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안전보건기준에 관한 비교연구 검토] 산업안전 전문인력의 독립성 보장, 어떻게 할까? / 2018.12

산업안전 전문인력의 독립성 보장, 어떻게 할까?

최민 상임활동가


산업안전보건 국제기준 비교 연구팀에서는 2018년 9월부터 독일 산업안전보건법과 체계를 공부하면서, 한국 산업안전보건 체계가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두 번째 글로 산업안전 전문인력의 독립성 문제를 다룬다... <기자말>

일터에서 유해물질에 노출되는 노동자의 건강을 보호, 증진하기 위해 특수건강진단이라는 제도가 도입돼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정하고 있는 특정 유해물질에 노출되는 노동자는 본인이 사용하는 물질과 관련하여 건강검진 항목을 정하고 결과를 해석할 수 있는 의사로부터 건강진단을 받아야 한다. 이를 일반건강진단과 다른 특수건강진단이라고 한다.

이 특수건강진단에 종사하는 책임의사 148명이 참여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한 가지 이상 윤리적 이슈를 경험했다는 응답자는 83.1%나 됐다. 의사들이 마주한 윤리적 이슈는 검진비용 덤핑 등 부당유인행위를 목격하거나(55.4%), 실적에 대한 압박을 받거나(42.0%), 검진판정에 대한 부당한 개입을 경험(33.1%)하는 것이었다.¹⁾

유해물질에 노출된 노동자에게 적절한 정보와 건강 관리 방안을 제시하고, 직업병 발생을 감시하기 위한 특수건강진단이 덤핑으로 '손님'을 유인하는 미끼가 되거나 심지어 검진 판정에 대한 부당한 개입을 경험한 의사도 세 명 중 한 명이나 되다니 놀라울 지경이다. 의사 그것도 전문의라면 자기 직업 영역에서는 전문가로서의 독립성을 존중받고, 또 그에 대해 본인이 책임지는 것이 당연한데, 특수건강진단 영역에서는 별로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사업주가 고용하는 전문가, 독립성은 어떻게?

현실이 이렇다 보니 독일 산업안전보건 체계를 살펴볼 때, 연구팀에 있는 직업환경의학의사들이 크게 주목했던 점이 '산업보건의사와 산업안전 전문인력의 독립성'에 대한 강조와 보장이다. 독일은 한국과 법체계가 달라, '산업보건의 및 산업안전 전문인력에 관한 법률'이 따로 있는데, 이 법 4절 통칙 중 제8조는 아예 제목이 '전문지식의 적용에 있어서의 독립성'이다.

독일 법은 "산업보건의와 산업안전전문인력은 노동의학적, 안전공학적 전문지식의 적용에 이어서 지시를 받지 않아야 하며, 부여받은 업무의 수행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산업보건의 역시 의사로서 '의사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며, 의료상의 비밀유지 의무규정을 준수하여야 한다고도 분명히 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의료법 상 당연한 의무이기도 하고, 법이 아니더라도 전문가로서 당연히 지켜야 할 윤리 조항임에도 굳이 법에 이런 전문가로서의 독립성을 명시해 둔 것은, 아마도 한국의 직업환경의학 의사들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처럼, 산업보건의나 산업안전전문인력을 고용하는 당사자가 사업주라는 데서 오는 윤리적 문제가 분명히 발생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독일 법에서도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 산업보건의나 산업안전 전문인력이 참여하게 되어 있지만, 이들은 사용자 위원도 아니고 노동자 대표위원도 아닌 독립적인 지위로 위원회에 참여하도록 보장받는다.

전문가의 독립성, 법적 보장과 노동자의 견제로

물론 독일에서도 산업보건의를 채용하거나, 직접 채용하지 않고 계약을 맺어 산업보건 관련 업무를 맡기는 경우, 채용이나 계약의 주체는 사업주다. 그렇다면 이런 법적 조치들은 미사여구에 불과한 게 아닐까?

법적 조항이 전문가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틀을 제공한다면, 전문인력에 대한 사업주의 전횡을 제어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안이 바로 노동자의 참여다. 산업보건의 및 산업안전 전문인력에 관한 법률 9조는 아예 이들의 '노동자대표위원회와의 협력'이 자세히 열거돼 있다. 산업보건의와 산업안전전문인력은 임명이나 면직이 모두 '노동자대표위원회'의 공동 결정 사항이다. 산업안전과 관련된 전문가의 고용에 대해 사업주뿐 아니라 노동자도 관여할 수 있기 때문에, 고용 혹은 계약을 빌미로 한 사업주의 부당한 관여를 방지할 수 있다.

또 만일, 산업보건의 또는 산업안전전문인력이 노동의학적 또는 안전공학적 조치를 제안했는데, 그것을 회사의 안전보건담당자가 거부할 경우, 이 전문가에게는 사업주에게 직접 의견을 제안할 권리가 보장된다.

사업주가 그 제안을 거부할 때는 그 이유를 서면으로 통지해야 하고, 이를 '노동자대표위원회'에도 알려야 한다. 즉, 노동자 건강과 관련된 전문가 의견이 회사의 입맛에 따라 거부되거나 사장되는 것을 막아주는 조치라고 할 수 있다.

전문가의 독립적 역할과 지위, 권한을 법으로 보장하고, 노동자 참여 제도를 통해 보완하는 곳에서 산업보건의사를 포함해 산업안전전문가들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할 수 없는 많은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산업안전보건법의 가야 할 또 하나의 방향이다.

※ 각주
1) 김정민 등, 특수건강진단 책임의사의 윤리적 이슈 경험 및 업무만족도 실태와 자가평가 업무수행능력과의 관련성, 2017년도 제58차 대한직업환경의학회 봄학술대회 포스터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