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리포트]
누가 노동자의 밤을 사는가?- 물류산업의 야간노동
전주희 노동시간센터 연구위원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이던 3월 12일 새벽배송을 하던 쿠팡 비정규직 배송노동자가 경기 안산의 빌라건물 4층과 5층 사이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한달 전 쿠팡에 입사해 배송업무를 수행하던 중이었다. 쿠팡맨들의 노동조합(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쿠팡지부)은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동료의 죽음에 대해 ‘새벽배송’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노조는 3월 18일 기자회견을 통해 “쿠팡에는 고객을 위한 새벽배송 서비스는 있어도 배송하는 쿠팡맨을 위한 휴식과 안전은 없다”며 ‘새벽배송 중단과 노동자 휴식권 보장’을 요구했다.
노동시간센터는 지난 6월 3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의실에서 <야간노동 새벽배송의 위험과 개선방안>이라는 주제로 정진영 쿠팡노조 지부장과 함께 물류산업의 야간노동의 문제점을 듣는 자리를 가졌다. 이와 더불어 한국노동연구원에서 2019년 수행한 연구 <서비스업 야간노동 : 인간중심의 분업구조를 위한 제언>를 요약한 노동리뷰(2020년 5월호) 중 ‘소비사회와 야간노동 : 법적검토’(박제성), ‘이윤추구형 야간노동 : 야간배송기사 사례’(박종식)의 글을 함께 검토하면서 ‘신성장동력’이라고 추앙받는 물류산업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야간노동의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쿠팡, 마켓컬리 : 로켓이 도달한 샛별배송
야간노동의 문제는 19세기 자본주의 여명기에서부터 줄곧 존재해왔고, 노동자와 자본 간 노동시간을 둘러싼 계급투쟁에서 가장 첨예한 사안 중의 하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간노동은 사라지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온라인쇼핑의 확대와 함께 새롭게 재구조화되고 있는 물류산업 전반에 걸쳐 매우 새로운 형태로 다시 등장하고 있다. 야간 장시간 노동이라는 전통적인 형태 위에 플랫폼 기반의 파편적인 고용과 쪼개진 노동시간,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그날그날 노동에 대한 지시가 매번 달라지는 노동방식은 노동자의 생명을 급격하게 소진시키고 있다.
단순 택배기사와 쿠팡맨의 노동이 다른 이유는 쿠팡으로 대표되는 대규모화되고 자동화된 유통산업이 단지 온라인으로 주문받은 상품을 CJ대한통운과 같은 택배업체에 위탁하는 것이 아니라 자체 배송시스템을 구축하면서 물류와 전자상거래 산업의 융합된 산업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박종식).
전통적 택배기사들이 개인사업자 신분의 ‘특수고용노동자’라면 쿠팡의 경우 ‘직접고용’을 통해 ‘감성배송’이라는 전략을 택했다. 처음 쿠팡맨의 ‘감성배송’이 등장 했을 때 맘카페를 중심으로 쿠팡맨의 감동택배 이야기가 엄청나게 퍼져나갔다. 고객에게 문자 보내는 것은 기본이고, 편지 써주고, 그림 그려주고, 상자에 사탕 붙여주고 하는 쿠팡맨의 ‘미담’이 마케팅 전략으로 성공하게 되면서 쿠팡의 매출이 성장하게 된다. 이후 매출이 증가하면서 정규직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그리고 ‘쿠팡 플렉서’(특고)로 고용형태가 다변화된다. 이는 감성배송을 넘어 로켓배송, 새벽배송이 도입되고 증가하는 것과 연동된다.
“(쿠팡 플렉서를 왜 만들었나?) 업무가 늘어나고, 당일 배송이 약속된 시스템이니까. ‘내일 도착 보장’이라고 고객에게 무조건 문자가 간다. 뜬다. 당일 배송물량은 무조건 배송해야 한다. 만약 못하면 쿠팡 캐시로 1천원이든 보상을 해준다. 인력이 부족하니, 유연하게 배송을 진행할 수 있는 직종을 만든 거다.”(쿠팡노조 지부장)
박종식에 따르면 단지 빠르고 정확하게 배달하는 로켓배송에 더해 신선식품을 배송한다는 발상은 새벽배송의 확대와 이를 위한 자체적인 물류 설비와 유통망, 직접고용 형태의 배송기사와 같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중 마켓컬리는 정육, 채소 등 신선식품의 온라인 판매-유통-배송의 변화를 주도했다. 이후 이마트, 쿠팡 역시 신선식품 배송을 중심으로 자체적인 물류설비와 유통망을 구축하며 기존 택배업체들과 달리 배송기사들을 개인사업자와 직접고용을 혼재하여 활용하고 있다. 마켓컬리의 경우 배송기사 600여 명 중 510명 정도가 개인사업자이고, 나머지 90여명이 직접 고용한 직원이다. 마켓컬리에서 직접고용 배송기사를 활용하는 이유는 개인사업주 배송기사들에게 새벽배송을 매일 요구하기는 어렵고, 배송 공백 지역이 발생한 경우 직접고용 배송기사들의 투입이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처음 쿠팡에서 배송기사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한다고 해서 언론에서 크게 보도된 바가 있지만, 마켓컬리나 쿠팡의 정규직들은 4대 보험에 가입된 것을 제외하면 일반 택배기사에 비해 월급이 적고 회사에서 지정해주는 지역과 업무량, 성과 관리 등에 대한 통제가 강하다는 점을 들어 정규직이라고 하더라도 실질적인 노동조건이 크게 개선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래서 쿠팡이나 마켓컬리 정규직으로 입사하더라도 일반 택배기사로 다시 돌아가는 경우도 많으며, 특히 쿠팡이나 마켓컬리의 야간배송은 점차 물량이 늘어나고 있지만, 인력은 그대로여서 노동강도가 가파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쿠팡노조는 기자회견을 통해 2015년에 비해 물량이 3.7배 증가했으나 임금이나 인력이 그대로인 상황이라고 밝혔다. 야간에 1인이 차량을 몰아 배송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고와 오배송의 부담이 큰 상황이라 정규직원들조차도 야간노동을 꺼리고 있다.
“사측에서 중점에 두는 게 쿠팡맨 퇴직율이다. 퇴직율이 너무 높다. 상시모집을 해도 쿠팡이 채워지지 않는다. 쿠팡맨을 경혐해 본 사람은 다시 안 온다. 그래서 모집을 해도 사람이 오지 않는다. 두 번째는 사고율이다. 안타까운데, 단체 운전보험을 받아주는 회사가 없을 정도로 사고율이 심각하다. 우리 캠프만 해도 하루 4건 사고가 날 때도 있다. 쿠팡카가 사고로 다쳤냐 여부에 따라 급여가 갈린다. 최대 40만원까지 차감이 된다. 사고가 급여나 인사상 불이익이 있다. 자기가 조심해야 하는 건 맞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운전하면서 핸드폰을 안 볼 수가 없다. 회사는 ‘운전하면서 핸드폰 보지 말아라’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신입들 같은 경우는 한참 헤매니까 핸드폰을 안 볼 수 없다.”(쿠팡노조 지부장)
아래 <표>는 코로나19가 한창이던 4월 25일 야간배송 현황이다. 모든 배송완료시간과 배송간격이 모두 디지털화되어 있어서 배송기사들의 작업동선과 노동강도를 회사에서 매우 구체적으로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다. 아래 <표>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배송간격이다. 어떻게 저 시간 안에 배송하는 것이 가능한지 묻는 사람들에게, 쿠팡노조 지부장은, “그래서 뛰어 다닌다.”고 말할 뿐이다.
“우리는 택배기사와 다르게 박스가 아니라 가구로 건수를 잡는다. 평균적으로 1시간에 20가구 정도. 160가구는 8시간 걸린다. 모자라는 시간은 뛰어야 한다.”(쿠팡노조 지부장)
배송기사들의 휴식은 어떻게 이뤄질까? 배송완료하면, 위의 <표>처럼 배송간격과 배송완료시간이 나온다. “그런데 중간에 어떤 이유로든(차량 정체이든, 배송지연이든) 배송간격이 다른 경우보다 뜨면 사측은 휴게시간으로 간주하는 거예요.” 쿠팡이 빅데이터에 기반한 AI를 적극 활용하면서, 쿠팡맨들의 휴게시간은 <표>와 같은 데이터로 간주될 뿐이다. 그러니까 쿠팡맨의 휴게시간은 데이터상의 시간 차로 ‘간주된다.’
쿠팡의 배송방식도 매우 극단적인 방식으로 탄력적이다. 매번 정해진 구역을 한 사람이 맡아서 책임지는 택배기사와 달리 쿠팡은 매일의 배송지역이 달라진다. 전체적인 배송량과 배송인원을 AI(쿠팡맨들이 우스갯소리로 이름 붙인 ‘쿠파고’)가 정해주며, 쿠팡맨들은 이 데이터에 근거해 매일의 근무지역이 달라진다. 쿠팡은 노동자가 가질 수 있는 업무숙련도에 따른 일의 효율을 포기하는 대신 데이터에 근거한 ‘적기배송’에 사활을 건다.
“조장이 물량을 고려해서 사람들을 지정하는데, 현재 시스템(쿠파고)은 컴퓨터가 다 짜준다. 자기 마음대로 데이터가 축적하고 분석한 대로, 하루하루 다 노선이 다르다. 나는 양주캠프만 배송하는 게 아니라 타 캠프로 지원을 많이 간다. 강남은 쿠팡맨이 많이 없다. 그러다 보니 내가 당장에 어디 갈지 모른다. 데이터가 결정한 대로 간다.”(쿠팡지부 지부장)
새벽배송은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일까.
얼마 전, 마켓컬리의 샛별배송에 ‘맛을 들인’ 친구를 나무랐더니, 도덕적 훈계만으로 시대의 흐름을 역행할 수 없다는 훈계를 들었다. 사람들은 더 편리하고 더 좋은 걸 욕망하고, 자본은 이러한 욕망을 놓치지 않고 상품으로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야간노동은 나쁘지만, 사람들의 욕망은 더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욕망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다. 욕망은 늘 만들어지며, 변화한다. 그것은 내 안에 있지도 않고 나에게 고유한 것도 아니다. 친구의 말대로 욕망은 자본주의적으로 생산되며 또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밖에 나가면 24시간 편의점이 있고, 24시간 술집과 밥집이 즐비한 사회에서 새벽배송 쯤 하나 더 추가된다고 해서 뭐 그렇게 더 나빠지겠냐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타인의 야간노동으로 신선한 상품을 집 앞에서 받는 ‘소비자’인 나는 그 시간만큼 어느 자본에 의해 더 많은 시간을 강탈당할까?
“소비자로서의 우리가 더 싸고 더 좋은 물건을 더 빨리 살 수 있게 되면 될수록 판매자로서의 우리는 고객을 유지하고 사업을 성사시키기 위하여 더 힘든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근로자로서의 우리는 더욱 빨라진 생산과 판매의 박자에 맞추기 위해서 더욱 필사적인 삶을 견딜 수밖에 없다.”(박제성)
소비자로서 우리, 판매자로서 우리, 노동자로서 우리는 모두 24시간 흘러가는 물류와 그 흐름을 위해 필수적인 야간노동처럼, 자본의 흐름을 위해 야간에도 노동하며, 새벽에도 소비하고 덧붙여 데이터화 된 추가적인 노동 역시 제공한다.
야간노동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와 그 법적, 철학적 의미가 노동법에 단 한 줄도 없는 나라에서 새벽배송에 열광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우리들의 새벽을 FLEX하게 강탈하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들의 밤을 폭력적으로 수탈하는 것을 그만두게 하기 위해 이런 내용이 노동법에 들어가야 한다. “야간근로는 근로자의 건강과 안전의 보호를 위하여 예외적으로만 허용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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