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너무 흔한 산재은폐와 직업병의 은폐 /2015.10

너무 흔한 산재은폐와 직업병의 은폐


조성식 회원, 직업환경의학전문의 



얼마 전 특수검진 시, 한 노동자에게 직업병에 해당하는 D1 판정을 하였고, 얼마 후 그 사업장의 사업주에게 항의와 함께 판정을 바꾸어 달라는 부탁을 들었다. 그 사업장은 자동차 휠을 만드는 사업장의 사내하청 회사였다. 작업 중 소음 노출 수준이 높고, 소음으로 인한 직업성 난청도 적지 않게 발생하는 사업장이었다. D1 판정을 한 노동자의 경우, 한쪽 귀는 소음 노출로 인해 생기는 감각신경성 난청과 중이염으로 인한 전음성 난청이 동반된 혼합성 난청으로 직업성 소음 노출로 인한 소음성 난청이 존재하였기에 직업성 질환으로 판정을 내렸고, 다른 쪽 귀는 '소음성 난청 주의'에 해당하는 C1 판정을 하였다. 하지만 사업주는 이 노동자가 중이염의 병력 때문에 소음이 난청이 아니니 일반질병(D2) 판정으로 내려달라며 항의를 동반한 부탁 전화를 한 것이었다.


현재 특검 제도는 직업병 발견의 측면에서 그리 잘 작동하고 있는 제도는 아니라고 판단된다. 현재의 특검 제도가 진폐증과 소음성 난청의 조기 발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도 하고, 직업성 질환의 경우 잠복기가 긴 질환이 많은데 이를 적절한 검사로 찾아내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또한, 현재의 검사 항목이 부실하거나 부족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의 2013년도 근로자 건강진단 실시결과를 보면, 특수검진 후 7,804명의 노동자에게 직업성 질환이 발견되었고, 이중 소음성 난청이 7,388명, 진폐 관련성 질환이 162명이었다. 이 두 질환의 비율은 발견된 전체 직업성 질환의 95%를 넘어선다. 이처럼 직업성 질환은 특수 검진을 하더라도 소음성 난청과 진폐증 이외에는 잘 발견되는 않는 것이 현실이다.


▲  2013년도 특수검진결과에서의 직업성 질환의 질환별 유소견자 수 (%)


또 한편 특수검진은 사업주의 부담으로 검사가 진행되고, 대다수 특수검진기관은 사립의료기관이다. 따라서 특수검진기관에서 일하는 의사들은 전문가로서 성심껏 직업병을 발견해야 하기도 하지만, 비용을 지급하는 사업주의 눈치를 안 보기는 어려운 것이 또한 현실이다. 위와 같이 사업주가 항의 섞인 부탁 전화를 한 건 검진비를 지급한다는 갑의 위치를 이용해서 압박하려는 의도로 판단된다. (하지만 필자는 판정을 바꾸지는 않았다.) 이 회사의 경우 원청회사에 노동조합이 있었고, 원청 노동조합에서도 판정번복을 원하는 것 같지는 않은 눈치였다. 하지만 노동조합이 없는 회사는 상황이 더 어렵다. 노동조합이 없는 회사는 사업주가 검진기관을 차기 연도에 쉽게 변경할 수 있으므로, 해당 검진기관에서 일하는 의사들은 이 같은 전화가 상당한 위협이 된다. 


소음성 난청의 경우는 근로자 건강 실무지침에 직업성 난청에 해당하는 데시벨까지 명시되어 있어 판정을 비교적 명확하게 내릴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대다수의 직업성 질환은 노동자의 증상에 기반을 둬 판정을 내리게 되어 직업성 질환을 놓치지 않을까 고민을 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업주가 항의를 할 경우 진단을 놓칠 수도 있겠다는 판단도 하게 된다. 이처럼 사업주의 부담으로 진행되고 사업주가 임의로 검진기관을 바꿀 수 있는 경우, 특히 노동조합이 존재하지 않거나 힘이 미약한 경우에는 더욱더 사업주의 압력으로 발견된 직업병도 은폐되기 쉬운 것이 21세기 한국의 현실인 것이다


사고로 인한 산업재해도 언론에서도 몇 차례 보도되었듯이 광범위한 은폐가 일어난다. 심지어는 응급한 상황인데도, 산재 발생을 숨기기 위해서 119구급차를 부르지 않고 응급환자를 개인 트럭으로 수송하거나, 지정병원(이 경우 산재가 아니라 공상 처리해주는 병원)의 차량을 불러서 이송하는 경우가 흔한 것이 현실이다. 이 같은 사고성 재해로 사망하는 노동자가 한해 1,000명이 넘고 이조차도 은폐된 숫자이다. 이처럼 한국에서는 수많은 산재가 발생하지만 많은 수가 은폐되고 있다. 또 한편으로 많은 유해 작업과 위험작업을 원청이 아닌 하청 업체·중소 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하고 있고, 이들 노동자에서 재해와 직업성 질병이 더 빈번하게 발생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이 같은 산재 은폐를 막고 작업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적절한 개입 수단이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산재 은폐를 막고 작업환경 개선을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노동조합과 같은 노동자의 조직이 중소기업과 하청사업장까지 확대·강화됨으로써 산재 은폐를 하지 못하게 감시하고 작업환경을 개선하도록 사업주를 압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산업재해 은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하며, 중대 산업재해에 대해서 사업주를 비롯한 경영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작은 것부터 시작하기 /2015.9

작은 것부터 시작하기

 

 

김세은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서울에서 전공의 생활을 했던 작년까지는 이주노동자 진료소에 나가는 등의 적극적인 활동을 하지 않는 이상 일하면서 이주노동자를 만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어쩌다 가끔 만나게 된다 해도 몸짓, 손짓, 간단한 그림으로 미흡하게나마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고, 그런 상황이 일단락되고 나면 더는 그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일하면서 자주 접하는 상황이 아니다 보니 큰 관심도, 그럴만한 별다른 계기도 없었다.

 

그런데 올해 봄부터 공단 지역이 있는 중소도시의 병원에서 일하게 되면서 상황이 좀 달라졌다. 공단과 다소 거리가 있는 집 근처의 동네마트에서도 이주민들을 심심찮게 만날 정도이니, 공단에 있는 사업장으로 출장검진을 가면 회사마다 좀 차이는 있지만, 이전보다 상당히 자주 이주노동자들을 만나게 된다. 본디 ‘검진’이라는 업무가 가진 특성상, 그리고 여러 현실적 여건 때문에 검진하면서 만나는 노동자들 한 명 한 명에게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기는 힘들다. 이미 파악되어있는 유해인자 목록이 대체로 정확할 거라는 믿음 아래 그에 따라 핵심적인 증상이 있는지 물어봐야 하고, 신체진찰도 꼭 필요한 것을 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이야기가 길어질라치면, 간호사가 다가와 ‘선생님, 조금 더 서둘러주셔야 해요.’라고 다급하게 속삭이기 일쑤. 테이블 옆에 길게 늘어져 서 있는 분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말과 손이 빨라진다. 하지만 1:1로 대면하는 검진만큼 노동자들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니 상황 봐가며 가능한 이것저것 물어보고 이야기를 들으려 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늘 여유롭지는않다. 짧은 시간 내에 문진과 진찰을 해야 하고, 간략한 교육이 필요할 때가 많다.

 

짧은 검진시간, 말 안통하는 이주노동자는......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건강검진 자체도 여러 문제를 안고 있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만나는 이주 노동자들은 더욱더 고민거리다. 대부분 시간적 여유가 없어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국적을 물어보진 않지만, 이름이나 외모로 보아 대부분 동남아시아에서 온 노동자들이 가장 많다. 얼굴을 마주 보고 앉으면 일단 한국어를 할 수 있는지를 먼저 물어본다. 한국에 온 지 오래된 경우는 한국말이 꽤 능숙하거나, 최소한 질문 내용을 이해하고 간단하게나마 대답을 할 수 있는 분들이다. 그러면 아픈 곳이 있는지, 일할 때 보호구를 착용하는지 등 간단한 단어나 손짓을 통해 서로 알아들을 수 있다. 얼마나 정확하게 전달되는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어쨌든 핵심적인 내용의 소통이 가능하다. 하지만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된 분들은 한국어를 할 수 있는지 묻는 첫 번째 질문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꽤 여러 번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채로 처음으로 그런 상황을 맞았을 때는 나도 모르게 말문이 막혔다. 서로 멀뚱멀뚱 눈만 바라보며 잠시 정적이 흘렀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손짓을 해야 할지 금방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그 나라 말을 할 줄 아는 것도 아니고, 뭐든 말해봤자 전달이 되지 않을 테니,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개인의 병력이나 주요 증상 유무에 대해 미리 스스로 점검한 문진표를 건네받지만, 한국어로 된 문진표를 그가 정확히 표시했을 리 없다. 국적에 따라 간단한 영어로 소통할 수 있거나, 한국어가 능숙한 같은 나라 출신 동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경우도 가끔 있지만, 그것은 운이 좋은 경우다.

 

의사소통도 어려운 이주노동자는 어떻게 안전하게 일할 수 있을까

 

기본적인 의사소통조차 어려운 이들이 어떻게 위험 요소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곳에서 일할 수 있는 건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국어로 된 매뉴얼이나 MSDS(Material Safety Data Sheet, 물질안전보건자료)를 읽을 수 있고, 동료와 문제없이 소통이 가능한 많은 한국인 노동자들에게도 일터는 안전하지 않다. 많은 사람이 일하다 다치고 병들거나 죽는다. 하물며 기본적인 의사소통조차 쉽지 않은 이주노동자들은 어떨까. 그나마 반복적인 동작으로 인한 허리통증이나 어깨통증은 어떻게든 몸짓으로라도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늘 일하며 다루는 물질이 훗날 암이나 진폐증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인지, 마스크를 끼지 않은 채로 일하면 왜 위험한지를 그들은 알고 있을까. 혹은 그런 것을 알 기회가 주어지기는 할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위험을 무릅쓴 채로 일하고 있는 걸까.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출장검진에서 이주노동자들을 만난 날에는 이런 생각으로 한동안 답답하다. 이런 상황을 바꾸기 위해 내가 무엇을 어디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지 감이 잡히지 않고, 내가 뭔가를 바꾸기에는 너무나 거대한 일이라는 생각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한국인이든 이주민이든 모든 사람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고 시스템을 갖춰 나가야 하겠지만, 이 지역에서 이주노동자들을 만나는 직업환경의학과 의사 중 한 명인 내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해봐야겠다. 예를 들어, 기존에 나와 있는 외국어 안전보건자료를 사업장에서 활용하고 있는지 알아보는 것, 외국어 문진표를 우리 병원에서 활용할 수 있을지 다른 직원들과 의논해보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 이 글을 쓰다 보니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다.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병원에 갈 시간이 없어요/ 2015.8

 병원에 갈 시간이 없어요



권종호 회원, 직업환경의학 전공의


전공의 4년 차가 시작되면서 본격적으로 보건관리 대행 업무를 시작했다. 보건관리 대행은 병원과 계약된 사업장들을 돌아다니면서 노동자들의 건강 상태를 점검하고 특별한 이상은 없는지, 작업과 관련된 문제는 없는지 확인하고 이에 대한 상담과 관리를 하는 업무이다. 간호사 선생님들은 사업장을 전담해서 매달 다니시지만, 의사는 분기별 혹은 상하 반기로 나눠서 방문한다.


처음 보건관리 대행을 다니면서 날씨가 덜 풀린 탓에 추위에 고생을 많이 했다. 유난히 경기 북부에 대행사업장이 많은 우리 병원의 특성상 가는 곳마다 매서운 칼바람이 몰아쳤고 출장용 소형 차량은 그 칼바람을 이겨내기엔 상당히 버거웠다. 간혹 난방도 잘 안 되는 창고 같은 공간에서 상담하기도 했다. 그나마도 공장 안 작업장보다는 따뜻한 곳이라니 감사히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건강 상태도 제대로 모르고 일에 치여 살던 분들에게 혈압·혈당 등 건강 체크도 해드리고 건강 문제와 관련해 상담해드릴 수 있는 점은 직업환경의학과 의사가 가질 수 있는 큰 보람이다. 대부분은 혈압·혈당 등 간단한 검사에서 큰 문제가 없었지만, 간혹 심각한 수준의 고혈압이나 당뇨병 의심 상태를 보이는 분도 있었다.


비만·흡연·음주 관련 상담도 중요하지만, 고혈압·당뇨병 등 질환이 있는 경우 더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기에 그런 분들에게 왜 치료가 필요한지,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꼭 병원에 가 보시라고 권해드렸다. 보건관리 대행 사업이 상당히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측면이 있지만 이런 경우에는 서면으로 전달되는 건강검진 결과표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몇 달 뒤 같은 사업장들을 돌면서, 제대로 병원 치료를 받지 못하는 분들을 다시 만나야 했다. 이런저런 설명 끝에 꼭 병원에 가셔야 한다고 했는데 시간이 없어서 못 가보셨단다. 시간이 없다는 건 핑계다. 요즘 병원들 평일에도 저녁 7시, 8시까지 하고 주말에도 여는데 거길 못 가보신다는 게 말이 되느냐 했더니 평일에도 10시에 끝나는 날이 부지기수고 주말에도 출근하는데 일 끝나면 쉬고만 싶다고 하신다. 할 말이 없었다. 병원이 아무리 늦게 까지 열어도 갈 시간이 없고, 갈 힘이 없으면 가고 싶어도 못 가는 것이다.


한국의 '미충족 의료 비율' 높아


'미충족 의료'라는 말이 있다. 쉽게 말하면 당장 아프거나 지속해서 병원에 다녀야 하는 질환이 있음에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이를 국가 별로 비교해 보면 보건 복지 정책의 수준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즉 미충족 의료 비율이 높을수록 보건 복지 수준이 떨어지는 것이다. 


다음은 보건 복지 포럼에서 2013년 발표된 '우리나라 건강수준과 보건의료 성과의 OECD 국가들과의 비교'라는 자료에서 발췌한 표이다. 한눈에 보일 정도로 한국의 미충족 의료의 비율이 높다. 또한, 인지된 건강 상태도 낮게 나타나, 건강 상태는 전반적으로 안 좋은데 병원에는 잘 가지 못하는 상태 혹은 병원에 잘 못 가서 건강 상태가 전반적으로 안 좋은 상태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2010년에 더욱 악화하여 다른 OECD 국가들보다 현저히 동떨어진 수준을 보여준다. 사실 자료를 보고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  김혜련, 여지영 '우리나라 건강수준과 보건의료성과의 OECD 국가들과의 비교' (2013)


이와 관련하여 2014년 정책보고서인 '한국 의료패널로 살펴본 우리나라 보건의료'라는 자료를 보면 이러한 미충족 의료의 원인은 65세 미만의 경우 시간 부족 때문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65세 이상의 경우 경제적 이유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의학 기술로는 의료 선진국이고 공공 의료 보험 제도를 갖춘 나라, 병원을 개원하기 힘들 정도로 이미 많은 병원을 가지고 있는 나라임에도 시간과 돈이 없어서 병원에 못 가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에서는 노인·장애인·도서벽지 주민의 물리적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을 이유로 원격 진료부터 시행해야겠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첨단 장비와 우수한 인력을 마련해 두고 환자가 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병원이 곳곳에 있음에도 갈 시간이 없어서 치료를 못 받고 있다는 현실. 경제 성장의 그늘에 가려 제대로 챙기지 못한 노동자의 건강권이 처한 현실이다. 그나마 노동자의 건강을 챙기기 위해 만든 특수 건강 검진, 보건관리 대행도 노동자에게 병원에 가고 치료받을 시간과 정신적 여유를 주지 않는 이상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지 않을까. 노동자들이 마음 편히, 여유롭게 내 건강을 챙길 수 있는 날, 그것이 당연하게 생각되는 사회가 될 때까지 직업환경의학과 의사가 해야 할 일들이 참 많아 보인다.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열사병의 원인은 태양이 아니라 저열한 제도/ 2015.7

열사병의 원인은 태양이 아니라 저열한 제도

 

 

류현철 회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얼마 전 반가운 산재 승인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내심 재판까지 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했던 사안이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 인정되어 승인됐다는 것이다.

 

지난해 늦여름이나 초가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조선소에서 일하던 만 23살의 젊은 하청 노동자의 '돌연사' 건으로 연락이 왔다. 그는 8월 한여름 낮에 조선소에서 작업하던 도중 혼자 쓰러진 상태로 동료 작업자에 발견돼 응급실로 후송됐으나 결국 사망했다.

 

담당 의사는 심근경색을 사망 원인으로 의심했고, 돌연사의 가장 흔한 원인이 되는 것이 뇌심혈관계 질환이기에 그쪽으로 가능성을 두고 있었으나 국과수의 부검 결과 뇌심혈관계 질환의 가능성은 배제됐다는 것이다.

 

"의사 선상, 뭐라도 쫌 방법을 찾아보소! 어떻게 안 되겠능교?"

 

부검 소견으로 산재의 가능성도 멀어지는 듯해 답답한 마음에 내게 연락을 넣었던 모양이었다. 부검 소견상 사인은 불명이었지만, 응급실 진료 기록상 간 수치가 높아서 급성 간 부전에 의한 사망의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언급은 있었다고 했다.

 

당일 오전까지도 멀쩡하게 일하던 젊은 노동자의 급작스러운 죽음을 급성 간 부전으로 인한 것이라고 보는 것은 적절해 보이지 않았지만, 간 효소 수치가 급성 간 부전을 언급할 정도로 높았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열성 질환(열사병)의 경우에 간 효소 수치의 급격한 상승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뭐라도 '쫌' 해봐야 했다

 

최초 발견 후 후송된 응급실 진료 기록 전체, 부검 소견서, 과거 건강 검진 기록을 다시 검토했다. 최초 발견자의 진술을 다시 확인하고 고인이 일하던 조선소 현장을 찾아갔다. 그의 일은 선체 외부 용접을 하기 위해서 선체 안에서 용접할 철판을 100~120도까지 예열하고 용접이 잘 이뤄지도록 백킹제라는 것을 탈부착하는 업무였다.

 

그가 쓰러진 날은 8월, 한여름 낮의 날씨는 작업장의 열기를 더했을 것이다. 열사병의 가능성은 컸다. 그러나 열사병의 경과로는 너무 급작스러운 사망이었다. 의료 기록에서 응급 검사 기록상 높은 간 효소 수치, 심근경색으로 인한 사망으로 의심했던 심근 효소 수치의 증가(열사병의 경우에도 심근효소 상승 이 있을 수 있다)를 확인했다. 이 역시 열사병에서 나타날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역시 발견부터 사망에 이르는 시간 경과상 열사병으로 인한 사망의 가능성은 적었다.

 

그러나 최초 도착 시 질식 상태에 대한 언급, 응급 간호 기록지에서 기도 흡인을 할 때 음식물이 배출됐다는 사실 역시 확인했다. 최초 발견자가 말했던 구토의 흔적이나 얼굴이 검게 돼 있었다고 언급한 정황과 맞춰보면 기도 폐색으로 인한 질식의 가능성이 있었다. 일반적으로는 열사병으로 그렇게 이른 시간에 사망에 이르기는 힘들 것이고, 또한 정상적인 경우라면 술에 취하거나 뇌 손상도 없는 젊은 성인 남자가 구토로 질식에 이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열사병으로 활력과 의식이 떨어진 상태에서의 구토라면 다르다.

 

"열중증(열사병)으로 인한 활력 및 의식 저하를 동반한 구토, 구토물의 기도폐색으로 인한 질식사"가 의심됐고 기존의 문헌 자료 검토와 의무 기록, 현장 검토 기록을 첨부해 업무와 관련한 사망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업무 관련성 평가 소견서를 작성했다. 그 건이 다행히 산재로 인정되었다.

 

필사의 노동, 목숨까지 앗아갔다

 

근간의 일 중 적지 않은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먼저 젊은 조선소 하청 노동자의 외로운 죽음이 업무와 관련된 것이었음이 입증된 것이 중요한 의미이다. 남겨진 가족에게는 아주 작은 위안이라도 될 것이다. 또 한편으로 직업환경의학을 하는 의사로서의 작은 의미와 보람을 일깨워준 일이기도 하다.

 

응급실에서 처음 고인을 접한 의사 의견도, 국과수 부검의의 의견도 의학적 사실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었으며 그들의 책무를 다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다만 그들은 고인의 직업과 일을 돌아볼 자리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 죽음이 의미하는 바를, 그 죽음의 진짜 원인을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인은 열사병, 기도 폐색이면서 또한 원·하청 제도이기도 하다. 그것을 밝히고 이야기하는 것이 직업 환경 의학 의사의 일이다.

 

8월 한여름 거대한 강철 구조물 안에서 벌어지는 필사의 노동. 조선소 하청 업체 노동자는 추천을 받아 직영으로 들어가게 해준다는 직영 추천제가 주는 작은 희망에 매달려 그렇게 일하다가 쓰러졌다. 스물세 살이었다. 고인이 남긴 휴대 전화의 문자 대화들을 보라. 이런 현실에서 빚어진 노동자의 죽음이 업무와 관련한 사망임을 밝히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사후약방문일 뿐이다.

 

 

 

 

▲ 열사병으로 사망한 노동자 휴대폰에 남아 있던 문자

 

이런 애달픈 죽음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바로 이제부터 할 일이다. 열사병에 이르게 하는 혹독한 작업 환경이 개선돼야 할 것이며, 더불어 자신의 건강과 안전에 위협을 느끼게 되는 상황에서는 작업을 중단할 수 있는 당연한 권리를 줘야 한다. 어떻게든 직영이 되고자 가혹한 조건의 노동을 감내하고 휴식의 기회조차 내놔야 하는 현실 속에서 하청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은 위협받기 마련이다.

 

다시 뜨거운 여름이 다가온다. 노동자들의 건강을 열사병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 맞서야 할 것은 무심한 태양이 아니다. 열사병의 원인은 태양이 아니라 저열한 제도(制度)에 있다.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잘 살려고 하는 노동인데/ 2015.6

잘 살려고 하는 노동인데...


나후오 후원회원


교대제 근무는 본디 일부 특수직종(군인, 선원 등)에만 있었던 근무 형태였으나 산업화와 자본주의의 확산으로 인해 이제는 너무도 당연한 근무형태로 자리를 잡고 있다. 하지만 이미 많은 연구가 교대근무 자체가 노동자의 건강에 상당한 위험요인임을 밝히고 있지만, 자본은 교대근무를 포기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장시간 노동도 자본이 포기하기 힘들기는 마찬가지 인가보다. 자본주의 초기 하루 16~18시간씩 노동을 강요하다가 노동자들의 끈질긴 투쟁으로 10시간, 8시간 하루 노동시간을 줄여왔지만, 여전히 현실에서 하루 8시간 이상 노동하는 노동자를 만나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이니 말이다.


직업환경의학과 전공의로 첫 근무를 시작한 2012년 3월, 한 노동자가 외래를 방문하였다. 그는 인쇄 업종에서 약 10년간 근무한 노동자로, 약 두 달 전 두통과 어지러움을 느껴 병원을 방문하여 ‘동맥류 파열에 의한 뇌지주막하출혈’ 진단을 받았으며, 현재 치료 중이라고 하였다.



건강하던 노동자의 뇌출혈


지주막하 출혈은 자발성 또는 외상성으로 나눌 수 있는데, 환자는 머리 부분의 충격이나 사고는 없었기 때문에 외상성 출혈을 배제하였다. 지주막하 출혈의 원인은 뇌동맥류 파열이 가장 큰 원인으로 알려졌다. 뇌동맥류가 생기는 원인 및 병태생리는 명확히 밝혀져 있지 않지만, 뇌동맥류의 파열은 혈압 상승이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그러나 이 노동자는 고혈압으로 진단받거나 치료받은 병력이 없었으며, 가족 중 고혈압 병력을 가진 이도 없다고 하였다. 뇌동맥류가 발생할 가능성은 차치하고도 갑작스레 뇌출혈이 발생할 이유는 없어 보였으나, 환자면담을 통해 듣게 된 이야기는 교대근무, 장시간 노동, 과중 노동 등 무척 힘든 상황이었음을 짐작게 하였다. 인쇄노동자 대부분이 업무 과다와 인원 부족으로 인한 장시간 노동과 교대근무(야간작업), 불규칙적 휴일 등의 상황을 겪고 있었다.

교대근무는 지속적 연구를 통해 뇌심혈관 질환과 관련이 있음이 밝혀져 있고, 그 외에도 이황화탄소, 질산염, 일산화탄소, 유기용제 등의 화학적 요인과 고온, 한랭, 소음, 진동 등의 물리적 요인, 장시간 노동, 업무과부하, 직무 스트레스 등 사회 심리적 요인이 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러한 원인 중 화학적, 물리적 요인에 대한 객관적 검토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노동자가 가지고 있는 자료는 자신의 근무시간표가 전부였으며, 몇 장 찍어온 사진에서도 인쇄에 사용되는 물질이나 환경을 쉬 짐작하기 어려웠으며, 현장을 방문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2조 2교대, 하루 11시간 근무


그러나 근무표를 검토하고 나니 교대근무와 장시간노동이 원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질병 발생 전 3개월 동안의 근무일과 근무 시간을 검토하였다. 휴일은 일요일이 유일했으며, 이마저도 인쇄소 사정에 따라 불려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이는 근무시간에 표시되지 않았다). 2조 2교대 근무를 하였으며, 오전 근무는 오전 9시부터 저녁 8시까지, 야간근무는 저녁 8시부터 오전 9시까지였다. 월간 근무 시간은 2011년 10월에는 총 25일, 276시간, 11월에는 총 26일 284시간, 12월에는 총 27일 294시간이었다. 이는 일반적 근무시간 주5일, 주당 40시간 근무를 크게 웃도는 시간으로 하루 11시간 정도를 일한 것이다.

결국, 이 노동자의 경우 장시간 근무와 교대근무가 혈압상승을 초래하여 뇌동맥류 파열에 따른 뇌출혈이 발생하였을 것으로 판단하였으며, 업무 관련성이 있다는 취지의 평가서를 작성하였다.

시간이 흐른 지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 노동자 또는 가족들에게 원래 고혈압이 있었다면, 흡연자였다면, 노동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면 나는 업무 관련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 사실 자신은 없다. 근거중심의학이 어쩌고, 논문리뷰가 어쩌고, 의학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고민하고 평가하는 일에 익숙해져 있기에 나라고 많이 다르진 않을 것이다. 직업병을 바라볼 때 ‘과연 그 병이 그 일을 안 했으면 생기지 않았을까?’라는 질문보다 ‘비직업적 소인이 있었다 하더라도 일을 하면서 발생한 질병은 직업병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늘 하는 편이지만, 여전히 머릿속에서 정리가 안 되는 것은 사실이다.

과거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 오늘을 싸우지만, 2015년의 대한민국은 그리 쉬운 상황은 아닌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보다 덜해진 듯도 하지만) 교대근무와 장시간 노동은 여전히 뜨거운 문제이며, 뜨겁게 다루어야 할 문제가 아닐까? 한노보연을 포함한 여러 단체에서 교대근무와 장시간 노동에 대한 조사와 연구를 진행하고 있고, 실제 노동현장에서도 그 문제를 인지하고 있기에 이 사회가 교대근무와 장시간 노동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토론해서 노동자 건강에 긍정적 변화가 일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직업환경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고깃집에서도 폐암이? /2015.5

[직업환경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이야기]

고깃집에서도 폐암이?


Dr. 아이유


53세의 젊은 나이에 폐암을 진단받은 A 씨(남자)가 산재를 신청하겠다고 찾아왔다. A 씨는 18살 때 아주 유명한 고깃집에 취직하여 35년간 연탄불 관리, 식자재 준비, 서빙, 불판(석쇠) 세척 및 청소 등 하루 14시간 이상 식당의 거의 모든 일을 하면서 고기 구울 때 나오는 연기와 손님들이 피우는 담배 연기 때문에 폐암이 진단되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자세히 물어보니 장기간 근무하였던 고깃집은 연탄 구이 전문점이었는데, A 씨는 초기 15년간 식당에 거주하면서 하루 평균 16~18개의 연탄을 관리하였고, 다음 날 연탄을 사용하기 위해 밤에 자기 전에 연탄 1개는 살려놓았다고 한다. A 씨가 가져온 과거 고깃집의 사진에서는 10평 남짓한 좁은 실내에 동그란 테이블이 7개가 있었고, 테이블 안에서 피우는 연탄으로 사람들이 고기를 구워 먹고 있었는데, 요즘 같이 고기 구울 때 나오는 연기를 빨아들이는 환기장치 따위는 없었다. 그 당시 송풍기가 4~5대 설치된 것 말고는 환기장치는 없었다. A 씨는 비흡연자라고 하였고, 의무기록에서도 비흡연자로 기록되어 있었는데, 과거 고깃집 사진 속에서는 손님들이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도 담겨있었다.

A 씨가 근무하였다는 고깃집을 가보니 현재는 대부분 숯불구이로 고기를 굽고 있었고, 일부 1~2개 테이블에서만 연탄으로 고기를 굽고 있었는데, 식당 사장님에게 물어보니 과거에는 연탄 돼지 소금구이로 유명한 집이라고 하였다. 현재도 식당 뒤편 건물 사이 실외 공간에는 숯을 만드는 곳과 사용하지 않은 연탄이 쌓여 있는 집으로 여전히 국소배기장치는 식당 천장에만 있었다.



연탄을 포함한 여러 형태의 석탄이 완전 혹은 불완전 연소하면 일산화탄소, 이산화질소, 다핵방향족탄화수소(PAHs), 벤젠, 포름알데히드를 포함하여 연탄에 불순물로 함유된 황, 비소, 규소, 불소, 납, 수은 등 다양한 분진, 가스, 금속이 발생하는데, A 씨와 같이 석탄(연탄)을 실내에서 장기간 사용하게 될 경우 폐암 위험도가 증가한다. 실내 석탄 사용과 폐암과의 관련성에 관한 연구는 중국에서 농촌 지역으로 분류되는 윈난 성(Yunnan)에서의 연구가 많은데, 실내에서 석탄(연탄)을 이용하여 요리나 난방을 사용하는 농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석탄 연소물질의 대부분을 집 바깥으로 배출시키는 통풍구(연통)가 없는 집에서 사는 사람들이 폐암 위험도가 높다고 한다. 또한, 석탄 난로 사용 기간이나 석탄을 연료로 요리한 기간이 길수록, 석탄 사용량이 많을수록 폐암 위험도는 더 높았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연탄을 많이 사용하였기 때문에 연탄 사용이 국내 폐암 발생에 기여가 높을 수도 있지만, 중국과 달리 그나마 국내에서 연탄을 사용하던 시기에는 아궁이와 구들에 연결된 굴뚝을 설치하였기 때문에 중국 윈난 성의 농부보다는 영향을 덜 미쳤을 것이라고 보인다. 그래도 한두 번 연탄가스를 마셔본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연탄 연소물질이 제대로 배출되는 집에 살았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연탄 구이 전문점이라고 하는 곳은 지역의 명물 맛집이 되어 현재도 각종 블로그에 고기 맛을 자랑하고는 있다. 다행히도 A 씨는 실내 연탄 연소물질 노출로 산재가 인정되었지만 국소배기장치가 제대로 설치되어 있지 않은 연탄 구이 전문점에서 지금도 손님 테이블의 고기를 굽거나 서빙을 하면서 연탄 연소물질에 지속해서 노출되는 A 씨와 같은 식당 노동자들은 앞으로 폐암 발생 위험이 클 수 있다.

A 씨를 만난 이후 나는 가끔 연탄 구이 전문점이 그리워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연탄 구이 고깃집을 방문할 때는 연탄 바로 위에 국소배기장치가 있는지, 실내 환기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보는 버릇이 생겼고, 거기서 일하시는 식당 노동자분들을 다시 한 번 보게 되었다. 노동부나 환경부가 이런 작은 노동 현장에도 관심을 두길 바라면서...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돌, 밥, 이 /2015.4

[직업환경의학의가 만난 노동자건강 이야기]

돌, 밥, 이

공유정옥


몇 년 전, 사업장 보건관리 대행차 경기도에 있는 어느 채석장에 출장을 나갔다. 점심시간에 맞추어 구내식당에 들어가 앉았다. 이윽고 오전 업무를 마치고 잔뜩 허기진 노동자들이 들어왔다. 대개 오륙십대 나이로, 키는 작지만, 몸이 제법 다부지다. 방금 씻고 온 두 손과 얼굴을 빼고는 여기저기 하얀 돌 먼지투성이다.

안녕하세요, 건강 상담하러 오세요, 나랑 간호사가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나긋나긋하게 말하면 못 듣기 때문에 크게 말해야 한다. 채석장 소음 때문에 청력이 다들 나이에 비해 떨어져 있다. 하지만 씩씩하게 인사해도 대부분 힐끗 쳐다만 보고 배식대로 직행한다. 가끔 낯익은 ‘단골손님’들은 눈인사를 건네기도 하지만 발걸음은 배식대로 향한다.

채석장 식당에는 제육볶음 같은 고기반찬이 꼭 하나씩 나온다. 힘을 많이 쓰는 사업장에 가면 늘 그런 것 같다. 밥 푸는 모습을 본다. 배가 몹시 고플 텐데 누구도 서두르지 않는다. 차분히 밥을 퍼서 쌓아올린다. 멀리서도 식판 위로 하얀 밥 봉우리가 보일 정도다. 한 걸음씩 움직일 때마다 식판 위에 김치 봉우리, 나물 봉우리, 제육볶음 봉우리가 하나씩 소복하게 쌓인다.

일단 밥을 받아서 좋은 자리를 찜해 놓으면 몇 분이 우리에게 온다. 혈압만 재고 벌떡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로는 혈당도 재고 여기저기 아픈 데 얘기를 좀 하기도 한다. 하지만 상담은 길어야 삼사 분을 넘기 어렵다. 증상을 이것저것 듣고 나서 뭔가 얘기를 좀 해볼라치면 밥이 식는다고 야단이다. 식사 다 하신 다음에 다시 오시라고 보내드리는 게 상책이다. 그러고는 십여 분 동안 우리는 그들이 밥 먹는 모습을 지켜보며 기다려야 한다. 하도 맛나게 먹으니, 어떨 땐 나도 모르게 넋을 놓고 바라보기도 한다. 기다리는 동안 이따 점심은 뭘 먹을까, 여기 음식이 좀 남으면 그냥 여기서 때우면 좋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한다.


밥을 먹는 동안 얘기를 나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식판에 수저가 달그락거리는 소리, 김치 씹는 소리, 후루룩 국물 마시는 소리 속에서 낮게 웅성거리다가 한 번씩 웃는 소리, 기침 소리가 나는 정도다. 단조로운 소음인지라 가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때가 있다. 텔레비전을 보다가 음소거 단추를 누른 것처럼. 그럴 땐 밥을 씹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들이 더 소상히 보인다.

그를 본 것도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유난히 깡마른 몸집에 얼굴이 작아서, 대추씨라 불리던 옛날 코미디언을 연상시키는 외모의 아저씨였다. 그가 밥을 씹는 모습이 어딘가 남달라서, 왠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찬찬히 지켜보니 그는 남들보다 오래오래 씹었다. 씹을 때마다 아래턱이 유난히 많이 움직였고, 두 볼은 깊이 꺼졌다 나오곤 했다. 옛날 우리 할머니가 틀니 없이 밥을 씹을 때 보았던 모습이었다. 밥을 다 먹은 뒤 물 한 잔으로 입을 오래오래 헹구는 것 하며, 상담하는 내내 쯥쯥거리며 입 청소를 하는 것조차 꼭 우리 할머니 같았다.

그는 어금니가 없었다. 앞니부터 송곳니까지만 용케 남아있었다. 어금니가 받쳐주지 못하는 두 볼은 움푹 패었고, 가뜩이나 작은 얼굴은 더욱 작아 보였다. 입안에 혀가 의지할 곳이 없으니 말할 때마다 바람이 샜다. 가족은 없고, 학교는 못 다녔으며, 여기 일이 힘들긴 하지만 혼자 사는데 궁할 정도는 아니라 했다.

하지만 그는 어금니가 없었다. 오십 대 중후반의 나이에, 요새 그 흔하다는 임플란트는 물론이고 틀니도 없었다. 돈이 없어서 못 한 건지 불편할 게 없어서 안 한 건지 묻지 못했다. 어쩌다 어금니가 몽땅 빠진 건지도 묻지 못했다. 다만 그의 삶에 이를 잘 닦아야 할 이유나 충치 치료를 받으러 갈 생각 같은 게 자리 잡을 수 없었던 것만은 분명했다. 치과에 한번 가보시는 게 어떨까요? 넌지시 건넨 한마디에, 그는 입을 다문 채 배시시 웃어 보이고는 묵례를 하고 일어섰다. 그는 돌 캐는 노동자, 이가 없어서 밥을 오래 씹어야 하는 노동자다. 

[직업환경의학의가 만난 노동자건강 이야기] 장애가 있는 노동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 2015.2

장애가 있는 노동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강충원 직업환경의학의

 

 

2년 전쯤 모 방송국 의학전문기자를 하는 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장애인들의 건강검진 수검률이나 병의원 방문 횟수, 운동 등 건강습관이 비장애인에 비해 열악하다는 기사를 쓰려고 하는데, 혹시 개선할 방법을 생각해 본 적이 있냐는 것이었다. 그 때부터 일터에서의 장애 노동자들의 건강보호와 증진에 작은 관심이 더 생긴 것 같다.

 

우리나라는 장애인의무고용제도에 따라 국가·지방자치단체나 50명 이상 공공기관은 직원 수의 3%, 50인 이상 민간 기업은 2.7%를 의무적으로 고용해야한다. 우리가 방문하는 보건관리대행사업장도 50인 이상이기 때문에 적어도 사업장별 1.5명 이상의 장애인 노동자를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사업장을 방문해서 보건담당자에게 장애인 직원을 물어보면 대부분 미준수금을 내고 별도로 고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사업장에서 고용한 장애 노동자뿐 아니라, 장애인보호(근로)사업장과 건강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장애를 숨기고 지내는 노동자를 만난 경험이 있어 몇 가지 공유하고자 한다.

 

우리가 일터에서 마주치는 장애를 가진 노동자들은 어떤 분들일까? 일하다가 산재 후 절단·척수장애 등 지체장애나 청각장애, 뇌병변 장애 등을 가지고 복귀하는 경우나 암, 고혈압/당뇨 합병증이나 신장, 심장, 간, 호흡기, 장루·요루 장애를 가진 분들이다. 이러한 장애는 일부 기업에 고용된 시각장애인 안마사 외에 겉모습만 봐서는 알 수 없고 면담하면서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혹시나 회사가 알게 되면 불안감에 자신이 계속 일을 할 수 있는지, 건강에 문제가 되는지, 다른 일로 전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문의가 온다(이것을 전문 용어로 ‘업무적합성평가’라 한다). 고용이 불안한 우리나라에서 장애는 숨기는 것이 장땡인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스트레스나 화학물질, 육체적 부담 등 일하는 환경이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어 숨기는 것이 독이 될 수도 있다.

 

사실 장애 노동자들을 가장 많이 만나는 경우는 장애인보호사업장이나 장애인근로사업장이라는 곳들인데, 이런 곳들의 사업주나 국가는 대부분 일반적인 노동자로 대하기보다는, 자신들이 “갈 곳 없고, 할 것 없는 사람들”을 보호하거나 도와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 기본적인 노동조건이 최소한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장애 노동자에게는 최저임금도 주지 않는다(장애인은 한명 몫을 다 못한다고 최저임금 적용에서 제외되는 대상임). 이렇게 인가받은 장애 노동자는 2013년 기준 4,500여명이고, 이들의 시급은 최저임금(2013년 4,860원)의 57.1%에 불과한 2,775원이다(한겨레신문). 최근 박근혜정부가 2017년부터 장애 노동자에게 능력에 따른 최저임금 감액제도를 시행한다니, ‘최저’라는 말이 참 무색하다.

 

주로 장애인을 많이 고용한 사업장은 주로 친환경세제나 쓰레기봉투를 만드는 사업장, 토너 재생공장, 인쇄분야, 칫솔이나 생필품을 만드는 공장이다. 지적장애나 지체장애, 발달장애 등 다양한 장애를 가진 분들이 많고 그나마 건강검진이라도 받는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검진결과에 따라 병원을 가야될 경우 보호자들이 화를 내는 경우가 많고, 사업장에서 동행도 하고 복약지도도 하는 것을 기대하기 쉽지 않다. 운동이나 식단개선 등 생활습관개선은 개인별 맞춤으로 관심을 가지고 진행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그런 시설을 들어본 적이 없다. 더군다나 유기용제나 근골격계질환과 관련된 이야기를 근로자 개인에게 아무리 설명하고 이해시키려 하지만, 짧은 만남으로는 쉽지 않다. 회사에서도 불쾌하게 생각하는데 나는 의사로서 설명의무를 다했다고 면죄부를 줄 수도 없다. 아직 부족하지만 꼭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애를 써본다. 특히 곁에서 장애인들을 적극 지지, 격려해주는 비장애인 노동자들이 있는 경우에는 많은 희망이 있다.

 

열정을 가지고 방문했던 ◯◯공방이라는 가구제작 공장이 있었는데, 소음이 아주 심했지만 청각장애인분들이 많아서 별 신경을 안 쓰다가 청력이 남아있거나 정상인 분들도 가끔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화들짝 놀랐던 곳이었다. 분진이나 포름알데히드, 도장시 유기용제나 중금속 문제에 대해 회사와 논의하였고, 질병의 기본개념이나 건강에 대한 생각을 소통하는 것을 시작으로 보호구를 지급하고, 특수건강검진도 시작하기로 하였다. 청각장애가 있다 보니, 이분들은 동네 의원을 가서도 설명을 잘 듣지 못하고 오는 경우가 많았고, 그나마 사업장에서는 수화를 통해 소통이라도 가능했기에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조금씩 변화가 보였다. 여러 한계에도 우리 간호사 선생님이 수화도 배우고, 못하는 엑셀로 표도 만들어 그분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참 좋았다.

 

굳이 장애 노동자 건강 이야기를 따로 꺼내들었던 이유는 다른 영역에서처럼 사업장 건강관리에서도 쉽게 무시되기 때문이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산업안전보건법, 근로기준법에서 소외되어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상실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사업장을 방문하는 의료인이든, 함께 일하는 비장애 노동자든 ‘편견 없이 대한다’는 것은 똑같은 시간과 노력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똑같은 건강을 누릴 수 있도록 대하는 것이다. 일터에서도 장애 노동자들이 “최적의 건강”을 누릴 수 있는 날이 오도록 함께 애를 써야 할 것 같다.

 

[직업환경의학의가 만난 노동자건강 이야기] 갑질, 장시간 노동, 직무스트레스 그리고 건강 / 2015.1

갑질, 장시간 노동, 직무스트레스 그리고 건강



조성식 회원



몇 달 전 실험실에서 실험 업무를 수행하는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특수검진을 한 적이 있었다. 실험실은 여러 가지 화학물질을 취급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나 대학원생은 특수검진을 해야 한다. 그런데 문진에서 한 대학원생이 화학물질로 인한 건강문제가 아닌,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것이었다. 그의 스트레스는 교수의 갑질과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것이었다. 많은 대학원생이 지도교수의 엄격한 통제 하에서 장시간 일하고 있고, 지도교수의 개인적인 잔심부름과 같은 학업과 무관한 일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으며, 실험 업무에 대한 경제적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직무스트레스를 자세히 조사하지는 않았지만, 이들이 처한 상황을 생각했을 때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고 생각되었다. 직무스트레스를 좀 더 학술적으로는 살펴보자. 미국의 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소는 “직무스트레스란 업무상 요구사항이 노동자의 능력이나 자원, 바램과 일치하지 않을 때 생기는 유해한 신체적 반응”이라 정의하고 있으며, 유럽에서는 “업무 스트레스란 업무내용, 업무 조직 및 작업환경의 해롭거나 불건강한 측면에 대한 정서적 인지적 행동적 생리적 반응 패턴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 같은 직무스트레스는 뇌심혈관 질환, 근골격계 질환, 정신건강 문제, 산업재해 발생을 증가시킨다. 


직무스트레스 평가를 위한 모델에는 직무요구·통제 모델과 노력-보상 불균형 모델, 조직정의 모델 등이 있으며, 한국에는 ‘한국형 직무스트레스 측정도구’가 개발되어 있다. 조사는 주로 설문지를 통해서 하게 되는데, 직무요구·통제 모델은 직무요구도가 높으면서도 본인이 업무를 통제할 권한이 없는 노동자들이 겪는 직무스트레스를 보는 모델이고, 노력-보상 불균형 모델은 본인이 기울인 노력에 비해 그로 인한 보상(금전적 보상이외에도 심리적 만족과 승진과 같은 자기발전의 기회도 포함한다.)이 적은 경우에 겪는 스트레스를 보는 모델이다. 한국형 직무스트레스 측정도구는 물리적 환경, 직무요구, 직무자율성, 관계 만족, 직무불안정, 조직체계, 보상부적절, 직장문화에서 겪는 스트레스를 평가한다.


직무스트레스를 줄이는 방법에는 평등 사회를 만드는 것과 같은 거시적인 해결 방안부터, 회사 내의 직무스트레스를 발생시키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중간 단계의 개입, 그리고 운동, 인지행동치료, 명상과 같은 개인적 차원에서 개입 등 다양한 수단이 있다. 최근의 경향을 보면 손쉬운 개인적인 중재 방안에 많은 관심과 노력이 치우쳐져 있는데, 직무스트레스의 근원적 해결 방안인 사회적, 구조적 문제에 대한 접근에 보다 많은 노력들을 기울여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사회의 직무스트레스 예방대책은 산업안전보건법(규칙)에 규정되어 있는데, 예방대책이라 하기에 한계는 명백해 보인다.


제669조 (직무스트레스에 의한 건강장해 예방 조치) 사업주는 근로자가 장시간 근로, 야간작업을 포함한 교대작업, 차량운전[전업(專業)으로 하는 경우에만 해당한다] 및 정밀기계 조작 작업 등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 등(이하 "직무스트레스"라 한다)이 높은 작업을 하는 경우에 법 제5조제1항에 따라 직무스트레스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을 위하여 다음 각 호의 조치를 하여야 한다.

1. 작업환경·작업내용·근로시간 등 직무스트레스 요인에 대하여 평가하고 근로시간 단축, 장·단기 순환작업 등의 개선대책을 마련하여 시행할 것

2. 작업량·작업일정 등 작업계획 수립 시 해당 근로자의 의견을 반영할 것

3. 작업과 휴식을 적절하게 배분하는 등 근로시간과 관련된 근로조건을 개선할 것

4. 근로시간 외의 근로자 활동에 대한 복지 차원의 지원에 최선을 다할 것

5. 건강진단 결과, 상담자료 등을 참고하여 적절하게 근로자를 배치하고 직무스트레스 요인, 건강문제 발생가능성 및 대비책 등에 대하여 해당 근로자에게 충분히 설명할 것

6. 뇌혈관, 심장질환 발병위험도를 평가하여 금연, 고혈압 관리 등 건강증진프로그램을 시행할 것


우선, 직무스트레스의 범위를 “장시간 근로, 야간작업을 포함한 교대작업, 차량운전 및 정밀기계 조작 작업 등”으로 한정하여 지나치게 협소하게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 첫 번째 문제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직무스트레스를 어떤 노동자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고, 직무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어떠한 중재를 할 것인가에 대한 규정이 없어서 실효성이 거의 없다고 판단한다. 최근 야간작업 노동자들에 대해 특수검진이 도입되었지만, 건강검진 조치 외에 야간노동을 최소화하기 위한 법적 규제는 없다는 점은 명백한 한계지점이라 말할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직무스트레스의 대표적 사회적 요인인 불안정 노동의 규모가 대폭 줄어야 할 것이고,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없애야할 것이며, 갑들의 횡포를 사회적으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으며, 직무스트레스의 어느 모델에 기반 하더라도, 그들이 경험하는 직무스트레스 역시 가장 높을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또, 한국사회에 만연한 장시간·저임금 노동 역시 가장 중요한 직무스트레스 요인 중 하나일 것이다. 또 갑들의 부당한 횡포를 사회적으로 막을 사회적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자신이 느끼는 직무 스트레스를 객관적으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이를 위한 산업안전보건법이 정비돼야 할 필요가 있다. 다수의 노동자들이 느끼는 직무스트레스의 수준을 평가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 이야기] 중소사업장 사내하청 노동자와 보건관리대행 / 2014.12

중소사업장 사내하청 노동자와 보건관리대행



이선웅 직업환경의학의



필자는 주로 300인 미만의 중소규모사업장 노동자들을 3개월 또는 6개월 간격으로 방문하여 정기적으로 건강상담을 하고 있다. 그런데 지속적 관리가 필요한 만성질환자가 입사 후 한두 번의 상담만 하고 곧 퇴사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특히 대부분이 단기계약직인 사내하청업체에서 흔한데, 매달 방문하는 간호사로부터 이번 달 상담예정자가 퇴사하였으며 마지막 상담 이후 치료나 적절한 관리 여부조차 확인되지 않은 상태였다는 말을 흔하게 듣고, 어느덧 이를 당연하게 여기며 다른 노동자를 대하게 된다.



① 대기업 사내하청업체에서 일하는 42세 김◯◯ 씨. 작년 하반기 입사하여 3월 검진 시 공복혈당 152, 5월 상담 시 식후혈당 224로 치료가 필요한 당뇨병 상태라고 하였으나 8월 상담 시 치료받지 않은 상태였으며 이후 곧 퇴사. 

② 같은 회사의 37세 지◯◯ 씨. 검진 시 식후 혈당 230으로 당뇨가 의심되어 추가 검사를 권유하였으나 역시 진단과 치료 여부 확인하지 못한 채 얼마 전 퇴사. 

③ 대기업 사내하청업체에 작년에 입사한 31세 한◯◯ 씨. B형간염 보균자로 검진 시 간 기능 수치가 높아 B형간염 활성화의 가능성이 있으니 추가 검사가 필요하며 항바이러스제의 투여가 필요할 수 있다 하였으나, 얼마 전까지 병원에 가지 않은 상태로 최근 퇴사. 



물론 퇴사 전까지 어떤 치료나 진단을 받지 않은 상태로 상담이 끝났다는 사실만으로 이분들의 앞으로의 건강상태를 예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렇게 도급업체를 전전하며 단기 계약직 신분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치료에 들어서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며, 의사 상담은 물론 건강검진까지도 빠질 가능성은 다분해 보인다(일반적으로 비정규직의 특수검진 수검률은 정규직에 비해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러한 현실은 정작 산업보건서비스가 필요한 노동자를 소외시키게 하고 사업주에게는 법정 관리 책임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든다.



심각한 것은 단기계약직이 대부분인 사내하청업체들이 최근 중소사업장 내에서 너무나 많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담당하는 중소사업장들은 대기업의 사내하청이거나 대기업의 외주업체인 경우가 많은데, 언제부터인가 대기업 외주업체 상당수는 다시 사내하청을 두어 사업장을 여럿으로 나누어 놓는 경우가 다반사다. 특히 자동차와 전자산업의 외주업체는 그런 경향이 심한 것으로 보이고 그 외의 다른 제조업도 일반적인 경향이 돼가는 것 같다. 또 대형마트 등의 대형물류센터는 다양한 전문 아웃소싱 업체들로 인력이 나뉘어 있고, 대개 단기계약으로 인력을 관리하고 있다. 100여 개의 담당사업장 중 1/5가량이 중소사업장의 사내하청업체인데 이들은 보건관리대행을 하는 50인 이상 사업장이라 50인 미만으로 나뉜 사내하청업체를 포함하면 그 규모는 2배 이상일 것이다. 



단기 계약직은 일부 대기업 외주업체에서 흔한 고용 형태이나(일례로 00 전자의 한 외주업체는 240명가량의 근무인력이 있으나 작년 한 해 40%가량이 퇴사하고 재입사한 걸로 기억한다), 중소사업장의 사내하청업체에서 더 흔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원청의 단가인하 압력과 물량변동에 대한 대응을 계약해지로 쉽게 해결하려는 하청업체의 특성이 영세사업장일수록 심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공단지역 중소 영세업체 노동자의 임금은 최저 임금 수준이며, 정규직 일자리는 찾아보기도 힘들고 설령 정규직 일자리가 있다 하더라도 임금이나 근무조건이 안 좋은 경우가 많다. 따라서 부족한 임금을 초과노동으로 메우기 위해 잔업과 특근이 많은 회사로 물량을 따라 쉽게 이직하는 형편이다. 



이러한 현상은 IMF 이후 대기업 중심의 구조조정과 그 이후에도 지속하는 재벌·대기업 위주의 정책으로 대다수 중소기업을 다단계하청 줄 세우기로 만들어 그들을 무차별적인 생존경쟁으로 내몬 결과이다. 사내하청 같은 간접고용은 -특히 제조업에서-지속해서 확대되었고[각주:1] 2014년 한국은 근속기간이 1년 이하인 단기근로자가 38%로 OECD에서 단기근로자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되었다.  

 


보건관리대행과 같은 산업보건사업은 한 사업장 단위로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이것은 노동자들이 한 사업장에서 최소 몇 년간은 지속해서 근무하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졌다고 본다. 하지만 최근 단기근무와 이직이 만연한 사업장에서 이러한 전제는 어긋나고 있으며, 연쇄적인 하청구조의 가장 하위층인 중소사업장 사내하청노동자는 전반적인 산업안전보건으로부터 방치된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과 재벌의 이윤을 극대화해서 우리의 삶에 무엇이 얼마나 좋아지고, 또 무엇이 남아 있을지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1. 2001년 대비 2012년 금속노조 사업장내 비정규직은 27.3%에서 51.8%로 증가했으며, 사내하청 노동자는 19.8%에서 41.6%로 증가하였다. [본문으로]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 이야기] 진료실에서 만나는 간호사들 / 2014.11

진료실에서 만나는 간호사들

 

 


김세은 운영집행위원

 

 

 

지금이야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는 삶을 살고 있지만, 인턴, 그리고 전공의 1년 차 때는 그야말로 당직을 ‘밥 먹듯이’ 하며 지냈다. (물론 4년 내내 당직이 많은 다른 과에 비하면 나은 형편이지만 말이다.) 인턴 때는 매달 다른 과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당직일수가 달마다 꽤 차이가 났지만, 전공의 1년 차 전반기 6개월 동안은 일주일 중 22시간을 제외하고 늘 당직이었다. 언제든 병동이나 응급실에서 걸려오는 콜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어야 했다. 병동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고, 병동 간호사들과 업무상 접촉할 일이 많았기 때문에 자연히 가까워졌다. 단순히 인사하고 업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넘어 농담을 주고받거나 사소한 것을 챙겨주기도 하는 간호사들도 있었다. 한동안 안 보이는 간호사가 있으면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해 하기도 했다.

 

 

병동에서 일하며 만났던 간호사들은 대부분 웃는 얼굴일 때가 많아졌고 친절했다. 아픈 환자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돌보는 일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알 수 있었지만, 다른 어려움, 특히 교대근무에 대해서는 다들 그럭저럭 적응하며 일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니, 직업환경의학을 하는 의사로서는 부끄럽게도 크게 어려움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그다지 하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작년부터 야간근무자에 대한 특수건강진단이 시작되고 진료실에서 간호사들을 만나게 되면서, 그들이 일하면서 어떤 고충을 겪는지도 알 만큼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던 것은 나의 착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교대근무자에게 가장 흔한 건강장애는 수면장애라는 것이 익히 알려졌는데, 정말 그렇다. 매일 잠을 이루지 못하는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매일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미 일을 그만두었을지도 모르겠다), 10명 중의 8명 정도는 경한 수준에서라도 불면증이 있었다. 특히, 나이트 근무에서 데이 근무로 넘어갈 때 잠들기 어렵다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이미 나이트 근무에 적응된 상태인 데다가, 이른 새벽에 제대로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심리적 압박에 잠이 오질 않아 2~3시간밖에 자지 못한다고 했다. 그렇게 힘겹게 데이 근무로 넘어가서도 한동안은 정말 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힘들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오롯이 자기 의지만으로 힘겹게 근무를 이어나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심할 때는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약을 처방받아 복용하고 조금 나아졌다는 경우도 있었다. 그 밖에도, 교대근무를 하면서 가슴 두근거림이나 소화불량, 속 쓰림 증상, 생리불순이 잦아졌다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병동이나 부서에 따라 근무 스케줄이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떤 병동은 한 달 동안 데이, 이브닝, 나이트 근무가 모두 들어가도록 스케줄이 만들어지는 곳도 있지만, 어떤 병동은 한 달간 나이트 근무를 집중적으로 하고, 다음 달은 데이 근무를 집중적으로 하게 되어있었다. 부서별로도 차이가 좀 있었다. 특히, 영상의학과의 어떤 팀은 2교대 근무를 하고 있는데 3개월이나 6개월간 연속으로 나이트 근무(게다가 야간에 14~15시간 근무를!)를 하는 곳도 알게 되었다.

 

 

교대근무를 하는 생활에 익숙해질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 몸은 절대로 교대근무에 적응하지 못한다. 진료실에서 실제로 만나본 교대근무자들도 그랬다. 교대근무에 전혀 어려운 점이 없다는 사람들도 가끔 만났지만, 대부분은 한 가지 이상의 건강문제나 어려움을 갖고 있었고, 교대근무를 시작하고 처음 수년간은 그럭저럭 지내다가 뒤늦게 심한 불면증을 겪는 경우도 있었다.

 

 

특수검진을 할 때면 시간에 쫓길 때가 많다. 조금이라도 문진을 길게 하려고 하면,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분들이 많다는 담당 간호사의 재촉을 받기 마련이다. 그래도 ‘어휴, 정말 힘드시겠다’고 한마디 하면 즉각 ‘네, 정말 힘들어요’하는 반응이 되돌아온다. 그렇게 힘겹게 근무를 이어가면서도 그런 어려움에 대해 막상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이 있다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고, 실제로 어려움을 토로할 공간과 시간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근무 시간에는 피곤함을 참아가며 일하고, 동료들과 그나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교대 시간에는 업무 인계하느라 바쁘기 마련이다. 

 

 
어쩌면 그들의 어려움을 물어보고 알아주는 유일한 사람이 직업환경의학과 의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어깨가 무겁다. 교대근무를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는 하지만, 교대근무를 피할 수 없는 곳 중 하나가 병원이다. 당장 진료실에서 건강한 수면에 관해 이야기해줄 수는 있지만, 그들에게 실제로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더더욱, 교대근무자들끼리 터놓고 이야기하면서 개선점을 스스로 찾아 나갈 기회를 만드는 것도 중요할 것 같다.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 이야기] 한국에서 단다린을 기대하는 것은 정녕 불가능한 일인가? / 2014.10

한국에서 단다린을 기대하는 것은 정녕 불가능한 일인가?


백리마 회원


출처 : http://www.ntv.co.jp/dandarin/


2013년에 “노동기준감독관 단다린”이란 일본 드라마가 있었다. 한국으로 치면 근로감독관에 해당하는데 이 드라마를 통해 일본의 임금체불, 하청, 초과노동, 산업재해, 정리해고 등의 노동현안 문제를 바라보는 일본의 상황과 시선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이 단다린 감독관은 한국의 근로기준법에 해당되는 노동기준법을 어긴 악덕 기업주를 어떤 타협도 없이 처벌해 나가는데 이런 소재의 드라마가 방영된다는 사실 자체와 드라마에서 단다린 감독관이 말하는 한마디들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이주노동자를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부려먹다가 처벌을 받는 사업주가 기업의 어려움을 항변하자 단다린은 말한다. “경영위기는 경영자의 책임입니다. 노동자에게 함부로 전가하지 마세요!” 내가 잡혀가면 노동자들은 쫓겨나게 되는데 책임질 거냐는 사업주의 협박에는 “기업은 다시 세울 수 있습니다. 돈도 다시 벌면 됩니다. 사람만 있으면 됩니다. 그런데 사람이 병 걸리고 죽으면 다시 일할 수 없습니다!”


또 다른 인상 깊은 장면. 한 제빵사가 사장이 자신의 사직서를 안 받아준다며 찾아왔다. 자신은 질 좋은 과자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데, 사장의 대량생산 요구와 과도한 영리 추구에 자신의 철학이 침해받고 있다고 생각해서 사직을 요구한 것이다. 그런데, 사장은 자신을 대신할 대체자가 없기 때문에 사직을 허락할 수 없다 하였고, 오히려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단다린 : “노동자에겐 고용계약을 종료할 자유로운 권리가 있다. 손해배상 소송을 취하하라.”

사측 노무사 : “개인의 편의 때문에 회사에 막대한 손실을 입히도록 놔둘 순 없다. 

단다린 : “개인의 권리를 개인의 편의로 생각하는 편협한 관점이 일본에서 악덕 기업들이 사라지지 않는 원인 아니겠는가?”


한국에서 노동자와 관련 있는 정부 부처는 고용노동부가 있고, 그 산하에 근로복지공단과 안전보건공단이 있다. 이들 소속의 수많은 공무원이 노동자와 관련한 업무를 하지만 단다린 같은 공무원이 한국사회에 과연 있을까 싶다. 물론 드라마이기 때문에 과장된 측면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일본의 공무원이 노동자를 대하는 시선과 태도를 보았을 때 너무나 큰 차이가 느껴진다. 난 직업병이니 인정을 해줘야 한다는 근로복지공단 직원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질병판정위원회나 산재 자문을 할 때 “직업병이 아니지 않느냐?” “이것은 업무 부담이 적지 않느냐?” “이런 사안은 과거에 인정된 적이 없다.” “요양기간이 너무 길지 않느냐?” 등의 얘기를 하는 직원들뿐이었다. 안전보건공단 직원들은 재해, 직업병 예방과 관련한 업무를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노동자의 입장을 헤아리는 경우가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전보건공단 캠페인 포스터를 보면 하나같이 재해 예방을 위해 노동자들이 조심하고 규칙을 지켜야하고, 보호구를 잘 착용해야 한다는 한계를 반복한다. 역으로, 산재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사업주의 책임을 강조하는 포스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근로감독관들은 어떠한가? 몇 개월 전 8명의 산재 사망사고를 냈던 현대중공업에서 경영진이 처벌받았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물론 이전의 중대재해 때도 마찬가지였다. 노동자가 산재로 죽어도 경영주가 처벌받지 않는데 다른 사안에 대해서는 어떨지 안 봐도 뻔하다. 특히 산재은폐와 공상은 너무나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일이어서 공상치료가 일반화된 자동차 회사의 경우 근로복지공단 직원이 산재신청자에게 왜 공상을 안 하느냐고 반문을 한단다. 공무원들에게 노동자 편을 들어달라는 것이 아니다.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만이라도 지키게 해달라는 것인데, 현실은 그마저도 사치가 될 판이다. 그동안 내가 경험한 것들은 이들 공무원이 약자에 강하고 강자에 약한 세상의 전형이라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돈이 곧 권력이라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 성과주의의 결과가 아닐까? 과거 민주노총이 공개한 근로복지공단 내부 문건에서 공단 직원들이 직업병 승인을 바라지 않는 이유를 추론할 수 있다. 돈 많은 사람과 없는 사람을 차별하고, 산재를 경영성과와 개인의 능력을 평가하는 잣대로 이용하는 상황이 존재하는 한, 한국의 공무원들이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 단다린을 기대하는 것은 정녕 불가능한 일인가?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 이야기] 건강하게 일할 권리, 이제부터 시작이다 / 2014.8

건강하게 일할 권리,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진우 운영집행위원



지난 3월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한 활동가에게서 다급하게 연락이 왔다. 사측에서 갑자기 ‘보건관리대행’이라는 것을 하겠다며, 노동자들에게 정보공개 동의서에 서명을 받으려 안달이라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건강과는 담쌓고 지내던 바지사장들이 보건관리를 하겠다고 나서니, 황당하기도 하고 뭔가 꼼수가 숨어 있을 것 같아 연락을 취해 온 것이다. 


삼성전자서비스 AS기사 노동자들은 S 기업 역사상 처음으로 대규모의 노동조합을 만들고 2013년 7월 민주노총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를 출범시켰다. 이들은 S 기업의 직접 지휘 감독을 받는 한편, 노동조건, 임금까지 S 기업의 관리를 받았다. 또한, 근로기준법에 위배되는 건당 수수료 임금체계로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며 비인간적인 삶을 살아왔다. 이를 개선해달라는 노동자들의 요구에 협력업체 사장들은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S 기업 측에서는 하청업체 소관이라는 이유로 모두 책임을 회피했다. 부조리한 현실을 딛고 인간다운 삶을 살고자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고 투쟁해왔다. 


이러한 투쟁 과정에서 삼성전자서비스의 문제점들이 언론에 오르내리게 되었고, 사측은 산업안전보건법에 규정된 보건관리대행을 구색 맞추기 차원에서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S 기업에서 운영하는 서비스센터에는 소비자들이 센터에 직접 방문하여 만나게 되는 내근직 AS기사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에어컨 등의 대형가전을 수리하러 다니는 외근직도 포함된다. 따라서 센터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보통은 보건관리대행을 반드시 해야만 하는 50인 이상 사업장이 대부분이다. 국내 굴지의 기업 S 에서 지난 20여 년간 산업안전보건법 따위는 무시하다가 이제야 사업주의 의무를 시작한 것이다. 


마침 필자가 일하는 기관에서도 지난 3월 말부터 S 기업에서 운영하는 서비스센터 한 지점의 보건관리대행을 맡게 되었다. 오후 3시경 방문했는데, 외근직 AS기사 노동자들은 모두 외근 중이라 상담이 불가능했고, 내근직 노동자들과의 상담도 여의치 않았다. 센터 관리자는 S 기업 측의 지시로 보건관리대행을 시작하긴 했지만, 어떤 제도인지, 시행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본인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대행팀을 맞았다. 센터 관리자는 내근직과 외근직 둘이었으나, 생소한 일이라 업무 맡는 것을 서로 꺼리는 것처럼 보였다. 결국, 외근자들은 모두 외근 중이라는 이유로 내근직 관리자가 보건관리대행 업무를 맡기로 결정되었다. 그런데, 우리를 창고방으로 안내하던 관리자는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내근 AS기사 노동자들이 너무 바빠서 상담을 올 수가 없다는 것이다. 쉬는 시간이 언제인지 묻자,  그런 건 없다는 대답뿐이었다. 나는 상담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으니, 한 사람 당 3분이라도 시간을 내달라 요청했다.


출처 : 미디어 충청


결국, 대행팀이 도착한 지 30분이 지나서야 AS 기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첫 방문이라 기존의 검진자료 등은 제공받을 수 없었고, 과거력, 가족력, 현 상태에 대한 간단한 문진과 혈압, 맥박만 체크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이상한 공통점이 발견되었다. 특별한 질환도 없는 20~30대의 젊은 노동자들 다수의 맥박이 100회 전후로 높은 편이었던 것이다. 어떤 노동자의 경우 맥박이 너무 높아 추가 문진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노동환경에 대해 더 질문하려고 붙잡자, 계속 시계를 쳐다보았다. 너무 바빠서 당장 나가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 뒤에 상담한 노동자들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었다. 20~30대의 젊은 노동자들의 맥박이 높은 원인은 쉴 틈 없는 노동강도 때문으로 판단되었다. 조합원 중 다수는 관리자의 감시에 비교적 자유로운 외근직 노동자들이고, 내근직은 아직 많지 않은 것도 그 이유였을 것으로 보인다. 짧은 상담 시간이 끝나고 관리자에게 이 같은 사실에 관해 얘기하긴 했지만 무슨 소용인가 싶다. 


사측이 형식적으로나마 보건관리대행을 시작한 것은 분명 노동조합의 힘 때문일 것이다. 지난 3월 방문 이후 노동조합은 큰 변화가 있었다. 염호석 분회장이 자결하고, 800여 명의 조합원이 45일간 삼성 본사 앞 노숙농성투쟁을 벌였다. 6월 28일에는 76년 무노조 S 기업에서 민주노조의 첫 단체협약이 만들어졌다. 조합원이든, 비조합원이든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인간다운 삶’을 살겠다는 당연한 요구가 더욱 거세졌을 것이다. 노동자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보건관리제도가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힘이 중요하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의 건강권을 쟁취하기 위한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다가올 8월 방문에는 센터의 분위기가 달라졌길 기대해 본다.

[직업환경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 이야기] 대행의사가 건강(?)한 노동자를 만나는 방식 / 2014.6

대행의사가 건강(?)한 노동자를 만나는 방식
- 건강노동자 역설, 그리고 노동시간센터 -


류현철 회원

 

그는 자리에 앉으면서 양팔을 가로질러 팔짱부터 끼었다. 상체를 쑤욱 뒤로 젖히고 앉는  바람에 의자의 등판은 한껏 뒤로 젖혀지고 엉덩이는 아슬아슬하게 의자 끝에 걸쳐져 있다. 낯선 방문자에 대한 심드렁함을 온전히 드러내려는 듯, 그는 기름때가 완연한 작업복 바지에 다소 유행이 지난 안전화(분명 안전화에도 유행도 스타일도 있다!)로 마감된 단단해 보이는 하체의 한쪽 다리만 길게 뻗은 채 쩍 벌리고 앉는다. 짐짓 한쪽으로 고개를 기울여 삐딱해진 시선은 이 바닥에서는 나름 젊은 축에 속하는 그래서 더욱 시답잖아 보이는 의사양반의 행색을 아래위로 훑고, 잠깐 왼쪽 가슴의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라는 이름표에 머물렀다 떠나지만 의사의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법은 없다. 공장 사무실 한켠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긴장.
 
나는 의자를 바싹 끌어당기고 상체를 그에게 훅 깊숙이 기울이며 갑작스런 인파이팅을 시도하듯 다가가 대화를 시작한다.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져야 한다. 공장의 배경 소음을 이겨내기 위해서, 내밀한 개인의 건강 문제들을 마냥 떠들다가 주변 동료들을 미필적 고의의 정보유출자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바싹 다가가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시작이 된다. ‘약이나 처방은 주지도 않고 술 끊고 담배 끊고 운동하라는 식상한 이야기나 할 테지’ 싶어 일부러 비딱하게 앉은 그에게 다가가 그의 마음을 흔들어야 한다. 대략 그렇게 회사에 6일도, 6주도 아닌, 6개월 만에 방문한 보건관리대행 의사와 건강(?)한 노동자와의 첫 상담은 시작된다.

 

최초 대면의 긴장은 바싹 거리를 좁혀 나눈 몇 마디 일상적인 대화와 그가 하는 절단업무, 그 중 플라즈마 절단이라는 비교적 생소한 자기 일에 대해 풍월을 읊을 줄 아는 의사에 대한 신기함 등으로 조금씩 풀어져 갔다. 45세 남성 노동자인 그와의 최초 면담을 기록하는 나의 방식은 이랬다.

 

 

2014년 2월 입사, 플라즈마 절단, 절단 경력 14년
과거력 (-), 가족력 (-), 귀마개/마스크/보안경 (+/?/+)
흡연 1갑반 20세부터, 음주 (-), 운동 (-)
08:00-20:00, 월-금, 토 08:00-17:00
 

 

 

오전 8시에 업무를 시작해서 오후 8시에 퇴근하는 일과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이어지며, 토요일에는 그나마 오후 5시에 업무가 끝난다. 평일 식사 및 휴식시간을 빼도 하루에 10시간, 토요일은 8시간 근무, 주당 58시간이 그의 노동시간이다. 


2011년 OECD 통계를 기준으로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090시간이다. 이것만 해도 OECD 회원국 2위로 OECD 회원국 평균 연간 노동시간인 1,765시간보다 325시간 이상 길다. OECD 노동자들보다 평균 8.1주 이상 일한다.

 

그런데 나는 이것조차도 도통 믿지 못하겠다. 지난주 근무시간이 어땠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철야를 2번 했단다. 교대근무 얘기는 없었는데 철야라니요? 오전 8시에 근무를 시작해서 밤을 꼬박 새워 철야근무를 하고 새벽에 2~3시간 잠을 잔 후 다음날 오후 5시까지 근무를 한단다. 33시간 동안 회사에 있는 것이다. 비록 그의 업무가 지속적인 라인작업은 아니고 기계장비를 운용하는 것이고 잠시도 일손을 놓을 수 없는 업무는 아니라지만... 그렇게 일을 한 후 오후 5시에 퇴근하고 다음날 오전 8시에 출근한 그는 다시 철야근무를 했다. 지난주에 그렇게 하고 오늘도 철야근무를 할지 모른다. 맙소사! 늘상 있는 일이 아니라 최근 늘어난 물량 탓이라고는 하지만 너무 했다. 그렇게 일을 하는 그는 아직 건강(?)하다. 이 회사에 오면서 받은 배치 전 건강진단에서도 특이한 문제는 없었고, 이제껏 건강문제로 병원 신세를 진적도 없고 오늘 측정한 혈압도 정상이었으니 “거보슈”라며 뿌듯해 한다.

 

‘건강노동자 효과’ 라는 것이 있다. 직업성 질환 연구에서 최초로 관찰된 현상으로 종종 노동자들은 일반 인구보다 전체 사망률이 더 낮게 제시되는데, 그 까닭은 심각하게 아프거나 장애가 있는 사람은 고용에서 배제되거나 일찍 퇴직하기 때문이다.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당최 견뎌 내기 어려운 조건의 일이라 상대적으로 건강한 사람들만 남아있게 되는 현상이 거꾸로 그 일을 해도 건강상 악영향은 없거나 오히려 건강에 이롭기까지 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하는 것을 말한다. 바로 이야기하자면 이렇게 일을 해도 그는 괜찮고 건강하기까지 한 것이 아니라, 그나마 건강한 탓에 이렇게 일을 버티고 있다. 그는 언제까지 건강할 수 있을까?

 

“아휴, 그래도 철야한 다음날 아침 먹고 난 이후부터는 몽롱하지~ ...오후가 되면 정신이 부웅 떠서 일하는 것 같다니까요~”


그는 건강하다. 아직까지는... 첫 상담의 분위기를 성공적으로 이완시켰다는 것 외에는 그렇게 일하시다가는 언제 몸이 망가질지 모른다는 막연한(장시간 노동의 건강문제를 열심히 의사스럽게 이야기한다 해도 결국은 막연한) 이야기밖에 못 한 대행의사에게 ‘노동시간센터’가 자못 간절한 이유이다. 그의 건강이 무너지고 일상이 더 무너지기 전에 어서!

[직업환경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 이야기] 소규모 사업장 현장조사 이야기 / 2014.5

소규모 사업장 현장조사 이야기


이혜은 회원

 

직업환경의학과 의사가 되어 하게 되는 다양한 업무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자신의 병이 직업에 의해 발생하였다고 생각하는 노동자의 작업장을 방문하여 조사하는 일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 ‘역학조사’라는 용어로 지칭되는 활동에 포함되는 현장 조사이다. 특히 소규모 사업장을 방문하는 것은, 조사에 대비하여 철저히 준비한 담당자들에게 안내받아 다녀야 하는 경우가 흔한, 대기업 방문조사와는 다른 재미가 있다. 물론 아픈 노동자가 일했던 혹은 일하고 있는 환경을 조사하면서 재미있다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약간은 형사가 된 듯한 기분으로 질병과 관련될만한 유해요인을 탐색하는 것, 노동자들과 일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것, 싫은 티를 숨기지 못하고 공장 문을 열어주지만, 한편으론 동네 아저씨 같기도 한 사장님들과 사업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것 모두, 이전까지 알지 못했던 뭔가를 경험하게 해주는 것들이다.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에피소드도 이런 사업장 방문조사에서 만났던 노동자와 사업주에 대한 이야기이다. 5년쯤 전에 근로복지공단 지사에서 역학조사 의뢰가 들어왔다. “반사원단 제조업체에서 MIBK(메틸이소부틸케톤)에 노출된 근로자의 독성간염에 대한 업무관련성평가”가 당시 요청되었던 조사의 제목이었다. 처음 든 생각이 ‘MIBK가 간독성이 있긴 하지만, 독성간염을 일으킬 정도였던가?’ 하는 것이었다. 해당 노동자는 독성간염에 대한 치료는 마치고 회복한 상태였고, 사업장에 대한 자료는 빈약하여 자료검토만으로는 큰 정보를 얻지 못하였다. 약간은 의아하다고 생각하면서 사업장을 방문하기로 하였고, 노동자는 별로 사업장에 다시 가고 싶지 않다며 조사에 동행하지 않았다. 마침 집에서도 가까운 지역이어서 가벼운 드라이브 하는 기분으로 떠나 사업장에 도착하였고, ‘새로 공장 지어서 이전했다고 하더니 역시 깨끗한 편이네!’라고 생각하며 둘러보던 중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 사업장에서 만드는 ‘반사원단’이라는 제품은, 자동차 불빛을 반사하여 어둠에서도 도로의 윤곽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도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표지들에 부착된 그 원단이다. 이 원단은 바탕 필름에 ‘글래스비드’라는 유리구슬 같은 것들을 촘촘히 붙이기도 하고 형광페인트를 코팅해서 만들기도 한다. 바로 이 형광페인트를 만드는데 섞어 쓰는 폴리우레탄수지 도료 통이 눈에 띄었는데, 구성성분에 “디메틸포름아미드(DMF) 60%”가 적혀있는 것이 아닌가!

 

디메틸포름아미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알려진 간독성물질이고 이에 대한 특수건강진단 주기를 조정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지만, 거의 10년째 독성간염으로 인한 사망사건이 근절되지 않고 수차례나 발생해왔다. 노동자가 자신이 독성간염 위험이 있는 디메틸포름아미드를 썼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은 안타깝지만, 충분히 그럴만한 일이다. 하지만 사업주는 작업환경측정도 해야 하고 특수건강진단도 해야 하는데 수십 년을 이 사업을 했다고 하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공단 직원이 조사도 하지 않고 사업주가 보내준 물질 정보만 보고 MIBK에 의한 독성간염이라면서 조사를 의뢰한 점이다.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산재보상 신청을 한 노동자가 신기할 정도였다.


다시 찬찬히 사례를 보니 아주 전형적인 DMF에 의한 독성간염 경과를 보였다. 해당 근로자는 입사하고 바로 사업장이 이전하여 기계 이전작업, 청소작업 등에 투입되어 기계를 유기용제로 세척하는 작업을 하고, 이틀간 형광도료를 바가지로 떠서 코팅기에 부어주는 코팅작업에 투입된 6일 후에 구토, 어지러움, 식욕감퇴가 발생하였고 간 수치가 급격히 상승한 것을 확인하였다. 이후 다시 작업장에 복귀하지 않고 치료받으면서 독성간염은 완전히 호전되었다.


사업주에게는 바로 그 자리에서 이 분은 디메틸포름아미드에 의한 독성간염이 맞으니 직업병으로 인정될 거라고 이야기하고 지금까지 놓쳐왔던 작업환경측정과 특수건강진단을 바로 시행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제품의 특허출원도 자랑하고 사업에 대한 자부심도 컸던 사장은 거세게 항의하였다. “수십 년째 이 일을 해오고 있는데 이런 일은 처음이다. 그럼 저기서 몇 년째 코팅하고 있는 사람들은 다 죽었어야 하지 않느냐. 이 사람은 한 달도 일을 안 했다.” 한 번도 디메틸포름아미드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는 일반인이라면 누구나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사업주에게 디메틸포름아미드에 의한 독성간염은 특이체질반응으로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노출돼도 괜찮은 사람이 있고, 이렇게 간염이 오는 사람도 있다고 설명하였으나 쉽게 받아들이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때의 조사는 우리나라 소규모 사업장의 산업보건 수준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아래에 있고, 다른 건 몰라도 DMF는 정부나 전문가들이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그것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확인한 계기였다. 정말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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