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우드소싱’이 배달노동자에게 자율성을 가져다줄까?
지안 상임활동가
배달앱 ‘배달의 민족’은 지난 9월 새로운 광고 하나를 올렸다. 이 30초짜리 광고는 주인공의 역동적인 몸의 움직임으로 시작해,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팝핀댄스를 추고, 옥탑방에 걸터 앉아 옷을 매만지는 모습으로 이어진다. “춤춘 지는 15년이 넘었어요. 세계대회도 크루들 하고 계속 나가고 있어요. 강의도 하면서. 제가 디자인에 관심이 많아서 요즘 옷도 만들고 있어요.”
크라우드소싱, 초단시간 미만의 배달노동을 가능케 하다
‘이 배달앱에는 당신을 위한 다양한 음식점이 구비되어있어요’라는 것도 아니고, 빠른 배달에만족할 거라는 메시지도 아닌 대체 무슨 광고일까? 라는 의문이 들 때쯤, 주인공은 그래피티가 그려진 지하차도에서 춤을 추다가, 배달 옷과 보호구를 착용한 채 자전거를 열심히 밟으며 같은 차도를 지난다. 그리고 되묻는다. “제 직업이 뭐냐고요? 그게 뭐 중요한가요?” <춤도 추고, 디자인도 하고, 배달도 해요>라는 제목의 이 광고는 배달의 민족 서비스를 운영하는 기업 ‘우아한 형제들’의 새로운 배달 프로그램인 ‘배민커넥트’를 홍보하는 영상이다. 배민커넥트는 대중(Crowd)과 아웃소싱(Outsourcing)의 합성어인 ‘크라우드소싱’ 방식의 배달 프로그램을 활용한, ‘일반인’ 대상의 배달 서비스이다. 이러한 방식은 대표적으로 우버이츠가 한국 시장에 진출하던 초기에 크라우드소싱 기반 배달 프로그램을 기업의 대표적인 전략으로 내세우면서 잘 알려졌다. 현재는 우버이츠와 배민커넥트 뿐만 아니라 쿠팡이츠, 쿠팡플렉스 등 다양한 배달, 물류 서비스들이 크라우드소싱 기반 프로그램을 활용하고 있고 참여자들을 모집하기 위해 홍보하고 있다.
배민커넥트가 만든 구글링크로 신청을 하면, 1회의 오프라인 교육 이후에 바로 “원하는 시간”, “원하는 만큼” 일할 수 있다. 이동수단도 각 서비스에 따라 자차부터 전동자전거, 전동킥보드, 심지어는 도보나 일반자전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강력한 유입책이 된다. 애초에 1~2시간, 혹은 분이나 건단위의 배달이 이 서비스의 핵심이기 때문에 기업은 시간 단위로 일하는 노동자가 필요하지 않다. 또 최대한 많은 인력을 단시간 확보하여 개별 사용자들의 집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를 배차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배달노동의 대표적 이동수단인 오토바이도 크게 필요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특정 구에서 공유서비스로 이용할 수 있는 전동킥보드나 서울시 따릉이를 활용한 배달도 가능해진다.
“내가 원할 때, 달리고 싶은 만큼만”, 누구의 자율성인가?
지금까지 배달노동자들에게 가장 우선적인 문제는 이들이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되어 근로기준법에서 적용제외 된다는 문제점이다. 배달앱의 관리/감독 속에서 일을 하더라도 현재 노동법 상으로 플랫폼과 노동자를 고용관계로 보지 않기 때문에 플랫폼 노동자들은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는다. 일을 해도, 심지어 장시간 해도 특수고용노동자 신분으로 인해 각종 법적 보호에서 배제되는 것이다. 반면에 배민커넥트 등의 서비스들은 플랫폼과 노동자간의 고용관계가 성립 안 된다는 문제점을 넘어서 초단시간 미만의 건당 배달자 다수를 채용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 점에서 이 “일반인”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노동법 적용이나 노동환경은 물론이고, 배달 과정 중 사고가 났을 때 책임은 기업이 부담하지 않는다는 문제점이 있다.
그러나 단순히 초단시간 배달 노동자들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초단시간 노동에 대한 법적 규제가 없다거나 플랫폼 노동자들에 대한 법적 보호가 없다는 점만이 문제는 아니다. ‘크라우드’ ‘소싱’이라는 말 자체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기업은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 속의 남는 인력, ‘일반인’들을 모집하고 건당, 시간당 가격을 지불한다. 그래서 배달앱이라고 하는 전체 서비스에서 사용자와 가장 최적의 경로로 배달 장소가 배치되는 프로그램, 지금 배달하면 얼마를 더 주겠다는 공지만 있을 뿐 이 배달 프로그램에 배달을 수행하는 노동자는 없다. 노동자와 노동이라는 과정은 지워지고 그 자리를 무수히 많은 초단시간 미만의 건당 배달들이 채우는 것이다.
“내가 정하는 자유로운 스케줄” “자유로운 근무”(배민커넥트), “스스로 선택하여 일할 수 있습니다.” “유연합니다”(쿠팡플렉스) 등의 수사를 통해 볼 수 있듯이 자율성과 유연성은 이 서비스들이 참여자에게 부여하는 가장 큰 혜택이다. 참여자들의 후기를 담은 형식으로 만든 쿠팡플렉스와 배민커넥트 웹페이지는 시간이 남는 김에,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운동 삼아 잠깐씩 일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제시한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 서비스에 참여하는 ‘일반인’ 라이더들 역시 이 행위를 노동으로 인식하거나 스스로를 노동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서 이 서비스들이 강점으로 꼽는 자율성은 마치 노동(과 그에 따르는 법적 보호)과 교환되는 것처럼 생각된다.
이 자율성은 분명히 기업에게 이익이다. 이 자율적인 일자리를 통해서 4대보험, 퇴직금, 각종수당 등 수많은 비용이 절감된다. 그러나 퇴근 이후나 주말을 이용해서 배달할 수 있는 자율성이란 대체 어떤 자율성인가? 여기에는 쉬지 못하는 삶, 진정한 의미의 자율성과 협상한 비자율적인 노동만 있을 뿐이다. 앞으로도 다양한 플랫폼이 개발될 것이고 그에 따라 쿠팡플렉스에 등록된 30만명의 “일반인” 라이더들은 여러 형태의 일자리로 옮겨갈 것이다. 이 초단시간 미만의 노동을 어떻게 문제화할 수 있을지 지속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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