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특집2. "형의 이름을 밝히는 것, 그것이 나의 바람입니다" / 2019.04 [특집 산재 유가족 ,슬픔을 안고 연대로 나아가다②] "형의 이름을 밝히는 것, 그것이 나의 바람입니다" 나래 / 상임활동가 사랑했던 이의 이름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건 어떤 무게일까. 감히 상상하기도 힘들다. 2017년 4월 비상식적인 장시간 노동과 비정규직 스태프 해고 문제로 괴로워한 형의 이름이 새겨진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의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동생 이한솔씨를 지난 3월 30일 신촌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tvN의 조연출을 맡았던 고 이한빛 PD의 죽음은 감춰져 있던 방송업계의 장시간 노동, 비정규직 문제 등을 세상에 알리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사회적 관심과 응원,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들의 연대 속에서 CJ E&M에 사과와 재발 방지를 요구했던 유족들은 마침내 회사의 공식 사과를 받았다.. 더보기
월 간 「일 터」/[특 집]

특집2. "형의 이름을 밝히는 것, 그것이 나의 바람입니다" / 2019.04

[특집 산재 유가족 ,슬픔을 안고 연대로 나아가다]

 

 

 

 

"형의 이름을 밝히는 것, 그것이 나의 바람입니다"

 

 

 

나래 / 상임활동가

 

 

 

 

사랑했던 이의 이름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건 어떤 무게일까. 감히 상상하기도 힘들다. 2017년 4월 비상식적인 장시간 노동과 비정규직 스태프 해고 문제로 괴로워한 형의 이름이 새겨진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의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동생 이한솔씨를 지난 3월 30일 신촌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tvN의 <혼술남녀> 조연출을 맡았던 고 이한빛 PD의 죽음은 감춰져 있던 방송업계의 장시간 노동, 비정규직 문제 등을 세상에 알리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사회적 관심과 응원,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들의 연대 속에서 CJ E&M에 사과와 재발 방지를 요구했던 유족들은 마침내 회사의 공식 사과를 받았다.

재발방지 대책 마련의 일환으로 CJ E&M의 출연기금, 유족 기부금, 시민들의 성금이 모여 '방송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한 줄기의 빛'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가 2018년 1월 24일 설립됐다. 이후 여러 사건이 있었고 1년이 지났다. 그에게 현재 센터의 주요 사업과 활동에 관해 물었다.

"혼술남녀 사건 이후로 대책위 활동을 하면서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이하 센터)까지 이어온 운동의 흐름이 있었습니다. 방송업계에는 다양한 문제가 있는데, 그걸 해결하기 위한 주된 사업이 바로 'Drama Safe 캠페인'입니다.

제작 가이드 라인은 캠페인 차원에서 나온 거고 노동법 강연, 쉼터 공간 마련 활동을 병행해서 하고 있습니다. 드라마 현장에서 노동시간이 살인적이란 건 많이 알려져 있는데요. 제도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안 지켜지는 것도 있고, 아예 사각지대 영역도 있기 때문에 다방면으로 접근하려고 합니다.

상식적 노동환경으로 바뀔 수 있도록 다방면의 활동을 이어가는 과정이라고 보면 됩니다. 구체적으로는 현재까지 드라마 제작 개선활동 TF를 구성해서 특별근로감독을 통해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활동이 한 축으로 있었죠. 또 다른 하나는 제보센터를 운영해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노조와 대응하는 건데요. 심각한 현장은 건별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센터는 디지털미디어시티역 근처에 있는데, 역주변엔 방송국이 참 많다. CJ E&M은 물론이고 MBC 본사, SBS 프리즘타워, KBS 미디어센터, YTN 본사 뉴스퀘어, JTBC 본사뿐만 아니라 IT 기업도 상당수다. 방송업계 노동자들이 하루의 상당 부분을 보내는 곳이기도 하다.

당연히 센터는 현장의 목소리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홈페이지 익명 게시판, 온라인 채팅 등으로 제보가 들어온다. 다들 흩어져서 일하기도 하고 아직 자신을 드러내고 문제를 밝히기 어려워하는 분위기가 있다. 지금도 방송업계는 장시간 노동이 심각하다. 다른 문제도 상당하지만, 하루 21시간씩 일하는 문제가 워낙 심각하다 보니 다른 유형의 제보가 들어오기엔 갈 길이 멀다.

"작년만 하더라도 33건의 제보가 들어왔어요. 다 다른 드라마였어요. 제보가 안 들어오는 드라마도 있을 거에요. 웹드라마를 제외한 수치죠. 웹드라마도 다른 차원으로 심각한데요. 주로 들어오는 건 KMS(KBS, MBC, SBS), CJ E&M, JTBC 쪽으로 들어옵니다. 종편 합쳐 1년에 드라마가 백 건 정도 제작돼요. 그렇기 때문에 현장을 전수 조사하면 2건 중 1건은 노동시간 위반으로 걸린다고 예상해요."

고 이한빛 PD의 죽음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고인의 죽음을 '평소 근무태도가 불량하고 나약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주장했던 CJ E&M측도 유가족과 연대 단위의 대응과 지지로 결국 자사 홈페이지에 공식 사과문을 게재하고 관행적인 제작시스템을 선진화하겠다고 밝혔다. 

유가족들은 고인의 죽음은 명백히 개인의 죽음이 아닌 사회적·구조적 문제로 인한 것임을 주장했고 회사도 이를 결국 인정했다. 절대 쉽지 않은 싸움이었고 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쉽지 않은 길을 가고 있는 그였다.

"응원을 많이 받아요. 그럴 때 제일 보람찹니다. 문제가 해결되고 그럴 때마다 건건이 기쁘죠. 형의 이름을 걸고 하는 활동이니깐요. 최대한 많은 가치를 만들어 나갈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응원을 들을 때 기뻐요."

유가족은 관련자를 처벌하기보다 방송사에서 책임을 지고, 형의 죽음 이후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는 것이 바람직한 해결책이라 생각하고 노력해왔다. 그에게 센터 설립을 결정하기까지 유가족으로서 어떤 고민이 있었는지 물었다.

"그때와 비교해 지금은 질감과 온도가 좀 다른데요. 형은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고, 그와 더불어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어요. CJ E&M 측이 정말 밉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회사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드라마 산업 전체와 묶여있는 것이기 때문에 형의 이름을 잘 간직하고, 기억하고 추모하는 차원에서 형이 바라던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초기 협상 국면에서 처벌 같은 건 요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죠. 대신 CJ E&M이 선도적으로 드라마 산업의 구조를 바꾸는 역할을 하라고 요구했고요. 부담감은 있었지만 해야 할 일은 명확했던 것 같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진 않았어요. 위로금을 받아봐야 마음이 쓰여서 쓸 수도 없었을 거고요. 센터에 사용하도록 하는 게 맞았던 거죠."
 
며칠 걸러 노동자의 자살 소식은 심심치 않게 들린다. 하지만 소식을 접한 이들의 눈총은 따가울 때가 많다. 그렇게 힘들면 그만둬야 했지 않느냐는 시선과 안타까움이 뒤섞여 있다. 유가족으로서 이런 사람들의 시선과 인식이 어떻게 다가올까.

"사회적 타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황은 안타깝죠. 사회적 타살, 노동에 대한 관점이 아직 시대가 요구하는 감수성을 못 따라오는 것 같기도 해요. 과거 산업화시대 유산이 지금의 수많은, 특히 젊은 노동자들을 옥죄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아요.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그냥 시키는 대로 일하라는 게 익숙했던 사회가 이제는 새로운 감수성을 받아들여야 건강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도 요새 위로와 지지가 많아지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특히 젊은 층의 사람들은 어떤 문제인지 잘 알기 때문에요."

작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의 죽음을 계기로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면개정 됐고, 한편에선 산재, 재난 유가족들이 모여 직접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최근엔 노동자 죽게 한 기업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하는 자리에 함께하기도 했다. 이처럼 단순히 피해자의 자리가 아니라 문제를 드러내고, 변화를 직접 만들어가기 시작한 유가족들의 모임 구성과 활동에 대해 물었다.

"유가족들의 경우 비슷한 입장일 것 같아요. 삶의 선택지가 다양하겠지만 사실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유가족은 삶 자체가 온전하게 살아가지 못해요. 아마 유가족 모임을 만드신 분들도 당연하단 생각을 갖고 계실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기가 떳떳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말이에요. 저도 그랬고요. 사회가 유가족을 존중해주고 함께 모여 활동해나가길 바랍니다.

그 활동의 의미는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더불어 방송업계에 맞게 노동자에게 필요한 권리를 요구하려면, 모여서 문제를 토로하고 그것들을 이슈화시킬 수 있는 응집력과 조직들이 더 필요해요. 제작사는 거대 제작사까지 더해서 더 뭉치고 강해지죠. 하지만 일하는 사람들은 비정규직, 프리랜서 등 다 흩어져 있어요. 조금은 어려워도 일터에서 꿈을 포기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과 모여서 함께 해결해나가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