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지워지지 않는 존재, 여성 노동자 ①]
일하는 여성의 숨겨진 노동시간
나래 / 상임활동가
노동시간이 연일 이슈다. 작년부터 시행된 주 52시간 상한제부터 최근 탄력근로시간제 단위 기간 확대 합의까지 노동시간을 둘러싼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문제가 놓쳐지고 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 공정하게 주어진 것처럼 여겨지지만, 여성 노동자는 시간 빈곤을 경험한다.
사회는 여성에게 빚지고 있다
한 여성 노동자의 하루를 떠올려보자. A씨는 대형마트에서 계산원으로 일한다. 새벽 6시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씻고 아침밥상을 차린다. 아이를 씻겨 옷을 입히고 달래가며 밥을 먹인다. 그시간 동안 남편은 밥을 먹고 바로 출근길에 나선다. 설거짓거리가 쌓여있지만 치울 새가 없다. 본인 출근길에 늦지 않기 위해선 부지런히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직장으로 향한다. 출산 전까진 중소기업에서 기획 업무를 담당했지만, 출산 후 육아를 하며 몇 년 동안 공백이 생기니 재취업하기가 쉽지 않았다. 면접을 보러 가도 아이가 있단 사실을 안 면접관들은 A씨를 뽑아주지 않았다. 결국 집에서 멀지 않은, 아이의 등하교 시간에 맞는 대형마트 계산원에 지원했고 비슷한 상황과 조건에 처한 여성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일을 마친 A씨는 유치원에 들러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향한다. 아이를 씻기고 바로 저녁 준비를 한다. 아이와 함께 밥을 먹고 나선 설거지를 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빨래를 개고 어질러진 집을 치운다. 중간중간 놀아달라는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재우고 나서야 한숨 돌릴 여유가 생긴다. 봄이 돼서 친구들과 인근으로 나들이라도 가고 싶지만 언감생심이다. 밤 11시가 다 되어가지만, 남편은 오늘도 자정이 가까이 돼서야 들어온다. 녹초가 된 남편과 반갑게 인사할 시간도 없이 A씨는 먼저 잠자리에 든다. 내일 또 고단한 하루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극적인 설정이 아니다. A씨처럼 여성은 직장과 가정에서 출·퇴근이 없이 가사노동 대부분을 책임지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에서 작년 12월에 발간한 ‘시간 빈곤에 관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직장을 다니며 미취학 자녀를 돌보는 40대 기혼 여성이 가장 극심한 ‘시간 빈곤(타임푸어)’에 시달리는 것으로 확인됐다. 결혼했거나 돌볼 가족이 있는 경우, 다른 사람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가 또는 자유시간이 더욱 부족한 것이다. 결국 가사 부담을 크게 지고 있는 여성이 남성보다 온전히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다. 실제로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14년 기준 1일 평균 가사노동시간은 남성이 53분, 여성이 214분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4배 이상 가사노동을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 추정치 역시 가사노동 범주에 자녀 목욕, 음식 준비 등 단순노동만을 포함했을뿐 필요한 가계 경영, 가족 돌봄 시 수반되는 감정노동 등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가사노동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은 시각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여성은 이 복잡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고 있지만, 그것은 성별분업이 굳어진 형태로 여성의 당연한 일로 취급될 뿐이다. 장시간 노동을 이야기할 때 정작 여성이 가사·돌봄 등 무급 노동을 전담하는 것에는 주목하지 않는다. 분명 존재하는 사실인데 이상하게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듯한 시간, 노동시간을 뒤집어 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면 여성에게 시간이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 심지어 저평가되거나 가려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여성 노동자의 과로사를 대하는 한국사회
시간 빈곤 문제와 연결해 함께 주목할 것이 있다. 바로 여성 노동자의 노동시간-장시간, 과로 문제다. 노동시간에 관해 이야기할 때 누구의 입장에서, 누구의 조건에서 살펴보느냐는 중요하다. 지금까지 노동시간에 대한 분석, 문제 제기, 대안 마련은 남성 중심으로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로사 인정 기준조차 여성의 돌봄노동시간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만 봐도 그러하다.
고용노동부는 과로로 인해 뇌심혈관계 질환이 발생한 것인지 판단하는 근거로 ‘뇌심혈관질환업무상재해 인정기준’을 두고 있다. 뇌심혈관질환은 과로를 상징하는 주요 질환 중 하나다. 인정기준에 따르면 지난 4주간 매주 64시간 이상 또는 지난 12주간 매주 60시간 이상 일하는 경우를 과로로 인정한다. 법정 노동시간을 주 52시간 상한제로 설정했음에도 여전히 60시간을 기준으로 하는 것도 문제지만, 여성 노동자에게 있어 더 큰 문제는 직장을 벗어나 가정에서 행한 가사·돌봄노동 자체를 ‘노동(시간)’으로 인정조차 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강조하는 ‘일·가정 양립’을 실현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에게 이 같은 과로사 인정기준은 해당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과로사라는 개념이 이슈 되기 전이었던 2013년 2월 한 여군 중위가 임신 상태에서 과로하다 숨졌다. 유가족에 의하면 하루 12시간 이상을 일했고, 한 달 초과근무만 50~53시간에 달했다고 한다. 휴가 계획도 1개월 전에 올려야만 했다. 규정은 없었지만, 남성 중심적 군대에서 여군이 임신을 이유로 필요에 따라 자기 시간을 자유롭게 쓰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2017년 1월, 30대 여성 공무원이 정부세종청사 계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세 아이의 엄마이기도 했던 그는 한 주 평일 동안 밤 9시 전에 퇴근한 적이 없었고, 주말 오후엔 자녀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새벽 5시 청사에 출근해, 밀린 업무를 봤다. 계산해 본 그의 한 주 근무시간은 70시간이 넘었다. 이 기간에도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밥을 짓는 등 세 아이를 돌봐야만 했다.
죽지는 않더라도 죽을 만큼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은 너무나 많다. 자녀가 있는 한 여성 노동자는 점심시간을 포기한 지 오래다. 돌볼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업무 능력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밥 먹는 시간을 포기하고 점심시간 1시간조차 일하는 데 바친다. 자기 시간을 포기할 뿐만 아니라 노동강도를 높여 건강을 위협한다.
4년의 세월 차이가 나는 두 사례지만 여성 노동자로서 겪는 문제는 공통적이다. 여성은 과로의 위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휴가나 병가를 쓰기조차 어렵다. 자신보단 자녀와 관련된 일을 처리하느라 얼마 없는 휴가도 거기에 몰아 쓰게 되고, 직장에서 평판을 위해 본인이 아픈 것은 도리어 참는다. 결국 여성 스스로 건강(권)을 포기하게 된다. 혹은 자녀가 없더라도 고용 유지, 진급 등을 위해 결혼, 출산을 포기하거나 미루기까지 한다. 자기 생애 결정권마저 침해당한다.
돌봄노동은 사적이고, 비공식적 시간으로 치부된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 1주일, 한 달, 1년, 평생 일한 노동시간이 일터 위험에 노출된 시간을 계산할 때 일반적으로 여성은 남성보다 위험에 노출된 시간이 적은 것처럼 보인다. 최근 얘기되고 있는 과로사,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문제의 경우에도 여성은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결국 여성은 위험에 더욱 적게 노출되는 것처럼 취급된다. 주로 여성에 집중된 시간제 일자리, 단기 일자리가 갖는 효과가 그것이다. 유연근로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노동시간을 분절, 단절하기 때문에 위험의 연속성도 마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노동시간 단축이 모든 노동자에게 좋다는 것은 대명제다. 예를 들어, 노동시간이 줄어든다고 했을 때 여성에게 그 줄어든 노동시간이 어떤 시간으로 재구성될 것인가가 중요하다. 직장에서 보내는 노동시간이 줄어든 만큼 가사·돌봄시간이 더 증가한다면 그것이 정말 여성을 위한 것일까. 직장에서 과로하지 않는 대신 집에서 과로하라는 의미로 여겨진다. 여성노동자, 모두를 위한 노동시간 단축은 무급으로 평가되는 여성의 직장 밖 노동시간을 제대로 인정받을 때, 시간의 주권자로서 여성이 자기 시간을 재구성할 수 있을 때만이 의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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