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5. 그냥 내 나라예요, 거기도! - 귀국 이주노동자 날라끄 이야기 / 2018.01

그냥 내 나라예요, 거기도!

- 귀국 이주노동자 날라끄 이야기

최수정 <담> 프로젝트, 수원이주민센터


“회사에 도착해서 보니까 엄청 시골 같았어요. 겨울이라 나뭇가지만 남아서 삭막했어요. 차에서 내리자마자 밖에 이렇게 보고 ‘진짜 나 어디에 온 거야? 이런 세상도 있었구나!’ 생각했어요. 먼저 사장님하고 사모님이 있는 사무실에 들렀어요. 제가 사모님한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는데 그분은 나한테 인사 안 했어요. 인사하라고 해서 인사했는데…. 그리고 사무실에서 나와 공장에 갔는데 건물이 아니라 비닐하우스였어요. 화장실은 공장에서 1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화장실을 쓰고 물은 공장에 와서 다시 가지고 가야했어요. 그리고 집은 컨테이너였어요.”

처음 밟은 한국 땅, 처음 만난 한국 사람, 모든 것이 낯설고 불편하기만 했다. 그래도 돈만 많이 벌수 있다면 참을 수 있었다. 가족을 위해, 돈을 벌기 위해 어릴 때부터 간직해온 군인의 꿈도 포기하고 찾아온 한국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일해도 한 달에 80~90만 원밖에 벌지 못하고 그 돈으로 하루 3번의 식사도 모두 해결해야 하는 그 회사에서 날라끄는 한 해를 채 넘기지 못하고 다른 회사로 옮겼다. 물론 돈도 많이 벌고 일도 힘들지 않은 곳으로 가고 싶었지만 그건 날라끄가 선택할 수있는 게 아니었다. 노동자의 직장이동 자유와 직장선택의 폭을 제한하고 있는 고용허가제하에서 그건 그저 운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3번밖에 회사를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거기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갔는데 엄청 힘든 일이었어요. 철판 같은 거, 건물 지을 때 필요한 철근 만들었어요. 다행히 그 회사 사장님은 좋은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일은 힘들었지만 2년 반 동안 진짜 열심히 일했어요. 다른 회사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거든요. 한국 사람이 외국 사람한테 일 시킬 때 말하는 거나 큰소리치는 거 보면 자기가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어떤 회사에서는 다 욕부터 시작했어요. 아침에 올 때마다 욕하면서 ‘야, **! 이리 와’ 이렇게해요. 좋은 말 한 번도 안 해요.”

힘들고 고된 노동, 불편한 주거 환경, 외국인이라고 욕부터 시작하는 사람들.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왔다지만, 하루하루 포기하지 말자는 다짐 없이는 견디기 힘든 나날이 많았다. 게다가 언제 어떻게 사고가 일어날지 모르는 작업 환경의 위험 역시 감수해야 했다.

“기계에서 제품이 두 개씩 나오면 문을 열고 그 제품을 빼는 일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기계에 내 장갑이 끼어서 들어갔어요. 피가 엄청났어요. 병원에 가려고 밖으로 나와서, 같이 일하던 스리랑카 친구한테 기계에 있는 내 잘린 손가락 가져오라고 해서 가져갔어요. 그때 병원에서 회사 사람들이 거짓말했어요. 제가 불량을 자르는 분쇄기에서 다친 거라고, 제품 기계로 다친 거 아니라고 거짓말했어요. 분쇄기는 우리가 실수하면 다칠 수 있어요. 그런데 제품 기계에서 다쳤다고 하면 센서를 새로 고쳐야 하고, 보험 문제가 생기고 그래요. 그때는 제가 회사 사람들한테 거짓말해도 괜찮으니까 내 손가락만 제대로 치료해주라고 했어요. 병원비 750만 원 정도를 회사에서 냈어요. 전에도 다른 사람이 이렇게 다친 적 있었는데 그때도 회사에서 병원비를 해 줬어요. 산재처리 해도 아마 100~200만 원 밖에 못 받을 거라고 들어서 안 했어요.”

갑작스럽고 눈앞이 캄캄해지는 사고 앞에서 날라끄는 다른 건 상관없이 손가락이 다시 제대로 붙어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당장 내 손가락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회사의 거짓말이나 산재처리 여부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회사는 그것을 너무나 잘 알았을 것이다. 말 그대로 ‘적법하게,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넘어갈 방법을. 회사가 왜 다른 기계에서 다쳤다고 거짓말을 하는지, 왜 산재처리를 하지 않고 회사, 돈으로 치료비를 내려고 하는지 날라끄는 모르지 않았다. 너무나 잘 알았다. 그래서 회사가 알아서 잘 치료해줄 테니 문제 복잡하게 만들지 말자고 했을 때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여러 번의 수술과 오랜 치료 끝에 날라끄의 손가락은 정상으로 돌아갔다.

날라끄가 한국에 오게 된 이유도 그리고 한국에서 얻은 것도 첫 번째는 돈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온갖 어려움과 억울함을 참았다. 이제 스리랑카로 돌아가 편하게 지낼 수 있게 된 날라끄. 힘들었던 나라 한국은 두 번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을 것 같기도 한데 그는 “다시 돈 벌러 가고 싶은 건 아니에요. 진짜 한국에 잘해주고 싶은 마음 있어요. 나한테는 고마운 나라니까. 한국에 다시 갈 기회가 생기면 가보고 싶어요, 당연히. 그냥 내 나라예요, 거기도.”라고 말한다.

얼마 전 정부는 이주노동자들에게 5년 이상의 체류를 허가하지 않겠다는 시행령 개정안을 내놓았다. 또한, 숙식비를 월급에서 원천징수할 수 있게 한다고도 한다. 세월이 흐르고 정권이 바뀌어도 이주노동자를 둘러싼 환경은 나빠지기만 한다. 젊은 날, 그 빛나는 청춘을 한국에서 온전히 보낸 날라끄, 그리고 지금도 청춘을 바쳐 일하고 있는 수많은 날라끄들에게 우리는 이렇게 응답할 수밖에 없는 걸까?

특집4. 지금 하라고 하면 못 할 것 같아요 - 이주노동자 영상활동가 아웅틴툰 이야기 / 2018.01

지금 하라고 하면 못 할 것 같아요

- 이주노동자 영상활동가 아웅틴툰 이야기

박유호 <담> 프로젝트, 노동당


아웅틴툰씨는 미얀마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한국에 들어온 시기는 94년 18세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때였습니다. 당시 미얀마의 정치상황이 좋지 않아 대학에 진학 할 수 없는 그는 외국으로 견문도 쌓고 공부도 하고 싶어 ‘산업연수생’제도를 신청하여 한국에 들어왔다고 합니다.그는 한국에 들어오기 전 견문도 넓히고 배울 기회가 많아지겠다며 기대를 했지만 그를 기다리는 것은 열악한 노동환경이었습니다.

“‘산업연수생’ 이름만 듣곤 막 이것저것 대접 받으며 공부하며 일도 배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 기대는 금방 깨졌어요. 이렇다 할 한국어 교육도 없이 3일 정도 딱 교육하고 나서, 바로 공장에 들어가서 일하게 되었어요.”

그는 한국에 들어오자 마자 인천 제물포 인근의 한 선박엔진 주물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막상 한국에 들어와서는 배우는 시간이 있기는 커녕 쉬는 시간조차 여유롭지 않았습니다. 노동시간은 하루 12시간을 넘는게 당연했고, 주말도 없었습니다. 잠자리 또한 비가새고 좁아서 휴식을 취하기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기대’는 이내 ‘실망’이 되었습니다. 그를 괴롭히는 것은 장시간 노동시간과 열악한 노동환경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직장에서의 차별 또한 무시 못했습니다.

“한국말이 서투니 한국인 직원들이 기분 나쁜 장난을 많이 쳤어요. 회사에서 일을 하다보면 한국인 직원들이 한국어를 가르쳐준다고 하면서 나쁜말(상대방을 비하하는 말이나, 욕설 등)을 해보라고 해요. 그런데 우리는 한국어를 제대로 알고 있는 게 아니니까, 이게 해야 할 말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어려웠어요. 그 말을 하는 사람의 표정이나 어투를 보며 분간을 해야 하니까 이래저래 눈치보는 법부터 배우게 되었어요.”

‘못사는 나라’에서 왔다고 ‘한국어’에 서툴다는 이유로 무시받는 일들이었습니다. 그는 1년정도 일을 하다가 부상을 입었습니다. 노동을 하다가 입은 부상인데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산재신청을 거부 당했습니다. 산재신청을 알아보면서 이주노동운동을 하는 동료 노동자들을 만났습니다. 노동법을 배우고 동료들의 노동상담을 해주면서 그는 지금까지 이주민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 기간 중에서 그는 ‘2003년’ 이주노동자들의 집단 농성과 투쟁의 경험들을 자랑스레 이야기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던 그는 지금 한국땅에서 이주민 영화제를 몇 년째 진행하고 있고이주민방송에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주민 방송 3년, 다른 데에서도 방송 일을 3년정도 했던 경험을 살려서, 미얀마에서 한국의 EBS같은 교육방송사를 만들어 보고 싶기도 해요. 성인 청소년아이들 모두를 위한 교육방송을 만들고 싶어요.”

그는 인터뷰 내내 한국인들이 쉼 없이 살아가는 이유를 궁금해했습니다. 무엇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가 하고 말입니다. 자기가 일하면서 보았던 한국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찾기보다는 무엇에쫓겨 사는 느낌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사람들은 너무 여유롭지 못하게 사는 것 같아요. 너무 잘사는 미국이나 유럽만 쳐다보고 사는데 부족하지만 여유롭게 살아가는 동남아시아 사람들의 삶도 돌아봤으면 좋겠어요.”

그가 살았던 미얀마에서는 사람들이 넉넉하지는 않더라도 여유를 가지고 살아간다고 이야기합니다. 한국사람들에게 보고 배울게 많지만 여유롭게 사는 법은 미얀마사람들에게 좀 배워야 한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장시간 노동을 없애려는 고민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긴 노동시간과 열악한 환경은 계속되고있습니다. 우리에겐 여유로운 삶이란 굉장히 멀어져 보입니다. 하지만 아웅틴툰씨는 간단합니다. 좀 더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라고 말입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쩌면 길은 그리 복잡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려운 시간을 겪어오면서도 활기차고 여유롭게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제게도 새로이 힘이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집3. 네팔에서 온 이주노동자 오쟈 씨 이야기 / 2018.01

네팔에서 온 이주노동자 오쟈 씨 이야기

푸우씨 <담> 프로젝트, 상임활동가


“고향 친구들 모두 한국에 왔어요. 다 여기 있어요, 한국에. 네팔에서 가족 중 한 명이 E-9 비자로 한국에 와서 돈을 벌면, 그 돈으로 다른 가족 모두가 살수 있거든요.”

태어나 자란 네팔을 떠나는 것,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다른 나라에 가서 일하는 것은 오쟈 씨와 또래의 네팔 청년들에게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오쟈 씨는 한국에 오기 전 ‘필더보이’로 인도에서 일 했다. 회사의 지시에 따라 사무실로 서류나 돈, 책을 준비해 오토바이로 전달하는 일을 했다. 열심히 일했지만, 한 달 꼬박 일하고 받는 월급은 한국 돈으로 20만 원, 많을 때는 25만 원 남짓한 수준이었다. 일자리를 찾아 인도에 갔지만, 네팔과 별반 상황이 다르지 않은 것을 알게 된 그는 고향에 돌아와 친구들처럼 한국행을 택했다.

“5명이 한방에 자야 했어요. 기숙사 비용도 내야 했고요. 월급에서 10만 원씩 잘라갔어요. 하숙비, 전기비, 인터넷비. 이렇게 해서 1인당 10만 원씩 기숙사비용으로 잘랐어요.”

인도에서 네팔로 돌아와 카트만두에서 6개월가량 한국어 공부를 하고, 시험에 합격해 운 좋게 한국에 오게 된 오쟈 씨. 그는 인천 서구의 와이어 커팅 회사에서 일하게 됐다. 그러나 그가 꿈꾸던 한국생활과 달리 현실은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눕기에도 빠듯하고, 화장실도 없는 컨테이너에서의 생활이었다.

“회사에 가서 부장님한테, ‘안녕하세요’ 이렇게 인사하니까 ‘안녕하세요 하지마. 안녕하십니까! 이렇게해’ 라고 하더라고요.”

그는 한국에서 첫 출근길에 곤욕을 치렀다. 출근하며 인사를 건넨 오쟈 씨에게 고압적인 태도로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잘라먹은 한국인 부장은, 출근할 때고개를 숙이고 다니라고, 눈을 깔고 다니라고 말했다. 심지어 사장과 부인은 오쟈 씨의 인사도 받지 않았다.

“네팔에서 오자마자 한 달 동안 매일 같이 욕먹고, 맞고 그랬어요. ‘시발’, ‘이 새끼야’ 이런 욕을 했어요.”

업무지시를 하는 부장은 매일 같이 욕을 했고, 때로는 폭행도 가했다. 일도 많이 힘들었다. 그가 맡은 업무는 운반이었다. 60~70kg가량의 와이어 뭉치를 혼자서 들어 날랐다. 고된 업무로 1년 정도 지나자 몸에 이상 신호가 왔다. 허리가 아팠다.

“병원에 갔더니, 무거운 물건을 운반해서 그런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회사에 가서 얘기했죠. 몸이 아프다고요. 회사를 옮겨 달라고요. 그러자 회사에 선 ‘일해! 일 안 할 거면 네팔 가!’라고 했어요.”

그때부터 오쟈 씨는 넉 달 가까이 악몽 같은 일상을 보냈다. 출근한 그에게 부장은 아프냐고 묻곤, 아프다고 답하면, ‘일 없어! 가서 쉬어!’라고 하며 그를 기숙사로 돌려보냈다. 때론 아무 의미 없이 무거운 재료를 이곳저곳으로 들어 나르도록 시켰고, 어떤 때는 2시간만 일을 시키고는 일이 없다며 돌려보냈다. 그가 아프다고 하니 회사에선 컨테이너가 아닌 다른 기숙사(아파트)로 그를 보냈다. 그리고는 월급에서 20만 원을 기숙사비로 잘라갔다. 결국,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쟈씨는 스스로 노동부를 찾았지만, 노동부 직원은 모르겠다며, 사장에게 말해서 사업장을 변경하라고 했다. 도움은 커녕, 회사의 입장을 대변하는 노동부 직원에게 배신감을 느꼈던 그에게 도움을 준 것은 이주노조였다. 우연히 친구에게 건네받은 전화로 이주노조 위원장(네팔에서 온 우다야 라이)에게 사정을 말한 그는, 14개월 만에 사업장을 변경했다.

“평택에서 일하던 회사, 사장님도, 부장님도 안 좋은 사람이었어요. 회사에선 ‘네팔로 돌아가고 싶냐, 말 안 들으면 비자 연장 안 해줘!’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오쟈 씨는 우여곡절 끝에 안성·평택에 있는 플라스틱 사출 공장으로 직장을 옮겼다. 농촌에 있는 공장에서 오쟈 씨와 동료들은 일이 없을 때는, 회사 밖의 농장에 불려가 풀을 베야 했다. 정해진 업무가 아닌 다른 일을 시키는 것에 대해 묻자, 회사에선 ‘시키는 대로 해!’라고 답했다. 3년 시효의 비자가 만료되면, 1년 10개월을 연장해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고용허가제’의 비자 연장을 미끼로 회사에서는 부당한 일을 강요했다. 12개월이 넘게 일하면, 퇴직금을 지급해야 하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11개월짜리 계약서를 쓰도록 강요하고, 계약 기간이 끝나면 공장의 다른 부서로 재계약을 맺게 하는 꼼수를 쓰는 회사였다. 오쟈 씨는 또 한 번 이주노조의 도움을 받아 사업장을 변경했다. 그렇게 지금 일하는 천안의 볼트·너트 제조회사에 터를 잡았다.

‘사장님’의 허락 없이는 사업장 변경이 불가능하고,‘사장님’이 3년을 근무한 이후 비자 연장을 해주지 않으면 더 일하고 싶어도 고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현재의 고용허가제의 부당함을 몸소 느낀 오쟈 씨는 이주노조의 활동과 고용허가제 폐지를 촉구하는 행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고용허가제를 해결하지 않고 선 그에게 기대고 있는 가족들의 삶도 보장이 되지않기 때문에, 오쟈 씨는 주말에도 쉬지 않고 이주노조의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오쟈 씨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한국경제의 필요에 부응한 많은 이주노동자에게 우리는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이대로면 충분한가. 정말 그런가. 계속 질문하고 답해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특집2. 쑤쑤!1 우리는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강해요! - 여성 이주노동자 스레이나 이야기 / 2018.01

쑤쑤!¹ 우리는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강해요!

- 여성 이주노동자 스레이나 이야기

정지윤 <담> 프로젝트, 수원이주민센터


스레이나 씨는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서 남쪽으로 15Km 정도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그녀는 열두 살이 되던 때부터 항상 일하여 돈을 벌어야했다. 어머니를 도와 길거리에서 행상했고 열여덟 살이 되어서는 음식점의 종업원으로 일했다. 하루 1달러, 한 달 20달러의 월급은 동생들의 학비이자 엄마의 병원비이자 가족들의 생활비였다. 월급을 좀 더 많이 받기 위해 그녀는 남들이 꺼리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맥주 파는 일을 하면 월급이 40달러나 됐어요. 하지만 캄보디아에서는 술 파는 여자는 술만 파는게 아니라 다른 안 좋은 일도 한다는 식으로 생각해서 멸시해요.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한다는 건 알지만 내가 진짜 그런 것도 아니고 나는 그냥 가족을 위해서, 내 일이기 때문에 떳떳하게 일했어요.”

스레이나 씨는 열여덟 살의 어느 날 부모님께도 말하지 않은 채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으로 떠났다. 아는 사람의 소개로 그곳 음식점에서 숙식하며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 사실을 늦게 알게 된 아버지는 스레이나를 집으로 데려오려고 프놈펜까지 찾아 왔지만, 그녀는 병든 어머니와 일곱 명의 동생이 있는 어려운 집안형편을 아버지 혼자 감당할 수 없음을 너무나 잘 알기에 매몰차게 아버지를 돌려보냈다. 그리고 낯선 대도시에서 서른두 살이 될 때까지 쉼없이 일했다. 음식점일 뿐만 아니라 3층짜리 가게를 새로 짓느라 벽돌과 시멘트를 나르는 일까지 사장이 시키는 일은 무조건 해야만 했다. 

숙식을 조건으로 한 달 20달러 월급을 받고 시작했던 프놈펜 식당, 13년을 일한 그곳에서 마지막으로 받은 월급은 100달러였다. 한국행은 그녀에게 13년간 일한 식당에서 받던 월급 100달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돈을 벌 새로운 기회였다. 하지만 그녀가 도착한 한국은 상상과는 사뭇 달랐다. 

“6시부터 12시까지 일을 하고 밥을 먹는다고 계약했는데 1시까지 일을 하고 밥을 먹었고 밥 먹자마자 바로 일을 했기 때문에 점심시간 한 시간 쉬기로 한 건 어떻게 계산하고 있는지 궁금했어요. 일을 시키는 만큼 돈이 맞는지 의심스러웠지만, 한국 온 지 얼마 안 돼서 물어볼 수도 없었고 계속 일만 했죠.”

핸드폰도 없이 왕복 3시간을 걸어 나와야 마트가 나오는 시골, 비닐하우스로 둘러싸인 곳에서 충주의 한 시골 마을에서 스레이나 씨는 하루 12시간이 넘게 일을 했다.

“사장님을 이기지는 못하겠지만 노동부에 가서 얘길 했어요. 한국에서는 노동부에 가서 신고를 해봤자 바로 이길 수는 없어요. 세 번인가 네 번인가 노동부에 갔었는데 그때마다 노동부에서는 자꾸 사장님이랑 화해하라고 자꾸 그렇게만 얘기했어요...(중략).... 한 번은 사장님이 일하는 시간이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였던 걸 6시부터 7시까지 하라고 노동 시간을 바꿨어요. 사장님 말은 겨울에는 일이 적어서 아침 9시에 시작해서 5시에 끝나니까 그때일 안 하는 시간만큼 지금 일을 많이 해야 한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알았다고 하고 그대로 일했어요. 10월 중순쯤 되니까 시골이니까 어둡고 추워요. 그때는 그럼 사장님 말대로 9시 시작해서 5시에 끝나야 하는데 그때도 6시에서 7시까지 똑같이 일했어요..”

스레이나 씨처럼 농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 63조의 예외규정에 의해 추가 근로수당이나 휴일 보장을 받지 못한다. 수많은 농업 종사 이주노동자들은 한 달에 겨우 하루나 이틀을 쉬고 과도한 노동에 시달린다. 게다가 어떤 사업주들은 초과근로 수당은 고사하고 초과근로 시간에 대한 최저임금조차 주지 않은채 60시간을 일하건 70시간을 일하건 주 40시간 기준의 최저임금만을 지급하기도 한다. 이런 척박한 한국의 노동 환경 속에서도 여성 이주노동자 스레이나 씨는 순응하고 무릎 꿇지만은 않았다.

“처음에 농장에서 무작정 나온 뒤부터 크메르노동권협회를 알게 돼서 관계를 맺고 같이 일을 하게 됐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한테 가장 중요한 일들은 협회 일이에요...(중략)...선생님은 한국 사람이고 나는 캄보디아 사람이에요. 한국 선생님 있지만, 캄보디아 사람인 내가 있으면 캄보디아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더 잘 할 수 있어요, 문제 해결을 하기 위해서 어떻게 증거 자료를 모으고 어떻게 준비해야하는지 설명해 줄 수가 있어요. 그래서 이런 일을 하는 게 중요해요.”

E-9² 비자가 만료된 뒤 한국어를 공부하는 D-4³ 비자로 한국에 다시 들어온 스레이나 씨는 여전히 노동자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다. 한국어를 배우며 크메르노동권협회를 대표하여 노동자들을 돕고 한국의 잘못된 고용허가제와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에 대해 목소리를 높인다. 그녀의 삶의 이야기는 ‘여성 이주노동자’로만 규정할 수 없다. 매 순간 땀 흘려 일하며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 그 평범함이 그래서 더욱 특별할지도 모른다.


* 각주

1) 캄보디아 말로 힘내라, 파이팅이라는 뜻이다.

2) 비전문취업비자, 고용허가제

3) 일반연수비자

특집1. ‘담을 허물다’를 시작하며 / 2018.01

‘담을 허물다’를 시작하며

사월 <담> 프로젝트,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그들은 거기에 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

-제7의 인간: 유럽 이민노동자들의 경험에 대한 기록, 존 버거


여전히 죽음으로 호명되며

2016년 겨울을 환히 밝혀주었던 빛은 크고 작은 변화들로 일상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부정의에 대한 분노로 시작되었던 촛불은 더 많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열망하는 촛불로 이어졌습니다. 변화가 시작되었던 그곳, 광장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흘러나왔습니다. 그 날의 목소리는 변화를 일구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변화가 시작되었음에도 여전히 보이지 않는 이들이 있습니다. 변화의 길목에서 함께 불을 밝혔지만 이름이 아니라 죽음으로, 숫자로 불립니다. 올해도 몇 번을 새하얀 국화꽃을 놓으며 머리를 숙여야 했습니다. 산업재해나 사고, 강제추방과 단속, 신변 위협으로 인한 자살, 젠더폭력 등으로 많은 이주민이 망했습니다.

집이 된 비닐하우스, 빗물이 새서 전기가 흐르는 벽, 잠기지 않는 방, 휴식시간 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 생산량을 위해 제거되는 안전장치는 이주민에게 닥친 한국사회의 잔혹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우리는 같은 사람이기에

“가난한 나라에서 왔지?” “이상한 냄새 나.” “말귀를 못 알아들어” “답답하게 굴어” “힘든 일 하러 온 건데. 뭐 어때”… 쌓인 담 너머 사람이 있습니다. 더 늦출 수 없을 만큼 울부짖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옵니다. 차별의 시선을 혐오의 언어를 맨몸으로 받아내며 가해지는 고통과 죽음의 공포에 울부짖고 있습니다. 울부짖는 그 사람들의 곁에 머물며 안부를 묻고 삶에 말을 건네려 합니다. 그 사람들도 나도 사람이기에. 이보다 더 마땅한 이유가 필요할까요? 그저 우리는 같은 사람이기에.


당신의 목소리를 ‘담’아, 높게 쌓인 ‘담’을 무너뜨리고

어느새 높다랗게 쌓인 회색빛 ‘담’은 목을 뒤로 젖혀도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회가 나눈 이쪽과 저쪽의 경계를 흐트러뜨리고 그 사람들에게 붙인 부정적인 이름들을 떼어내려 합니다. 가난하고, 냄새나는, 답답한 사람이라는 편견과 낙인을 떼어내고 개개인의 이야기를 건져 올리려고 합니다. 저 깊은 곳으로 가라앉은 삶에 문을 두드리고 말을 건네어, 그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으려 합니다. 오가는 이야기는 오롯이 기록되어 높게 쌓인 담에 균열을 주기 시작할 것입니다. 기록된 이야기는 꺼칠꺼칠하고 차가운 담을 흔들 것입니다. 사회가 붙여놓았던 이름들은 오롯이 한 사람의 이름으로, 삶으로 불릴 것입니다. 집단이 아닌 한 사람으로 불리고 다양한 삶의 모습으로 이야기될 때, 더욱 평등해지지 않을까요? 있는 모습 그대로 바라본다면 누군가를 담 너머로 밀어내지 않고, 이쪽과 저쪽을 나누어 벽을 쌓지 않을 테니까요.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며

경기이주공대위는 변화의 싹이 움트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이들을 기억하고, 이들의 목소리를 드러내기 위해 무얼 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이주민구술생애사 프로젝트<담>은 이러한 고민 끝에 꾸려진 기획단입니다. <담> 기획단은 이주민들이 숫자가 아니라 이름으로 기억되고, 혐오와 차별로 뭉뚱그려진 모습이 아니라 다양한 삶의 모습이 드러나기를 소망하며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담> 기획단은 여성 이주노동자 스레이나 씨, 북한이탈주민 김복주 씨, 이주노동자 오쟈 씨, 이주청소년 황윤호 씨, 이주노동자 영상활동가 아웅틴툰 씨, 종교적 난민신청자 ‘A’ 씨, 귀국 이주노동자 날라끄 씨 7명의 이주민을 만나서 삶에 말을 건넸습니다. 그 사람들이 전해오는 삶의 이야기를 빼거나 보태지 않고 오롯이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한 사람의 삶이 하나의 역사로 기억되기를 바라며, 삶의 목소리가 사회에 가닿아 지기를 바랍니다. 이주민의 목소리가, 목소리를 통해 울리는 마음들이 모여 높게 쌓인 담에 균열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아직은 균열이 일어날 ‘그 날’이 낯설지만 새로운 세상을 마음껏 상상하며 한 걸음씩 내딛겠습니다.

한걸음에 다가감이, 다음 한 걸음에는 소통이, 그다음 한 걸음에는 울림이 이어지기를 기대하며 그 사람들의 삶이 오롯이 이야기되는 그 날을 향해 함께 걸어가기를 소망합니다.

[언론보도] 이주민 구술 생애사 ‘담’ 프로젝트를 아시나요? (미디어스)

이주민 구술 생애사 ‘담’ 프로젝트를 아시나요?[2주에 한번, 이주이야기] 이주민 구술생애사 <담을 허물다> 발간기념 토크콘서트
한국에는 다양한 체류 자격을 가진 이주민들이 대략 200만 명 넘게 살고 있다. 2017년 기준으로 광주시를 제외한 전라남도의 인구가 179만 명임을 감안할 때, 정말 많은 숫자의 이주민들이 한국사회를 구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가 이주민 혹은 이주노동자를 떠올렸을 때의 그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이렇듯 우리 곁에 존재하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발굴해내고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만든 소중한 책 한 권이 있다. 이주민 구술생애사 담 프로젝트 <담을 허물다>가 바로 그 책이다.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2749

[언론보도] [‘이주민 생애사’ 연재④] 네팔에서 온 이주노동자 오쟈 이야기… “그건 선택이 아니었다“

네팔인 오쟈씨가 “박근혜 퇴진”을 외친 이유

[‘이주민 생애사’ 연재④] 네팔에서 온 이주노동자 오쟈 이야기… “그건 선택이 아니었다“

푸우씨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활동가 media@mediatoday.co.kr  2018년 01월 07일 일요일


“한국에 이주노조 활동하러 오신 분 같다니까요.” 오쟈 씨에 대해 이주노조 사무차장인 한국인 활동가는 그렇게 말했다. 최근 이주노조에서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하고 있는 조합원이라고.

오쟈 씨와 인터뷰를 하기 전 여러 곳에서 그와 마주쳤다. 일요일, 이주노조 관련 활동을 하는 자리였다. 그는 매번 그 자리에 있었다. 낯선 이들에게 선뜻 건네기 쉽지 않은 유인물과 플랜카드나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많은 인파속에 그가 서 있었다.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40652#csidx4c54a3304421fc7a4a05f7a5f0e8522

[언론보도] [‘이주민 생애사’ 연재③] 북한이탈주민 김복주 이야기… “난 그저 행복하게 살고 싶었어요” (미디어오늘)

“뿔 달린 김정일? 한국사람들 정말 다 그렇게 배우나요?”

[‘이주민 생애사’ 연재③] 북한이탈주민 김복주 이야기… “난 그저 행복하게 살고 싶었어요”

정재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활동가 media@mediatoday.co.kr  2018년 01월 05일 금요일

인터뷰를 위해 김복주 님이 단장으로 있는 한국평화통일예술단을 찾아갔다. 예술단 연습실에서 만난 김복주 님은 화려했고 아름다웠다. 대중에게 사랑받는 트로트 가수라 그런지 달라도 뭔가 달랐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북한이탈주민이 겪었을 법한 우여곡절과도 거리가 멀어 보였다.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걱정이 앞섰는데, 김복주 님이 조심스레 꺼낸 이야기는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시대의 아픔은 김복주 님에게 살려면 죽기를 각오하고 강을 건너도록 했다.


원문보기: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40590#csidx56c0983ccde3769b651419d3c608ab1 

[성명서] 실효성 있는 이주노동자 인권, 노동권 개선대책을 즉각 마련하라!

[성명서]



허울 좋은 외국인력정책위원회의 2018년도 외국인력 도입∙운용계획을 비판한다. 이주노동자들을 더 이상 죽이지 말라! 

실효성 있는 이주노동자 인권, 노동권 개선대책을 즉각 마련하라!



지난 12월 22일 홍남기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제25차 외국인력정책위원회가 개최되었다. 이 회의에서 「18년도 외국인력 도입∙운용계획」, 「고용허가제 불법체류∙취업 방지방안」, 「농업분야 외국인 노동자 근로환경 개선방안」등이 확정되었다. 2018년 외국인력 도입 운용계획은 17년도와 동일한 5만 6천명으로 결정되었다. 문제는 고용허가제 불법체류∙취업 방지 방안에서 여전히 이주노동자들이 왜 미등록체류가 되는지에 대한 원인은 해결하지 않은 채 오로지 단속인력을 대폭 강화하는 등 살인적인 단속 일변도로만 치우쳐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보도자료에서 관계부처간 미등록체류자 정보 등을 공유하고 합동 단속 기간도 기존 20주에서 22주로, 단속인원도 340명에서 400명으로 확대할 예정이라 밝혔다. 또한 지난 출입국관리법 시행령 개악으로 인해 최대 9년 8개월로 체류기간이 제한된 이주노동자들에 대해서 체류기간 만료 즉시 전수관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더욱 심각한 것은 미등록체류율이 높은 송출국가에 대해서 국가별 외국인 도입규모 결정시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계획까지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지난 6월 경기도 수원에서 수원출입국관리사무소 단속반원들에 의한 이주노동자 집단 폭행사건, 7월 4일 경주공단에서 일하던 스리랑카 이주노동자가 울산출입국 단속반의 토끼몰이씩 단속을 피해 달아나다 6m아래 펜스로 추락한 사건 등 올 한해에도 출입국의 집중단속으로 인해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죽음의 공포에 떨어야만 했다. 이러한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는 일단 살인적인 강제단속을 중단해야 한다. 오로지 단속만이 능사라며 더욱 단속인력을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미등록을 만들어내고 있는 원인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야만 이 악순환을 막을 수 있다. 사업주의 허락 없이 마음대로 사업장을 바꿀 수 없는 고용허가제도와 자의적 출입국 규제가 끊임없이 미등록이주노동자를 만들어내고 있다. 집중단속이 심해질수록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더욱 음지로 숨어들어갈 수밖에 없으며 인권과 노동권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체류자격을 회복할수 있는 방안과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변경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도록 해야만 장기적으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을 통해 “건설업 불법고용 하도급자”와 “원도급자”에게 제재조치를 취하겠다고 하는 등 미등록 이주노동자 고용 사업주에 대한 불이익을 강화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그러나 이런 조치는 고용주들이 위험부담을 이유로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 더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요하는 구실만 할 뿐이다. 결코 미등록 이주노동자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 될 수 없다. 정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이 아니라 건설업에 만연한 다단계 하도급을 근절해야 한다.


한편 최근 국회토론회도 열리고 2017년 가장 뜨거운 이주노동자 이슈 중에 하나였던 농업분야 이주노동자 노동환경 개선방안에 대해서도 몇 가지 방안들이 확정되었다. 정부는 비닐하우스를 숙소로 사용하는 사업장에는 신규외국인력 배정이 중단되고 자율개선기간 내 숙소를 개선하지 않는 경우 이주노동자의 사업장변경도 허용된다고 한다. 또한 올해 2월에 시행된 이주노동자 숙식비 지침보다 과도하게 공제를 하거나 자국어로 된 서면동의서 없이 숙식비를 사전 공제하는 경우에도 사업장 변경이 허용된다고 한다. 이주노동운동진영에서 몇 년 동안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라는 캠페인을 진행했고 그 결과 일부 개선된 내용이 방안에 포함되었지만 문제는 정부방안대로라면 비닐하우스만 기숙사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비닐하우스 외에도 컨테이너와 같은 임시거주시설에 숙식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여전히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또한 얼마 전 부산 사상구에 위치한 공장의 컨테이너 기숙사 화재로 베트남 이주노동자가 사망한 사건이 보여주듯, 열악한 주거시설 문제는 농업분야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따라서 민주노총을 포함한 이주노동운동진영이 올초부터 꾸준히 이주노동자 숙식비 강제징수지침에 대해서도 폐기할 것을 요구해왔지만 정부는 전혀 폐지할 뜻이 없음을 거듭 밝혀왔다. 통상임금의 최대 20%까지 숙식비를 공제할 수 있는 지침 기준은 전혀 법적인 근거가 없으며 사실상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사업주들의 부담을 정부가 합법적으로 완화시켜주는 꼴에 불과하다. 이주노동자의 자국어로 작성되는 서면동의서 역시 철저하게 을의 위치에 놓인 이주노동자가 사업주의 서면동의서를 거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어불성설에 불과하다. 


올 한해에만 적지 않은 숫자의 이주노동자들이 한국 땅에서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야만 했다. 돼지농장에서 똥을 치우다가 가스중독으로 사망한 네팔노동자 故 테즈 바하두르 구룽씨, 사업장 변경을 하지 못한 스트레스와 건강악화로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네팔노동자 故 께서브 스레스터씨, 가족의 병원비를 보내기 위해 12시간 주야간 맞교대를 했던 필리핀 노동자 故 다요 크리스티앙 구인또씨, 한국인 남성동료로부터 성폭행을 피해 저항하던 과정에서 살해된 태국노동자 故 추티마씨 등 한국 정부의 인종차별적 탄압, 장시간 고강도 저임금 노동, 사업장변경을 제한하는 고용허가제도 등이 이주노동자들을 계속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다. 스스로 촛불정부라고 자임하면서 당선된 문재인정부에서 이주노동자의 처우는 개선될 것인가? 얼마전 발표된 제3차외국인정책기본계획 초안과 몇가지 지침개정을 살펴보더라도 이주노동자와 관련된 정책은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일부 있는 정책들 역시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에 초점을 맞춰져 있다. 근본적인 이주노동자 인권, 노동권 개선은 현재로서 전망이 매우 어둡다. 


이주노동자들을 더 이상 죽이지 말라! 허울 좋은 외국인력정책위원회의 2018년도 외국인력 도입∙운용계획이 아니라 실효성 있는 이주노동자 인권, 노동권 개선대책을 즉각 마련하라!


2017년 12월 28일


이주노동자 차별철폐와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경기이주공대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구속노동자후원회, 노동당, 노동사회과학연구소, 노동전선, 노동자연대, 녹색당소수자인권특별위원회, 대한불교조계종사회노동위원회, 문화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노동위원회,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사)한국불교종단협의회인권위원회, 사회변혁노동자당, 사회진보연대, 서울경인이주노동자노동조합(MTU), 아시아의창, (사)이주노동희망센터, 이주노동자운동후원회, 이주민방송(MWTV), 인권단체연석회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전국빈민연합, 전국철거민연합, 전국학생행진, 정의당, 지구인의정류장, 천주교인권위원회, 필리핀공동체카사마코, 한국비정규노동센터, 한국이주인권센터)

[기자회견] 살해당한 태국이주여성노동자 추모와 단속추방 중단 및 이주민인권보장촉구 기자회견

살해당한 태국이주여성노동자 추모와

단속추방 중단 및 이주민인권보장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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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1일 또 한명의 미등록 여성 이주노동자가 직장 동료인 한국인 남성에게 살해되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의 피해자인 추티마씨는 한국의 한 자동차부품업체에서 10년 동안 일한 여성이주노동자였다. 사건 당일 직장동료인 가해자 김씨는 추티마씨가 미등록 이주노동자인 점을 알고 단속이 있으니 따라오라며 경북 양양군의 야산까지 끌고가서 성폭행을 시도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살해한 것으로 경찰에 최초진술을 하였다.

 

이 안타까운 죽음이 태국 현지 언론에 알려지고 추티마씨의 아버지가 유가족대표로 한국에 입국하였다. 이렇게 범죄로 인해 사망에 이를 경우 범죄피해자보호기금법에 따라 한국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 지원금을 받을 수 있지만 담당자에 따르면 미등록이주노동자의 경우 지원 사례가 없어 현재로서는 이마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태국어 통역을 도와줬던 한 활동가에 따르면 평상시에도 추티마씨가 아버님에게 아빠, 여기 한국인 남자가 자꾸 치근덕거려라는 이야기를 종종 했다고 한다. 작업장 내에서 이주여성노동자들에게 일상적인 성희롱, 성폭력이 일어나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제지가 되지 않았고 결국 죽음으로까지 몰고 가는데 어떠한 공권력도 개입하지 못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추티마씨의 사업장을 포함하여 이주여성노동자들이 속한 사업장 내에서 성폭력예방교육을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성희롱이나 성폭력 사실이 있을 경우에 관련 기관에 피해를 신고할 수 있는 접근성이 충분히 보장되어 있는지 등이 철저하게 밝혀져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이 사건의 발단에서 알 수 있듯이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끊임없이 단속추방의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매년 단속과정에서 수십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부는 앞으로 5년내에 미등록이주노동자의 절반수준으로 줄이기 위해 단속관련 인프라를 확충하겠다고 밝히고 있어 악순환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악순환을 막고, 강제단속으로 인한 인명피해를 방지하려면 단속을 중단해야 한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줄이려면 반인권적 강제단속이 아니라, 미등록을 만들어내는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사업장 변경을 제한하고 있고, 모든 권한이 사업주에게만 있어서 언제든지 체류비자를 잃을 수 있는 고용허가제를 비롯한 법제도를 바꿔야 하는 것이다. 이주노동자가 당하는 차별과 착취를 없애는 것, 노동권을 비롯한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미등록이 발생하는 원인을 줄이는 길이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체류 자격을 회복할 수 있는방안을 마련하여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이지 않도록 개선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

 

또한 추티마씨와 같은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의 억울한 죽음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피해사실이 생겼을 때 체류 자격에 상관없이 바로 관련기간에 권리구제를 요청할 수 있는 법개정 역시 필요하다. 미등록이주노동자가 범죄피해사실이 있을 때 해당 공무원이 출입국에 통보를 하지 않아도 되는 현행 통보의무 면제조항은 현지 경찰들이나 공무원들이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아 단순한 분실신고만으로도 출입국에 인계되어 추방되는 사례들이 발생하고 있다. 사실상 유명무실한 통보의무조항을 폐지하고 통보금지조항으로 개정하여 미등록이주노동자가 범죄피해 대상이 되지 않고 발 빠르게 권리구제 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에 우리는 살해당한 태국이주여성노동자 추모와 단속추방 중단 및 이주민인권보장촉구 기자회견을 통해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하나. 다양한 체류형태의 모든 이주여성을 포괄하는 이주여성폭력피해지원체계를 마련하라!

 

하나. 범죄피해 이주민의 체류를 보장하고 보상체계를 마련하라!

 

하나. 단속추방을 중단하고 미등록이주민을 합법화하라!

 

하나. 공무원의 통보의무를 폐지하고 통보금지조항으로 확대 실시하라!

 

20171123

 

살해당한 태국이주여성노동자 추모와 단속추방 중단 및 이주민인권보장촉구 기자회견 참가자 일동

경기이주공대위(노동당 수원오산화성당원협의회, 노동자연대 경기지회, 녹색당 경기도당, 다산인권센터,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사회변혁노동자당 경기도당, 수원이주민센터, 아시아의 친구들, 오산이주노동자센터, 이주노조, 지구인의 정류장,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화성이주노동자쉼터),이주노동자 차별철폐와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경기이주공대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구속노동자후원회, 노동당, 노동사회과학연구소, 노동전선, 노동자연대, 녹색당소수자인권특별위원회, 대한불교조계종사회노동위원회, 문화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노동위원회,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한국불교종단협의회인권위원회, 사회변혁노동자당, 사회진보연대, 서울경인이주노동자노동조합(MTU), 아시아의창, 이주노동희망센터, 이주노동자운동후원회, 이주민방송(MWTV), 인권단체연석회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전국빈민연합, 전국철거민연합, 전국학생행진, 정의당, 지구인의정류장, 천주교인권위원회, 필리핀공동체카사마코, 한국비정규노동센터, 한국이주인권센터),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동, 외국인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이주민센터친구, 공익법센터 어필,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부천이주노동복지센터,()지구촌사랑나눔,()한국이주민건강협회 희망의친구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아산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남양주샬롬의집, 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의정부EXODUS, 인천외국인노동자센터, 파주샬롬의집, 포천나눔의집),이주인권연대,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노동위원회, 파주EXODUS, 한국여성민우회,고양인권연대 (이상 연명순)


기자회견자료_살해당한태국이주여성_171121 (2).hwp


  • 가그리 2018.05.21 12:38 ADDR 수정/삭제 답글

    꼭전화주세요 믿고요 부탁드려요 기자님

[노동시간 에세이] “오늘 또 한명의 이주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 2017.10·11

“오늘 또 한명의 이주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서선영 박사, 과로자살 연구팀


“오늘 또 한명의 이주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2017년 여름, 네팔 출신 미디어 활동가의 페이스북에는 며칠 간격으로 같은 글이 올라오고 있었다. 대구의 한 이불공장에서, 경산의 한 재활용 처리 업체에서, 충주에서, 화성에서, 그리고 저 멀리 제주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주노동자 소식이었다. 같은 국가 출신 이주자들의 연이은 자살 소식에 네팔 공동체는 술렁거렸고, 대사관은 노동자들을 위한 요가와 명상 수업, 현장 순회교육을 기획하며 급하게 자살 방지 대책을 모색했다.

이주민지원단체는 자살한 노동자들의 사연과 유서 공개를 통해 고용허가제가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음을 성토했다. 하지만 언론의 조명을 받는 것도 잠시,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으로 보이는 ‘자살’은, 그것도 대통령도 유명 연예인도 아닌 ‘이주노동자’의 자살은 쉽게 잊혀졌다.


계속 되는 이주노동자들의 자살

프랑코 베라르디는 「죽음의 스펙터클」이라는 저서에서 자살은 더 이상 정신병리학의 주변적 현상이 아니라, 현재의 역사를 바라보는 결정적 관점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주노동자의 자살 또한 한국사회 이주노동제도의 변화 과정과 그 속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처했던 현실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지난 2003년 8월 정부가 고용허가제를 통과시킨 후, 11월부터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강제 추방을 시작하자, 단속추방의 공포와 스트레스 속에서 한 스리랑카 출신 노동자가 지하철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고, 연이어 방글라데시,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노동자들이 목숨을 끊었다.(참고: 오마이뉴스 “더이상 죽이지마! 강제 추방은 인간사냥”)

이들은 한국으로의 이주를 위해 본국에서 빌린 돈을 다 갚지도 못한 상태에서 강제 추방의 위협에 놓이자 한국에 남아있을 수도, 고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벼랑 끝에서 극단의 선택을 한 것이다. 이들의 죽음을 딛고 시행된 고용허가제, 이 새로운 제도 속에서 이주노동자들의 삶은 어떠했는가?

2004년 고용허가제가 시행되는 과정에서 중국 출신 노동자가 “집에 가고 싶은데, 사장이 임금을 주지 않는다. 오직 죽을 수밖에 없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고(참고: 한겨레 “지하철 자살 중국노동자 “체불조사” 보름 넘게 미적), 이후에도 카자흐스탄 출신 고려인, 네팔 출신 연수생 등 이주노동자들의 자살은 계속 이어졌다.(참고: 오마이뉴스 “고용허가제 1년…이주노동자는 여전히 죽어간다”)

특히 네팔 노동자들의 경우 양국 정부가 고용허가제 양해각서를 체결한 2007년 이후 한국에 들어온 노동자들의 자살률은 급격히 증가한다. 고용허가제 시행 14년째인 올해 8월에 자살한 한 네팔 노동자는 “우리는 더 이상 한국의 고용허가제도가 외국인노동자들을 구속하는 제도가 아니기를 바란다”는 말을 유서에 남겼다.(참고: 오마이뉴스 “이주노동자 자살 급증, 무엇이 문제인가?”)


쓰고 버려지는 노동자들

유서를 남긴 이 네팔 노동자는 “건강문제와 잠이 오지 않아서 지난 시간동안 치료를 받아도 나아지지 않고, 시간을 보내기 너무 힘들어서 오늘 이 세상을 떠나기 위해 허락을 받습니다. 회사에서도 스트레스도 받았고 다른 공장에 가고 싶어도 안되고 네팔 가서 치료를 받고 싶어도 안되었습니다.” 라고 자살의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Disposable women and other myths of global capitalism」(「쓰고 버려지는 여성들, 그리고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다른 이야기들」)에서 멜리샤 롸이트는 저임금 노동자들이 자본주의 하에서 일회용 노동자로서 어떻게 취급되고 있는가는 이들의 죽음의 원인과 일상에서 보여지는 여러 삶의 측면을 통해 드러난다고 이야기한다. 유서에서 보이듯이, 이 네팔 노동자는 불면증의 고통, 정신적 스트레스,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없는 노동 조건과 함께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극도로 제한된 고용허가제의 문제점을 이야기 하고 있다.

즉, 한국 경제에 필요한 ‘노동력’으로 4년 10개월 동안 쓰이고, 고용허가제가 정한 그 기간이 끝나면 출국해야 하는 ‘일회용 노동자’로서, 그가 인간으로서 누려야하는 기본적인 권리는 상당 부분 박탈당한 것이다. 그리고 마치 중국의 폭스콘의 노동자들이 “ 어쩌면 우리 같은 폭스콘 집원에게는 […] 죽음은 우리가 살아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살아 있는 동안 우리에겐 절망뿐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참고: 엔드루 로스 「엑소시스트와 기계」)라고 이야기 했듯이, 죽음을 통해 자신의 절망적 현실을 알리려 했던 것 일수도 있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의 죽음은 너무나 쉽게, 알려지지 않는다. 경찰은 간단한 조사와 행정 절차를 진행하고, 대사관과 협의 하여 빠르게 시신을 본국으로 송환한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도, 본국에 있는 가족들도 이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문제를 제기할 여력도 기회도 없이, 그렇게 자살 사건은 마무리된다. 고용허가제 하에서 단기 노동력으로 들어온 이들이 죽음을 통해 노동력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을 때, 이들의 육체는 빠르고도 신속하게 폐기처분 되어지는 것이다. 그 사이, 인천공항에는 새로운 이주노동자들이 고용허가제로 들어오고, 바로 얼마 전 이들이 목을 매고 숨을 거둔 그 공장은 새로운 노동력을 투입해 주야간으로 쉬지 않고 기계를 돌린다.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

지난 6월 한 이주노동자가 기숙사에서 목을 매 자살을 한 공장도 여전히 잘 돌아가고 있다. 그 공장에서 이주노동자 자살은 2011년과 2017년 두 번이나 있었다. 공장 근처의 한 식당에서 만난 자살한 이주노동자의 친구들은 그 사건 이후한동안 공포와 두려움으로 잠을 못 잤는데, 그 이유는 자신에게도 언제 그런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미 자살한 친구처럼 몇몇 동료들도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수면제를 복용해야 잠을 잘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자살의 원인과 극복방안에 대한 자신들의 견해를 이야기 했다.

자살을 선택하게 되는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고립감과 외로움에서 시작되는 우울증이다.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들어온 이주노동자들은 보통 사업주가 지정해준 기숙사나 숙소에서 생활을 하는데, 공장과 숙소가 외진 곳에 있는 경우 고립된 생활을 하게 된다. 특히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없는 상황에서 외로움을 많이 느끼며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이 되기도 하는데, 이는 자연스럽게 우울증으로 이어지고,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할 경우 자살로 이어진다.

직업을 바꿀 수도 없고, 사업장 이동의 자유도 제한된 상황에서 주어진 열악한 노동조건과 생활환경을 받아들여야 하니, 이에 대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고, 개인의 건강은 물론이거니와 사업장 내에서의 관계, 작업 능률에도 영향을 미칠 수가 있다. 프랑코 베라르디가 “착취, 경쟁, 불안정성 등이 갈등적 사회관계의 효과로 인식되는 게 아니라 자아의 결함이자 개인의 하자로 내면화된다”고 얘기한 것처럼, 고용허가제 하에서 노동조건으로 인한 문제들이 개인화될 때 우울증은 더 심화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주노동자들은 본국에 있는 가족들을(때로는 친척들 까지 함께) 책임져야 하는 경제적 부담을 안고 있는 상황에서, 사업장에서의 불안정성은 이중의 고통을 야기시킨다. 즉, 한국의 노동현장 상황을 잘 모르는 가족들의 경제적 기대와 요구에 부응해야 하는 부담, 가족들을 부양하느라 제대로 된 계획을 세울 수 없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 그리고 한국에서의 고통스러운 현실이 맞물려 이중, 삼중의 고통이 되고, 이를 잘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가 자아의 결함으로 인식되기도 하여, 결국은 현실의 탈출구로서 자살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소박한 바램

동료의 자살을 두 번이나 경험한 이주노동자들의 결정은 돈을 모아 운동기구를 사서 함께 운동을 하고, 불면증이나 우울증이 생긴 동료들이 있으면 같이 병원에 가고 보살펴주는 것이었다. 작업장에서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외로움도 함께 극복하고, 서로 도와주면 괜찮을 수 있다는, 이들의 바람은 참 소박하고 따뜻하다. 하지만 이미 자살의 물결은 이주노동자들을 일회용 노동자로 만들어, 집단적으로 규제하고 통제하는 고용허가제의 도입과 함께 시작되었다. 아니 어쩌면 그 이전에 국제노동이주가 한국에서 시작된 시점, 즉 한국사회가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에 편입되고 저임금의 노동력을 유연하게 이용하기 시작한 그 시절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오늘도 또 한명의 이주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글이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것을 멈추기 위해 우리는 어디서부터, 무엇을 시작해야 하는 것일까? 죽지 않고 노동하고 싶은, 바로 그 소박한 바람을 위해서 말이다.

[기자회견] "현대판 노예제" 산업연수생 제도 부활 망언 바른정당 홍철호 의원(김포을) 규탄한다

<성명서>

현대판 노예제산업연수생 제도 부활 망언 

바른정당 홍철호 의원(김포을) 규탄한다 

바른정당 홍철호 의원(경기도 김포시을)은 가뜩이나 열악한 처지에서 고통 받는 이주 노동자들을 더욱 열악한 처지로 내몰기 위해 편견에 가득찬 인종차별적 망언을 쏟아내고 있다. 홍철호 의원은 913일 국회 경제 분야 대정부 질의에서 이주 노동자들이 한국 경제에 기여하는 것은 애써 외면한 채 “13조 원을 모국으로 송금하고 있다며 이주 노동자들이 대단한 국부 유출이라도 하고 있는 양 묘사했다. 그러나, 홍 의원의 악의에 찬 편견과는 달리 이주노동자들은 한국 경제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이주 노동자들의 경제 유발 효과는 74조 원에 달한다. 

김포시만 살펴봐도 이주 노동자들이 없이는 운영하지 못할 중소영세기업들이 수두룩하다. 더군다나 굽네치킨창업주인 홍철호 의원이 70억 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돈을 모으는 데 바탕이 된 농축 산업은 이주 노동자들의 피땀어린 노동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이주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의 이윤을 위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한 노동조건과 극심한 인권 침해에 시달린다. 지난 5월 돼지농장에서 연이어 발생한 이주 노동자들의 비참한 죽음은 말 그대로 돼지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이주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지를 드러낸 최근의 사례일 뿐이다. 

홍철호 의원은 한국 청년들과 이주 노동자들을 이간질하는 비열한 주장도 했다. 한국 청년들이 막장 인생의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일하기를 꺼려한다는 것이다. 한국 청년들이 중소영세기업 일자리를 기피하는 진정한 이유는 이주 노동자들 때문이 아니라 열악한 노동조건 때문이다. 그런데, 홍철호 의원은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 비정규직 정규직화, 공무원 일자리 확대와 같은 정책을 핵실험과도 같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정책이라 반대한다. 한국 청년들의 고용과 노동 조건을 개선하는 일을 한사코 반대하면서 산업연수원 제도를 도입해 이주 노동자들 임금을 100만원으로 삭감하는 대신 한국 청년들에게 300만 원의 임금을 지급하자는 주장은 한국인과 이주 노동자들을 이간질시키려는 얕은 술책에 불과하다. 어느 자본가가 이주 노동자 임금 삭감해서 국내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려주려 하겠는가. 국내외 노동자들의 임금을 차별하자는 주장은 헌법에도 어긋나는 반 인권적 주장이다. 이주 노동자들을 차별하자는 망언에 1960년대와 70년대 외화벌이를 위해 독일로 파견된 파독 광부와 간호사 출신들도 분노하고 부끄러워하고 있다. 

홍철호 의원이 이미 10년 전에 폐지된 현대판 노예제도인 산업연수생 제도를 다시 도입하자고 억지를 부리는 속내는 이주 노동자에 대해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려는 것이다. 이미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위해 정책연대와 법안 발의를 예고했다. 김동연 부총리는 913일 국회에서 홍 의원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외국인근로자의 임금산정 폭에 대해서는 숙식비 문제 등 최저임금위원회 TF에서 보고 있다고 답했다. 이주 노동자들에게 숙식비 강제 공제 지침이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이주 노동자에게 더욱 불리하도록 최저임금 산정 범위를 개악하려는 시도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주 노동자들을 희생양 삼고, 인종 차별을 조장하는 홍철호 의원의 망언을 강력히 규탄한다. , 이주 노동자들의 조건을 더 악화시키려는 일체의 시도에 반대해 싸울 것이다. 

2017928 

경기지역이주노동자공동대책위원회/김포제단체


홍철호규탄기자회견문_170926.hwp


[언론보도] "수원 이주노동자 집단폭행 사건 철저 수사해야" (뉴스1)

"수원 이주노동자 집단폭행 사건 철저 수사해야"

이주노동자 인권단체 수원지검서 기자회견

(수원=뉴스1) 최대호 기자 | 2017-09-14 14:06 송고

최근 경기 수원시에서 발생한 수원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들의 외국인 이주노동자 집단 폭행 사건과 관련해 시민단체가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경기이주민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14일 수원지방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주노동자 폭행 사건에 대한 검찰의 엄정한 수사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http://news1.kr/articles/?3101269

특집 5.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을 위해 싸우는 이주노조 / 2017.6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을 위해 싸우는 이주노조

 


선전위원회



지난 5월 24일 이주노동자의 문제만이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 이주민의 인권과 노동권을 위해 싸우는 민주노총 서울경인이주노동조합(이주노조) 박진우 사무차장을 만나 지난 투쟁의 이야기, 이후 과제 등을 들어보고자 하였다.

 

본인 소개 부탁드린다.

저는 이주노조에서 일한 지 6년 정도 되었고, 하는 일은 주로 이주노동자 상담업무와 각종 이주노동 관련 회의, 대외적인 연대활동 등을 하고 있다.

 

이주노조는 언제부터 만들어져서 활동하고 있는가.

2005년에 창립했는데 당시 노동조합 설립 필증이 나오지 않았다. 이후 10년 동안 노조 인정 투쟁과 대법원소송까지 진행했고, 지난 2015년 6월 대법원에서 이주노조 합법을 인정했다. 그런데 고용노동부가 설립 필증을 주지 않아 7월 한 달 내내 농성해서 8월 21일 설립 필증을 받았다. 노조가 합법화되고 나니 이전과 비교했을 때 이주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참여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지면서 조합원이 꽤 늘어났다. 올해 이주노동자 메이데이에도 평소 참여하는 조합원보다 4배가 더 참가했다. 조합원들이 자신감이 생긴 것 같다.

 

이번 일터에서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문제를 다루는데 실제 현장에서 본 실태는 어떠한가.

2015년도 12월 18일 세계이주민의 날에 맞춰 고용노동부에 ‘고장 난 계산기를 고치라’고 요구하는 투쟁을 했다. 근로기준법 63조의 가산수당 이른바 0.5를 안 붙이는 거다. 대신 임금은 100% 줘야 하는데 당시 실태를 파악해본 결과 농축산업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300시간 일해도 계약서상 230시간 계약했다고 그만큼만 임금을 받는 그러한 상황이었다. 다른 노동자들 계약서도 실제 일하는 시간과 계약서상 시간, 임금, 노동조건이 다 달랐다. 그런데도 고용노동부는 관리 감독할 의지가 없어서 투쟁했다. 그리고 작년 국정감사에서도 이러한 고용노동부의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한편, 최근 민주당 이용득 의원실로부터 문재인 대통령 후보 시절 공약 중 하나인 근로기준법 63조 폐지를 시행하려고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계절 이주 노동자 제도에 대해서도 싸움을 벌였다.

작년, 재작년 시범 사업을 할 때는 해당 지역이 정해져 있었다. 언론에서도 계절 이주노동자가 어떻게 일하는지 인터뷰하기도 했다. 그런데 올해 3월 법무부가 본격적으로 실시한다고 하여, 이주운동진영이 거세게 문제제기를 했다. 고용노동부 역시 고용허가제가 아닌 다른 제도로 이주민이 한국으로 들어오면 고용허가제 자체의 근간이 흔들리기 때문에 반발하면서 계절 이주노동자 제도는 현재 잠정 보류상태다. 계절 이주노동자는 각종 사회보험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자신들을 보호하거나 권리를 구제해 줄 수 있는 시스템 자체가 없어서 폐지되어야 한다.

 

이 제도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또 있다고요.

고용허가제로 들어와서 9년 8개월을 꽉 채운 노동자를 ‘성실 근로자’라고 부르는데, 올해 7월 3,000명의 노동자가 해당한다. 앞으로 매년 이만큼의 노동자가 고용허가제 기간이 끝나기 때문에 이후에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큰 관심사다. 정부가 계절 이주노동자 제도를 도입한 것도 고용허가제가 끝나는 숙련 노동자가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주노조는 이런 단기적인 정책으로 이주노동자의 정책을 실현하는 건 불가능하고 노동비자나 영주권 등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경우 일터뿐만 아니라 병원서비스를 이용하는 것도 큰 장벽이라고 들었다.

이주민 가운데 백혈병이나 성병 같은 중대한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 있다. 그런데 이들에게 치료를 지원하는 병원이 많지 않다. 국가에서 예산을 지원받아 실행하는데 예산이 바닥나면 그나마 있는 병원도 치료를 중단해야 한다. 또 법무부 통보의 의무면제 지침으로 인해 병원이든 학교든 이주노동자의 진료 사실을 알려야 한다. 그 결과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신분이 드러나기 때문에 병원의 문턱이 상당히 높다.

 

이후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어떤 활동을 고민하고 있는가.

우선 민주노총 내 조합원들과 함께 교육하고 호흡하면서 현장에서 내국인 노동자와 이주 노동자가 하나가 되는 현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건설이나 금속노조에서 이주노동자를 배척하는 현상들도 빚어지지만, 노동조합을 가입시키고 함께 투쟁하는 모범적인 현장사례도 충분히 있다. 또 앞으로 이주노조 지역지부가 있는 곳에서 선전전과 캠페인 노동조합 가입 신청 등 활동을 이어나갈 것이다.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한국에 미등록이주노동자까지 포함하면 전체 200만 명 정도가 있는데 2000년대 중반부터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그런 점에서 이주노동자의 문제는 우리가 피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주노동자가 단결하고 하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노동조합을 만들고 조직화하는 것이 이주노동자들이 일하는 일터를 바꾸는 길이다.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만이 아니라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싸울 수 있는 정치세력화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이주노동자들이 더 나서야 한다.

 

<일터> 통권 161호 / 2017.6



[특집] 한국 사회 이주노동자의 오늘

28 이 사회에서 이주노동자는 어떻게 존재하는가!

30 우리가 먹는 상추와 깻잎의 진실

32 농어촌 이주노동자의 현실

34 이주노동자의 건강권을 위하여

36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을 위해 싸우는 이주노조

 

4 [노동안전건강뉴스]


6 [지금 지역에서는] 편의점 알바 노동자에게 안전과 건강을 


8 [동향체크] 국민안전처, 안전관리헌장 제정안 제출,

미세먼지로부터 노동자 보호해야

 

10 [포커스] 새 정부가 노동안전보건 정책 위해 지금 당장 실시할 것

 

12 [알기 쉬운 위험성평가] 작업자의 참여 배제 할 우려가 있다

 

14 [현장의 목소리] 특성화고·마이스터고 현장실습 문제, 우리사회의 노동인식 바로미터

 

18 [A-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어우러지는 노란들판을 찾다

 

22 [연구소리포트] 2017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 결과 보고서

- 금속노조 A지회 설문조사 분석결과

 

26 [사진으로 보는 세상]

 

38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나지 못 한노동자 이야기


40 [노동시간_기획] 대선 이후, 우리의 시간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44 [국제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검토] 한국과 핀란드의 야간 교대근무

 

46 [문화읽기] 인간의 조건

 

48 [발칙X건강한 책방] 이 책은 슬픔에 대한 책이 아니다

 

50 [유노무사 상담일기 더불어 ] 노원구 경비노동자의 의로운 죽음

 

52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너무나도 오랜 기다림

 

54 [이러쿵저러쿵] 꿈 같았던 한 달간의 휴가

 

56 [한노보연 이모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