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Z 노동이야기] 고3이 안 쉬면 학원 알바도 못 쉬죠 '수험생처럼 쉴 틈 없는 일 년을 보내는 논술첨삭 선생님' / 2014.8 고3이 안 쉬면 학원 알바도 못 쉬죠 '수험생처럼 쉴 틈 없는 일 년을 보내는 논술첨삭 선생님' 정하나 선전위원 직장인에게 7, 8월은 휴가철이지만 학생들에게는 방학이다. 오늘 소개하는 박다현(28세) 씨의 여름방학은 대입 논술고사를 준비하는 고3 학생들을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로 바쁘다. 다현 씨는 서울의 유명 학원가에 있는 논술학원에서 첨삭지도 아르바이트 중이다. 사교육계의 하청, 논술 첨삭 알바 올해 대학원 입학 전, 사회단체 활동을 하던 다현 씨. 벌써 4년 차에 접어든 이 논술 첨삭지도 알바는 단체에서 지급되는 활동비가 너무 적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주말에만 하면 되고, 시간당 임금이 높은 편이라 좋았다고 했다. 그럼 다현 씨는 말로만 듣던 연봉이 몇 억씩 된다는 ‘○○동 스타강사.. 더보기
월 간 「일 터」/[A-Z 다양한 노동이야기]

[A-Z 노동이야기] 고3이 안 쉬면 학원 알바도 못 쉬죠 '수험생처럼 쉴 틈 없는 일 년을 보내는 논술첨삭 선생님' / 2014.8

고3이 안 쉬면 학원 알바도 못 쉬죠 

'수험생처럼 쉴 틈 없는 일 년을 보내는 논술첨삭 선생님'


정하나 선전위원


직장인에게 7, 8월은 휴가철이지만 학생들에게는 방학이다. 오늘 소개하는 박다현(28세) 씨의 여름방학은 대입 논술고사를 준비하는 고3 학생들을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로 바쁘다. 다현 씨는 서울의 유명 학원가에 있는 논술학원에서 첨삭지도 아르바이트 중이다. 


사교육계의 하청, 논술 첨삭 알바


올해 대학원 입학 전, 사회단체 활동을 하던 다현 씨. 벌써 4년 차에 접어든 이 논술 첨삭지도 알바는 단체에서 지급되는 활동비가 너무 적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주말에만 하면 되고, 시간당 임금이 높은 편이라 좋았다고 했다. 그럼 다현 씨는 말로만 듣던 연봉이 몇 억씩 된다는 ‘○○동 스타강사’인가? 알고 보니 논술학원 구조상 첨삭지도 선생님은 그런 위치가 아니다. 


“아시다시피 학원의 고용구조는 기본적으로 특수고용 형태예요. 원장과 강사 간의 계약도 다 일대일로 하되, 강사가 얼마나 잘 나가느냐에 따라 애들 내는 학원비 나눠 갖는 비율을 정하죠. 논술강사들 역시 이렇게 계약을 해요. 이 논술강사들이 자기 반에 한 타임 당 한 20명, 많으면 30명까지 학생들을 받는데, 앉혀놓고 강의하는 것 외에 애들이 써온 1천 몇 백자 글에 빨간 펜으로 줄긋고 별표치고 첨삭해서 학생 한사람씩 불러서 대면지도를 해줘야 한단 말이지요. ‘네 글의 포인트는 ~~~인 것 같은데, 여기에 있는 문장은 적절치 않다/적절하다’는 식의 코멘트를 해줘야 하는 거죠. 근데 수업 시간상 수강생이 혼자 다 커버가 안 되니까 ‘첨삭 지도’만 하는 선생들을 따로 섭외(고용)하는 거예요. 자기 밑으로 한 서너 명씩. 학생 1명당 15~20분 정도 소요되니, 클래스의 수강인원에 따라 필요한 첨삭지도 선생 숫자가 나오겠죠. 일종의 하청, 하도급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제 위치가 바로 여기죠.” 


사교육계의 하청노동자라고 할 수 있는 논술 첨삭 선생님의 급여는 자기를 섭외해서 데리고 있는 논술강사가 알아서 개별적으로 결정한다. 즉, 원장과 나눈 논술강사 수입 중에서 논술강사 본인이 너무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그래서 첨삭 선생들의 임금이 천차만별이라고 했다. 


“저희 선생님은 첨삭 원고 한 장당 10,000 원씩 쳐 줬어요. 거기에 일한 지 1년이 지나면 장당 1,000 원을 올려주는 정책을 썼는데, 저는 4년 차니까 장당 14,000 원이 되었죠. 이게 별거 아닌 거 같아도 10장으로 치면 40,000 원 차이 나는 거니 크죠. 그리고 대학원 들어가기 전, 그러니까 재작년부터 작년까지는 첨삭 선생님들 중에서도 ‘관리’하는 직책이었거든요. 그러면 첨삭비 외에 수강학생 1명당 10,000 원씩 더 얹어주었죠. 대신 수업이 있는 모든 날 관리 차 학원에 나가야 해서 주말 이틀 모두 출근하고 평일 중 하루나 이틀 더 출근했어야 했어요. 그때 그렇게 해서 200만 원 넘게 벌었죠.”


주말특수 논술학원, “주말까지 일하니 죽을 것 같아”


처음에는 월급 금액만 듣고 “어휴~ 그래도 아르바이트치고는 돈 많이 벌었네요.”라고 대꾸했다. 하지만 아뿔싸! 놓친 게 있었다. 다현 씨는 애초에 논술학원 주말알바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평일에는 사회단체 상근자로 근무하고 있었기에, 최근 몇 년 동안 일주일 내내 쉬는 날 없이 정말 일만 해 왔을 터였다. 


“주중에 하루도 못 쉬는 생활을 한 2년 하니까 정말 죽을 거 같더라고요. 수업이 9시부터 시작인데 저는 8시 반까지 가서 첨삭 준비 먼저 좀 해놓고 그랬거든요. 그러면 집에서 7시 반에 나와야 하는 거죠. 9시부터 두 시간 학생 5~6명 만난 후, 강사가 강의하는 두 시간은 좀 쉬고 다음 첨삭 준비하며 대기해요. 또 오후 2시부터 두 시간 첨삭지도 후 대기, 6시부터 두 시간 첨삭지도 후 대기. 이렇게 하루에 3타임 수업, 학생 한 15~20명 정도 만나서 떠드는 걸 하는 거예요. 마지막 클래스가 6시에 시작해서 8시에 딱 끝나면 좋은데 좀 말이 길어져서 늦게 끝나면 강사 강의가 종료되는 밤 10시까지 학생을 기다렸다가 첨삭지도를 해주어야 합니다. 그러고 집에 가면 11시 반 정도가 돼요.”


물론 학원도 쉬는 주기가 있긴 했다. 학생들이 1학기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치르는 몇 주는 논술학원은 잠시 방학이다. 논술학원은 내신 성적과는 관계가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대신 그 시기 동안 논술 첨삭 알바비가 끊긴다. 몸은 좀 편안해졌지만, 생활비는 끊기는 꼴이 되는 것이다. 그래도 올해부터는 첨삭관리일도 그만두고, 일요일에만 나가기로 했다. “죽을 것 같다”는 몸과 정신의 신호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자신만의 공부시간과 여유를 확보하기로 했다.  


“남들 쉴 때 쉬고 싶은 욕망이 아주 커요. 논술 학원은 방학 때라도 수업을 주말에 잡아요. 평일에는 주요과목인 국․영․수 학원 가고 논술은 주말에 하루 오거든. 예전에는 친구들이랑 약속 잡을 때 너무 힘들었어요. 그리고 학원은 남들 쉴 때 더 바쁘거든요. 예를 들면 요즘 같은 여름방학에는 여름방학 특강이 개설되고, 아. 특히 추석! 추석특강반이 개설되면 앞서 설명한 하루 4시간씩 3타임(오전 9시~오후 10시)을 연휴 내내 진행하는 거죠. 그래서 추석 연휴 길면 정말 죽음이죠. 요즘엔 토요일 하루라도 쉬잖아요. 토요일은 이제 안 나간다고 마음먹고 무조건 비웠는데, 생각보다 더 좋은 것 같아요. 첨삭 관리할 때는 온종일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는데 그러지 않아도 되니 또 좋고.”







출처 : KBS 화면 캡쳐


수험생과 같이, 1년 내내 긴장된 노동


학원을 기준으로 돌아가는 다현 씨의 주간·연간 알바 일정을 듣고 있노라니 한국 사교육 현장을 깊숙이 알아버린 느낌이다. 방학 따위 꿈도 꿀 수 없는 대한민국 고3과 그 부모들이 제일 가까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겠지만, 사교육 시장의 시간표도 그에 못지않게 종종걸음 치며 발맞춰 돌아가고 있었다. 학원가 노동자들의 생활 시간표가 수험생의 그것에 맞춰지게 되는 것이다. 


“예비 고3들의 출정시기인 겨울방학을 기점으로 중간고사·기말고사 기간 지나서 7월 중순부터 여름방학 특강, 추석특강, 그리고 제일 중요한 ‘파이널(final)’ 시기가 있어요. 파이널은 수능 직후 2주간을 부르는 말인데, 이때 각 학교 논술고사가 집중되어 있죠. 이때는 추석특강보다 더 죽음의 주간이에요. 혹시 ‘농활’ 가보셨나요? 저도 안 가봤는데, 다들 농활 온 것 같다고 말하더라고요.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2주간 매일 김밥 먹고 말하고 김밥 먹고 말하고. 이렇게 쉼 없이 일하면 사람이 혼이 나간다고 해야 하나, 찌들어 버린다고 해야 하나?”


‘파이널’은 논술학원의 존재 이유라고 할 수 있는 시기. 수능시험을 마치고 학생들이 모든 에너지를 논술고사에 쏟는 만큼 학원도 총력을 쏟는다. 수업 시간, 학생, 할 일이 모두 많아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대입 당락이 결정되는 워낙 긴장도가 높은 시기라서 학생과 학부모 관리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학원가에 떠도는 전설이 있어요. 파이널 때 어떤 선생님이 원고지를 한 장 분실했는데, 학부모가 달려와서 학원을 다 뒤집어놨다고. 실제로 분실한 적은 없었지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무조건 복사를 해서 한 부는 학원에 보관하고 한 부는 가지고 다녀요. 빈틈없이 하려는 거죠. 문제 생길 거리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요. 사실 이 시기에 애들이 예민해져 있는 게 이해는 가요. 강의 듣고 첨삭 받은 대로 잘 쓰고 싶은데, 자기 생각만큼 실력은 좋아진 것 같지 않고 입시는 코앞이니 얼마나 불안하겠어요. 그래서 정말 글을 잘 써서 ‘잘 썼다’고 칭찬해줘도 곧이 안 듣고 대충 시간 때우려 한다고 오해해요. 그래서 첨삭지도 할 때는 칭찬 반, 비판 반 섞어주는 기술이 필요해요. 칭찬하면 오히려 애 표정이 굳는 게 보이거든요. 그러면 여지없이 클레임이 들어와요. ‘선생님 바꿔주세요’라고.”


폭풍과 같은 파이널, 대단원의 막이 내리는 날에는 같이 첨삭지도를 하는 동료와 함께 어떻게든 일을 일찍 끝내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늦어도 9시에는 무조건 일을 정리하고 다현 씨와 동료들은 택시를 타고 와인이 무제한으로 나오는 뷔페 레스토랑을 향해 달린다. 그리고 레스토랑 마감시간 까지 남은 1시간, 뒤풀이로 딱 1시간을 신나게 즐기는 것이다. 대면 첨삭 알바 선생님들끼리의 파이널 뒤풀이면서 조촐한 위로회이고, 그 해 다현 씨의 송년회이기도 했으리라. 


대학원 공부 마칠 때까지는 논술첨삭 알바를 계속 할 거라는 다현 씨. 공부를 마치고 “4대 보험도 적용되고”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곳에 적을 두기 전까지는 또 몇 고비의 대입 파이널을 고3들과 함께 치러야 할 것이다. 그래도 돌아오는 추석 연휴, 아니 추석특강일이 짧아서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