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에 드는 골병 소음성 난청
권종호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할석(割石). 돌을 나누거나 베어낸다는 뜻이다. 건설 현장에서는 잘못된 콘크리트 구조물을 해체하거나 수정하는 작업을 칭하는 용어다. 얼마 전 이 작업을 30년 해온 한 분이 배치 전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내원하셨다. 이 분의 청력은 소음성 난청 진단 기준 에 가까운 수준으로 떨어져 있었다. 콘크리트를 30 년 깨는 동안 청력이 온전히 남아있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동안 귀마개는 좀 사용하셨는지 물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써 본 적 없었다는 대답 이 돌아왔다. 그에 덧붙여 처음 일을 배울 때 그런 거 쓰면 안 된다고 배웠다는 이야기도 하셨다. 깨는 동 안 나는 소리를 들어야 어떤 부분을 깨고 있는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귀마개를 사용할 수 없는 것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귀마개를 사용하면 주파수나 귀마개 종류에 따른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략 15~25dB의 소음을 줄여주는 것으 로 알려져 있다. 어차피 귀마개를 하더라도 어느 정 도의 소리는 듣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에 소음의 크 기가 3dB만 줄어도 소음의 에너지는 반절로 줄기 때문에 청력 손상을 막는 데는 충분히 효과적일 수 있다. 따라서 귀마개를 한 상태로 들리는 소리에 익숙해지는 것이 좋다.
하지만 실제 노동 현장에서는 말처럼 쉽지가 않다. 귀마개를 착용하려는 노동자의 의지가 있더라도 일 에 문제가 생기고, 일이 더뎌지는 상황에서 꾸준히 귀마개 착용을 할 수 있는 노동자는 많지 않다. 더욱 더 근본적인 원인은 그 적응 기간 생기는 문제를 용 인해주는 사업주나 관리자는 더 없다는 것이다. 또 한, 잦은 착용으로 인한 외이도염, 귀 덮개 형태 착 용 시 착용 부위의 통증, 청력 둔화로 인한 안전사고 위험 등 귀마개 자체가 가지는 문제도 노동자의 귀 마개 착용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앞서 30년간 활석 작업하셨던 분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이미 30년간 귀마개를 하지 않고 할석 작업을 해온 노동자분의 청력은 떨어질 대로 떨어져 이제는 귀마개를 하는 상태보다 소음을 덜 듣는 수준이 되었다. 그분은 시끄러운 소리지만 어차피 참고 견디며 일해야 하는 줄 알고 미련하게 일한 것 같다고, 요즘엔 집에서 TV 볼륨 때문에 아내분과 말다툼도 잦아졌다고 하셨다. 열심히, 문제없이 잘 해내려고 참고 견디며 일해 온 노동자의 귀에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혼자 안고 가야 할 골병만 남은 것이다.
고용노동부의 통계자료인 근로자 건강진단 시행 결과를 연도별로 살펴보면 2012년 6,684명, 2013년 7,388명, 2014년 8,428명, 2015년 10,042로 소음성 난청으로 직업병 유소견자(D1) 판정을 받은 노동자의 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귀마개의 지급조차 되지 않던 옛날보다, 귀마개 착용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교육도 많아지고 충분히 지급하는 사업장도 많아졌지만 소음성 난청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는 결국 귀마개 착용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소음 사업장의 관리에 있어서는 귀마개 착용과 같은 노동자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소음 감소를 위한 공학적 개선이 꼭 필요하다. 즉, 소음 발생 기계, 기구의 대체, 시설의 밀폐, 흡음재, 덮개, 방음벽 설치 등 소음을 줄이는 근본적인 소음 관리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개인 보호구 지급보다 투자비용이 많고 밀폐, 흡음재, 덮개 등의 사용으로 인해 생산 효율의 감소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실제 시행되는 경우가 거의 없고,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한 강제도 되지 않는다. 심지어 이러한 시설 개선과 관련한 산안법 시행규칙 제120조에는 “다만, 작업의 성질상 기술적, 경제적으로 소음 감소를 위한 조치가 현저히 곤란하다는 관계 전문가의 의견이 있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소음 감소 조치를 하지 않는다).”라는 면피 문구만 버젓이 들어있다. 결국, 전혀 해결되지 않는 직업병인 소음성 난청은 여전히 자본의 논리 아래에서 노동자 개인의 책임만 강조하고 교육하고 있다.
2015년 기준 직업병 유소견자(D1) 중 소음성 난청이 차지하는 비율은 96.8%에 달한다. 2012년부터 95% 수준을 벗어난 적이 없다. 다른 직업병에 비해 명확한 직업병 판정의 기준이 있다는 점도 그 영향이 있겠지만 그만큼 의심할 여지없는 직업병이라는 점, 그 발생 빈도가 높고 전혀 줄지 않는다는 점은 여전히 철저한 관리가 필요한 상태라는 것을 나타낸다. 고용노동부는 이러한 소음성 난청에 대해 아무리 보호구 착용을 교육해도 안 된다고 매너리즘에 빠질 것이 아니라 소음 발생 시설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자본의 논리를 넘어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언제까지 노동자의 건강을 팔아 자본의 배를 불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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