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 이야기] 고깃배 만드는 어느 노동자 이야기 / 2014.4

고깃배 만드는 어느 노동자 이야기


Dr. 아이유

 

우리가 자주 보는 조그마한 어선이나 낚싯배는 보통 FRP[각주:1] 선박이라고 하는데 이런 어선이나 낚싯배를 만드는 공정은 매우 간단하다. 나무로 형틀을 제작해서 왁스를 바르면 그 위에 폴리에스테르 수지를 바른 유리섬유를 겹겹이 붙이고 건조하여 탈형 한다. 탈형된 FRP 선체에는 수지를 머금은 딱딱한 유리섬유밖에 없다. 여기에 온갖 세간들을 집어넣고, 장비를 붙이고 엔진을 넣는다. 선박의 겉은 그라인더로 연마하여 롤러로 도장을 하고 이름을 새기면 작은 항구에서 많이 보는 흔하디흔한 고깃배가 된다.

 

FRP 선박 제조작업장은 폴리에스테르 수지 때문에 냄새가 매우 많이 난다. 필자도 FRP 선박제조회사에 가서 유리섬유에 폴리에스테르 수지를 발라서 여러 겹으로 붙이는 현장 바로 옆에서 작업을 지켜보는데 지독한 냄새 때문에 오래 관찰하기 힘들 정도였다. 이런 공장에서 52세 때부터 15년간 유리섬유를 재단하는 작업만 수행한 노동자가 폐암에 걸려 사망하였는데 아들이 산재신청을 하기 위해서 찾아왔다.

 

그 노동자는 과거 약 18년간 4명 정도 승선하는 조그만 고깃배의 선원으로 일하다가 이후 4년간 냉동창고에서 냉동꽃게를 운반하는 작업을 한 후, 52세 때부터 약 15년간 FRP 선박 제조공장에서 유리섬유 재단만 하는 작업을 하였다. 태어날 때부터 귀가 잘 안 들려 말도 못하였기 때문에 기술이 필요한 복잡한 일은 하지 못하다 보니 월급도 매우 적었고, 심지어 임금체불도 있어 소송 중이라고 했다.

 

“저희 아버지가 일했던 공장은 냄새가 아주 많이 나고 각종 유해물질이 많습니다. 담배도 피우지 않은 아버지의 폐암은 이런 공장에서 유리섬유 재단을 하면서 (유리섬유) 먼지를 많이 마셨기 때문에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FRP선박회사에서 15년간 유리섬유를 재단하는 작업만 수행한 노동자의 폐암이라 산재가 안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유리섬유나 지독한 냄새의 원인인 폴리에스테르 수지, 그리고 형틀에 바르는 왁스까지 아직은 폐암과 관련이 낮은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도장작업에 대해서도 물어봤으나 도장작업은 하지 않았고, 바닷가에 있는 야외 공장의 도장작업장은 유리재단 작업장과는 반대쪽 끝에 있어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으리라고 판단되었다. 아들에게는 이러한 이유로 현재로서는 산재 승인 가능성이 낮을 것 같다고 말씀드리는 수밖에 없었다.

 

아, 괴롭다. 해마다 많은 노동자가 산재를 신청하고 불승인 처분을 받아야 하는 이 현실 자체가 직업환경의학 의사로서는 매우 불편한 현실이다. 노동자가 아프면 그것이 직업적 원인이든 비직업적 원인이든지 간에 우선 치료해주면 안 되나? 그리고 그것 때문에 일을 하지 못하는 기간만큼 보상 (상병보상) 해주면 안 되는가? 물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산재보험이든 건강보험이든 상병보상을 하는 것은 산재신청 자체가 직업병을 예방할 수 있는[각주:2] 지금의 현실에서 바로 적용하기 힘든 방법일 수도 있으나, 산재 불승인 노동자를 앞으로도 계속 지켜봐야 하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솔깃한 방법이기도 하다. 과연 산재도 예방할 수 있으면서 이 괴로운 상황에서도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인지 모든 사람이 같이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1. 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 (fiberglass reinforced plastics [본문으로]
  2. 산재신청을 하면 근로복지공단에서 사업장 재해조사를 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사업장은 해당 질병을 예방하려고 노력하게 되리라 판단한다. 만약 산재 승인이 되면 당연히 사업장은 해당 질병에 대해 예방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 [본문으로]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질판위는 산재보험 재정의 선량한 관리자인가? / 2014.3

질판위는 산재보험 재정의 선량한 관리자인가?


곽경민 회원

 

‘공단은 건강보험 재정의 선량한 관리자로 흡연을 예방하고 재정 누수를 방지할 책무가 있다’
 
얼마 전 공단검진 안내 팜플렛에서 본 건강보험공단의 담배소송을 홍보하는 문구이다. 재정 누수를 방지할 책무… 왠지 낯설지 않는 이 문구는 얼마 전 참석하였던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이하 ‘질판위’)에서 들었던 말을 떠올리게 하였다.


같은 기관에 계신 선생님께서 전공의인 나에게 시간이 되면 본인이 질판위원으로 가는 서울지역 업무상 질병판정위원회에 배석하여 참관하는 건 어떠냐고 해서 질판위에 참석하였다. 직업환경의학 전공의 1년차로 경험이 일천한 나에게 첫 번째 질판위 참석이다. 자료를 보니 20여 명의 심의안건이 상정되어 있고, 상병명을 보니 오늘은 근골격계질환만 심의하는 것으로 보인다. 나이 지긋한 위원장이 있고, 6인의 위원(직업환경의학의사 1인, 신경외과의사 1인, 정형외과의사 2인, 영상의학의사 1인, 인간공학 전문가 1인)이 회의용 원탁 책상에 앉아 있다. 첫 번째 심의안건은 오늘 유일하게 재해자의 진술이 있는 안건이다. 위원장은 “신청서와 자료에 있는 내용은 우리가 다 알고 있으니, 여기에 없는 내용만 짧게 이야기하라”고 했다. 에어컨 설치 기사로 일하다 요통이 생겨 산재를 신청한 30대 남성의 진술이 있었고, 질판위원들의 몇 차례 질문이 이어졌다. 재해자 진술이 끝난 후 위원회의 짧은 토론이 있었다. 업무로 인해서 생길 수 있는 상병이라는 의견들이 있어서 산재승인으로 합의가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나이가 좀 있으신 위원 한 분이 빈정대는 말투로 ‘옛날이었으면 이건 불승인’이라는 말을 던진다. ‘옛날드립’을 여기에서도 듣게 될 줄이야... 결국 표결로 가게 되었고, 다수의견으로 첫 번째 안건은 ‘산재 인정’이 되었다.


 

다음 안건은 양쪽 수지의 레이노증후군이다. 진동 폭로력이 확인되었고, 레이노스캔에서도 양성으로 나타나 어렵지 않게 산재승인 받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영상의학의사가 레이노스캔을 한쪽만 했으니, 한쪽 손에 대해서만 인정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였고, 결국 표결에서 한쪽에 대해서만 ‘부분인정’으로 결정이 되었다. 레이노증후군은 대개 양쪽으로 오는 질환으로, 실제 임상진료에서도 양쪽 다 증상이 있더라도 한쪽만 레이노스캔을 해서 양쪽 레이노증후군으로 진단한다. 그런데 진료를 보는 것이 아니라 보상을 위한 것이니 누가 봐도 인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를 토대로 해야 한다며 ‘부분인정’이라 한다.


 

이후로도 ‘객관적’이라는 이름의 주관적인 논의들이 이어졌다. 반대 의견이 없어 인정될 것 같은 안건도 표결에서 ‘불인정’되는 경우도 있었고, 업무관련성은 인정되나 상병명이 업무내용이 달라 ‘불인정’되는 경우, 상병명을 잘못 적어서 ‘부분인정’ 되는 경우도 있었다. 20여건을 짧은 시간 내에 처리하려니 후반부엔 아주 짧은 논의만 하고 바로 표결로 이루어져 위원회가 거수기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안건들이 다 처리된 이후 위원장은 ‘우리가 의학적으로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산재보험 재정이 부당하게 누수되는 것을 막는 책무가 있다’는 류의 마무리 멘트를 하였다. 그 말을 다시 떠올리니 담배소송 홍보문구처럼 ‘질병판정위원회는 산재보험 재정의 선량한 관리자로 근로자의 도덕적 해이를 예방하고 재정 누수를 방지할 책무가 있다’는 말로 들린다.


 

흔히들 ‘질판위’라 줄여서 말하는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업무상질병에 대한 판정의 공정성 및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개선책으로 근로복지공단에서 2008년 7월부터 설치한 판정위원회이다. 하지만 질판위가 신설된 이후 근골격계질환 및 뇌심혈관질환의 업무상질병 산재승인율이 급격히 감소하였다. 산재보험의 재정 누수를 막고자 객관성과 전문성이라는 이름으로 이렇게 불인정, 불승인을 남발하고 있으니 개선책이라고 나온 것이 오히려 개악책이 된 것이다. 이런 질판위가 산재를 신청한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기구일까? 산재보험 재정의 선량한 관리자가 아닌 산재노동자의 선량한 건강관리자의 역할을 하길 기대하는 것은 백년하청(백년을 기다려도 황하의 흐린 물은 맑아지지 않는다)일까? 우리의 숙제를 다시금 확인하게 된 하루였다.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 이야기] 보건관리대행과 노동자 건강 / 2014.2

보건관리대행과 노동자 건강


직업환경의학의 이선웅

 

현재 50인 이상의 전임보건관리자가 없는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의사, 간호사 및 산업위생기사가 방문하여 노동자들의 건강을 관리해주는 보건관리대행(이하 보대)을 받고 있다. 이 보대 업무는 현장의 노동자들이 산업보건전문가를 정기적으로 만날 수 있는 매우 의미 있는 제도이다. 필자 역시 2년 전부터 지방의 소규모 보대업체에서 보대업무를 하며 100개가량의 사업장 노동자들을 정기적으로 만나왔다. 하지만 내가 만난 노동자들이 그동안 얼마나 실질적인 도움을 받았는지, 심지어는 노동자들의 필요와 동떨어져 있는 형식적 업무가 지속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현재 보대의 주요 업무는 처방 및 치료가 허용되지 않는 상태에서 건강검진결과를 토대로 하는 건강 상담과 간이검사(혈당, 혈압, 간이콜레스테롤 검사), 그리고 현장순회가 아닐까 싶다. 물론 이 통상적인 업무과정에서 노동자들에게 체감적으로 도움 되는 결과가 생기기도 한다.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과 같은 검진 결과로 진단 가능한 질환에서 투약이 필요한 노동자를 병원에 의뢰하게 되거나, 생활습관에 대한 상담으로 질환이 호전되는 경우가 그렇다. 또 특수검진 결과 관찰이 필요한 노동자(요 관찰자)들의 증상이 작업과 관련성이 있는지, 작업 전환을 해야 하는지 평가하는 경우도 그렇다. 물론 후자의 사례는 전자보다 훨씬 적다. 어쨌든 현실에서 약물치료 의뢰는 위에 언급한 질환으로 제한되고 추적 상담 시에도 혈액검사가 제한되어 반복되는 생활습관 상담만으로는 만족감을 주기 어려워 노동자들이 정기 상담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

 

직업병을 발견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데 작업 관련 증상을 가진 노동자가 알아서 상담을 받으러 오기 힘든 면도 있고, 짧은 상담시간 안에 유해공정 노동자를 모두 상담하기도 힘든 현실도 엄연히 존재한다(근무시간 내 상담을 기피하여 점심시간 내 상담을 계약 시 요구하는 사업장도 다반사인 현실이다).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법에 명시되어 있는 공적 서비스임에도 민간시장에 완전히 일임되어 있다는 것이다. 계약 주체가 사업주인 관계로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서비스에는 관심이 없고, 서비스의 가격만으로 경쟁하는 사례가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의 질 낮은 서비스와 맞물려 악순환한다. 그래서 많은 사업장에서는 노동부 감사에 대비하는 형식적 서류업무에 능숙하고 서비스 질과는 무관한 단가가 싼 보건대행업체를 선호하게 된다. 게다가 노동부는 이를 바로 잡을 의지가 있는지 심히 의심스럽다.

 

보건대행서비스가 노동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산업보건서비스 중 매우 큰 부분이라면 현재의 문제점을 조금이라도 개선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먼저 상담에서는 처방이 불가능함을 인정한다면 외래치료와의 연결고리 역할을 더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일례로 투약이나 정밀검사가 필요한 노동자들에게 “현재 이러이러한 상태니 어느 과로 가세요”라고 구두로 설명하는 것보다 1차 진료기관에서 사용하는 진료의뢰서를 의료진이 사용하도록 한다면 좀 더 책임 있는 의뢰가 되어 보대서비스에 대한 노동자의 신뢰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또 약물치료는 필요 없으나 관리를 위해서는 지속적인 검사가 필요한 내당능장애, 고지혈증 등의 질환에서는 당화혈색소, 콜레스테롤 검사 등의 혈액검사를 의료법에 저촉하지 않는 범위에서 허용하는 것이 고려되었으면 한다. 또 만성질환 생활습관 관리에 대해서는 뇌심혈관발병위험도나 심혈관위험지수 등의 성과지표를 사업장에 제공하도록 하여 성취정도 및 추이를 노동자들과 공유할 수 있게 한다면 좋을 것이다.

 

직업병과 관련해서는 전반적인 현장 파악은 위생기사의 업무로 되어 있지만, 의사 역시 건강위험요인을 확인하여 적극적으로 상담에 이용하도록 현장 위험요인을 확인하도록 강제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이를 위해 위생기사의 상태보고서 작성 의무를 의사에게도 부과해 건강위험요인 상태보고서를 주기적으로 작성토록 하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업의 성과에 큰 관심이 없는 대부분의 사업주와 갑을관계에 놓여 있는 구조가 근본적인 문제다. 이로 인해 실제 사업장 담당자를 만나는 간호사들이 계약 해지의 두려움으로 사업장 담당자들과의 관계에 신경 쓸 수밖에 없어 업무의 힘겨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노동자의 보대이용을 독려하는 사업주도 일부 있지만 이에 무관심한 사업주 역시 많을 수밖에 없으며, 이 경우 보대팀이 개인적으로 노력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만일 이런 사업장에 검진결과마저 입수되지 않아 유소견자마저 파악되지 않으면 상담 인력이 없어 업무자체가 힘들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도의 전반적 변화나, 노동부의 보대업무에 대한 책임 강화가 필요할 것 같다. 제도적 변화는 ‘3자지불제도’나 ‘보대업체의 지역별 제한’과 같은 공공성 강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으며 이러한 제도적 공공성강화 방안은 꼭 논의되어야 한다.

일단 당장에는 노동부의 치밀한 감시 감독과 체계적인 기관 평가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점심시간이나 휴식시간에만 상담을 강요하는 사업장 재제를 명확히 하고(현재의 갑을 관계에서 보대업체는 이런 정보를 제공할 수 없으므로 사업장의 무작위 감사와 노동자모니터링 방법이 유효하겠다), 상담이 필요한 노동자에 대해서는 반드시 상담시간을 보장해주는 것이 사업주의 의무임을 명확히 하며, 유소견자의 상담율이 일정기준 이하로 낮은 사업장 역시 재제하도록 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또 보대 기관에 대해서도 성과지표와 같은 보대업무의 구체적 성과를 제시하게 하고, 서비스 질 평가를 강화하여 질 저하가 명확한 기관은 업무정지와 같은 강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 이야기] 아는 것이 힘이다?! / 2014.1

아는 것이 힘이다?!


한노보연 이영일

 

‘정보화 시대’에 살고 있다는 말은 이미 20년 전에 들었던 말이다. 20년 전에는 건성으로 흘려들었던 말이 지금에는 더욱 실감 나게 들린다. 그만큼 우리는 정말 다양한 정보들을 손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TV나 신문 등의 매체뿐만 아니라 PC나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이용하면 우리는 원하는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사실 이 말을 쉽게 할 수도 없는 것이 중소 규모 이하의 영세사업장 노동자 중에서 PC나 스마트폰을 통해 인터넷을 활용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싶다). 건강에 대한 정보나 메시지 또한 엄청난데, 그렇게 쏟아지는 정보들이 과연 사람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미국에서는 건강과 관련된 정보를 얼마나 잘 이해하는지를 평가하는 ‘건강정보이해능력’이라는 평가 도구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정보’라는 것은 건강에 대한 매체 광고, 올바른 약 복용법, 건강검진 결과지 등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개념이다. 이러한 정보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사자만의 잘못이 아니라, 광고를 만드는 제작자, 검진 결과지를 발송하는 의료기관들의 잘못도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이 글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건강검진 결과’에 대한 것이다. 노동자들은 일반검진이든, 특수검진이든 건강검진을 1년 혹은 2년에 한 번은 받을 것이다. 일반검진의 경우 기본적인 신체측정치 이외에도 혈압, 혈당 측정 및 간기능, 콩팥기능, 고지혈증 검사가 포함되어 있다. 개별적인 검사들의 결과통보서는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듯하지만, 막상 결과지를 받아보는 당사자 입장에서는 그리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개인에게 제공되는 검진결과 통보서에는 참고치가 정상 A와 정상 B로 구분되어 제시되고 있지만, 막상 외래나 사업장 출장 검진에서 진료를 볼 때면 자신이 진료 받은 결과에 대해 잘 모르고 있거나, 검진 결과표를 직접 들고 와서 설명을 요구하는 분들을 보면 A, B, C, D로 나뉘는 코드의 개념을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검사 결과의 이해에 관한 문제 외에도 질병의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이다. 예를 들면 고지혈증의 경우 동맥경화로 인한 뇌심혈관계 질환의 발병 위험을 증가시키기 때문에 관리가 중요한데, 다수의 노동자는 고지혈증을 단순히 ‘살이 쪘다’ 정도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특수검진의 경우도 일반검진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소음, 유기용제, 산화철 같은 분진 등에 노출될 위험이 있는 노동자들은 특수검진을 받게 되는데, 해당하는 검진의 항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흔한 유해인자인 소음의 경우를 보면, 청력이 떨어져서 계속 2차 검사를 받으면서도 귀마개를 하지 않는 경우를 많이 봤다. 소음 노출 작업으로 생기는 난청은 감각신경성 난청인데, 많은 노동자가 청력이 떨어지면 이전처럼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모르는 경우가 많으며, 귀마개의 필요성을 알면서도 동료와의 의사소통 문제로 일부러 착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유기용제의 경우 표지자 검사는 주로 소변검사를 통해서 하고 있지만, 이러한 검사 결과를 노동자들이 유심히 살펴볼까 하는 생각부터 든다.

 

그런데, 일반검진이든 특수검진이든 1년에 한 번꼴로 시행하는 검진 결과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노동자들만의 잘못일까? 노동자들의 무관심은 어떠한 것의 결과이지 원인은 아니며, 보건관리자의 책임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근본적으로는 노동자들의 건강을 잘 챙겨줄 수 없는 현재 한국의 보건관리시스템의 구조적인 문제이다. 특히, 상시 보건관리자가 없는 영세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은 보건관리의 사각지대에 있기 때문에 이들을 적극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보건관리자 또한 노동자들에게 자신의 검진 결과에 관심을 가지도록 동기부여를 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특히 2차 검진 대상자들의 경우 해당 항목에 대한 설명을 더욱 자세하게 하여 이해를 도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형식적인 검진이 아니라 유해물질 취급 노동자들에게는 유해물질의 위해성, 검사항목의 의미와 결과를 간략하게라도 설명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소음의 경우 청력 2차 검진(오디오그램) 결과를 보여주면서 간략하게나마 검사 결과와 검사의 의미를 설명해주는 것만으로도 귀마개 착용의 필요성을 깨닫게 하는 데에 충분한 도움이 된다.

 

올해 1월부터 산업안전보건법의 적용범위가 확대된다. 봉제의복 제조업, 가발 제조업, 폐기물 처리 관련업, 수리업 등 8개 항목은 종사하는 노동자수와 상관없이 업종 자체만으로 안전보건교육을 실시해야 하는 의무 조항이 생겼고, 일부를 제외하고는 5명 미만의 사업장까지도 안전보건교육제도 등 대부분의 산업안전보건법이 적용되도록 일부 개정되었다. 개정된 내용은 아직 부족한 것이 많고, 안전관리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지만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 조금이나마 안전보건관리의 틀 안으로 올 수 있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안전관리뿐만 아니라 건강과 관련된 보건교육의 확대적용과 더불어 새로운 아이템들이 계속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노동자들의 건강 검진은 질병을 발견하고 치료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발병의 위험도가 있는 부분에 대해 사전적으로 예방하기 위함이 주된 목적이다. 개인 건강관리 행태의 근본적인 변화가 중요한데, 바로 이것이 ‘결과’가 되어야 할 것이다. 많은 영세 사업장들을 아우를 수 있는 보건관리제도가 정착해야 할 것이며, 열악한 작업환경의 개선, 보건관리자의 책임 있는 관리 등이 뒷받침된다면 노동자들 역시 자신의 건강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고 평소의 건강관리 행태 또한 좋은 방향으로 바뀔 것으로 기대한다.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 이야기] 폐암에 걸린 선원의 억울한 이야기 / 2013.12

폐암에 걸린 선원의 억울한 이야기 

Dr. 아이유

A씨는 과거 40년 전부터 20년 이상 외국선박에서 선원으로 근무하고 폐암을 진단받은 후 산재요양 신청을 하였다. 다행히도 A씨는 폐암을 진단받고 수술을 한 뒤 재발이 없어 건강하게 지내고 있었다.

A씨는 20년 이상 기관사로 근무하며 선박 내 기관실에서 매일 생활하였는데 이틀에 한 번 꼴로 기관실에 있는 각종 설비를 유지·보수하는 일을 하였다. 그 과정에서 폐쇄된 기관실에 있는 각종 배관의 보온재를 뜯고 다시 감는 일을 반복하면서 보온재에 함유된 석면에 계속 노출되었다. 기관사 일을 그만둔 후 폐암이 진단될 때까지는 병원에서 사용하는 가스를 공급하는 장치를 만들고 설치하는 작업을 하였는데 이때에는 폐암 유발물질에 노출된 적은 없었다.

A씨도 자신의 폐암이 선박 기관사로 근무하면서 석면에 노출되어 발생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선원법에 따라 해양항만청에 산재 신청을 하였다. 그러나 해양항만청은 폐암이 발생한 지 3년 뒤에 신청하였다는 이유로 산재 신청조차도 받아주지 않았다. 나는 A씨에게 과거 수행하였던 일(기관사)로 인해 발생한 폐암이기 때문에 업무상 질병은 맞으나, 선원으로 근무하였기 때문에 선원법이 적용되어야 하고, 해당 선박은 산재보험 적용사업장이 아니므로 근로복지공단에 신청하는 산재 보상은 인정 못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이야기하였다.

 “해양항만청에서도 인정을 못 해주겠다 하고, 근로복지공단에서도 산재가 안 된다고 하면 나는 억울해서 어떻게 합니까?”

나는 석면피해구제법에 대해 설명해 드리고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불승인 통지서를 가지고 한국환경공단에 신청하면 석면 피해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으나, 보상 금액은 산재보상에 비해 적다”고 이야기하였다. A씨는 매우 실망한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근로자가 산재를 당했을 때 주장할 수 있는 권리로는 민법의 손해배상청구권과 근로기준법의 재해보상청구권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방법은 시간과 돈과 노력이 매우 많이 들기 때문에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법)을 비롯하여 공무원연금법, 군인연금법, 선원법, 사립학교교직원 연금법, 주택법, 문화재보호법 등에 따른 산재보상을 신청할 수가 있다. 

A씨의 폐암은 선박 기관사로 근무하면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산재법으로 보상받기는 어려웠고 선원법의 적용을 받아야 하는데, 해양항만청에서는 폐암을 진단받은 지 3년이 넘었기 때문에 산재신청 자체가 안 된다고 하였다. 산재법에서는 재해 사실을 인지한 날로부터 3년 이후에 소멸하기 때문에 암을 진단받은 지 3년이 지났다 하더라도 재해 사실을 인지한 것은 산재신청 바로 전이기 때문에 산재 신청을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선원법의 적용은 그렇지 않았다. A씨에게는 우선 석면피해구제법으로 조금이나마 피해보상을 받으시고 선원법으로 보상받으시려면 직업성 암이라는 의학적 소견을 낼 수 있는 대학병원의 교수를 소개해 드릴테니 나머지 과정은 노무사나 변호사를 찾아가셔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리는 수밖에 없었다.

A씨는 폐암 환자다. 폐암을 진단받을 당시 수술이 가능한 상태였고 항암치료까지 받으면서 현재까지는 별 일 없을지 모르나, 언제든지 재발할 수도 있고 또 갑자기 전이가 빠르게 진행하면서 폐암이 악화하여 사망할 수도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 A씨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해양항만청을 상대로 선원법에 따른 산재 불승인 처분 취소 소송을 하거나, 선박회사를 상대로 근로기준법에 따른 재해보상청구권을 제기하는 것이다. 만약 승소한다 해도 이 분이 그때까지 살아있을 거라는 보장도 없다.

A씨의 폐암은 명백한 업무상 질병이다. 그러나 산재법에 따른 보상도, 선원법에 따른 보상도 되지 않았다. 이를 어쩌란 말인가? 석면피해구제법에 따른 피해보상을 신청하여도 환경적 석면피해가 아니라 선원으로 근무하면서 발생한 폐암이라는 이유로 석면 피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A씨는 절망에 빠질 수도 있다.

나는 A씨가 해양항만청을 상대로 소송하길 바란다. 앞으로도 폐암과 악성중피종이 발생한 많은 선원이 선원법에 따른 산재보상을 계속 신청할 것이기 때문이다. 직업성 암임에도 불구하고 진단받은 지 3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산재신청을 받지 않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은 없애야 하지 않을까? A씨와 같은 노동자가 여기저기 산재보상을 받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그런 일도 없애야 할 것이다.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 이야기] 하청노동자는 산재도 차별받는다?

하청노동자는 산재도 차별받는다? 

직업환경의학전문의 김길동

 

얼마 전에 만난 외래환자의 이야기입니다.

 

이 환자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에서 일했는데, 작업 도중 7미터 높이에서 추락하여 흉추 12번 골절로 치료를 받았던 환자였습니다.

그런데 정말 충격적이었던 것은 이 환자가 이런 산재를 당하였는데 당시에 119를 불러서 병원으로 이송한 것이 아니라 동료가 회사 차로 실어서 병원에 이송했다는 것입니다. 7미터 높이에서 추락했다면 경추(목등뼈) 혹은 요추(허리뼈)에 무슨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르고, 특히 척추에 문제가 생겼다면 이송과정에서 잘못 옮길 경우 사지 마비 혹은 하지 마비 등의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데 동료들이 그냥 옮겼다니!

 

왜 그랬을까? 일반적으로 당연히 119를 불렀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왜 동료들이 옮겼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금세 이해가 되었습니다. 왜냐면 그 전에 KBS 추적 60분에서 산재은폐와 관련된 방송을 봤기 때문이죠. 당시 방송에 나왔던 회사와 같은 곳입니다. 방송은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에서 급성 심근경색 환자가 발생했는데 119가 바로 옆에 있지만, 회사 차량으로 병원까지 이송하였고 의학 지식이 없는 동료들에 의해 이송되는 과정에서 제대로 된 응급조치도 없어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사망했던 사건을 보도했습니다.

 

마찬가지 상황이었습니다. 환자는 응급상황에 대처할 능력이 없는 동료들에 의해 병원에 옮겨졌고, 작업과정에서 추락해 발생한 명백한 산재지만, 산재로 치료받은 것이 아니라 공상으로 치료를 받았습니다. 당시 흉추 12번 골절로 진단된 환자는 치료를 받고 현장에 복귀했지만 하지 저림과 마비 등의 증상이 발생하였습니다. 결국, 2년의 세월이 경과한 진료에서 흉추 5~6번에 추가적인 압박골절이 발견되어 산재신청을 추가로 하기 위해 우리 병원을 방문했던 것입니다. 이 노동자가 애초에 산재로 처리됐다면 과연 다시 우리 병원을 방문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진출처> 추적60, “수치로만 안전한 나라’, 은폐되는 산업재해

 

그렇다면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까요? 하청업체에서 재해가 발생했는데 왜 119를 부르지 않고 자신들이 환자를 실어 날랐을까요? 그것은 산재가 발생했을 때 받는 불이익 때문일 것입니다. 추적 60분에 방송된 내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심근경색이라는 응급상황이 발생했고, 소방서가 바로 옆에 있었지만 119를 부르지 않고 자신들이 실어 나른 것은 119를 부르는 순간 산업재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산재가 두려운 이유는 사내하청업체의 경우 산재 발생 자체가 원청인 현대중공업과의 이후 계약에서 불이익으로 작용할 가능성 때문입니다. 원청인 현대중공업 입장에서는 별로 상관없는 사내하청업체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실제로는 원청인 현대중공업이 조장하고 있습니다. 산재 발생의 책임에서 좀 더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현대중공업에서 산재발생 여부를 하청업체의 중요한 선정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지요.

 

20여 년 전 의과대학의 산재문제연구회에서 아픈데도 치료받지 못하고 산재신청을 못 하는 상황에 분노하던 현실이, 20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는 것에 기가 찹니다. 아프고 다친 것도 서러운데 하청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치료도 못 받고 산재신청도 못 하는 상황을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을까요?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 이야기] 배치전 건강진단의 역설 / 2013.9·10

배치전건강진단의 역설   

한노보연 류현철

 

토요일 오전 문진을 위해 진료실 문을 들어선 50대 노동자는 사뭇 긴장된 표정에 연신 두 손을 부벼대고 있었다. 조선소에 입사하기 위해 배치전건강진단을 받으러 오셨는데 청력검사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56세의 노동자는 대형 조선소의 협력업체에서 중조립 단계에 해당되는 판넬 작업에 18년간 종사해왔으며 경력이 쌓이면서 주로 현장 작업관리를 담당해 왔다. 이전 일하던 회사에서 일거리가 없어서 한참동안 일을 쉬고 있다가 다른 조선소의 협력업체로 일거리가 들어와 취직을 하려고 보니 건강진단결과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다른 기관에서 배치전건강진단을 받아보니 청력에서 소음성난청 요관찰대상자(C1) 판정을 받았고, 4kHz에서의 청력역치가 65dB이상으로 나와 회사로부터 취업이 불가능 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시 우리 병원을 찾아서 다시 검사를 받았는데 여전히 같은 결과가 나온 것이다. 아직 대학을 끝마치지 못한 자식을 둔 아버지에게 직장을 잃는다는 것의 의미는 한숨 속에 진료실 천장과 바닥을 번갈아 응시하는 그의 멍하고 불안한 시선이 대변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조선소의 선박건조 업무는 대부분을 협력업체 통해서 이루어진다. 수주된 배가 건조되거나 혹은 해당분야의 공정이 끝나고 나면 협력업체를 통해 고용되었던 노동자들은 다시 뿔뿔이 흩어져 새로운 일감을 찾아 이곳저곳으로 직장을 옮기게 되는 것이 보통인지라 몇 개월 만에 일터가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직장을 옮기는 과정에서 회사는 보통 배치전건강진단을 요구한다.

사실 배치전건강진단이라기 보다는 이전에 폐지된 채용시 건강진단이 오히려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과거 산업안전보건법에는 사업주에게 채용시 건강진단을 실시하도록 의무를 부과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사업주가 건강상의 문제가 있는 사람들의 고용기회를 제한하는 것으로 잘못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하여 사업주의 의무조항을 2006년에 폐기하였고 채용이 결정된 이후에 특수건강진단 대상업무에 종사할 근로자에 대하여 배치 예정업무에 대한 적합성 평가를 위하여배치전건강진단을 실시하도록 규정하였다.

그러나 고용기회의 제한 및 규제가 해소될 것으로 기대한다던 취지는 간데없고 채용전건강진단의무의 폐지

는 기업의 규제를 완화시켜주는 기능을 했을 뿐 배치전건강진단으로 이름만 바꾼 채 배제의 수단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조금만 검색을 해보면 조선소 취업을 소개하는 각종 인력업체가 입사에 요구되는 건강진단결과의 판정기준 대한 안내를 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표 참고). 직업 의학적으로 보았을 경우에 입사 후에 최소한의 적정 관리만 이루어지면 업무에 아무 지장이 없는 수준의 검사결과에 대해서도 취업의 기회를 박탈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마땅히 사업주가 부담해야할 건강진단 비용도 회사에 취업이 되어 3개월 이상 근무하게 되면 환급해주고 취업이 불가능해지면 그마저도 돌려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소음성난청 요관찰대상이기는 하나 적정 보호구를 착용하고 관리한다면 업무에 지장이 없다는 업무 적합성 평가서를 써줄 수 있다고 했으나, 그의 낙담한 얼굴은 밝아지지 않았다. 협력업체를 옮겨 다닌 것도 건강진단에서 그의 청력에 이상이 나타난 것도 이미 오래전부터의 일이라 했다. 별문제 없이 직장을 옮겨 다니다가 수년 전부터는 소음성 난청 요관찰 대상자라는 판정에 대해 전문의로부터 업무에 지장이 없다는 소견서를 받아오라고 했고, 최근에는 전문의의 업무적합성 소견서마저도 소용이 없게 되었고 판정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무조건 취업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따위 현실은 유전자 검사를 통해서 개인의 직업과 미래의 계층을 미리 결정하는 시대를 그렸던 10년도 훨씬 전에 만들어진 헐리웃 영화 이야기와 맞물려 불쾌한 기시감을 일으킨다.

각종 직업성 질환의 인정기준에 대한 연구가 역으로 그러한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례에 대한 직업병 인정의 배제기준으로 작용해왔던 것과는 또 다른 방향으로 노동자들의 건강을 지키고 적정 배치하고자 하는 건강진단이 오히려 취업에 있어서 차별과 배제의 기준이 되는 현실이라니. 또 한 번 한숨과 함께 진료실 문을 나서는 노동자의 어깨에는 벌써부터 닥쳐올 생활의 무게가 이미 천근처럼 올라앉은 듯 축 처져있었고 그의 낮은 탄식과 한숨은 무기력한 전문가의 귓전에서는 90dB을 넘어 치솟는 굉음처럼 울린다.

 

P.S. 이래저래 뒤져보니 산업안전보건법상 배치전건강진단의 의무조항이 사라졌다고 해서 회사에서 자체적인 기준을 두고 건강진단을 하는 것을 모두 불법으로 볼 수는 없단다. 특수한 상황에 따른 채용기준을 두는 것은 허용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가 특수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일지... 고용정책기본법(취업기회의 균등한 보장)이나 국가인권위원회법 등의 규정조건도 살펴봐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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