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3. '평등한' 노동안전보건을 위한 요구, 일터에서의 성중립화장실 / 2020.03

'여자처럼' 꾸미고 '여자처럼' 말하는 일은 정현 인생에 없다. 그러나 회사 사람들은 정현의 성별을 의심하지 않는다. 내 주변에 성소수자는 없다고 믿으니까

 -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오월의봄, 2019) 중에서

 
위의 문장에서 나오는 '정현'이란 사람이 바로 나다. 먼저 내 소개를 하자면 나는 이력서 성별란에 '여자'라고 적히고,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2로 시작하는 '남자'다. 다시 말해서 트랜스젠더 남성이고 30년 전에 여자로 이 세상에 태어남을 '당'했다. 고등학생 시절, 처음으로 내가 가지고 태어난 성별과 실제로 느끼는 성별이 불일치하다는 '젠더 디스포리아(성별불쾌감)'을 경험했다.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나는 트랜스젠더 남성으로 정체화했다. 현재는 성소수자인권 단체인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의 노동권팀과 트랜스젠더퀴어인권팀에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트랜스젠더 남성의 화장실 이야기  

 

성중립화장실의 표지판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트랜스젠더 남성으로서 겪었던 일화 몇 개를 소개하고 싶다. 첫 번째 일화는 어떤 학원에서 일할 때였는데, 퇴근시간 후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남자화장실에 들어갔다가 회사 동료랑 마주쳤던 적이 있었다. 다음 날 팀장님과 면담할 때, 내가 트랜스젠더 남성이고 퇴근시간 이후라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남자화장실을 사용했다고 커밍아웃을 했다. 다행히 그 팀장님은 자신의 주위에도 퀴어가 있는 엘라이(성소수자 지지자)셨고, 팀장님께서는 잘 넘겨주셨다.

두 번째로 가장 최근에 다녔던 직장 이야기다. 장애인 인권단체였는데 입사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같이 일하는 센터 활동가들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나는 내가 트랜스남성이며 나를 남자로 대해 달라고 했는데도, 나를 여자로 대하거나 나를 여자로 가정하고 이야기하는 걸 들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또 장애인 당사자이기도 한 동료 활동가들은 그들의 활동지원사와 같이 사무실에서 지내는데, 어느 날 장애인인권활동가들이 모이는 행사가 열렸다. 그곳은 내가 트랜스남성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았지만, 내가 남자화장실에 들어가려 하자 한 활동가의 활동지원사가 여기는 남자화장실이라고 막아 세웠다.

일터에서의 평등, 젠더분리화장실만으로 가능할까?

트랜스젠더 남성으로서 노동을 해오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화장실'은 중요한 문제였다. 최근 몇 년간 성소수자의 화장실의 이용 또는 성중립화장실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 2015년, 강남역 인근 상가 화장실에서 한 여성이 살해 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많은 페미니스트의 분노로 현재 페미니즘 운동과 담론이 활성화됐지만, 한편에서는 사건 이후 성중립화장실에 대한 문제도 제기되었다. 당시 서울시는 모든 공중화장실을 남녀 분리하겠다고 발표했는데, 트랜스남성인 나는 그 말을 듣고 "역시 세상은 시스젠더(타고난 생물학적 성과 젠더 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 중심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법적 성별을 정정하기 위한 호르몬 치료를 시작했고 머리도 짧아서 남자화장실에 들어가도 큰 문제는 없지만, 그 당시만 해도 목소리를 내면 톤이 높아 패싱이 깨져 버리는 상황이었기에 외부에 있는 화장실을 사용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화장실과 관련된 한 가지 일화를 더 얘기해 보려 한다. 몇 년 전, 외출해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급히 화장실을 가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그때 남자화장실이든 여자화장실이든 사람이 많은 상황이었는데, 어느 곳을 가야 할지 무척 고민이 되었다. 과거에 내가 여자화장실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잘못 들어온 줄 알고 다시 나가서 표지판을 확인하고 들어오는 경험이 여러 번 있었고, 트랜스젠더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회에서 남자화장실을 들어가는 것 또한 어려웠다. 결국 나는 2시간 넘게 화장실을 가지 못하고 참았다.

이렇게 트랜스젠더들은 일터 화장실이나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때, 어느 곳에 내가 속할 수 있을지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사회의 모든 시스템이 젠더이분법을 기준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앞서 개인적 경험을 들어 설명했지만, 이는 트랜스젠더 남성인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비시스젠더들이 일하거나 외부활동을 할 때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해서 방광염 등의 질환에 걸리는 사례를 주변에서 자주 접하곤 한다.

여전히 대한민국의 건물 중 상당수는 남녀구분이 없는 화장실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오래된 건물이나 일반 상가의 경우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때 젠더분리된 화장실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제기되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젠더분리된 화장실이 일터에서의 평등을 온전히 실현하도록 해주는가? 나와 주변의 경험에 비춰볼 때, 남녀로 구분된 화장실 또한 성별이분법에 근거하고 있는 건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화장실 접근에 있어서 불평등 문제는 어디서부터 해결해나갈 수 있을까? 다시 말해, 화장실이라는 일상공간을 안전하고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는 일은 무엇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을까?

회사생활을 하는 나는 오늘도 내가 일하는 사무실이 있는 층의 '여자'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하고 다른 층의 '남자'화장실을 사용하거나 다른 건물의 '남자'화장실을 사용한다. 나는 바이너리 트랜스젠더(본인의 성별정체성을 남성 혹은 여성으로 규정하는 사람)라 이렇게라도 대안이 있지만,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본인의 성별정체성을 남성 또는 여성과 같이 이분법적으로 규정하지 않는 사람)의 경우에는 더 복잡해진다. 우리들은 언제나 화장실 앞에서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그래서 발걸음을 돌리고 자꾸만 망설이게 되는 '젠더 디스포리아'를 느끼게 된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안전하게 누릴 수 있는 공간을 바라며  

 


그동안 화장실 이용에 배제된 당사자로서, 성중립화장실에 대한 담론을 보며 고민이 들었던 것은 성중립 화장실의 필요성과 성별분리 화장실이 제기된 맥락 사이에서 논점이 자꾸만 흐려진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성중립 화장실에 대해서 그것이 성폭력 위험을 더 조장하는 것 아니냐는 반문 또는 성중립화장실을 만들기 전 성별 분리부터 해야 한다는 주장 등이 제기된다. 그러나 일터나 일상활동 속에서 성폭력을 예방하고자 할 때, 젠더 분리화장실을 설치하는 것이 과연 안전한 일터와 일상을 만드는 적합한 대책일까?

어쩌면 이 문제는 단순히 화장실 이용의 대상을 규정하는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 게 아닌가 싶다. 이용 대상의 기준을 나누는 우리 사회의 성별이분법과 그로부터 비롯되는 젠더불평등이 우리의 일터와 일상공간에서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고, 우리의 건강을 저해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점에서 화장실 이용에 관한 평등은 다음의 요구로부터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 바로 성중립화장실 말이다. 상대의 젠더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편하게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는 성중립화장실의 형태는 생각보다 무척 다양할 수 있다. 그러니 평등한 화장실의 형태란 무엇일지 상상하고 실험해 보는 것, 누구든 배제되지 않는 화장실을 생각해 보는 것, 나름 발칙하고 재밌는 일이 되지 않을까. 이때 그 상상과 실험은 일터에서 우리가 공유하는 평등에 대한 감각을 바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