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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살아남은 자의 슬픔, 살아남은 자의 투쟁 / 2014.4 살아남은 자의 슬픔, 살아남은 자의 투쟁 '현대제철 당진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를 만나다' 최민 선전위원장 2013년 한 해 동안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만 9명이 사망했다. ‘죽음의 공장’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이 중 대부분이 하청, 외주업체 직원이다. 고로(용광로) 3기 공사 기한을 단축하려고 무리하게 작업하면서 사망 사고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사망사고가 잦아진 2012년 9월부터 지금까지 모두 15명이 사망했다. 추락사고, 질식사고, 협착사고. 다양한 사고로 15개의 우주가 닫혀버렸다. ▲ 2012년 9월 5일 : 철 구조물 해체 작업 도중 철 구조물이 쓰러지면서 사망 ▲ 10월 9일 : 크레인 전원 공급 변경 작업하던 도중 감전, 추락 사망 ▲ 11월 2일 : 작업발판 설치 중 발판 붕괴로 해상으로..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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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살아남은 자의 슬픔, 살아남은 자의 투쟁 / 2014.4

살아남은 자의 슬픔, 살아남은 자의 투쟁
'현대제철 당진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를 만나다'


최민 선전위원장

 

2013년 한 해 동안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만 9명이 사망했다. ‘죽음의 공장’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이 중 대부분이 하청, 외주업체 직원이다. 고로(용광로) 3기 공사 기한을 단축하려고 무리하게 작업하면서 사망 사고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사망사고가 잦아진 2012년 9월부터 지금까지 모두 15명이 사망했다. 추락사고, 질식사고, 협착사고. 다양한 사고로 15개의 우주가 닫혀버렸다.

 

<현대제철 당진 공장 2012년 9월 - 2014년 사망 사고 일지>

 

▲ 2012년 9월 5일 : 철 구조물 해체 작업 도중 철 구조물이 쓰러지면서 사망
▲ 10월 9일 : 크레인 전원 공급 변경 작업하던 도중 감전, 추락 사망
▲ 11월 2일 : 작업발판 설치 중 발판 붕괴로 해상으로 추락 사망
▲ 11월 8일 : 풍세 설비 설치 작업 중 추락 사망
▲ 11월 9일 : 기계 설치 작업 중 기계에 끼어 협착 사고 사망

▲ 2013년 5월 10일 : 전로에서 노동자 5명, 아르곤 가스 누출로 질식 사망
▲ 10월 29일 : 제강3기 건설 현장 8층에서 작업하던 중 추락 사망
▲ 11월 26일 : 전기로 가스 유출돼 작업하던 중 사망
▲ 12월 2일 : 철강공장 지붕에서 안전진단 중 추락해 사망
▲ 12월 6일 : 제철소 고로 보수 작업 이후 쓰러진 뒤 사망(심근경색)

▲ 2014년 1월 27일 : 슬래그 처리 작업 중 고온 냉각수에 빠져 화상 사망 

 

사망의 원인은 단순한 사고 뿐 아니라 장시간노동도 연관이 있다. 지난해 12월 6일에는 고로의 바람구멍 근처에서 보수 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일하던 중 탈진하여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했다. 만 37세의 젊은 나이였다. 죽은 노동자는 11월 한 달 동안 단 3일 쉬었다. 고로 바람구멍 앞은 방열복을 입지 않으면 다가가기도 어려울 만큼 뜨거운 곳이다. 고열 작업은 에너지 소모가 많으므로 일반 작업보다 여유율을 높이고 노동시간을 줄여야 한다. 그런데도 이 젊은 노동자는 죽기 직전 일주일 동안 62시간을 근무했고, 한 달 내내 주 평균 54시간씩 근무했다.

 

절단 사고는 한 달에 한 건은 계속 생겨요

 

사망 사고가 이 정도니, 중대재해가 아닌 사고는 일상다반사다. 현대제철 비정규직 지회 활동가들은 ‘절단 사고는 한 달에 한 건씩은 꾸준히 발생하는 것 같다’고 한다. 게다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사고는 산재 처리조차 되지 않고 있다.

 

당진 공장에서 천장크레인을 운전하는 김○○ 씨는 2013년, 일하기 위해 크레인에 탑승하던 도중 발을 헛디뎌 아래로 추락하고 말았다. 다행히 큰 부상은 피했지만, 발가락이 골절됐다. 그렇지만 현대제철도, 하청업체인 크레인회사도 김 씨의 골절을 책임지지 않았다. 탑승 도중 충분히 주의하지 않은 김 씨의 잘못이라는 것이다. 결국, 김 씨는 발가락을 본인 부담으로 치료했다. 나중에 잇따른 사망사고로 인해 특별근로감독이 시행된 후에야 이 사건도 산재로 처리되었다.

 

원청의 예방 노력이라는 것도 생색내기 수준이다. 20m 가까운 높이의 스카이웨이는 크레인 상부를 점검하는 노동자들이 다니는 길인데 위험천만하게도 난간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결국, 추락 사고가 발생한 다음에야 사고가 난 구간에만 난간이 만들어졌다. ‘정말 사고를 예방하려면 비슷한 위험이 있는 곳을 찾아내 예방조치를 해야 하고, 단번에 하기가 어렵다면 계획을 세워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울분 섞인 항변이다. 원청의 미흡한 조치들은 노동부의 특별 근로감독, ‘죽음의 공장’이라는 여론의 뭇매를 피하려는 임시조치에 불과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고는 현상일 뿐이다

 

비정규직 지회 활동가들은 사고는 현상일 뿐이라고 입을 모은다. 비정규직, 하청·외주·도급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안전 문제 해결은 요원하다는 것이다. 지금은 안전사고 위험이 예견돼도 비정규직 노동자나 노조는 원청에 개선요청을 할 수 있는 통로조차 없다.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 하청은 참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2013년 노동부 특별근로감독 이후 현대제철은 안전관리 인력을 200명으로 확대하고, 안전 관련 예산을 2,500억 원에서 5천억 원으로 늘린다고 발표했지만, 실제로 위험을 가장 많이 겪고 있는 하청 노동자들의 의견이 반영될 구조는 전혀 없는 상황에서 가장 위험한 공정과 개선이 시급한 곳에 이 돈이 제대로 쓰일지는 미지수다.

 

그뿐만이 아니다. 비정규직의 차별적인 저임금은 안전을 무시한 장시간 노동을 낳고, 이는 노동자들의 생명을 위협한다. 작년 12월 사망한 젊은 노동자가 1주일 평균 54시간씩 근무하고 받은 기본금은 110만 원. 잔업수당, 휴일수당, 공휴수당을 합쳐 한 달 200만 원을 받으며 일했다. 현재 당진공장 하청 노동자들은 3조 3교대로 자유로운 휴일 사용이 매우 어려우며, 작년부터 주휴일이 보장되고 있으나 인력이 부족하여 동료들이 대근을 해야만 쉴 수 있는 상황이다. 현재 현대제철 비정규직 지회의 현안은 2013년 노사합의를 이룬 운송노동자들의 주 1회 유급휴일 보장 약속을 이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임금삭감 없는 주 1회 휴일 보장이 되지 않으면, 생활을 위해 하루라도 더 일할 수밖에 없는데, 더 이상은 이렇게 살 수 없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인 것이다.

 

10년 정도 근무하는 동안 4번 이상 소속 회사가 바뀌는 현재의 불안한 고용 상태가 해결돼야 노동자들이 안전 문제나 처우 개선을 요구할 수 있다. 그래서 하청 노동자 안전 문제는 비정규직 철폐 투쟁, 전 사회적인 노동자 연대 운동과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 이곳 활동가들의 판단이다.

 

살아남은 자의 투쟁

 

사망 사고 발생 후, 현장 조사가 끝나면 곧바로 그 작업에 다시 노동자가 투입된다. 하지만 산재 처리나 사고 예방을 대하는 태도가 이렇다 보니 어떤 조치가 새로 취해졌고, 비슷한 사고가 다시 발생하지 않기 위해 어떤 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 충분히 설명해주지 않았다. 당연히 현장에는 분노와 불안이 쌓였다. 2013년 5월, 전기로 보수 공사 도중 아르곤 가스 누출로 인해 5명의 노동자가 한꺼번에 질식사했던 협력업체 한국내화에 노동조합이 생겼다. 여기에는 이런 분노와 불안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노동자들은 수도 없이 사측에 건의하고 요청하였지만, 무엇 하나 개선되지 않았고, 조직적으로 요구하고 싸우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이 모이게 되었다.

 

비정규직 지회에서도 하청 노동자들의 요구를 반영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다. 올해 3월 중순부터 원청인 현대제철 노동조합과 원하청 연대회의를 격주로 진행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하청 노동자들이 느끼는 안전 문제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물론 간접적인 통로라는 한계는 뚜렷하다. 그러나 지금의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력이나 현재 노동자 연대 운동의 수준에서 비정규직 지회가 곧바로 산보위에 들어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우선은 사고라는 ‘현상’에 대해서 같이 대응을 모색하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2014년 금속노조 철강업종분과위원회에서는 철강분과 공동요구안을 포함한 임단협 요구안으로 투쟁하기로 하였다. 철강분과 공동요구안에는 △교대제 개선과 월급제 실현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건강권 확보 대책 △사내하청 노동자 처우개선과 동등처우가 포함된다. 원칙적인 수준이지만,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 문제, 하청 노동자들의 처우 문제를 공동의 투쟁 과제로 설정하고 임단협에 명시한 것은 분명한 진전이다.

 

매달 한 명씩 죽어 나가는 현장에서 살아남아 일을 한다는 것은 엄청난 압박과 공포, 불안일 것이다. 그러나 살아남은 노동자들은 단지 먹고살기 위해서 계속 일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죽음의 공장을 살만한 일터로 바꾸기 위해,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이 싸움은 전 사회적인 연대 운동이 필요하다고 한다. 생존을 걸고 싸우는 이들에게 이제는 우리가 응답할 때이다.

 


 

죽음의 공장을 살만한 일터로 바꾸기 위해
'금속노조 충남지부 현대제철 비정규직 지회 조민구 지회장 인터뷰'

 

 

- 지회를 간략히 소개해 주시겠어요?
현대제철 비정규직 지회는 2012년 10월 15일 설립되었습니다. 노조인정과 고용 보장, 처우개선을 주요 과제로 투쟁해 왔으나 아직 조직률은 10%가 안 되는 실정입니다. 올 해 첫 임단협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 현재 당진공장의 비정규직 노동자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요?
127개 협력사가 있고, 현대제철 공장 내에서 일하는 하청 노동자만 7천 5백 명 정도로 추산됩니다. 회사에서는 외주협력사, 관계사 등으로 이름을 달리 부르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를 다시 1차, 2차로 나누어 차별적으로 대우하려고 합니다. 이런 2차 하청 차별 문제를 극복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 중 하나죠.

 

- 유독 당진 공장에서 사망사고가 더 많은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당진에 일관제철소를 만들면서 그 어디보다 이곳이 생산 제일주의가 만연해 있습니다. 게다가 공장을 계속해서 새로 지으면서, 아직까지도 생산력을 시험하는 단계입니다. 회사에서는 최대로 생산성을 밀어붙이면서 최대생산량, 최고 생산속도 등을 확인하고 있구요. 실제로 그런 과정에서 택타임이 줄기도 했습니다. 그 가운데서 노동자들을 압박하니 사고가 많을 수밖에 없죠.

 

- 안전사고에 대한 회사 대응은 어떤가요?

1월에 사망 사고가 또 발생하면서 노동부나 회사 모두 당황하긴 했죠. 2013년의 근로감독관 상주, 2차례의 특별근로감독 등이 효과가 없었던 셈이기 때문입니다. 노동부에서는 한 명만 더 사망하면 공장 가동을 중단하겠다고 하고, 회사에서는 안전 관리자를 늘리고 투자를 늘린다고는 합니다. 그런데 이 안전 관리자 자체가 6개월 임시직입니다. 1주일 교육받고 현장에 투입됩니다. 현장 노동자들은 ‘저 안전 관리자가 사고 나게 생겼다’고 걱정하죠. 이런 눈 가리고 아웅 식 조치로는 사고를 줄일 수 없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