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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3. 2016년이 우리에게 남긴 과제들 /2016.12 2016년이 우리에게 남긴 과제들 최민 얼마 전, 한 신문 칼럼에서 여성주의자이자 평화학 연구자인 정희진 선생은 ‘나에게 올해의 인물은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숨진 김 군(19)’이라고 고백했다. 매년, 계속 2천여 명의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일하다 숨지고 있지만, 올해만큼 ‘위험한 일을 하는 노동자’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때는 오랜만인 것 같다. 불안정 노동의 시대, 노동자의 몸과 생명똑같은 사고가 있었고, 최소한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매뉴얼이 있었음에도, 외주화와 인력 감축이라는 비정한 논리 앞에서 젊은 청년 노동자의 목숨은 지켜지지 못했다. 안전을 통제하는 관제실에 닿으려면 7단계를 거쳐야 하는 외주화의 끄트머리, 밥 먹을 시간도 부족해 컵라면을 들고 다녀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은 불안.. 더보기
월 간 「일 터」/[특 집]

특집 3. 2016년이 우리에게 남긴 과제들 /2016.12

2016년이 우리에게 남긴 과제들

 


최민

 


얼마 전, 한 신문 칼럼에서 여성주의자이자 평화학 연구자인 정희진 선생은 ‘나에게 올해의 인물은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숨진 김 군(19)’이라고 고백했다. 매년, 계속 2천여 명의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일하다 숨지고 있지만, 올해만큼 ‘위험한 일을 하는 노동자’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때는 오랜만인 것 같다.

 

불안정 노동의 시대, 노동자의 몸과 생명

똑같은 사고가 있었고, 최소한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매뉴얼이 있었음에도, 외주화와 인력 감축이라는 비정한 논리 앞에서 젊은 청년 노동자의 목숨은 지켜지지 못했다. 안전을 통제하는 관제실에 닿으려면 7단계를 거쳐야 하는 외주화의 끄트머리, 밥 먹을 시간도 부족해 컵라면을 들고 다녀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은 불안정 노동자가 어떻게 위험해질 수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그에게는 밥 먹을 시간이나 2명이 작업할 수 있는 조건을 요구할 힘, 자신의 안전을 요구할 힘이 없었다.

 

구의역 사고뿐 아니라, 올해 초 발생했던 파견 노동자 집단 메탄올 실명 사건 역시 우리 사회 노동안전 문제가 얼마나 위기에 처해 있는지 바로 보여주었다. 불안정 노동자가 지속해서 늘어나는 지금의 현실이 ‘과거의’ 직업병을 어떻게 현실로 소환하는지 똑똑히 보게 된 것이다. ‘60년대에나 볼 수 있을 법한 사고’가 났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정말 두려운 것은 일반화된 불안정 노동이 사실상 우리 사회 노동 환경과 노동자들의 힘을 그 시절 수준으로 돌려놓았다는 것, 자칫 잘못하다가는 이런 사고를 자주 마주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이다

 

청소년으로부터 노동자 건강 감수성을

이런 상황에서 건강하게 일할 조건을 만들기 위해, 노동자들이 서로, 스스로 조직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런데 불안정 노동이 일반화된 우리 현실은 이런 조직화 자체를 가로막는 조건이기도 하다. 그래서 연구소는 노동조합이나 노동자들의 모임, 네트워크와 직접 함께 하는 활동 외에도, 조금 다른 측면에서 이런 변화를 위한 씨앗을 뿌려 보기로 했다. 유치원 때부터 ‘싫어요, 안 돼요, 만지지 마세요.’를 가르치는 것처럼, ‘위험한 일은 하기 싫어요, 대책 없이 일 시키지 마세요.’라는 주장이 당연하다는 마음을 갖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최근 늘어난 청소년 노동인권 증진 활동들에 힘을 보태고 도움을 받아가며, 그동안 말 잘 듣는 근로자를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하던 학교의 사회, 도덕, 직업 교육을 넘어 청소년들에게 노동인권 감수성을 높이기 위한 직접 교육에도 함께 했다. 노동 인권 교육을 고민하는 교사와 학부모들과 함께 노동자 건강권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특성화고 실습실 실태나 현장실습 실태를 드러내는 연구를 진행했다.

 

우리 삶을 지배하는 노동의 시간과 공간 주인 되기

노동자들이 몸과 건강, 생명과 안전의 문제로부터 스스로 조직할 수 있으려면 노동인권 감수성, 노동자 건강 감수성이 지금보다 훨씬 높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과정에서 너무 길어서 삶을 좀 먹는 노동 시간에 대한 불편한 감각도 생기고, 사장 편하도록 이리 저리 잘리고 붙는 노동 시간이 옳지 않다는 마음도 생길 것이다. 자본이 ‘괜찮다’고 말하는 위험에도 작업을 중단하며 대책을 요구해야 한다는 작업중지권에 대한 감각도, 우리를 서서히 병들게 하는 근골격계 질환이나 일터 괴롭힘에 맞설 수 있는 힘도 기르게 될 것이다.

 

결국 이런 활동으로 우리 삶을 지배하지만, 우리가 지배권을 행사하지 못 하고 있는 노동 시간과 노동 공간에 대한 일하는 사람의 통제력을 키워 가자는 것이 연구소의 계속되는 희망이다. 2016년에도 이를 위해 노동시간센터에서, 작업중지권 실현을 위한 당장멈춰 팀에서, 일터 선전위원회에서 이런저런 방법과 시도들로 여러분에게 말을 걸어왔다. 말 걸기가 얼마나 잘 됐는지, 우리는 다른 이들의 말이나 외침을 얼마나 잘 듣고 화답해왔는지는 당장 평가하기는 어려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최소한, 메탄올 사건, 구의역 사고부터 박근혜 게이트까지, 2016년은 우리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아픈 시간이었지만, 그런 만큼 과제와 할 일을 뚜렷이 보여준 시간이기도 했다. 그게 드러나야 희망도 시작될 것이다. 100만이 넘는 광화문의 촛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