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에게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①]
노동자 건강권 관련 법, 적용제외 조항 '제외'하라
류현철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국회가 난장판이다. 근대 이후로 공중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국가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기제 중 하나가 법률일진대 그것을 만드는 입법기관이 각자의 이해관계에 혈안이 되어 이전투구 중인 것이다.
지난 연말 이런 이전투구 집단에서도 쉽게 외면할 수 없었던 법안 하나가 어렵사리 통과되었다. 지하철 스크린 도어를 수리하다가 몸이 끼어 숨진 19살 하청 노동자의 죽음을 계기로 발의되어, 석탄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일하다가 컨베이어에 온몸이 갈리어 숨진 24살 또 다른 하청 노동자의 죽음에 이르러서야 통과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이 그것이다.
노동자의 허망한 죽음을 막자고 발의된 법안은 그렇게 또 다른 숱한 죽음이 쌓이고 나서야,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앞섬에 노동자 민중들의 분노가 뒤서고 넘쳐서야 통과되었다. 그렇게 법이 만들어지고 고쳐지는 것이다. 노동자가 일터에서 건강하게, 최소한 몸과 마음을 다치지 않게 아니 최소한 죽음을 무릅쓰지 않고 일하게 만들어줘야 할 기본법으로서 산업안전보건법과 더불어 근로기준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모두 마찬가지다.
법 적용제외는 삶 전체의 불평등으로 이어져
근로기준법은 '헌법에 따라 근로조건의 기준을 정함으로써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 향상시키며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업 안전 및 보건에 관한 기준을 확립하고 그 책임의 소재를 명확하게 하여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함으로써 노무를 제공하는 자의 안전 및 보건을 유지·증진함을 목적'으로 하겠다고 한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산업재해보상보험 사업을 시행하여 근로자의 업무상의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며, 재해근로자의 재활 및 사회 복귀를 촉진하기 위하여 이에 필요한 보험시설을 설치·운영하고, 재해 예방과 그 밖에 근로자의 복지 증진을 위한 사업을 시행하여 근로자 보호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법 취지가 온전히 지켜지고 있을까? 사회적인 가치,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해내는 과정과 거기에 결부되는 노동의 투입과 매개의 방식이 다변화되고 있으며 사회는 이것을 4차산업이니 하면서 떠들고 있다. 4차산업 시대에 기업과 사용자들은 오로지 책임회피 측면에서만 창의적이고 희한한 고용·계약 관계를 만들어 낸다. 하지만 근로기준법은 기존 법률의 '근로자'의 개념의 고루함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수많은 노동자를 '노동자'라 불리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이름을 제대로 얻지 못하면 권리에서도 배제되는 것이다.
고용특례업종, 영세업종(업주) 보호, 공익필수직종,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위험작업의 범위 등 여러 가지 설명을 곁들여 이들 법의 적용범위에 '차이'를 둔다. 이는 일터의 안전과 건강문제에 있어서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을 낳는다. 사용자와 사업주가 지켜야 할 기준 적용에 있어서 예외(특례)는 결국 불평등을 낳고, 이것은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의 수준이 낮아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일수록 건강과 안전상 위험이 높아진다.
지난 연말 통과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은 '김용균법'으로 불렸지만 그 이름으로 대표되는, 일터에서 위험에 노출되는 많은 비정규직/불안정 노동자들을 제대로 포괄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후 진행된 하위 법령 개정에서라도 최대한 노동자의 건강권 영역과 포괄범위를 넓힐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제안하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근 발표된 하위법령 개정안은 더욱 후퇴하고 말았다.
도급금지/승인 규정을 두어 관리하겠다는 일터의 위험업무의 범위, 법적 보호조치 대상이 되는 특수고용직의 범위와 보호조치의 내용, 작업중지권 실질적 운용 가능성은 형편없이 줄어들었다. 산재보상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노동자가 산재보험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어 일터와 업무에서 비롯된 사고와 질병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또한 산재임에도 '산재'로 인정되지 않는 질병과 재해는 통계에 잡히지 않아 위험의 크기조차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나라 산재 통계는 '산재보상 승인 통계'일 뿐이다. 드러나지 않은 산재는 위험을 감춘다. 감춰진 위험은 관리할 수 없다. 관리되지 않는 위험은 또다시 산재를 일으키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위험 관리의 출발은 '드러내기'부터 시작한다.
물론 일터에서의 사건 사고, 질병, 손상과 죽음이 법적인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노동자들에게 집중되고 있음은 논문과 통계가 아니라도 직관만으로 알고도 남는다. 그런 현실을 부정하기 힘들었던 정부와 전문가들이 위험의 외주화 방지, 원청의 책임 강화, 취약노동자보호를 입에 달고 있지만 입법과 행정과정에서 실물로 엮여 나오는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합리적 이유나 설명 없이 법 적용을 받지 않도록 하는 예외규정이 숱하다.
일터의 안전, 일과 건강에 관련된 영역은 계속 확장되고 있음에도 구시대적인 안전개념에 머물러 있는 구분이나 예외조항도 여전하다. 안전과 건강문제에 대서 작업환경이나 업무의 위험성과 그에 따른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관리 전략에 따른 것이 아니라, 사업주의 경제적 여건이나 (기형적인) 계약 관행에 따라 적용을 달리하는 예외규정은 차별에 불과하다.
수년 전 무상급식이 공론의 장에 올라와 보편적 복지 논쟁이 일었던 적이 있다. 잘사는 집 아이에게도 무상급식을 해야 하는가를 집요하게 문제 삼았음에도 보편적 복지가 판정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에 관련된 법안의 예외규정은 거꾸로 더 어려운 형편의 아이들에게서 밥그릇을 뺏는 형국이다.
사용자와 사업주의 의무를 주로 규정한 법들이니 어려운 형편의 사업주들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위험에 노출되어 일하는 것은 노동자들이며 법의 목적에서 보호하고 지켜야 할 대상도 그들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경제를 살펴 영세한 사장님들을 배려한다는 논리로 법률상의 예외조항을 두는 것은 본말의 전도이다.
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할 권리가 가장 우선이어야
노동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하여 향상하고, 노동자의 안전과 보건을 유지 증진하기 위한다는 법의 예외는 그 목적(법익)에 충실히 부합하는 한에서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 예외는 어쩔수 없는 경우에만 인정되어야 하며 그 어쩔 수 없는 이유라는 것이 누구의 이해에 맞닿아 있는것인가를 살펴야 한다.
노동자들이 안전하고 건강할 '권리'가 우선이며 이것을 중심으로 그것을 보장할 책임과 의무를 사업주이든 정부건 지자체건 국가건 나눠 가져야 한다. 안전과 건강에 관련된 제도에 있어서 사업의 규모나 사업주의 여건을 고려한 적용 제외조항이 남아있는 한, 위험하여 책임져야 할 것이 많은 업무는 계속 외주화될 것이며 법률상 권리도 조직력도 없는 노동자들은 더욱 위험해질 것이다.
안전하고 이윤이 많이 남는 사업을 독식할 수 있는 구조는 위험하고 책임의 비용이 많이 드는 업무의 외주화를 얼마든지 허용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일터와 노동자 안전보건에 있어서 예외는 오로지 특히 위험하거나 취약한 대상에 대한 더욱 각별하고 강화된 관리와 보장의 측면에서만 인정되어야 한다.
이윤에 매몰되지 않은 인간다운 노동을 위해 관련 법률의 개정과정은 늘 난항을 겪는다. 그리고 그 난항을 헤치고 나가는 해법 역시 변함없다. 진부해 보이지만 노동자 건강권에 대한 각성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의 힘, 노동인권과 생명에 대한 사회 인식의 진전과 참여를 전제로 하는 연대가 그것이다. 정부의 산업안전보건법개정안에서 '근로자'가 아닌 '일하는 사람'의 안전 및 보건이라는 개념 찬 제안이 등장한 배경도 거기에 있다.
한편으로 최근의 산업안전보건법 하위 법령의 명백한 후퇴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사회적 관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언제든 오로지 경제 논리와 이윤을 중심에 둔 제도의 역진이 나타날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진전되고 개선된 제도의 경우는 현실 작동을 점검하고 성과를 확인하여 확장하고, 미진하고 후퇴하는 제도에 대해서는 조목조목 근거를 들어 짚고, 공중에게 드러내고 바로 잡는 것을 게을리 않는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노동자를 '노동자'라 부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모든 노동자에게 나이, 성별, 인종, 직종, 업종, 사업장 규모, 고용형태를 넘어서 똑같이 안전하고 건강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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