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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Z 노동이야기] 나는 뮤지컬 노동자다 / 2014.6 나는 뮤지컬 노동자다 - 15년 베테랑 뮤지컬 배우 전준성 님 인터뷰 - 정하나 선전위원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은 늘 즐겁다. 인터뷰를 빌미로 상대방의 생활에 대해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묻다 보면 이전에 알지 못했던 ‘세계’를 만나는 게 재미있다. 이번 만남은 더 설레었다. 내 일상에서는 도통 만나지지 않을 만한 ‘예술계’ 인사, 그것도 ‘뮤지컬 배우’를 만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배우의 질문, “이렇게 인터뷰하러 많이 다니세요?” 자리에 앉자 오늘의 주인공, 배우 전준성 씨는 도리어 질문을 던져왔다. “이런 일 하시면, 다양한 직업 가진 분들이랑 인터뷰 자주 하시겠네요?” 일반인의 ‘발성’과는 좀 다른, 약간은 부러워하는 목소리. 배우로서 늘 다른 사람의 삶을 탐구하고 연기로 담아내야 하는 그로서는.. 더보기
월 간 「일 터」/[A-Z 다양한 노동이야기]

[A-Z 노동이야기] 나는 뮤지컬 노동자다 / 2014.6

나는 뮤지컬 노동자다
- 15년 베테랑 뮤지컬 배우 전준성 님 인터뷰 -


정하나 선전위원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은 늘 즐겁다. 인터뷰를 빌미로 상대방의 생활에 대해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묻다 보면 이전에 알지 못했던 ‘세계’를 만나는 게 재미있다. 이번 만남은 더 설레었다. 내 일상에서는 도통 만나지지 않을 만한 ‘예술계’ 인사, 그것도 ‘뮤지컬 배우’를 만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배우의 질문, “이렇게 인터뷰하러 많이 다니세요?”


자리에 앉자 오늘의 주인공, 배우 전준성 씨는 도리어 질문을 던져왔다. “이런 일 하시면, 다양한 직업 가진 분들이랑 인터뷰 자주 하시겠네요?” 일반인의 ‘발성’과는 좀 다른, 약간은 부러워하는 목소리. 배우로서 늘 다른 사람의 삶을 탐구하고 연기로 담아내야 하는 그로서는 당연한 관심이었으리라.

 

문득, 탤런트 김혜자 씨가 쓴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나는 정말 슬퍼서 오열할 때도 어느 순간엔 울고 있는 나 자신을 관찰한다. 우는 씬(scene)을 연기할 때를 위해.’ 타인의 삶을 표현하기 위해 자기 자신까지도 관찰하는 배우들, 그들의 일상을 준성 씨의 삶을 꼬치꼬치 캐물으며 들어보았다.

 

배우의 하루, 그의 시계는 느지막이 돌아간다


“지금 이 시간대는 사실 평소 저한테는 이른 아침 정도 되는 시간이에요. 공연이 보통 평일 저녁 8시쯤 시작하잖아요. 대충 2시간 30분에서 3시간 정도 공연하고 집에 들어오면 새벽 1~2시죠. 배고프니 잠깐 요기할 때도 있고, 바로 씻고 자기도 하고. 어쨌든 공연 시작하면 이런 패턴이 되기 때문에 낮 12~1시는 저한테는 아침이죠.”

 

점심시간에 만나서 같이 식사하던 중, ‘오늘 처음 식사라 밥이 많이 안 들어간다’며 숟가락을 나보다 먼저 놓던 그의 변이다. 좀 미안해졌다. 이 인터뷰에 응하느라 평소보다 두어 시간은 일찍 ‘하루’를 시작했을 그였다. 다행히 바로 전 작품인 서편제 이후, 다음 공연연습 들어가기 전까지 몇 주간 휴지기를 갖고 있기에 망정이었다.

 

“문화공연이 월요일에는 쉬는 경우가 많잖아요. 뮤지컬의 경우도 그런데,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1회씩, 그리고 관객이 많은 주말에는 2회 공연을 합니다. 주 6일 동안 무대에는 8회 정도 서는 거죠. 요즘엔 티켓파워를 의식해, 아이돌 연예인들을 주․조연급에 더블캐스팅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이들 빼고, 규모가 작은 배역을 맡은 사람들은 대부분 8회 공연에 모두 출연합니다. 공연 시작 4시간 전 정도에 모여서 몸도 풀고 의상 확인하고 분장하고 그래요.”


막간의 휴식을 즐기는 요즘, 준성 씨는 친구들과 함께 마련한 개인 연습실에서 혼자 연습도 하고 뮤지컬배우 지망생들에게 1:1 연기지도를 하며 하루를 보낸다. 다시 새 작품 연습 들어가면 10시부터 6시까지, 중소규모 창작공연의 경우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꼬박 비지땀을 흘리며 연습실 붙박이로 돌아가야 할 테지만 말이다.

 

배우의 자세, ‘몰입’ 준비하기

 

가장 최근 출연한 작품을 물어봤다. <레미제라블>과 <명성황후> 그리고 <서편제>까지, 관람권 비용 부담 때문에 평소 뮤지컬을 즐겨 보지 못하는 나도 다 알만한 작품들이었다.

 

제까지 출연한 작품 중 가장 애착이 큰 건 <레미제라블>이에요. 몸은 너무 힘들었어요. 10개월 동안 전국을 다니는 장기공연이기도 했지만, 주인공 ‘장발장’이랑 평생 그를 쫓는 ‘자베르 경사’ 역을 맡은 주․조연 빼고는 모두 10~15개씩 배역을 맡았거든요.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한번 시작하면 3시간 동안 잠깐도 쉴 틈 없이 계속 왔다 갔다 무대에 올라가야 한다는 겁니다. 연습 때도 잠깐 앉아 있을 틈이 없어요. 저는 도망자인 장발장에게 은촛대 주는 ‘미리엘 주교’라는 꽤 큰 역을 맡았는데, 그거 외에도 10개의 다른 역할을 연기해야 했죠. 갈아입어야 하는 옷만 해도 20벌 정도였으니 얼마나 바빴는지 아시겠죠? 하지만 이때만큼 배우들 ‘앙상블’이 좋았던 적도 없었던 것 같아요. 10개월 장기공연이라 거의 한해를 같이 보낸 덕도 크지만, 한 회 공연으로만 따져도 무대에서 함께 호흡을 맞추는 빈도가 훨씬 높으니 더 그랬겠죠.”                                                              

 

그는 <레미제라블>이라는 작품에 임하기 전 미리엘 신부, 아베세 단원(극 중 혁명을 계획하는 청년모임의 일원), 거지, 일반 군중 등 수많은 역할을 잘 소화하기 위해 ‘사전 연구’를 많이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장발장」이란 한 권짜리 책에서 시작해, 빅토르 위고 원작 「레미제라블」을 독파했고, 더 나아가 작품이 쓰인 시대상을 이해하기 위해 프랑스 혁명사에 대한 책과 영상물을 독파했다.

 

“공부하면 할수록 현재 한국 상황이랑 겹치는 부분이 많았어요. 게다가 공연시기가 대선 때랑 맞물리기도 했잖아요. 마침 선거 날이 대구 공연이었는데요. 아시잖아요, 경상도 쪽 특히 TK권이 저쪽 성향이 강한 거. (웃음) 숙소에서 개표방송 보며 엄청나게 속상해하고, 바로 다음날 대구 관객들 앞에서 공연하려니 참! 그날은 거의 ‘분노의 공연’을 했지요. ‘들리는가, 민중의 노래(원제: Do you hear the people sing)’, 그 노래 할 때는 관객들을 꾸짖다시피 불렀어요. 원래 그러면 안 되는데.”

 

15년간 연기를 해왔지만 한 번도 공연이 끝나고 울거나 역할에서 빠져나오는 게 힘들었던 적이 없었는데, 유일하게 레미제라블 마지막 공연 날에는 그렇게 눈물을 쏟았다고 했다. 함께 출연했던 동료들도 본명보다 당시 맡았던 역 이름으로 기억된다고. 작품 역할과 자신을 최대한 일치시키는 ‘메소드’ 연기의 깊이, 그리고 무대에서의 협업을 통해 느끼는 ‘앙상블’의 느낌, 일반인으로서는 전혀 공감할 수 없는 순간들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컸는지, 그리고 10개월이란 장기간 동안 그 열정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써서 준비했을지에 대해서는 어렴풋하게 짐작할 수 있었다.

 

        

뮤지컬 배우로 먹고살기

 

준성 씨는 스타 배우는 아닐지라도 지금까지 끊이지 않고 작품을 하며 뮤지컬 배우의 이름을 지켜 온, 이제 슬슬 중견급으로 불릴 정도가 되었다. 뮤지컬 산업이 최근 2~3년간 2천5백억 원대의 시장규모로 성장했지만, 배우 개인에게 있어서는 여전히 데뷔까지 좁은 관문과 실력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감내해야 하는 이 업계에서 그가 ‘뮤지컬 배우’로서 자기 입지를 확실히 다지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저는 배우로서 작품만으로 밥 벌어 먹고살 수 있어요. 근데 그게 ‘뮤지컬’ 배우이기 때문일 겁니다. 같은 공연 예술이더라도 연극판은 정말 열악해요. 뮤지컬은 1970년대 현재와 같은 공연형태와 시스템이 갖춰진 이후 계속 성장하고 있거든요. 제가 39살인데, 일반회사 다니는 분들 이 정도 나이 되면 과장급 정도 되는 것 같더라고요? 그 정도 수입은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작품 계약이 끊이지 않아야 하겠지만요.”

 

데뷔했을 때만 해도 연습시간이나 공연 횟수에 상관없이 작품 하나마다 출연료 계약을 했었지만, 이제 15년의 연기경력을 인정받아 출연료도 ‘회당 얼마’로 계약한다고 한다.

 

“지금도 여전히 경력 없는 배우에겐 출연 자체가 큰 기회이기 때문에, 노력하고 일한 만큼 절대 다 보상받지 못하죠. 혹시 ‘열정페이 계산법’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워낙 경쟁이 치열하고, 무대에 설 기회는 한정되어 있으니, 내 생활에 필요한 만큼이 채워지지 않더라도 일단 무대에 서는 것을 택하게 되는 거죠, 자연스럽게. 작품이 끊기거나 계속 적은 임금만 받고는 생활할 수 없으니 10년 동안 하던 뮤지컬 접은 친구들도 주위에 꽤 있습니다.”

 

인터뷰를 마칠 때쯤, 준성 씨는 며칠 전 그의 아내와 나눈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내가 자신을 부를 때 장난스레, “어이, 뮤지컬 배우!” 했는데, 준성 씨는 거기에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나 뮤지컬 노동자야.” 라고 답했다고 한다. 뮤지컬 배우 아니 예술가 전준성 씨에게 ‘노동’은 어떤 의미일까? 여러 말보다 이 한 문장으로 그가 뮤지컬 연기로 뿜어내는 노동이 설명될 것 같다.  


“나의 예술은 무대가 아니어도 계속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