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리포트] 비밀의 시대를 끝내기 위하여/ 2015.5

[연구리포트]

비밀의 시대를 끝내기 위하여

- 현대자동차 발암물질 사용 이력 조사사업


김신범(노동환경건강연구소 화학물질센터 실장)


1960년대 국가주도 경제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산업의 규모가 급격히 성장하였다. 국내 대표산업 중 하나인 자동차산업은 1960년대 말에 시작하였고, 1970년대부터 본격적 생산에 돌입한다. 아마 포니의 생산에 관여했던 사람들은 이제 대부분 정년이 지나 현장을 떠났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는 자동차를 생산하면서 노출된 발암물질들 때문에 불청객을 만났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노동자들은 일했고, 그들 중 일부는 암에 걸렸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무슨 물질 때문에 암에 걸렸는지 우리는 모른다. 그리고 이 ‘모른다’는 유산은 아직 현장을 떠나지 않은 노동자들에게 물리는 중이다. 그래서 정년을 앞둔 50대 자동차산업 노동자들은 누군가에겐 직업성 암이 올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을 공유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와 회사가 이 두려움을 없애줄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면 좋겠지만, 그걸 기대할 만큼 순진하진 않다. 그래서 나는 2014년 초 현대차 지부로부터 발암물질에 관한 사업 제안을 요청받았을 때, 곧바로 이 사업을 제안하였다. 과거의 노출을 노동자 스스로 정리하여 자신의 발암물질 노출 이력을 구축하는 사업을 말이다. 제안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대의원대회에서 사업이 승인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사실, 이땐 좀 두려웠다. 좋은 사업이지만, 가능한 사업이라는 확신은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연구진을 괜찮게 구성할 수 있다는 자신은 있었다. 대구가톨릭대학교의 최상준 교수, 계명대학교의 김승원 교수, 씨젠의료재단 강충원 선생, 우리 연구소의 최영은 연구원과 함께라면 못할 게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이들 덕분에 과거로 향하는 문을 열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이 자리를 빌려 소중한 나의 친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현대차를 넘어 자동차 산업으로

일단 우리의 상황을 좀 더 냉철하게 짚어보자. 심상정 의원으로부터 받은 2010년 이후 근로복지공단의 직업성 암 판정자료를 분석해보았다. 총 800건이 넘는 신청자 중에서 154건을 자동차산업으로 분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 중 약 20%인 30명 정도가 직업성 암 산재승인을 받았다. 인정된 암은 폐와 혈액의 암이 대부분이었다. 잘 알려진 암들을 중심으로 산재승인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다양한 암 환자들이 자신의 암을 직업성이라고 의심하지 못하고 있거나, 의심하더라도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없어서 벌어진 일은 아닌지 의심해볼 만 하다.

암종

판정구분

승인

일부승인

불승인

폐암/중피종

환자수(명)

13

1

23

37

비율

35.1%

2.7%

62.2%

100.0%

혈액암

환자수(명)

11

0

19

30

비율

36.7%

0.0%

63.3%

100.0%

기타암

환자수(명)

4

1

82

87

비율

4.6%

1.1%

94.3%

100.0%

환자수(명)

28

2

124

154

비율

18.2%

1.3%

80.5%

100.0%


           <자동차산업 종사자의 직업성 암 판정 현황 (2010~2014)>


그런데 금속노조에서 직업성 암 환자 찾기 운동을 전개하는 동안 근로복지공단에 접수된 신청자 중 자동차산업의 비중이 높아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래 그림을 보자. 2011년 직업성 암 신청자 중에서 자동차산업의 비중이 높아졌고 이것은 2012년까지 이어진다. 이 시기는 금속노조의 직업성 암 집단산재신청과 겹쳐진다.


연도별 직업성 암 신청자 중 자동차산업 관련자 추이

그리고 이들은 대부분 자동차 완성사에 적을 둔 사람들이었다. 완성차의 노동자들이나 직업성 암에 대해 관심이 있는 상황이고, 부품사 노동자들이나 정비노동자들은 아직 직업성 암에 대한 인식도 부족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왜 아니겠는가?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조차 이제야 스스로 발암물질의 사용 이력을 정리할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부품사의 노동자들은 오죽하겠는가?


자동차산업 직업성 암 산재신청자의 세부 구분


그러니 처음부터 현대자동차 노동자들만을 위한 이력 조사를 해서는 안 되었다. 현대자동차를 시작으로 다양한 정보들이 계속 모여지면서 살을 붙여갈 수 있는 자동차산업 발암물질 이력 정보의 뼈대를 구축한다는 마음으로 조사를 임해야 했다. 그래서 현대차지부 고인섭 실장과는 처음부터 조사결과가 나오면 토론회를 통해 공론화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선배 조합원이 내민 자료

자, 이제 조사를 시작하였다. 회사의 도움 없이 우리가 얼마나 자료를 확보할 수 있을까? 오로지 노동자들의 기억에만 의존하여 과거의 발암물질을 찾아내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모를 일이었다. 역사는 기록하지 않는 자에게 인정을 베풀지 않을 줄 알기에, 차라리 이제라도 기록을 시작한다는 자세로 일을 해보자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해외의 자동차 산업 직업성 암 연구를 리뷰하였으나,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자욱하게 안개 낀 새벽에 길을 잃은 느낌으로 현장을 찾아갔다. 선배 조합원들이 현장연구위원으로 참여하면서 우리의 손을 잡고 현장을 안내하였다. 그러다가 의외의 기록들을 만나게 되었다. 엔진공장에서는 부서에 보관되어 있던 서류철에서 염소계 솔벤트의 사용흔적을 찾아냈다. 제품 대체를 위한 협조전이 있었다. 이를 근거로 염소계 솔벤트가 어떤 식으로 사용되었는지 추적의 실마리를 확보했다. 도장공장에서는 노동조합의 1988년 제1차년도 사업보고 책자에서 유해수당에 대한 기록을 찾아내었고, 뒤이어 1990년 노동과건강연구회의 현대차 현장 조사에 대한 신문기사를 찾아냈다. 노동과건강연구회의 자료는 서울 노동건강연대에 보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컸다. 노동건강연대에 전화하였더니 조사 책자를 찾아내 인편으로 보내왔다. 드디어 안개가 걷히고 25년 전의 현대자동차 작업환경을 만날 수 있었다. 선배 조합원들로 현장연구위원을 임명한 것이 이런 성과를 가져온 것이다.

조사결과를 하나로 통합하기 위하여 중요 공정과 작업을 우선 구분하였다. 소재/주물, 프레스/차체용접, 금속가공, 세척, 도장, 방청 등. 그리고 작업별로 사용한 물질을 정리하였고, 노출 가능한 발암물질들을 찾아 넣었다. 현대차의 물질안전보건자료와 작업환경측정자료, 그리고 우리가 확보한 1988년부터 1990년까지의 자료들이 통합되었다. 그 결과, 폐암이나 혈액암 외에도 후두암과 방광암, 신장암, 그리고 식도암과 위암과 같은 소화기계 암까지 발생 가능한 것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결과는 언제든 새로운 정보가 입수되면 수정될 수 있도록 열린 체계로 구성되었다. 현대차뿐 아니라 자동차산업 전체로 확장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거 이력을 집중적으로 파악해야 할 7대 발암물질로서 ① 석면과 인조섬유, ② 염소계 솔벤트(트리클로로에틸렌, 퍼클로로에틸렌, 디클로로메탄 등), ③ 금속가공유(절삭유), ④ 발암성 중금속(니켈, 크롬), ⑤ 벤젠(신너와 노말헥산 등 벤젠이 오염된 제품을 포함), ⑥ 포름알데히드, ⑦ 유리규산(실리카 분진)을 선정하였다. 발암물질이 7종류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물질들은 특히 많은 노동자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판단되므로 과거 자료 확보에 더 신경을 써달라는 것이 우리의 주문이었다.

우리는 이 조사를 통하여 자동차산업의 직업성 암 피해자들에게 입증의 책임을 부여하지 말고, 정부와 자동차산업 그리고 노동조합이 나서서 자동차산업 주요 직무별 발암물질 노출 이력에 대한 자료를 정리하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그러므로 조사결과를 외부로 알려내는 것 자체가 중요한 문제로 부상하였다. 우리의 메시지를 정부와 자동차기업들, 안전보건전문가들, 그리고 노동자들에게 전달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구를 종료한 후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인 김영주 국회의원을 통하여 토론회를 개최하였고, 산업보건학회의 초청을 받아 학회에서 연제발표를 하였다. 아마도 현대자동차에서는 기분이 좀 나빴던 듯하다. 학회에서 발표할 때에 ‘현대자동차’에서 조사한 것임을 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러는 OO 사업장이라고 숨기면서 발표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번 조사는 노동조합의 연구기금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노동조합에서 굳이 숨길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였으므로 현대자동차란 이름을 그대로 노출했다. 학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연구의 내용과 결과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 보다는 연구의 배경에 들어있는 고민에 대해 진지하게 받아들여 주는 태도를 보였다. 연구를 추진한 사람으로서 이 점은 여러 전문가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부분이다. 국회에서 김영주 의원과 함께 토론회를 했을 때도 많은 사람이 참석하였다. 하지만 정작 우리의 연구에 귀를 기울여야 할 정부와 기업은 아직 반응하지 않고 있다. 아니, 애써서 반응하지 않으려 하는 것 같다.


자동차 산업 직업성 암 대책 마련 토론회(사진 출처 : 일과 건강)


비밀의 시대를 끝내자

현대자동차 조사를 하면서 다시 한 번 깨달은 것은, 회사에는 많은 자료가 숨어있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1988년 노동조합 사업보고에 인용된 유해수당 관련 자료는 당시 현대자동차에서 외부 전문가들에게 의뢰하여 수행한 조사연구 보고서였다. 이 자료는 노동조합이 가지고 있지 않았다. 노동조합의 고참 활동가들조차 그때 그런 연구가 있긴 했다는 정도의 기억만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회사는 이 보고서를 가지고 있지 않을 리 없었다. 이 보고서는 현재의 현대자동차 안전보건시스템이 구축되게 된 배경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궁금했다. 이런 자료들이 현대자동차에서 산재 신청한 암 환자들에 대한 역학조사에서 활용될까? 예측건대, 아마도 한 명도 이 자료를 이용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 이유는 노동자들이 그런 자료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고, 그 자료를 달라고 요구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우리는 비밀의 시대에 살고 있다. 삼성처럼 애써서 비밀을 만드는 사업장도 있지만, 대다수의 사업장에서 비밀도 아닌 것들이 점점 비밀이 되어왔다. 노동자들이 기록하지 않고 망각했기 때문이며, 연구에 참여한 전문가들이 그런 연구가 있었다고 말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비밀의 시대를 끝내기 위한 노동조합의 역할은 무엇이 있을까? 노동자 건강권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진지한 성찰과 협업이 요구되고 있다. 

[현장의 목소리] 회사는 교대제 합의 후 신종 노조파괴 공작, 위장취업까지/ 2015.5

[현장의 목소리]

회사는 교대제 합의 후 신종 노조파괴 공작, 위장취업까지


안재범 운영집행위원 (갑을오토텍지회 노안부장)


2014년 회사는 심야노동을 철폐하고 인간답게 살아보자는 노동조합의 교대제 취지에 동의하여 주간 연속 2교대제와 월급제에 합의했다. 하지만 회사는 교대제 합의서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교대제 합의는 잘못되었고 기업의 생존을 위해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며 호소문을 발표했다. 또한, 기초근무질서 준수라는 명분으로 관리자들을 동원해 현장을 감시하고 통제했다. 이에 노동조합은 현장 노동자들의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가 최우선으로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하며 현장 순회를 비롯해 안전점검을 강화했다.


사건의 발단 및 개요

2015년 2월 5일 14시 10분경 명예산업안전 감독관 직무수행을 위해 현장 안전보건사항을 점검하던 중「CAC 언로딩기의 산업용 로봇」이 오작동으로 인해 멈춘 상황을 목격했다.

이후 작업자는 주 전원을 끄지 않은 상태로 도어를 열고 로봇 안으로 들어가 불량제품을 꺼내려고 했다. 그때 다른 작업자가 지나가다 열린 도어를 건들어서 도어가 닫힐 뻔한 위험천만한 상황을 목격했다. 현장에서 바로 작업 중지를 시켰고 회사 측 안전관리담당자를 불러 작업자의 특별 안전교육실시 여부와 도어 및 안전장치가 제대로 돼 있는지 확인을 요청했다.

아니나 다를까 노동조합에서 조합원에게 확인한 결과 회사는 특별안전교육을 전혀 하지 않았는데 지금까지 실시한 것으로 거짓 서명을 하도록 했던 사실이 들통 났다.

또한, 로봇의 안전장치와 작동 여부도 센서 부위에 자석과 테이프가 부착되어 안정상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도어가 닫히면 별도의 리셋 스위치를 작동하지 않아도 로봇이 스스로 움직이는 위험천만한 상태였다. 즉, 로봇 펜스 안에서 불량 제품을 꺼내거나 고장이나 수리, 점검 중에 누군가 실수로 도어를 닫으면 끔찍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상태였다.


작업 중지와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이러한 사실을 회사의 안전보건 담당자와 함께 목격하고 위험천만한 상황에 대해 작업 중지를 요청한 것이다. 이후 노동조합은 현장 조합원들을 휴게실로 모아 작업 중지를 한 이유와 회사의 안전보건 실태 등을 설명하고 공정별 요구사항과 노동조합 요구안을 마련하는 토론을 진행했다.

회사는 “산업용 로봇의 방호장치와 안전상의 문제 그리고 특별안전교육의 허위작성을 인정하고 노동조합이 요구한 긴급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고 했고 노동조합이 요구한 ▲로봇 관련 해당 작업자 특별안전교육 시행 ▲로봇 관련 전 공정 노사합동 특별안전점검 시행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직무수행 방해 및 특별안전보건 교육 허위작성에 따른 해당자 징계건 등을 전면적으로 수용했다. 작업 중지 6시간 만에 긴급 산업안전보건위원회 합의를 통해 작업을 재개하며 일단락 지은 것이다.


산보위 합의 후 “악의적인 회사 측 고소”

그런데 사건이 있고 한 달 후 회사가 도리어 노동조합과 간부를 대상으로 업무방해 및 폭력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이후 곧바로 4명의 조합원이 복수노조 설립 신고를 하더니, 지난해 말 경력직으로 취업했던 신입조합원 29명이 집단으로 금속노조를 탈퇴하고 복수 노조에 가입했다. 회사 측에 의해 현장에 민주노조 파괴 시나리오가 작동한 것이다. 또한, 노사가 노동자의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긴급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서 합의했던 문제를 갖고 노동조합을 고발한 것이다. 민주노조 파괴 공작도 모자라 노동자의 안전 문제까지 활용하는 파렴치한 행위를 자행한 것이다.



회사의 민주노조파괴 시나리오

제보를 통해 확인한 결과 2014년 교대제 합의 후 회사 측은 새로 뽑은 신입사원 60명 중 일부를 서울 종로구 모처에 모아 민주노조 파괴 공작을 기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다른 사업장 노조 파괴 사례 교육은 물론 입사 후 현장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등등에 대해 비밀리에 사전 교육을 받은 것이다. 또한, 입사 당시 회사에서 갑을오토텍엔 강성 노조가 있으니 회사 편에 있는 기업노조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채용조건은 금속노조에 가입하지 않는 것 등의 강요를 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민주노조 파괴를 위해 채용된 신입사원들 사이에서 “각 팀장이 가입을 권유한 기업노조는 원서를 받아놓고 하루 이틀 뒤 가입하기 바란다” “기업노조에 가입신청 했다고 해서 바로 알려지는 건 아니다”라는 문자 메시지가 서로 공유되어 민주노조 파괴 공작이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 확인되었다.

또한, 민주노조 파괴를 목적으로 입사한 직원들에게는 처음부터 팀장, 조장 등 직책이 부여됐고 월급도 차이가 났다. 일부는 그룹 내 다른 계열사인 동국실업에서 지난해 11월 단체협약을 체결할 때 본사 간부 직원처럼 행세했던 사람도 있었다. 이는 갑을오토텍 민주노조 파괴를 위해 갑을 그룹사 차원에서 작전을 지시하고, 계획을 세웠다는 것을 반증한다.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 노조법·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집중 조사

고용노동부 천안지청은 4월 14일부터 현장에 근로감독관 3명과 산업안전감독관 2명, 안전보건공단 관계자 2명을 파견하여 사용자의 노동관계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진행했다. 특히, 신입사원을 대거 채용하는 과정에서 경찰과 특전사 출신 신입사원을 대거 채용해 기존 노조를 대체할 신규노조 설립을 추진한 의혹과 사업장 산업안전보건 전반적인 실태와 법 위반사항 등을 중심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지금 현장에서는

회사의 민주노조 파괴 공작에 분노한 조합원 3명이 시작한 아침출근 선전전은 일주일도 안 돼 점점 늘어 매일 100여 명이 함께하고 있다. 노동조합 통제와 지침이 아닌 현장 조합원 스스로가 조직되어 구역별 현수막과 피켓을 만들고 이후 대응들을 논의하고 만들어 가고 있다.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이 지금 현장에서는 일어나고 있다. 따라서 이번 민주노조 사수투쟁은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작업중지권 기획] 작업 중지에 앞서 ‘안전한 일터’에 대한 기준이 중요합니다/ 2015.5

지키고 살려내자 작업중지권

작업 중지에 앞서 ‘안전한 일터’에 대한 기준이 중요합니다


중대재해 예방과 작업중지권 실현을 위한 ‘당장멈춰’ 팀


‘작업중지’라고 하면 주로 금속 제조업 작업중지를 생각하게 된다. 조선소나 제철공장처럼 언제라도 큰 사고가 발생할 것 같은 사업장에서 아주 급박한 사고 발생 직전에 일을 멈추거나, 컨베이어벨트를 잠시 멈추는 장면이 떠오른다. 그 동안 주로 제조업 사업장 노동자를 중심으로 작업중지권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어온 것도 사실이다.

다른 업종, 다른 형태의 업무를 하는 노동자들에게 위험은 어떤 것이며, 작업 중지는 어떻게 가능한지 수소문하던 차에, 철도노조 서울차량지부에서는 수 차례 안전보건문제 때문에 작업을 중지하고 시정을 요구했던 경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국철도노조 서울차량지부 이상이 지부장과 윤혜영 노안부장을 만났다.


안전보건문제로 작업을 중지했던 구체적인 사례를 알려주세요.

아주 정식으로 ‘작업중지권’을 쓴다고 생각하고 사용한 사례는 아니었어요. 어느 해 여름에 비가 많이 와서, 가좌역 지반이 침하된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기차가 여기(수색, 디지털미디어시티역) 정비하는 기지까지 들어올 수 없게 된 거죠. 비상상황에 어떻게든 열차를 정비해야겠다는 생각에 일단 조합원들이 급히 용산이나 서울역으로 나가서 정비를 했어요.

그런데 용산이나 서울역은 정비를 하기 위한 설비가 전혀 안 돼 있는 곳이잖아요. 정비차고가 없이, 철로 상에 열차가 세워져 있는 상태에서 정비를 하니 불편하고 어려운데다가, 정비 중인 바로 옆 철로로 기차가 지나가는 아찔한 상황이 연출된 거죠. 안전을 위해 법적으로 정비 시에 측선으로는 열차가 다니지 못 하게 돼 있거든요. 조합원들이 일을 하면서 끼임 사고나 충돌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높다고 느낀 거죠. 게다가 열차를 정비해야 한다는 생각에 급히 뛰어 나가 위험도 감수하고 일하는 조합원들에게, 회사 측은 야간 작업 시 숙소도 마련하지 않고 열차에서 자라는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조합원들이 이런 사정을 노동조합에 연락해왔고, 노동조합이 나서서 안전조치를 마련할 때까지는 작업을 못 한다고 거부한 거죠. 출장처럼 나가서 일하던 직원들이 모두 기지로 다시 돌아와서 대기하면서 대책이 마련될 때까지 버틴 겁니다. 결국 임시, 비상상황이니만큼 꼭 해야 하는 정비 내용을 약간 줄여, 조합원들이 너무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도록 했고, 임시 숙소를 마련한 뒤 작업을 재개했습니다. 아마 2007년 경이었던 것 같아요.

사실 그 전에도 이런 상황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요. 비상 상황, 임시 상황이라면서 노동자 안전은 뒷전이 되고 당장 일이 되게 하려는 경우는 비일비재했다고도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이전에는 잠깐 위험하게 일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문제 의식이 없었거나, 문제 제기를 못 했던 거지요. 그런데 이 당시에는 하루 이틀만에 복구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며칠간 계속 그렇게 일해야 했기 때문에 너무 위험하다고 느낀 거였죠.



석면 문제로 작업을 중지했던 적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2008~9년에는 석면 때문에 일시적으로 작업을 중단했던 적이 있었어요. 석면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얘기는 이미 있었던 때였습니다. 열차 엔진룸이나 제동장치함에 예전에 석면이 많이 쓰였거든요. 노동조합이 최초에 문제제기했을 때, 철도공사 측에서는 열차에서 석면을 모두 철거했다고 했는데, 현장에서 아무래도 석면이 곳곳에 남아 있는 것 같다는 문제제기가 들어왔어요. 그래서 노동조합이 몇 군데에서 시료를 채취해 원진 노동환경건강연구소에 분석을 의뢰했더니 정말로 석면이 상당히 많이 검출된 거예요.

모든 작업을 일시에 멈춘 것은 아니었고, 석면에 노출될 수 있는 작업들을 거부하고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요구했습니다. 결국 긴급하게 임시 산보위가 열려 다시 한 번 석면 철거 약속을 구체적으로 받아내고, 철거가 되기 전까지는 석면 방지용 보호구를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보호구가 지급될 때까지 석면에 노출될 수 있는 작업을 중단했지요. 사실 석면이 상당히 포함돼 있는 먼지를 압축 공기로 날리는 등 노출이 많을 수밖에 없는 작업을 하고 있었거든요.

지금은 구형 차량 자체가 모두 퇴출되어 석면 문제는 없어졌지요. 노동조합이 석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 2년쯤 뒤에 조합원 중 폐암이 발생해서 산재 신청을 했어요. 결국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도 당시 분석 자료와 기록 등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 밖에도 두 번 정도 경험이 더 있습니다. 저희 일하는 곳에는 전차선이 따로 없었는데, 전기 기관차가 도입되면서 전차선이 설치되었습니다. 새로운 설비가 도입된 것이니, 그에 걸맞는 안전설비가 다 갖춰지기 전에는 일을 못 한다고 한 거죠. 예를 들어, 열차 측면에는 지붕으로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가 있어요. 옛날 열차들은 공조장치가 위에 있어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살펴보고 직접 소리도 들어보는 작업을 꽤 했었죠. 그런데 이제 전차선이 생겼으니 지붕에 올라가면 안 되는데, 사다리가 달려있으니 무의식적으로 올라갈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위험을 애초에 없앤다는 생각으로 사다리를 모두 제거하라고 요구했죠. 화물차에는 아직도 이 사다리가 달려 있어서, 일반인들 감전 사고가 대부분 이 사다리 타고 올라갔다가 발생하고 있어요.

전차선 관련해서는 지금도 청소 작업에서 문제가 있어요. 지금 청소 업무는 외주로 빠져 있습니다. 전차선이 도입됐기 때문에 이에 맞는 업무 매뉴얼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이 옛날처럼 물 뿌리면서 똑같이 청소를 하고 있어요. 감전 사고 위험이 높죠. 저희가 그런 위험한 작업 형태 사진 찍어서 회사 측에 문제 제기하는데, 정작 당사자들은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도 않아요. 다른 데서도 마찬가지지만 더 위험한 일을 많이 하는 비정규직이 보호는 더 못 받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는 고용 등에 밀리는 편이지요.

또 조합원 한 분이, 작업 중에 돌연사 하신 적이 있었어요. 열차 안에서 일하다가 갑자기 사망하셨는데, 뒤늦게 발견이 됐지요. 가장 기본적으로는 일하던 중 조합원이 사망했으니 원인이 뭔지 밝혀야 한다는 것이었죠. 혹시 가스라도 발생해서 사망한 것은 아닌지 명확한 확인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회사측 대응이 부적절했습니다. 원인 규명이나 이후 장례 절차, 산재 신청 등에 대해서 비협조적으로 나왔어요. 그래서 모든 조합원들이 손을 놓고, 반나절 정도 작업을 중지했습니다.



보건 문제를 가지고 조합원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적절하게 작업중지권을 활용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환경을 개선해온 모범적인 사례로 보인다. 작업중지권을 잘 활용할 수 있었던 이유나 배경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에요. 철도 차량 정비 업무가 현재 회사 측도 인정할 정도로 아주 위험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죠. 노동조합이 작업을 중지하고 무언가를 요구할 때 공사 측에서 봐도 억지 주장은 아니라고 느껴질 정도로 곳곳에 문제가 많아요. 서울차량지부 정비 차고가 지어진 것이 1969년 즈음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현장은 주로 무궁화호나 새마을호 정비를 하는데, KTX나 전동차를 정비하는 다른 사업소에서 서울차량지부 환경을 보면 놀랄 정도로 완전히 옛날 설비, 옛날 시스템으로 되어 있어요.

사실 시스템 자체가 바뀌어야 하는 상황인데 그렇지 못 해서 발생하는 위험이나 불편함은 조합원들이 감수하고 일하고 있는 셈입니다. 어떤 점에서는 회사가 정한 사규나 작업 수칙조차 지켜지지 못하는 노후한 작업 패턴이 유지되고 있거든요. 예를 들어 정비 기지가 따로 없고 옥외, 노상에서 정비를 해야 합니다. 그 공간은 너무 넓고 조합원들이 정비할 열차를 일일이 찾아다녀야 하는 상황이죠. 다른 정비 사업소에서는 정비 받을 열차가 정비고 안으로 들어오면 거기서 작업을 하는데 저희 작업 방식과 대조적이죠. 이러니 빙판 사고, 전도 사고가 많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저희는 교대근무를 하는데, 노상에서 작업을 하니 야간 작업 시에 조도 확보도 충분히 안 되는 경우도 있어요. 이미 그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이건 정말 안 되겠다’고 작업을 중단하고 요구하는 것을, 사측도 안 들어줄 수가 없는 것이죠.


완성차 사업장 등에서는 작업중지권 사용했던 것을 가지고 징계하거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일도 있습니다.

여기서는 작업중지권을 사용했던 것 때문에 직접 징계를 내린 적은 없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 다른 건을 가지고 징계를 하면서, 징계 사유에 예전에 작업중지했던 내용을 같이 써놨더라고요. **월 **일에 업무 지시를 안 따랐다는 둥.

작업중지권 자체로 징계를 내린 것은 아니지만, 징계 사유에 같이 끼어들어 있다는 것을 조합원들도 자연히 알게 되지요. 그러면 아무래도 문제를 제기하는 것, 특히 작업을 중단하면서까지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 대해 위축되기도 하지요. 그래도 그런 부담을 감수하고 제기를 하는 거지요. 또 노동조합이 일단 제기를 하고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작업을 중단하자고 하면, 이 지침을 조합원들이 잘 따라주기 때문에 계속 문제도 제기하고 개선해나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작업중지권을 더 널리 알리고, 현장에서 잘 사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이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면 좋을까요?

작업중지권은 산업안전보건법에 보장된 권리죠. 그렇지만 작업중지권 얘기를 하기에 앞서 ‘안전한 일터’에 대한 기준을 여러 가지로 풍부하게 만들고, 제대로 세우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이런 기준이 똑바로 서 있어야, 그 기준에 안 맞는다 싶을 때 멈추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예를 들어 지금보다 작업환경측정 기준도 훨씬 다양해지고, 각자 일하는 환경의 특성을 반영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건강진단 항목도 근골격계 질환을 진단하는 내용이 포함되는 것처럼 좀 더 실질적인 의미를 가졌으면 좋겠고요. 저희 같은 경우에는 열차 시트에 미생물이 얼마나 있는지, 그게 우리 노동자들이나 승객들에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지 걱정되고 궁금하지만, 이런 내용은 작업환경측정에 반영되지 않죠. 그러니 문제를 제기하려고 해도 막막해지는 거예요. 현장에서는 전자파의 건강 영향에 대한 우려도 많은데 이것도 제대로 기준도 없고 측정도 하지 않지요. 더 자잘하게는 야간 근무자들이 숙소에서 푹 잘 수 있도록 하는 적절한 소음 기준치는 뭐냐 이런 구체적인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작업을 멈춘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작업을 중단하는 것 자체보다 왜 작업을 멈춰야 된다고 생각하는지, 그 기준은 뭔지, 그래서 작업 중단 후 대책은 어떻게 마련되었는지, 그래서 일터는 더 좋아졌는지가 훨씬 중요한 것 아니겠느냐는 지적이 소중하다. 작업중지권을 실현함으로써 얻고자 하는 것이 바로 ‘안전한 일터’의 기준에 대한 이런 질문과 지적, 토론이 활발한 현장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노동시간에세이] 행복과 통근시간 / 2015.5

[시간의 재발견-노동시간에세이]


행복과 통근시간

출퇴근 시간도 노동시간의 일부로 인정해야


노동시간센터(준) 김재광


한국은 세계굴지의 장시간 노동의 나라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초 단시간, 단기간 일할 수 밖에 없는 불안한 노동시간의 나라이기도 합니다. 노동시간의 길이와 불안정성은 비단 일터에서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일상의 시간에 까지 막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노동시간센터(준)은 지난 기획 [노동시간에 대해 말해야 하는 것들]을 마치고, 일상에서  느낀 시간과 노동을 에세이로 풀어나가는 [시간의 재구성] 연재를 시작합니다. ‘노동시간’에 방점을 두고 재구성하는 삶의 이야기에 많은 관심 바랍니다.


지난 가을 지속되는 전세난 와중에 다행히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곳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서울인 듯 서울 아닌 듯 한 서울인 이곳은 주변에 텃밭이라고 하기는 상당히 넓은 경작지가 있고, 새로 들어선 교회 이름도 전원교회다. 말인 즉 공기는 좋으나, 참 외진 곳이라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출근 시간이 40여 분 더 늘어 출퇴근 시간이 도합 2시간 40 여분이 되었다. 이 긴 시간을 길바닥에서 보내려니 책도 읽어보고, 음악도 듣고, 이러 저러하게 의미 있게 써보려 앙탈을 부려보지만, 피곤하고 무료함을 이겨 낼 수가 없다. 출퇴근 시간을 정확하게 지킬 필요가 없는 직업인지라 그나마 다행이지 일반 직장이라면 아마도 우울과 무기력에서 못 벗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출퇴근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의 사정이 어떤지 궁금해진다. 그래서 이것저것 찾아보니 출퇴근 시간이 길어지고 내가 느끼고 있는 부정적인 무언가는 다행히(?)나 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삶의 질도 좌우하는 통근시간

OECD는 Well-being 측정 지표로 진작에 ‘통근시간’을 놓고 있다. 그만큼 출퇴근 시간이 삶의 질을 좌우하는 한 요소라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역시나 기대를 배반하지 않고 출퇴근 시간이 OECD국가 중 터키 다음으로 길어 당당히 2위를 차지하고 있다. OECD 국가의 평균 통근시간은 38분(편도)인데 비하여, 한국의 경우는 58분으로 보고되고 있다. 한편 리저스 그룹 조사(2010년)에 의하면 한국 직장인 네 명 중 한 명은 출퇴근을 위해 매일 90분 이상을 버스나 지하철에 안에 있으며, 평균 통근 시간(편도)은 62분이며, 통근 시간이 2시간 이상인 직장인도 전체의 8%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2010년 통계청 조사를 근거로 하여 추산할 경우 2015년 현재 출근 소요시간이 1시간 이상인 직장인의 수가 500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니 역시 나만의 아픔이 아니었던 것이다. 주택비용으로 인해 직장이 있는 도심에서 외곽으로의 이주하는 경향이 한동안 멈추지 않을 것을 고려하면 그 수는 좀처럼 줄어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진 : MBC 다큐스페셜, 2시간째 출근중, 길 위의 미생)



얼마 전 방영된 [MBC 다큐스페셜]은 장시간 출퇴근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경우 만성피로와 사고위험에 노출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이 다큐는 출퇴근하는 직장인을 대상으로 스트레스 조사를 하였는데 출근 시간이 1시간 30분이 넘는 집단에서는 스트레스를 나타내는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농도가 평균보다 높게 나타나 의학적으로도 1시간 30분 이상 출근 시간이 인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 밖에도 장시간 통근으로 유발되는 스트레스는 혈압 상승, 근·골격계 질환, 적대감 증가 및 인지 기능에 부정적인 영향을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0년 영국의 ‘The Argus’지는 통근에 따른 스트레스로 인해 영국 브라이튼 앤 호브 지역 주민 중 런던으로 통근하는 근로자들의 기대 수명이 평균 1년 단축됐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한편 장시간의 출퇴근 시간은 생체 문제를 일으킬 뿐 아니라 가족 및 사회관계까지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출근시간이 1시간 증가하면 수면시간은 13분이 줄어들고, 이혼율은 약 53%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하고, 심지어 출퇴근 시간이 정치참여에 연관이 상당하다는 미국의 연구결과를 접하면 장시간의 출퇴근 문제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확신이 선다. 앞서 밝힌 리저스의 조사에 따르면 출퇴근 시간이 줄어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의 설문(복수응답)에 ‘운동과 몸매 관리에 시간을 보내겠다’(82.0%), ‘가족친구 연인과 시간을 갖겠다’(76.0%), ‘학술적 능력제고에 투자하겠다’(65.0%)로 답한 점을 비추면 장시간 출퇴근 시간이 건강과 사회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통근시간 스트레스, 결국 노동시간의 문제

2013년 한국교통연구원은 흥미로운 보고를 한 바가 있다. 보고에 따르면 수도권에 거주하면서 서울(강남 기준)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의 통근시간에 따른 행복상실을 분석한 결과 통근시간(편도)이 1시간인 수도권 통근자의 행복상실, 그 가치가 월 94만원이라는 것이다. 수치로 나타난 행복상실의 정도가 실로 충격적이다. 행복의 가치를 단순 산술화 했다는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장시간의 출퇴근 시간이 삶의 질을 주요하게 결정하고 있다 점에서 큰 시사점을 준다. 월 94만원이면 최저임금 노동자 입장에서는 대부분의 경제적 가치인 것이다. 이 보고의 조사에 의하면 대상자의 62.7%가 통근시간의 불만족 하며, 응답자의 69.8%가 통근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응답하였으며, 46.6%는 업무효율에 지장을 주며, 29.6%는 이직을 생각할 정도라고 하니 수도권 출퇴근자의 스트레스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 : MBC 다큐스페셜, 2시간째 출근중, 길 위의 미생)



이렇듯 익숙하면서도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닌 장시간의 출퇴근 시간과 그에 따른 건강상, 사회관계상의 문제는 교통체계의 혁신, 주택 및 거주 방식의 혁신 등도 있겠으나, 노동시간의 문제로 따지자면 우선 유연한 출퇴근 시간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아무래도 집중된 출퇴근 시간을 피한다면 상대적으로 덜 스트레스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한들 출퇴근 시간 자체가 혁신적으로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차라리 출퇴근 시간을 노동시간으로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근본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출근 시간은 노동력을 제공하기 위해 노동자의 불가피한 시간으로 이에 대한 보상과 인정이 필요하다. 즉 통근시간의 전부 또는 일정 시간 이상의 시간에 대해서는 노동시간으로 인정하고 그만큼 실 노동시간을 면제하는 것이다. 최근 ‘벼룩시장 구인구직’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응답자의 66% 정도가 30분 이내의(편도) 출퇴근 시간을 원한다는 점을 참고한다면, 30분 이상의 통근 시간에 대해서 노동시간으로 인정한다면 장시간의 출퇴근 시간의 부담이 한층 덜어질 것이다. 물론 이러한 발상에 여러 가지 반대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개인의 부담을 사업주가 분담하는 것이 옳지 않다’ 라든가 ‘출퇴근 시간을 노동시간으로 인정하면 오히려 장거리 출퇴근자의 고용이 불안해 질 것’이라는 등등의 주장 말이다.



출퇴근 시간을 노동시간에 포함시키자는 나의 발상은 노동력을 제공하기 위해 장시간 자신의 시간을 할애하고 이로 인하여 건강과 사회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문제를 개인에게 모두 전가하는 것이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것에 전혀 부합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노동을 하는 이유는 노동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기초를 형성하기 위한 것이다. 그로 인해 불행해지는 것이 목표가 될 수 없다. 이 사회의 존립 이유가 누구를 일부러 고생스럽게 만드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면, 상당히 많은 사람이 곤란을 겪고 있으며 노동생산성에서도, 행복의 척도에서도, 사회관계 및 정치의 참여에서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장시간 통근시간의 문제를 모른척하는 것이 정당한지 묻고 싶다. 또한 노동시간의 문제는 단순히 노동에 몰입하는 시간뿐 아니라, 그것을 준비하는 시간, 그것에 부수하는 시간,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시간(출퇴근, 휴식, 재충전) 모두와 연관되어 있으며, 이 모두를 종합적으로 파악할 때 노동시간의 문제를 제대로 보는 것이 아닌가 한다.


(출처 : MBC 다큐스페셜, 2시간째 출근중, 길 위의 미생)

[특집] 2. 96·97 총파업이 2015 총파업에게 /2015.5

96·97 총파업이 2015 총파업에게


선전위원 재현


4월 24일 재벌 배불리기에 맞서 노동자 서민 살리기 총파업에 민주노총 조합원 26만이 참가했다. 총파업 선포에 앞서 집회 무대를 향해 민주노총 깃발이 입장하는데 뭔가 일을 낼 것만 같은 전율을 느꼈다. 96·97 총파업을 경험했던 선배노동자들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96년엔 구로의 한 전자산업 사업장에서 조합원으로, 19년이 지난 지금은 안양의 컴퓨터를 만드는 주연테크 사업장에서 지회장으로 총파업을 조직하는 김명신 지회장을 만나서 96·97 총파업에 이어 2015 총파업을 맞이하는 감회를 들어보았다.


1996년 12월 26일 그날을 잊을 수 없어요!


사진  : 1996-1997 날치기 노동법 개악 저지 총파업 투쟁 [출처 보건의료노조]


“지금도 기억나는 장면이 하나 있어요. 1996년 12월 26일. 아직 날도 밝지 않은 아침이었는데 뉴스에서 국회의원들이 노동법 날치기 통과를 위해 삼삼오오 모이고 있다는 거예요. 결국, 날치기로 법이 통과됐는데 그때 민주노총 지도부가 지금부터 무기한 전면 총파업을 선언한다는 지침을 내리는 데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1996년 당시 한국사회는 비약적인 경제성장으로 국민소득 1만 불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노동자 서민들은 세계 4위의 중대재해율을 기록하는 현장에서 연간 2,500시간의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었다. 이때 김영삼 정부와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은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 12월 26일 새벽 단 6분 만에 노동법 개정안을 날치기 통과 시켰다.

“노동법 개정안엔 정리해고뿐만 아니라 탄력적 변형 근로 형태 도입 등 개악 안이 많았는데 무엇보다 정리해고에 대한 우려가 가장 컸어요. 지금도 정리해고 때문에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희생되었는지 다 알잖아요. 그래서 당시에 ‘이건 무조건 파업이다’ 이런 정서가 현장에 있었어요.”

노동법 날치기 통과 이후 민주노총은 자동차, 금속, 현총련, 전문노련 등 현장에 파업 지침을 내렸다. 파업이 어려운 전교조의 경우 단식수업, 화물노련은 구간별 안전운행 등의 투쟁 지침을 내렸다. 그 결과 12월 26일 85개 노조, 14만 2천여 명이 총파업에 참가했다. 이후 투쟁을 확대하면서 12월 31일엔 연인원 100만 명을 기록했다.

“매일 명동성당으로 모였어요. 파업 이후 수배가 떨어진 지도부들이 명동성당에 있었거든요. 제가 그때는 결혼 전이라 부모님과 같이 살았는데, 교회를 다니는 집이라 12월 31일엔 꼭 집에 모여서 송구영신 예배를 드려야 했어요. 그런데 살면서 처음으로 배 째라는 심정으로 부모님께 집에 못 간다고 전화했던 기억이 있어요. 경찰이 명동 성당을 침탈한다고 하는데 도저히 집에 갈 수가 없더라고요.”


사진 : 1996년 12월 30일 노동법 개정 총파업 당시 명동 성당 집회 사진 [출처 금속노조]


1997년 1월 18일 그때 고비만 넘겼더라면

노동자들이 총파업에 돌입하자 사회운동단체들도 ‘노동법 안기부법 개악 철회와 민주기본권 수호를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 를 구성하여 투쟁에 동참했다. 80% 넘는 국민들도 날치기 통과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해가 넘어가고 1997년 민주노총의 2단계 투쟁지침에 따라 언론, 사무, 전문, 서비스직 노조로 투쟁 단위들이 확대됐고 그 결과 총 169만 5천여 명이 파업투쟁 참가했다. 당시 한국노총도 42만 여 명의 조합원이 파업에 함께했다. 한편, 파업이 길어지자 민주노총 지도부는 1997년 1월 18일을 기점으로 총파업을 수요파업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수요 파업 전환한다고 했을 때 불만이 대단히 많았죠. 파업이 길어지면서 참가 인원이 조금 줄어들기는 했는데, 우리 현장만 해도 언론에서 정치파업이다 불법파업이다 그러면서 무섭게 몰아치니까 조합원들이 긴장하고 집회에 못 나가기도 하고 그랬으니까요. 그러니 지도부 입장에서도 더는 조합원들이 버티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에요. 흔히 조합 활동 하다 보면 지도부 역할이 중요하다 그러는데……. 지나고 나니까 굉장히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그때 그 고비만 넘고 갔더라면, 임·단협 기간도 맞물리면서 좋은 국면을 맞이할 수 있었을 텐데...... .”

수요파업 전환 이후 민주노총은 투쟁의 주도권을 상실했고 2월 17일 김영삼 정권이 국민들에게 노동법 날치기 통과에 대한 사과를 표명하면서 국면이 전환되었다. 3월 11일 임시국회에선 여·야간 합의로 날치기 법안을 폐지하고 정리해고제 시행시기를 2년 유예시키는 결정을 내렸다.

비판의 목소리도 많았지만 그래도 그땐 잘 싸웠어요.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 싸웠는데도 근본적으로 정리해고를 막아내지 못했다는 패배감이 컸던 게 사실이에요. 정리해고가 가진 여파가 굉장했죠. 다만 그래도 전노협 시절엔 합법 노조가 아니니까 매일 경찰에게 두들겨 맞고 많은 규모가 모여 집회하기도 어려웠는데 그때 투쟁의 성과로 민주노총이 합법화 되고, 조합원들이 많이 모여서 투쟁할 수 있었고 나름의 성과가 있었다고 봐요.”

96·97 노동법 개악 저지 총파업투쟁은 노동자들이 단사·업종·지역을 넘어 ‘노동악법 전면 무효화’ 라는 정치적 요구를 중심으로 단결했던 건국 이후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정치파업이었다. 더 나아가 당시 투쟁은 1980년 이후 세계 노동운동 역사에서도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선 투쟁이었다. 이후 민주노총은 투쟁을 통해 조직력을 확대했고, 산별노조 건설의 토대 구축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한편,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투쟁 전선에서 노동자 정치세력의 부재는 ‘단 한 명이라도 노동자 국회의원이 국회에 있었더라면 막을 수 있었을 텐데’ 라는 말을 낳았고 총파업을 마무리한 민주노총은 정치세력화를 위한 활동에 나섰다. 그 결과 민주노총 초대 지도부였던 권영길 위원장이 국민승리 21 대선후보로 출마했다. 이러한 흐름은 투쟁의 긍정적 의미와 성과에도 불구하고 96·97 총파업을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으로 분리하여 사고하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뼈아픈 평가를 남겼다.

“권영길 위원장이 대선에 나왔잖아요. 그땐 이러려고 파업 접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죠. 당시 일어나라 코리아 의제에 대해서도 비판의식이 있었어요. 민주노동당 창당 때도 시선이 좋지만은 않았고요. 여전히 분단국가인 한국 사회에서 진보정당이라고 하면 빨갱이 정당이라는 선입견이 너무 강하니까 기대보다 염려와 우려가 컸죠. 그래도 노동자 정치 세력화는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가입은 했어요.

권영길 위원장 사퇴 이후 민주노총 직무대행 집행부는 1998년 1기 노사정위원회에서 정리해고에 합의했다. 이후 직무대행 집행부는 정치적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비대위는 정리해고를 인정할 수 없다는 정치적 선언만 있었을 뿐 폐기를 위한 총파업 투쟁을 전개하지 못했다. 이후 IMF 외환위기, 신자유주의 공세에 따라 전국 곳곳 현장에서 구조조정과 정리해고가 벌어졌다. 그 결과 대우자동차 해외매각에 따른 정리해고와 구조조정 저지를 위한 파업부터 노무현 정권 비정규직 악법, 한·미 FTA 체결, 이명박 정권 타임오프 날치기 통과, 용산 참사, 쌍용자동차 77일 옥쇄파업, 박근혜 정권 철도 민영화 저지 파업까지 19년이 흐르는 동안 노동자들의 삶은 벼랑 끝으로 몰렸다.

19년 전 보다 지금이 더 절박한 상황이라고 봐요

“워낙 많이 밀려왔어요. 타임오프 때였나. 그때도 여의도에서 집회하고 있었는데 민주당에서 결국 합의했다는 거예요. 당시 민주노총 직무대행은 잠적하고. 또 민주노총이 매년 총파업을 선언하지 않은 해가 없었는데 매번 뻥 파업 하면서 잘못한 것도 많고요. 그래도 지금 모두가 96·97 총파업 때보다 더 절박한 상황이라고 생각하면서 파업을 조직하고는 있는데 안타깝게 현장엔 별로 긴장감이 없는 것 같아요. 총파업이 왜 필요한지 교육도 하고 그러는데 조합원들이 자신들의 삶이랑 파업이 와 닿지 않은가 봐요. 파업해야 한다니까 하지 뭐 그런 정서 같아요. 현차 같이 큰 노조도 안 하는데 우리 같이 작은 사업장이 파업해봐야 효과도 없고 현장에서 탄압만 받을 텐데 왜 하느냐는 이야기도 많고요.”

금속노조가 4.24 4시간 파업 지침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자동차 지부는 파업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면서 많은 내홍이 있었다. 그러나 파업 준비 기간도 부족하고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도 민주노총을 비롯해 빈민, 장애인 등 민중들이 함께 ‘더 쉬운 해고, 더 낮은 임금, 더 많은 비정규직’ 을 노린 박근혜 정권의 노동자 죽이기 정책에 맞서 4.24 총파업 투쟁을 벌여냈다.

“저희도 4시간 파업을 결의했어요. 5월 1일 노동절에도 최대한 집중하자는 분위기이고요. 세월호 참사 정국에 성완종 리스트 파문까지 지금은 분명 우리에게 유리한 국면이니 잘 싸워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그래서 조합원들에게 누가 나오든 나오지 않던 신경 쓰지 말고 우리 갈 길을 가자. 집회는 무조건 가야 한다고 얘기해요. 만일 10,000명이 오기로 한 집회에 나 하나 안가면 9,999명이 되는 거잖아요. 그러니 집회는 무조건 많이 가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그게 노동자의 힘이거든요.”

12명 소수의 조합이지만 자본과 박근혜 정권의 폭주를 멈추기 위해 애쓰고 있는 주연테크 동지들을 비롯해 80만 민주노총 조합원 모두가 96·97 총파업의 교훈을 잊지 말고 단결해서 위력적인 2015 총파업 투쟁을 열어젖히길 기대한다.

* 기사에 싣지는 못했지만 이번 인터뷰에 큰 도움 주신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지역공공서비스지부 김학철 조직부장, 금속노조 경기지부 주연테크지회 안준민 노안부장님께 감사드립니다. 

[특집기고] 경제 위기와 총파업, 그리고 건강 / 2015.5

경제 위기와 총파업, 그리고 건강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최은경


<편집자> 경제위기는 노동자 건강을 위협한다. 위기를 기회로, 건강하게 일할 수 없는 조건이 강요되기 때문이다. 이번 총파업의 도화선이 된 ‘비정규직 종합대책’ 역시 비정규직과 파견근로를 늘리고, 해고를 쉽게 만든다. 지금도 최장시간 노동하는데 연장 근로 한도를 20시간으로 늘리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자본의 위기에 맞서 몸과 삶을 지키기 위한 노동자들의 투쟁은 어땠나. 2015년 총파업 투쟁을 맞아 경제위기와 총파업 그리고 노동자건강 연관의 역사를 되돌아보았다.


자본주의 경제 위기는 건강 문제를 동반한다. 경제 위기가 가져오는 영양 공급의 문제, 주거 및 환경의 문제, 보건의료 접근성의 문제, 그리고 정신적 스트레스의 문제 등이 건강 문제에 항상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경제 위기 속에 사회적 문제 해결을 모색해야 할 상황에서 경제 위기와 건강 문제 사이의 관련성은 점점 더 역사가들과 보건의료 정책가들이 고민하는 주제가 되고 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노동자와 노동조합들이 늘 체감해오던 주제이기도 하다. 반면 총파업 결과 건강 정책과 노동자 건강 문제에 있어 획기적 진전이 있었던 사례들도 많다.

경제 위기는 건강을 악화시킨다.

경제 위기 속에서 건강 문제는 중요한 문제였고, 역사상 보건의 노력들을 뚜렷하게 바꾸어 놓기도 한다. 다소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1930년대 대공황 때 드러난 건강 문제는 다음과 같다.

영국의 경우 모성 사망이 크게 증가하였고 영아사망률은 지속적으로 저하되는 추세였지만 계급적 지역적 불균등과 불평등 차이는 커졌다. 당시의 연구가 아닌 최근 남부 웨일즈 지방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대부분 연령 집단에서 1930년대 초반 건강 상태가 더 나빠진 것으로 나오고 있다. 1929년부터 1932년 사이 중산층 가족들의 질병 건수를 연구한 결과 대공황 후 수입이 크게 하락한 가족의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질병 발생이 56% 높았다. 국제연맹보건기구에서 도시 빈민을 대상으로 수행한 연구의 결과 실직 가정 아동과 그렇지 않은 가정 아동의 신장과 체중에서 차이가 있었음이 발견된 적이 있었다.

한편, 같은 경제 대공황을 겪더라도 국가의 시스템적 제도적 인프라가 작동하여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인 경우 건강 문제의 발생 또한 낮아지기도 한다. 경제 대공황 시절 미국의 경우 복지 프로그램을 확대한 결과 영아사망률이 유의미하게 낮아졌으며, 영국 또한 1930년 이후 보건 부분 지출이 늘면서 모성 및 아동 복지 수준이 향상되고 결핵 치료가 증가하는 등 긍정적인 결과가 있었다. 그러나 당시 록펠러 재단을 중심으로 한 국제보건 프로그램의 지원에만 의지했던 식민지 지역에서는 프로그램의 축소로 말라리아 퇴치 노력 등 공중보건 활동 자체가 지속되지 못했다.

경제 위기는 특히 제3세계 개발도상국의 보건 수준에 더 악영향을 미친다. 1997년-1998년 동아시아의 경제 위기는 인도네시아의 공공 지출 감소로 이어졌고, 가계의 보건 지출이 악화되었으며 그 결과 질병 이환 보고율이 낮아졌다는 연구가 이루어진 바 있다. 쿠바의 경우 1989년 후반 심각한 경제 위축, 그리고 1992년 미국의 엠바고 영향이 결합되어 영양 공급의 감소, 감염병과 급사의 증가 등 직접적 악영향을 경험한 바 있다. 1980년대 그리고 1990년대 경제 위기와 멕시코의 건강 상태를 연관 짓는 한 연구에서는 경제위기가 있던 해가 그렇지 않은 해보다 유년기와 노년기의 사망률이 높거나 최소한 감소율이 낮아진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경제 위기가 건강 상태를 악화시킨다는 일련의 연구 발견들이 모두 같은 수준의 근거들을 통해 일정하게 지지되고 있는 것은 아니며, 소위 선진국의 경우 상반된 결과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프라가 취약한 국가에서 경제 위기가 보건 수준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은 유의미하게 밝혀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진:의료민영화와 의료 예산 삭감에 반대한 스페인 백의의 물결 운동. 사진 출처 : http://www.rtve.es/)


사회 지출 축소에 대항하는 총파업

경제 위기는 이처럼 인구의 건강 문제를 또렷이 드러내기도 하나 경제 위기와 보건 복지 분야의 지출 축소가 연관되어 인식되고, 정부의 지출 축소에 대항하는 저항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오히려 최근의 일이라고 할 만하다. 국가가 국민(인구)의 건강을 보장한다는 가치를 내재화하고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시스템화한 것 자체가 1,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건강권 확대와 복지 제도 수립 자체가 서구에서는 오래된 파업과 사회주의적 요구 확대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1877년 철도노동자 파업, 1919년 시애틀 파업 등 교과서적인 파업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지 국가(제도)의 수립 이후 파업과 대규모 시위가 복지의 진전과 후퇴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지, 비서구권에서는 어떠한 영향을 가져왔는지는 충분히 알려져 있지 않다.

복지 국가(제도) 수립 이후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는 끊임없이 긴축 프로그램과 파업 사이에서는 긴장 관계가 형성되었다. 1,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에서는 복지 국가가 수립되는 한편 제조업 등의 쇠퇴로 구조조정과 지출 축소 등 긴축 프로그램(austerity program)을 도입하려는 시도들, 그리고 이에 대항하는 총파업들이 있었다. 가장 기념비적인 파업은 1960년-1961년 벨기에 총파업이었다. 복잡한 정치적 지형 속에서 발로냐 지방의 산업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1960년 벨기에 정부가 정부지출을 축소하기 위한 종합 방안을 수립하자 이에 대항하는 총파업이 2년간 지속되었다. 이 당시 총파업은 노조가 직접적으로 지도한 것이 아니라 지역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파업했기 때문에 정부의 통제는 불가능했다. 이 파업은 단지 긴축 정책만이 아닌 체제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로 발전하였고, 종국에는 실패했지만 벨기에의 현대 정치 지형을 바꾼 것으로 평가된다.

오일 쇼크와 인플레이션 이후 노동당 정부의 긴축 정책에 대항하여 영국에서 1978년-1979년 겨울동안 일어난 파업 또한 당시 노동당 정부를 위기로 몰고 갔다. 하지만 이는 이후 마가렛 데쳐의 집권을 불러온 요인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아마도 복지국가 수립 이후 서구에서 신자유주의적 긴축 공세에 대한 유의미한 저항으로 지목되고 있는 곳은 현재 진행 중인 그리스일 것이다. 유로존 위기 이후 심화된 긴축 공세에 대해 반대하는 그리스발 파업과 뒤이은 각 유럽 국가의 파업은 현재 가장 주목받고 있고,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파업이기도 하다.

비서구권에서 파업을 통해 긴축을 성공적으로 저지하고 사회적 비용이 유의미하게 확대시킨 곳으로 지적되는 곳은 라틴 아메리카이다. 많은 연구들이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서 군부 독재 시절의 지도자들이 비효율적인 경제 정책을 고수한 반면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지도자들은 파업과 대규모 사회적 시위에 대해 유연하게 대처하면서 긴축을 저지하고 사회적 안전망과 복지 등 사회적 비용을 확대하는 대응을 했다는 데에 동의한다. 안타깝게도 조직 노동자를 위한 혜택의 증가가 아닌 다른 집단을 위한 혜택은 그렇지 않다는 주장도 있지만 라틴 아메리카의 사례는 민주화 이후의 파업이 유의미한 사회적 지출 확대를 가져왔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사진 : 긴축에 저항하는 그리스 민중들)

경제 위기는 보건 정책을 진전시켰을까

파업과 사회적 요구는 역사적으로 보건 제도 또는 정책을 진전시켜 왔다. 그렇다면 경제 위기는 보건 정책을 진전시켰을까, 그렇지 않을까. 우선 보건 전문가들의 연구 자체는 경제 위기를 계기로 많은 도약을 이루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최초로 지구적 차원에서 경제 위기와 건강 문제 관련성이 제기된 것 또한 1930년대 경제 대공황이다. 1919년 설립된 국제연맹 산하에서 건강 문제를 다루었던 국제연맹보건기구(League of Nation Health Organization)에서는 대공황이 닥치자 대량의 실직으로 식품 소비량이 줄어들고 가계가 악화되면서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이 낮아지고 있다고 거론하였고, 1932년 ‘경제 후퇴와 공중 보건(The economic depression and public health)’ 라는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보건 전문가들은 광범위한 영양 부족이 질병에 대한 취약성을 증가시키고 정신적 건강을 악화시키고 아동의 발육 상태를 저하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당시만 해도 분절적이었던 각국 식민지 경계들을 넘을 수 있는 공중보건적 차원의 접근들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였고, 국제적 차원의 보건 연구들이 시작되었다. 역사적으로 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수립된 보건복지 체제와 사회의학 체제는 이 시기에 더욱 그 범위를 확대하게 된다. 병원이 문을 닫거나 정부가 필요한 보건 프로그램을 하지 못하게 될 거라는 우려도 팽배했다. 이 시기의 문제는 식민지 본국의 보건 문제만이 아니었다. 자본주의 공급을 담당했던 식민지 지역의 공황은 식민지 주민들의 건강과도 연결되어 있었고, 세계 시장의 공급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었다. 보건 전문가들의 연구는 당시 식민지 본국의 이해와 긴밀하게 관련이 있었던 것이다.

경제 위기는 미국의 뉴딜이나 영국의 보건 부문 지출 증가처럼 보건 정책상의 진전을 가져오기도 했다. 하지만 경제 위기 가운데 입안된 보건 정책들 중 긍정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공중보건 상의 위협에 대해 대처한다는 명목으로 사회적 비용 지출에 예민해지고 단속이 강화되는 방향의 정책 입안이 많아진 것도 이 때이다. 이를테면 다수의 유럽 국가들은 경제위기를 경험하면서 이민자들의 나쁜 건강 상태와 전염병(매독, 결핵 등)이 공중보건 상 일종의 생물학적 위협이라고 여기고 이들을 탄압하고 단속하는 입장을 취하기도 했다. 이러한 입장이 나치와 파시즘의 탄생에 일조했음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당시에도 병원과 각종 위생 시설의 저 숙련노동자들은 이주노동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주노동자의 퇴출이 또 다른 보건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었다는 점이다. ‘국제적’ 인 경제 위기가 ‘국제’ 보건뿐만 아니라 ‘일국’ 의 노동 구조 및 일국의 보건 상태, 보건 담론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일터> 통권 135호 / 2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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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세월호 1년 노동안전 1년 

1년이 다 됐지만, 세월호 참사는 현재진행형이다. 사회적으로 안전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지만, 안전사회를 향한 걸음은 더디기만 하다. 지난 1년간 정부가 내놓은 안전 대책과 시민 사회가 제기한 안전 과제를 짚어보고, 앞으로의 과제를 점검한다. 

28 안전을 기업에 맡긴다? 세월호 1년,정부의 안전대책 평가 

32 세월호 참사가 남긴 노동안전 과제 

36 안전은 서비스가 아니라 우리의 권리 - 존엄과안전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김혜진 인터뷰


4 [노동안전건강뉴스] 


8 [지금 지역에서는]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을 위해 수원시민 공동행동에 나서다 


10 [달려라 건강권, 날아라 노동자] 

공상 없는 현장 만들어 보려고요! - 금속노조 SJM지회 이주일 노안부장 인터뷰 


12 [안전보건활동 참고서] 

노동조합이 움직이면 승인률이 올라간다 : 근골격계질환 산재 신청 


14 [현장의 목소리] 

길었던 여정의 마무리, 그리고 새로운 출발 - 동희오토 황재민 씨 산재인정투쟁 승리와 지회의 계획 


18 [A-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미디어로 운동하자? - 미디액트 활동가 개미 인터뷰 


22 [연구리포트] 

누구를 위해 특성화고 현장실습은 존재하나 


27 [사진으로 보는 세상]


38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돌, 밥, 이 


40 [지키고 되살리자, 작업중지권] 1

588-3088로 작업 중지 - 현대 다이모스 지회 


45 [시간의 재발견_노동시간 에세이] 

심야노동과 서비스 정신 


48 [문화읽기]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50 [유노무사 상담일지] 

'위장도급' 판정을 받았는데 집단해고를 당하다니? 


52 [일터 다시 보기] 

'일터 다시보기'에 다시 임하는 소박한 자세 


54 [이러쿵저러쿵] 

다시 맞는 4월 


56 [가로세로 퀴즈로 본 일터]





[A-Z 노동이야기] 미디어로 운동하자? 미디액트 활동가 개미 인터뷰 / 2015.4

스물 아홉 번째 이야기

미디어로 운동하자?

미디액트 활동가 개미 인터뷰

선전위원 정하나



사진출처: 서울 마을미디어 뉴스레터 ‘마중’ 블로그


“적대적인 신문 4개가 1,000개의 총검보다 더 무섭다!” 그 유명한 장군, 나폴레옹이 한 말이다. 자고로 ‘미디어’는 사회적으로 굉장한 영향력을 가진다. TV를 '바보상자'라고 까지 칭하는 것 역시, 전기통신 기술력 발전과 더불어 일반 대중에 대한 대중매체의 영향력이 극대화됐음을 반증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오늘 만난 개미(별명) 씨는 미디어의 대중적 파급력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더 쉽게, 더 가깝게 사회문제 아니 바로 자신이 봉착한 삶의 문제에 관심을 두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나와 우리의 문제를 스스로 말하게 하기 위한 ‘소통과 참여’를 확산시키는 일(활동)을 하는 사람이었다.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영상, 다큐멘터리 제작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일반 방송사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어요. 언시(언론고시)라고 하잖아요. 방송사 PD가 되기 위해 너무 많은 사람이 경쟁하고 있는데, 그 틈바구니에서 제가 합격할 거 같지도 않았어요. (웃음) 게다가 방송국에 들어가면 내가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풀어낼 수는 없을 거로 생각했어요. 실제 영상을 만드는 사람은 ‘나’인데 데스크에서 원하는 것만 결국 방송되잖아요.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이야기, 많은 사람과 나눠야 할 이야기들은 묻히고 말죠.”


학생 때 친구 서너 명과 함께 영상제작 동아리를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던 때부터 미디어에 대한, 미디어를 통한 열망은 시작되었다. 졸업 직전이던 개미 씨가 학우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던, 당장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대자보 글을 사람들이 잘 읽지 않는 것 같았어요. 사실 자기 얘기인데도 사람들이 관심이 없잖아요. 대자보가 형식 면에서 전달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죠. 사람들이 그래도 짧은 영상은 재미있게 보니까. 6mm 테이프 들어가는 캠코더 있잖아요. 지금은 다 디지털로 바뀌어서 이제는 나오지도 않는 그 캠코더를 친구들이랑 들고 다니면서 이것저것 만들었죠. 등록금 인상에 대한 거나 학교 안에서 청소 일하시는 미화 노동자들 이야기처럼 대학생들이 학교 다니면서 직접 겪을 수 있는 주제부터 ‘대학생과 노동자들은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같은 조금 더 넓은 주제까지요. 그때가 한창 지식채널-e 프로그램이 떴을 때거든요. 그 컨셉 그대로 가져다가 만들기도 했죠.”


그전까지는 카메라로 뭘 찍어본 적도, 동영상 편집도 해본 적 없던 개미 씨, 학원에서 영상편집 기술도 배우고 곧이어 본격적인 다큐멘터리 제작 강좌도 들었다. 제대로 배워보니 한 사안을 심도 있게 보여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겠더란다.


“영상은 아주 직관적인 미디어잖아요.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는 게 생각보다 더, 훨씬 더 어렵다는 걸 알게 됐죠. 글쓰기보다 어려운 것 같아요. 내 생각도 아주 명확해야 하고요. 다큐멘터리 수업에서 한 사람에 한 편씩 수료 작을 만들었거든요. 20분 안쪽으로 단편작품을 만들어 제출하는데, 저는 야간노동을 하는 노동자를 주제로 삼았어요. 주인공은 야간에 편의점 알바하는 청년이었어요. 공장에서 주야 맞교대 하는 생산직 노동자 얘기랑 게임회사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친구 얘기도 같이 섞어서 만들었어요. 나름으로 열심히 했는데 나중에 보니 굉장히 맘에 안 들었어요. 그러면서 느꼈죠. 하고 싶은 얘기는 이만큼 있는데, 그게 다 글로만 정리되어 있던 생각이었구나, 영상 만드는 건 조금 더 생각을 해봐야겠구나 하고요.”


지금은 영상을 ‘직접’ 만드는 일을 하지는 않는다. 대신 ‘퍼블릭 액세스(public access)’를 지향으로 대안적 미디어 활동을 만들어 가는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라는 곳에 속해 있다. ‘퍼블릭 액세스’란 누구나 직접 미디어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그 창작물을 다른 이들과 자유롭게 공유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미디액트>는 이를 누구나 차별 없이 누릴 수 있는 기본권으로 보장하기 위한 활동해 온 곳이다. 노동자·장애인·이주민·노인·청소년과 같은 미디어 소외계층 교육부터 공영방송 시청자참여 프로그램 의무편성 법제화, 제작부터 방송운영까지 시민이 직접 하는 ‘시민채널 RTV’ 설립, 지역 미디어센터 설립 지원 등이 그동안 <미디액트>가 해온 일이다.


“<미디액트>에서 하는 다큐멘터리 제작 수업을 듣다가 인연이 시작되었죠. 웹진도 같이 만들고, 강의 보조도 하고, 그러다가 정식으로 일하게 된 지는 벌써 1년이 다 되어 가네요. 저는 미디어교육, 마을 미디어 지원 업무를 맡고 있어요. 내가 만든 매체를 가지고 직접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일은 아니죠. 대신 지역 주민이나 노동자들이 스스로 라디오나 지역신문 같은 걸 만들어보고자 기획을 내면 그걸 컨설팅하고 지원해주는, 일종의 후방 활동이에요.”


동네 미담에서 지역 현안까지, 마을 미디어


최근 <미디액트>는 서울시로부터 ‘마을 미디어 지원센터’ 사업을 위탁받아 운영 중이다. 개미 씨가 맡은 업무 중 대부분은 바로 이 센터의 일이다. ‘마을 미디어 지원’ 업무란, 지역의 풀뿌리 미디어를 발굴하고 독려하는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구현하는 활동은 아니지만, 개미 씨는 숨겨져 있던 목소리가 세상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하는 지금의 일도 자신과 잘 맞는 것 같다고 했다.


“해마다 서울시 전역에서 4~50개 단체(혹은 주민모임)를 선정해 집중적으로 지원해요. ‘마을공동체 미디어’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 나누기부터 미디어 제작 실습 같은 프로그램을 지원받고자 신청하는 분들이 많고요. 이미 지역에서 모여진 사람들이 신문이나 잡지처럼 하나의 매체를 만들 수 있도록 제반 경비나 장비, 혹은 기획컨설팅을 제공받을 수도 있죠. 2~3년 이상 꾸준히 지역라디오 같은 콘텐츠를 만들어 온 곳도 있어서, 선정된 곳들의 상황에 맞게 지원받을 수 있게 합니다. 제가 주로 하는 일은 세금으로부터 할당된 지원금을 서울시 사업 기준에 맞게 쓰면서, 사업을 원활히 진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부분이에요. 가장 재미있을 때는, 마을 미디어 주체들을 만날 때죠. 작년만 해도 40개가 넘는 팀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이야기를 나눴어요. 쉽지는 않았지만,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는다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지요. 어떻게 해야 참여자를 확대할 수 있는지, 만들고자 하는 미디어의 주제의식이 분명하게 드러나려면 어떻게 방향을 설정해야 하는지, 마을 미디어의 나아갈 길은 도대체 어디인지. 이런 고민을 나누는 과정 역시 민중주도형 미디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처음부터 스스로 주민주체, 민중주체의 미디어로 자처하며 활동하는 곳은 많지 않다. 지원을 하다 보면 주민참여 확대 측면에서도, 만든 콘텐츠 구성 면에서도 마을공동체 미디어들이 성장해 가는 것이 눈에 보인다고 했다. 처음에는 자기가 방송에 나온다는 것 자체, 그걸 주변의 사람들에게 공유한다는 것이 강한 참여 동기이지만 점점 듣는 사람의 반응을 고려하게 되고, 담아내고 싶은 주제들도 개인취미나 동네 미담에서 지역의 이슈와 현안들로 확장되기도 한다.


“영상이나 신문보다는 아무래도 팟캐스트를 활용한 ‘라디오’ 형태가 제일 많아요. 영상의 경우 어느 정도는 전문기술이 필요하고, 신문 역시 정기적으로 글을 써서 게재한다는 게 부담으로 작용하는 반면, 라디오는 녹음 후 편집하는 작업 외에는 편하게 한 두 시간 신나게 수다 떠는 거로도 생산이 되니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 동네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더 많이 듣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는 ‘창신동 라디오방송국 덤’이라는 방송국의 활동이 인상적이에요. 종로구 창신동에는 작은 봉제공장들이 많이 모여 있잖아요. 그 공장 안에 스피커를 달아주고, 실제로 그 동네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분들이 일 끝나고 녹음해서 비정기적으로나마 틀어주는 그런 방송이에요. 다들 일하느라 힘들고 바쁘셔서 방송이 자주 나오지 않는 게 안타까워요.”


누구나 무슨 얘기든 할 수 있는 채널의 꿈


이런 마을 미디어 지원활동 외에도 개미 씨는 국내외 다양한 미디어 동향과 정책을 탐색하는 웹진 <진보적 미디어 운동 연구저널 ACT!> 편집위원회 활동도 하고 있다.


“처음에 꽂혔던 건 ‘우리가, 민중이 우리 채널을 가져야 한다. TV든, 라디오든 간에 틀면 딱 나오는 매체, 그 채널에서 누구나 무슨 얘기든지 할 수 있는 그런 걸 만들어보고 싶다’였어요. 때로는 지금 일이 처음 생각했던 목표에서는 멀리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지원 사업 실무가 너무 많기도 하고, 또 구체적인 미디어 제작 활동을 직접 하고 싶기도 하고 말이죠. 웹진 <ACT!>만들면서 해외의 독립채널 운동 사례나 새로운 장비, 기술 정보를 접하다 보면, 이런 걸 어떻게 한번 써먹어 볼까 자연스레 고민이 되지요. 아직은 발등에 떨어진 일만으로도 벅차지만, 그래도요!”


‘누구나 무슨 얘기든 할 수 있는 채널’을 만들고 싶다던 개미 씨의 첫 마음은 아직도 사그라지지 않은 것 같았다. 사람들을 만나고, 지원 업무를 하고, 공부하면서 오히려 더 깊어졌다. 그 마음이 ‘마을공동체 미디어’라는 이름으로 ‘민중의 채널’을 이미 현실로 만들고 있었다.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돌, 밥, 이 /2015.4

[직업환경의학의가 만난 노동자건강 이야기]

돌, 밥, 이

공유정옥


몇 년 전, 사업장 보건관리 대행차 경기도에 있는 어느 채석장에 출장을 나갔다. 점심시간에 맞추어 구내식당에 들어가 앉았다. 이윽고 오전 업무를 마치고 잔뜩 허기진 노동자들이 들어왔다. 대개 오륙십대 나이로, 키는 작지만, 몸이 제법 다부지다. 방금 씻고 온 두 손과 얼굴을 빼고는 여기저기 하얀 돌 먼지투성이다.

안녕하세요, 건강 상담하러 오세요, 나랑 간호사가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나긋나긋하게 말하면 못 듣기 때문에 크게 말해야 한다. 채석장 소음 때문에 청력이 다들 나이에 비해 떨어져 있다. 하지만 씩씩하게 인사해도 대부분 힐끗 쳐다만 보고 배식대로 직행한다. 가끔 낯익은 ‘단골손님’들은 눈인사를 건네기도 하지만 발걸음은 배식대로 향한다.

채석장 식당에는 제육볶음 같은 고기반찬이 꼭 하나씩 나온다. 힘을 많이 쓰는 사업장에 가면 늘 그런 것 같다. 밥 푸는 모습을 본다. 배가 몹시 고플 텐데 누구도 서두르지 않는다. 차분히 밥을 퍼서 쌓아올린다. 멀리서도 식판 위로 하얀 밥 봉우리가 보일 정도다. 한 걸음씩 움직일 때마다 식판 위에 김치 봉우리, 나물 봉우리, 제육볶음 봉우리가 하나씩 소복하게 쌓인다.

일단 밥을 받아서 좋은 자리를 찜해 놓으면 몇 분이 우리에게 온다. 혈압만 재고 벌떡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로는 혈당도 재고 여기저기 아픈 데 얘기를 좀 하기도 한다. 하지만 상담은 길어야 삼사 분을 넘기 어렵다. 증상을 이것저것 듣고 나서 뭔가 얘기를 좀 해볼라치면 밥이 식는다고 야단이다. 식사 다 하신 다음에 다시 오시라고 보내드리는 게 상책이다. 그러고는 십여 분 동안 우리는 그들이 밥 먹는 모습을 지켜보며 기다려야 한다. 하도 맛나게 먹으니, 어떨 땐 나도 모르게 넋을 놓고 바라보기도 한다. 기다리는 동안 이따 점심은 뭘 먹을까, 여기 음식이 좀 남으면 그냥 여기서 때우면 좋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한다.


밥을 먹는 동안 얘기를 나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식판에 수저가 달그락거리는 소리, 김치 씹는 소리, 후루룩 국물 마시는 소리 속에서 낮게 웅성거리다가 한 번씩 웃는 소리, 기침 소리가 나는 정도다. 단조로운 소음인지라 가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때가 있다. 텔레비전을 보다가 음소거 단추를 누른 것처럼. 그럴 땐 밥을 씹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들이 더 소상히 보인다.

그를 본 것도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유난히 깡마른 몸집에 얼굴이 작아서, 대추씨라 불리던 옛날 코미디언을 연상시키는 외모의 아저씨였다. 그가 밥을 씹는 모습이 어딘가 남달라서, 왠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찬찬히 지켜보니 그는 남들보다 오래오래 씹었다. 씹을 때마다 아래턱이 유난히 많이 움직였고, 두 볼은 깊이 꺼졌다 나오곤 했다. 옛날 우리 할머니가 틀니 없이 밥을 씹을 때 보았던 모습이었다. 밥을 다 먹은 뒤 물 한 잔으로 입을 오래오래 헹구는 것 하며, 상담하는 내내 쯥쯥거리며 입 청소를 하는 것조차 꼭 우리 할머니 같았다.

그는 어금니가 없었다. 앞니부터 송곳니까지만 용케 남아있었다. 어금니가 받쳐주지 못하는 두 볼은 움푹 패었고, 가뜩이나 작은 얼굴은 더욱 작아 보였다. 입안에 혀가 의지할 곳이 없으니 말할 때마다 바람이 샜다. 가족은 없고, 학교는 못 다녔으며, 여기 일이 힘들긴 하지만 혼자 사는데 궁할 정도는 아니라 했다.

하지만 그는 어금니가 없었다. 오십 대 중후반의 나이에, 요새 그 흔하다는 임플란트는 물론이고 틀니도 없었다. 돈이 없어서 못 한 건지 불편할 게 없어서 안 한 건지 묻지 못했다. 어쩌다 어금니가 몽땅 빠진 건지도 묻지 못했다. 다만 그의 삶에 이를 잘 닦아야 할 이유나 충치 치료를 받으러 갈 생각 같은 게 자리 잡을 수 없었던 것만은 분명했다. 치과에 한번 가보시는 게 어떨까요? 넌지시 건넨 한마디에, 그는 입을 다문 채 배시시 웃어 보이고는 묵례를 하고 일어섰다. 그는 돌 캐는 노동자, 이가 없어서 밥을 오래 씹어야 하는 노동자다. 

[연구리포트] 누구를 위해 특성화고 현장실습은 존재하나 /2015.4

연구리포트

누구를 위해 특성화고 현장실습은 존재하나

최민(선전위원장,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현장실습으로 취업을 시작한 스무 살 A 씨 이야기

고3이던 작년 11월 현장실습으로 처음 취업했어요. 올해 2월에 졸업했어요.


작년 11월에 처음 나간 회사는 간단한 조립을 하는 곳인데, 쥐에게 전기 자극을 주는 실험 기구예요. 

그런 기구 만드는지는 모르고 간 거죠. 일은 편하긴 한데, 개인적으로 좀 너무 잔인한 거 같고, 월급도 적고.


그래서 친구가 있던 전기 스위치 만드는 곳에 갔어요. 12시간씩 맞교대하니까 너무 힘들더라고요.

저는 야간 체질이라 처음에는 안 힘든 것 같았는데 어느 순간 일하다 졸고 있으면 언니들이 깨워주고.


얼마 전에 그냥 나와서 아이스크림 가게 아르바이트하고 있어요. 몸은 덜 힘든데 월급은 팍 줄었죠. 

차라리 다시 교대하는 데로 가서 1~2년 바짝 일하고 대학에 가볼까 궁리 중이에요.


*면접 때 나온 이야기들을 모아 엮은 가상의 이야기입니다.  


특성화고 현장실습 들여다보기

특성화고등학교는 ‘소질과 적성 및 능력이 유사한 학생을 대상으로 특정분야의 인재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을 전문적으로 실시하는 고등학교다. 이전에 ‘실업계 학교’로 부르던 학교다. 2014년 기준으로 전국 36만여 명의 학생이 다니고 있다.

현장실습은 일 기반 실습 교육을 모두 칭하는 일반적인 말이지만, 여기서는 주로 3학년 2학기에, 졸업 후 채용을 약속하고, 등교 대신 출근하는 형태의 현장실습을 말한다.

2014년 1월 20일 충북에서 현장실습 중이던 한 학생이 자살했다. 자살하기 며칠 전, 동료에게 얼차려를 당하고 뺨까지 맞았다. 폭력적인 직장 문화가 문제였지만, 전자 기계 전공 실습을 위해 나간 그가 그런 모욕을 참아가며 하던 일은 육가공품 포장이었다.

2014년 2월 10일 울산에서 폭설로 공장 지붕이 내려앉아 사망한 노동자 가운데 현장실습생이 있었다. 현장실습생에게 금지된 야간 근무 중이었다는 성토가 이어졌지만, 야간 근무만 문제였을까? 오히려 장시간 노동해야 급여를 더 받을 수 있고, 대다수가 그렇게 고달프게 일해야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우는 것이 이 현장실습의 진짜 목적은 아닐까?

사실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의 사망이나 사고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에서 2005년 ‘간접고용’ 형태의 현장실습이 늘어나면서 현장실습생들의 노동 인권침해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는 실태조사를 발표하면서 공식적인 문제 제기가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교육부가 2006년 실업계고 현장실습 운영 정상화 방안을 발표하며 현장실습의 대상과 시기를 제한하였다.

그러나 2008년 학교 자율화 정책에 따라 정상화 방안이 폐지되고 취업을 점점 강조하면서 다시 현장실습 시기가 확대되었다. 결국, 2011년에는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2교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던 현장 실습생이 과로에 의한 뇌출혈로 쓰러졌다. 2012년에는 울산항만 공사 현장에서 작업선이 전복되면서 함께 타고 있던 현장실습생이 사망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현장실습 표준협약서 개정, 노동관계법 교육 의무화, 학생 안전 강화, 실습 감독 강화 등 제도적 보완책이 제안됐지만 비극은 되풀이되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땜질식 개선안을 더 고민하는 대신, 현장실습 제도 자체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때가 아닌가 한다. 그런 질문에 대한 대답 속에서 가장 적절한 대안을 찾기 위해서다.

대체 지금의 현장실습은 대체 무엇을 목표로 굴러가고 있는가?

이렇게 문제가 많은 현장실습인데, 문제 제기가 수년째 계속되고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굳건하게 유지되고 굴러가고 있는 것일까?

어긋난 단추는 어디에 있으며, 문제의 해결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특성화고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의 여러 주체를 직접 만나, ‘현장실습’을 둘러싼 각 주체의 목적과 필요, 인식을 확인하고, 이 목적과 필요, 인식과 현실이 어떻게 어긋나고 있는지 살펴보려고 했다.

이를 위해, 2014년 9월부터 12월까지 현장실습생(졸업생 포함) 5명, 동료 노동자 2명, 교사 2명, 교육청 장학사 1명, 사업주 2명을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분석하였다.


결과 1. 교육이라는 거짓말

교육부는 특성화고 현장실습의 목표를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기술을 산업현장에서 적용하고 다양한 직업체험을 통해 현장적응력을 기르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면접 참가자들은 이런 목표에 대해 회의적이다. 현장실습은 “교육에 가깝다고 생각하며, 교육적 효과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응답했던 교육청 장학사 역시, 실제로는 “학생들은 아르바이트해서라도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고, 기업들은 싼 노동력으로 이윤 추구의 목적이 강하다.”라고 시인했다.

특성화고 학생들의 파견형 현장실습에는, ‘실습’이라고 이름 붙일만한 교육 프로그램이 전혀 없었다. 사업주에게 현장실습생을 선발하고 일을 시키는 과정이 신입사원을 뽑아 교육하는 과정과 전혀 다르지 않다. 사실상 현장에서는 ‘현장실습’, ‘현장실습생’이라는 용어도 거의 사용하지 않고, 동료 노동자들 사이에서나 현장실습생 서로 ‘취업생’이라고 부를 정도로 교육적 의미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렇죠. 일반사원 체계나 똑같은 거죠, 말만 실습이라 하지. 말만 그렇지 일반 사원이랑 똑같지. 일반 직원 채용하고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 사업주 2

질 : 실습생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같은 게 따로 있나요?

답 : 교육프로그램… 여기 회사에서는 아직 없는 것 같아요. 만들어졌으면 좋겠는데… - 동료노동자 2

대부분 현장실습인데 저희는 현장실습이랑 취업이랑 같은 개념으로 받아들이니까. 두 개를 그냥 아예 현장실습이 취업이구나. 선생님들도 다 현장실습이라고 말을 하시는데 저희가 받아들이는 건 취업으로 받아들여요. - 실습생 4


결과 2. 취업이라는 과장

현장실습에서 교육의 의미가 퇴색된 지 오래라면, 현장실습이 특성화고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생애 첫 일자리로의 취업 과정은 되고 있나? 그렇지 않다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현재의 파견형 현장실습은 실습 종료 후 취업으로 연계되는 것을 기본적인 목표로 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현재 직장 경력이 5년 차라는 한 노동자는 지난 5년 동안 졸업 이후까지 쭉 이어서 직장 생활을 해 나간 현장실습생은 오직 한 명 봤다고 대답했다.

고3 애들 들어오면 뭐하러 저렇게 고3 애들 많이 뽑는지 모르겠다. 좀 아줌마들 뽑아서 오래 있을 사람을 뽑았으면 좋겠는데 고 3들은 금방 나가니까. 아 또 금방 언제 나갈지 모르는데 몇 명이 남겠나?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 동료노동자 1

현장실습생이 직장에 오래 남아있지 못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군 입대라는 현실적인 장애도 있고, 취업 과정 자체가 장기적으로 일할 자리를 찾기보다 ‘일단’, ‘경험 삼아’ 나가는 경우도 많아 일자리가 실습생들에게 매력을 전혀 주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 회사에 대해서는 사실 베일 속이고. 본인이 기대한 것과는 다를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그걸 학교에서는 그냥 네가 기대치를 낮춰라. 이런 식이에요. - 실습생 1

여기는 3D 업종이라고 보시면 되잖아요 사실은. 좀 더 잘 해주면 좋겠지만 여기는 여기만의 규칙이 있는데. 19살이 졸업하고 여기 와서 뭐하겠어요. 심부름이에요. 사실 어디 가도 심부름이잖아요. - 사업주 1

현장실습이 교육이 아니라 취업이라고 할 때도, 그 취업은 자기 발전의 기회를 제공하고, 스스로 선택하는 자신이 원하는 일자리에 취업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기피하는 일자리에 최하위 노동자로 취업하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결론 3. 순응하는 근로자를 만드는 현장실습

그럼 제대로 된 교육 기회도 제공하지 않고, 실망스러운 취업 경험이 될 뿐인 이 파견형 현장실습에서 현장 실습생들이 배우는 것은 무엇일까. 사업장의 질서와 속도에 익숙해지는 것, 철드는 것, 세상살이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배우는 것, 한 마디로 ‘순응하는 근로자’가 되는 것으로 보였다.

현장실습에서 (배우는 게) 몇 개는 되는 것 같아요. 애들이 철이 좀 없는데, 갔다 오면 약간 들어서 오는 것 같은 느낌이… - 실습생 5

실습생 2 : (반죽을) 계속 치니까 쉬는 시간도 없고. 학교 같은 경우는 한 가지 일하고 짬 나는 시간이 한 시간 두 시간 돼요. 그때 좀 애들이랑 얘기도 하고 장난치면서 하면 어느 정도 나와요. 그렇게 쉬엄쉬엄하잖아요. 근데 회사 같은 경우는 쉬엄쉬엄 못하니까, 계속 돌아가니까, 레일이. 계속 일하는 거죠.

실습생 3 : 근데 그 힘든 게 빠르면 일주일이고요, 길면 2주 정도면 그 힘든 게 적응되고 그 후부터는 그냥 당연하다는 듯이. 일상생활처럼.


결과 4. 현장실습을 유지하는 구조

마음에 들지 않고, 자기 발전의 기회가 제공되지 않는 일자리가 특성화고 현장 실습생, 혹은 특성화고 졸업생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다. 젊은 세대에 대한 착취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열악해진 청년 노동 전반이 그렇다. 그런 맥락 속에 현장 실습생들의 일자리, 현장 실습이 택할 수 있는 일자리도 놓여 있다.

면접했던 특성화고 졸업생은, 현장 실습을 나갔던 11월부터 다음 해 9월까지 5번 직장을 옮겼다. 저임금 불안정 일자리가 대세인 가운데, 현장실습은 젊은 노동자를 억지로 인기 없는 일자리로 공급하는 파견 업체 역할을 맡는 것이다.

게다가 현장 실습생들에게는 20대 노동자들의 일반적인 어려움 외에 특수한 문제도 있다. 직업교육훈련 촉진법은 현장실습을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이주 노동자가 사업장 변경이 금지되어 있어 부당한 대우를 참고 견디는 것, 병역특례노동자가 업체에 쓴소리 한 번 하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 사정이다. 의무적으로 견뎌야 하는 현장 실습은 직장 선택과 퇴사의 자유를 빼앗고, 부당한 상황을 참도록 강제한다. 현장실습부터 병역 특례로 이어지는 경우에는 병역 특례 노동자가 가진 부담감을 똑같이 지게 된다. 학생이기 때문에, 학교나 후배들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참고 견뎌야 한다는 압력도 있다. 청소년이라서, 사회 경험이 적기 때문에 당하는 차별이나 불편함도 있다. 여전히, 특성화고 학생들은 청소년 중에서도 사회적 자본이 불리한 경우가 많다. 사업주들은 이직이 쉽지 않은 먼 지방의 실습생을 선호한다.

현장 실습생들의 이런 약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업주도 많다. 3개월 수습으로 일하게 한 뒤, 졸업 후 다시 수습 기간을 적용하거나, 정규직들이 꺼리는 업무를 실습생에게 맡기는 경우도 있었다.

적절하지 못한 일자리, 부당한 처우에 방패가 되어 주어야 할 교사와 학교는 오히려 학생들을 현장실습으로 내몬다. 취업률 경쟁 때문이다. 취업률 경쟁은 교육청, 학교, 교사, 최근 도입된 취업 지원관에 이르기까지 전방위로 벌어지고 있다. 그 결과는 12시간 주야 맞교대 업체나 전공과 무관한 사업체까지 학생들을 내보내는 현재의 파행적 현장 실습이다. 특성화고 취업률이 1년 만에 14.3%나 증가했다고 선전했던 2012년 서울 지역 취업 기업 1위는 군대, 2위는 롯데리아였다. 이후 4대 보험 적용 사업장 취업률을 따로 발표하도록 하고 있지만, 쥐어짜기 식 취업률 조사를 강요한 취업률 경쟁 체제는 지속되고 있다.

‘취업률 제고’만 목표로 수십 년간 흘러온 특성화고 현장실습은 쉽게 대안을 말하기 어려운 주제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렇게 엉망인 현장실습 몇 달 하는 것보다는, 앞으로 당당한 노동자로 살아가는 데 밑거름이 될 노동 인권교육이 우리 특성화고 학생들에게 더 필요하리라는 확신이 든다.

* 본 연구는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직업환경의학교실 지원으로,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에서 실시하였습니다.

[현장의 목소리] 길었던 여정의 마무리, 그리고 새로운 출발 - 동희오토 산재인정투쟁 /2015.4

현장의 목소리

길었던 여정의 마무리, 그리고 새로운 출발

-동희오토 황재민 씨 산재인정투쟁 승리와 지회의 계획


동희오토 사내하청지회 사무장 최진일


<<황재민 씨 산재사건 경과>>

 2013. 7. 19   뇌경색 발병, 야간 중식시간에 식당에서 쓰러짐

 2013. 8. 18   산재 최초요양신청 불승인 (사측 종용으로 증빙자료 없이 졸속처리)

 2014. 5.       산재 심사청구 불승인

 2014. 5. 20    부인 김려화씨 공장 앞에서 아이 업고 1인 시위

 2014. 6.        금속노조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와 만남

 2014. 7. 1     산재 재심사 청구 최종 불승인

 2014. 7. 15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 투쟁 돌입

 2014. 9.        산재 행정소송 접수

 2014. 12. 4    사측과 보상 합의, 대신기업이 보상금 지급과 산재 협조 약속

 2014. 12. 11   근로복지공단과 담판, 재조사 결정

 2015. 1. 9      대신기업 현장조사

 2015. 2. 9      근로복지공단 대전질판위원장 면담

 2015. 2. 16    대전질판위 항의방문 (노조참여보장 요구)

 2015. 2. 23    대전질판위에서 산재로 승인


보령지사 면담을 통해 전면적인 재조사가 결정된 이후 지회는 일체의 관련된 자료를 제출했다. 동희오토 의장라인의 편성효율, 타 공장과의 노동강도 비교, 열악한 작업환경 및 스트레스에 대한 증거자료와 진술서, 사고 당일 현장 온도와 식당 온도에 대한 증빙 자료, 사고 정황에 대한 진술서 등 상당한 분량의 자료가 준비되었고 여기에 의학적 소견들이 추가로 준비되었다.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로부터 업무 연관성이 있다는 소견을 확보하고 내과 전문의로부터는 기존의 심부전 진단이 의증에 불과하다는 소견을 확보했다. 과거 정상소견을 보인 검사기록도 추가했다.

이후 대신기업에 대한 현장조사를 거쳐 질병판정위원회가 열렸다. 이 과정에서 지회는 노동조합의 공식적인 참여를 보장받고자 많은 노력을 했지만 끝내 관철하지는 못했다. 현장조사 과정에서는 금속노조 조합원을 현장에 들여보낼 수 없다는 사측의 결사적인 반대가 문제였고, 질판위에서는 ‘본인과 가족, 법정대리인이나 관련 전문가’만이 참석해 의견을 진술할 수 있다는 규정이 문제였다. 불합리한 똥고집을 부리는 사측을 통제할 규정은 없지만, 노동조합의 참여를 가로막을 규정은 넘쳐났다.



1년 7개월 만의 승인





질병판정위원회는 결국 기존 판정을 번복하고 황재민 씨의 뇌경색을 산재로 인정했다. 주당 60시간을 넘지 않았지만 주야 맞교대로 인한 만성 과로가 인정되었고, 추가 제출된 의료기록으로 기왕증이 부정된 것이 핵심적인 이유였다.

“과로의 인정기준을 초과하는 근로시간은 확인되지 않으나, 심방세동과 심부전에 대한 의무기록이 명확하지 않아 기왕력으로 확진하기 어려워 신청 상병에 영향을 끼쳤다고 볼 근거가 미약하고, 온도, 조도, 소음 등의 근무환경, 높은 업무편성률, 신청인의 주야맞교대 근무형태 특히 주간근무에 비하여 더 많은 육체적·정신적 부담을 발생시킬 수 있는 야간근무를 주간근무와 동일하게 수행하여 만성적인 과중한 업무에 노출되었을 것으로 판단되어 신청 상병은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 - 업무상질병판정서 중

당사자인 황재민 씨와 가족들은 그동안의 고통과 좌절을 뒤로하고 삶의 희망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동희오토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여타 완성차공장보다 월등히 높은 노동강도로 만성적인 과로 상태에 놓여있다는 것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 그동안 수많은 산재가 은폐되어 온 동희오토의 현실이 명확히 드러난 것이다. 현장의 노동자들은 산재승인에 박수를 보냈고 끈질기게 싸우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희망은 있다는 자신감을 확인했다. 지회는 비참한 현실을 바꾸어 내고 새롭게 민주노조의 영향력을 확대할 일말의 가능성을 획득했다.

이제, 원인과 싸워야 할 때

황재민 씨 사건은 비인간적인 노동강도로 인한 산재였고 일단 이번 승인으로 재해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회사와 공단이 지도록 만들었다. 이제 남은 것은 다시는 현장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 그리고 노동자들이 더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현장을 만들어 가는 일이다. 지회는 황재민 씨 사건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근골격계질환 산재인정을 중심으로 하는 건강권 확보투쟁을 벌이기로 했다. 근골격계 질환이 동희오토의 노동강도 문제를 가장 명확히 보여주는 사안인 동시에 지금 당장 가장 많은 노동자가 고통을 겪고 있는 지점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상 황재민 씨 사건이 처음으로 겪어본 산재 사건인 지회에는 너무나 커다란 과제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세부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과 함께 건강권과 산재 문제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해결능력을 키우는 일부터 시작했고, 황재민 씨 산재 투쟁의 과정에서 아낌없이 힘을 보태준 한노보연 동지들이 여전히 함께 해주고 있다.



<한노보연과 함께 테이핑 요법 교육 중인 조합원들>


단계론적 사고를 뛰어넘는 돌직구를 던져보자!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는 1,500명 공장에서 단 6명의 조합원만으로 이루어진 극소수노조다. 단체협상은커녕 전임자조차 하나 없이 전 조합원이 주야 맞교대 근무를 하고, 그 와중에 잠을 줄여가며 노동조합 활동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지회에 앞으로의 근골격계 투쟁, 건강권 쟁취투쟁은 어찌 보면 무모한 도전이다. 그동안 민주노조의 깃발을 세우고 사수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시간을 보냈고, 전원 해고와 장기간의 복직 투쟁을 거치면서 건강권의 문제는 어느새 지회 시야 밖으로 밀려나 있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었고 노동조합을 안정화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산재 문제는 우리도 남들처럼 ‘번듯한’ 노동조합이 된 후에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우리는 황재민 씨와 가족들에게도 몇 번이나 이런 말을 했다. ‘노동조합이 힘이 없어서 뭐 하나 장담할 수 있는 게 없어 미안합니다.’ 라고. 그런데 연대해준 동지들은 오히려 우리에게 이렇게 물었다. ‘번듯한 정규직노동조합들은 이제 이런 투쟁 않으려고 하는데, 왜 그럴까요?’ 아직 정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어쩌면 당장 눈앞에 두개골이 함몰되고 좌반신이 마비된 황재민 씨의 처절한 모습이 우리가 ‘번듯한’ 노동조합에 대한 허상을 깨고 ‘닥치고 투쟁’하도록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지회가 동희오토 현장에 민주노조를 세워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가장 큰 이유도 다름 아닌 살인적 노동강도의 문제였다. 노동조합을 만든 이유였던 것이 이제는 ‘나중에 생각할 문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다행히 지회는 황재민 씨 산재인정투쟁을 통해 자신을 스스로 가두었던 틀을 깨고 투쟁하고 승리하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가진 것이 없어서 잃을 것도 없는 6명의 조합원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는 예측할 수 없지만, 이 경험은 지회의 앞길에 분명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어느덧 우리는 ‘노동조합’에서 ‘노동’보다 ‘조합’이 커져 버린 시대를 살고 있다. 이제부터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가 만들어나갈 근골격계 투쟁은 부디 ‘조합’보다는 ‘노동’에 힘을 싣는 과정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마지막으로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황재민 씨 산재인정투쟁에 함께 한 금속노조 충남지부 김창헌 노안부장과 갑을오토텍 지회 안재범 동지를 비롯한 충남지부 동지들, 금속노조 노안실장과 한노보연 동지들에게 특별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동지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동희오토 본관 앞 무재해현황판을 쇠파이프로 부술지 돌로 부술지 논의하고 있었을 것이다.

[특집]3. 안전은 서비스가 아니라 우리의 권리/2015.4

안전은 서비스가 아니라 우리의 권리

존엄과안전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김혜진 인터뷰


선전위원회


참사 1년이 되도록 책임 있는 진실 규명은 요원하고, 안전한 사회 건설을 위한 행동은 걸음마 단계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존엄과안전위원회 김혜진 공동집행위원장을 만나 진상 규명과 안전 사회 건설을 위해 나아갈 바를 들었다.


최근 정부가 1주기가 다가오니, 인양 가능성과 배·보상액 정보를 흘리면서 동시에 세월호 진상조사 특별위원회의 역할을 축소, 제한하는 시행령(안)을 발표하고 나서 광화문이 다시 투쟁의 현장이 되었다. 현재 상황에 대해 설명 부탁드린다.


3월 27일 정부의 특별법 시행령(안)이 발표됐다. 이 안은 전체 특별진상조사위원회 위원 수는 줄이고 공무원 참여는 높여 정부가 진상조사위원회를 직접 관장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안전사회위원회는 ‘과’ 로 격하하고 진상조사의 범위를 해상사고로 국한시켰다. 독립적인 진상조사위원회를 통해 철저히 진상을 밝히고, 참사가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데 초석이 되길 바랐던 가족들의 바람을 짓밟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배·보상 얘기를 흘렸다. 가족들과 소통이 전혀 없는 일방적인 발표였을 뿐 아니라, 국민 성금과 개인이 가입한 여행자 보험 액수까지 보태 금액을 부풀려 발표하니 가족들이 농락당한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가족들이나 국민대책회의는 그 동안 늘 철저한 진상 규명과 연계하고, 전체 참사 과정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이 모두 제대로 치유 받을 수 있는 배·보상안을 내놓으라고 요구해 왔는데 이런 정신은 싹둑 잘라버리고 돈 얘기만 내놓고 있다. 게다가 배·보상에 정부 돈은 쓰지 않겠다는 발상은 참사에 정부 책임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어서 가족들은 전혀 받아들일 수가 없다.


이런 상황이라 차분한 추모의 1주기는 불가능하게 되었다. 세월호 인양과 정부 시행령 폐기를 요구하며 가족들이 광화문에서 노숙 농성을 하고 있다. 4월 18일 범국민대회로 계속 투쟁이 이어질 것이다.


참사 이후 안전한 사회에 대한 열망이 높아졌고, 과제들도 많이 제시되었는데 가장 시급하게 생각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시급한 걸로 따지면 월성 1호기 핵발전소 수명 연장 문제인 것 같다. 수명 연장 결정 과정이 투명하지도 않았고, 위험성에 대해서 제대로 널리 알려지지도 않은 채 결정됐다. 세월호와 똑같이 경제성, 효율, 비용이라는 이름이 안전, 생명의 가치를 압도해버린 것이다.


근본적으로 안전이 ‘권리’ 라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뿌리내려야 한다. 그래야 경제성의 논리로 안전 문제를 재단하려는 시도를 막을 수 있다. 안전이 우리의 권리이고 그에 상응하는 정부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야, 세월호 참사에서 정부가 구조를 방기했던 것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제도적으로는 안전을 위한 규제를 정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가 안전대진단을 하고 안전 혁신 마스터플랜을 내놓았다고 하지만 안전하기 위한 규제에 대한 검토와 정상화는 없다. 정부가 스스로 참사의 원인이라고 지목했던 선박 과적 문제나 선박 수직 증축 완화, 관리감독 외주화도 규제가 강화되지 않았다.


세월호 진실 규명과 안전사회 건설 노력은 함께 갈 수 밖에 없다. 사고 원인 중 관리감독이 제대로 되지 않은 이유, 과적을 한 이유, 고박이 제대로 되지 않은 이유 그리고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물어야 한다. 왜 해경에는 구조장비가 없었는지, 그들은 왜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 했는지, 그렇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고 대안은 무엇인지를 물어야 한다. 참사의 구조적 원인에 대한 투명한 규명이 안전 사회 건설 제안과 함께 가는 이유다.


국민대책회의가 가족협의회 등과 함께 416 연대로 조직 전환을 진행하고 있는데, 의미와 앞으로 과제가 궁금하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가족협의회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스스로 생겨난 풀뿌리 조직들이 함께 하게 된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곳곳에서 자발적으로 모여 추모하고 슬퍼하고 기억하는 것에 더해 집단적이고 힘 있는 대응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판단에서 비롯했다. 개인과 단체들이 참여하는 회원 조직으로 416 연대를 만들어, 서로 실천을 독려하는 조직을 만들려고 한다.


416 연대에서 안전이 권리라는 인식을 확산시키기 위해, 416 인권 선언을 대중운동으로 만들어 가려고 한다. 현재 304명의 제정위원을 모으고 있고, 이 제정위원들이 함께 토론하면서 인권 선언 제안문을 채택한다. 이후 이 제안문과 참사 이후 과제를 주제로 304회의 토론을 조직하고 그 결과를 모아 내년에 인권 선언을 제정하는 것이 목표다. 우리 사회 다양한 구성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안전이 권리라는 인식을 구체화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지역에서 안전 관련 조례를 제정하거나,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안전할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활동을 벌이는 것처럼 행동으로, 운동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416 연대에도 안전사회위원회가 따로 구성될 예정인데, 안전사회위원회의 활동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예정인가?


참사 이전과는 다른 세상을 만들자는 생각이 있었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존엄과 안전위원회 차원에서 ‘위험사회를 멈추는 시민행동’ 을 함께 해왔다. 핵발전소 문제, 반올림과 함께 한 전자산업 노동자 건강권 문제, 노후 산단 안전 문제 등을 알렸다. 기업 살인법 논의도 함께 하고 있어 올해 본격적으로 제정 활동이 있을 예정이다. 시민과 노동자가 위험을 알고 그 위험에 대한 결정에 참여하고 통제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야 하는데 이를 현실에서 어떤 제도로 만들지, 어떻게 대중적으로 논의하며 만들지가 숙제다. 풀뿌리 시민안전위원회 조직, 조례 제정 등이 운동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특집]2. 세월호 참사가 남긴 노동안전 과제/ 2015.4

세월호 참사가 남긴 노동안전 과제


이진우(운영집행위원)


한국은 대형 사고를 수차례 겪으면서도 공공의 안전, 시민의 안전, 노동자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진정성 있는 대책을 세워본 적이 애석하게 없다. 그렇게 된 데는 여러 원인이 있다. 빠름을 추구하는 생활방식으로 사고도 빠르게 잊혔기 때문이고, 정부부처는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아닌 책임자에 대한 미온적 처벌 등의 임기응변식 대책만을 내놓았으며, 전문가 수준에서도 재난이나 안전에 대한 논의가 그다지 진척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 세월호 사고가 우리 사회에 던진 충격이 큰 만큼 곳곳에서 ‘안전’ 에 대한 논의가 다양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안전한 사회로 가기 위한 노동안전 과제들은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세월호 사고를 통해 드러난 구조적 문제

: 안전규제 완화


세월호 참사는 규제완화의 위험성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노후선박 연령 제한 기준, 안전 교육 및 심사절차 등 해상 안전에 꼭 필요한 조치들이 지속적으로 삭제 또는 축소되어 왔다는 사실이 참사 이후 알려졌다. 2009년 선박안전법이 개정되면서 선장이 과적‧과승을 하면 선박소유자에게도 벌금형을 부과하던 양벌규정도 완화되었다. 청해진해운은 노후선박을 수입해, 선박 개조를 하고, 더 많은 화물을 싣기 위해 평형수를 뺐다. 비용절감을 위해 비정규직을 늘려 왔고, 선원들의 안전 교육은 안중에도 없었다. 결과적으로 연안여객선의 안전관리는 엉망이었다.


안전규제의 완화는 선박분야만의 특수한 것이 아니다. 규제는 ‘악’ 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조성되면서 자본 친화적인 규제개혁이 전 산업에 걸쳐 단행되었다. 이명박 정부 아래에서는 선박, 철도, 항공기 등의 사용 가능 연한을 폐지하는 안전 규제 완화가 진행되었다. 박근혜 정부는 안전 관련 규제 완화를 더욱 광범위하게 단행하여,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철도산업 규제 완화 등)과 4차 투자활성화대책(의료산업 규제 완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각 부처별로 앞 다투어 규제를 폐지하기 시작했고, 발전을 저해하는 ‘암 덩어리’ 에 불과한 안전규제는 무차별적으로 사라져 갔다. 이제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형 사고는 언제라도 발생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 생명·안전 업무의 외주화·민영화


세월호 사고에서 안전 업무의 외주화는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났다. 세월호 점검을 담당한 한국선급은 정부를 대행하여 선박검사를 하는 비영리 사단법인이었다. 해운법에 따라 승객과 화물 적재 등 안전 관리를 총괄해야 하는 해경은 안전 관리업무를 한국해운조합 운항관리실에 위탁하였다. 수난구호의 경우는 2012년 수난구호법이 전면개정 되면서, 정부는 ‘언딘’ 과 같은 “수난구호협력기관 및 수난구호민간단체와 협조체제를 구축” 하게 되었다. 구난 능력은 큰 의미가 없고, 값이 싼 구난업체가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세월호 선원들 중, 선장은 1년짜리 계약직이었고, 핵심 선원 17명 중 12명이 비정규직이었다. 청해진 해운에게 선장과 선원은 회사의 인건비를 축내는 비용으로 간주되었고, 임금을 적게 줄 수 있는 계약직을 채용했다. 이런 고용구조에서는 안전훈련을 한다 하더라도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고, 선원들에게 책임감을 기대하거나 요구하기도 어렵다. 자본은 정부를 등에 업고 비용절감을 위해 생명·안전 업무를 외주화한 것이다.


정부는 규제완화뿐만 아니라 안전에 대한 책임까지 놓아버리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국가공공부문 민영화는 큰 틀에서 규제완화 정책의 일부이다. 철도, 의료 등 각종 영리행위가 금지되어 있던 공공서비스 분야에 민간 자본의 투자나 운영 참여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전을 책임져야할 정부가 이번에는 안전 분야에까지 민간 기업의 참여를 장려하겠다는 ‘안전 민영화’ 방안을 내놓았다. 지난 3월 30일 발표된 ‘안전혁신 마스터 플랜’ 에 의하면, “안전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한 안전투자와 민간 참여를 활성화” 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방안이다. 게다가 정부는 “재난취약계층을 위한 다양한 보험 상품 개발을 추진” 하겠다고 발표해 안전 관련 업무의 외주화·민영화뿐만 아니라 재난사고의 책임마저 회피하려 하고 있다.


: 책임자에 대한 미온적 처벌


세월호가 침몰한 데에는 안전을 도외시한 채 이윤을 위해 무리한 운행을 강요한 청해진 해운이 큰 원인이었던 것은 명확해 보인다. 검찰과 경찰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을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로 지목했고, 검찰은 그에게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하겠다는 말을 흘리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의 법체계 안에서 그에게 세월호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유병언의 장남 유대균 씨는 배임 및 횡령 혐의로 징역 3년, 김한식 청해진 해운 대표는 업무상 과실치사상 및 배임 및 횡령 혐의로 징역 10년, 이준석 선장은 유기치사상죄로 징역 36년을 선고받았다. 사고가 일어났을 때 승객들을 구조할 수 있었던 이들은 1차 구조책임자인 선장 및 선원들이었다는 점에서 이들이 중형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납득하더라도, 구조적인 원인을 제공한 자들에 대한 형량은 너무 낮다. 회사의 안전정책에 대한 결정권을 기준으로 본다면 오히려 그러한 권한이 가장 없었던 계약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중형을, 권한이 가장 많은 이들이 가벼운 형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세월호와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기업이나 정부 관료가 안전이나 환경조치를 소홀히 해 인명과 환경에 큰 피해가 발생해도 기업이나 사업주, 정부 관료가 처벌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대형 재난사고 직후에는 책임자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컸지만, 실제 처벌로 이어진 경우는 드물며 처벌 수위 또한 낮았다. 502명이 사망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에서는 회장과 사장이 각각 징역 7년 6월과 7년을 선고받았을 뿐이다. 23명의 사상자를 낸 경기 화성 씨랜드 화재 참사 때도 수련원 대표가 징역 1년을 선고받았고, 192명이 사망한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참사에서도 기관사·관제사 등만 처벌받았으며, 대구지하철공사 사장은 무죄판결을 받았다. 하청업체의 산재사망 사고에 대해 원청업체 사업주가 책임을 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2013년 대림산업의 여수산단 가스폭발사고, 삼성전자의 화성 불산유출사고, 청주SK 폭발사고 등에서 원청 사업주는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러한 책임자 처벌로 과연 안전한 사회가 가능할까?



세월호 참사가 제기하는 과제

: 안전규제 후퇴에 영향을 미친 법제도, 정책 철폐


세월호 참사를 통해 우리는 한국에서 안전을 위한 규제는 후퇴되는 중이고, 곳곳에 널리 존재하고 있는 문제가 이번 참사에서 응축되어 드러났음을 깨달았다. 따라서 참사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안전을 사고하는 사회의 기본정책방향을 다시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 반드시 필요한 안전규제마저 완화시키는 기업 활동 규제완화에 관한 특별조치법, 행정규제기본법 개정안, 규제개혁위원회 등에 대한 조치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또한 지금까지 진행된 규제 완화도 재검토하여, 이윤이 아니라 안전 중심으로 개정해야 할 것이다.


: 안전위험업무/유해물질 취급업무 외주화 금지


안전위험업무와 유해물질 취급 업무의 외주화는 실제적으로 안전에 대하여 책임져야 할 원청회사가 안전 책임도 회피하고 비용절감 효과도 보게 된다. 이러한 외주화의 만연은 안전과 생명의 소홀로 이어진다. 사고 발생 시 하청회사, 노동자, 시민에게 책임이 전과하게 되고, 원청회사는 안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합법적 수단이 되고 있다. 따라서 권한과 책임이 함께 하기 위해서 외주화 금지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및 안전 관련 업무 종사자의 정규직화 방안도 모색해야 할 것이다.


: 안전을 지킬 충분한 인력 보장


충분한 인력의 확보는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치이다. 인력이 부족하면 안전수칙을 지키기도 어렵고, 과로로 인한 실수도 늘어나며, 사고가 발생했을 때의 대처능력도 약해진다. 안전인력을 보장하라는 것은 ‘안전혁신 마스터 플랜’ 에서처럼 안전 전문가를 별도로 육성하라는 뜻이 아니다. 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모두 사고 시 안전인력이다. 이들에게 작업장의 유해환경에 대한 알권리를 보장하고, 현장의 안전을 채워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은 사고발생에 대해서는 염두에 두지 않고 인력 최소화만 추구한다. 대구지하철화재에서는 당시 1인 승무제로 운행되고 있음에도, 기관사가 운전실에서 사령실과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불이 난 현장에 가서는 불도 끄고, 승객도 대피시켰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본인의 의무를 다하고, 처벌을 피할 수 있겠는가. 철도·지하철 노동조합들은 자동화를 이유로 계속해서 줄어드는 인력을 적정 수준에서 보장하기 위해 오랫동안 싸워왔다. 지하철과 철도를 막론하고 2인 승무가 유지되는 노선은 이제 일부에 불과하다. 시민과 노동자 모두의 안전을 위해 충분한 인력 보장은 필수이다.


: 노동자에게 위험작업을 중지할 권리를


현재 한국도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을 시 노동자가 작업을 중지할 권리가 법적으로는 보장되어 있다. 그러나 '작업중지권이 보장된다' 는 것은 법조문에 규정되어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실에서의 작업중지권은 노사관계에서 힘을 가진 노동조합만이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업중지권이 현실적으로 의미를 가지려면, 실질적인 권한 행사가 가능하도록 하는 법제도 정비뿐 아니라 조직화된 노동자의 힘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윤을 위해 노동자의 안전은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자본에 맞서 노동자들이 힘을 모아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지켜내야 한다.


: 안전을 지키기 위한 기업의 책임 강화


우리가 세월호 참사를 두고 꼭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면 피할 수 있는 죽음이 더 이상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기업의 무책임한 행태를 규제할 대책이 없는 무기력한 상황이다. 기업에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하는 힘은 노동자와 시민으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다. 안전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아 생명을 앗아가는 것은 분명 살인이다. 기업의 살인 행위에 응당한 처벌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논의가 현재 진행 중이다. 우리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이윤보다 생명이 먼저인 세상을 위해 시민과 노동자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 

[특집]1. 안전을 기업에 맡긴다? 세월호 1년, 정부 안전대책 평가 / 2015.4

안전을 기업에 맡긴다? 세월호 1년, 정부 안전대책평가


푸우씨(집행위원장)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1년이 다가오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동시대의 다른 어떤 사건보다 한국사회에 던진 충격과 파장이 컸다. 그만큼 세월호 참사를 빚게 한 다양한 형태의 원인진단과 해석, 대안이 각계각층에서 지난 1년간 쏟아져 나왔다. 노동안전보건운동진영을 비롯한 시민사회는 세월호 참사를 ‘자본주의 체제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빚어낸 결과로 규정하고, ‘규제완화 정책 폐기’, ‘민영화 반대’, ‘수명 끝난 원전 폐기’, ‘안전사회 건설’ 등 투쟁 요구와 기치로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이에 반해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를 ‘단순 해상사고’로 축소하며, 참사가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 진단과 진상규명 요구의 목소리를 애써 외면해 왔다. 이는 세월호 참사가 체제와 권력의 문제로 지목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전면에 떠오른 ‘안전’이라는 화두를 활용해 ‘안전산업 육성’ 등 자본시장의 활로를 개척하는데 주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세월호 참사 1년이 다가오는 지금, 정부가 그동안 내놓은 안전대책을 살펴보고자 한다.


거듭되는 참사


사건

규모

문제점

고양

종합터미널

창고 화재

(2014년 5월 26일)

8명 사망, 지하 1층

- CJ내부 인테리어 공사 중 방화셔텨와 스프링클러 등을 작동할 수 있는 긴급 전원 시설도 차단한 채 공사

- 다중이용시설 영업시간에 공사

- 공사를 관리 감독해야 할 책임자인 공사감리도 비상주 1인만 지정

전남

장성요양병원

화재

(5월 28일)

21명 사망,

8명 중경상

- 새벽에 화재 발생으로 5분 사망

- 4656㎡ 규모의 2층 별관 70~80대 환자 34명에 간호조무사 1명

- 발화 시점부터 소방대원 도착시간 6분 동안 화재로 인한 유독가스로 사망

- 스프링클러 없음.

- 요양병원의 인력기준, 화재안전 기준 2013년부터 요양병원의무인정제가 시행되고 있으나, 의료기관 평가 인증원은 요양병원 인력 기준에 관한 법을 지키지 않아도 모두 인증을 해주었음.

판교

테크노벨리

환풍구 추락

(10월 17일)

16명 사망,

11명 중경상

- 환풍구 안전 관리 규정 없음.

- 국과수 1차 감정결과: 용접불량, 지지대 절단, 앵커볼트 미고정 등 부적절한 시공형태

- 덮개 지지대 전체 앵커볼트 40개 중 11개 불량 시공

- 14년 2월 안전행정부가 ‘재난안전관리법 시행령’ 개정으로 공연법의 관리 대상 지역축제를 ‘예상관람객 3천명 이상’으로 명시. 14년 3월 소방방재청 개정 시행령에 따라 ‘지역축제장 안전매뉴얼’적용대상 축소

의정부

도시형 생활주택 화재

(2015년 1월 10일)

5명 사망,

125명 중경상

- 사무실로 활용해야 할 공간까지 주거용 원룸으로 개조해 월세 임대

- 2009년 도시형 생활주택 도입 이후, 여섯 차례에 걸쳐 외부 마감재, 건물간 거리 등 관련 규제 완화

- 건물 간 거리가 좁아 소방차 진입이 늦어짐

- 건물 외부 마감재가 화재에 취약해 불길이 빠르게 번짐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이후에도 안전사고는 끊임없이 발생했다. 판교 테크노벨리 환풍구 추락사고, 의정부 도시형 생활주택 화재, 글램핑 화재사건, 최근 발생한 신촌대로 싱크홀 사고까지 어느 것 하나 예외없이 기업의 이윤 추구를 우선시 하고, 이를 위해 정부가 규제 완화에 나선 결과이다. 결국, 세월호 참사 이후 ‘침몰은 자본이, 참사는 정부가’ 라고 진단한 시민사회의 언명이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거듭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참사 이후 벌어진 또 다른 참사들을 통해 아주 잘 증명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부에게서 안전에 대한 근본적, 철학적 성찰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앵무새처럼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관계기관의 철저한 수사를 바탕으로 책임자를 처벌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발표만을 주문처럼 되뇌었을 뿐이다.


급기야 박근혜 정부는 구체적인 안전 대책을 내놓지도 않은 채, 3월 19일 산업자원부 산하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안전산업발전방향’ 을 내놓았다. ‘안전’에 대한 투자는 없이, ‘안전산업’에 투자하여 ‘안전산업을 육성’ 하여 국가의 안전을 수립하겠다는 발상이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국민의 안전까지 기업에게 넘겨주겠다고 선언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 그리고는 지난 3월 30일 이완구 국무총리가 중앙안전관리위원회를 열어, 박근혜 정부의 [안전혁신 마스터 플랜]을 확정·발표했다.



5년간 30조원을 쏟아 붓는…….


안전혁신 마스터 플랜의 정책수립 방향을 발표했던 시기부터 속빈 강정이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컸었다. 정부는 작년 세월호 참사 이후 한 달여 만인 2014년 5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담화, 8월 26일 제5차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발표한 [국민안전 대진단 및 안전산업 발전 방안], 9월 23일 [안전혁신 마스터 플랜 기본방향 및 향후 추진계획]에서 안전 정책 대강의 얼개와 방향을 제시해왔다. 이런 정책방향 하에 3월 30일 모습을 드러낸 [안전혁신 마스터 플랜]은 ▲재난안전 컨트롤기능 강화 ▲현장 재난대응 역량강화 ▲생활 속 안전문화 확산 ▲재난안전 인프라 확충 ▲분야별 창조적 안전관리 등 5대 전략과 100대 세부계획으로 구체화 됐다.


이 과정에서 지난 1년간 박근혜 정부가 안전관련 대책을 언급할 때마다, 시민사회가 제기했던 ‘안전관련 규제 완화 중단’ 등 근본적 비판은 철저히 외면됐다. 기업투자 활성화, 경제 활성화 대책이라는 명목으로 등장한 각종 규제개혁이 가장 우선적으로 기업과 공공기관, 다중이용시설 등에서 필수적인 안전시설, 안전보건 인력 채용 등을 무력화해 위험을 증폭하고, 확산하는데 일조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귀를 막아버린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기 전인 작년 3월 20일 박근혜 대통령이 장관회의에서 ‘규제는 쳐부수어야 할 원수이자 암 덩어리’ 라고 선언하며 각종 규제를 임기 내 10%, 임기 말까지 20% 줄이겠다고 발표했으나,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직후 국민여론을 의식해 잠시 주춤했던 규제개혁이 현재는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결국 정부는 [안전혁신 마스터 플랜]을 통해 참사와 사고 등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보호와 예방에 관한 국가의 책무에 대해서는 사실상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국가안전처 중심의 ‘재난안전관리체계’ 를 확립해, 재난과 사고 등 상황에서 긴급한 구조, 구난, 지원에 효과적인 인력 확보, 지자체와의 협력, 대응 체계를 갖추겠다는 것을 ‘안전대책’ 의 전부로 일관하고 있다.



안전을 기업에게 맡긴다고?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

- 안전을 ‘산업화’ 하여 기업 이익을 보장하는 수순


물론 정부는 [안전혁신 마스터 플랜]에서 ▲생활 속 안전문화 확산 ▲재난안전 인프라 확충 ▲분야별 창조적 안전관리를 5대 전략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사실상 양념 식으로 곁들여진 안전대책에서 별다른 실효성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 3가지 과제에서 거론된 ‘민관합동’ 의 ‘민’ 은 사실상 기업이기 때문에, 그 우려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기업의 이윤보장을 위해 안전문제가 도외시 되었던 그간의 과정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성찰은 도무지 찾아볼 수 없어 더욱 그렇다. 작년부터 언급되기 시작한 정부의 안전산업 육성 방안에서도 방점은 ‘안전’ 이 아니었고, ‘안전산업’ 을 육성해 ‘수출’ 주력분야로 육성하겠다는 입장이 제기되어 왔다. 특히 올해 정부는 각종 안전진단과 점검 분야를 민간에 대폭 개방하겠다며, 상반기에 가스 안전진단 분야를 민간에 시범 개방한 뒤 교량, 터널, 댐 등으로 확대 적용하겠다는 계획을 제출해 사실상 정부(공공기관)의 몫까지 기업에게 내주겠다고 선언해 버림으로써 국가의 역할을 포기해 버렸다고 할 수 있다.


거론조차 되지 않은 노동안전


정부의 이번 [안전혁신 마스터 플랜] 중 ▲분야별 창조적 안전관리에는 ‘항공, 도로, 산업단지, 에너지, 철도’ 등이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한 노동안전(산업안전) 정책은 찾아볼 수 없다. 모든 분야에서 안전을 담당하고 책임지는 노동자들은 우선적으로 정규직화 되어야 하고, 시민과 노동자들에게는 위험 요인과 안전 관련 문제에 대한 기본적인 알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일선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위험을 예방하고 통제할 수 있는 작업중지권이 부여되어야 한다. 이런 과제는 노동자의 안전이 곧 시민의 안전과 직결된다는 문제의식 하에 세월호 참사 이후 시민사회가 끊임없이 주장하고 요구하던 내용이다. 그러나 이런 다양한 과제들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이완구 국무총리가 [안전혁신 마스터 플랜]을 발표하며 "안전관리는 재난 현장에서 얼마나 잘 작동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며, "이론이 아닌 실제적인 대응체계를 갖출 것" 을 주문한 것에 비추어 본다면, 위험상황을 1차적으로 마주해 이를 통제하고, 최소화할 수 있는 권한은 해당 노동자에게 부여되어야 한다.


‘안전대책’ 과 ‘대응매뉴얼’ 이 실제 작동할 수 있으려면, 그에 걸맞은 예산과 인력이 동반되어야 한다. [안전혁신 마스터 플랜]은 가장 기본적인 국민의 ‘안전’ 까지 결국 ‘기업’ 에게 맡겨버리고, 국가의 역할을 포기하는 선언을 했다는 점에서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참사를 통해 얻은 교훈이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되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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