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브라더에 맞서 말과 글을 지키려는 사람들
사이버 사찰에 맞서 긴급행동에 나서다
재현 선전위원
작년 9월 15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에 대한 모독을 참을 수 없다. 사이버상의 국론 분열에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9월 18일 검찰은 유관기관을 소집하여 논의 끝에 ‘사이버 허위사실유포전담수사팀′을 발족, 인터넷 포털 사이트 등에서 발생하는 허위사실유포에 대해 직접 수사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검찰이 공공연하게 사이버 검열 및 사찰에 대한 입장을 밝히자 사회적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다음카카오가 검찰과의 유관기관 회의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꼴이었다. 노동자·시민들은 정부의 권력 감시로부터 비교적 안전하다고 알려진 ‘텔레그램’ 메신저로 집단 사이버 망명을 시작했다.
검찰의 발표가 있던 날. 정진우 당시 노동당 부대표는 종로경찰서로부터 ‘송수신이 완료된 전기통신에 대한 압수·수색·검증 집행 사실 통지’ 우편물을 하나 받는다. 내용인즉 2014년 5월 1일부터 6월 10일까지 카카오톡 메시지 내용, 대화 상대방 아이디 및 전화번호, 수발신 내역 일체, 그림과 사진 파일에 대해 압수·수색·검증 집행이 있었다는 내용의 통지서였다. 그는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끔찍한 그 느낌을 지금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한 명이 사이버 사찰 피해자가 아닌 한국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감시사회로 가는데 제동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싸움의 주체로 서고자 결의했다. 그 길에 함께하고자 정보 인권·시민사회·법률 단체들과 함께 ‘사이버 사찰 긴급행동’을 구성하여 저항을 시작했다.
그 날의 끔찍함은 이루 말할 수 없어
“지금껏 활동하면서 구속도 돼보고, 형사적인 탄압을 많이 받아왔지만 그런 것과 이번 압수수색 결과 통지서를 받았을 때 느낌은 많이 달랐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끔찍하기도 하고 피해를 당한 주변 사람들에게 굉장히 미안했다.”
정진우 당시 노동당 부대표는 지난 6월 10일 박근혜 정부에게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노동자·시민 만민공동회를 주관하다 집회 중 연행, 그 길로 구속되었다. 6월 17일 서울구치소에서 보석으로 출소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재판부의 보석 결정이 못마땅했는지 보석취소 청구를 강행하더니 6월 16일 영장을 발부받아 뒤늦게 어떻게든 그를 가두기 위해 6월 10일 낮 12시부터 딱 12시간 사이버 사찰을 해서 수사 자료를 완성했다.
말과 글을 포기 할 수 없었다
“처음엔 사찰 사실을 알고 화도 나고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혼자 끙끙 앓았다. 그러다 마음을 다잡았다. 이번 문제가 개인 사찰의 문제가 아니라, 삼성서비스, 밀양 투쟁 등 공적인 사회 활동에서 메신저로 주소 받은 내용이 정부에게 넘어간 문제였기 때문에 혼자 끙끙 앓고 위축되어 있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0월 1일 ‘카카오톡 압수수색 규탄 기자회견’을 통해 제 일로 사람들이 스스로 주춤하고 검열하면서, 말과 글을 읽도록 하는 것이 이 정권과 자본이 노리는 것이니 절대 말과 글을 포기하지 말고 저항의 직접 행동으로 나서자고 제 심경을 밝혔다.”
검찰의 압수수색 당시 그가 나눴던 메신저 대화에는 신용카드 비밀번호, 초등학교 동창들과 나눈 대화, 각종 투쟁 사안들을 주고받았다. 검찰은 그와 직접 대화를 하지 않아도 같은 대화방에 있었다는 이유로 2,368명을 사찰했다. 이들 중에는 정진우 본인도 전혀 모르는 사람도 태반이었다. 이후 그는 검찰과 다음카카오에 어떤 과정으로 어떠한 내용을 사찰했는지 사실관계를 요구했다.
“10월 9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과 다음카카오에 사실 확인을 요구했다. 검찰은 지금까지 답이 없는데, 다음카카오는 변명에 가까운 답을 보내왔다. 검찰이 요구해서 자료를 줄 수밖에 없었다는 답이었다. 이후에 사회적으로 사이버 사찰 논란이 커지자 검찰과 다음카카오 사이에 공방이 벌어졌다. 검찰은 다음카카오가 사전에 추린 자료를 넘겨받았다고 주장했다. 다음카카오는 본인들은 자료를 추릴 방법도, 그럴 생각도 없다며 검찰이 시켜서 자료를 보냈다고 주장했다.”
‘사이버사찰 긴급행동’ 출범하다
10월 23일 정보인권활동을 하는 진보네트워크센터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천주교 인권위원회 등 시민사회단체와 피해 당사자가 있는 노동당 등이 모여 <사이버사찰 중단! 검경의 개인정보수집 반대! 사이버사찰 금지법 제정! 을 위한 ‘사이버사찰 긴급행동’>을 출범했다. 이들은 사이버 사찰의 직접적인 피해자 2,368여 명을 비롯해 훨씬 더 많은 사람을 대중적인 저항의 주체로 묶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사이버 사찰을 막을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데 시간이 필요하므로 무분별한 사이버 사찰을 시도하는 사법 기관을 압박하는 역할을 하고자 한다.
“이번 사건의 경우 결과 통보 늦고, 내용도 불충분하지만 9월 18일 압수수색이 끝났다는 통지를 받았다. 그런데 2,368명은 통지조차 없다. 본인이 사찰의 피해자인지도 모른다. 누가 봐도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법에서는 제3자이기 때문에 다음카카오·검찰, 누구도 통지의 의무가 없다. 또한, 압수수색 과정에서 당사자 참여 권리의 문제가 있다. 다른 압수수색의 경우 본인 혹은 법정 대리인의 참여가 보장된다. 그런데 이번 경우엔 당사자 참여권이 전혀 보장되지 않았다.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민변의 카카오톡 등 사이버 공안탄압법률대응팀과 수사기관이 사이버상에서 송·수신되는 정보, 전기 통신 내용을 사찰하거나 정보를 수집하는 것을 원칙적 금지하고, 메신저에 대한 수사기관의 무분별한 압수수색 관행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사이버사찰금지법’ 제정을 위한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사이버 사찰 피해자에서 저항의 주체로 나서다
지난 12월 23일 사이버사찰 긴급행동과 피해자 24명은 국가와 다음카카오를 상대로 압수수색 통지와 수색 범위에 관한 형사소송법을 위반을 이유로 300만 원의 위자료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또, 헌법 제12조 영장주의 및 청구인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밀양, 삼성전자서비스 등 투쟁하는 주체들과 촛불 시민 등 사이버 사찰의 피해자 24명에게 소송을 권하고 법률 위임장을 받았다. 헌법소원의 경우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 심판 결정과 맞물리면서 최소한의 법과 민주주의를 외면하는 헌법재판소에 판단을 묻는 것이 적절치 않은 것 같다는 주변 의견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손해배상소송과 헌법소원으로 보상을 받으려는 것보다 더 많은 분에게 피해 실상을 알리고 감시 사회로 나가고 있는 사회 현실을 문제 뜯어고쳐야 한다는 취지가 크기 때문에 계획대로 진행하게 되었다.”
투쟁하는 이들 모두 저항의 주체로 나서자
그는 우선 1차적으로 피해 당사자들이 이번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용기를 낸 것처럼 이후엔 더욱 많은 사람이 저항행동에 함께 나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대중행동 못지않게 국가와 자본의 사이버 사찰 1순위일 수밖에 없는 활동가들에게도 당부의 말을 남겼다.
“저의 경우 대체로 정보 공안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카카오톡 단체 방이 많았다. 문제는 저뿐만 아니라 활동가들 모두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저도 정보 인권 활동하는 동지들을 지지, 지원하는 것에 그쳤는데 더는 그러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활동하는 사람들의 공적인 토론, 사적인 영역, 말과 글을 통제하려는 국가와 권력의 감시 문제에 있어 직접 맞서 싸우는 당사자들이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지난 9월 필자도 사이버 망명 행렬에 동참했던 기억이 난다. 다들 약속이나 한 듯 카카오톡 단체방 사람들이 한꺼번에 탈출했다, 그 날 난 차마 문득 다시 꺼내보고 싶은 메시지들과 사진이 아쉬워 몇 날 며칠을 홀로 그 방을 지켰다. 또, 한편엔 내가 활동하면서 나눈 이야기들이 당당하니까 잡아가려면 잡아가 봐라! 그런 심정이었다. 그러나 소극적인 저항(?)은 며칠을 버티지 못했고 결국, 텔레그램으로 망명했다. 어느덧 이 생활도 익숙해져서 망명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즈음 우리의 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저항을 시작한 그를 만났다. 이 싸움이 더욱 더 큰 사회적 저항의 물결로 가득해지길 희망하며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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