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기 –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
채은 선전위원
스토브리그는 프로야구에서 한 시즌이 끝난 뒤 다음 시즌이 시작되기 전까지 계약 갱신, 트레이드 등이 이루어지는 시기를 가리킨다. 난롯가에 둘러앉아 여러 가지 정보와 소문이 오가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명쾌하고 정확한 몸값
필자는 꽤나 야구광이다. 한동안은 야구 경기 일정에 맞춰 삶을 계획하기도 했을 정도였고, 특히 우승팀을 가리는 진승부가 벌어지는 일명 ‘가을야구 시즌’에는 거의 야구에만 빠져있을 정도였다. 야구는 모든 것을 숫자로 표현하는데, 예를 들면, 타율, 타석, 타수, 득점,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볼넷 등을 통해 각 선수의 능력치를 숫자로 표현하고 이는 명쾌하고, 정확하고, 객관적이다. 이러한 야구의 특징은 다음과 같은 대사에서도 드러난다.
“90만 달러까지 된다고 했잖아요. 근데 50만 달러만 써서 허접한 애를 데리고 온 거예요?”
“그래도 메이저리그에서 뛰던 애라서요.”
“그러게 잘난 놈이면 50만 달러에 왔겠어요? 자기 몸값이 자기 능력이잖아요.”
대화 속 야구선수는 ‘몸값’이 50만 달러밖에 안 되는 ‘허접한 선수’다. 부상도 있고, 소위 잘 나갈 수 있는 기간이 지난 상태에 있는 그냥 그런 선수. 만년 꼴찌팀 드림즈는 50만 달러에 선수를 기용하고 비용 절감의 이득을 얻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생긴 잉여비용은 새로운 선수를 사는 데 사용된다. 적은 금액에 굉장히 효과적인 쇼핑을 마친 셈인데 마음 한편에서 불편함이 느껴진다.
어디 야구팀뿐이겠는가? 우리가 몸 담고 있는 일터도 마찬가지이다. 할당된 업무에 대한 평가는 매년 이루어진다. 기업들은 S, A, B, C, D의 등급으로 개인과 팀의 성과를 정량화하고 이에 따라 그 해의 성과급과 다음 해의 연봉, 즉 몸값이 정해진다. 최고의 등급을 받으려면 단순히 일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남들보다 앞서 나가야 한다. 따라서 경쟁이 시작되고, 경쟁은 과한 노동을 가져와 연장근로, 야간근로는 늘 있는 일이 된다. 게다가 옆 동료는 더이상 동료가 아니고 내가 이겨야 할 대상이 된다. 최하위 등급은 반드시 누군가가 채울 것이고, 나는 최하위 등급을 받아서는 안 되니까. 능력 있는 자는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고, 능력 없는 자는 손가락질의 대상이 된다. 경쟁으로 인해 켜켜이 쌓여있는 스트레스와 긴장감은 타인에 대한 몰이해와 배제의 도화선이 되고, 이는 일터괴롭힘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명쾌하고 정확한 숫자로 인한 서열화는 인간의 본질과 가치를 몰살시키는 도구로 작용한다.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짜리 사람인지가 우선되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받는 연봉이 깎이게 되는데, 당신의 지금 성능으론 그 가격을 주지 못하니 좀 더 일하고 싶으면 떨어진 성능만큼 하향된 가격대를 받아들이기를 권유받기도 한다. 여기에 ‘인격’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일터를 구성하고 있는 기계이거나 ‘인적 자원’, 즉 ‘물건’만이 남는다.
우린 가끔 ‘나는 어떠한 것을 좋아하고, 어떤 성격을 가졌으며, 어떤 신념을 가지고 살아! 난 이런 사람이야’라고 이야기하지만, ‘나는 얼마짜리야’라고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각자의 본질에 관심이 없다. 대학 입학 성적, 학점, 시험 점수 등 온갖 테스트를 통한 수치, 월급, 연봉 등 각자가 얻어 낸 숫자에만 신경을 쓸 뿐이다. 그렇기에 진짜 가치를 알아봐 주는 작은 행동이 필요하다. 비록 그것이 정치적 올바름이 강한 것일지라도 의식적 노력이 필요하다. 사회 속에서 우리가 숫자로 남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몰인격을 인정하는 애석한 일이기 때문이다.
진짜 가치를 알아준다는 것은 뭘까?
이와 관련해, 드라마 속 한 장면 중, 포수 서영주에 대한 서사는 꽤 인상적이다. 야구 포지션 중, 포수는 가장 중요하지만 투수의 빛에 가려진 안타까운 자리이다. 사실 포수는 야구 경기 전체를 읽어내는 포지션이기에 그라운드 안의 감독이라고도 불리는데 말이다.
극 중 서영주는 만년 꼴찌팀 드림즈의 포수다. 현재 야구에 대한 열정보다는, 개인의 능력치를 높이는 것과 몸값을 높이는 것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는다. 모든 선수의 연봉 삭감의 위기 상황에서도 본인의 입장만을 고수한다. 그도 그럴 것이 포수 서영주는 온갖 고질병에 시달린다. 포수는 경기 내내 ‘쪼그려 앉는 자세’를 취해야한다. 투수가 던지는 공의 방향에 쉽게 따라가려면, 혹은 도루하는 선수들을 즉각 방어하려면, 순간적인 자세 변환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로 인해 땅바닥에 편하게 엉덩이를 대고 앉지 못하고, 엉덩이를 공중에 띄워 앉은 것도 아니고 서 있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여야만 한다. 이를 보여주듯 극 중 포수 서영주의 무릎은 물로 가득 채워져 있고(그래서 늘 물을 빼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치질 등 항문 관련 질환 등으로 고생하고 있으며, 허리 또한 망가진 상태이다. 이렇게 몸이 망가졌으니 그만큼 보상받아야겠다는 독한 맘으로 연봉 협상 과정에서 거칠게 행동한다. 그렇게 고집을 꺾지 않고 사납기만 하던 포수 서영주는 단장 백승수의 한 마디에 이 마음이 누그러진다.
“다치지 말고 뛰세요.”
그라운드에서 자신의 포지션을 지키는 단순한 말이나 운동하는 기계가 아닌, 사람으로서의 대접을 받았다고 느낀 것일까. “지금 저 걱정해 주시냐고요.”라는 포수 서영주의 대사는 그가 진정 원했던 ‘대접’이 무엇인지를 말해준다. 우승을 위해 몸을 망가뜨려야만 하는 야구선수에게 당신의 건강이 진심으로 걱정된다는 말 한마디, 나는 당신이 다치지 않고 오래 선수 생활을 하기 바란다는 내심의 의사가 닿는 순간 그 선수는 ‘인적 자원’이 아니라 ‘인간’이 된 것이다.
일터에서든 어느 곳에서든 숫자에 따라 매겨지는 거짓된 가치를 벗어나고 싶은 것. 그건 알고 보면 우리 모두의 바람이 아닌가 생각된다. 단순히 조직 내 부품이 되어, 그리고 항상 평가의 대상이 되어, 앞으로 계속 사용될지 혹은 폐기되어 버려질지 모르는 처지에서 벗어나, ‘진정한 인격체’가 되는 그 순간. 우리는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마주하려는 것. 사실, 그게 서영주와 우리 모두의 바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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