들의 의견을 모아서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한노보연과 함께 굴뚝책 읽기 교육을 진행하게 됐죠. 처음처럼 스물 몇 명씩 나오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나오시는 선생님들은 진짜 열심히 하세요. 빨려드는 교육이에요. 다들 의견도 적극적으로 내시고. 진행하길 아주 잘 했다고 생각해요.
  또 작년엔 '나도 강사다' 교육도 해보려고 했어요. 코로나 때문에 못 했지만요. 계속 설득해서 올해 6월 교육 참석자분들이 들으실 수 있게끔 할 거예요. 물론 그 교육 한 번 받고 바로 강사로 뛰기는 어렵죠. 근데 한 번 받고 또 받고. 용기를 내시면 돼요. 나 같은 사람도 하는데. 현장에 계신 분들이 노안활동가로 성장하실 수 있게끔 해야 해요. 가장 현장을 잘 아는 사람들이 해야 교감하는 교육이 돼요. 그게 현장에서 현장을 바꿀 수 있는 길이예요."

- 노안활동을 계속 이어나가게끔 하는 동력은 무엇일까요?

  "사실 때로는 제 부담감을 떨치고 싶기도 해요. 학교 현장으로 들어가는 게 가족들이 바라는 거기도 하고요. 24시간 노조 혹은 노안 활동이 항상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어요. 근데 제 주변에서 '네가 있어서, 네가 이렇게 해 주니까 우리가 이만큼 학교에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가장 뿌듯하고, 내가 이 일을 참 잘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분은 '광명은 언니가 있으니까 누구도 걱정 안 해'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주변에서 인정해 주시는 게 감사하죠. 제가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바로 그런 것 아닐까 해요."

응어리진 아픔들을 말하도록, 더 크게 말하도록
 

  양선희 노안위원장의 말을 통해 산재를 신청하고 승인받는 일을 다시 보게 되었다. 산재인정이 되면, 회복을 위한 시간/금전상 보상을 받는다. 이는 동시에 나의 고통을 이야기하고, 그에 대한 응답과 인정을 받는 일이기도 했다.
  노동에서 비롯된 몸과 마음의 고통을 말하지 못하는 것 혹은 말했으나 인정받지 못하는 것. 내 몸과 마음이, 곧 나라는 사람이 부당하게 고통받지 않아야 할 뿐만 아니라, 세심히 보살펴야 할 가치가 있는 존재임을 무시당하는 경험이다. 나의 인격을 존중받지 못하고, 생명 없는 노동력의 한 단위로 취급받는 고통. 몸의 병 이전에 이미 마음의 병이 있다는 양선희 동지의 말은 바로 그것들의 응어리를 일컫는 것일테다.
  노안활동은 그렇게 단단히 뭉친 아픔을 한 겹, 두 겹씩 풀어내는 일이 아닐까. 고통의 부름에 응하면서, 그들의 '말하기'를 지지해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