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Z까지 다양한 노동 이야기] 백래시와 플랫폼에 맞서는 여성 디지털콘텐츠노동자들 / 2019.03

[A-Z까지 다양한 노동 이야기]





백래시와 플랫폼에 맞서는 여성 디지털콘텐츠노동자들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 투쟁을 만나다 





지안 / 상임활동가 





작년 1212일 전국여성노조 산하에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이하 디콘지회)'가 결성되었다. 노조 결성은 사상검증과 불공정계약 등에 맞서 싸운 여성일러스트레이터연대(이하 WFIU)와 레진불공정행위규탄연대(이하 레규연) 투쟁의 결과물이다노조가 만들어지기까지 작가 사상검증, 레진코믹스의 지각비와 해외매출 은폐 사건 등 많은 이슈가 있었다. 연재 중단까지 실행하면서 문제 해결에 나선 작가들은 자발적으로 연대를 조직해 싸워왔다. 대형 플랫폼을 상대로 한 여성 창작노동자들의 싸움은 많은 성과를 남겼지만, 여전히 디지털콘텐츠산업과 대형 플랫폼은 불공정 계약·열악한 노동조건·작가 사상검증 등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승리의 경험을 발판으로 진정 창작자를 대변하는 노조"를 결성했다는 여성 디지털콘텐츠노동자들을 지난 227일 전국여성노동조합 사무실에서 만났다. 인터뷰는 김희경 지회장, 하신아 부지회장, 비담 회계감사와 진행했다.



- 다양한 산업과 직군을 아우르는 형식의 노조입니다. 어떤 노동자들이 포함되나요?


김희경 : "현재 웹툰, 웹소설, 일러스트 세 직군이 많아요. 각 직군은 특성이 다르지만 같은 플랫폼에서 고용되고 연계됩니다. 예를 들어 웹소설의 표지는 디자인 외에도 일러스트가 많이 쓰입니다. 웹소설에 삽화 일러스트를 곁들여 연재를 하고, 이후 웹툰화 되는 경우도 있고요. 다양한 직업을 겸업하는 작가들도 많고, 또 같은 직업을 가지더라도 일하는 산업이 다르기도 합니다.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 지회'라고 명명한 것은 앞으로 더 넓은 범위의 디지털콘텐츠 창작자 전체를 아우 르기 위해서입니다."



- 두 작가님들의 소개와 더불어 어떤 일을 하고 계신지도 궁금해요.


김희경 : "노조의 지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만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이고, 데뷔한지 16년차입니다."


하신아 : "현재 웹툰 작가이자 웹소설 작가입니다. 97년에 데뷔해서 출판만화 시절부터 작가 활동을 해왔고, 당시 출판만화 시장이 사라지는 경험을 하면서 중간에 다른 사업을 하다가 웹툰 작가로 재데뷔한 것은 2013년이에요. 노조에서는 부지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 노조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궁금한데요.


김희경 : "16년간 일을 하면서 낮은 단가에 모든 저작권리를 넘기는 계약 조건 등, 부당행위를 겪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한 연대 활동을 하던 다른 작가분들처럼 발언을 활발히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항상 부채감이 있었어요. 저 또한 불공정에 대해 말하고 싸워가는 분들께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고요. 그러한 용기와 행동력을 보며 저도 동료 작가들을 돕고 싶고,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용기'라고 말하고 싶어요."



- 플랫폼 구조에서 작가는 작품에 대한 대가를 어떻게 받나요?


하신아 : "포털사이트 시절에는 일한 대가를 원고료 형태로 줬어요. 원고료를 받고 작가는 일정 시간 동안 게재할 권리를 주는 거죠. 반면 플랫폼은 쇼핑몰 같은 거예 요. 예를 들어 G마켓에 물건을 올리는 것만으로는 돈을 주지 않죠. 작가는 물건을 올리는 거고, 플랫폼은 물건을 올려주는 대신 수수료를 가져가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콘텐츠는 G마켓에서 파는 일반적인 상품과 달라요. 4컷 만화처럼 캐주얼한 콘텐츠는 사람들이 돈 주고 보지 않지만, 성인물은 돈을 주고서라도 삽니다. 또 콘텐츠마다 그것을 주로 소비하는 독자층이 달라요. 그래서 플랫폼은 기본적으로 다 양한 장르의 콘텐츠로 구성되어야 활성화 됩니다. 과거 잡지 시절을 생각해보면, <슬램덩크>를 보기 위해 잡지를 사더라도 자연스럽게 다른 만화도 함께 봤어요. 반 대로 다른 만화를 보기 위해 산 잡지를 뒤적이다가 <슬램덩크>도 보는 거고요.


디 지털 콘텐츠 역시 같은 원리입니다. 따라서 노동한 대가로 임금이 지급되는 것이 당연해요. 작가에게 작품 의뢰가 들어오고, 일이 진행되면 스토리에 회사가 개입 해요. 또 마감 시간을 지키는 등 관리가 들어옵니다. 분명히 작가들은 노동을 하는데, 노동의 대가가 없는 상황인 겁니다."



-플랫폼에 다양한 콘텐츠들이 모여 있다는 형식 자체에서 가치와 이익이 발생하는데, 수익은 중간에 있는 기업들과 특정한 장르 또는 최상위 몇 작품의 작가에게만 돌아간다는 거 군요.


하진아 : ". 여기서 제대로 된 대가를 지급받지 못하는 작가들이 태반이기 때문에 MG제도(최소 개런티)가 생겼어요. 수익을 못 내는 작가에게도 최소치는 보장해 주겠다는 취지죠. 그러나 실제로 시행되는 MG계약은 절대 최소 수익을 보장해주지 않아요.

예를 들어 작가가 월 200만 원의 MG를 받고, 그 이상의 수익은 5:5라고 해봐요. 그러면 수익이 MG 이상 되는 순간부터 분배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최소 개런티인 200만 원의 수익만큼 회사도 가져갈 때까지 수익 분배가 없어요. 400만 원 이상의 수익이 나야만 분배가 되는 겁니다. 여기서 작가가 MG로 받은 몫만 큼 회사가 가져가지 못하면, 작가에게 보장해준다고 했던 MG는 플랫폼에 갚아야 할 빚이 됩니다. 해당 콘텐츠의 다음 회차로 이 MG만큼의 빚이 쌓이는 거예요. 누적 MG제도라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작가는 MG도 못 채우고 돈 안 되는 작가로 불려요.


또 이것은 단순히 플랫폼A와 작가의 계약이 아니에요. 가장 상위 플랫폼A와 작가 사이에는 보통 3단계 이상의 중간 플랫폼, 에이전시가 있습니다. 이들이 모든 수수료를 떼가고 남은 금액을 다시 주작가와 보조작가가 나눠 가져요. 매출 이천만원이난 작품에서 보조작가는 60~70만원을 가져가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생기는 거죠."



- 들어보니 노동조건도 매우 열악한 것 같은데요.


김희경 : "수익도 수익이지만 주간연재라는 것이 노동시간과 환경의 측면에서 굉장히 혹독한 시스템이에요. 1화에 40컷 이하면 가능한데, 업계 평균은 60~70컷이고 현재는 80~100컷씩 하는 분위기예요. 회 당 그림 컷 분량은 작가의 노동조건에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열악한 노동조건 때문에 많은 작가들이 암 등 질병에 시달립니다.


20% 이상이 하루 14시간 넘게 일해요. 주중 평균 창작 일수는 5.7일이고요. 먹고 자는 시간 빼고는 거의 모든 시간을 작품 창작에 할애한다는 의미인 거죠. 이 조사가 웹툰에 한정되어 있는 점도 아쉬워요. 웹소설, 일러스트레이터 분야의 실태조사도 필요합니다. 특히 웹소설 분야는 각 기관의 조사에서 소외되어 있어, 노동 현실 파악이 절실한 상황이예요."



- 불공정 계약뿐만 아니라 꾸준히 작가 사상검증 문제와 각종 부당한 관행들이 있었어요. 그에 대항했던 노조의 전신인 두 연대의 투쟁도 소개를 부탁드려요.


하신아 : "레진코믹스에서 웹소설 플랫폼을 갑자기 한 달 후 닫는다고 했어요. 어제까지 신규작가 계약서를 썼는데 말이죠. 거기서부터 웹소설 작가들을 중심으로 레규연활동이 시작됐어요. 6개월 정도 싸우던 중 해외 웹툰 매출에 대해 작가들에게 2년 동안 정산을 해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어요. 또한 마감 시간에 늦은 작가에게 지각비를 걷는 관행을 문제제기했습니다.

그리고 회사에서 작가의 SNS 계정을 사찰하거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프로모션 등에서 제외시킨다는 사실이 드러났어요. 싸움이 계속 진행되면서 웹소설, 웹툰 작가들이 함께 맞서 싸워 해당 사건들에 대해서 레진코믹스 측의 사과문을 받고 합의를 해서 개선한 상황입니다."


김희경 : "2016년부터 사상검증의 대상이 된 건 SNS 상에서 페미니즘 관련 발언을 하거나, 리트윗·좋아요 등을 취한 작가들 입니다. 이후 여성단체인 '여성민우회' 계정을 팔로우하거나 페미니즘 이슈에 발언·좋아요를 누른 작가를 '팔로우'한 것 만으로도 사상검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남성 일부 유저들이 피해 작가들을 '메갈'이라고 공격하며 사이버불링하고, 스토킹, 마녀사냥을 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문제가 되는 건 기업이 이들의 반발을 수용하고 메갈 없는 '클린한 게임'이라며 마케팅으로 활용했다는 겁니다. 기업에서는 작업자에게 SNS상의 발언·리트윗·좋아요 등을 철회하고 물의를 일으킨 것에 사과문을 게시하라 요구했어요. 그리고 사과를 거부하든 수용하든 기업의 사이트와 게임에 게재되어있던 작가의 작업물을 일제히 내렸습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 작가의 복귀입니다. 피해 작가들은 길게는 10년 이상의 경력이 하루아침에 끊겨서 생계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WFIU에서는 국가인원위원회, 한국콘텐츠진흥원에 진정을 넣었고, 사실관계 조사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을 통해서는 1차적으로 피해 작가 심리 상담이 진행되었습니다."



- 한편에서 여성 작가들에 대한 백래시가 '프리랜서는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노조를 결성할 수 없다'는 주장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신아 : "원고료 미지급 사건을 예로 들면, 작가가 그림을 300장을 그렸는데 외주라서 업체가 힘들다고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300장의 그림을 그리려면 최소한 6개월은 매달려 일을 해야 하는 분량이에요. 한 프로젝트에 300장의 그림을 그렸는데, 어떻게 노동을 한 게 아니고 노동자가 아닐 수 있을까요."


비담 : "작가들은 프리랜서라고 통칭되고 노동법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에 놓여있습 니다. 아무런 법도 우리를 위해 존재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법의 사각지대에서 부당함과 싸우려고 하니, 그러려면 법 테두리 안에서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모순입니다. 따라서 이 싸움은 권리가 주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권리를 찾기 위한 것이기도 해요."



- 마지막으로 미래의 조합원들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소개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김희경 : "현재는 계약서를 수집하여 불 공정 사항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설문조사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취합했고 이렇게 모인 계약서상의 불공정계약과 업계의 부당한 관행에 대해서 비영리 공익법인 ''에게 법률검토를 받은 후, 표준계약서를 정립하려 합니다. 또 전국여성노조 자문노무사를 통해 법률지원은 물론, 비영리공익법인인 ''으로부터도 법률상담 지원을 받을 계획입니다.


또한, 방문상담이 어려운 디콘지회 조합원을 위해 오픈 카톡방 운영을 논의하고 있어요. 다음으로는, 조합원 간의 정보공유와 공동대응입니다. 지금까지 많은 작가들이 업체로부터 피해를 입어도 침묵할 수밖에 없어 가장 기본적인 피해 회복에 대한 요구조차 포기하거나, 반대로 대중 앞에 위험한 공론화를 택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노조에 가입한다면,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이런 부담을 노조와 함께 나눌 수 있어요.


디콘지회는 기업노조가 아니기 때문에 계 약한 사측에 노조가입 사실을 알릴 필요도, 의무도 없습니다. 조용히 머릿수로 힘을 키워주시면서 노조의 우산을 함께 쓰시되, 사측과 문제가 생길 때 노조의 투쟁력과 협상력으로 해결을 도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각자 할 수 있는 만큼만 한다는 마음으로 편히 와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