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사망사고 절반 줄이기,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최민 상임활동가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신년사에서 “2022년까지 자살 예방, 교통안전, 산업안전 등 ‘3대 분야 사망 절반 줄이기’를 목표로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를 집중적으로 추진하겠다.”고 천명했다. 이에 따라 총리실 주도로 관계부처가 함께 하는 ‘자살 예방 국가행동 계획, 교통안전 종합대책, 산업재해 사망사고 감소대책’을 수립하고 구체적인 집행을 시작한 지 2년이 다 돼 간다.
산재 사망사고 감소 대책을 노동부만의 과제가 아니라 범정부적 차원의 시급한 과제로 인식하고, 산재 사망을 줄이기 위해 여러 부처가 공동의 행보를 시작한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예를 들어 국토교통부는 10월 사고사망자가 발생한 6개 대형 건설사 현장을 집중적으로 점검하는 '징벌적 현장 점검'을 12월부터 특별 점검 형태로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건설사에 영향력이 큰 국토교통부의 감독이 노동부의 부족한 관리, 감독 인력을 보완해주는 역할을 넘어 건설 현장을 바꾸는 지렛대가 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아직 산재 사망사고가 획기적으로 줄어들지는 않고 있다. 현재 정부의 접근 방식만으로, 2022년까지 산재 사망 사고를 절반 이하로 줄일 수 있을지 회의감이 든다.
더디게 줄어드는 산재사망사고, 건설업은 오히려 증가
2018년부터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가 시작됐고, 정부에서는 2018년 사고사망만인율 8% 감소를 목표로 제시했지만, 2018년 사고사망자 수는 971명으로 2017년 964명보다 더 증가했다. 노동부는 산재보험 적용이 확대되어 산재로 인정되는 사고 사망이 증가했고(10명), 이전 년에도 사망했지만 유족급여를 뒤늦게 받은 경우가 포함돼 있다고 해명했지만, 궁색했다.
2019년은 2018년보다는 사고 사망이 줄어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직 3/4분기 산업재해 발생 현황이 발표되지 않았지만(12월 발표 예정), 상반기까지의 현황을 보면, 2019년 6월말까지 사고사망자수는 465명으로 2018년 상반기보다 38명이 감소해 7.6%의 감소율을 보였다. 사고사망만인율은 0.25‱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02‱p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줄긴 했지만, 인상적인 수준은 아니다.
구분 |
2018. 1∼6월 |
2019. 1~6월 |
증감 |
|
증감률 |
||||
ㅇ 사망자수 |
1,073 |
1,115 |
42 |
3.9 |
- 사고 사망자수 |
503 |
465 |
-38 |
-7.6 |
- 질병 사망자수 |
570 |
650 |
80 |
14.0 |
ㅇ 사망만인율 |
0.58 |
0.60 |
0.02 |
3.4 |
- 사고 사망만인율 |
0.27 |
0.25 |
-0.02 |
-7.4 |
- 질병 사망만인율 |
0.31 |
0.35 |
0.04 |
12.9 |
ㅇ 건설업 사고사망자수 |
235 |
229 |
-6 |
-2.6 |
ㅇ 건설업 사고사망만인율 |
0.86 |
0.97 |
0.11 |
12.8 |
게다가 안전보건공단과 노동부가 전력 집중하고 있는 건설업의 사고 사망자는 여전히 전체 사고 사망의 49.2%인 229명이나 됐다. 2018년 상반기보다 6명 줄었을 뿐이다. 2.6% 감소해서, 전체 사고 사망자수 증감율보다 낮다. 산재보험 대상 건설업 노동자 수가 줄어, 사고사망만인율은 오히려 증가했다. 2018년 상반기 건설업 노동자 사망만인율은 0.86, 2018년 전체 건설업 노동자 사망만인율은 1.65, 2019년 상반기 건설업 노동자 사망만인율은 0.97이다. 2018년 전체 사고사망의 49.9%가 건설업에서 발생했는데, 그 비율도 큰 변화가 없다.
사고 유형으로 보면 떨어짐 재해로 인한 사망자가 184명(39.6%)으로 여전히 가장 많다. 2018년 상반기에는 떨어짐 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173명으로 34.4%였고, 2018년 전체를 통틀어 보면 376명으로 38.7%였다. 떨어짐 재해가 오히려 소폭 늘어나고 있으며 사고에서 차지하는 비율 역시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
아직 각 업종 내에서 사고 유형이 어떻게 분포하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자세한 정보는 제공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산재 사망사고가 매우 더딘 속도로 감소하고 있을 뿐이며, 그 효과 역시 정부가 자신 있게 집중했던 건설 현장, 추락사고 예방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연말에 발행할 ‘2018년도 산업재해분석’에서는 2018년부터 해온 추락사고 예방 중심, 건설업 안전 비계 설치 중심의 사고사망재해 예방활동에 대한 중간 점검과 진지한 평가가 제출되어야 한다. 건설업에서 추락사고가 얼마나 줄어들었는지, 그 효과는 어떤 규모의 건설 현장에서 주로 나타나고 있는지, 아직 뚜렷하지는 않지만 이런 예방 활동이 앞으로 성과를 거두리라고 기대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지 등이 제대로 논의돼야 한다.
노동자 단속 대신 권한과 책임 있는 자를 찾아라
안전비계를 지원하여 사망사고를 줄인다는 것은 매우 좁은 목표를 뚜렷하게 가지고 있는 기술적인 접근이다. 사고 사망이 매우 높은 한국 상황에서는 이런 접근이 효과를 일부 발휘하기를 기대했을 수 있다. 그런데도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는 단순한 인적 오류가 아니라 기업의 ‘안전 문화’ 부재 및 시스템 실패와 관련성이 높다는 최근의 연구를 고려한다면, 실제로 지금까지 2년 동안 정부의 산재 사망 사고 감축 정책이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다.
노동안전보건에 대한 근본적 인식 변화 없이, 지금처럼 얼마 안 되는 행정력을 특정 업종에 총동원해 따라다니는 방식으로는 절대 사망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없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다. 예를 들어, 원청이나 실사용주의 책임성 강화, 실질적 경영 책임자에게 안전사고에 대한 책임 부여, 안전에 최상위 가치를 부여한다는 기업들의 명시적 선언과 이에 걸맞은 실천 등이 사망사고를 줄이는 데 더 시급한 일일 수 있다. 안전공단에서 2018년 제출했던 또 다른 목표 중 하나가 “산업현장에서 ‘권한과 책임 있는 자’가 산업안전보건의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던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기술적 접근 외에 이런 거시적인 변화는 어떻게 가능할 것이며, 얼마나 추진되고 있는지 등에 대해서도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
그런데 사업주는커녕, 노동부 자신도 이런 시각을 제대로 장착하지 못하는 것 같다. 지난 11월21일 고용노동부와 경찰청은 ‘이륜차 안전운행 및 사고 예방을 위한 홍보 및 단속’이라는 보도 자료를 냈다. 최근 3년간(’16년~’18년) 이륜차 가해 사고로 연평균 보행자 31명이 사망하고 3,630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연평균 812명의 이륜차 탑승자가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특히 이륜차 탑승자 중 배달 종사자가 많아 이륜차 사고 예방은 교통안전과 산재사망사고 줄이기 측면에서 모두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하지만 정부가 대책으로 내놓은 것은 운전자에 대한 단속과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12월1일부터는 이륜차 사고가 잦은 곳과 상습 법규 위반지역에서 고위험 위반행위를 ‘암행 단속’하고, 난폭운전 등에 대한 기획 수사도 추진한다고 한다. 국민이 좀 더 편리하게 공익 신고할 수 있도록 ‘스마트 국민제보’ 앱 화면에 이륜차 신고 항목을 별도로 신설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전형적으로 산재 사고를 노동자의 불안전 행동 탓으로 보는 접근이다. 배달 종사자들이 왜 난폭운전을 하는지 들여다보고 원인을 제거하지 않으면 사고는 줄지 않는다. 노동자의 위험 행동과 ‘단속’ 사이에 숨바꼭질만 벌어질 뿐이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라이더를 직접 고용하고 고정급이 보장되면 훨씬 안전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안전배달료’ 등을 도입해서 배달 단가를 높여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서울신문, 2019.11.21.) 배달뿐 아니라, 플랫폼 노동 등의 이름으로 고용 관계를 넘어서는 노동력이 점점 증가하고, 정부는 이들의 노동권을 제대로 보장할 대책을 내놓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위험은 여러 형태로 증가할 뿐이다.
노동 정책 전반이 변해야 산재 사망 줄어든다
그런 점에서 산재사망 사고를 줄이기 위한 대책은, 임금과 고용 등 노동정책 전반에서 함께 고민돼야 한다. 하지만 산재사망 사고를 줄여야 한다는 정부의 노동정책 전반은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방향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2018년 12월 김용균 노동자의 사고 이후 석탄화력발전소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에서는 다단계 고용 구조 자체가 책임의 공백을 낳고, 새로운 위험을 발생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부 설비 개선은 이루어지고 있어도 약속했던 발전비정규직 노동자 정규직화는 전혀 이행되지 않고 있다. 구의역 사고와 태안화력발전소 사고에서 위험의 외주화가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대안으로 직접 고용이 제안되었지만,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화 계획은 여전히 ‘자회사’를 통한 간접 고용 중심이다.
2019년 10월에도 선로 보수 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열차에 치여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철도노조는 3조2교대에서 4조2교대로 전환하고, 안전인력을 충원하라며 파업을 진행했고 지난 11월 25일에 한국철도공사(코레일)측과 잠정합의하였다. 당시 코레일 사측에서도 최소한 1,800명 이상은 충원이 필요하다고 얘기하고 있는데, 기획재정부에서는 정부 예산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회사 측 주장마저 수용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아쉽게도 노조 핵심 요구안이었던 인력충원에 대한 확답을 이끌지 못해 과제로 남았다.
매년 반복되고 있는 이주노동자 사망 사고도 마찬가지다. 이주노동자는 언어, 문화 등의 이유로 산재 사고 고위험군이 되기 쉽다. 고용허가제로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하는 사업주에게, 산업안전보건법상 의무와 흔한 사고예방을 위해 반드시 취해야 할 조치 등을 교육해야 한다. 지금은 입국한 노동자가 산업안전보건 교육을 받을 뿐, 사업주들은 관련 교육을 받을 의무가 없다. 사업주들에게는 ‘외국인고용관리 교육’을 실시하며 그 내용은 주로 고용허가제, 출입국관리법, 외국인근로자 노무관리기법 등이다. 산재 발생이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발생 시 고용 허가를 취소하는 등의 제재도 없다. 이런 제도를 그대로 두고, 개별 사업장 교육과 감독으로 2018년 135명, 2019년 6월까지 42명의 이주노동자가 사망하는 현실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정부가 진정으로 산재 사망사고 줄이는 것을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면, ‘산업안전보건’ 정책뿐 아니라 고용, 임금 등 노동 정책 전반을 바꿔야 한다. 지난 수십 년을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은 뒷전인 채로 ‘경영’을 하고, 이윤을 남겨 온 세상이다. 전 사회적으로 노동자 권리가 증진되고, 노동자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과정을 통해서만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이 지켜질 수 있다.
산재사망사고는 그 사회 노동권의 수준과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노동존중’ 정책이라던 약속을 모두 버리고, 유예하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줄어들길 기대한다면 큰 오산이다. 오히려 정부는 노동자, 노동조합에 더 적극적으로 손 내밀어야 한다. 주체들의 안전보건활동 참여가 행정력의 공백을 메우고, 현장의 문화를 바꿀 것이다. 건설노조에서 얼마 전부터 국토교통부와 함께 현장안전점검단을 운영하고 있다. 지금은 법적 근거도 없고, 큰 현장 중심의 소수 현장에, 예고한 날에만 방문하고 있다. 더 많은 노동자, 노동조합이 이렇게 사업장을 수시로 드나들며 ‘명예산업안전감독관’으로 현장을 바꾸고, 위험하다 싶으면 멈출 수 있을 때야 사망사고가 줄어들 것이다. 노동권을 키우고, 노동인권을 보장하는 정책이 산재 사망사고를 예방하는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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