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일하다 걸리는 폐병은 쌍팔년도 얘기 아닌가요? / 2017.4

일하다 걸리는 폐병은 쌍팔년도 얘기 아닌가요?



이이령 운영집행위원, 직업환경의학전공의



저는 대학병원에서 직업환경의학 전공의를 하고 있으며, 특수 능력(?)을 가진 별종 의사입니다. 보통 병원에서 폐질환 환자들은 호흡기 내과에서 진료를 보지만, 제가 속한 병원은 대학병원 중 유일하게 직업환경의학과 의사가 진폐증 환자 진료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의사 중에서도 소규모 과를 전공하며, 특수한 질병을 가진 환자들의 주치의 경험을 가진 저는 어찌 보면 별종 의사인 셈입니다.


입원 환자의 대부분은 과거 광부나 석공으로 일하다 생긴 진폐증으로 산재 승인 받아 외래 치료를 받던 중 폐렴, 흉수, 결핵, 폐암 의심 등으로 입원하는, (서른네 살인) 저의 아버지 세대이거나 할아버지 세대인 분들입니다. 비슷한 직업력을 가진 환자들을 보다 매너리즘에 빠져들 때쯤이면, 현직의 용접공 같은 분들이 요새 들어 숨이 조금씩 차는 게 혹시 진폐증 아니냐며 외래에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정신이 번쩍 들면서 용접 흄·분진·가스 등에 노출되는 수많은 전·현직 노동자들은 과연 폐질환 진료를 어디서 받는 것일까?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이 멀어서 공단 주변 병원들에서 진료 받는 것인가? 산재신청은 하는 것일까?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됩니다.


질병에 따라 다르지만, 진폐증은 물론이고 만성폐쇄성폐질환, 간질성 폐질환, 폐암 등의 발생에 직업적인 요인이 약 15~20% 기여한다고 알고 있는데, 산재신청·승인이 험난한 우리나라의 상황을 고려한다 해도 탄광부진폐증 환자 외에 제 눈에 보이는 환자가 한참 적기 때문입니다.


샤이(?) 직업성 폐질환 환자들

작업환경측정을 위해 방문한 조선소에서 의문의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조선소는 연마 작업자, 도장공, 용접공은 물론 그 주변에서 일하며 용접 흄·분진 등에 매일 노출되는 노동자들이 많습니다. 대공장이며 노동조합 힘도 있으니 폐질환 산재 신청자가 많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오히려 거의 없었습니다. 노동자분들과의 대화 내용, 진폐증 환자 주치의를 하며 교수님들과 환자들에게서 배운 지식과 경험 등을 접목해 그 이유에 대해 어느 정도 유추해 보았습니다.


만성 폐질환은 대부분 질병 발생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며, 증상도 서서히 생깁니다. 그래서 건강한 사람이 입사하는데다가, 질병이 진행하고 있어도 한창 일하는 30~40대에는 대부분 증상이 없거나 약간의 기침·숨참이 있어도 동료들에게 꾀병 환자로 낙인찍히고, 회사에 알려져 잘리고 싶지 않아 그냥 넘기는 게 대부분입니다. 증상은 은퇴할 나이 즈음이나 은퇴한 후에나 심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미 그때는 주변에 동료 노동자도 노동조합도 없어 산재에 대한 정보도 없을 것입니다. 혹은 다른 직종으로 이직하고 나서 증상이 생겨서 생각을 못 했거나, 치료하는 병원에서 직업적인 원인을 고려하지 못해서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속한 병원에 오는 많은 탄광부진폐증 환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본인이 담배를 피웠고, 마스크를 잘 못 썼으며, 배운 게 이것밖에 없어 먼지 구덩이인 줄 알면서도 일한 것에 대한 자책이 있어 폐병은 내 잘못이려니 하며 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대기업이며 강성노조가 있다는 조선소의 사정도 이럴 진 데 중소규모 사업장, 하청노동자들, 외국인 노동자들의 상황은 더 명확해 보입니다. 요새 정치권에서 샤이 트럼프, 샤이 보수라는 말이 있는데, 대규모로 존재하나 드러나지 않는 직업성 폐질환 환자들을 샤이 직업성 폐질환 환자라고 불러야 할까요?


석면 꼴 안 나려면, 알파고 시기 신기술에 선제적 예방이 중요

과거 노출로 인한 직업성 폐질환 환자들을 드러내는 것과 동시에 흔히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현재의 산업 구조 변화에 맞춰 미래의 직업성 폐질환을 예방하려는 노력도 중요합니다. 나노 물질은 ‘꿈의 물질’로 불리며 사용이 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물질이라도 큰 입자일 때보다 나노 입자 상태일 때 인체에 더욱 유해한 물질일 수 있음에도 노출 기준 조차 부재하고, 흡입 시 건강 영향에 대한 연구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한국은 나노 물질을 사용하는 정밀화학, 제약, 화장품 제조 및 전자산업 등의 비중과 중요성이 커지고 있어 더욱 우려됩니다. 또한, 사용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3D 프린팅에 사용되는 물질로 인한 호흡기 문제도 제기되는데 이에 대한 대비는 전무한 수준입니다. 게다가 3D 프린팅을 이용한 소규모 사업장이 늘 것으로 예상하는데, 소규모 사업장이 안전보건 사각지대인 건 말하면 입 아플 정도로 잘 알고 계실 겁니다.


건강 영향에 대한 고려 없이 무턱대고 사용하다가 문제 발생 후 임기응변식 대처로 노동자·시민의 안전보건에 위협을 일으켜 ‘기적의 물질’에서 ‘침묵의 살인자’로 불리는 석면과 가습기 살균제 등의 역사를 돌아보면 산업 구조 변화 초기, 신규 물질 도입 전에 인체 건강 영향에 대한 선제적 예방 및 연구가 절실해 보입니다. 최근 관심이 증폭되는 미세먼지 대책만큼, 오히려 그보다 더 큰 비중으로 정부·산업계 등의 대책 마련이 필요합니다. 직업성 폐질환은 쌍팔년도 이야기가 아니라 알파고와 그 친구들이 많아질 미래에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귀에 드는 골병 소음성 난청 / 2017.2

귀에 드는 골병 소음성 난청



권종호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할석(割石). 돌을 나누거나 베어낸다는 뜻이다. 건설 현장에서는 잘못된 콘크리트 구조물을 해체하거나 수정하는 작업을 칭하는 용어다. 얼마 전 이 작업을 30년 해온 한 분이 배치 전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내원하셨다. 이 분의 청력은 소음성 난청 진단 기준 에 가까운 수준으로 떨어져 있었다. 콘크리트를 30 년 깨는 동안 청력이 온전히 남아있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동안 귀마개는 좀 사용하셨는지 물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써 본 적 없었다는 대답 이 돌아왔다. 그에 덧붙여 처음 일을 배울 때 그런 거 쓰면 안 된다고 배웠다는 이야기도 하셨다. 깨는 동 안 나는 소리를 들어야 어떤 부분을 깨고 있는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귀마개를 사용할 수 없는 것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귀마개를 사용하면 주파수나 귀마개 종류에 따른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략 15~25dB의 소음을 줄여주는 것으 로 알려져 있다. 어차피 귀마개를 하더라도 어느 정 도의 소리는 듣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에 소음의 크 기가 3dB만 줄어도 소음의 에너지는 반절로 줄기 때문에 청력 손상을 막는 데는 충분히 효과적일 수 있다. 따라서 귀마개를 한 상태로 들리는 소리에 익숙해지는 것이 좋다.

 

하지만 실제 노동 현장에서는 말처럼 쉽지가 않다. 귀마개를 착용하려는 노동자의 의지가 있더라도 일 에 문제가 생기고, 일이 더뎌지는 상황에서 꾸준히 귀마개 착용을 할 수 있는 노동자는 많지 않다. 더욱 더 근본적인 원인은 그 적응 기간 생기는 문제를 용 인해주는 사업주나 관리자는 더 없다는 것이다. 또 한, 잦은 착용으로 인한 외이도염, 귀 덮개 형태 착 용 시 착용 부위의 통증, 청력 둔화로 인한 안전사고 위험 등 귀마개 자체가 가지는 문제도 노동자의 귀 마개 착용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앞서 30년간 활석 작업하셨던 분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이미 30년간 귀마개를 하지 않고 할석 작업을 해온 노동자분의 청력은 떨어질 대로 떨어져 이제는 귀마개를 하는 상태보다 소음을 덜 듣는 수준이 되었다. 그분은 시끄러운 소리지만 어차피 참고 견디며 일해야 하는 줄 알고 미련하게 일한 것 같다고, 요즘엔 집에서 TV 볼륨 때문에 아내분과 말다툼도 잦아졌다고 하셨다. 열심히, 문제없이 잘 해내려고 참고 견디며 일해 온 노동자의 귀에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혼자 안고 가야 할 골병만 남은 것이다.

 

고용노동부의 통계자료인 근로자 건강진단 시행 결과를 연도별로 살펴보면 2012년 6,684명, 2013년 7,388명, 2014년 8,428명, 2015년 10,042로 소음성 난청으로 직업병 유소견자(D1) 판정을 받은 노동자의 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귀마개의 지급조차 되지 않던 옛날보다, 귀마개 착용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교육도 많아지고 충분히 지급하는 사업장도 많아졌지만 소음성 난청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는 결국 귀마개 착용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소음 사업장의 관리에 있어서는 귀마개 착용과 같은 노동자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소음 감소를 위한 공학적 개선이 꼭 필요하다. 즉, 소음 발생 기계, 기구의 대체, 시설의 밀폐, 흡음재, 덮개, 방음벽 설치 등 소음을 줄이는 근본적인 소음 관리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개인 보호구 지급보다 투자비용이 많고 밀폐, 흡음재, 덮개 등의 사용으로 인해 생산 효율의 감소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실제 시행되는 경우가 거의 없고,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한 강제도 되지 않는다. 심지어 이러한 시설 개선과 관련한 산안법 시행규칙 제120조에는 “다만, 작업의 성질상 기술적, 경제적으로 소음 감소를 위한 조치가 현저히 곤란하다는 관계 전문가의 의견이 있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소음 감소 조치를 하지 않는다).”라는 면피 문구만 버젓이 들어있다. 결국, 전혀 해결되지 않는 직업병인 소음성 난청은 여전히 자본의 논리 아래에서 노동자 개인의 책임만 강조하고 교육하고 있다.

 

2015년 기준 직업병 유소견자(D1) 중 소음성 난청이 차지하는 비율은 96.8%에 달한다. 2012년부터 95% 수준을 벗어난 적이 없다. 다른 직업병에 비해 명확한 직업병 판정의 기준이 있다는 점도 그 영향이 있겠지만 그만큼 의심할 여지없는 직업병이라는 점, 그 발생 빈도가 높고 전혀 줄지 않는다는 점은 여전히 철저한 관리가 필요한 상태라는 것을 나타낸다. 고용노동부는 이러한 소음성 난청에 대해 아무리 보호구 착용을 교육해도 안 된다고 매너리즘에 빠질 것이 아니라 소음 발생 시설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자본의 논리를 넘어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언제까지 노동자의 건강을 팔아 자본의 배를 불릴 것인가.

 

 

[의사가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젊어서 고생은 나이 들어 더 고생 / 2017.1

젊어서 고생은 나이 들어 더 고생

 


송홍석 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 향남공감의원장



우리 병원이 위치한 경기도 화성 향남지역은 근처에 기아자동차 완성차 공장이 있고, 그곳에 부품을 공급하는 공장들, 제약단지, 그 밖에 많은 영세한 공장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건강해야 할 나이에 건강과 삶이 위태로운 노동자를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환자 1.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어요.

20대 초반의 앳된 모습의 여성이다. 두 달 전부터 소화가 전혀 안 되고 뭘 먹어도 속 쓰리다며 병원을 찾았다. 식욕도 없고 두통도 생겼다. 딱 스트레스에 의한 증상이었다. 위내시경을 했는데 전날 먹은 음식이 위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통상 6시간이면 연동운동으로 비워졌어야 할 위의 운동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고, 그 원인으로는 극심한 스트레스가 있었을 것이다.

전남 순천 출신인 그녀는 고등학교 졸업 후 꽤 많은 월급에 이끌려 연고도 없는 이곳에 왔다. 현대기아차에 부품을 납품하는 꽤 잘나가는 공장에 비정규직으로 취업한 그녀는 가장 바쁜 부서에 배치되어 3교대로 근무한다. 25분 내로 식사를 마쳐야 했고, 4시간 연장근무가 밥 먹듯이 잦았다. 암막 커튼도 없는 기숙사 방안은 낮시간에 햇빛이 들이쳐 더욱더 잘 수 없다. 석 달 만에 5kg이 줄었다. 친구 만나기도 힘들고, 헬스클럽을 끊어놓고도 거의 다니지 못했다. 외동딸로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을 그녀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였다. 이 부서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다 못 잔다고 한다. 얼마 전 같은 부서의 정규직 아주머니가 오셔서, 동료가 효험을 봤다는 멜라토닌 수면제를 처방받아 가셨다. 잠을 잘 수만 있다면 약값 10여만 원이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로 그들에겐 중대한 건강과 삶의 문제다.

 

환자 2. 꿈과 희망을 찾아 떠나 온 자본주의 공화국 한국, 밤낮없는 그의 미래는?

이북 말을 쓰는 20대 중반의 젊은 남자가 두 달째 소화가 안 되고 속이 쓰리다며 진료실에 들어왔다. 위내시경을 해봤지만 역시나 젊은 사람답게 별것 없었다. 이런 경우 대부분 스트레스 때문이다. 함경북도 무산 출신인 그는 작년에 남한으로 왔다. 돈벌이의 선택지가 많지 않아, 밤 근무가 힘들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경기도 평택의 작은 철강회사에 입사했다. 주야 맞교대로 일한 지 두 달도 안 되어 탈이 났고, 밤 근무에 적응이 안 된다고 호소했다. 암막 커튼을 쳐도 밤 근무 때는 2시간 밖에 못 잔다 한다. 주간근무 때도 피곤하다. 새벽 5시에 집을 나서 라면으로 아침을 때우고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일한다. 안쓰러웠지만 증상을 개선하는 약물치료 말고 더 할 것은 별로 없었다.

몇 달 후, 그가 다시 찾아왔다. 그동안 속이 편해서 오지 않은 게 아니었다. 제때 병원 오기가 힘들어 약국 약만 먹으며 지냈고, 여전히 수면 부족에 시달렸다. 젊어서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직장을 비롯한 스트레스가 많아 힘들다고 토로한다. 친구도 시간이 안 맞아 만나기 힘들어 외롭다고 한다. 수면을 도와줄 신경안정제와 수면제를 추가로 처방하는 것 외에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꿈과 희망을 찾아 떠나 온 밤의 공화국 대한민국에서 그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환자 3. 젊어서 고생은 나이 들어 더 고생

당뇨가 있는 40대 남자가 병원을 찾았다. 식후 혈당은 300이 넘었고, 지난 3개월의 혈당 조절을 판단할수 있는 당화혈색소 검사에서도 그동안 조절이 전혀 안 되었던 것으로 나왔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나이 들어 당뇨 합병증으로 온갖 고생은 다 한다고, 운동 같은 혈당조절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유리생산 설비의 프로그램업무를 하는 그는 아침 830분부터 오후 9시까지 일한다. 나는 운동은커녕, 쉬기에도 벅찬 그의 노동시간에 안타까움을 내보였다. 그러자 그는 6시에 퇴근하는 매주 수요일엔 시간을 낼 수 있다며 자존심에 생채기를 내기는 싫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아무리 장시간 일을 시켜도 매주 수요일은 정시 퇴근하는 날로 두는 사업장이 많긴 한 것 같다. 매주 수요일 정시퇴근제가 강제하는 현실을 보면, 정시 퇴근제를 주 2회로 늘리자는 사회적 캠페인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2012년 대선 당시 화제가 됐던 어느 후보의 슬로건 저녁이 있는 삶이 지금도 그가 등장할 때면 아이콘처럼 신문 지상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 노동시간, 심야노동 문제는 그 자체로 삶을 규정하는 중요한 문제다. 이제 그것은 우리 일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행해져야 하고, 정시 퇴근제, 노동시간 상한제, 휴일근로에 대한 법적 제한을 우리가 말해야 한다

 

 

[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내가 들고 있는 촛불, 그리고 연대 /2016.12

내가 들고 있는 촛불, 그리고 연대



양민재 회원, 내과 전문의



저는 대학병원 소화기내과에서 진료 조교수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저의 전공은 담도 결석, 췌장염, 담도/췌장암이고 이 환자들을 진단하고 치료하기 위한 췌담도 내시경을 하는 것이 저의 주된 일입니다. 저는 환자를 책임지는 주치의임과 동시에 은퇴를 앞두신 스승님께 아직 시술 노하우를 더 배워야 하는 미생의 신분이고 전임 교수가 되기 위해 학문적 업적도 내야하고 재계약을 위해 진료 실적도 쌓아야 하는 자기 만족도가 높지 않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게다가 제 전공인 췌담도 치료 내시경은 시술의 난이도가 높고 시술 관련된 합병증이 많아서 항상 스트레스와 긴장 속에서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습니다. 처한 현실이 이렇다 보니 아내와 자식들에게도 좋은 가장은 못되고, 연구소에서는 불러도 대답 없는 불량 회원인지 오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것은 시술을 통해 생과 사를 넘나드는 환자들을 구할 수 있다는 보람과, 제게 어려운 일이 생길까 봐 제가 시술하고 있을 때는 밤에도 집에 못 가셨던 환갑이 넘으신 스승님에 대한 의리와, 이미 이 일을 해 온 시간들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자신을 더 믿을 수 있게 되고, 만나는 환자들과의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통해서, 어려서부터 배우고 외쳐왔던 이상적 가치들을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해야 하는 것인지,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주치의로 입원 환자를 받은 2년 동안 가장 기억에 남았던 환자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60대 후반 환자였고 10년 전 딸이 한국으로 시집을 오게 되면서 함께 들어온 조선족 여성이었습니다. 오산에 살면서 주로 식당 보조를 하며 생계를 꾸렸는데, 수개월전부터 허리가 아팠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파스를 붙이며 통증을 참고 지내다, 눈이 노래지고 소변이 짙어지는 황달 증상이 동반하면서 저희 병원에 내원하였습니다. 영상 검사 상 수술이 불가능한 췌장암이 진단되었습니다. 일차적으로 암으로 막힌 담도에 철망을 삽입하여 황달을 해결하고자 췌담도 내시경을 시행하였는데, 제 시술 구력이 부족하여 한 시간 동안 시술을 성공하지 못했고 스승님의 도움을 얻어서 어렵게 시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게 되었습니다.


환자는 시술 이후 황달과 통증이 호전되면서 저를 은인으로 생각하며 의지하셨고, 이후 종양 내과에서 항암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도 저를 만나러 오실 때면 항상 곱게 화장을 하시고 음료수 박스를 들고 오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환자는 심한 구토와 탈수 증상으로 응급실을 내원하였고 CT상 췌장암의 크기가 증가하면서 십이지장을 침범하여 십이지장이 막힌 소견을 보였습니다. 십이지장을 뚫기 위한 철망을 추가로 삽입하여 식사를 할 수 있게 주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이 시술은 스승님을 보조해서는 많이 시행했지만 제가 시술자로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상황이었고, 제 스승님은 해외 학회를 가신 상황이었습니다. 저를 너무나 믿고 있는 환자에게 닥친 위기의 상황에서 도저히 자신이 없다는 이야기는 할 수가 없었고 저를 믿으시라고 당부를 하고 시술을 들어갔습니다. 교회는 안 다니지만 하느님께 기도를 하고 시술을 시작하였고, 스승님과 함께했던 시술들을 기억하면서 한 시간 동안 종양과 싸운 끝에 운이 좋게도 십이지장을 뚫고 철망을 삽입하여 환자의 증상을 호전 시킬 수 있었습니다.


환자는 이후에 담도 철망이 막히고, 십이지장 철망이 다시 막혀서, 재 시술을 한 차례씩 더 하였고 이후로는 체력이 좋지 않아 항암치료는 할 수 없었지만 잘 기능하는 담도 철망과 십이지장 철망의 역할로 돌아가실 때까지 굶지 않고 영양 상태를 유지하면서 지내실 수 있었습니다. 돌아가시기 직전 저에게 다시 입원을 하셨는데, 대학병원 입장에서 급성기 치료가 끝나고 임종이 임박한 환자들은 근처 호스피스 병원이나 요양병원으로 전원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부족한 저를 만나 위기의 상황들을 겪어 왔던 환자에 대한 애틋한 마음, 그렇게 저를 좋아하신 분이었는데 저를 보아도 말조차 잘 못하는 환자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에 차마 전원을 하지 못했고 사유서를 몇 차례 쓰면서 한 달을 지낸 후, 환자를 하늘로 보내드렸습니다. 환자를 처음 만난 지 15개월만이었습니다.


환자와 함께한 세월 동안 제가 하고 있는 일의 무게를 참 많이 느꼈고, 부담스럽지만 극복하는 방법도 배웠으며 정서적인 공감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 나이는 37세이고 현장, 운동, 변혁, 투쟁, 연대라는 말들을 처음 들은 지 17년 정도 지난 것 같습니다. 매우 광범위한 개념을 내포하고 있고 일정 부분 정치적인 용어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이 단어들을 받아들이게 되고 개개인이 스스로 정의를 내리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에게도 아직 미완의 과제이지만, 저는 제가 살아가는 이 공간이 죽음과 고통이 일상인 치열한 현장이라고 생각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시술자로서 연구자로서 주치의로서 부단한 저의 노력이 세상을 향한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환자들과 가족들의 삶을 공감하고 굳건히 지켜주는 것이 훌륭한 연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항상 한노보연 회원, 후원회원, 일터 독자 여러분들의 삶이 평안하시길 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어느 하청 노동자의 건강 /2016.11

어느 하청 노동자의 건강

 

장영우 선전위원, 내과전문의


 

저는 올해 2월부터 서울 중랑구 면목동에 위치한 300병상 규모의 녹색병원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주로 보는 내과환자들은 대부분 노인환자로 여러 질환을 가지고 있고, 제 역할은 입원환자나 외래 환자의 당뇨, 고혈압, 심부전 등 만성질환을 관리하도록 도움을 드리는 일입니다.

 

며칠 전 50대 초반의 한 남자가 진료실에 들어왔습니다. 병원에 오게 된 이유를 간단히 이야기하면 이 노동자는 목포 조선소에서 하청업체에서 7년간 일했다고 합니다. 정확히 어떤 일을 했는지는 물어보지 못했으나, 7년이라는 적지 않은 기간 동안 일했고 중간 관리자도 했다고 합니다. 관리자면 몸은 덜 쓰지 않느냐물었더니 관리자였지만 직원들이 야간작업, 휴가 등 손이 모자라는 시간에는 이른바 땜빵일을 주로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노동시간도 불규칙하고 노동 강도도 만만치 않았다고 합니다.

 

한편, 이 노동자분은 올해 5월 갑자기 가슴이 아프고 식은땀이 나는 등 평소에 없던 증상이 나타나서 근처 목포 병원에서 영상 검사를 했다고 합니다. 검사 결과 이상이 없으니 집에 가도 된다고 했는데 얼마 후 그런데 얼마 후 혈액검사에서 심근경색이 의심되니 빨리 큰 병원으로 가라는 소견을 들었다고 합니다. 목포의 더 큰 병원에서 혈관조영술 검사를 받은 결과 혈관연축성 협심증(혈관연축성(이형협심증, variant angina) : 휴식 시에 발생하는 비전형적 흉통증후군으로 관상동맥의 동맥경화에 의해 발생하는 일반적인 협심증과는 달리 관상동맥 연축으로 관상동맥의 내경이 일시적으로 급격히 감소하여 심근허혈을 일으키는 질병. 내피세포기능이상, 산화 스트레스 등이 연축의 기전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이 밝혀져있지는 않고 흡연, 음주와 연관이 많다.)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정기적으로 약물을 복용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혈관조영술을 받고 약을 먹고 있지만 오히려 어깨가 더 아픈 것 같고 일을 한 다음에는 손, 발이 더 붓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한편, 최근에는 조선업이 불황이다 보니 목포에서 더 이상 일을 못하게 되었고 최근에 상경하여 인력시장을 전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익숙하지 않은 일을 하려다 보니 몸은 더 힘들고, 일하다 어지럽기도 하고 전보다 힘이 더 들게 느껴지는 것 같다고 합니다.

 

이 노동자분이 제게 우선 혈관조영술이 심장에 나쁜 영향을 주어서 펌프질이 잘 안되니까 몸이 힘든 게 아니냐고 질문하였습니다. 하지만 쉴 때는 어떠냐고 물으니 작업을 하지 않으면 몸의 여러 증상이 호전된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검사목적의 혈관 조영술이 합병증을 일으키는 경우가 흔하지 않고 합병증을 일으키더라도 검사 도중이나 검사 직후 발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관련성이 떨어진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혈관연축성 협심증으로 산재가 가능할지 다시 질문하였습니다. 스트레스로 인해 뇌혈관질환이나 심혈관질환이 산재로 인정될 수도 있다는 판례는 여러 번 본 적이 있습니다.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이 업무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더라도 업무상의 과로나 스트레스가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에 겹쳐서 질병을 유발 또는 악화시킨 경우 그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례입니다.

그렇지만 근로복지공단에서는 뇌심혈관질환의 대상 질환으로 뇌실질내출혈, 지주막하출혈, 뇌경색, 심근경색, 해리성 대동맥류로 뇌 또는 심장혈관이 막히거나 터져서 발생하는 질환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위 질환들은 생명을 위협할만한 중대한 질병에 해당합니다.

 

물론 협심증이라서 산재신청이 안된다고 잘라서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협심증은 진단 이후에 관리 또한 중요한 질병입니다. 진단 이후에 금연이나 혈압조절, 고지혈증 관리를 통해서 일상생활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분께 현재로서는 산재판정이 쉽지 않을 것 같고 산재신청을 하려면 우선 의무기록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 첫 번째 순서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더불어 꼭 금연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노동자의 말처럼 서울에 와서는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사는 처지인데 건강관리가 제대로 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시간을 많이 들여서 충분히 상담을 했지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었습니다.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신규 병원노동자 이야기 /2016.10

신규 병원노동자 이야기
– 배우며 일하는 노동

 

 

 

김형렬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근무를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난 종합병원 외과병동에 신입 간호사가 외래에 들어 왔다. 수면건강을 평가하는 설문도구의 점수가 매우 높았다. 이제 막 병원에 들어와 한 달에 6-8일 가량 야간 근무를 하는데,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수면장애가 없는 경우가 거의 없다. 야간 근무를 해야만 한다면 효과적인 적응을 위해 수면위생과 관련된 설명을 한다.

 

최근 “예방적 수면”, 혹은 “쪼개어 자기”라고 해서, 야간 근무 후에 아침에 퇴근하고 바로 수면을 취한 후 낮 1시 혹은 2시에 일어나 일상생활을 하고, 밤에 일하러 가기 전에 1-2시간 정도 수면을 취하고 가는 방법에 대한 연구 결과들이 발표되고 있다. 이렇게 예방적 수면을 취하면 밤 근무 때 멜라토닌 분비를 늦추고, 덜 졸리게 되고, 더불어 아침에 집에 가서더 깊은 잠을 잘 수 있게 된다는 설명이다.

 

“야간 근무하고 나면 아침에 몇 시에 퇴근을 하나요?” “솔직히 말해도 돼요? 보통 12시에 퇴근해요.”“야간근무 끝나고……. 그러니까 인계 시간 이런 거 있는 거 아는데, 보통 1시간 정도인걸로 아는데……. 12시까지 일을 하는 거예요?” “네……. 제가 아직 많이 부족해서 그래요.”

그렇게 말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예방적 수면을 이야기 하는 건 불가능한 근무조건이었다. 그 이후로 우울감을 묻게 되었고, 이와 관련한 심각한 상황을 확인하고 정신건강 상담과 치료를 권고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상황은 이렇다. 최근 병원은 간호사들의 노동 내용과 강도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환자들에 대한 안전문제, 감염관리 등에 대한 책임이 강화되었고, 병원 경영 측면(?)에서 환자들의 입/퇴원도 잦아졌다. 이를 병상회전율이라고 하는데, 환자들이 초기 입원 시 지불하는 금액이 높다는 점 때문에 병상회전율이 높은 병원일수록 병원의 수익은 높아진다. 한 명의 환자를 입원, 퇴원 시키는 일이 간호사 업무의 힘든 정도를 반영하는 중요한 지표인데, 이렇듯 환자의 입퇴원이 잦아지는 것은 간호사 업무를 가중시키고 있다. 어느 현장에서나 그렇듯, 일은 늘어났지만 인력은 그대로이다.

 

이직률이 어느 직종보다 높다고 알려진 병원의 간호사 일은 언제나 신규직원들이 많다. 신규직원이 많다고 그날 해야 할 일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일의 효율을 위해 신규 간호사가 맡아야 할 일의 상당 부분을 몇 년간의 경험이 있는 간호사가 맡게 된다. 당연히 일이 서툴고 속도가 느린 신규간호사는 자기 일을 대신 처리해주는 선배 간호사들을 대신해서, 다른 노동을 부가적으로 더 처리하고 퇴근을 한다. “물품관리, 장부정리, 기초 행정처리” 등, 시간압박을 덜 받는 일들을 퇴근을 하고 나서도 해야 한다. 물론 이런 노동에 대한 임금은 지불되지 않는다.

 

이런 병원 환경에서 신규직원을 배려하지 않는 기존 직원들에 대한 비난만을 할 수는 없다. 어떻게든 일은 돌아가야 하고, 그 일은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일이라는 이유로 효율(?)적인 업무분장과 초과노동을 하도록 강요한다. 어렵게 취업에 성공했지만, 신규 직원에 대한 배려는 없다. “회사는 배우는 곳이 아니라 일하는 곳이다.”하고 말하며 능력이 안 되면 시간으로 때우라고 이야기 한다. 누구나 신규 직원이었을 때가 있었고, 그때 어떤 것이 힘들었는지 기억을 꺼내 보자. 그때 나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했는지…….

 

능력 있는 선배의 모습을 보며, “나도 시간이 지나면 이곳에서 저렇게 성장할 수 있겠구나” “일은 힘들지만, 선배들이 잘 챙겨줘요.”, “신규직원이라고 해도, 우리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통로가 있어요.”, “제가 돌봤던 환자가 건강하게 퇴원하는 걸 보면 힘들었던 것도 다 잊게 돼요.” 이런 말들을 들은 지 너무 오래되었다.

 

“시간이 지난다고 이런 허드렛일 하며 과연 선배처럼 될 수 있을까?”, “선배들도 하루하루 사는 게 전쟁인데, 말 붙이기도 힘들어요.”, “1년을 버티고 야간근무하며, 희망을 찾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다른 데 갈 곳이 없어서 남아있죠. 신규 직원들이 자기 이야기 하는 건 불가능이에요. 누구에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요.”, “환자들 보면 잘해야지 생각하다가도, 저도 살아야 하잖아요. 그냥 일이죠.” 이제 이런 말들을 주로 듣게 되었다.

 

노동의 효율적 배치, 수익의 창출, 구조조정……. 이런 용어들이 환자를 돌보는 병원에서도 일상적으로 듣는 말이 되었고, 이 과정에서 신규 직원들의 “노동”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망가뜨리고 있다.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밤을 잊는 그대에게 /2016.8

밤을 잊은 그대에게



권종호 선전위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밤을 잊은 그대에게' 1964년 5월 첫 방송을 시작해 현재까지 50년 넘게 같은 시간, 같은 이름으로 방송되는 장수 라디오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음악과 함께 흘러나오던 "밤을 잊은 그대에게~"라는 멘트는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공부 때문이건 이런 저런 고민 때문이건 모두 잠들었을 시간에 혼자 남은 외로움을 누군가 알아주고 있다는 뉘앙스가 큰 위로가 되었던 것 같다. 


밤잠이 많아서 지금 저 방송을 듣지는 못하지만 요즘 나는 매일 진료실에서 저 멘트를 되뇌이게 된다. 하루에도 몇 십 명씩 '밤을 잊은 그대'들을 만나기 때문이다. 2014년 1월부터 '야간작업'에 대한 특수건강검진이 실시되면서 교대근무와 관련된 건강 영향이 조금이나마 체계적으로 관리되기 시작했는데 그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볼까 한다.


여러 통계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교대근무 노동자는 전체 임금 노동 인구의 10~15% 정도를 차지한다. 하지만 이들 중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심야 택시, 버스 운전기사, 밤을 새며 운송하는 트럭 운전기사, 대리 운전기사 등은 아직 특수건강검진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특수건강검진을 통해 만나게 되는 교대근무 노동자는 주로 경비 및 보안 업체 노동자, 교대근무가 있는 제조업 노동자, 호텔 등 숙박업 노동자, 건물 미화 및 시설 관리 노동자들이다.


얼마 전,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청년이 진료실에 왔다. 진료실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보안업체 노동자였다. 생애 첫 직장으로 6개월간 교대근무를 해왔다고 했다. 이제 6개월이면 한창 교대근무에 적응 중이라 힘든 시기일 텐데 잠자는 건 좀 어떠냐고 물었다. 아니나 다를까 많이 피곤하고 힘들다고 했다.


야간근무 중에 잘 시간은 좀 있냐고 물었다. 사업장, 근무 일정 등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야간근무 중에 사이잠을 보장해주는 사업장들이 있기에 물어봤는데 다행히 2시간 정도가 주어진단다.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그 때라도 꼭 챙겨 자라고 했더니 그 다음 한마디가 너무 충격적이었다.


"일을 하라고 월급 받는데 그 시간에 자면 안 되죠. 양심적으로 근무 중에 잠자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해줄 말이 너무 많았지만 야간 근무 중 휴식은 꼭 필요한 거고 건강을 위해 당연한 권리니 잘 수 있는 한 충분히 챙겨 자라고 해주고 문진을 마무리했다.


2002년 노동부는 '교대근무자 건강을 위한 9대 작업 관리 권고 지침'을 만들었다. 이 내용에는 야간작업 중 사이잠 및 수면 공간 제공을 포함해 고정적 혹은 연속적 야간교대 축소, 2교대 근무 금지 등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건강을 위해 보장되어야 할 최소한의 기준이 담겨져 있었다. 


민주노총은 당시 성명서를 통해 보장 수준 강화와 벌칙 조항을 포함하는 시행령 수준으로 격상할 것을 요구했지만 경제부처와 재계의 반대로 권고안 조차 빛을 보지 못했다. 2011년부터 이와 관련된 내용을 산업안전보건공단의 '지침' 수준으로 권고하고 있긴 하지만 강제력이 전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업장마다 교대근무 조건에 큰 차이가 있고 노동자들은 2교대 근무나 야간 고정 근무를 종용하는 사업장, 아침 교대시간이 새벽인 사업장, 사이잠 시간 및 공간이 전혀 없는 열악한 조건의 사업장에서 하소연할 곳 없이 견디다가 결국 너무 힘들어 그만두게 되는 현실이다.


'좋은 교대제'란 없는 것이기 때문에 교대제를 폐지하거나 그게 지금 당장 어렵다면 좀 더 '나은' 교대제를 마련해야 함에도 아직까지 교대근무에 대한 제도적 규제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다행히 야간작업이 직업적 유해인자로 여겨져 특수건강검진의 영역에 들어오긴 했지만 이는 좋지 않은 교대근무로 나타날 수 있는 건강 문제를 확인하고 일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에 불과하다.


실제로 고정 야간근무만 가능한 사업장에서 고통 받는 노동자에게 주간 근무로 전환은 퇴사 권고나 마찬가지이고 새벽에 교대하는 형태, 연속 야간 근무를 장기간 하는 형태 등을 전체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권한도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은 제도적 차원의 접근이 절실하며 좀 더 나은 교대근무 형태를 강제하는 규제를 필요로 한다. 야간작업 특수건강검진은 이러한 규제의 면죄부가 아니라 규제를 위한 디딤돌로 잘 활용되어야 한다.


조금의 위안이라도 되길 바라는 마음인지, 고된 교대근무 일정을 들으며 저절로 나오는 한숨인지. 여전히 진료실에서 '밤을 잊은 그대에게'를 되 뇌이고 있다. 수많은 '밤을 잊은 그대'들의 건강한 노동을 위해 야간작업 특수건강검진으로 교대근무자의 건강권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고 제도 확립의 기초가 마련되길 기대해 본다.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귀족노동자?의 실체 /2016.8

귀족노동자?의 실체



김정수 (사) 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 향남공감의원 원장



작년 9월에 개원한 우리 병원 인근에는 K자동차 공장이 있다. 이 공장에서 일하는 정규직 노동자들은 일부 언론에서 종종 '귀족노동자'로 불리곤 한다. 


작년 말 한 노동자가 우리 병원을 찾았다. 이 공장에서 10여 년간 일한 30대 후반의 남성 노동자로, 우측 어깨에 통증을 느껴 찾아간 병원에서 회전근개 파열이라고 진단을 받고 산재 처리가 가능할지 (업무 관련성 소견서 발급이 가능할지) 상담 차 내원한 것이다. 혼자 오신 것이 아니고 노동조합 담당자와 함께 오셨다. 


진단이 비교적 명확해서 작업 공정상 어깨 부담 작업이 어느 정도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면 가능할 것 같았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점은 이 분이 어느 한 공정에서만 일했던 것이 아니라 부서 내 20개쯤 되는 공정에서 번갈아가며 일을 했던지라 전체 공정을 다 뒤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두 달 뒤 이 분이 다시 병원을 찾아 왔다. 이번에는 같은 부서에서 일하는 형님과 함께 오셨다. 일하는 부서 내 전체 공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각 공정에 어깨 부담 작업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각 공정에서 언제부터 언제까지 일했는지 등에 대해 사진까지 첨부해서 아주 자세히 정리해 오셨다. 함께 오신 분의 도움을 받아 정리하신 것이라고 했다. 


정리해온 자료를 다시 한 번 정리해서 업무 관련성 소견서를 작성했고 올해 1월 산재 신청을 했다. 4월에 산재 승인이 났고, 두 번의 연장 신청이 받아들여져서 8월 말쯤 종료 예정으로 현재 열심히 치료 중이다. 


이 분과 함께 산재를 신청하고, 승인받고, 치료하는 과정에서 '귀족노동자'의 실체를 좀 더 정확히 알게 되었다. 병원에 처음 오셨을 때 이 분은 산재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조합원들이 일하다가 다치거나 아팠을 때 필요하면 산재 처리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노동조합과 산재에 대해 좀 아는 직장 동료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산재 신청조차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다행히 산재 승인을 받았지만 처음 진단받았을 때부터 산재 승인까지 6개월이 걸렸으나 이 기간은 그나마 짧은 편이다. 나중에 전해 들은 얘기인데, 같은 부서 내에 아픈 분들이 또 있는데 잘 몰라서 혹은 회사의 눈치가 보여 그냥 적당히 개인적으로 치료받고 마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고 한다. 


산재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산재를 신청하려고 해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헤매다 보면 산재 승인을 미끼로 접근하는 각종 브로커에게 당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산재를 신청하더라도 승인되는 경우보다 불승인되는 경우가 많고, 그런 경우 이중 삼중으로 고통을 겪게 된다고 한다. 


회사에 찍히고, 브로커에게 돈 뜯기고, 동료들에게 꾀병 환자로 낙인찍히고... 노동조합도 없는 영세 사업장 노동자 얘기가 아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기업, 강성노조로 유명한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얘기다. 


이들에게 '귀족'이라는 수식어가 과연 온당한 것인가? 일하다가 다치거나 아팠을 때 제대로 치료받을 권리, 무슨 특별한 권리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권인 이 권리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귀족'이라니... 게다가 '귀족'이라고 불리는 노동자들의 처지가 이러한데, '평범한' 노동자들의 처지는 어떨까? 생각하면 그저 답답할 뿐이다. 


이런 막막한 현실 속에서 이 분이 산재로 요양하면서 열심히 치료에 전념하며 건강해질 수 있었던 것은, 조합원들이 일하다가 다치거나 아팠을 때 필요하면 산재 처리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노동조합(단결)과 산재에 대해 좀 아는 직장 동료(지지)와 우리의 도움(연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괄호 안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당신 탓이 아닙니다 이제 그 기억을 놓아주세요 /2016.6

 당신 탓이 아닙니다 이제 그 기억을 놓아주세요

- 칠순 노동자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류현철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회원



머뭇머뭇 지인의 손에 이끌려 상담실 문을 들어선 칠순의 노동자. 단정한 옷매무새와 차분한 말투, 오랜 시간을 두고 일터에서 그을려 온 특유의 구릿빛 얼굴과 미간을 가로지르는 세월의 주름, 거기에 더하여 뭔가 짐작하기 어려운 무거움과 어둠이 더해진 낯빛. 내 아버지 세대의 노동자와 마주한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노동을 시작했을 그가 아들뻘의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를 찾아온 사연은 무엇일까? 한자리에 머물지 못했던 시선이 조금씩 내 시선과 마주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아직 어색했지만, 언뜻 엷은 미소가 깊은 주름으로 굳어진 미간을 부드럽게 풀어주니 진즉부터 가지고 계셨을 듯한 순박하고 인자한 표정이 비친다.  


"1년 반쯤 되었나 봅니다. 처음 그 일이 벌어진 것이..." 그는 차분했지만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곧장 공장에 취업했다. 8명이 일하는 조그마한 단조 공장에서 그는 고무공장에 납품하는 가위를 만들었다. 10시간이든 11시간이든 열심히 일했다. 나이를 먹고 결혼을 하고, 아들 하나 딸 하나를 얻었다. 그리고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해서, 아니면 운이 좋아서 일하던 공장을 인수했다. 직원이 10명도 안 되는 작은 공장이었지만, 풍족하지 않아도 괜찮은 삶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IMF 경제위기를 넘어설 재주는 없었다. 공장은 폐업했고, 다들 퇴직한다는 55세에 임금 노동자가 되었다. 피혁 공장에서 일을 다시 시작했는데 그곳이 3년 만에 폐업하면서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그러다 10년 전부터는 주물공장에서 일했다. 시끄럽고, 덥고, 주물사와 로(爐)에 날리는 분진과 흄에 뒤덤벅이 되었지만, 환갑을 넘긴 그에게 허락되는 일자리는 그런 자리였다.


주물공장을 이곳저곳 옮겨 다니면서 그가 하던 일은 중자(심지, core)를 만드는 일이었다. 주물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쇳물을 부어서 모양을 만드는 외부 주형과 만들어질 제품의 내부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미리 주형 안에 만들어 넣어두는 중자가 필요하다. 1년 6개월 전 그 일이 벌어진 것은 그 공장에서 일한 지 2년 정도 되었던 어느 겨울이었다. 일요일이었지만 늘 그랬듯이 일을 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다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고가 났다. 


그가 만든 중자가 주형과 합체되어 쇳물을 부을 틀을 완성하기 위해 크레인으로 들어 옮겨지다가 아래로 추락한 것이다. 이상하게 그 공장은 크레인이 높이 달려서 불안 했는데, 기어코 사단이 났다. 떨어진 중자 아래로 동료 노동자가 깔려서 사망했고, 그는 처참해진 동료의 시신을 수습했다.  나이가 많이 어려서 그와 자주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알고는 지냈다는 사망 노동자는 61세였다. 처참한 광경은 잊히지 않았고 꿈에 계속 나타나서 그를 괴롭혔다. 사고 현장에 가면 가슴이 떨려 일을 할 수 없었다. 며칠을 쉬다가 업무가 바쁘다고 해서 다시 출근했지만, 업무에 집중할 수 없었다. 


결국, 회사를 그만두었다. 하지만 그날 일은 그를 계속 괴롭혔다. 하릴없는 심정을 달래려 기도하러 다니던 절에 부탁해 자비를 들여 사망한 동료의 천도재를 지냈다. 이렇게라도 하면, 극락왕생을 빌어주면 이 심경이 나아질까 싶어서였다. 그래도 자리에 누우면 처참한 광경이 떠올라 잠을 잘 수 없었고 무기력했고, 집 밖으로 나가기도 싫었다. 10개월 동안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다시 일을 시작해야 했다. 10년 전 주물 일을 처음 시작할 때 알게 되어 동갑내기라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일자리를 알아봐 주었다. 


그런데 다시 일을 시작한 지 1개월이 지난 겨울 어느 날, 갑자기 현장이 소란스러웠다. 지게차 사고가 난 것이다. 그를 일터로 다시 불러준 조형 반에서 일하던 친구가 쓰러졌다. 운행하던 지게차에 찍혀 흐르기 시작한 피는 멈추지 않았다. "처음에는 의식도 있었고, 그렇게 갈 줄은 몰랐지요. 내게 왜 자꾸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요?" 지게차 사고로 쓰러졌던 칠순의 동갑내기 친구이자, 동료 노동자는 결국 과다출혈로 사망했고, 1년 간 일터에서 두 번의 죽음을 경험한 그는 더는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칠순을 넘긴 나이, 세상사 웬만한 풍파는 겪고 넘어온 그에게도 지난 2년 동안 두 번이나 겪어야 했던 끔찍한 경험은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는 전형적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고통 받았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는 신체나 정서상의 심각한 손상 (외상, 트라우마)을 입은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그것에 대한 공포감이나 부정적인 감정이 계속 고통스럽게 회상되고, 재경험 되고, 유사한 상황과 조건을 회피하고 때로는 지나친 각성상태나 반대로 지나친 위축이 계속되는 것을 뜻한다. 최근 업무와 관련하여 발생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하여 산재로 인정할 것을 명문화한 바 있다. 자신의 경험과 증상이 무엇에 연후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산재요양 대상이 되는지도 몰랐으나 세상일에 밝은 또 다른 친구의 권유로 나를 찾았다. 이후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을 받고 산재 요양신청을 하기로 했다. 그는 아들 뻘의 의사에게 연신 고맙다 인사했지만 나는 미안함이 더할 뿐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참혹한 전장에서 돌아온 군인들의 사회 심리적 병리를 다루는 과정에서 자리 잡은 질환이다. 그런데 매년 9만 명이 넘는 노동자가 병들고 다치고 2천 명이 죽어가는 오늘 우리 사회의 일터는 참혹한 전장과 다름없다. 노동자들은 또 쓰러지고 죽어간다. 화가 난다. 다들 그렇게 열심히 일했고 그렇게 다치고 스러져 갔다. 


는 죽게 내버려 두지 말아야 한다. 최근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어이없는 산재사고로 세상을 등지게 된 19살 노동자에게 수많은 시민이 애도와 공감을 남기고 있다. 이제 애도와 공감을 넘어서야 한다. 지금의 어이없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악의 면면을 보라! 죽음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시스템을 멈추는 행동이 같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야만 나도 이런 메모 한 장이라도 전해줄 수 있지 않겠는가?

[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나의 그녀들에게 /2016.5

나의 그녀들에게

 

 

 

 

조이 회원, 산부인과 전공의

 

 

 

 

저는 강남의 한 대형병원에 근무하는 산부인과 전공의입니다. 산부인과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여성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생명탄생의 순간에 대한 경외심이 대부분이었다고 기억합니다. 그러나 산부인과 의사로 산다는 것은 생명 탄생을 돕는 것보다 훨씬 다양하고 수많은 사연의 그녀들을 만나는 일이었습니다. 산부인과 주치의로 첫 산모의 출산을 지켜보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지만, 지난 몇 년 간 대학병원에서 지내며 마음속에 오랜 고민으로 남은 그녀들은 따로 있습니다.

 

A씨는 50대의 난소암 환자였습니다. 그녀에게는 지극정성으로 병수발을 들어주는 남편이 있었습니다. 수술과 항암치료를 마치고 지내던 중 암이 재발하였을 때 담당 교수는 그녀에게 경제적 여유가 되는지를 확인했고 돈이 얼마가 들던 뭐든 할 수 있다는 그녀의 남편의 강력한 지지에 힘입어 표적치료제 치료를 시작하였습니다. 얼마 전 외래에서 만난 그녀는 조금 야위었지만 성공적인 두 번째 항암을 마쳤고 여전히 남편과 함께였습니다. 언젠가 암이 재발할 수 있겠지만 그녀 곁에는 늘 최고의 지원자가 있을 것이고 물심양면으로 지지하는 가족들이 있을 것입니다.

 

B씨는 60대의 자궁경부암 환자였습니다. 그녀가 수술을 위해 입원했을 당시 보호자라고는 사촌언니 뿐이었습니다. 그녀의 차트에는 그녀가 기혼이고 아들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었지만 가족들을 만나볼 수 없었습니다. 수술 후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지만 그녀는 퇴원 이후 다시 오지 않았습니다. 그녀를 다시 만난 건 1년 후, 그녀는 암이 재발하여 복수 때문에 부른 배를 부여 잡고 온 얼굴에 멍이 든 상태였습니다. 상담을 진행하며 그녀로부터 폭력적인 남편이 있었고 항암치료를 위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그녀가 그 몸으로 일을 계속 해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몇 달 간의 치료가 끝나고 그녀는 다시 일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의 소견서를 요구했습니다. 그럴 상태가 아니라고 일을 쉬어야 한다고 소견서를 써줄 수 없다고 하자 그녀는 일을 하지 못하면 돈을 벌 수 없다고 이미 치료를 위해 빚을 졌고 그걸 갚아야 한다며 울었습니다. 그녀는 재발 가능성이 커서 꾸준히 외래에 다녀야 했지만 그때 이후 그녀를 볼 수 없었습니다.

 

사실 A씨를 보면서 많은 고민이 드는 것은 아닙니다. 그녀는 치료도 성공적인 편이고 든든한 가족의 지원이 있어 암환자들 중에서 운이 좋은 편에 속합니다. A씨를 생각하게 되는 것은 B씨와 같은 환자를 마주할 때 입니다. B씨가 A씨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B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생각하게 됩니다.

 

치료를 결정하는 것은 의사의 몫이 아닙니다. 의사가 최선의 치료를 권할 수는 있지만 결국 치료를 선택하는 것은 환자의 몫입니다. 문제는 이것이 의지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데에 있습니다. 경제적인 뒷받침이 중요합니다. 진단 당시의 경제적 상태, 치료 과정 중 지속적으로 경제적 지원이 가능한지에 따라 환자는 의료진이 권하는 최선의 방법을 선택할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녀들은 목숨을 위협하는 거대한 질병의 파도앞에서도 경제적 상황과 타협합니다. 시스템앞에서 개개인일 뿐인 의사가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은 크지 않습니다. 아프면 누구나 치료받을 수 있는 사회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고 해도 누구나 똑같이 최선의 치료를 받을 수는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매일매일 그러한 현실 속의 그녀들을 마주하며 그녀의 질병을 규정하는 것은 의학적인 상태만이 아니라 그녀를 둘러싼 주위환경과 그녀의 조건들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앞으로 그녀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과연 어떤 의사로 살 것인지 고민해봅니다. 일에 치어 바쁘게 사느라 잠시 내려놓았던 고민들을 다시 일깨워주는 나의 그녀들에게 감사합니다. 이제 고민을 좀 더 구체적으로 해 볼 시기가 된 것 같습니다. 그 고민을 확장해가는 지점에서 연구소 회원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우리 사업장이 변할까요? /2016.4

우리 사업장이 변할까요?


강충원 후원회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보건관리위탁기관 의사의 사업장 방문 횟수는 100인 이상 사업장인 경우 3개월에 1회, 50인 이상인 사업장인 경우 6개월에 1회이다. 일본은 규모에 상관없이 2개월에 1회라고 들었는데, 한국은 특이하게 필수적이고 중요한 안전보건도 작은 기업일수록 더 비중이 작다. 오히려 작은 사업장일수록 작업환경이나 노동조건이 열악한데도 규제라는 측면에서 경제성을 따져서 그렇다.


그렇게 가끔 의사가 사업장을 방문하면 매달 방문하는 사업장의 터줏대감인 보건관리 간호사로부터 많은 정보를 얻게 되고, 그동안 간호사가 귀에 따갑도록 말해도 변화가 없던 노동자나 관리자, 사장님에게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설득작업에 들어간다. "누가 법 다 지키고 사업하나?” 라는 말을 들어도, “선생님은 그냥 서류만 써주시고 가세요.” 라고 해도, 내가 해야 할 일과 내가 해야 할 말을 할 수 밖에 없다.


가끔 가는 사업장이니 현장순회와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참석과 근로자건강진단 사후관리를 비롯해서 보건교육 등 할 일은 많은데,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하기는 어렵다. 이 사업장 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일터인가?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사실 일할 맛 난다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을 하게 된다. 


예전에 SNS에서 “직원들은 사장의 현란한 철학보다 사무실, 식당, 화장실, 처우를 통해 회사를 평가한다.”라는 글을 본 이후로, 회사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사실 회사의 분위기, 즉 조직문화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다만 그런 분위기에서 사측의 대리자로 선임된 보건관리위탁기관의 의료인들이 사업장에서 조금 더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 어떤 보탬이 될 수 있을까? 의 관점이 바뀐 것이다.


첫 번째는 노동자와의 건강상담 환경개선이다. 그 회사가 좋은 회사인지는 노동자분들과의 만남의 자리를 보면 알 수 있다. 감정노동으로 인한 고통, 직장 내에서의 어려운 관계, B형간염이나 수술, 개인적으로 민감한 건강문제를 이야기해야 하는 경우도 많은데, 노동자들이 안심하고 누군가와 대화할 수 있는 면담실을 제공하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더라도 모든 길이 막힌 상황에서 의료진을 만나서 숨 쉴 공간을 얻는 경우도 많다. 가장 최악이 관리자나 사장님이 옆에서 다 듣고 거드는 경우다. 본인은 남을 생각한다고 하고, 가끔 정말 치료가 필요한데 치료안하고 있는 분들에게는 적극적인 동기부여가 될 수도 있지만,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불가한 일이다. 정말 면담이 필요한 분들이 의료진을 멀리하고 면담 시 짜증을 내거나, 불편해 하는 것은 개인의 성격이라기보다는 회사가 건강의 문제에 대해서 함께 배려하고 공감하는 문화인지 아니면 통제하고 핀잔을 주는 문화인지에 따라서 다른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도 건강진단의 결과를 활용하여 건강보호를 위한 목적 외에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면 과태료가 300만원이다.


두 번째는 휴게실 환경개선이다. 산업안전보건기준 제9장에는 “사업주는 근로자들이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도록 휴식시간에 이용할 수 있는 휴게시설을 갖추어야 한다.”라는 조항부터, 세척시설, 수면시설, 장시간 서서 일하는 경우 의자의 비치까지 규정하고 있다. 보건관리계약을 맺고 처음 방문하는 사업장에서 내가 제일 많이보는 것은 휴게실이다. 냉난방은 되는지, 천장에서 가루는 안 떨어지는지, 혹시 석면은 아닌지, 물이나 화장실, 목욕탕 사용, 개인 락커는 있는지, 등받이가 있는 의자인지, 누워서 쉴 수 있는지, 파라핀욕조, 안마기, 발마사지기 등의 시설이 있는지, 휴게 시간은 적절한지 등을 본다. 내가 이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사람다움”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기계처럼 일하더라도 “사람처럼” 쉬면 좋겠다는 작은 타협이다.


세 번째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서 개선의견을 내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100인 이상, 일부 위험업종은 50인 이상, 일부는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분기별로 산업안전보건위원회라는 회의체를 운영하게 되어있다. 여기에는 노사동수로 위원들이 구성되고 책임자가 참석하게 된다. 실제로 운영되는 경우는 10%내외, 나머지는 매년 반복되는 서류작업이다. 그런데 요즈음은 분위기가 바뀌어서 실제로 회의를 개최하고 의견을 반영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사업장에서 노동자와 면담을 통해서 들었던 불편한 사항에 대한 것이나, 건강검진이나 작업환경측정,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의 개선의견 등 관리자 차원에서 차단되거나 관리자가 깜빡한 내용들을 책임자에게 바로 건의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이다. 실제로 회사 내부회의에 참여하면 산재보험을 거치지 않고 회사차원에서 처리되는 수많은 사고와 질병들을 만날 수 있다. 진짜 문제를 발견해야지 제대로 된 해결을 할 수 있기에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참석은 점점 중요해질 것 같다.


무엇보다 현장순회를 할 때나, 노동자와 면담을 할 때나 사업장에 오는 의사나 간호사가 과연 내편인지 확인이 되어야 진짜 이야기가 가능할 텐데, 그런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첫 번째 과제이다. 병원에서는 아플수록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더 기밀하게 지속되지만, 노동자와 보건관리의사의 만남은 더 많이 아플수록 만나기 힘들어진다. 건강과 고용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서도 회사측 위원이고, 사측의 관리비를 받는 입장에서 보건관리의사가 100% 노동자편이다 말하긴 힘들다. 다만 자신을 도와주는 의료인과의 신뢰관계가 치료에 좋은 영향을 주듯, 현장에서 만나는 의사들과 노동자들이 잘 만나가는 것이 사업장을 변하게 하는 시작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노동자의 건강지킴이가 되려는 이유 /2016.3

노동자의 건강지킴이가 되려는 이유



김정수 (한노보연 회원, (사)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 향남공감의원 원장)





저는 올해 11년 차가 되는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입니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제가 진료실에서 만나는 노동자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나 생각해 보면 답답한 마음에 한숨만 나올 뿐입니다. 특히 최근에 잇따라 터져 나오는 수은 중독, 메탄올 중독 등 7~80년대에나 있을 법한 사고들을 접하다 보면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자괴감마저 듭니다전문의를 취득한 이후 군 복무를 제외하고 주로 종합병원 건강검진센터에서 특수건강진단 업무를 했습니다


저와 같은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들이 주로 하는 일 중 하나입니다. 특수건강진단은 소음이나 분진, 중금속이나 유기용제와 같은 유해요인에 노출되는 노동자들이 반드시 정기적으로 받아야 하는 건강검진입니다. 이 업무를 하는 동안 이게 노동자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하는 생각을 참 많이 했습니다. 소음 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청력검사 결과를 제외하면 이상이 발견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법적으로 하게끔 되어 있는 특수건강진단이 노동자들에게 생길 수 있는 직업병이나 업무 관련성 질환을 찾아내기에는 빈구석이 너무 많았습니다. 게다가 오히려 특수건강진단을 받는 노동자들의 작업환경은 그래도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훨씬 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하청 노동자들, 이주노동자들은 이런 특수건강진단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이런 노동자들을 위해 특수건강진단 비용을 국비로 지원하고 있는데, 모르는 사업주도 많고 제대로 알려주는 특수검진기관도 많지 않았습니. 바로 이런 노동자들이 7~80년대에나 있을 법한 그런 사고들로부터 고통을 받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답답한 마음에 주변 동료들과 얘기를 나눠보았는데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동료들이 많았습니다. 몇번 얘기를 나누고 나서 이런 답답한 현실에 대해 불만을 가지는데 그치지 말고 작은 일이라도 우리가 직접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우리가 직접 병원을 만들어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건강을 증진시키는데 조금이라도 기여를 해보자고 뜻을 모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사단법인 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 향남공감 의원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는 산업보건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하청업체 노동자, 이주노동자 등 취약계층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학술연구, 교육, 홍보 등의 사업을 통해 이들의 건강증진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향남공감의원은 ()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의 부설의원으로 작년 9월에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에 개원하였습니다. 화성시는 중소영세사업장이 밀집한 지역일 뿐만 아니라, 서울 영등포구, 경기도 안산시에 다음으로 이주 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저희가 법인의 첫 번째 부설의원을 화성시 향남읍에 개원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향남공감의원의 세 가지 모토는 지역 주민의 주치의, 노동자 건강의 지킴이, 일하는 사람이 행복한병원입니다.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퇴근해서 집에 가면 바로 지역 주민이 됩니다. 지역 주민이 건강해지고 나아가 지역 사회가 건강해져야 노동자도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저희가 지역 주민의 주치의가 되고자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 사회에 살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건강하지 못하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자기가 하고 있는 일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런 얘기를 해주는 의사들도 많지 않습니다. 다치지 않고 아프지 않고 일 할 수 있어야 보다 많은 사람들이 건강할 수 있습니다. 저희가 노동자 건강의 지킴이가 되고자 하는 이유입니다. 의미 있고 좋은일을 하겠다고 모인 사람들이 막상 그 일을 하면서 불행해지는 경우를 많이 봐왔습니다. 그 일을 하겠다고 모인 우리들 역시 노동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노동을 통해서 의미 있고 좋을 일을 해보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노동부터 즐겁고 재미있어야 합니다. 저희가 일하는 사람이 행복한 병원이 되고자 하는 이유입니다


이제 개원한지 6개월밖에 되지 않아 아직 부족한 것이 많고 많은 노동자들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저희가 하고자 했던 것들을 하기 위해 한걸음씩 가고 있습니다. “지역 주민의 주치의가 되고자 인근 어린이집 다섯 곳과 진료 협약을 체결하였고, “노동자 건강의 지킴이가 되고자 사단법인 한국이주민건강협회와 함께 이주노동자 순회 진료, 농어촌 이주노동자 교육을 함께 하기로 했고, “일하는 사람이 행복한 병원을 만들고자 노동감사라는 것을 실시하기도 하였습니다. 저희가 제대로 잘 가고 있는지 지켜봐 주시고 아낌없는 조언 부탁드립니다


홈페이지 www.gonggam.net 에 들어오시면 저희가 하고 자 하는 것과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 보다 자세히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피부병 생겨도 대체 어렵다던 금속가공유가 바뀐 사정 /2016.2

피부병 생겨도 대체 어렵다던 금속가공유가 바뀐 사정


이선웅 후원회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몇 달 전, 같이 보건관리대행을 나가는 간호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한 사업장에서 직업성 피부질환이 생긴 것 같으니 의사방문을 예정보다 빨리하자는 것 이었다. 며칠 후 사업장을 방문하여 노동자들을 면담했다. 태양광 전지를 만드는 곳이었다


피부증상자는 모두 6개월 전 새로 생긴 웨이퍼 공정의 노동자들이었고, 전체 웨이퍼 작업 노동자 35명중 10명에서 증상이 발생했고, 이 중 일부는 현재도 증상이 있었다. 증상은 대부분 팔 부위에 금속 가공유가 튀어 생긴다고 하였다. 대개 1~2cm 크기의 붉은 발진이 생겨서 가렵다가, 노출이 없어지면 사라졌다. 하지만 오래 남아있던 경우, 약국에서 연고를 사서 증상을 조절한 분도 있었다. 또 정비작업 시 다리에 대량으로 묻은 한 분은 범위가 넓고 증상이 심해 피부과 진료를 받았으며, 다행히 조장이라 관련 업무를 스스로 그만두고 나서야 호전되었다고 했다. 노동자들은 공정에 투입된 직후부터 석달 사이에 주로 증상이 생겼는데, 주기적 정비 과정 중에 묻는 경우가 많다고 하였다. 이전에 쓰던 토시는 효과가 없었고 열흘 전부터 몇몇 증상자에게 제공된 신형내화성 토시는 효과가 있어 이를 사용한 분들은 증상이 호전되기도 하였다.


노동자들은 그동안 사업장에 이에 대한 조치를 요구하지 않고, 스스로 조심하여 작업하거나 개인적으로 치료하다가, 증상자가 여럿임을 뒤늦게 알게됐다. 그래서 지난달에야 안전관리자의 현장방문중에 얘기하여 보건대행기관에 전달된 것이다. 증상 양상으로 볼 때 자극성 접촉성 피부염으로 판단 되었고, 노출이 차단되면 증상도 비교적 잘 호전되는 것으로 보였다. 얼마 전부터 강화된 보호구 착용으로 증상자 수는 최근에 줄어든 것 같았고, 상담 시 발진이 남아있던 세 분도 다행히 불편감이 가벼워 노출만 피하면 호전될 것으로 보였다. 물질안전보건자료를 확인해 보니, 신규 웨이퍼공정의 금속 가공유에 포함된 항균제 성분 이소티아졸론이 원인으로 생각됐다. 이는 일반적인 절삭유 성분은 아니고, 부식성이 매우 강하여 피부에 화상을 일으킬 수 도 있는 강력한 피부자극물질이었다. 또 피부, 호흡기 알레르기 가능성도 보고되어 있어, 다른 질병 발생도 걱정되었다.


현 상태에서 질환의 치료요양보다는 원인 차단과 제거가 중요하니, 전 웨이퍼 공정 노동자에게 내화성 토시, 앞치마, 고글을 지급하여 착용하도록 하였고, 피부접촉 즉시 세척이 가능한 현장 세척실 설치를 권고하여 담당자도 약속하였다. 그렇지만, 원인 물질의 대체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에는 거의 최초로 도입된 공정이라 방법이 없다고 했다. 현재 노동자들의 증상이 심하지는 않지만, 발생자가 많고, 사고로 심하게 피부나 눈에 노출될 경우 위험성이 크고, 다른 질환의 발생 가능성도 있어 근본적으로 대체물질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했으나, 담당자는 공정상의 불가능함을 얘기할 뿐이었고 상부에 보고할지도 의문스러웠다.


나는 직업성 피부질환은 수시건강진단 항목에 해당하고 노동자 개인, 노동자 대표, 보건관리대행기관 등이 건의하면 피부증상자가 특수검진을 받고 이에 대한 사후관리 보고를 노동부에 해야 한다고 했다. (사업주가 특수건강진단 대상업무에 노출되는 근로자중 직업성 천식, 직업성 피부질환 증상을 호소하는 근로자에 대하여 실시하는 건강진단으로 근로자가 직접 요청 근로자대표 또는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이 당해 근로자 대신 요청 당해 사업장의 산업보건의 또는 보건관리자(보건관리대행기관 포함)가 수시건강진단을 건의하는 경우 시행할 수 있다.) 사실 수시건강진단을 해도 원인파악이나 사후관리는 같기 때문에 이 건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고 실제로 건의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수시건강진단 얘기를 하니 담당자는 좀 더 심각히 받아들였다. 나는 두 달 안에 증상자가 없어지지 않거나, 새 증상자가 생기면 수시건강진단을 하기로 하고 대체물질 개발은 가능한 빨리 조치하며 이에 대해 매달 확인하겠다고 했다. 다음 달 내화성토시와 보호구가 전부 지급되었고 세척실도 설치되었으며 신규 증상자는 없었다.


두 달 후 상담 시, 세척실이 도움되어 증상자는 거의 없었는데, 절삭유가 묻은 작업 셔츠를 하루 이상 입을 경우 가슴에 증상이 생겼던 경우가 두 명 있었다. 이에 매일 작업복을 교체하라고 안내했다. 물질 대체는 계속 어렵다고 했다. 다음 달, 증상자는 더는 없었으며 다른 질병도 다행히 발견되지는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공정상 물질 대체가 불가능 하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수시건강진단의 필요성도 스스로 잊고 있었다.


그런데 몇 달 후 위생기사로부터 그 사업장이 물질을 대체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피부 질환 때문이 아니라 원가절감을 목적으로, 이미 시험가동 중이라고 했다. 다행히 운 좋게 예전보다 안전한 물질로 대체되긴 했지만, 결국 나는 노동자들의 건강권이 이윤에 의해 무시되는 현장 속에 같이 있었던 셈이다. 물질 대체를 좀 더 적극적으로 요구하거나 수시건강진단을 시행하여 노동자 건강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을 더 인식시켜야 했다는 아쉬움이 들었고, 다음에는 사후관리를 위해서 뿐 아니라 재발방지를 위해서도 직업성 피부질환이나 천식의 경우 수시건강진단을 적극적으로 건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업성 피부질환은 증상이 약해 개인적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고, 이 사례와 같이 집단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알려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근본적인 현장 관리를 위해서는 노동자들 역시 수시건강진단을 요구하거나 보건관리대행 기관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꼭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관절염은 나이 때문이라고요? /2016.1

관절염은 나이 때문이라고요?


백리마 회원, 직업환경의학전문의

 


50대 후반의 조선소 노동자가 산재신청을 위해 찾아왔다. 손을 보니 누가 보더라도 엄지손가락이 이상하다고 눈에 띌 정도였다.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보니 쇠를 녹여 제품을 만드는 주조작업을 약 37년간 수행하면서 크레인 리모컨과 콘트롤박스의 버튼을 엄지손가락을 이용하여 반복적으로 누르는 작업이었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씩 힘을 주어 버튼을 누르다 보니 엄지손가락이 정상적인 위치를 벗어나서 탈골되고 또한 심한 관절염이 있는 상태였다. 이 환자는 엄지관절염으로 산재신청을 하여 승인을 받고 요양 중이다.



관절염은 많은 사람이 직업병과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관절 중에서 관절염이 가장 많이 생기는 부위는 무릎관절로서 무릎의 퇴행성 관절염은 확실히 나이 증가에 따라 증가하는 경향이 있고, 남자보다는 여자에서 발생할 위험이 크다. 그리고 비만할수록 관절염이 발생할 위험이 증가한다.


그러나 직업적으로도 충분히 관절염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쪼그려 앉아서 일하거나 중량물을 많이 취급하는 경우에는 무릎 관절염이 조기에 발생할 수 있다. 대개 무릎의 관절염으로 인공관절을 하는 시기가 60대 후반, 70대가 일반적인데 노동자들의 경우 50대에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사실은 관절염도 직업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무릎을 제외한 관절에 류머티스 관절염이 아닌 퇴행성 관절염이 발생하였다면 그 관절염은 직업병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대표적으로 어깨, 팔꿈치, 손목, 손가락 등이다. 2014년과 2015년에 모조선소에서 팔꿈치 관절염이 있는 작업자 7~8명이 산재신청을 한 결과 전원 승인을 받은 바도 있다.


특히 팔꿈치에 관절염이 생기는 경우는 매우 드문 경우로서 이런 부위에 관절염이 생긴다는 것은 그만큼 팔꿈치의 사용이 많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상지에 퇴행성 관절염이 있는 경우 직업병을 의심하고 일단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와 업무 관련성을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무릎의 경우에는 직업병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무릎관절을 많이 사용하는 작업이면서, 체중이 비만하지도 않은데 40대 혹은 50대 같이 조기에 관절염이 발생하는 경우 직업병임을 의심할 수 있다. 앞서 기술한 것처럼 쪼그려 앉아서 일하거나 앉았다 일어서는 것을 반복하는 작업, 계단을 반복적으로 오르내리는 작업, 중량물을 반복적으로 취급하는 작업의 경우 직업적으로 무릎의 퇴행성 관절염을 발생시킬 위험이 증가한다.

 

따라서 관절염은 직업병이 아니다 혹은 산재 신청해도 승인이 안 된다는 식으로 포기할 필요가 전혀 없다. 관절염으로 인공관절을 하는 경우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인공관절을 다시 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산재승인을 받는 경우에는 인공관절 재수술 비용도 보장을 받을 수 있어 산재승인 여부는 매우 중요하다. 이런 관절염은 팔다리 같은 부위뿐만 아니라 척추관절의 퇴행성 관절염과 척추협착증 같은 퇴행성 척추질환에도 적용된다. 다만 근로복지공단에서는 척추 관련 질환의 경우 퇴행성이란 글자가 붙으면 승인을 잘 안 해주려고 하기 때문에 신청 전에 전문가와 긴밀한 상의를 할 필요가 있다.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소규모 사업장, 보건관리의 사각지대 /2015.11

소규모 사업장, 보건관리의 사각지대

 

 

 

이영일 회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현재 근무하고 있는 병원 근처에는 공단들이 제법 있다. 병원 바로 근처인 사상지역에 주로 5인 이상 5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들이 밀집된 공단이 있으며, 낙동강을 건너가면 녹산공단이라는 비교적 큰 규모의 공업단지가 있다. 유해물질을 취급하는 곳이라면 특수건강검진을 당연히 받아야 함에도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못한 부분이 있으며, 특히 영세사업장이 그러하다. 특수건강검진업무를 시행하는 기관들은 대부분 50인 이상의 사업장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현재 근무하고 있는 병원의 경우 종종 사상공단의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이 병원 외래로 특수건강검진을 위해 내원한다.

 

올해 4월에 전체 노동자 10명 미만의 작은 사업장에서 노동자들이 특수검진을 위해 내원하였는데, 이 사업장에서 노동자들의 주된 업무는 용해작업과 사상작업이었으며, 작업과 관련된 여러 가지 유해인자 중 특히 납이 문제가 되었다. 인체에 유해할 수 있는 금속, 유기용제 등은 소변이나 혈액 검사를 통해 노출 정도를 측정할 수 있는데, 납의 경우 특수 검진 1차 검사항목으로 혈액검사를 통해 납 농도를 측정하게 되어 있다. 특수건강검진 실무지침에 의하면 혈중 납 농도가 30ug/dl이상이면 요관찰자로 더 이상 노출이 없도록하고 관찰해야하며, 혈중 납 농도가 40ug/dl이상이면 질병이 있는 사람으로 분류해야 한다. (ug은 마이크로그램으로 1/1,000,000그램, dl은 데시리터로 1/10리터에 해당하는 단위다.) 내원한 노동자들의 검진 결과는 평균 혈중 납 농도가 45ug/dl 이상이었으며, 60ug/dl을 넘어가는 분도 한 분 있었다.

  

미국에서 사용되는 납 작업장 경고 표지 "중독될 수 있으므로 흡연이나 음식물 섭취 금지

 

납을 다루는 직업군은 다양한데, 그중에서도 납 노출의 위험성이 크다고 알려진 업종은 제련·합금 제조업, 고철 가공처리업 등이다. 용해된 납의 경우 500~600℃부터는 납 흄(fume)이 발생하는데, 흄이란 고체 상태의 물질이 높은 온도에 의해 기체로 되었다가 다시 응축되어 아주 작은 입자 상태로 된 것을 말한다. 이러한 납 흄은 입자가 아주 작아서 호흡기를 통해 쉽게 흡수될 수 있고, 혈액 속으로 녹아들면서 인체에 고루 퍼져 유해한 영향을 줄 수 있으며, 납뿐만 아니라 어떤 종류이든 흄의 흡입은 인체에 유해할 수 있다. 용접작업자와 용해작업자 는 흄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 대표적인 직업군에 속한다. 그 밖에도 페인트 등의 안료나 염료 제조에도 사용되며, 이전에는 휘발유를 만드는 과정에서 성능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납을 첨가하였지만, 대기 중으로 납이 방출되는 문제로 미국에서는 일찌감치 판매를 제한하였고, 우리나라의 경우 1993년부터 판매가 중지되었다. 납은 한자어로 연(鉛)인데, 과거 주유소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무연휘발유에서 ‘무연’은 매연을 배출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닌, 납이 포함되지 않은 휘발유를 의미한다.

 

외래로 내원했던 노동자들의 작업환경은 열악했으리라 판단이 된다. 혈중 납 농도가 60.7ug/dl로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던 분은 용해작업이 아닌 사상 작업을 하시는 분이었는데, 용해작업과 사상 작업의 공간이 분리되지 않았고, 용해작업자들의 경우 간헐적으로라도 마스크를 착용한 반면, 이 분의 경우 사상 작업을 하시면서 마스크 착용을 거의 안 했던 것이 유독 혈중 납 농도가 높았던 이유였으리라 판단된다. 사업장 내에 배기장치가 있다고는 하였으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하였고, 배기장치에 대한 주기적인 점검은 이루어지지 않는 등 작업환경에 대해서도 개선할 점이 많았다. 특수건강검진 실무지침에 의하면 혈중 납이 30ug/dl 이상일 경우 2개월에 한 번씩 혈중 납을 연속해서 최소 2번 추적검사를 하게 되어있으며, 작업을 제한한 후에 추적검사를 하는 것이 타당하지만, 이러한 소규모 사업장에서 작업제한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납 자체가 1급 발암물질은 아니지만, 신경계 증상(떨림, 저림), 소화기계 증상(식욕 저하, 소화불량 등) 등을 유발할 수 있으며, 신장에 손상을 가하는 등 다양한 계통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특히 심한 납중독은 뇌병증까지도 유발할 수 있다. 노동자들의 높은 혈중 납 수치와 비교하면 호소하는 증상은 없었으며, 표적장기들과 관련된 검사에서 특별한 소견들이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다. 노동자들 개개인에게 현재 하는 작업에서 납이 인체에 끼칠 수 있는 유해한 영향, 납의 특성과 함께 납 흄의 개념을 알려드리면서 특수방진 마스크 착용의 필요성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드렸다. 8월 2차 추적검사까지 완료한 결과 다행히도 노동자들의 혈중 납 농도는 4개월 전에 비해 많게는 15ug/dl 이상 감소하였다.

 

요즘 TV에서 노동개혁 공익광고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사실 공공의 이익에 전혀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공익광고’에서 ‘공익’이란 단어는 어폐가 있으며, 광고를 보고 있자면 부아가 치민다. 진정한 노동 개혁은 노동자들이 당연하게 누려야 할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고, 산업현장에서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위험요소로부터 노동자들을 잘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함에도, 정부가 외치는 노동개혁에는 ‘쉬운 해고’만 있을 뿐 개혁의 방향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 2014년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산업재해 통계자료에 의하면 전체 노동자 수 중에 50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 수가 월등히 많으며, 재해율 또한 사업장의 규모가 작을수록 높다. 과거와 비교했을 때 크게 달라진 것도 없으며, 여전히 소규모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산업보건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더는 방치할 수 없다. 소규모 사업장의 보건관리를 위한 인프라 구축과 관리방안에 대한 제대로 된 담론이 필요하며, 장기적이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나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지금 시작해도 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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