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 읽는 노동] 플랫폼 속 밀레니얼 리얼리즘 / 2020.03

[문화로 읽는 노동] 

 

 

플랫폼 속 밀레니얼 리얼리즘-장류진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 

 

 

 

김상민 / 문화사회연구소 소장 

 

 

 

'일의 기쁨과 슬픔이라… 일에는 당연하게도 슬픔도 기쁨도 있는 법이지' 하면서 책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작가가 만들어 놓은 가공의 이야기와 실재하는 사물들 사이에 걸쳐진 묘한 덫에 걸려들어 소설의 기쁨과 슬픔을 맛보고 있음을 깨닫는다.

아니, 다 읽고 책을 접을 때까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그렇다고 환상적 리얼리즘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환상적이라기에는 너무나 현실적이고, 리얼리즘이지만 웃음을 잃지 않는다. 이 소설(집)을 밀레니얼 세대, 페미니즘 리부트, 소확행, 워라밸, 플랫폼의 시대에 길어 올려진 (이렇게 이름 붙일 수 있다면) '밀레니얼 리얼리즘'의 전형이라고 한다면, 작가가 슬퍼할까?

 



밀레니얼 세대의 노동 이야기

'우리 동네 중고 마켓'의 준말인 '우동마켓'이라는 중고거래 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이 스타트업에서 "사실상 막내"인 나는 서비스 기획자다. 앱 개발자들이 서비스를 런칭하거나 수정하면 제대로 작동하는지, 사용상 문제는 없는지를 테스트하고 피드백하는 역할도 한다.

나는 앱 사용자들의 편의를 위해 어떤 기능을 개선해야 하는지, 어떤 과정에서 버그가 생기는지에 무척 관심이 많다. 아니나 다를까 소규모 스타트업에서 유행하는 '스크럼 시간'에 나는 '거북이알'이라는 특이한 우동마켓 사용자를 만나서 조사해보라는 대표의 지시를 받는다. '거북이알'은 "하루에 거의 백 개씩 글을 올리고 ... 가격은 늘 인터넷 최저가보다 조금씩 싸게 책정"하는 데다가 "파는 물건에도 일관성이 없"어서 혹시 어뷰저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사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결국 우동마켓 직원임을 숨기고 의심스러운 사용자 '거북이알'과 직거래함으로써 그의 실체를 알게 된다. 우동마켓은 플랫폼이다. 플랫폼은 사용자(소비자)와 생산자(판매자), 나아가 광고주까지 포함하여 모두가 하나의 앱 안에서 나름의 독자적 생태계를 유지하고 확장할 수 있어야 성립되는 기술적, 경제적, 문화적 토대다.

그런데 여기에 앱 개발자, 즉 마치 사용자나 생산자와는 달리 객관적 관점을 가져야 할 플랫폼의 직원이 상품을 매개로 생산자와 접촉한다. 그야말로 이 플랫폼은 플랫폼 개발자로 하여금 플랫폼을 통해 (혹은 플랫폼의 방식으로) 노동하게 만든다. 그런데 그 만남(혹은 노동)을 통해 '거북이알'이 들려준 이야기는 소설 밖에서 듣고 있던 이의 무릎을 털썩 꺾이게 만든다.

이웃 건물에 입주해 있는 카드사의 사원증을 걸고 나타난 '거북이알'과 물건을 거래한 뒤 우연히 점심을 같이 먹게 된 나는 "포인트로 사는 거니까 부담 갖지 말아요. 나 포인트 엄청 많아요. 아마 우리나라에서 제일 많을걸?"이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듣는다.

이 포인트라는 것은 말하자면 신용카드로 물건을 구매하면 구매액수에 따라 부여하는 숫자인데, 소비자가 이것을 (아주 많이) 모아 사은품을 받거나 현금화할 수 있는 가상의 화폐(아직 블록체인을 떠올리진 말자) 비슷한 것이다. 클래식 마니아이자 인스타그램 셀럽인 회장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죄로 월급을 카드 포인트로 받게 된 슬픈 사연.

노동의 대가가 화폐가 아니라 소비의 보상으로 주어지는 포인트라니. 물론 포인트도 화폐의 기능을 하기는 하지만, "회사 생활 십오 년 하면서 한 번도 운 적이 없었"던 그녀는 그 포인트를 보고는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만다. 이유는 "포인트가 너무 많아서." 마치 수십만 SNS 팔로워를 거느린 현실의 그 유명한 회장님인 것만 같은 그분은 자신이 '짠~' 하며 SNS에 올렸어야 할 깜짝 뉴스를 '거북이알'이 그만 미리 누설하는 바람에 김이샜고 찌질하게 월급-포인트 갑질로 응대한 것이다.

인스타그램에서 카드 적립 포인트로 이어지는, 소셜미디어 플랫폼과 가상 화폐 사이의 매끄러운 전환을 그려내는 소설적 묘사는 아마도 우리 시대의 노동과 자본의 본질을 보여주는 모범적인 사례라고 칭하고 싶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회장님의 사회적 자본의 축적과 개인적 유명세를 위한 허세가 어떻게 한 노동자 개인의 노동과 소비의 대가인 포인트로 귀결되는지는 깊이 연구해볼 가치가 있을 정도다.

일은 일일 뿐…

이 심각한 사태는 '거북이알' 특유의 긍정적인마인드와 밀레니얼다운 생존 방식으로 극복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포인트를 돈으로 전환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중고거래를 선택한다. 포인트를 써서 "잘 팔릴 법한 물건들"을 직원 할인가에 "근무시간에" 구매해 우동마켓에 올리고, "점심시간이나 외근 나갈 때 직거래"하면서 "나름대로 손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터득한다.

자신의 개인 시간은 쓰지 않으면서도 근무시간에 틈틈이 (어쩔 수 없는) 제2의 밥벌이를 해나가는 그녀의 지극히 생존주의적 워라밸은 존경스럽지 않을 수 없다. 포인트로 월급을 주는 회사를 위해 어떻게 나의 소중한 시간을 1분이라도 더 쓸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이들이 자기 일을 증오하거나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다. 일은 일일 뿐이다. 거의 유일하게 실명으로 등장하는 회사인 '엔씨소프트' 사옥을 바라보며, 두 사람은 이런 대화를 나눈다.

"저희 대표나 이사는 매일매일 그런 생각을 하겠죠? 어떻게 돈 끌어오고, 어떻게 돈 벌고, 어떻게 3퍼센트의 성공한 스타트업이 될지 잠들기 직전까지 고민하느라 걱정이 많을 거예요. 전 퇴근하고 나면 회사 생각을 안 하게 되더라고요."

"나도 그래요. 사무실을 나서는 순간부터는 회사 일은 머릿속에서 딱 코드 뽑아두고 아름다운 생각만 하고 아름다운 것만 봐요."

대표가 편애하는 남성 동료 개발자에게 치이고, 유명인사인 갑질 회장님에게 무시당하는 이 밀레니얼 여성 노동자들은 너무나 적절하고 우아한 자신들만의 노동윤리를 통해 거대한 시스템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균열을 만들어 낸다. 언제나 마치 자연스럽게 강요되는 퇴근 후 업무, 잔업, 야근, 특근, 회식은 임금노동자를 회사의 노예로 만들고 만다는 것을 사무치게 잘 알기라도 한 듯, 칼퇴와 퇴근 후 회사잊기를 실천하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의 노동관, 이해가 아닌 윤리와 실천의 문제

그런데 회사는 끈질기기 때문에 퇴근 후에도 우리를 계속해서 호출한다. 회사를 생각하고 염려하게 만든다. 그것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생각"과 "아름다운 것"이 필요하다. 거북이라든가 "루보프 스미르노바"라든가. 반려동물에 대한 사랑이든 아티스트에 대한 덕질이든, 임금 노예가 아닌 자유로운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뭔가 다른 것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들은 거창하거나 대단할 필요가 없다. 금요일 저녁 사무실에 혼자 남아 있는데 퇴근한 줄 알았던 대표가 들어온다. 하지만 "사실 야근하려고 남아있던 것은 아니었다." 저녁 아홉 시에 시작하는 루보프 스미르노바 리사이틀 온라인 예매를 위해 회사에서 시간을 때우고 있을 뿐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고독한 조성진" 채팅방에서 그의 카네기홀 연주사진을 업로드하고 홍콩행 항공권을 예매하면서. 조성진은 들어봤지만 루보프 스미르노바가 궁금하여 굳이 검색해보지 않기를 권한다. 누구에게나 덕질은 숨기고 싶은 것일 테니까.

다만 일의 슬픔이 있지만 기쁨 또한 있어서 우리를 살게 하고 우리 삶을 아름답게 한다는 것은 언제까지나 진리일 것이다. 밀레니얼 세대의 이해 못 할 노동관은 장류진의 소설이 그려내듯 지금의 기술적, 경제적, 문화적 상황에서 기쁨을 찾아내어야만 (그래서 생존해야) 하는 특별한 조건으로부터 온다. 따라서 그것은 이해의 문제가 아니다. 노동의 새로운 윤리와 실천의 문제다.

"사시는 동안 적게 일하시고 많이 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