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이 일인 사람들, 우리의 일터는 다른 누군가의 가정입니다.”
[인터뷰] 가사관리사 J씨, W씨
박기형 상임활동가
하루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흔히 우리는 집이라고 때, 쉼을 떠올린다. 내일 다시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휴식을 취하는 곳, 생활하는 데 기본적인 의식주를 제공해주는 안식처. 하지만 집은 모두에게 쉼의 공간으로만 다가오지 않는다. 누군가가 쉴수 있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해주는 사람이 있다. 바로 집안일을 하는 사람, 가사노동자다. 우리에겐 가정이 생활의 터전이지만, 가사노동자에게는 일터다. 여기서 말하는 가사노동의 범주에는 가정에서 직업을 갖지 않고 ‘주부’로서 노동하는 사람이 포함되었다. 이에 더해 임금을 받고 가사노동을 하는 사람들, 어떤 가정에 방문해 세탁·청소·요리·육아·요양 등을 대신하고 일정한 대가를 받는 노동자들도 포함되었다.
과거에는 파출부, 가사도우미라고 불렸던 이들은 시간제 또는 일일 고용 형태로 가정과 계약을 맺고 가사를 전담하거나 보조한다. 최근에는 1인 가구 및 맞벌이 부부의 증가, 사회 고령화 등으로 인해 돌봄 서비스 시장이 확대되면서 후자에 속하는 가사노동자의 비중과 규모가 점차 늘고 있다. 그리고 이전에는 알음알음 가정을 소개받거나 인력파견업체를 통해서 연결되어 가정과 직접 계약하는 형태였다면, 근래 돌봄 서비스의 사회적 가치가 높아지면서 사회적 기업을 중심으로 가사노동자와 가정을 매칭해주는 형태도 등장했다. 더욱이 플랫폼 경제가 확대되면서 배달 정보·서비스를 중개해주는 ‘배달의 민족’과 같이 돌봄 서비스를 중개해주는 플랫폼 회사도 여럿 운영되고 있다. 이번 일터에서는 사회적 기업이 운영하는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사관리사 J씨와 W씨를 지난 9월 30일에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J씨 : 가사관리사를 한 지는 10여년이 되었네요. 가사관리사를 하기 전에도 가정방문형태의 일을 몇 번 했었어요.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해서 방문교사도 해봤고 요리도 곧잘 해서 출장요리 일을 한 적도 있죠. 그래서 가사관리사 중에서 요리를 요구하는 가정에 특화되어 있는 편이에요.
W씨 : 저도 중간에 몇 번 쉬었던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15여년 넘게 일한 거 같아요. 저희가 속해있다고 해야 하나요...일거리를 연결시켜주는 사회적 기업이 처음 가사관리사를 운영할 때부터 시작했었죠. 제가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거는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커서 학교를 가기 시작하면서부터였어요. 애들이 학교가고나면, 집에 혼자 있기도 하고 집안일을 마치고 조금 시간이 남기도 했었죠. 이 시간을 활용해 일하면 좋겠다 싶어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혼자만 있을 때 보다 기운도 나고, 삶에 활력도 생겼었어요.
J씨 : 저는 가사관리사 일을 부담 없이 시작한 편이었어요. 제가 일하지 않으면, 가계를 꾸리기가 힘든 정도는 아니었으니까요. 그래도 가계에 제 일이 꽤 기여를 많이 했다고 생각해요. 아이들 교육비 때문에 시작했지만, 그 비중을 무시하지는 못하잖아요.
J씨나 W씨처럼 가사관리사를 시작한 여성들은 살림을 챙기는 동시에 가사관리사 일을 한다. 이렇게 일과 살림을 병행하기 위해서는 야근을 한다거나 장시간 노동을 하기가 어렵다. 물론 J씨나 W씨도 다른 일자리를 고민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J씨가 얘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집안일을 전담하는 여성이 살림을 챙기며 일하려다 보면 노동시간의 부담이 덜한 단시간, 일용직, 방문노동 등의 노동조건을 찾게 된다.
W씨 : 우리 업무는 크게 청소·정리·요리·세탁으로 나눠져요. 일하는 건 오전파트, 오후 파트로 각각 4시간 단위로 나눠져요. 하루 한 곳에서 8시간 넘게 근무하는 경우는 드물어요. 물론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가정이 아니라 1회성으로 신청한 곳이면 하루 종일일하는 경우도 있고, 요리를 포함해 여러 서비스를 한꺼번에 바라는 가정인 경우에는 한 달에 2~3번 정도 8시간 일하기도 해요. 그렇지만 한 가정마다 하루 4시간씩 일하는 게 일반적이죠. 일정표 보시면 알 수 있겠지만, 오전 8시 반부터 오후 12시 반, 오후 1시 반에서 오후 5시 반까지로 나눠져요.
J씨 : 전 처음 가정을 방문하면, 집 내부도 살펴보지만, 집 주변도 한 바퀴 둘러봐요. 전체 분위기를 파악하는 거죠. 그리고 중요한 것은해당 가정과의 소통이에요. 4시간 안에 할 수 있는 게 정해져 있거든요. 집마다 요구사항도 다르고요. 청소·정리가 기본이지만, 그것도 사람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들이 다른 거죠. 그래서 어떤 걸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지를 확인해야 해요. 때론 가정관리사를 오래 써본 분이면, 먼저 목록을 정리해서 주시기도 해요. 한 달 정도 지나면, 쓰레기봉투나 청소도구, 소소한 물건 등 우리가 그 집에 사는 분보다 잘 알게 되요. 정리수납과 관련한 교육도 듣기도 하고, 수건 개는 것부터 침구각을 잡는 것까지 다른 분들이 손대는 거랑은 확실히 다르죠. 그렇지만 정작 집에 가서는 지치고 힘드니까 일할 때만큼 청소나 정리를 신경쓰지는 못해요(웃음).
W씨 : 저나 다른 분들의 경우엔 한 가정에서 오래 일하는 편이에요. 한 곳에서 5년 넘게 일하는 가정들이 꽤 되죠. 저희가 가사관리를 잘 해드려서 만족도가 높으신 것도 있겠죠. 그와 함께 가사관리사를 사용하는 집인 경우엔 대부분 맞벌이를 하니까 가사관리사를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그런 가정은 대개 소득형편이 높은 편이에요. 최근에 1인 가구가 늘면서 1회성 신청도 늘고는 있지만, 아직 큰 비중은 아니에요. 그리고 저희 입장에서도 장기간 일할 수 있는 곳이 좋죠. 소득안정성도 생기고, 고객의 요구도 잘 파악하고 있고 익숙하니까 일하기도 편하고요.
물론 능숙한 가사관리사도 실수할 때가 있다. 그릇을 깨뜨린다거나 옷이 세탁하다 망가진다거나 기타 등등. 그래도 그로 인해 부당하게 해고되거나 과하게 변상을 요구받은 적은 많지는 않다고 한다. J씨와 W씨의 경우엔 만약 고객이 변상을 요구하면, 사회적 기업이 들어놓은 민간손해보험으로 처리한다고 했다. 그러나 사회적 기업이 아니라 일반 영리회사에 속한 경우에는 민간손해보험을 가사관리사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사회적 기업의 경우에도 수도 누수, 화재 등 변상 수준이 너무 높을 때엔 민간손해보험으로 처리하는 데 한계가 있어, 가사관리사에게도 부담이 넘어오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가사관리사는 법제도의 보호 바깥에 놓여 있는 것이다.
W씨 : 최근에 저도 일하다 넘어진 적이 있어요. 가정이라고 해도, 위험하지 않은 건 아니거든요. 의자 위에 올라가서 먼지를 털거나 물기가 흥건한 화장실 청소를 할 때 넘어져서 다치는 사고가 자주 있지는 않아도 가끔 발생해요. 그렇다고 일하다 다치는 일이 없다고 말을 할 수는 없는 거죠. 그래도 저희가 속해 있는 사회적 기업에서는 민간보험을 통해 일정 부분 지원해줘요. 하지만 좀 더 제대로 된 보호를 받을 수 있다면 좋겠죠.
J씨 : 요즘 들어서 4대 보험을 보장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개인 사정 때문에 고용안정성과 사회보장 서비스 이용이 필요해졌기 때문이긴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경험을 듣다보니 산재 보험을 통해서 아니라 일하다 다쳤을 때 제대로 치료받고 재활도 받을 수 있으면 훨씬 나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국민연금이나 실업급여 등의 금전적 지원을 받는다면, 더 안정성을 누릴수도 있고요.
그런데 J씨와 W씨 모두 한결같이 지적하는 문제가 있다. 가사관리사가 근로기준법 상의 근로자로 인정받게 될 경우에, 지금과 같은 일-가정 양립이 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살림과 일을 병행할 수밖에 없는 조건에서 4시간 파트타임으로 비정기적으로 일하지 못하는 것은 큰 부담으로 다가 오기 때문이다. 더구나 현재는 사회적 기업에서 가정을 매칭해줄 때 자신이 원하는 근무환경, 예컨대 이동거리, 애완동물, 업무내용 및 방식 등을 요구할 수 있는데, 사회적 기업을 비롯한 가사관리 서비스 및 중개 업체에 근로자로 고용될 경우에는 이와 같은 이점이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했다.
이는 가사관리사가 위치한 모호한 경계 때문이다. 가사 서비스를 중개하는 업체나 가사 서비스를 이용하는 가정 모두 가사관리사의 노동권을 보장해줄 책임이 없다. 다시 말해, 자영업자로서의 성격과 근기법상 근로자의 성격 사이 어딘가에 가정관리사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딜레마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1953년 근기법 제정 이후 현재까지 66년째 가사노동자는 근기법 제11조 ‘가사사용인 제외 조항’으로 인해 노동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 전국가정관리사협회와 한국여성노동자회에서 ‘가사근로자 고용 개선 등에 관한 법률안’ 제정을 꾸준히 요구해왔었고, 지난 2017년 정부에서 자녀를 둔 맞벌이 부부의 가사노동과 육아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2019년부터 가사서비스 바우처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발표 내용에 정부가 인증한 가사서비스 제공 회사에 가사 노동자를 직접고용하도록 해 4대 보험 및 유급휴가 등 노동권을 보장하도록 하려는 취지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해당 법률안은 2년째 국회에서 계류된 채 아무런 진척도 없는 상황이다. 그 결과, 근기법 상 근로자 개념을 변화하는 노동시장 현실에 맞게 확대하라는 요구, 아니면 특수고용노동자나 가사노동자와 같은 경계선에 놓인 이들에게 노동권 및 사회보장 서비스 제공을 보장하는 법률안을 제정하라는 요구가 제기되고 있다.
J씨 : 제가 주변 동료들에게 늘 강조하는 게 있어요. 일하러 갈 때 옷을 단정히 갖춰 입고 가는 것 말이에요. 과거와 달리, 가사 서비스는 점점 더 사회적으로 중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점차 기술 발달로 집안일이 줄어들 것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 일을 하면서 느끼는 건 갈수록 가사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가정이 늘고 있다는 거예요. 물론 저의 경우엔 가사 서비스를 꾸준히 안정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중상층 이상의 가정을 자주 가지만, 업체를 이용하는 고객들은 더 다양해지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우리 업무는 정말 가사를 ‘관리’해주는 것이죠. 보통 가정에서 집안일 하는 것 이상의 서비스 질을 제공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우리 스스로도 더욱 프로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봐요. 사회적으로 가사노동자를 위한 제도가 만들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사관리사로서 자부심을 갖는 것도중요해요. 이건 우리가 가사 서비스를 고객들이 충분히 만족할 수 있게 잘 제공해주는 것, 가사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함부로 자신을 대하지 않고 나를 가꾸는 것일 수 있겠죠. 이런 다양한 변화 속에서 우리 가사관리사, 나아가 가사노동자가 갖는 가치를 사회가 인정해주게 되겠죠.
가사노동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공기처럼 늘 우리 주변에서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숨 쉬는 데 불편함을 느끼지 않으면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듯이, 가사노동의 가치를 우리는 쉽게 망각한다. 더욱이 가사노동 자체가 노동이 아닌 것처럼 취급한다. 따라서 집안일을 가사노동으로, 파출부나 가사도우미를 가사관리사로 호명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한 진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로부터 노동자 스스로 자기정체성을 노동자로 확립할 수 있으며, 사회에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사관리사가 가사‘노동자’로서 자신들의 권리를 정당하고 보장받을 수 있기 위한 여정은 아직은 갈 길이 멀다. 하지만 J씨와 W씨의 말처럼 가사관리사들이 처한 상황이 늘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자녀를 가진 중장년층 여성들로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나기 위해 이 일을 택했고, 그것을 통해 가정에 여러모로 중요한 기여를 했으며, 자신의 삶에 활력을 되찾기도 했지않는가. 그럼에도 가사노동자가 겪는 임금, 고용안정, 사회보장 등의 한계에 대해, ‘여성’노동자이기에 그런 것은 아닌지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의 젠더불평등 을 해체하고, 가사노동자들 스스로 주체로서 바로설 수 있도록 이들과 함께 다양한 실천을 모색해가야 할 것이다.
'월 간 「일 터」 >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A부터 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평등한 일터에서 ‘자율성’은 어떻게 압박이 되는가 / 2020.02 (0) | 2020.03.04 |
---|---|
[A~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노동자는 없고 그의 속도만 존재하는 공간- 쿠팡 이천 덕평 물류센터 피커(Picker) K 님 인터뷰 / 2019.11 (0) | 2019.11.25 |
[A-Z 노동이야기] '비정규적' 복지사업을 떠받치는 방문간호사 / 2019.09 (0) | 2019.09.24 |
[A-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다문화정책 공백 채우는 방문교육지도사의 노동 / 2019.08 (0) | 2019.08.09 |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목숨 걸고 쪽팔리지 않게 지역신문 만들게요" / 2019.07 (0) | 2019.07.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