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어. 늘 그랬어’에 ‘아닐 수도 있어’라는 자극제 되기
- 2016년 경남 근골 유해요인 지역 조사단 활동기
이은주 마창거제 산추련
관행과 형식만 남아버린 근골 유해요인조사
근골격계 집단요양 투쟁은 IMF 이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노동자의 저항을 무력화하고 현장통제를 강화하려던 자본에 대한 직접적인 저항이었다. 하지만 근골 유해요인조사가 법제화된 후 시간이 흐를수록 대부분 사업장에서 초기 노동자들이 가졌던 문제의식이 흐려지면서 운동적 의미 역시 퇴색되어 관행과 형식만 남았다. 2015년 금속노조와 전국의 노동안전보건단체가 TFT를 꾸려 확인한 근골 유해요인조사 실태 결과에서도 설문에 참여한 79개 지회 가운데 절반 정도만 근골 유해요인조사에 대한 목표를 설정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에서도 ‘현장조직력 강화’라는 뚜렷한 목표를 설정하고, 기존의 정기 유해요인조사를 넘어서기 위한 시도를 하는 곳은 소수였다. 반면 절반 정도의 지회는 자체적인 기획이나 목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근근히 유지된 경남 근골 유해요인 지역 조사단
이러한 현실에서 2016년 근골 유해요인조사의 해를 맞이했다. 2004년부터 경남지역은 노동자들이 직접조사의 주체가 되고 지역연대를 통해 조사를 이어가는 지역조사단 활동을 이어왔다. 현재는 초기의 참여 사업장 수, 참여자들의 열기만큼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형식적인 조사가 아닌 노동자가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취지가 아직은 미약하게나마 남아있다.
올해도 경남지역 조사단을 구성하자는 제안을 했다. 신규 지회를 중심으로 활동을 해보자는 경남지부의 제안이 있었지만, 이는 여러 가지 이유로 시도하지 못하였다. 결국, 예전부터 지역조사단이 해오던 3개 지회만 함께하였다. 지역조사단에 참여하는 사업장의 현장 조사단(주로 대의원으로 구성), 지회별 시간 할애가 가능한 노안 부장 또는 근골위원으로 구성되었다. 나의 현장이 아닌 타 사업장의 현장조사를 통해 새로운 것을 터득하는 과정이 되었다. 아는 만큼 보이기도 하지만 보는 만큼 알게 되기도 한다. 언제나 그렇듯 타 사업장의 작업복을 입고 현장조사에 참여하는 활동가들은, 사측에게는 껄끄러운 존재이고 현장 조합원들은 노동자의 연대감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이다.
변하지 않는 현장 무엇이 문제인가?
요즘 같은 시기에 근골 이야기할 수가 있나요? 벌써 10년이 넘었는데 해도 개선이 안 되는데 또 하나? 이런 질문으로 예비조사를 실시하였다. 현장에 가서 만나는 노동자들과 무엇을 나누어야 할지 고민은 깊어져가고 현실은 팍팍하다. 그나마 3년 만에 현장 곳곳에서 얼굴을 보고 논의를 할 수 있다는 것,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조사에 참여하는 새내기 대의원들과 함께한다는 것에 그나마 위안으로 삼는다. 여기에 의미를 두고 간다는 것이 조사가 진행되는 내내 맘속에 돌덩이로 남아있었다. 해마다 진행된 조사에도 바뀌지 않는 사업장, 현장개선은 되고 있지만, 생산성 향상에 맞추어져 있다 보니 무언가 바뀌고는 있는데 노동자의 근골증상은 심각해지는 사업장들이다.
“조사하는 분들이 개선도 같이하면 안 되냐”는 볼멘소리를 하신다. 조사 이후 사측이 개선을 위해 노력하지 않으니 당신들은 3년마다 와서 개선되지 않은 문제만 확인하고 간다는 소리일 것이다. 정말 진심으로 개선과정에도 참여하면 좋겠다. 그러나 그 문제를 해결할 주체는 바로 현장이 아니던가. 오죽 답답한 심정에 저 이야기까지 하겠느냐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부서나 반 단위의 노동자들의 권리 쟁취를 위해 ‘으쌰으쌰’하며 노동자들의 ‘토론과 도모’가 사라진 현장을 보며 마음의 돌덩이는 더욱 커진다. 단위 사업장, 지회의 투쟁을 모아 지역연대의 요구로 모아 함께 한 경험도 무용담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 조사도 개선 요구와 과정도 직접 참여 직접 행동이 아닌 대행되는 현실이 씁쓸하기만 하다.
‘어쩔 수 없어. 늘 그랬어’에 ‘아닐 수도 있어’라는 자극제 되기
조사과정의 두 번째 현장 대안 토론이 진행되었다. 올해 진행된 토론은 새로운 시도를 해보았다. 온몸이 골병든 노동자 그림으로 스티커를 제작하여 반별 토론에 참여한 노동자들에게 자기가 일하는 공간에 가서 문제가 되는 곳에 스티커를 붙이고 사진을 찍어오게 하였다. 스티커를 붙이러 현장을 돌면서 화기애애해진다. 찍어온 사진은 토론 진행자인 대의원에게 카톡으로 보내어지고 화면에 띄워졌다.
“매일 매일 일하면서도 어쩔 수 없지 하고 지냈어요” “어떻게 바꿀 수 있다는 생각도 못 해봤어요” 라며 노동자들에게 “아닐 수도 있어” “이렇게 할 수도 있지”라고 생각을 할 수 있는 자극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시작된 현장 대안 토론이었다. 내 작업을 설명하는 노동자들은 목소리는 생생하고 그전에 개선을 요구한 적이 있지만 안 되었고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를 할 때는 한숨을 내쉬기도 한다. 동료들과 방안 논의를 할 때는 주저 없이 자신의 소견을 밝힌다. 바로 해결이 필요한 건 그렇게 하자고 정리도 된다. 이런 살아있는 토론이 일상이 되는 현장이 되는 것, 바로 근골 유해요인조사 에서 우리가 찾고자 하는 의미일 것이다.
일상에서 호흡하고 바꾸어가기
보고서도 현장의 눈높이에 맞추어 정리하고자 했다. 보고서가 책장의 보관품으로 전락하는 현실도 누누이 보아 왔기 때문이다. 보기 쉽게 현장에서 바로 활용 가능 하도록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했다. 한 사업장에서 현장 노동자들이 제안한 개선방안도 200여 가지를 넘어선다. 이렇게 진행된 토론 내용을 부서 반 단위 공정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으로 정리되어 보고서로 제출되었다. 보고서 교정 작업 현장 동지들과 함께 진행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마지막으로 자신의 부서와 반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다시 점검하는 시간이 되었다.
이제 아픈 노동자들에 대한 치료는 어떻게 해갈 것인지 함께 머리를 맞대어야 할 시간이다. 또다시 3년 뒤가 아니라 지금부터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 갈 것인지 함께 모색해야 한다. 예전의 근골 투쟁의 무용담에 그치지 않기 위해 지부에서, 지역에서, 노조 차원에서 일상 활동이 지속하여야 한다. 노동자들의 직접 참여와 직접 행동이 가능하도록 끊임없이 소통하고 호흡해가는 것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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