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현장에서 전망을 찾다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정재현 노동안전보건부장 인터뷰 / 2020. 09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현장에서 전망을 찾다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정재현 노동안전보건부장 인터뷰

정경희 선전위원

지난 7년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활동해오던 정재현 노동안전보건활동가는 지난 2월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로 거취를 옮겼다. 그리고 6개월이 흘렀다. 8월 24일 오후 프란치스코회관 산타미아노라 카페에서 노동안전보건활동가로 또 다른 전환기를 맞고 있는 그를 만났다.

노동자 건강권 운동을 시작한 계기

못 본 사이 얼굴이 더 작아졌다 했더니 예전보다 일은 줄었다며 반갑게 웃는다. 수다는 뒤로하고 인터뷰를 먼저 시작했다. 노안(노동안전)활동 8년 차를 맞은 그가 대학 전공과 무관한 노동자 건강권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소위 운동권 학생이었는데 학교 다닐 때 노안활동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학생 때는 안전보건 문제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었죠. 그러다 졸업을 앞두고, 선배로부터 반올림 자원 활동을 제안받았어요. 두 달간 반올림 상근활동가와 일정을 같이하며 피해자 가족도 만나고 활동도 알게 되면서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활동이고, 여성노동자의 문제이기도 해서 반올림 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한노보연과 반올림이 사무실을 함께 사용했는데 연구소 활동가들도 자주 보게 되고 자연스럽게 연구소 활동도 접하게 되었어요. 그동안 익숙한 노조와 같이하는 활동이 인상 깊었고, 현장에서 꼭 임금만이 아니라 안전보건 활동을 오랫동안 해왔고 노안부가 있다는 것도 그때 알게 되면서 관심 있어 시작하게 되었어요. 현장 활동 중에서도 또 다른 영역이나 의제가 있는 운동이어서 의미 있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부정은 긍정보다 강렬하다. 관심 있어 시작했고, 의미 있어 보람된 활동이더라도 어디서든 무슨 일이든 곤혹스러울 때는 있기 마련이다. 그동안 노동안전보건활동을 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한노보연에서 현장성, 계급성, 전문성이 있잖아요. 전문성이 제게는 화두였고 늘 마음의 짐처럼 있었던 것 같아요. 안전보건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애초부터 알았던 게 아니니 현장성이 있거나 전문직인 경우와는 다르게 현장에서 부딪히며 배워야 했어요. 현장 가서는 조합원들한테 '현장안전점검 최고 전문가가 누구냐, 현장에서 일하는 조합원 여러분들이다. 그래서 현장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여러분들이다'라고 말했지만, 정작 스스로는 위축되고 자신감도 부족했죠. 일례로 현장에 안전보건교육 갔을 때 사측 안전관리자들이 나이가 어리다고 깔보거나 어디 대학 출신이냐, 전공은 뭐였냐 질문을 받을 때 할 말이 없는 거예요. 스스로 자신이 없어 지금도 잘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올해 방통대 환경보건학과에 편입해서 공부를 시작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잘 안 하게 되더라고요."

전문성은 기술 지식적 방법론에 지나는 것 아닐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계급성이라 표현하는 일하는 사람의 관점이 아니겠냐는 질문에 연구소 상임활동가의 경험이 묻어나는 답변을 주었다.

"현장노동자에게 공감받는 연구를 책임 있게 해야 하고, 또 한 축으로는 노동조합과 사측 모두 설득할 수 있는 연구 활동을 해야 하니 무겁고 어려운 것이죠. 그렇지만 전문성이 가장 중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연구소 선배들을 보면 다 전문가잖아요. 자격증이 있어서가 아니라 노동자적 관점으로 현장을 볼 수 있어야죠. 현장활동가들도 몸으로 부딪치면서 산재나 노안활동 전문가가 되잖아요. 그런 걸 보면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연구소에서 전문성을 갖도록 이끌어주고, 역량을 쌓을 수 있도록 기다려주었던 것도 좋은 기회였던 것 같아요."

지난 2019년 인권재단 사람의 <일단, 쉬고> 프로젝트로 다녀온 뉴욕에서의 재충전 시간들. 출처: 인권재단 사람


활동에 대한 고민과 변화

지난 3월, 돌연 7년째 함께했던 한노보연에서 민주노총으로 활동을 옮겼다. 단체에서는 충족하지 못했던 부분이나 노동조합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민주노총 활동에 대한 갈망이 있었을까? 솔직한 고민 지점을 듣고 싶었다.

"앞서 말씀드린 전문성이라는 부분, 또 하나는 현장의 안전보건활동이 활발하지 못한 이유인 것 같아요. 상근을 시작했을 때에 비하면 최근 사회적 관심과 인식이 많이 높아졌고, 언론에서 중대 재해를 다루는 관점이 달라졌어요. 운동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는데 계속 반복하는 느낌이 있었어요. 중대재해가 벌어지고 그걸 대응하는 활동, 사고가 나면 대책을 세우고, 현장에서 일상적인 노동안전보건활동이 잘 점검되지 않은 것 같았어요.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 노동운동의 흐름 속에서 그렇게 된 것으로 생각하는데, 연구소 활동의 축도 현장과 같이하는 활동이 줄어들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 아쉬웠어요. 연구소 선배들이 현장과 같이 연구하고 투쟁으로 만들어왔던 경험이 저 때는 많지 않았거든요.

가령 연구소 신입회원을 보더라도 현장활동가보다는 전문가이면서 활동하고자 고민하는 분들의 가입이 많은 추세잖아요. 회원이 늘어 좋긴 한데 현장회원 가입률이 저조한 이유를 현장에서 확인하고, 잘 안 되는 과정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없을까, 연구소 활동의 장점을 살려 현장과 더 잘 만나게 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죠. 지금도 그건 고민이에요. 연구소에서 받은 걸 잘 살려서 현장노안활동을 활성화하고, 이것이 연구소가 추구하는 현장노안활동을 만들어갈 수 있으니 연구소 회원들도 제 선택을 존중해줬다고 생각해요."

분위기를 전환하고자 조직체계나 환경이 많이 달라졌을 것 같은데 적응과정에서 겪은 에피소드를 물었다.

"일단 여기는 100만 명의 조합원이 있는 곳이고 오랜 시간 동안 체계와 관행이 있어 제가 익숙해지면 되더라고요. 예를 들어 뭘 하나 하더라도 공문이나 결재를 받거나 그런 것들이요. 그리고 예전에는 저를 보는 분들이 재현 동지 이렇게 불러주셨는데 여기에서는 노안부장 이렇게 불러주시니까 호칭에서 가장 큰 변화가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부를 때도 호칭을 잘 못 부른다든가 그럴 때 민망할 때가 있었죠."

바쁜 일정으로 정신없겠지만 현장을 그 전보다 많이 만나면서 이것만은 내가 지키겠다고 생각하는 노안활동가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덕목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여쭤봤다.

"적어도 현장에서 일하다 아프거나 다쳤을 때 조합원은 노조에 알리고, 노조 간부들은 어떻게든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문화를 만드는 것 이것이 일단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그것에 대해 조직이 같이 고민하고 책임지고 모두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산재승인 여부를 떠나서 그런 조직문화를 만드는 것, 그리고 사실은 현장조합원 300명 있는데 한두 명 전임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아요. 노안부장 혹은 노안활동가에게 전가하는 현장 분위기는 아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같이 고민하고 같이 집행하는 구조가 되잖아요. 적어도 우리 현장에서 누가 죽거나 다치면 안 된다는 것을 조직 전체가 공유하고 그렇게 하기 위한 문화와 시스템을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해요.

3~4년 정도면 공부나 활동을 통해 조금씩 알아 가는데 그때 집행부가 바뀌잖아요. 그래서 노안활동은 적어도 10년은 해야 한다는 긴 호흡으로 갈 수 있고, 조합도 그렇게 길게 갈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요. 코로나19 때문에 더 안 되고 있는데 적어도 알 권리 보장 차원에서 안전보건교육은 꼭 해야 한다는 게 가장 중요한 사항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향후 목표와 포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 활동을 주로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이 많으실 거라 짐작되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은 현장이나 지역사회에서 필요성에 의해 준비하는 것을 아는데, 실제 현장의 요구는 어떠하고, 어떻게 조직하고 있는지 물었다.

"기업 살인법으로 시작해서 오랜 시간 요구해왔던 의제잖아요. 현장에서는 당연히 관심 있고, 건설노조의 경우 전태일3법 중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있으니까 적극적으로 받아 앉아 가자고 투쟁하고 있어요. 방식이 온라인 청원방식이잖아요. 건설노조는 9월 한 달간 모든 행사는 오프라인으로 하고, 이것을 진행한다고 하고 있어요. 21일대 국회 개원하면서 5~6월 농성 투쟁도 했고, 민주노총은 제정 원년으로 선포하고 코로나19로 어렵긴 하지만 반드시 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전 조직이 가동되고 하반기 싸움을 준비하고 있어요.

전태일3법을 20만 명 조직해서 청원하는 것이 목표예요. 민주노총은 전태일3법 성공을 위해 실천단을 조직하고, 이들이 현장에서 20만 명을 조직하는 교육이나 총회, 집회를 통해서 입법 청원을 한다고 결의하고 선전 활동을 하고 있어요. 19대, 20대 국회에서 모두 발의를 했는데 국회 상임위에서 논의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10만 명을 모으는 게 쉽지 않지만, 국민적 여론이 있지 않으면 국회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목도해왔기 때문에 이번에 이런 방식을 선택하게 됐어요."

짧은 인터뷰 시간을 안타까워하며, 시민사회단체, 현장, 각 전문분야에서 활동하는 노안활동가에게 동지로서 하고 싶은 말씀을 부탁했다.

"현장을 많이 가보자. 특별한 것을 하지 않아도 현장을 보는 것 자체가 배우는 게 많아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강권 활동에 대해 현장노동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현장 상황은 어떤지를 볼 수가 있어요. 건강권 현장 활동은 엄청난 정치적 문제잖아요. 자본 입장에서 안전보건활동은 규제고 귀찮은 것들이라 여기기 때문에 대립해야 하고, 현장에서 이런 것이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를 읽을 수가 있고, 결국 안전보건활동이라는 것이 현장노동자적 관점에서 시작하는 것이고,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제도적으로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어서 현장에 가는 경험이 도움 되고 역량이 많이 쌓일 수 있어요.

조합원은 연구소 활동가라고 하면 다 알 것 같고, 질문하면 답을 바로 줄 거라는 눈빛을 해요. 부담스러울 때가 있어요. 금속사업장은 연구소에서 경험이 많으니 조금만 노력을 기하면 답을 드릴 수가 있어요. 이전 사례들도 있고. 다른 업종의 경우 현장이 어려우니 경험이나 자료가 부족한데, 그런 현장과 활동을 너무나 하고 싶고, 막상 가면 제도적 한계가 있고 이분들은 기대하는 경우는 어렵지만, 현장보고 조합원들과 대화하다 보면 이 활동하길 잘했다, 같이 바꾸고 싶다고 느끼면서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