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Z 다양한 노동이야기] 꿈을 좇아서 사는 게 행복해요 /2016.11

꿈을 좇아서 사는 게 행복해요

- 게임회사 프로그래머 김현진 님 인터뷰

 


정경희 선전위원



20167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전국의 만 10~65세 시민 3,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한 2016 게임 이용자 실태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157월부터 최근까지 67.9%가 게임 (온라인, 모바일, 패키지,콘솔 등)을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게임은 굉장히 친숙하고 밀접한 취미 생활이 되었다. 게임을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에 대해서는 모바일 게임이 60.2%로 가장 높게 나타났고 그 다음으로 온라인 게임(38.4%)이 뒤를 이었다. 

스마트 기기의 보급과 함께 기존 온라인 게임이 대세던 게임 시장에서 판도가 모바일 게임으로 확 바뀌면서 이쪽 시장은 이른바 '기회의 땅'이라고 불렸다. 소규모 게임 업체들이 적은 자본금이지만 톡톡 튀는 게임 기획으로 성공신화를 써 온 것이다. 그러나 모바일 게임 시장이 커지고 경쟁이 심화되면서 이제 더 이상 소규모 업체들이 성공하기란 쉽지 않게 되었다. 충분한 자본력은 물론 사람들이 많이 쓰는 메신저 플랫폼을 발판 삼아야 게임이 성공할 확률이 높아지게 되었다.

이번 A-Z가 만난 게임회사 프로그래머 김현진(가명) 님 역시 2012년부터 이 일을 시작해서, 올해 3월 지금의 회사로 왔다. 현재 이곳은 스타트업 회사(신생회사)로 내년 첫 모바일 게임 런칭을 목표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게임을 좋아하다 보니 직업이 되었다

원래 게임을 엄청 했죠. 지금도 많이 하고요. 어렸을 때부터 오락실 다니고, 중고등학교 때 한창 PC방이 생기면서 주구장창 게임을 하고 다녔어요. 그러다 제가 집안 사정으로 대학에 못가고 스무살 때 1년을 놀다가 프로그램 쪽으로 배워둔 게 있었는데 학점은행제를 통해 본격적으로 배우면서 이쪽 일을 해야지 확신이 들었죠. 그리곤 군대 갔다 와서 바로 취업을 했죠.”


취미 생활을 직업으로 하다 보니 아무래도 업무와 게임을 즐기는 것이 구분하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마다 다 다른 것 같은데 가급적 게임은 즐기려고만 해요. 물론 직업이 모바일 게임을 만드는 거니까 신규 게임이 나와서 시장에서 잘 나간다고 하면다 해보죠. 저희가 만들려는 게임이랑 장르가 비슷한 게 나왔다 싶으면 그것도 해보고요. 게임을 하면서 이걸 어떻게 만들었을까, 생각을 하게 되죠. 그나마 다행인건 프로그래머들을 비하하는 건 아닌데, 논리적인 코딩을 짜야하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대체로 성향이 단순하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일과 게임도 구분을 잘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기획자들은 수많은 게임을 보면서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잘 안됐으면 뭐 때문에 안됐을까 생각을 많이 해야 하고 그러다보니 두통을 달고 사는 것 같아요.”

 

게임회사의 하루

아침에 10시까지 출근해요. 이점이 마음에 들죠. 집에서 판교까지 한 시간이 걸려서 8시 반쯤 나서서 가요. 회사 도착하면 판교 근처에 커피 마실 때가 많아요. 그래서 직원 분들과 오전에 커피 마시면서 잡담도 하고 일 얘기도 상의해요. 그리고 회사 들어오면 각자 맡은 일들을 하죠. 대개 게임회사는 기획, 프로그램, 그래픽 크게 세 파트로 나눠져 있어요.

 

"제가 하는 프로그램 일은, 그래픽 팀이 게임 전체 기획에 맞게 캐릭터를 만들면, 그 캐릭터를 실제 움직이게 하는 일을 해요. 쉽게 말해서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라고 보면 되죠. 아 그리고 제가 프로그램 일도 하면서 클라이언트 파트장도 맡고 있어요. 클라이언트라면 실질적으로 게임을 진행하는 로직을 만드는 일을 하는데 거기 책임자인거죠. 제 일뿐만 아니라 파트원들 능력이나 업무 속도에 따라 일을 분배해줘야 하고, 잘하고 있는지 체크해야 하고 그런 게 일을 하는 것보다 더 힘든 것 같아요.“

 

게임회사는 야근과 과로의 상징과도 같은데 실상은 어떠할까?

아무래도 대체로 야근을 하죠. 그렇다고 일이 없는데 눈치를 봐야 해서 야근하고 그런 문화는 없어요. 물론 회사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요. 게임 런칭을 앞두고 있는 지금 같은 시기는 항상 야근이죠. 런칭하면 수입과 직결된 문제라 버그도 잡아야하니까요. 특히 서버 프로그램 관리하는 분은 게임을 런칭하면 초반엔 거의 집에 못 간다고 보면 돼요. 몇 분이서 교대로 돌아가면서 일을 하죠. 초창기에 테스트가 완벽하면 모르겠지만 그것도 쉽지 않고, 예상보다 접속자가 많아지거나 하면 서버가 어떻게 될지 몰라서 만일에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늘 사무실에서 24시간 교대로 돌아가요.”

 

그래도 주말만큼은 보장 받는다

 

지금 회사 분위기가 제가 볼 때 나쁘지 않아요. 평일은 어려워도 웬만하면 주말을 지켜주려고 하거든요. 입사해서 지금껏 공휴일에 출근하게 딱 1번이에요. 사장님 마인드에 따라 결정되죠. 게임회사 사장들이 대체로 젊은 축에 속하는데 본인들이 처음에 엄청 고생하면서 일했는데, 그게 싫어서 회사를 차리는 사람들을 많이 봤는데요. 본인이 주말에 일하기 싫은걸 아니까 억지로 직원들에게 주말에 출근해서 일하라고 시키지 않죠.”

 

그러나 이른바 꼰대 마인드 내가 예전에 다 해봐서 아는데” “내가 젊을 땐 몇 날 며칠씩 밤을 새봤다인 분들은 일을 오래 해야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고 생각해서 그런 회사들은 주말에도 어김없이 출근한다.

 

동료들 중에 일을 오래하고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두통약을 달고 살다가 못 이겨서 일을 포기하고 다른 일을 시작하게 된 사람을 봤어요. 손목이 아파서 수술 때문에 일을 그만둔 사람들도 있고요. 워낙 장시간 일을 하니까 몸이 피로하단걸 느끼고요. 그런데 아침에 출근해서 퇴근하면 11, 12시니까 운동을 할 시간도 없어요.”

 

수많은 게임회사들이 사라진다

게임 런칭 했다 망해서 자금 사정으로 문 닫는 경우가 태반이죠. 만일 자금력이 조금 있어서 버틴다고 해도 3~4년이고요. 회사가 문을 안 닫아도 직원들이 한 회사를 오래 다니지 않아요. 게임회사들이 이직에 대해서 자유로운 게 있어서 자기 몸값을 올리기 위해 이직하거나 프로젝트에 따라 하고 싶은 게 있으니 이동이 자유로워요. 신입 직원들도 들어오면 대개 1~2년 안에 나가는 사람이 진짜 많죠.”

 

판교에 밀집해 있다 보니 이쪽 업계 바닥이 좁은데 이직도 많다 보니 회사도 그렇고 일하는 사람들도 소문에 굉장히 민감하다고 한다

 

이직을 많이 하다보니까 사람 뽑을 때 대개 경력을 보잖아요. 그러니까 이전 회사에 물어봐요. 일은 잘하냐? 성격 괜찮냐? 체크가 들어가는 거죠. 만일 업계에서 재수 없으면 소문 잘못나서 일을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어요

 

게임업계에서도 외주화가 판을 친다

게임 실패가 회사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기 때문에 최근 규모가 있는 게임 회사의 경우 위험부담을 덜기 위해 자회사, 계열사 형태로 외주를 주는 경우가 흔하다고 한다.

 

만일 해당 게임이 망하면 자회사 자체를 해체시키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러면 직원들은 그 회사의 다른 자회사를 알아보거나 다른 회사로 이직을 준비하죠. 원래 회사는 만일 게임이 망해도 자신들에게는 손해는 크지 않고 자회사나 계열사가 책임자가 뒤집어 쓰죠.“

 

나이 들어서도 들어서도 이 일을 하고 싶다

정규직이긴 한데 정년은 의미가 없어요. 지금 생각으론 이 회사 있을 때까지는 있으려고 해요. 그나마 다른 파트들은 감각도 중요한데 프로그래머들은 기획이나 그래픽과 달라서 기술적인 능력이 더 중요해서 조금 더 길게 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그래도 마흔 정도에는 결론 나는 것 같아요. 회사를 차리든지, 전체를 총괄하는 피디가 되거나, 아니면 현장에서 계속 프로그램 일을 하든지요. 만일 이 업계를 떠난다면 닭 튀기겠죠. 우스갯소리로 다들 그 얘기해요 나이 먹으면 기술도 없고 할 수 있는 건 치킨집 차리거나 커피숍을 하거나 선택지가 이것밖에 없다고요.

 

그러나 이 일을 선택한 걸 후회하지 않는다고 한다.

 

저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죠. 게임 개발하는 게 재밌거든요.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해도, 친구들 보면 일단 먹고 살아야 하니까 꾸역꾸역 취업해서 일하는 데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해서 지금껏 꾸준히 해나가니까 거기서 오는 자부심을 느껴요. 일하는 것도 보람 있고요. 저희는 주기적으로 빌드를 뽑아요. 게임 실행파일을 확인하는 건데요. 이때 버그가 없으면 진짜 좋죠. 웬만해선 한 번에 될 때가 없거든요 그런데 한 번에 되고 투자자한테 보내서 확인받았는데 문제가 없고, 수정 의견도 없을 때가 일할 맛나죠. 반대로 버그도 많고 뭐 하나 고쳐도 해결이 안되고 그럴 땐 프로그래머로서 자존심도 상하고 스트레스를 받죠.”

 

사람들이 내가 만들 게임하는 걸 보고 싶다

실력을 더 쌓아서 지금은 실무 개발자인데 팀장도 되고 테크니컬 디렉터, 기술 감독도 되고 피디도 해보고 싶어요. 프로그램 관련해서 강연도 다니고 싶고요. 게임 런칭이야 당연히 제일 하고 싶어요. 내가 만든 게임을 사람들이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하는 걸 보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김현진 님은 게임업계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거둬달라는 부탁의 말씀을 전했다.

 

이쪽이 야근도 많고 주말 출근도 잦고 시간도 없는건 맞는데 너무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여기 있는 분들은 모두 꿈을 좇아서 오는 사람들이거든요. 힘든 조건에서 일하기는 하지만 다들 즐겁게 일하고 있으니 좋게 봐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힘들어도 끝까지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주변에 힘들어서 포기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거든요. 저도 중간에 일을 그만뒀을 때 이 길이 내 길이 맞나 많은 생각들을 했었는데 그때 포기하지 않길 참 잘했다고 생각하거든요.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안전하지 않은 안전매니저들 /2016.10

안전하지 않은 안전매니저들

 

 

 

정경희 선전위원

 

 


집밖에 나가있는 동안 가스 불을 끈 기억이 나질 않아 안절부절 할 때가 종종 있다. 믿을만한 이웃집이나 관리사무소의 신세를 지더라도 확인을 해야 안심이 될 만큼 가스는 생활에 유용하지만 위험하기 때문에 정기점검이 중요하다.
가스 관리는 대부분 가가호호 방문하여 검침, 점검, 고지서 송달업무를 하는 안전매니저에 의해 이루어진다. 사생활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즘 집집마다 방문을 하는 업무가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생각이 이 쯤 되니 안전매니저들의 안전은 어떤지 궁금해진다.
○○도시가스 고객센터에서 10년, 15년 넘게 안전매니저를 하고 계신 정화숙 님과 공순옥 님을 만났다. 예전에는 ○○도시가스 직영에 소속돼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통상적으로 서울도시가스 본사에서 퇴직해 나가는 관리자들에게 지분을 주어 개인사업자로 지역고객센터를 관리하도록 함에 따라, 떨어져 나온 개인사업자에 소속돼 있다가 이번에 4개 개인사업자가 법인으로 합쳐지면서 ○○도시가스 고객센터에 근무하게 되었고 현재 33명이 함께 일한다고 한다.

 

“여태 저희가 정규직인 줄 알고 있었어요. 얼마 전에 알게 되었는데 근속수당이 없기 때문에 1년 계약직이라 하더라고요. 같은 일을 10년 넘게 하고 있는데도 정규직이 아니라니 할 말이 없었어요. 대부분 1년 단위로 재계약이 이루어져요."

 

PDA에 나타나지 않는 업무와 어려움들

공식적인 사무실 출근은 한 달에 한 번. 대부분 PDA로 자료를 받아서 처리하는데 보통 6개월간 1인당 3,400세대수를 맡는다고 한다. 가구 방문 횟수는 고지서 송달과 검침으로 한 달에 한 번씩, 안전점검으로 6개월 동안 나눠서 한 번씩 방문해서 한 가구를 6개월 동안 13번 방문하게 된다. 그러니 그 구역에 대해서 빠삭하게 잘 알 수밖에 없고 가끔 통장님들이 도움을 청하기도 할 정도라고

 

“안전점검이 첫 달이 10%고, 다음 달이 20%면 한 달에 700세대를 해야 해요. 하루에 50세대를 완료하려면 150번 정도 세대 방문을 다녀야 가능해요. 고객들이 집에 많이 계신 시간을 골라 돌아다니니 그 시간에는 노동강도가 강해지고 업무시간이 일정할 수 없죠. 그것을 서울시에서 감안해줘야 하는데 시간만 따지는 거예요. PDA를 통해서 시간 안에 몇 집을 하는지만 계산하더라고요. 그런데 PDA에 나타나지 않는 것도 있거든요. 고지서 일일이 보내지. 고객님께 문자 보내지. 방문을 했는데 사람이 없는 경우는 메모를 남겨두기 때문에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전화 받아야하지.”

 

안전매니저들은 수도나 전기처럼 검침과 고지서 송달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안전점검을 해야 한다. 큰 휴대폰 3배정도 되는 무게의 PDA를 업무 내내 들고 다니면서 하는 일이 만만치 않은 듯했다.

 

“점검이 10납기에 몰려있는 경우는 2,3일 안에 다 끝내야 하기 때문에 배낭에 고지서를 가득 넣어 매고서 한 손에는 PDA를 들어야 해요. 왼쪽 손부터 어깨까지 무리가 가서 통증을 많이 호소해요. 검침하러 다니다 보면 거미줄도 너무 많아요. 풀숲을 헤치고 다녀야 할 때도 있고, 높은 곳은 올라갔다 뛰어내리다 다리를 다치기도 하고, 난간에 매달려서 아슬아슬하게 하는 경우도 있고, 4,5층 빌라의 경우 나머지 층은 완료됐지만 꼭대기 층이 남았다면 4,5층을 계속 몇 번씩 오르내려야 하는데 일하는 내내 걸어야 하니 다리도 돌아가면서 안 아픈 곳이 거의 없어요. 요즘 애완견들 많이 키우니 개한테 물리는 경우도 다반사죠. 그런데 조금 할퀴거나 긁히는 건 말도 못해요. 피가 줄줄 나고 살점이 뜯어질 정도는 돼야 회사에서 치료비 받는 거죠. 사냥개에 물려서 7cm 꿰맨 사람도 있어요.”

 

일하시다 다치면 당연히 산재로 처리하시냐는 질문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산재는 아주 크게 다쳤을 때 부러지거나 누워있어야 할 때나 처리하죠. 산재를 하더라도 우리는 한 달 이상 쉬지 못해요. 취업규칙에 한 달 이상 쉬면 퇴사하게 돼 있어요. 이 지역은 나만 알아서 다른 사람이 하는 게 쉽지가 않아요. 그래서 그만두라는 거죠. 일하다 다치면 일은 누가 대신해 줄 지부터 생각해요. 내가 힘드니까 동료들에게 해달라는 말을 하기도 미안한 거예요. 동료들이 대신 도와 줄 때 예전에는 회사에서 점심값을 줬어요. 그런데 지금은 안 줘요. 다친 사람이 알아서 부담하라는 거죠. 회사에서 전혀 책임지지 않겠다는 거죠. 몸이 아파서 수술을 하려고 해도 검침기간을 피해서 해야 해요.”

 

점검 완료 99.9%를 위해 견뎌야하는 것들

수리나 설치기사는 고객이 원해서 하는 예정된 방문인 반면 안전점검은 고객이 원치 않은 방문이기 때문에 막무가내로 문을 닫아버리거나 못마땅해 하고 푸대접받기 일쑤라고 한다. 보통 마지막 달인 6월에 고객들과 부딪히는 일이 많다고 한다.

 

“처음에 갔더니 다음에 하겠다고 했어요. 그런 분들 많으니까. 지나가다 불이 켜져 있어서 노크를 하고 가스점검 왔다고 하니 안한다고 하는데 왜 자꾸 귀찮게 하느냐고 대번에 XXX 욕을 하더라구요. 그래도 계실 때 하시라고 달랬더니 신경질 내며 문을 열어주어서 금방 끝나는 건데 그렇게 화를 내시냐고 했어요. 키도 엄청 크고 체격도 있는 아들뻘 되는 사람이 나를 내려다보면서 한 대 칠 것처럼 손을 올리더라고요. 화를 참고 점검을 마치고 나오는데도 계속 서서 욕을 하고요. 얼마나 서러웠던지... 이런 일을 책으로 쓰라고 하면 몇 권은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안전매니저님끼리는 얘기를 들으면 공감이 된다고 하셨다. 어떤 상황이었겠구나! 아마도 이렇게 얘기만 들어서는 못 느끼실 거라며 사무실에서도 잘 모른다고 했다.

 

“점검하는데 집중하다 보면 뒤에 누가 왔는지 모르는 사이에 가슴을 슥 만지는 남자들도 있어요. 팬티 입고 나오는 것은 다반사구요. 너무 당황하니까 처음에는 대처하는 게 잘 안되죠. 그러니까 이건 젊은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이에요. 나이 먹은 주부들이나 견디면서 하죠. 낮에 사람이 없어서 저녁에 갔는데 아저씨가 하는 말이 아들하고 둘만 있는데 성추행 당하면 어쩌게 여길 들어오겠냐는 거예요. 그래도 나는 점검률 99.9%를 맞추기 위해서 해야 하니까 들어갔죠.”

 

상황이 이 정도이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이 강구돼야 하고 감정노동관련 치유 프로그램이 절실히 필요해 보였다.

 

“그런 프로그램이 있다면 진짜 하고 싶어요.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느끼거든요. 예전에 수도검침원이 성폭행을 당해서 사망한 사건이 있었어요. 그래서 요구를 해서 나온 게 있어요. 호루라기 허허~. PDA에 누르면 회사 사장이나 상무에게 연락이 가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오작동이 잘 돼요. 연락이 된다고 해도 현장에 오기까지 거리가 얼만데 이미 상황 끝나죠.”

 

외주화와 부당한 대우에 안전매니저들 뿔났다

일선에서 어려움이 많은데도 센터에서는 최저임금에 준하는 급여뿐 아니라 각종 안내문 뿌리는 일, 제휴 카드 신청서 받기 등 잡일을 많이 시켰고 정규직으로도 인정하지 않아 불만이 쌓여가고 있었다. 결국 그러한 불만들이 노동조합 결성을 고민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1,200세대 신규아파트 입주가 시작되자 사설업체들과 경쟁이 붙어서 우리보고 아파트에 나가서 타이머를 팔면서 가스렌지 연결 신청서를 받으라는 거예요. 물론 본 업무는 모두 하면서, 하루 일당 3만 5천원 줄테니 하루씩 돌아가면서 하라는 거죠. 힘들었지만 회사에서 요구하니 열심히 했죠. 그래서 4~5천만 원을 벌었다는데 추석 때 행정과 민원기사들만 20만원씩 더 주고 우린 원래 받기로 한 일당만 준 거예요. 고생은 우리가 다 했는데 인정을 너무 안 해주니 안 되겠다 싶어서 노동조합을 결성하게 된 거죠. 33명 중 26명이 노조를 결성해서 교섭 중이고 교섭대표로 4명이 들어가고 있어요.”

 

털어서 먼지 하나도 안 나기 때문에 노조 결성해도 어쩔 수 없다고 우리 끼리 안에서 얘기하자고 회유 반 협박 반 하는 사장의 말에도 끄떡하지 않는다고, 협상 대상은 일단 센터 사장이고 서울도시가스 그 다음은 서울시가 될 것이라며 자신있게 말씀했다.

 

“사실은 서울시가 모두 관할해야 하는데 서울도시가스로 분할하고 여기서 또 외주화시켜서 교섭도 그렇게 하는 거죠. 지하철도 스크린 도어 정비를 외주에 맡긴 거잖아요. 사실 구의역 사고 보면서 얼마나 공감했는지 몰라요. 가방에서 컵라면, 빵 나온 것 보고. 우리도 검침이나 고지서 송달하러 나갈 때는 아침부터 나가는데 주택가라 음식을 사먹을 수 없으니 떡이나 빵을 싸가지고 가요. 남한테 보여주기 싫어서 주택가 구석이나 아파트 꼭대기층 계단에서 쪼그리고 앉아 먹어요. 먹으면서도 내 자신이 비참해요. 음식점이 밑에 있는데 맨날 걷는 게 지겨운데 거기까지 걸어가서 먹고 현장으로 다시 올라가야 하는 게 힘들고 시간도 걸리니 자투리 시간에 먹는 거죠.”

 

혼밥, 혼술이란 말이 유행하는 것처럼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사회생활로 인해 빈 집이 많아지는 추세라 앞으로 일은 더 힘들어질 것 같다고 안전매니저분들은 입을 모았다. 앞으로 바람은 일한 만큼 정당한 댓가를 받고, 현재 담당하는 3,400세대에서 3,000세대로 줄고, 근본적으로는 서비스 질을 보장하기 위해 2,500~2,600세대로 일의 양으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본사에서 검침일정 등을 잡을 때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여건을 배려하는 것을 이루어나가겠다고 한다. 안전매니저의 바람들이 현실화되고 동시에 안전매니저의 안전이 보장되어 결국 시민의 안전이 보장되는 사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일터 독자들부터라도 집에 방문하는 안전매니저를 친절하게 대해주는 건 어떨까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인천공항엔 유령이 있다? /2016.09

인천공항엔 유령이 있다?



정경희 선전위원 



인터뷰 가는길 시커먼 굴뚝이 즐비해 삭막하기 그지없는 공단을 지나 탁 트인 넓은 바다가 펼쳐졌다. 대형 화물선이 지나다닐 만큼 깊은 바다 위로 해무에 가려 끝도 보이지 않은 구부정한 다리를 건너노라니, 부유층의 전유물로 만들어진 메가로폴리스로 가기위해 어두운 우주에 놓인 은하철도를 건너던 철이가 떠오른다. 저 다리를 건너면 뭔가 다른 제3의 세계가 펼쳐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알파벳과 숫자를 보고 커다란 케리어를 밀고서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로 가득한 그 곳은 먼지 하나라도 용서받지 못할 만큼 깨끗했다. 도대체 이런 청결함은 어떻게 유지되는 것일까?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일까? 밀려오는 궁금증을 안고 정명선 님을 만났다.


환경 미화원일이 부끄러웠던 시절도 있었다


▲ 인천공항에서 일하는 정명선님.

공항에서 일하기 전 그는 지역 활동을 했었다. 아내가 몸이 좋지 않아서 일을 해야 했고, 당시 40대 초반 애매한 나이인지라 직장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이일저일 하면서 보내던 중 공항에 다니는 분의 소개로 청소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꺼렸어요. 40대 초반 아직은 젊은 나인데 청소를 한다는 게 어색했고, 남들이 볼까봐 부끄러웠어요.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일하다보니 내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주기 싫었어요. 일을 하다 공항에서 아는 사람과 마주치게 되면 처음에는 얼굴 보기를 기피했어요. 그러다 시간이 지나고 ‘이게 내 직업이구나!’ 라는 걸 느끼면서 아는 사람 만나도 떳떳하게 인사하고, 서로 이해하면서 그렇게 변하더라고요.”


환경 미화원일은 고정 3교대 근무로 돌아간다. 오전 조는 아침 7시부터 오후 3시 반, 오후 조는 1시 반부터 밤 10시, 야간 조는 밤 10시에 시작해서 다음 날 아침에 끝나는 특수 일근형태다. 고정 근무다 보니 야간 조는 1 년 내내 야간에만 일하다 보니 건강이 가장 큰 문제다. 주간과 야간에 하도 달라서 근무와 관련해서 개선을 하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고 한다.


“10여 년 동안 야간조만 하는 분들이 있어요. 주간조에 비해서 30만원 정도 더 벌거든요. 그 돈이면 아이들 학원이라도 하나 더 보낼 수 있으니까 야간조 일을 하는데, 그분들 보면 주간조 일하는 분들보다 더 피곤해 보이고 늘 피곤해 보여요. 출근할 때도 보면 주간조는 밝은 표정으로 출근했다 퇴근할 때 지쳐서 퇴근하는데, 야간조 분들은 출근할 때부터 항상 표정이 지쳐있어요. 밤에 일하고 낮에 자려면 잠이 잘 안온다고 하더라고요. 어쩔 땐 잠을 자려고 술도 한잔씩 하는데 그래도 잠을 푹 자는 건 어렵데요.”


골골대며 일하는 환경 미화원들

인천공항 이용객이 41% 증가하는 동안 환경 미화원은 0% 증가했다는 기사가 문득 떠올랐다. 일하다 힘들 때 휴식시간이나 휴게장소는 보장돼 있는지 궁금해졌다.


“오후조의 경우 1시 반부터 일을 시작하는데 3시에 간식시간 10분이 있고, 5시 반이나 6시 반에 저녁을 먹어요. 쉬는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진 않고 자기가 요령껏 쉬어야해요. 환경 미화원들을 위한 휴게 공간도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아요. 오후조 같은 경우 락카룸이 동쪽에 있고, 일하는 곳은 서쪽에 있다보니, 서쪽에서 락카룸으로 쉬러가다가 휴식시간이 끝나기 때문에 로비 의자나 사람들 눈에 안 보이는 매장 뒤에서 쉬죠. 인천공항에서 일하는 사람들 전체가 이용하는 휴게실이 있기는 한데, 공간이 워낙 부족해서 거기서 쉬는 것도 어려워요. 물마시는 것도 어려워서 요즘처럼 더울 때는 화장실 앞에 있는 음수대를 이용하거나 손님들이 주거나 버린 생수로 목을 축이곤 해요.”


평균연령이 55세이다 보니 근골격계 질환자들도 많다고 하셨는데 몸이 아프거나 일하다 다쳐도 자신이 잘못해서 다쳤다고 생각해서 보통 개인이 비용이 비용을 들여 치료를 받는다고 한다.


“체크인하는 다용도실이라는 데가 있어요. 그 곳이 넓거든요. 계속해서 돌고 돌면서 일을 하니까 다리나 발목이 아파요. 화장실 청소할 땐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고, 쪼그려 앉거나 서서 변기나 거울을 닦으니 무릎 아프신 분도 많죠. 공항 바닥 청소할 땐 한쪽 손으로는 카트를 밀고, 한쪽 손으로는 기름걸레 밀면서 가야하니까 어깨 아픈분들도 많고요. 면세구역엔 에어사이드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는 건물이 10년 넘어서 그런가 환기구는 있는데 꽉 막혀서 화장실뿐 아니라 건물 안 자체에서 공기 순환이 안 된다 하더라고요. 그러다보니 거기에서 일하는 분들은 겨울 내내 비염, 감기를 달고 살아요. 고객들처럼 어쩌다 하루에 한두 번 들어가는 거야 순간이지만, 우린 하루 종일 그곳에 머물러야 하잖아요. 그래서 건강에 좋지 않아요.”


비정규직 간접고용으로 일하는 환경미화원들

정명선 님은 민주노총 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환경지회 사무장 역할도 맡고 있다. 현재 인천공항 제1여객 터미널 종사자 약 7천명 가운데 6천명이 하청업체 비정규직으로 간접고용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했다


“동료들 중에 14년, 15년 이렇게 다닌 사람들이 있는데 다니는 동안 회사는 네다섯번 계속 바뀌었어요. 퇴직금은 업체가 바뀔 때마다 정산해서 받았고요. 별다른 이유가 없는 고용은 승계됐지만 늘 고용에 대한 불안이 있죠. 또 간접고용이다 보니 회사에 노동조건 개선에 관해서 요구를 하면 이건 자기들이 들어주기 힘드니까 공항공사에 이야기를 하라고 해요. 공항공사에 가서 요구를 하면 우리 직원이 아니니 회사에 가서 얘기하라고 하고요. 우리를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에 있는거죠”


현재 비정규직 약 7천 명중 2천 명 정도가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어 있다보니 조장이나 매니저 같은 중간 관리자들이 일하는 사람들을 함부로 하는 게 없어졌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노동조합을 만들게 된 계기도 궁금해졌다.


“급여명세서를 보니 시간외 수당이 안 맞는 거예요. 몇몇 사람들이 의심을 가지고 노동청을 찾아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지하 교육실에 모이기로 했어요. 회사 사람들 만나서 해명을 요구했는데 회사에서 답을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사람들이 일을 안하고 복도에 모여있었어요. 이후에 출근한 오후 조와 야간 조 모두 합세하여 1박 2일 동안 농성아닌 농성을 하게 됐죠. 그런데도 회사 중간관리자는 엉터리 같은 설명만 하더라고요. 그러다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부 간부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지원을 해줬어요. 이후에 교섭단을 꾸리고 다음 날 아침 회사랑 교섭을 해서 농성을 풀었고, 체불임금투쟁이 벌어졌으니 제대로 싸우려면 노동조합을 만들어야 한다고 해서 가입을 했죠. 당시 환경 미화원이 터미널 건물에 430명, 탑승동 건물에 110명 정도가 가입했어요.”


미화원들이 유령인가?

어떤 영화에서 ‘미화원들은 유령이다.’ 라는 대사가 있는데 미화원들은 정말 유령 취급 받을 때가 많다고, 일터 독자들이 환경 미화원에게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한다는 당부의 말씀도 해주셨다.


“분명히 양변기와 소변기가 분리돼 있는데 소변을 양변기에 보시는 분이 계세요. 그러면 주변에 소변이 다 튀죠. 겉으로 투덜대면 민원 올라가서 안 되니 속으로 투덜대면서 청소하죠. 화장실 금연인데 아직도 담배 피우시는 분들 있어요. 화장실 변기에 물티슈는 버리지 말라고 돼 있는데 꼭 버려서 막히게 만들고요. 특히 최근에 리모델링한 개선 화장실의 경우는 배관이 좁아서 그런지 더 잘 막히거든요. 카트를 밀고 청소하는 분들도 남들은 꺼리는 오물을 늘 치워야 하니까 힘들어요.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니 하고 있어요.”


세계공항서비스평가에서 12년째 1위를 자랑하는 인천공항. 그러나 정작 이용객과 공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안전과 운영에 대한 책임은 회피하고자 비정규직/간접고용을 양산하고, 제대로 된 휴게 공간 하나 보장하지 않고 있으니 속 빈 강정일 뿐이다. 인천공항에 빈 속을 꽉꽉 채우기 위해 오늘도 힘든 노동과 노동조합 화동으로 분주한 정명선 님을 뵙고 나니 기계적으로 보이던 인천공항에도 따뜻한 사람의 온기가 있음을 느꼈던 시간이었다.


[A-Z 노동이야기] 15년차 기계장인 지헌 씨 이야기 /2016.8

15년차 기계장인 지헌 씨 이야기



정경희 선전위원 



지헌 씨는 전문대학을 졸업한 고 자동차 부품회사 사무직으로 일하다 기계 가공 일을 배우며 소위 남들이 말하는 공돌이를 선택했다. 몇 차례 회사를 옮기기는 했지만 15년째 같은 일을 하는 지헌 씨는 덩어리에 불과했던 소재를 가공을 해서 이 사회에 필요한 물건으로 만들어내는 장인으로 자부심을 갖고 일하고 있었다. .

 

저들이 마음대로 해고하지 못할 무기가 없더라구요

전문대 건축학과 2년제를 다녔어요. 졸업하고 나면 보통 설계실에서 일하는데 건축사무실에서 설계하는 선배들을 보면 3~4년 일해도 월급이 130~140만원으로 박봉이어서 미래가 불확실하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진로를 생각하다가 자동차 부품회사 사무직으로 2년 정도 일했는데 회사가 어렵게 되자 감원을 했어요. 이때 보니까 인사처에서 차장, 과장급들에게 전화해서 며칠까지만 나오고 짐싸라고 통보하는 걸 보니 다음엔 나도 저렇게 되겠구나 하는 위기감이 느껴졌어요. 동시에 저렇게 안되려면 저들이 마음대로 해고시킬 수 없는 무기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마침 같이 일하던 형이 기계 일 배울 사람 좀 알아봐 달라고 해서 선뜻 제가 가겠다고 했죠. 안산 시화 공단에 있는 조그만 회사에 들어가서 사상이나 도장 같은 기초적인 일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10년 정도 일을 하고서야 큰 기계를 잡을 수 있었다는 지헌 씨는 공업고등학교나 산업대학원에서 이론부터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기계를 능숙하게 익히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고 한다.


보통 기계는 공고나 산업대학교, 기술교육원에서 배우는 분들은 이론과 실습 위주로 배우지만 현장에서는 일을 하면서 기계를 배워야 하니까 간단한 일부터 시작돼요. 처음 공장에 들어가서 기계로 작업하는 걸 보기 때문에 눈으로 익히는 과정은 초등학생이라고 보면 되고요, 중학교 과정 정도 되면 조그만 기계도 한 번 만져보고 도면 보는 방법, 측정 공구 사용하는 법도 배워요. 지금처럼 큰 기계를 맡는 과정은 대학교 과정이라고 보면 되요. 이쯤되면 도면 해석은 물론이고 어떤 물건을 가져다주면 관리자들은 몰라도 기술자들은 어떻게 만들면 되겠다는 것을 알아채죠. 10년 정도 넘으면 자유자제로 물건을 가공을 할 수 있어요.


아는 지인이 이 일을 하겠다고 하면 말리고 싶어요

육체적으로 더 편한 직장을 포기하면서 자신이 선택한 일이고, 지금은 숙련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젊은 사람이 이 일을 시작하겠다고 하면 권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88올림픽 당시에는 일이 참 많았어요. 그땐 기계를 다루는 사람들이 대기업 과장만큼 월급을 받았으니까요. 그런데 그 때 이후로 인건비가 오르지 않아서 지금은 많이 받는 게 아니에요. 솔직히 기계 일을 다른 사람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진 않네요. 일을 배우는데 걸리는 시간만큼 다른 일을 한다면 충분히 급여로 보상받을 수 있으니까요. 예전에는 공돌이라고 무시했지만 요즘은 인식이 많이 개선이 돼서 도자기를 빚는 사람처럼 장인으로 인정 받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일을 배우는 기간에 비해 금전적인 대우는 많이 올라가지 못했어요. 그래서 적극적으로 추천은 못하겠네요.”


지헌 씨도 처음 시작할 때 6개월마다 급여를 10만원씩 올려 받았다고 한다. 일이 힘드니 그것이 동기부여가 돼서 견뎌낼 수 있었다고 하는데 초봉을 110만원부터 시작했다고 하니 올려줬다고 해도 정당한 댓가를 받은 것인지 의심스럽다.


처음 들어오면 잔업까지 포함해서 하루 12시간 정도 일을하면 월 160~170 정도 받을 거예요. 작은 회사들이 많은데 하루 종일 서서 일하고 먼지도 많고 그라인더 작업하고 나면 팔도떨리고 손도 떨리는데 다른 더 쉬운 일을 해도 그 정도 급여는 받잖아요. 사실 젊은 사람들이 와도 멀리서 일을 바라보기만 하고 가버리는 친구들도 꽤 있어요. 회사는 작고 환경은 더럽고 그래서 요즘 젊은 사람 보기가 힘들어요.”


지헌 씨가 하는 일은

힘든 일은 이주 노동자들이 대부분 맡아서 하고 젊은이들은 회피한다는 일의 과정이 궁금해졌다. 지헌 씨가 근무하는 회사에서는 주로 동을 취급하는데 보통 기계가공을 하는 곳에서는 철, 비철, 스테인레스 등의 소재를 사와서 부품이나 물건으로 만들어 철강회사나 반도체 업체에 납품하게 된단다.


주조반에서 동을 녹여서 수냉함이 흐르는 물건의 틀을 만들어요. 수냉함은 물건의 입구와 출구가 있어서 물이 들어가서 물건의 열을 식혀주는 역할을 하는 거예요. 주물반에서 물건을 청소해요. 그 다음 쇼트를 한번 쳐요. 쇼트란 작은 쇠구슬 알갱이로 된 곳에 물건을 집어넣고 때려주는 거예요. 가공반으로 내려오면 기계에서 가공을 하게 되는데 주물반에서 물건이 완벽하게 만들어져서 나오지 않거든요. 가공반에서 다듬고 구멍도 내주고 하죠. 용접반에서 물이 새면 안 되니 구멍 난 곳은 용접으로 때워 주죠. 사상반으로 가서 용접으로 지저분해진 곳을 그라인더로 갈고 깨끗하게 다듬죠. 그 다음 물을 담아서 새는 곳이 없는지 수압 테스트를 해요. 이 물건이 제철소에 들어가면 굉장히 높은 고열에 시달려요. 그래서 최대한 자유롭게 많은 물이 흘러줘야 빨리 식을 것 아니에요. 빨리 식지 않으면 열 압력 때문에 물건이 터져버리거든요. 그러면 사람이 다칠 수 있고, 기계가 망가질 수도 있기 때문에 반드시 수압 테스트를 해줘야 해요. 주물 작업을 할 때 끓는 철은 아주 천천히 부어야 해요. 빨리 붓게 되면 안에 기공이 생기게 되고, 이것이 나중에 열을 받으면 팽창해서 터져 버려요. 마지막으로 주물 상태를 확인해 보죠. 주물의 두께가 잘 나왔는지 기공은 없는지 확인해 보고 출하를 하게 되죠.”


이 작업과정 중 지헌 씨가 일하는 과정은 가공반이다. 프레스나, 밀링, 보링은 소재를 테이블에 고정시켜놓고 기계에 공구를 끼워서 상하좌우로 파주거나 깎아서 모양을 만들어 주는 방법인데 이 중 지헌씨는 보링기를 이용해 동을 가공한다고 한다.


보링이라는 말이 구멍이라는 뜻이잖아요. 보통 구멍을 뚫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다목적 기계예요. 선반도 되고 밀링도 되고 테이블 자체가 굴러가요. 그렇기 때문에 상하좌우 범용에서 쓰는 전천후 기계라고 보시면 돼요. 기계를 하다보면 단계가 있거든요. 예를 들면 물건의 거친 부분을 다듬는 사상을 하거나 구멍을 파면 까칠까칠한 부분이 살아나는데 이것을 다듬어 주는 면칠을 하게 되죠. 철을 깎으면 마찰이 일어나서 소재도 그렇고 공구도 열을 받아요. 소재의 열을 식히기 위해 물에다 절삭유를 타면 우유처럼 하얗게 변해요. 절삭유는 10:1로 물에 희석해서 쓰기 때문에 오래 쓰는데 가공을 할 때 테핑유는 좀 비싸서 꼭 필요한 경우만 써요.”


앗 뜨거워하면서 털어요. 그러면 빨개요

손이나 다리를 삐거나 다치기도 하고 지헌씨도 물건을 잘못 들어 손가락이 부러진 적도 있다고 한다. 철을 깎을 때 나오는 먼지뿐 아니라 주물반은 먼지가 많아서 저녁에 보면 눈과 입을 빼고는 다 새까맣고, 목이 칼칼하고 마른 느낌이 많이 든다고 한다. 또 천정에서 물건을 나르는 호이스트 등 현장에 위험은 얼마든지 있다고 하는데 가장 흔한 사고는 화상이라고 한다.


흔하게 다치는 것은 화상이에요. 나무 깎을 때 톱밥이 날리듯이 기계로 깎을 때도 날려요. 기계의 회전이 빠르면 빠를수록 멀리 빨리 날아가고 이것이 얼굴에도 달라 붙어요. 그럼 엄청 뜨겁거든요. 앗 뜨거워하면서 털어요. 그러면 빨개요. 화상을 입은 거죠. 심한 경우는 6개월에서 1년까지 가고, 작은 것은 한 달 정도 가요.”


사장님이 기름 묻은 장갑을 빨아 쓰래요. 그러면 포상하겠다고.

지헌 씨 회사는 여느 회사 못지않게 잔업이 많다. 그래서 일이 지겨울 때도 있지만 어느 정도 월급을 가져가려면 잔업을 해야 하니 쫓기듯이 일을 하게 된단다. 그래도 월급이 제 때 나오면 다행이다. 요즘 가장 힘든 것은 열심히 일하는데도 월급이 제때 안 나오는 것이다.


회사가 어려워서 월급이 제 때 안 나와요. 그나마 현장은 조금 빨리 주는 편이고 관리자들은 더 늦게 줘요. 사장과 임원진들은 법인 차량, 법인 카드 등으로 누리면서 살아왔는데, 회사가 어려워지면 경영진들이 경영관리의 책임을 지고 누리던 것을 내려놔야 되잖아요. 그런데 오히려 현장을 더 어렵게 만든단 말이에요. 절약차원에서 현장에 30개씩 지급하던 장갑을 스물다섯개로 줄였어요. 장갑에 절삭유나 기름이 묻으면 바꿔줘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습진이 생기는 것 처럼 피부가 안 좋아지거든요. 장갑 하나에 200원인이고, 일하는 사람이 25명 정도 되요. 그래봤자 한 달에 3만원 아끼는 건데, 그걸 아껴요. 그리고 사장님이 기름 묻은 장갑을 빨아 쓰래요. 그러면 포상하겠다고요.”


이렇게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신이 만든 물건이 반도체 LCD, 제철소에 들어가서 활용된다고 생각하면 보람을 느낀단다. 생활 속에서 필요한 것을 어디 가서 살 수도 없어서 가족이나 주위 분들이 기계를 잡고 있는 지헌 씨에게 만들어달라고 할 때는 나만이 해 줄 수 있는 거라 뿌듯하단다. 천상 기계장인 지헌 씨. 결혼할 준비도 해 놨고 선을 50번도 넘게 봤지만 아직 좋은 인연을 만나지 못했다는 지헌 씨. 자신의 선택이 잘했다는 것을 확인받는 앞날이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A-Z 노동이야기] 에어컨 고치느라 땀 닦을 시간도 없는 수리기사 이야기 /2016.7

에어컨 고치느라 땀 닦을 시간도 없는 수리기사 이야기

- 삼성전자서비스 A/S기사 정희섭 씨 인터뷰


정하나 선전위원

  


예년보다 여름이 빨리 찾아온 올해, 이미 6월부터 더위가 기승이었다. 이렇게 날씨가 사람이 견디기 힘들 때, 요즘처럼 너무 덥거나, 반대로 너무 추운 시기가 전자제품 A/S 기사들이 발바닥에 땀 나게 뛰어다녀야 하는 성수기이다. 오늘 만난 정희섭 씨는 삼성전자서비스 센터에서 만 5년 수리기사로 일하고 있다. 냉장고, TV, 에어컨 등 삼성전자에서 나오는 가전제품은 모두 맡아서 수리한다. 센터 내근직도 있지만, 희섭 씨 같은 경우는 온종일 A/S를 요청하는 고객들을 집을 일일이 방문하며 일하는 외근직이다.


이곳 서비스센터가 첫 직장이신가요?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셨는지?

. 여기가 제 첫 직장이에요. 인천에 모 전문대 전자과를 다니다 졸업할 때쯤, 학교에서 여기 가라고 막 홍보를 하더라고요. 당시 삼성전 정규직이라고 했으니 얼마나 인기가 좋았겠어요!그래서 경쟁률도 엄청났었는데... 알고 보니 청년 인턴제라는 정부 청년 일자리 사업 중 하나로 정부 지원금(인건비) 받아 사람을 뽑는 그런 자리였었고, 정규직이라고 했지만, 원청 삼성전자 소속이 아니라 삼성전자서비스 센터의 직원이 되는 그런 자리였지요그러니까 처음에는 인턴으로 시작한 것이고, 햇수로 6년째 일하고 있는 지금도 갑(삼성전)-(삼성전자서비스)-(각 지역 서비스센터)을 지나 의 위치로 고용이 되어 있는 거. 학교도 어떻게 보면 거짓말을 한 것인데... 전문대학들이 취업률 85% 이상 실적을 채우려고 난리인데 우리 학교도 그랬던 거 같아요.”

 

첫 번째 정식 사회생활이었는데, 일은 어떠셨나요?

... 정말 적응이 안 되더라고요. 몸 힘든 거는 둘째 치고, 저희는 고객방문 하는 서비스 기사잖아요. 그러다 보니 감정노동이 제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심하더라고요. 고객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그 자체가 힘들다기보다, 회사가 매뉴얼을 가지고 감정노동을 엄격하게 아니 혹독하게 관리하는데 그게 너무 이상하고 지금도 사실 불편해요. 저만의 생각은 아닌, 저랑 같이 입사한 동기가 50명이었는데 지금 저 하나 남았거든요.”

 

감정노동에 대한 회사 노무관리가 엄격하다 하셨는데, 자세히 말씀해주세요.

저희가 수리를 위해 방문하고 나서 2~3일 정도 지나면 고객한테 전화를 해요. 아마 삼성제품 사용하시는 분들은 받아본 적 있으실 거에요. A/S 받은 이후 불편한 점이 다시 발생하지는 않았는지 물어본다고 하지만, 실은 수리기사의 품행에 대한 질문을 하고 1점에서 10점까지 점수를 책정하는 거죠. 평가점수가 10점이 안 나오면 바로 회사로부터 크고 작은 조치를 받아요. 매일 서비스 평가 점수 수치화해서 공개하는 것은 기본이고요. 저희도 기본적으로 9시에 업무 시작해서 저녁 6시가 퇴근인데요, 매일 아침 830분 조회를 해요. 그때 10점이 아닌 사람들은, 그러니까 9점만 받아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반성문 쓰고 여러 사람 앞에서 왜 그 점수를 받았는지 상황 설명하고, 롤플레잉(고객-기사 역을 연기하면서 서비스 매뉴얼 학습)도 하고 그랬어요. 저녁에 퇴근하고 서비스 점수 높이기 위한 대책 회의 같은 것도 하고 말이죠. 노동조합 생기고 나서 반성문 쓰는 거 등 비인격적이고 너무 가학적인 조치는 없어지긴 했는데 아직도 조합원이 한 명도 없는 센터에서는 악행을 고수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에요. , 개인별 서비스평가 공개하는 건 아직도 매일 합니다.”

 

삼성전자서비스 A/S 기사들이 지켜야 하는 서비스 매뉴얼. 이에 따라 1~10점의 점수를 받는다. 

출처 : 미디어충청


그런데, 고객들이 저평가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실, 물건이 고장 나면 기분이 안 좋기 마련이죠. 그런데 이런 경우가 있어요. 물건을 산지 얼마 안 되셨는데 고장이 나서 A/S를 부르신 분들. 제가 그랬어도 기분은 많이 안 좋았을 거예요. 그럴 땐 저희 기사들이 아무리 고객 응대 매뉴얼대로 해도 좋은 점수를 주진 않더라고요. 기분이 안 좋으니 그렇겠죠. 저희도 고객마다 다 기준이 다른 것이니 10점을 안 줄 수 있다고는 생각해요. 평가 자체보다, 이것을 가지고 노동자들을 비인격적으로 관리하려고 하는 회사 정책이 더 문제라고 봐요. 그리고 가끔... 진상고객들도 좀 있긴 해요. 저도 어리버리하고 과잉친절 하던 입사 초기에는 좀 이상한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제가 좀 쉽게 보여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어요. 물건 던지고 폭력적인 언사 하는 분들은 정말 자주 만나고요, 한번은 감금을 당해서 경찰에 신고해서 나온 적도 있었어요. 아마 마음이 아프셨던 분이었던 것 같긴 하지만... 많이 놀랐죠.”

 

일 하시면서 힘든 때도 많으셨을 테지만, 기억에 남는 기분 좋았던 일, 보람되었던 일은 없으셨나요?

.... 글쎄요. 일이라는 게 그렇게 즐겁고 재밌고.. 그렇진 않잖아요?!아 한번 그런 적은있어요. 가끔 원청(삼성전자) 직원들이 나와서 수리를 하는 물건이 있는데, 그분들도 못하는 걸 저희가 고치는 경우가 있어요. 아마 현장 경험이 많아서 가능한 거 같네요. 좀 뿌듯하더라고요. 그 외에는 딱히.... 저희 일이라는 게 너무 건당 요금, 건당 시간에 메여있어서... 상 조급하게 힘들게 일해서 더 좋은 경험이 없는지도 모르겠네요.”

 

A/S 건수 당 수리 시간도 정해져 있나요? 하루에 몇 건 정도 처리 하시나요?

가전제품 수리는 하절기에는 정말 일이 많이 들어오죠. 예전(노조 설립 전)에는 7~8월 두달 중 딱 하루 쉬고 밤 12시까지 꼬박 일했었는데, 요즘에는 그렇게 살인적으로는 일 배분 못 하게 했어요. 성수기 기준으로 하루 최대 12~13건 정도 처리합니다. 그런데 수리 한 건50분 안에 처리하도록 되어 있어요. 말이 50분이지 사실 앞뒤 이동시간 빼면 한건 당 20~30분밖에 안 남죠. 이 시간 동안 제품도 제대로 고쳐야 하고, 서비스 매뉴얼에 있는 데로 고객에게 설명도 자세히 친절하게 해야 해요. 시간 안에 처리하지 못해서 다음 수리 건이 있는 장소에 몇 분이라도 늦게 되면 계속 센터에서 문자 오고, 시간 왜 못 지키냐고 하고 난리가 난답니다. 저희가 수리하기 위한 공구를 여러 개 들고 다녀요. 기본적인 공구박스, 용접기계, 요즘같이 에어컨 수리가 많을 때는 냉매 가스랑 측정하는 기계 등등 개인별 차이는 있겠지만 한 30kg씩 이고 지고 방문해야 하는데, 무거워도 저는 무조건 한 번에 다 들고 가요. 왔다 갔다 하면 시간 뺐기니까요. 대부분 수리기사들이 이렇게 일하다 보니 손목 나가고 무릎 아프고, 디스크 수술한 사람들도 굉장히 많아요.”

 

최근, 에어컨 수리하시다가 추락해서 돌아가신 노동자 분 이야기가 기사화 된 것을 보니 시간이 없어서 안전장비도 제대로 착용하기 어렵다고 하던데?

맞아요. 최신 아파트들은 에어컨 공간이 내부에 따로 있지만, 그런 곳은 많지 않고 대부분 건물 외벽에 실외기를 설치하잖아요. 에어컨을 설치할 때는 스카이차라는 걸 불러서 하기 때문에 비교적 안전하게 작업 할 수 있는데, 수리할 때는 따로 요청해야지만 쓸 수 있어요. 평소에는 안전모랑 안전로프 같은 걸 착용하고 하게 되어 있는데, 시간도 부족할 뿐 아니라 아파트 베란다 쪽에 보면 이 안전로프를 걸 수 있는 공간/고리 같은 게 있는 곳이 거의 없어요. 이동시간 제외한 20~30분 안에 안전장비 잘 착용하고, 로프 걸 데 찾아서 걸고 수리 시작하는 게 기사들 입장에서는 아주 쫄리는 일이지요. 하지만 워낙 사망사고까지 일어날 수 있는 위태한 지경이니 저나 조합원들은 위험한 공간에서의 작업은 고객에게 사정을 말하고 일단 고소작업용 스카이 차가 오고 나서 일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성수기에는 스케쥴 맞추기가 어렵긴 하지만 그래도 스카이차 오는 시간으로 일정 조정해서 작업 합니다.”


일한 지 5년이 지나, 이제 수리 일 자체는 손에 익었으나, 쉴 때 쉬고 건강하게 일하고 싶다는 희섭 씨. 기본급이 전혀 없고 건당 수수료만으로 임금을 채웠을 때는 동료들이 마치 신들린 것처럼 위험해도, 힘들어도 모두 무릅쓰고 일하는 걸 보면서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단다. 기본급이 생겨서 이제 생명을 걸고, 신들린 듯 일하지 않아도 생계를 안정적으로 유지 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희섭 씨는, “건 당 수수료이니, 건 당 수리시간이니 하는 건당땡땡땡, 이거 완전히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람이 죽고, 무리하게 일하고, 안전장비 하나 착용하지 못하는 현실이 이 건 당 시스템때문이라고, 서비스품질 1위를 위시하며 노동자를 비인격적으로 다루는 회사의 가학적인 노무관리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그는 힘주어 말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A-Z 노동 이야기] 파킹도 파견으로 /2016.6

파킹도 파견으로

- 발렛파킹 하는 알바 노동자, 지훈 씨 (가명) 인터뷰


정하나 선전위원



20대 지훈(가명)씨는 안 해 본 알바가 없는 '알바통'이다. 주차요원, 택배 상하차, 편의점 등등 다양한 투잡, 쓰리잡을 하면서 학업을 병행했다. 지금은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면서 알바를 한다. 요즘에 그가 선택한 알바는 발FP파킹, 주차 대리 알바이다. 주중에는 학원을 다니며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주말에만 일한다. 그가 일하는 동네는 강남. 서울 안에서도 강남 도심은 주차난이 심한 곳이라 발레파킹이 아주 흔하다. 지금 지훈씨는 자동차 판매점이 들어가 있는 빌딩의 주차장에서 하루 10시간에서 12시간 정도, 주차 대행 서비스를 하고 있다.


큰 호텔도 발레파킹은 외주


"서울이 주차공간이 아주 부족하잖아요. 요즘에는 외제차도 많아져서 차의 크기도 커졌고, 차량도 엄청 많지요. 공간이 협소하다보니 주차대행해주는 일도 많아진 거 같아요. 강남은 발레파킹 안 이용하면 주차는 거의 꿈도 못 꾼다고 보시는 게 맞아요. 카페나 음식점 같은 곳에서 주차 대신 해주는 거 많이 보셨죠? 그 가게에서 주차 알바로 직원을 한명 뽑아서 그 일을 시키는 게 아니라, 이것도 다 하청이고 파견이에요. 주차대행 업체에서 호텔이나 병원, 큰 음식점 같은 사업장이랑 계약을 맺는 거예요. 저희는 주차대행업체에 속해있긴 하지만, 대리운전이나 퀵서비스 노동자들처럼 개인사업자로 계약이 되어 있어요."


지훈씨는 주차 일을 꽤 일찌감치, 대학생일 때부터 시작했다. 운전에만 자신 있는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일을 할 수 있고, 당시 시급 7~8천 원 정도로 최저시급보다 훨씬 많이 주는 일이라서 좋았다. 그가 처음 들어가 약 3년간 일했던 곳은 서울시내 특급호텔로 유명한 ○○호텔이었다. 호텔 안에 필요한 여러 업무가 그렇듯, 주차장 발레파킹 일도 외주화 되어 있었다. 주차장에서 호텔손님들의 차를 받던 지훈씨는 그 호텔의 보안경비, 환경미화, 로비 접객(벨보이) 업무를 외주계약으로 맡았던 업체에 소속되어 일했다.


"그 호텔에는 하루에 적어도 (차량) 1500대가 드나드는데, 호텔 건물 안에 있는 주차장에는 300대만 수용할 수 있었거든요. 대략 500대 정도는 다른 주차장을 써야 했어요. 그래서 근처에 다른 큰 건물이나 대학교 등의 주차장을 쓸 수 있게 호텔이 계약을 맺어놓지요. 발레파킹하는 사람들은 호텔 주차장에서 차를 끌고 나와 이동해야 했죠. 근데 만약 그러다가 사고가 나면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다 주차일하던 사람이 물어내야 해요. 그나마 호텔은 주차장 안에서 사고가 나면 업체(혹은 호텔)랑 사고 낸 (주차)운전자랑 같이 부담하게 되어 있어요. 우리가 부담하는 게 한 30만 원 정도? 재해보험이 들어있어서 그렇다나 봐요. 그렇지만 건물 밖의 다른 주차장으로 이동하다가 도로에서 사고 나면 전부 운전자가 책임지는 시스템이었어요. 주차장 안에서 보장되는 보험만 해도 큰 데에서 일하니까 들어 있었던 거지, 예전에 어떤 병원 쪽에 파견 나가 일했을 때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파킹 파견해주는 업체가 영세하면 보험을 하나도 안 들어 놓기 때문에, 사고 나면 운전한 알바가 다 독박 쓰게 되는 거죠."


시간에 쫓기는 주차 대행 노동자


차는 많고, 주차공간은 적은 서울의 도로사정으로 인해, 주차 알바는 시간에 매우 쫓기는 편이다. 손님이 많이 몰리는 시간대에는 1시간 동안 20-30대씩 차가 들어오기도 한단다. 빠르게 주차를 하고 다음 차를 맡으려 하다보면, 도로 이동시 과속하지 않고는 손님들 편의를 맞추기 힘들다. 하물며 식시시간 같은 건 제때 챙기기 어렵다.


"남들 밥 먹는 시간이 제일 바쁘죠. 바로 직전에는 갈빗집에서 일했어요. 거기는 정말 딱! 식사 시간 때가 제일 바쁜 곳이잖아요. 아침 9시에 출근하면 점심은 오후 3시쯤, 저녁은 8시 이후에나 먹을 수 있었어요. 거기서 일할 때 저는 일부러 저녁은 걸렀어요. 허겁지겁 밥을 먹고 금방 또 뛰어다니고 그러면 속이 부대껴서 다음날까지 힘들어서 말이죠. 휴게시간은 따로 있지는 않고 손님들 없는 시간에 짬짬이 알아서 쉬는 거죠. 일하는 12시간 내내 바쁜 건 아니니까요. 지금 일하는 자동차회사 건물 주차장은 그래도 같이 일하는 사람들끼리 식사시간을 서로 챙겨주는 분위기예요. 그러고 보니 지금 일하는 데가 임금체불도 안 되고, 분위기도 좋고... 여러모로 나은 점이 많네요."


지훈씨는 호텔 주차장 일을 관두고 2년 정도 쉬다가, 갈빗집에서 다시 올해부터 주차대행 알바를 시작했다. 돈이 급해 시작한 알바였건만, 너무 영세한 업체였던 탓인지 임금체불이몇 번이나 있었다. 이 갈빗집은 전용 주차공간이 협소해서 도로변에 손님들 차를 세워놨다가 빈자리가 생기면 주차대행 노동자들이 차를 차곡차곡 주차장으로 옮겨놓는 방식이었다.


"강남일대에 비상등 켜놓고 승용차들이 쭉 세워져 있는 거 보셨나요? 이게 백이면 백, 주차장 없어서 발레파킹 하는 사람들이 도로가에 임시로 세워둔 차들이에요. 제가 일했던 갈빗집도 손님들 차가 넘치니 도로에 세워뒀었죠. 그런데, 일하는 사람이 부족하니 식당 손님 차량을 빨리 빨리 효율적으로 관리하지 못하는 일이 많았어요. 그러다 손님 차에 주차위반딱지가 붙으면 이걸 주차 대행업체에서 다 물어줘야 해요. 예를 들면 식당은 한 달에 주차업체에 2천만 원을 통으로 주고, 거기서 인건비나 과태료 등을 다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는데, 이 식당은 손님들 주차위반 딱지 값만 한 달에 400만 원 어치가 되다보니... 주차업체 사장이 자기 쓸 거 빼면 직원 3명에게 월급주기도 빠듯했던 거죠. 나중엔 사장이 자기가 더 적게 가져간다고 투덜대기도 할 정도였는데, 결국 월급이 밀려서 그만두게 되었어요."


지훈씨가 예전에 일했던 호텔 같은 경우는 큰 보안회사에서 주차 업무도 맡기 때문에 임금체불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많은 주차 대행 업체들이 영세하고, 노동자와 편법적으로 계약을 맺거나 일의 대우를 부당하게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비오는 날 비 맞고, 눈 오는 날 눈 맞고


주차 대행 일을 하면서 가장 불편하고 힘든 일은 아무래도 좋지 않은 공기를 마셔야 하는 게 아닌지 싶었다. 대부분의 건물 주차장이 지하에 있고, 지상에 발FP파킹 노동자들을 위해 따로 휴게/대기공간을 만들어 놓는 곳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자동차 배기가스도 많이 마셔야하는 곳이니 더욱 그러리라 예상됐다.


"지하에서 자동차 배기가스 계속 맡으며 일하는 것도 안 좋고요, 그리고 담배냄새도 정말 많이 맡게 돼요. 일 끝나고 코풀면 정말 시커~~~멓게 나오고 그래요. 기관지가 늘 안 좋은 편이고요. 미세먼지도 장난 아니잖아요. 자동차 외관에 있는 먼지나 기름때도 그렇고. 하루에 몇 십 대씩 자동차 문을 열고 닫고 하면 손도 어느새 새카맣게 더러워져 있다니까요. 자동차 자체가 매연덩어리이니까... 어쩔 수 없죠 뭐. 처음에 일했을 때는 피부에 두드러기도 나고 그랬는데 지금은 몸도 좀 익숙해졌나봐요."


또한, 지훈 씨의 표현대로 "비오는 날 비 다 맞고, 눈 오는 날 눈 다 맞는" 일 환경이다. 차가 들어오면 신속하게 타고 내려야 하고 많은 차량을 옮겨 다녀야 하니 우산을 쓰기 힘들기도 하고 번거롭기도 하다. 그러나 예민한 손님들은 몸이 젖은 채로 자기 운전석에 앉아 시트가 지저분해 지는 것에 대해 항의를 하기도 한다.


"서비스 쪽은 왜, 이러저러한 고객들이 있다 보니 항의를 받는 게 가장 피곤한 일이잖아요. 주차 일도 마찬가지예요. 비오는 날 시트 젖는다고 뭐라고 하는 손님, 마음대로 운전석 조정했다고 뭐라고 하는 손님, 차 안에 있는 블랙박스 영상 확인하고 주차하러 갈 때 과속한 거 아니냐고 따지는 손님들... 다양해요. 아 제가 당한 좀 악질적인 사례인데요, 어떤 손님이 예전에 자기가 긁혀온 자국을 저보고 했다고 덤터기 씌우려고 한 적이 있었어요. 결국 블랙박스 다 확인해서 제가 한 일이 아니라는 걸 다 밝혔지만 기분 나쁘죠. 저희는 이런 억지 쓰는 경우를 미연에 피하려고, 차타기 전에 차량 외관을 한번씩 체크해요. 긁힌 자국 있거나 찌그러진 부분 있으면 미리 찍어놓고 타지요. 나중에 괜한 문제 생기지 않도록."


젊은 사람들 중에는 흔히 손 댈 수 없는 외제차를 보는 맛에 이 일을 취미삼아 '알바'로 하는 사람도 있다지만, 대부분의 발레파킹 노동자들은 구조조정이나 은퇴 후 제2의 생업으로 택한 고연령자나, 다른 곳에서 쉬이 취업을 하지 못하는 전과자들이 많다. 강남 주변에는 고가의 외제 승용차도 많아 항의나 사고가 생기면, 대부분의 주차대행 노동자들에게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터. 다행히 지훈 씨는 지금까지 몇 년간 발레파킹 일을 하면서 사고가 난적은 한 번도 없다.


"제가 지금 일하는 건물에 자주 오시는 단골 손님이 있으세요. 그분이 몰고 다니는 차가 6억 짜리인데요. 워낙에 운전이 미숙한 분이라, 다른 건물 가는데도 일부러 저희 일하는 주차장까지 찾아와 차 맡기시는 손님이죠. 사실 고가차량 차주들은 사고 나면 서로 부담스러우니까 웬만하면 발레파킹을 안 맡기거든요. 그만큼 이분이 아주 특이한 케이스이죠."

[A-Z 노동 이야기] 프리미엄 고급 독서실의 최저임금 알바 이야기 /2016.5

프리미엄 고급 독서실의 최저임금 알바 이야기

 

 

 

정하나 선전위원

 

 

 

 

요즘은 독서실도 프리미엄 시대이다. <응답하라 1988>의 덕선이가 다니던, 더는 그런 독서실이 아니다. 호텔 비즈니스 코너 같기도 하고, 가로수길 카페 느낌도 난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독서실엔 모름지기 총무가 있기 마련. 프리미엄 독서실 총무는 프리미엄급 노동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상근 직장생활을 하다가, 독서실 총무로 일하게 된 지 5개월이 된 영 씨는 다른 독서실 알바들과 사정이 비슷하다. 준비하는 시험, 하고 싶은 공부가 있어서 그간 풀타임으로 하던 일을 그만두고, 비교적 시간 선용을 하기 수월할 거 같은 ‘독서실 알바’를 알아보았다고 한다.

 

“공부하시는 분 환영”의 함정

 

“독서실 알바는 주로 공무원 시험이나 임용고시, 취업 자격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자리에요. 인터넷에 검색해 보세요. 알바 구인 사이트들 보면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일자리라며 선전해요. 다른 독서실은 안내데스크 있는 창구 뒤편을 총무들이 쓰는 방으로 하고, 별일이 없으면 거기서 접수도 받고 공부도 할 수 있게 하지요. 제가 일하는 독서실 같은 경우는 안에 있는 좌석을 하나 따로 줘요.”

 

그렇다. 독서실 알바를 택하는 사람들은 조용하고 면학 분위기가 조성된 일터에서 일도 하고 공부도 할 수 있기에 이 일을 택한다. 실제로 일하다 보면, 이것저것 독서실 공간 정리하고, 민원 처리해야 할 게 많긴 하지만, 그래도 그 외 근무시간 중의 ‘대기시간’이 독서실 총무들에게는 개인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으로, 채용공고 때부터 공식화된 근무조건이다.

영 씨가 일하는 독서실은 <응답하라 1988>에 나오는 거 같이, 남녀 실로 구분되어 쭉 칸막이 책상이 붙어있는, 그런 전통적인 독서실 스타일과는 약간 다르다. 프리미엄 독서실을 표방하고 있는 만큼, 방도 여러 가지 타입(등급)으로 나누어져 있다. 부스형으로 만들어져 사방이 막혀있고 좌석마다 문이 달려있는 1인용 좌석, 칸막이 책상에 사물함이 달린 지정좌석, 별도 예약 없이 이용하는 자율좌석 이렇게 3종류가 있다. 이 독서실에서는 총무들에게 1인용 책상 칸 하나를 제공해 준다.

 

“독서실 총무알바가 하는 일이 거의 비슷비슷할 거예요. 회원 오면 등록받고 좌석 지정해 주는 일, 오픈이나 마감 때 청소하거나 문고리나 프린터기, 전등 수리 등 자잘한 시설 관리를 하지요. 독서실 알바들이 시급 2-3천 원도 못 받고 일하는 경우도 허다한데, 그 이유가 일이 비교적 수월한 데다가 공부할 공간을 받기 때문인 거 같아요. 근데, 조금 이상한 거 같아요. 최저임금이라는 것은 ‘무슨 일을 하더라도 노동자에게 최소한 이만큼은 꼭 줘야’ 한다고 법으로 정해놓은 거잖아요. 제가 일하는 곳은 최임보다 조금 더 주고 있는데요, 이 일 찾을 때 검색해 보니까 아파트 상가 같은 데에 딸려 있는 독서실 같은 데에서는 정말, 최임 절반이나 1/3만 주고 일 시키더라고요. 노동법 관리 감독이 안 되는 사각지대인 것 같아요."

 

집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가까운 독서실도 있었지만, 버스 타고 15분 정도 가야 하는 곳을 다니는 이유는 이 독서실이 최저임금보다 약 250원 정도 더 시급을 쳐주기 때문이었다. 이곳이 프랜차이즈 법인에서 운영하는 체인점 독서실이라서 법적기준을 준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독서실도 야간노동의 현장. 교대제로 돌아간다.

 

최저임금과 공부준비 외에 영 씨가 이 알바 자리를 택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독서실 관리일도 교대제로 근무 스케쥴이 돌아가는 곳이라, 때로는 오전 시간을, 때로는 오후 시간을“저희는 3교대로 돌아가요. 오픈 조는 8시 반에서 14시까지, 미들은 14시부터 19시 반까지, 그리고 마감 조가 19시부터 새벽 1시 반까지 예요. 오픈-미들-마감 이렇게 돌고, 하루 쉬고 다시 돌아가는 것이죠. 마감일 때는 사람들이 다 퇴실하고 청소하고 가야 하니, 한 2시쯤 나오게 되지요. 저랑 교대로 일하는 총무들이 3명 더 있는데, 다른 분들은 택시를 타고 들어 가지만 저는 심야버스가 있어서 그거 타고 집에 가요. 물론 좀 피곤하긴 하지만... 다음날 쉬니까요. 예전에 직장생활 하면서 하루 종일 사무실 안에서 10시간, 12시간씩 있었던 거에 비해서는 지금이 나은 거 같아요. 요즘처럼 날씨가 따듯하고 좋은 계절이면, 해가 떠 있을 때 뭔가 나가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잖아요. 근데, 막상 일하다 하루가 다 가고, 주말에는 힘들어서 뻗어있고. 물론 지금 하는 일은 임시직 알바이고, 내가 자율적으로 시간을 온전히 조절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요.”

 

교대제나 심야노동이라고 하면 밤새도록 돌아가는 주야 맞교대의 제조업 공장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이처럼 한국사회에서 교대제는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쉽게 볼 수 있는 24시간 편의점은 물론이고, 밤 11~12시까지 열려있는 대형마트/슈퍼마켓도 2개 조 이상으로 돌아간다. 우리가 자주 이용하는 멀티플렉스 상영관에서도 심야 영화를 보고 나오면 자리를 정리하거나 청소를 하는 노동자들이 아직도 일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영 씨가 일하는 곳은 오픈-미들-마감의 3개 시간대로 분할되어 일하는 3교대의 순환형(정해진 근무시간대를 순차로 근무하는 형태) 교대제를 택하고 있다. 24시간 운영은 아니고 새벽 1시 반에 폐문하긴 하지만, 3일에 한 번 마감 조 교대가 돌아오는 날은 교대제로 인한 심야노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시끄럽다’는 컴플레인, 조용히 시켜야 하는 업무

 

독서실은 조용한 분위기가 필요한 곳이니 소음을 관리하는 게 총무의 중요한 일 중 하나이다. 하지만 결국 그 소음을 발생시키는 사람도 독서실 소비자이고 장기 이용권을 끊은 회원이다 보니, 알바 영 씨의 입장에서는 시끄럽게 하는 사람에게 주의를 주는 눈치가 보이는 어려운 일이다. 연필을 사각거린다든지, 책장을 좀 힘차게 넘긴다든지 사소한 행동이 아무래도 독서실에서는, 그리고 독서실 알바에게는 큰일이 되는 것이다.

 

“최임주는 곳 중에서는 육체노동 부하가 있거나, 고객 대면 감정노동 많이 해야 하는 서비스업 쪽 일이 많은데, 여긴 일종의 서비스업이지만 그렇다고 고객 응대 업무나 감정노동을 막 빡세게 해야 하는 건 아니긴 해요. 다른 곳보다 가격이 좀 비싸다보니 성인 이용객이 많아요. 그게 무슨 시험이든 취업 준비하는 분들이지요. 청소년들보다 소음에 굉장히 민감해서 시끄럽다는 컴플레인이 많은 편이에요. 이걸 처리하는 게 저는 좀 어렵더라고요. 한번 가서 말씀드리고 바로 수정되면 좋은데, 안 그러면 컴플레인이 계속되고 저는 가서 똑같은 말하기 눈치 보이고... 저한테 말하다가 정 안 되면 메모를 써 붙이기는 분들도 있는데 그러다 감정 상해서 싸운 분들도 계셔요. 난감하죠.”

 

영 씨가 어려워하는 일 중 또 하나는 화장실 청소였다. 건물 2개 층을 쓰고, 좌석수가 125개 정도가 되다 보니, 가정에서 보다 훨씬 자주 청소해야 한다. 그 일 자체가 힘들다기보다, 혹은 화장실이라는 공간이 더러워서라기 보다, 공공장소를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더럽게 사용하는 이용객들에 화가 나서 그 일이 어렵다.

 

“누군가가 치운다는 생각을 왜 안 할까요? 그렇게 더럽게 해 놓고 나 몰라라 하는 건 잘못된 거 같아요. 다 같이 사용하는 공간이니 관리할 책임 역시 모두에게 있는 것이죠. 책임의 정도가 다를 수 있긴 해도 말이지요. 돈 받고 고용된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게 맞는 걸까, 누군가 내가 다 못하는 부분까지 대신해 이 공간을 깨끗하게 관리해주고 있구나가 아니라, 돈 받고 일하는 거면서 ‘왜 안해?’ 이렇게들 생각하나, 별별 생각을 다 하면서 불쾌해지는 거죠.”

 

최저임금 알바 노동자이자, 미래를 준비하며 일하는 청년 노동자 영 씨. 학자금 대출만 없다면 다음 진로를 준비하는 지금, 굳이 알바 하지 않고,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학자금 대출 없는 세상, 알바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던 그녀는 이렇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

 

“최저임금 받는 일자리 중에서 그래도 독서실 총무 알바는 노동조건이 나은 축이라고 생각해요. 아 물론 최저임금 안 주는 곳도 있긴 하지만요. 우리 독서실은 근태 보너스라고 하면서 출퇴근 시간 정확히 지켜서 근무한 시간이 20~25시간 정도 채워지면 수당을 따로 챙겨주는 것도 있으니까요. 사실 주휴수당을 사장님이 이상하게 왜곡해서 주는 거 같긴 한데, 그냥 참고 있어요. (웃음)”

[A-Z 노동 이야기] "오늘 뭐 먹지?" 말고 "오늘 뭐 먹이지" 고민하는 이들 /2016.4

천안 소재 공장 구내식당 노동자들 이야기


정하나 선전위원



평일, 직장인의 로망은 모름지기 점심시간이다. "오늘 뭐 먹지?" 매일 점심시간마다 김치찌개와 된장찌개 중에, 아니면 짜장과 짬뽕 중에 무얼 고를지 고민한다. 하지만, 구내식당이 있는 회사라면 이런 고민은 줄어든다. 오늘의 메뉴를 식판에 얼마만큼 담을지만 정하면 되니까. 오늘 찾아간 충남 천안에 있는 OO공장에도 구내식당이 있다. 직원이 500여 명인 이 공장은 2교대 근무를 하는 곳이다. 식당에서는 점심 외에 아침 일찍 출근하는 사람을 위한 아침 식사, 오후 야간조에 근무하는 이들을 위한 저녁 식사를 제공한다. 삼시 세끼 동료 노동자들의 식사를 만드는 이들은 어떻게 일하고 있을까?


새벽 3시부터 공장의 구내식당은 돌아간다



식당을 찾은 건 아침 9시가 조금 넘은 시각. 이미 아침 7시에 출근한 직원 150명의 아침 식사가 끝나고 설거지와 홀 정리가 한창이었다. 공장의 식당 일에 배치된 인원은 총 9명이다. 하지만 1일 주방에서 같이 일하는 인원은 6명이다. 1명은 공장 밖에 있는 직원 기숙사를 담당하고, 1명은 홀 정리만 담당한다. 남은 7명은 모두 주방을 담당하는 인원이지만 그중 1명은 전날 야간 당직을 하기 때문에 다음날은 오프이다.


구내식당 식사 담당이 웬 야간 당직이냐 싶지만, 이유가 분명히 있다. OO공장이 바로 교대제 사업장이기 때문이다. 사무직이 대부분인 회사의 구내식당과는 달리, 이곳은 아침 7시 40분에서 16시까지는 오전 근무조가, 16시에서 24시까지 오후(야간) 근무조가 번갈아가면서 공장을 돌리는 2교대 사업장이다. 따라서 식당도 그에 맞춰 돌아가야 한다. 오전조 노동자들이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하기 전, 아침 7시에 식당을 문을 연다.


"아침 식사는 7시부터 시작하지만, 그 전에 밥이랑 반찬이랑 다 만들고 배식대에 올려놓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겠어요? 최소한 2~3시간 전에는 일어나서 해야 하는데, 아침 조리와 배식을 다같이 하려면 근무시간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나겠죠. 그래서 당번을 정해서 한 명씩 돌아가면서 회사에서 자는 거죠. 저기 주방 안쪽에 보면 숙직실이 있어요. 거기서 자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그날 아침 메뉴 다 조리하고 배식대에 차려놓는 것까지 담당해요. 재료 손질이 많이 필요하거나, 전처럼 손이 많이 가는 반찬이 있으면 새벽 3시에는 일어나야 해요. 아침 당번은 그 일까지 하고 퇴근한답니다." (OO공장 구내식당 반장 A씨)


아침 당번이 식사를 다 차리고 나면 나머지 6명 인원이 7시 20분까지 출근을 한다. 출근하자마자 20~30분 정도 그날 할 일을 분담하고, 곧바로 아침 설거지와 주방 정리를 한다. 무거운 스테인리스 식판을 20여 개씩 들고 옮겨서 한번 헹구고 식기세척기에 넣는다. 아침 조리와 설거지로 지저분해진 주방 가재도구와 조리대, 바닥도 싹 치운다. 40~60세의 여성들이 무거운 식판을 나르고,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고 주방 여기저기를 누비는 모습을 보며 '누가 밥 해 먹이는 일이 쉽다고 했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나마 아침에는 식당 이용자가 적어서 수월한 편이라고 했다.


체계적으로 움직이는 주방 시스템, 하지만 쉴 시간은 '제로'

각자 맡은 곳의 청소를 마치면, 바로 12시 점심 식사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 꽤 신체를 많이 쓰는 일인데 점심 식사와 정리시간이 끝날 때까지는 쉴 틈이 전혀 없다. 500인분의 식사를 준비하고 뒤처리해야 하는 이 시간은 대략 오전 10시부터 오후 14시까지. 이 4시간은 OO공장 식당노동자들이 하는 노동이 가장 절정에 이르는 시간이다. 이때는 옆에 가서 말 붙이는 것뿐만 아니라, 분주하게 돌아가는 주방 안에서 일도 안 하면서 같이 있는 게 매우 송구스러울 정도였다.


"다리 많이 아프죠. 집에서 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을 준비해야 하고, 큰 조리도구 써가면서 해야 하고. 근데 보시다시피 쉴 틈이 전혀 없어요. 무조건 12시까지는 (점심밥 먹을) 모든 준비가 완료되어 있어야 하니까요. 비빔밥같이 재료가 다양하게 들어가고 손질을 많이 해야 하는 메뉴가 있거나, 오늘처럼 철판에 내도록 부쳐내야 하는 동그랑땡 같은 게 있으면 아주 죽음이에요. 특히 전 요리 같은 건 여름에는 최악이겠죠. 재료 다듬어서는 것도 압권이지만, 철판이 너무 뜨거운데 주방에 달리 냉방시설을 달기 어려우니... 정말 힘들지요." (OO공장 구내식당 노동자 B씨)


주방에서 하는 일이 단순할 거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조리' 부문만 해도 모든 메뉴의 재료 전(前)처리는 별도의 공정이며, 큰 솥을 쓰는 밥과 국은 따로, 반찬 3~4종류의 조리도 다 각각 조리법이 다르다. 6명의 인원이 제한된 시간에 식사(점심) 500인분을 만들어야 하고, 재료 손질과 조리의 난이도가 매 끼니 달라서 누구 한사람에게 어렵고 힘든 일이 몰리지 않도록 손질·조리·보조 당번이 매일 다르게 짜인다. 게다가 저녁 식사 당번 2인, 숙직하고 다음 날 아침 식사 준비하는 당번 1인도 매번 돌아가면서 담당해야 하니 순서를 잘 맞춰야 한다. 이처럼 주방은 생각보다 훨씬 더 체계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제일 바쁜 점심시간은, 주방에서 조리하는 것뿐만 아니라 홀 청소도 싹 해놓고 식판이랑 수저들, 음식들까지 잘 올려놔야 해요. 12시에 배식 시작하고 직원들이 밥 먹을 때 떨어진 반찬이랑 식기 계속 채워 넣어놓고. 그렇게 500명의 식사를 마치고 1시 반쯤부터 저희도 점심 먹어요. 점심 먹기 전까지는 아침 7시쯤 출근해서 7시간 정도는 꼬박 서서 분주하게 일하는 셈이죠." (OO공장 구내식당 노동자 B씨)


그래도 노동조합이 있어서 주방 시설과 환경이 좋아졌다

이른 시간 출근했기는 하지만 그래도 오전 시간에는 비교적 안색도 좋고, 표정도 밝은 편이었던 구내식당 노동자들은 점심 식사 시간이 마칠 때쯤 되니, 그야말로 기진맥진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20년 넘게 이곳에서 일해 온 반장 A씨도, 오전에는 웃는 낯으로 주방 전체 돌아가는 상황을 상세하게 일러 주었는데, 고된 일을 몇 시간 하고 난 오후가 되니 어느 순간부터는 마치 몸 어딘가에 통증이 있는 듯, 미간을 찌푸린 채로 일하고 계셨다. 


소위 건설현장 같은 곳처럼 육체 하중이 많은 노동을 하는 분들이 처음 몇 주는 힘들어도 나중에는 '인이 박여서'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의 몇 배가 되는 일을 해낸다는 말이 있다. 정말 인이 배였다 할지라도 왜 그 등짐이 무겁지 않겠는가. 이곳의 식당 노동자들도 짧게는 2~3년부터 길게는 20여 년씩 일했기 때문에 인은 충분히 배겼을 테지만, 하루 약 1천 명의 끼니를 정해진 시간 안에 만들어 내고 치우는 일은 해내며 생기는 몸의 부담은 점점 늘어가고 있다.


"저는 여기 온 지 3년 조금 안 되었어요. 그 전에는 어린이집 주방일 했었는데, 거기하고는 차원이 다르더라고요. 아무래도 애들 먹는 양이랑 성인들 먹는 양이 다르니까 더 그렇겠죠. 저는 아직 크게 다치거나 아픈 적은 없어요. 물론 파스는 늘 붙이고 다니긴 하지만요. 근데 오랫동안 일한 언니들 보니까 다치기도 하고 몸이 아파서 쉬기도 하고 그러시더라고요. 사고야 뭐... 주방이 밥하는 데라 안전할 거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불도 쓰고, 물도 쓰고 하니 말이죠. 우리 주방 바닥은 처리를 잘해놓긴 했지만 그래도 저쪽에 계신 언니는 한번 미끄러져서 팔 부러지고 3개월 쉬셨어요. 그리고 아까 전 부치던 철판 같은데... 거기에서 일하다 보면 얼굴이나 팔에 기름 튀는 건 뭐... 사고도 아니죠. 칼질도 많이 하고 무거운 식자재들 솥단지에 옮기고 주걱으로 젓고 하다 보니 손목 염증이나 어깨에도 문제가 많이 생겨서 몇 개월씩 쉬시는 경우도 많아요." (OO공장 구내식당 노동자 C씨)


그래도 OO공장은 노동조합이 영향력이 있어서 공장 노동자의 작업 환경뿐만 아니라, 몇 명 되지 않는 식당 노동자에 대한 처우와 노동 환경도 많이 개선되었다고 한다. 최근 많은 학교와 회사의 구내식당들이 외주·위탁을 하고 있어서 노동조합이 있다 하더라도 식당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을 고려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이 공장의 경우 노동조합에서 꼼꼼하게 조합원들의 상황을 살피고 있다니 다행이었다.


"그래도 우리 공장은 계속 작업환경을 몸에 무리가 안 가게 바꿔줬어요. 여기 노동조합이 잘 되어 있어서, 조합에서 나와서 식당·주방에서 어떻게 일하는지 자주 물어보고, 사진도 찍어가고 그러더라고요. 무거운 식기류나 쓰레기 버릴 때 편리하게 경사로도 곳곳에 잘 되어 있고, 수레도 높낮이까지 조절하는 것으로 바꿨고. 주방 안에서 물을 많이 쓰니까 사실 예전엔 미끄러지기도 많이 했는데, 장화도 좋은 것으로 지급하고 바닥도 특수 처리를 해서 이제는 살짝 '미끌' 할 때는 있어도 넘어지거나 하는 일은 없어요." (OO공장 구내식당 반장 A씨)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40~50대의 식당 노동자들이 몸의 나이에 맞게 적절한 노동량으로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으려면 인력 보충이 필요해 보였다. 구내식당 노동자들은 "일하면서 뭐 이만큼도 안 힘들면 어떡해, 이만하면 많이 좋아진 거야"라고는 했지만 말이다.

[A-Z 노동이야기] 카메라로 먹고 사는 남자 /2016.3

카메라로 먹고사는 남자

- 영상 촬영기사 겸 기획·편집자, 김병국 씨 이야기


정하나 선전위원




매서운 바람이 불기 시작한 초겨울 어느 날 저녁이었다. 그날, 이병국 씨는 삼각대에 카메라를 얹어놓고 길거리에 펼쳐진 집회 풍경을 영상으로 담고 있었다. 그런데 햇볕이 따사로운 가을에나 입을 법한 홑겹의 얇은 점퍼를 입고 있기에, ‘추운 날 밖에서 가뜩이나 오래 있어야하는데, 왜 이렇게 춥게 입었냐?’고 물었다.


벌써부터 두꺼운 외투 입으면 겨울 못나요. 야외에서 촬영할 때가 많은데, 이정도 추위에 파카입기 시작하면 진짜 추울 때 입을 옷이 없거든요. 겨울을 나기위한 제 나름의 적응법이지요.”


군인도 아닌데 자체적으로 혹한기 적응 훈련을 하고 있던 그는 ‘1인 미디어활동을 하는 이병국 씨이다. 일명 미디어 뻐국으로 불리는 그는 기성 언론이 잘 조명해 주지 않는 이 사회의 후미진 곳의 이야기를 찾아다닌다. 회사에게 부당한 처우를 받고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노동자들, 세월호 유가족이나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처럼 사회구조적인 이유로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제작해서 유투브 같은데 업로드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일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특별한 보수 없이, 병국 씨가 관심있는 현장에 가서 자발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병국 씨가 어떤 다른 어떤 일을해서 먹고 사는지궁금했다.

 

카메라로 하는 노동, 포인트를 잘 잡아야 한다!

몇 해 전까지는 사실, 모 구청 인터넷 방송팀으로 들어가서 사진기사 일을 했었어요. 지자체마다 그런 홍보 방송 팀이 있을 거예요. 주로 구 현안이나 정책홍보자료 같은 걸 다루었었죠. 관련 사진을 찍어서 구청 홈페이지에 올리기도 하고, 각 언론사에서 요청하면 보내주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렇게 한 5년 정도 일하다 돈 좀 모으고 그만 뒀어요. 지금은 음... 말하자면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죠. 제가 작업실로도 이용하고 있는 영상 프로덕션의 사장님이 주는 행사촬영일을 주로 하고요, 가끔 시민사회 단체에서 영상기획을 통으로 맡기는 프로젝트가 들어오느데 이런 경우엔 처음 기획부터 촬영, 편집까지 전 과정을 제가 다 맡아서 하는 거지요.”


촬영만 하는 일은 말 그대로 촬영만 해주면 되는 일이다. 가령 단체나 기업에서 진행하는 내부 교육이나 워크샵에 따라가 행사진행 전부를 찍어주는 일이다. 한두 시간이면 끝나는 일도 있지만, 어떨 때에는 몇박 몇일씩 길게 따라다녀야 할 때도 있다. 이렇게 길어지면 출장비 포함해서 촬영시간을 더하여 인건비를 책정해 준다고 했다.


최근 00카드 신입사원 연수에 따라갔었어요. 그때는 영상촬영은 아니고 스냅사진이랑 단체사진 찍어주는 일을 했어요. 초등학교 학생들 수학여행 따라가서 사진 찍어주는 일도 종종해요. 아이들 촬영할 때가 좀 힘들기는 해요. 일단 진~~짜 말을 안 듣잖아요. 선생님 말씀도 잘 안 듣는데, 처음 본 아저씨 말을 듣겠어요? 그래서 이동하는 버스에서부터 친하게 말도 걸고 그래요. 한 반에서 1~2명하고만 일단 친해지면 되고, 물론 선생님들도 아이들 인솔하고 포즈잡고 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시지요. 그리고 수학여행처럼 이렇게 하루동안 행선지가 다양한 촬영장에서는 각각의 장소에서마다 기념촬영을 잘 해야 한답니다.”


듣다보니, 행사 촬영 일을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해왔던 병국 씨의 노하우가 있었다. 그가 설명하기를, “촬영을 잘 한다는 건, 첫째 용도에 맞게 촬영한다!둘째 다양한 각도로 지루하지 않게 찍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영상이건 사진이건 간에 찍은 기록물에 포인트 혹은 힘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인물이나 장소의 포인트를 놓치지 않고 적절하게 클로즈업을 해 서 영상(혹은 사진)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에너지를 느낄 수 있게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결과물이 좋게 하기 위해서, 저는 일단 일을 부탁한 분께 어떤 걸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지 꼭 물어봐요. 아까 초등학교 졸업앨범 작업에서는 아이들 표정이 예쁘고 생동감 있게 잘 나오는 게 제일 중요하죠. 단체사진 열 세우는 것부터 시작해서 포즈 취하는 것도 중요하고, 너무 멀지 않게 인물중심으로 가깝게 찍는 것도 중요해요. 성인들이 모이는 단체/기업 행사에서는 음... 높은 사람들, 간부들 얼굴이 잘 나오게 찍어주는 게 아주 중요해요. (웃음)”


어떤 업종이든 프리랜서들이 그렇겠지만, 병국 씨도 일이 고루고루 있지 않아서 힘들다고 했다. 야외활동하기 좋은 봄·가을, 5월이나 10월에는 일이 몰리지만 여름에는 일이 없어서 완전히 쉬기도 한다. 가뜩이나 구청에서 고정적인 월급을 받을 때보다는 수입이 많이 줄어서긴축재정으로 일상을 사는 중이다.


저는 그래도 제게 일 나눠주시는 프로덕션 사장님이 일반 시장가보다 촬영 인건비를 많이 주시는 편이에요. 하지만 따박따박 월급 받을 때랑은 수입이 정말 한 1/5 정도로.. 많이 차이나긴 해요. 촬영 일이 많이 걸어 다녀야 하니 아마 다른 일반인 보다 신발 밑창이 빨리 닳는 편이거든요. 예전 같으면 진즉 버리고 새로 살텐데, 요즘엔 좀만 더 신자하지요. 그래도 프리랜서 생활 약 2년 만에 입에 풀칠하면서 살 수 있으니 성공적이다라고 자평하는 중이에요.”

 

다분히 시간집약적인 영상 편집의 노동

이처럼 다른 스튜디오나 프로덕션을 통해 받아 하는 촬영만 하는 일은 편한 일에 속한다. 급여는 좀 싼 편이긴 해도, 찍기만 하고 편집은 안 해도 되니 시간을 많이 잡아먹지도 않고 고심할 일도 없기 때문이다. 병국 씨는 이런 단순 촬영기사 외에도, 영상 하나를 통째로 만들어 주는 기획·편집 일도 가끔씩 하고 있다.


영상 하나를 통으로 만들어 주는 일이 촬영일 보다 뿌듯하고 재밌고, 돈도 물론 더 받아요. 근데 정말, 시간을 엄청 써야 하는 일이에요. 제가 자발적으로 하는 1인미디어 활동 영상의 경우에는 대부분 기자회견이나 인터뷰를 찍은 보도용이 많은데요, 6~7, 긴 것은 12분 정도 짜리 만드는데 하루 정도 걸려요. 근데 일정한 메시지를 담고 풀스토리로 짜여진 영상은 촬영기간도 훨씬 길고 그걸 편집하는 시간도 더 드는 게 당연하겠죠.”


영상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치게 된다. 계약 주체와 기획 회의를 하면서 영상의 주제와 방향성, 포맷 등을 미리 정한다. 이 단계에서 어떤 그림을 촬영할지, 누구를 인터뷰 할지도 대략적으로 정하고 본격적인 촬영에 앞서 관련 자료를 모으고 인터뷰이나 장소를 섭외한다. 그리고 촬영과 편집을 하고 몇 차례 시사와 수정을 거쳐 최종작품(결과물)을 확정한다. 이 과정 중 아무래도 가장 시간을 많이 쓰는 게 편집이다.


저는 촬영 전에 대본을 만들거나 메모를 치밀하게 하거나 하는 타입은 아니에요. 적은 걸 보면서 편집하기보다, 머릿속에서 생각한 주제를 바로바로 편집하는 편입니다. 편집할 때 제일 처음에는 촬영한 파일을 한번 쫙 봐요. 집단적으로 일하는 곳에서는 인터뷰 부분은 따로 녹취를 풀어주는 분도 있다고 하지만 저는 혼자서 다 해야 해요. 어쨌든 주제랑 잘 맞는 어떤 포인트가 되는 부분을 잘 따야 하는데, 제가 하는 작업에서는 인터뷰부분이 주 포인트가 될 때가 많지요. 그래서 촬영 들어가기 전 인터뷰이에게 할 질문을 잘 준비하는 게 아주 중요하답니다.”


찍은 영상 파일들을 기획회의에서 정한 방향성과 스토리라인대로 오리고 붙이고를 반복한다. 그 다음에는 배경음악을 까는 등 사운드 작업을 하고, 자막처리도 한다. 이후에는 장면전환이나, 영상 주요지점에 볼거리 요소를 더하는 그래픽 효과를 집어넣는다.


저희는 소위 때깔을 좋게만든다고 표현해요. 장면전환이나 그래픽 효과 같은 걸 넣어주는 게 또 시간이 많이 드는데, 기본적인 효과 말고 보기에도 좋고 전달력 있는 그래픽을 넣으려면 이걸 만드는데도 공이 많이 들어요. 일반적인 컷 편집 외에 2D 그래픽 같은 걸 넣으면서 볼거리를 추가하지요. 그래픽을 얼마나 잘 쓰느냐에 따라 영상질이 많이 달라지니 신경을 쓰는 게 좋지요."


그래픽 작업이 끝나면 전체적으로 세부 수정을 하면서 마무리 작업을 하면 편집 완료, 결과물이 1차 완성된다. 최종판으로 확정하기 전까지 영상을 의뢰한 쪽의 만족도를 물어야 하기 때문에 2~3회 정도의 시사 과정을 밟고 난 후, 병국 씨의 일은 그렇게 마무리 된다.

 

다큐 감독을 꿈꾸는 그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창작 노동의 특성상 순간순간 스트레스가 없을 순 없다고 한다. 하지만 만들고 싶은 다큐 작품을 찍을 그 날 까지, 프리랜서 노동자로 일 몰림 없이 보다 고루고루 안정적으로 촬영노동을 하길 바라는 그의 마지막 말을 들어보자.


이쪽 일 하는 분들이 대부분 그렇듯, 저도 어려서부터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극 영화를 하고 싶었는데, 갈수록 다큐가 좋아지더라고요. 사실 한 10년 전에 촬영부 막내로 들어가 영화 일을 해본 적 있었는데, 그 때 ()영화판에 대한 환상이 깨진 것도 있어요. 한 달에 3일도 겨우 쉬고 한 40만원 받고...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악조건에서 일했는데, 과실은 위에서 다 따먹는 거 보면서 실망감이 커졌죠. 어쨌든,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일에 재미를 느꼈고, 사람을 찾아다니고 만나는 일이 저는 갈수록 더 재미있어요. 50대 중반까지는 잘 버티면서 제 장편 다큐을 만드는 게 꿈이자 희망사항이에요. 유투브에 올리고 있는 짧은 영상 말고, 장편으로요. 요즘에도 계속 준비하는 중입니다

[A-Z 노동이야기] ‘기술자’라고 쓰고 ‘노가다’로 막 불린다 30대 건설노동자 진혁 씨(가명) 이야기 /2016.2

 ‘기술자’라고 쓰고 ‘노가다’로 막 불린다 30대 건설노동자 진혁 씨(가명) 이야기



정하나 선전위원



흔히 힘들고 어려운 일을 노가다라는 일본어로 표현하곤 한다. ‘행동과 성질이 거칠고 불량한 사람을 속되게 이르거나, 이것저것 가리지 아니하고 닥치는 대로 하는 노동(막일)을 한다고 사전에 나와 있다. 그래서인지, 작업 공간이나 도구의 특성상 몸을 많이 쓰고 거친 노동이 많은 건설현장의 일을 노가다라고 자주 표현한다. 그러나 건설업 노가다가 정말 닥치는 대로 아무거나 막 일하는 그런 노동일까?


우여곡절 끝에 발을 들인 건설현장

공사현장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30대 젊은이인 오진혁(가명) . 그는 요즘, 모처럼 큰 공사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일감이 있는 곳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는 게 예사지만, 최근 몇개월은 대형 건설사가 짓고 있는 고층건물 현장에 투입되어 수도권에서 일하고 있다. 현장 일을 하는 대다수가 40~50대라서 그는 아주 젊은 축에 속한다. 진혁 씨 연령의 사람들은 단기간 돈을 벌러 잠깐 알바하러 오는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는 이미 현장에서 일련의 기술을 가지고 일하는 기공이 되었다.

저희 팀이 하는 일은 건물 내부 벽, 그러니까 벽체와 천장을 만드는 일이에요. 제가 젊은축이지요. 제 나이대 사람은 거의 없어요. 저도 뭐... 처음에 이 일 시작할 때는 우여곡절 끝에 돈이 필요해서 시작하게 되었죠.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게 장래희망()인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어쨌든, 이 일한 지 6년 쯤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용역부터 시작했죠. , 인력 사무소 있잖아요. 거기서 일 받아서 청소도 하고, ‘곰방이라고 부르는 등짐 지는 일도 하고 요. 빠루(굵고 큰 못을 뽑을 때 쓰는 연장) 들고 철거하는 일도 하고 그랬어요. 지금은 15명 정도가 현장에 함께 움직이는 에 속해 일해요. 공사현장에 가서 벽체 인테리어, 천장만 딱 담당하는 그런 팀이죠. 건물 외벽 말고 내부에 있는 벽들은 다 만드는 거예요.”

 

초짜는 데모도, 숙련노동자는 기공

자주 바뀌기는 하지만 거의 10~15명 정도로 유지되는 이 팀 안에서 진혁 씨는 설계도면을 읽을 줄 아는 기술자이다. 물론 벽을 세우는 그 자체의 노동도 기술이 필요하긴 하지만, 현장에서는 설계도면을 볼 줄 알고 도면대로 벽을 세울 위치를 알고 일할 수 있는 기술을 더 숙련된 노동으로 쳐준다. 기공은 바로 이런 숙련기술을 갖고 있는 노동자로서, 현장에서 주도적으로 일하며 배우려고 하면 1~2년 정도 후 준기공시절을 거쳐 될 수 있다. 현장 경험이별로 없고 이 숙련기술이 없는 이는 소위 초짜, ‘데모도(조공)’라고 하는데, 10년차가 되어도 데모도로 남을 수도 있다

기공이냐 데모도냐, 경력에 따라 당연히 임금도 차이가 나요. 기공은 요즘 능력에 따라 12~15만 원 사이를 받고요, 준기공은 평균 10만 원 정도. 데모도는 제가 일 시작할 때만 해도 65천 원이었는데 지금은 좀 올라서 85천 원 부터 받을 겁니다. 이 노임은 하루치 일당(‘이라고 부름)으로 쳐주기도 하지만, 물량 당 정하기도 해요. 헤베당 얼마, 이렇게요, 헤베는 평방미터()를 일본식으로 부른 거예요. ‘데모도’, ‘오야지’, ‘데나오시’, ‘야리끼리현장에서 이런 일본어를 자주 쓰는데 무슨 뜻인지 모르겠죠? 저도 처음엔 못 알아들었어요.”

진혁 씨가 이쪽 판에 들어와 했던 용역으로 시작했던 곰방이나 철거 일 같은 경우, 특별한 기술 없어도 할 수 있는 단순노동이었다. 그러다가 지금의 팀에 소속되어서 벽 세우는 일을 배우고, 데모도에서 기공이 된 것이다. 설계도면을 보는 일은 딱히 누가 앉혀놓고 가르쳐 준 것은 아니다. 일하면서 어깨너머로 동료 형님들에게 배운 것이다. 물어보면 잘 가르쳐 주는 사람들도 있지만, 웬만해선 기술을 안 가르쳐 주려고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힘들게 일하면서 배운 기술이고 이게 자신의 밥그릇이니 남에게 쉽게 주고 싶지않은 심리가 있었던 것 아니겠냐고 그는 말했다.


오야지에서 오야지로 연결된 구조, 임금사고 잦아

품당이든, 헤베 물량 당이든, 계약된 노임 안에 우리 공구비, 식대, 숙박비용, 차량비가 다들어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실수령액은 그 부대비용을 제하고 오야지(하청을 준 사업자) 수수료 떼고 받게 되는 겁니다. 한 오야지가 여러 팀을 데리고 한 현장에 들어가요. 근데 오야지 밑에 한 팀 중에서 또 물량 대비 사람이 딸리면 또 다른 소수의 팀을 데리고 머릿수를 채워서 계약을 하기도 하지요. 이때 한 오야지 밑에서 같은 노임으로 계약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자기가 또 작은 오야지가 되어서, 데리고 온 팀에게 일정 수수료를 떼고 노임을 전달하는 수도 있죠. 우리는 이렇게 하청에 하청으로 내려가면서 오야지가 수수료를 떼는 걸 똥 떼먹기라고 부릅니다.”

노임에 대해 묻다가 건설산업의 다단계 하청구조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레 나왔다. 진혁 씨가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려가며 여러 번 설명해 주었지만 이해가 쉽지가 않을 정도로 복잡했다. 건물 하나를 만들 때 내장, 설비, 전기, 외장으로 크게 영역을 구분할 수 있고 각 부문 마다 또 미장, 목공, 도배 등등 여러 가지 전문영역으로 나뉜다. 이를 채우는 노동자들이 나뭇가지 갈라지듯 오야지에서 오야지로 갈려 엮어져 있는 셈이다.

보통 아침 7, 동절기엔 7시 반 출근해서 오후 5시 반에 끝납니다. 토요일은 당연히 다 나가고, 일요일도 물량에 따라 안 쉬고 쭉 일할 때도 많습니다. 공사현장 근처로 숙소를 잡아줄 때도 있지만 특히 지방 현장의 경우 숙소랑 거리가 멀 때는 정말 고역이죠. 저도 예전에 일반 직장 다닐 때는 새벽 2~3시까지 깨있고 그랬는데, 이 일 시작하고서는 술자리가 있어도 9시엔 끝내고 10시 전에는 자요. 그래도, 저는 이 일이 할 만한 거 같긴 해요. 육체적으로 물론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일 안 끊기고 착실히 하면 벌이도 되는 편이고. 근데 오야지가 돈안 주고 날라서 임금 사고 날 때가 종종 있긴 합니다. 일 자체보다 임금 사고 있을 때가 제일힘들어요. 지금 현장처럼 시공사가 대기업이면 거의 100% 보전을 해주는데, 작은 현장은 짤없거든요. 오야지 찾아가서 깽판이라도 쳐야 하는데. 저도 몇 번 엎으러 간 적 있어요.”

 

큰 현장일수록 안전관리를 잘 한다고 하지만...

이미 잘 알려져 있다시피 건설현장은 위험하고, 실제로 산재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산업이다. 2014년 산재 사망 노동자 1,850명 중 486명이 건설업 종사자이다. 산업별 재해사망자중 가장 많다. 진혁 씨가 건설노동자로 직접 경험한, 각종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현장의조치가 있는지 구체적으로 물어보았다

큰 건설 현장일수록 안전 관리를 더 철저히 하려는 거 같긴 해요. 현장 투입되기 전 기초안전교육 4시간 받고 들어가고요, 11회 정기 안전교육도 받아야 합니다. 대기업이 시공사로 있는 큰 현장은 안전관리자가 까다로워요. 허가받은 곳에서만 작업할 수 있게 되어있고, 공구도 허가 스티커 발부받은 것만 사용할 수 있게 해요. 근데 이런 큰 현장은 많지가 않죠. 공장 짓는 천안수원 쪽이나 영종도 쪽, 지방에 마트 몇몇 곳 정도.”

안전점검이 비교적 철저하게 이뤄지는 대기업 발주의 현장은 그리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최근 보도에 따르면 안전 관리는 외주 하청을 주기 때문에 비정규직인 안전담당자가 실효 있는 조치를 취하기 어려울 것이다. 타 업종에 비해 일터의 물리적 환경이 더 위험한데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다쳤을 때 산재처리를 받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심각하게 다치는 일이 아닌 이상, 산재처리를 요구하면 공사현장에서 바로 퇴출될 수도 있다고 진혁 씨는 담담하게 얘기했다.


막노동이 아닌 필요를 채우는 노동인 건설노동자

진혁 씨를 인터뷰하며 최근 보도된 호주 건설노동자들의 임금에 대한 기사가 떠올랐다. 건설업 사용주 이익단체인 호주건설협회호주 일부 지역 비숙련 건설 노동자들의 임금이 너무 높아서 수익이 안 난다라며 불평했다는 내용이었다. 읽어보니 현지 엔지니어나 경찰, 교사보다 높은 수준이라고 나와 있었다. 그걸 보며 호주에서는 건설노동자가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교사나 엔지니어같이 한 특정 영역의 전문가로 그 노동을 평가하다고 있구나 싶었다. 임금은 단순히 금액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노동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그 사회의 관점이 임금 액수라는 숫자에 녹아 있는 것이다.

건설현장의 일은 아주 힘든 일이란 인식이 보편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꿈꾸는 노동과 직업이 아니기도 하다. 소위 3D업종으로 분류하며 그 일이 얼마나 힘들고 하기 어려운 일인지 표현하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쁘거나 천한 일은 아니다. ··주를 인간생활의 3요소로 부르는 만큼, 주거공간을 만드는 일은 세상에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내가 하지 않고, 못하는 그 일을 누군가의 수고로운 노동이 채워주고 있다. 우리가 막노동이니, 노가다니 하며 부르는 그 노동이 말이다.

 

[A-Z 노동이야기] 도서관에 가득한 책, 누가 다 채운 걸까? /2015.12

도서관에 가득한 책, 누가 다 채운 걸까?

- 주제전문 사서에게 듣는 도서관 노동이야기

 

 

정하나 선전위원

 

 

 

 

 

예전부터 궁금했다. 한 도서관 안에는 몇 권의 책이 있을까? 도서관의 그 많은 책은 누가 선별하고 구매해서 채워놓은 것인지, 그리고 책등마다 쓰인 암호 같은 번호는 누가 다 붙이는 것인지 말이다.

 

"한국의 일반 대학도서관 같은 곳을 기준으로 하여 대략 50만~100만 권 정도의 책이 있어요. 도서관의 성격에 맞게, 이용자의 필요에 맞게 책 등 각종 자료를 수집하고 채워 넣는 일, 바로 사서가 하는 일이에요. 어떻게 보면 각 도서관에 일하는 사서가 어떤 책을 골라서 채워 넣는지에 따라 그 도서관의 성격이 디자인된다고도 할 수 있겠죠?"

 

지난 11월 19일 서울에서 만난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 사서 김인희(가명)씨가 시원하게 대답해 줬다. 십만여 권의 책들 속에서 일하는 김인희씨는 도서관에서 '주제전문 사서(주제 사서)'로 근무하고 있다. 사서는, 많은 자료와 문헌을 잘 조직해서 정보이용자가 필요한 자료를 잘 찾을 수 있도록 제공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중 주제전문 사서란, 특정 주제에 관한 자료를 전문적으로 다루고 제공해 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다.

 

전문도서관? 주제전문 사서?

 

"저는 사실, 문헌정보학을 전공한 사람은 아니에요. 원래는 법학도였지요. 졸업한 지 꽤 지난 후에 사서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사서교육원에서 1년간 문헌정보학이랑 도서관학에 관련된 공부를 하고 사서 자격증을 취득하였어요. 주제 전문사서는 별도의 자격증을 따야 하는 건 아니에요. 제가 일하는 법학 전문도서관처럼, 한 주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곳에서 특히 주제 사서를 필요로 하곤 하는데, 그때 채용요건으로 나오는 걸 참고해 말씀드리자면, 정사서 자격증을 가진 사서 중 학사·석사를 문헌정보학 외의 전공을 한 사람들이 주로 합니다. 다루는 주제에 대한 심화한 지식이 있어야 하니 그런 것이지요. 저 같은 경우는 말씀드렸다시피 법학·법률을 좀 아는 쪽이니 여기에서 법학 주제 사서로 일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인희씨가 일하는 곳은 '법학 전문도서관'이라 일반 도서관이랑은 다소 다르다. 해당 도서관은 현재 약 13~14만 권 정도의 책을 소장하고 있다. 물론 다른 분야의 책도 갖춰놓기는 했지만, 법학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에게 전문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곳이라 아무래도 법학 자료의 비중이 더 높다.

 

"법학 분야라고 해도 단순하지가 않죠. 헌법·형법·민법·상법·행정법·노동법·세법 등 엄청 종류가 많아요. 여러 가지 법학 자료 중에서 꼭 알아야할 핵심적인 게 있을 텐데, 근데 '핵심적으로 알아야 할 자료'라는 것은 그 도서관을 찾는 이용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죠.

만약 이용자가 일반 시민이라면 '생활법률'과 같은 실용 자료를 많이 갖춰야 하겠지만, 저희처럼 법학 전문도서관은 법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전문가를 위한 곳이니 또 다르지요. 이처럼 이용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그 도서관이 제공해야 하는 자료의 종류와 정보의 우선순위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한국에는 약 70여 개의 전문도서관이 있다. 모든 분야의 책을 되도록 골고루 보유하고 있는 일반 도서관과 달리, 전문도서관의 경우 인문·철학·과학·의학 등 특정 분야 전문 서적과 자료를 집중적으로 소장하고 있다. 그래서 해당 분야 연구자와 같이 특정 이용자들을 위해 운영을 하는 경우가 많다. 요즘에 많은 부모에게 주목받고 있는 어린이도서관 역시 전문도서관의 한 종류이다. 방송사 안에 있는 음악자료실 역시 음악 전문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학들이 중앙도서관 외 몇 학문 과목을 특화해 해당 단과 대학 안에 전문도서관을 두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그 외에도 로펌이나 의료기관, 미술관 혹은 기업들에서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자료를 모으고 검색할 수 있게 전문도서관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도서관을 채우기 위해 사서가 하는 일

 

"대부분의 도서관 업무는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수서·정리·봉사 이렇게요. 첫째 수서(收書) 업무는 어떤 도서나 자료를 갖출 것인지 기준을 가지고 선별하는 일입니다. 사서 업무의 꽃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도서관의 성격은 수서하는 사람에게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거든요. 신간 도서나 자료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는 것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도서관에 이미 있는 자료가 무엇인지도 잘 알아야 하겠지요. 그래야 정보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이용자들이 원하는 자료를 고루고루 갖출 수 있게 되니까요."

 

수서 업무는 팀장급 되는 사람이 주로 맡는다.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직접 수서를 하기도 하지만, 이용객들에게 부정기적으로 신청도서를 받아 책을 고르기도 한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전문도서관으로서 보유도서를 잘 선별하는 것이므로, 일반적인 법학 도서 외에도 다른 곳에서 구하기 어려운 전문자료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수서를 잘해서 들어온 책들을 이용자들이 쉽게 찾아 이용할 수 있게끔, 잘 분류하고 종류별로 '정리'하는 업무가 있어요. 청구기호라고 해서 도서관에서 빌리는 책들 책등에 라벨링이 되어 있잖아요. 청구기호 중에서 제일 먼저, 책의 내용에 따라 주제를 정하는 분류기호를 부여하고 전산 목록화 하는 일도 바로 정리업무이지요. 자료가 단행본인지, 시청각 자료인지, 정기간행물인지 등 자료 성격에 따라 별치기호를 달아주고, 한국 십진분류표(KDC) 혹은 듀이 십진 분류법(DDC, 국제공인 기준)을 기준에 따라서 자료의 주제에 맞게 분류번호를 주는 것이죠. DDC를 예를 들면 사회과학은 300번대인데, 그중에서 법학은 340번대이지요. 주제에 잘 맞게 이 분류를 잘해서 정리해 주는 게 아주 중요해요. 그래야 전산 검색어를 넣어 문헌을 찾을 때도 이용자들이 쉽게 찾을 수 있거든요. DDC 분류기준을 따르는 대학도서관의 책인데 KDC를 따라서 정리·분류를 했다든지, 미국의 계약법을 다룬 책인데, 민법 안에 계약법이 속해 있는 한국의 법체계에 맞춰 분류기호를 틀리게 넣는다든지 하면 안 돼요."

 

인희씨는 수서나 정리 업무보다는 데스크에 앉아 주로 도서관 이용자들을 직접 응대하는 봉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도서관 장서 중 이용자가 원하는 자료를 절차에 따라 대출해 주고 반납을 확인하는 것, 도서관의 전반적 이용안내를 해주는 것도 담당한다. 이 외에 전문도서관의 주제 사서로서 '참고' 봉사 업무도 한다. 이용자에게 각 주제에 관한 자료 조사를 도와주는 것이다.

 

"대출·반납이나 서가 정리 같은 일들은 사서 아닌 단기계약직 분들이 주로 많이 하세요. 제가 하는 일 중 참고 봉사 업무는 저희 도서관의 주 이용객인 연구자들이 연구주제에 맞춰 요청하는 자료를 찾아주는 일이에요. 한 달 평균 50~60건 정도 요청이 있는데 법학 주제사 서인 만큼 제가 무엇보다 신경 써서 잘해야 하는 일이지요. 예를 들어 이민법 자료를 달라고 하시는 선생님이 있으세요. 그럼, 저는 한 번 더 질문해요. '혹시 연구전공이 어떻게 되나요?'하고 여쭤보면 '헌법 중 행복추구권 쪽으로 논문 쓰려고 합니다' 등의 대답이 나오거든요. 그럼 그 주제에 맞춰서 키워드 세부검색해서 나오는 자료리스트랑 파일을 직접 전달해 드리는 것이지요."

 

책을 위해 존재하는 도서관에서 일하며

 

고객 응대를 하는 서비스 업무가 주는 피로도 왜 없겠느냐마는, '더 친절하게 이용자를 대하라'라고 하는 상사의 말이 인희씨에게는 그렇게 부대끼는 업무지시는 아니라고 했다. 현장업무 자체에서 오는 스트레스나 힘듦보다는 자료보존에 최적화되어 있는 공간의 특성이 주는 불편함이 오히려 거슬린다.

 

"도서관들이 대부분 밤늦게까지 열지만 몸에 무리가 오는 교대근무나 장시간 노동을 하는 것은 아니에요. 저희 도서관은 주간 조가 9시~오후 5시까지 일하고 야간 조가 오후 2시~오후 9시까지 근무하도록 되어 있는데, 저는 주간 조 전담으로 일해요.


도서관 내부 온도습도 같은 게 사람이 아니라 책에 맞춰져 있어요. 그래서 여름에 너무 춥거나 겨울에 너무 건조하거나 이런 게 좀 불편하지요. 그리고 손목이 좀 나가는 경향이 있죠. 책 중에서도 법전이 얼마나 무겁습니까? 그걸 자주 드니까 아무래도 좀 그런 게 생기죠."

 

정보에 대한 호기심이 많고, 현재 일하고 있는 곳에서 집중적으로 다루는 법학 자료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은 인희씨는 전반적으로 사서 일을 즐기고 있었다. 더욱이, 특정 자료가 필요한 이용자에게 적절한 연구자료들을 잘 찾아서 제공하고 도움을 주는 것이 그녀의 기쁨이자 보람이라니 더욱 그렇게 보였다. 인희씨는 앞으로 소장자료를 선별·선정하는 수서 일을 해보고 싶다면서, 다음과 같은 포부를 밝히며 인터뷰를 마쳤다.

"일하는 곳이 법학 전문도서관인 만큼, 연구에 필요한 희귀한 자료를 잘 찾아내고 갖춰 단골 연구자들에게도 좋은 연구재료를 제공하고 싶어요. 또, 다른 곳에서도 우리 도서관에 자료 공유를 요청하는 일이 많아졌으면 좋겠네요. 그게 바로 전문도서관의 주제 사서가 할 일인 거 같아요."

[A-Z 노동이야기] 세상의 변화를 꿈꾸며 일하는 현정 씨의 하루 /2015.11

세상의 변화를 꿈꾸며 일하는 현정 씨의 하루
- 법률 사무소 소장 현정 씨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

 

 

“김앤장, 광장, 태평양, 율촌, 세종, 지평, 화우” 한번쯤 언론을 통해 들어보았을 법한 국내 최고 로펌으로 일컬어지는 법률 사무소들의 이름이다. 대형로펌들은 삼성, 현대, 기아 등 국내 대기업 물론 외국계 기업의 M&A, 구조조정, 인사 노무를 비롯해 지적재산권, 특허권 등 법적 분쟁을 해결한다. 거꾸로 말하면 노동자들의 권리를 침해하는데 있어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에 일터는 앞서 언급했던 로펌들과 달리 변호사 1명이 운영하는 작은 법률 사무소에서 일하는 현정 씨를 만났다.

 

 

특별한 철학으로 운영하고 있는 법률 사무소

 

안녕하세요. 저는 경기도 수원에 있는 ㄷ법률사무소에서 소장으로 근무하는 현정입니다. 대학에서 법학 전공하고 법조인이 되는 게 꿈이어서, 현장에서 배울 수 있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면 도움이 되겠다 싶어서 시작했는데 벌써 6년이 지났네요.

 

 

법률사무소 소장으로 일하는 현정씨

 

다른 법률 사무소와 다르게 직함이 소장인 이유가 있나요?

 

저희는 일반 사건이 아니라 노동인권전문 사건들 그 중에서도 노동조합과 관련된 부당해고, 해고 무효 확인 소송, 체불임금, 업무방해, 집시법 위반 이런 사건을 주로 맡아요. 그렇다보니 일하는 노동자를 존중한다는 의미로 이 직함을 달고 있어요.

 

처음부터 특별한 사무소인줄 알고 오셨나요?

 

아니요. 처음엔 이럴 줄 몰랐어요. 면접 볼 때 여기는 일반적인 사건은 맡지 않고 노동자들 사건을 주로 맡는 사무실이라고는 하셨는데 그때만 해도 저는 어딜가나 다 똑같은 사건만 맡을 수는 없으니까 다른 특색이 있을 거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 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특별한 느낌이 있었어요. 채용 공고가 나서 서류 제출후, 보통은 사무실 직원들이 면접통보를 해주고는 하지만 변호사님이 직접 전화를 걸어와 마치 저를 모시는 듯한 대우를 해주셔서 독특하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필요 이상으로 너무 친절하니까 뭔가 이상하다는 의심을 품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면접을 봤는데 다행이 마음을 놓았어요.

 

어떤 점이 긴장, 의심을 풀게 되었을까요?

 

변호사라고 하면 뭔가 굉장히 권위적일 것 같은데 변호사님이 너무 수수하시고 마인드가 보통 분들과 다른 것 같더라고요. 그때 이런 분과 함께라면 일하면서 배울게 많겠구나 생각했어요. 지금도 여전히 저를 대하실 때 나는 변호사고 너는 직원이다 뭐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본인을 항상 낮추세요. 생각만이 아니라 실제 그렇게 하시구요. 그런 부분이 존경스럽고 지금까지도 같이 일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어요.

 

가족이나 주변 지인들이 현정 씨가 하는 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

 

처음에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한다고 하니까 오~ 좋은데서 일한다 이런 반응이었어요. 제가 맡고 있는 사건이 티비에 방송되고 보도될 때마다 가족들은 지금도 많이 자랑스러워하세요.  친구들도 저희 일에 특성상 집회나 이런 것들에 참여하게 될 때가 있는데 처음에는 빨갱이? 이런 얘기도 하더니 지금은 아무래도 남들이 하기 힘든 일을 하는 것에 대해 대단하다고 생각하거나 높게 평가해주는 것 같아요.

 

6년 정도 일했으면 관성에 빠지거나 일이 지겨울 법도 할 것 같은데 슬럼프 같은 건 없었나요?

 

작년에 회의감이 크게 왔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한번 회의감이 몰려오고 나니까 안 좋은 이야기를 듣거나 접할 때 내가 이 일을 하는 게 잘하고 있는 건가 싶은 생각이 많이 들어요. 가령 저희 사무실에 오시는 노동조합 간부들이 저희를 대하는 태도 때문에 힘들 때가 있어요. 왜 변호사를 산다고 하죠. 너는 내가 돈을 주고 샀기 때문에 그 값어치를 해야 한다는 그런 의식을 소위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다고 하는 노동조합 간부들이 보일 때 정말 화가 많이 나더라고요. 물론 다 그런건 아니고 일부 그런 분들 있는데 정말 그럴 때는 회의감도 느끼고 참을 수가 없어요. 조합원들은 저런 분들을 믿고 따를 텐데 그런 사상을 갖고 있는 사람이 민주주의를 위해 앞장 선들 뭘 기대할 수 있을까 ?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고요. 그러면 변호사님은 또 그런 일부의 사람들 때문에 제가 노동조합에 대해 왜곡되게 생각할 까봐 안타깝게 생각하시고요. 일부 몇 사람 때문에 왜곡해서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분들이 있다는 게 제 입장에서 허탈해요. 의욕이 떨어진다고 해야 하나. 저런 분들을 위해 제가 열심히 해서 재판에서 이긴들 뭐가 달라질까라는 고민이 들어요.

 

 

법률 사무소 소장의 하루

 

하루가 정말 바쁘시죠? 일과가 대략 어떻게 되나요?

 

9시 출근해서 18시에 퇴근해요. 퇴근시간 잘 지키는 게 사무실 방침인데 일의 특성상 갑자기 사건을 맡게 되거나, 급하게 뭔가를 제출해야 할 때는 퇴근이 늦어질 때도 있어요. 재판은 기한을 지키는 게 중요해요. 안 그러면 재판 결과에 불이익이 있거든요. 출근해서 기본적으로 하는 일은 진행 중인 사건을 검색 하는 거예요. 상대측에서 어떤 자료가 제출되었는지. 판사님이 명령을 내린 게 있나 그런 걸 파악해야 해요. 재판 기일이 잡혔는지도 확인해야 하고요. 재판에 제출할 서면 검토하고, 제출 할 서류들도 챙기고요. 재판 전에 준비해야 할 자료들 있으면 그거 준비하러 법원이나 검찰청에 가서 서류를 등사 해 와야 해요. 또 신문기사도 많이 봐요. 사건 준비하면서 많은 사업장들을 보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보게 되더라고요. 여기는 현재 상황이 어떤지 그런 것들. 일을 하다 보니까 눈에 보이는 것들이 많아 진 것 같아요.

 

기사들 접하다보면 대형 로펌들 얘기가 많이 나올텐데 그럴 땐 어떤 생각이 들어요?

 

기사뿐만 아니라 지금도 거의 대부분 사건이 김앤장, 태평양, 화우 이런곳과 싸우는 거예요. 대기업 사건은 더욱 그래요. 그렇다보니 소위 대형 로펌에 대해서는 우리가 싸워서 이겨야하는 적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생각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이 솔직히 없는 것 같아요.

 

재판 관련 업무 외에도 사무실 살림 꾸리는 게 만만치 않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사무실 특성이 있다 보니까 입사해서부터 지금까지 풍요로웠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월급도 솔직히 넉넉하지는 않고요. 그렇다고 해서 생활이 안 될 정도는 아니고 또 돈은 쓰기 나름이라서 돈을 따진다면 지금까지 이 일은 못했을 것 같아요.

 

함께 일하는 사무실 식구와 관계는 괜찮으세요?

 

직업의 특성상 항상 억울하거나 부당함을 많이 겪은 사건을 이겨야하는 그러나 이겨야 본전인 일을 하기 때문에 마음적으로 많이 힘든 직업이에요. 얼마 전까지 웃으면서 같이 상담하고 재판 준비했던 분들이 상해를 당했다는 소식을 접하기도 하고요. 변호사님이 정말 급한 일이 아니면 업무 외 시간에 연락을 안 하시는데 전화가 오면 겁부터 나더라고요. 또 누가 돌아가셨나. 그래서 한때는 전화벨이 울리면 덜컥 겁부터 나고 공황장애 같은게 올 정도로 힘들었어요. 이런 상황에서 일을 하다 보니 서로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하고 서로에게 해가 되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하는 것 같아요.

 

 

뭔가가 달라졌으면 좋겠다

 

지금껏 일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 내담자가 있나요?

 

쌍용차 사건인데, 처음에는 정치적인 문제에 전혀 관심도 없었고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일하는 것도 기계적으로 일했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쌍용차 사태 때 관련 영상이나 책을 접하고 한상균 당시 쌍용차 노동조합 위원장을 사건 맡으면서 피가 거꾸로 솓는 느낌이 들었어요. 특히 현장에 있던 아이들을 접하면서 왜 정말 크게 머리를 맞은 것 같은 그런 느낌 있잖아요, 아 내가 몰랐던 것들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구나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때부터는 사건마다 개인적인 감정 이입이 됐던 것 같아요. 저희 사무실의 특성이 저에게도 흡수가 되는 그런 느낌이었죠.

 

일하면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지금 진행하는 소송들이 좋은 성과를 얻어서 또 하나의 판례를 남기면 뿌듯할 것 같아요. 기존에 저희에게 불리했던 판례가 있다면 뒤집었으면 좋겠고요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법이 자리 잡는데 일조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뭔가가 달라졌으면 좋겠어요. 그게 무엇이든. 제가 겪고 있는 중에 한가지라도 작게나마 좋게 변화가 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일하면서 힘들기도 하지만 얻은 것도 많아요. 세상에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느끼고, 여태껏 살아왔던 방식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되었고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 줄 몰랐어요. 그런분들과 더불어 웃으며, 즐기며, 사람답게 살아가고 싶어요.

 

[A-Z 노동이야기]취객만 상대해야 하는 노동의 고달픔 /2015.10

취객만 상대해야 하는 노동의 고달픔

- 주말 대리운전 아르바이트 박준형(가명)씨



정하나 선전위원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지난 2002년 대선 때 권영길 당시 민주노동당 대표가, 팍팍해진 국민의 삶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외친 문구이다. 오늘 만난 박준형(가명)씨는 투잡(two-job)족이다. 그야말로 '살림살이'가 녹록지 않아 투 잡을 뛰고 있다. 주말 저녁, 준형씨는 나이트클럽에서 음주가무를 즐기다 나오는 손님들을 태우기 위해 콜을 기다린다. 겹벌이로 대리운전을 하는 것이다.


"최저임금 겨우 받다 보니 생활이 힘들어서요. 그래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생활비 딱 떼면 단 얼마라도 저축도 하고 싶고, 하다못해 친구들이랑 간단하게 맥주 한 잔을 마시려 해도 영 여윳돈이 안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대리운전이라도 해서 투잡 뛰는 거죠. 일반 대리기사들은 업체에 대리기사로 등록하고, 각자 휴대전화에 해당 업체 앱을 깔아서 손님 전화를 받잖아요. 저는 그렇게 정식으로 하는 건 아니고요. 나이트클럽 지배인으로 일하는 지인이 업소에서 직접 연결해 주는 대리기사 조로 일하고 있어요. 업체 애플로 콜을 받는 게 아니니 건당 수수료를 떼는 것은 없죠. 대신 4대 보험이 안 되니 산재 적용 같은 건 안 되고요."


치열한 업계, 그래도 '용돈벌이'라도 하려고

평일 근무시간을 빼고 밤에, 그리고 출근 안 하는 주말에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보니 대리운전이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일이었다. 20대 때 유흥업소에서 홀 관리 매니저를 한 경력이 있던 준형씨는, 과거 웨이터로 있었던 후배한테 연락했다. 지배인이 된 그 후배를 통해 지금 하는 일을 운이 좋게 연결받았다.


"한 달에 못해도 10번 정도는 나가려고 해요. 최소한 40만 원 정도는 벌 수 있게요. 원래는 비정기적으로 그냥 돈 필요할 때 후배에게 전화해서 '오늘 콜 연결하게 해 달라'고 했는데, 3~4년 전부터는 주말에는 꼬박꼬박 안 빠지고 다 채워 나가려고 하고요. 주중에도 일이나 약속 없을 때는 대리 뛰어요."


2010년 한 취업정보업체가 직장인 79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투잡을 하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10명 중 6명이었다. 이들이 주로 선택하는 일은, 주로 직장생활의 연장선에서 할 수 있는 일, 집에서도 가능한 일, 퇴근 후 할 수 있는 단순 시간제 아르바이트, 주말에 할 수 있는 일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대리운전은 손쉽게 구할 수 있고 시간 선택이 비교적 자유로운 두 번째 일자리(second job)가 된다.


하지만 이미 여러 언론 보도로 알려진 것처럼, 시장 경쟁이 너무 치열해 버티기가 힘들다고 한다. 서울노동권익센터에서 낸 '대리운전기사의 노동조건과 환경실태 분석(2015)'에 따르면, 대리운전 수입에 불만족한 비율이 62.6%다. 또한, 지난 3년간 수입이 줄었다는 응답이 80.4%에 이르렀으며 가장 큰 이유는 '건당 운임 감소'를 꼽았다고 하니 업계의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짐작이 된다.


"밤에 하는 거라 피곤하고, 원래 일도 있으니 그리 자주 나가는 편은 아니죠. 용돈 정도 번다고 생각하면 맞아요. 나이트 후배한테 전화해서 '형 오늘 한다'고 얘기하고 저녁 7시부터는 손님 연결해 주길 기다리고 있죠. 나이트클럽에 나가서 기다리는 건 아니고 퇴근 후 집에 와서 대기하고 있을 때가 많아요.


그러다가 전화 받으면 나이트클럽 주차장으로 손님 태우러 가는 거죠. 대부분 나이트 주변 강남 동네들로 가시는 경우가 많아요. 서울 시내 안에서는 2만~2만5000원 받거든요. 아귀가 잘 맞아떨어지는 날이면 다 나이트 근방 고만고만한 행선지로 가는 사람들로 채워질 때가 있는데 그러면 손님 3~4명 받아서 1시간에 10만 원 훅 벌 때도 있죠."


수도권의 일반적인 대리운전서비스 요금은 2만5000원이다. 대리운전 업체의 대리운전 기사들은 소속된 대리업체와 대리운전 요청을 알려주는 프로그램 업체에 이 중 5000원 정도의 수수료를 지급한다. 나이트클럽 전용 혹은 프리랜서 대리기사인 준형씨는 손님에게서 받은 돈이 온전히 자기 몫으로 들어오니 좀 나은 편이다. 


"나이트클럽은 저 말고도, 4개 대리업체에 손님을 나눠주고 있어요. 저랑 4개 업체에 웨이터(혹은 지배인)들이 적절히 손님을 나눠주는 그런 식인 거예요. 제가 오후 7시부터 새벽 2시까지는 대리 요청받으려고 대기를 타고 있는데요. 물론 한 명도 없는 날도 있지만, 만약 서울근교 원거리 가시는 분들이 있으면 자다가도 일어나서 당장에 가죠. 근데 분당이나 성남 같은 특별케이스는 드물어요."


나이트클럽과 연결된 대리업체들도 자체적으로 기사수급이 안 되면 준형씨에게 콜을 넘겨준다. 그럴 땐 받은 대리비 일부를 수수료 조로 업체에 보낸다. 그 업체의 소속 기사가 아니라 수수료를 줄 필요가 없긴 해도, 나름의 상도를 지켜야 서로 좋고 오래 할 수 있다는 게 준형씨의 생각이다.


가장 편한 손님은 타자마자 자는 손님

택시 운전 노동자들에게 물어보면 야간 운전이 몸도 힘들지만, 취객들 주사에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다고들 한다. 그래서 벌이는 좋지만, 일부러 야간 택시 안 뛰는 분들도 있을 정도이다. 유흥업소가 많은 시내에서 손님을 태울 때 일부러 너무 취한 사람은 태우지 않으려고 한다고 들었다. 그런데 준형씨 같은 대리기사들의 경우 늘 취한 사람만 태워야 하니 고충이 클 것 같았다.


"제일 편한 케이스는 타자마자 바로 자는 손님이죠. 다 취한 상태에서 대리를 부르는 거라서 보통 말이 짧습니다. 어느 정도 주사 부리는 건 기본이에요. 욕하는 손님도 많고요. 자꾸 반말하고 욕하면 '손님, 반말(혹은 욕)하지 마세요, 안전하게 태워드릴 테니 주무시고 계십시오'라고 합니다.


그래도 취기에 안 자고 더 뭐라 뭐라 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러면 룸미러로 쳐다보면서 한마디 하죠. '저도 긴 시간 세상 험하게 살다가 최근 마음잡고 운전대 붙잡고 있는 겁니다, 착하게 살게 좀 도와주십시오!' 시커먼 놈이 저런 멘트 날리면 아무래도 좀 무섭겠죠?"


준형씨도 이쪽 업계 오래 하신 선배 기사분들한테 배운 말이다. 이런 위협적인 멘트를 날리고 나면, 손님들이 신기하게도 주사를 접고 뒷좌석에서 잠든다고 한다. 취한 사람만 태우는 운전이다 보니 '진상' 손님들이 정말 많지만 준형씨는 그런 일로 크게 스트레스받거나 마음에 담아두는 편은 아니라고 했다. 그런 그도 잊지 못할 희대의 진상을 한 번 만난 적 있다.


"한 번은 저보다 한참 어린 젊은 사람 2명이 탔어요. 어느 동으로 가자고 그래서 '네 손님, 알겠습니다'하고 출발했죠. 손님들이 보면 차에 탔을 때는 비교적 멀쩡한데 자기 차에 딱 타고나면 그때부터 긴장이 풀리는지 가다 보면 더 취하고 거칠어지는 손님들이 많거든요. 이분들 이 딱 그랬는데 한 몇 분 지나니까 말이 짧아지면서 계속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그러는 거예요.


'아저씨, 어느 동으로 가 달라고요!'라고 그러면 제가 '네, 손님, 지금 가고 있습니다, 창밖 보세요. 지금 어디까지 왔고 가는 길이지 않습니까?'라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아무리 설명해도 막무가내인 거죠. '아 씨! 야 어느 동으로 가 달라니까!' 이렇게 말이 짧아지더니. 막 상욕도 하더라고요. 둘이서 난리를 치는 거예요. 그때 참다 참다 안 되겠다 싶어서 차를 세우고 뒤에 두 손님 내리라고 했죠.


술 취한 사람들이 뭐 이성적인 얘기가 귀에 들어가겠어요? 내리게 한 다음 밖에 세워놓고 '나랑 싸우고 싶어서 그러는 거냐, 그럼 한 번 싸워보자, 덤벼라'하면서 겁 좀 줬죠. 그랬더니 바로 깨갱 하고 그다음부터는 조용히 가더라고요. 대리운전 이용하는 사람들도 좀 알아야 해요. 기사들 우습게 보고, 함부로 대하고, 욕하고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손님들도 좀 인식을 해야 합니다."


서울시 대리운전 기사 300명 중 손님에게 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는 노동자는 85.9%나 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폭행 횟수는 한 해 3~5회가 47.2%, 10회 이상도 15.5%나 된다. 또한, 폭행을 당하고 트라우마를 경험했다는 응답도 57.3%나 나온 것을 보면 대리기사들이 처한 노동환경이 참 만만치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많은 대리기사가 노동과정 중 폭력을 경험하고 있지만, 박준형씨가 그랬듯 참고 넘기거나 자력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대리기사들을 위한 이렇다 할 법적 보호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회적 인식도 저열하니, 대리운전 노동자들이 강력하게 대응하기 어렵다.


퀵돌이 대리기사, 나름 단골도 생겼다

반면 기억에 오래 남을 만큼 좋은 손님도 만났다. 가는 내내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마음이 잘 맞는 손님이 있었다고. 선생님으로 보이는 그 손님이 해 준 얘기가 준형씨에게 그날따라 위로도 되고 힘도 되었다. 행선지에 도착했는데 몸을 잘 못 가누시기에 집 대문 앞까지 부축해드렸더니, 고맙다고 하면서 급기야 잠깐 들어와서 물이라도 한잔 마시고 가라고 집 안까지 데리고 들어갔다.


"부축해서 집에 들어갔더니 가족들은 제가 같이 술 마신 지인인 줄 안 거죠. 아내 되시는 분이 처음에는 '우리 양반, 술을 왜 이렇게 먹었느냐, 좀 말리지 그랬냐'라고 핀잔을 주시다가 '저 대리기사인데요'하니 깜짝 놀라시면서 모시고 와줘서 고맙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더니 과일 깎아 주시고, 커피 타주시고. 그런 좋은 사람도 있고. 그래도 아무튼 제일 편한 손님은 타자마자 바로 자는 손님이고. 하하하."


준형씨는 벌써 6년째 대리운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이제는 그를 특별히 지목해서 불러달라고 하는 손님이 생겼을 정도이다. 운전을 잘, 빨리하는 준형씨의 스타일이 맘에 드는 손님들이다. 나이트클럽에서 직접 소개해 주는 기사이니 신원도 확실해서 안심되어 준형씨를 찾는 듯하다. 인터뷰하는 날도, 술 마시러 오라는 친구의 전화를 거절하고 손님 태우러 대기하러 가던 퀵돌이 대리기사 준형 씨. 그의 늦은 귀갓길이 손님들만큼 편안하길.



[A-Z 노동이야기]“친정 어머니의 마음으로 보살펴드립니다”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사 이선영 씨 /2015.9

“친정 어머니의 마음으로 보살펴드립니다”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사 이선영 씨

 

 

 

문영, 유기훈, 이재중 (2015 여름 한노보연 학생실습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친정 어머니의 마음으로.” 어딘지 모르게 진부함이 느껴지는 이 카피는 산모·신생아 건강 관리사를 소개하는 한 업체 광고에 나오는 문구이다. ‘어머니’라는 단어에서 연상하는 사랑 과 헌신의 속성을 광고 문구에서 보는 것이 누군가에겐 조금은 불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어쩌면, 이 광고 한 줄의 광고가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사’ 이선영(가 명) 씨를 이해할 수 있는 열쇳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해가 넘어가는 초저녁, 산모의 집 에서 일을 끝내고 퇴근한 선영 씨를 만났다.

 

10년 넘게 집에만 있다 하게 된 일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사라는 직업을 꼭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처음부터 계획해서 하게 된 것은 아니에요. 어쩌다 보니 우연히 시작한 일인데... 제가 여성인력개발센터라는 정부 하청 산하 기관에서 ‘내 일 찾기’라는 프로그램을 참여했거든요. 고용노동부 지원으로 취업 교육 을 시켜주는 프로그램인데, 그 프로그램을 하던 중에 어떤 사람이 제 성격을 보고는 집에 있을 사람인 것 같으니까 그런 분야로 교육을 받아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산모·신생아건강관리사 교육을 2주간 60시간 받았고, 일을 시작한 건 6월 초부터니까 지금 3달째네요.”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사란 전문 교육을 받은 관리사가 출산가정을 방문해 산모의 건강회복과 신생아 돌보기, 그리고 이에 관련된 범위 안에서의 가사를 주 업무로 하는 직업이다. 고용노동부에서는 경력단절 여성들을 노동시장으로 재진입 시키기 위해 ‘여성인력개발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이 센터에서는 ‘여성 적합형 일자리’에 관련된 직업 상담, 직업교육훈련, 취업 지원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선영 씨 역시 여기에서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사 일자리를 추천받아 교육을 이수하고 취업하게 되었다.

 

“결혼하고 나서는 전업주부였죠. 그러다가 작은아들이 커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가 되었어요. 그 때 큰 애는 초등학교 4학년이고 막내는 없을 때니까, 이제 가계 사정에 도움이 되어야겠다 싶어서 학습지 교사 일을 1년 정도 했죠. 근데 원래 학습지 교사가 하루 종일 나가 있잖아요. 거의 10시까지 밤늦게 일을 끝내고 집에 와보면 첫째는 컴퓨터 게임 하고 있고, 둘째는 방바닥에 엎어져 자고 있고... 그걸 보고 ‘내가 이렇게 하면 안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 아이들이 이런데 지금 내가 다른 아이들을 관리하는 일을 할 때인가. 그래서 그만뒀어요.”

 

자식들 교육을 위해 큰 결단을 하고 일자리를 포기한 후, 선영 씨는 틈틈이 자잘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그러다 막내가 중학교에 들어가자 금액이 적더라도 고정적인 수입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다시 직업을 찾게 되었다. 하지만 올해 54세의 10여 년의 경력단절 여성인 선영씨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은 사실 뻔했다.

 

“16년 전, 학습지 교사 하면서 100만 원 이상을 받았어요. 당시 많이 받는다는 생각 안 했는데, 지금은 더 적게 받는데도 적다고 생각 안 들어요. 내가 지금 이 나이 되어서 할 수 있는게 많지 않고, 내가 어딘가에 전문적인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중간에 경력단절이 있으니까. 직업을 찾아도 50대 넘어가면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고. 그래도 집에서 단순한 알바 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밖으로 나와서 하는 게 몸은 힘들지만 좋은 것 같아요.”

 

산모·신생아 건강관리 매뉴얼에 없는 한 가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가요. 평일은 9시부터 5시까지 8시간, 토요일은 9시부터 1시까지 4시간, 이렇게 2주 동안 진행을 하거든요. 아침에 출근하면 먼저 산모 아침 챙겨주고 청소하고, 어제 널어놓았던 빨래를 개요. 점심이 되면 점심을 챙겨주고 그사이에 제가 아기를 돌보죠. 그리고 아무래도 산모가 피곤하니까 낮잠을 자게 되면 그 때 아기를 돌보고, 중간에 아기 목욕시키고, 빨래를 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저녁이에요. 저녁 준비를 하고, 산모가 저녁을 먹는 동안 아기를 돌보고, 설거지를 끝내고 퇴근을 하고... 그런 식이에요. 그런데 아시겠지만 제가 가사 관리사는 아니에요. 화장실 청소를 하거나 대청소를 하거나 이런 건 제 일이 아니고, 산모를 돌보고 신생아를 돌보는 개념의 일을 하는 관리사예요.”

 

사실 산모·신생아 건강관리 서비스는 취약계층의 복지를 위해 시행하는 보건복지부의 바우처 제도 중 하나이다. <산후도우미>지원사업이라고 해서 전국 가구 월평균소득의 65% 이하인 출산 가정에 선영 씨와 같은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사를 지원하고 있다. 그래서 보건복지부가 정한 서비스 매뉴얼에 따라 일하게 되어있다. 매뉴얼을 보면 산모와 신생아의 몸 상태를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영양 및 건강상태를 관리할 수 있도록 지원 서비스 항목별로 상세하게 업무지침이 나와 있다. 하루 제공한 서비스를 기록하는 보고양식도 따로 있다. 하지만 이 업무 매뉴얼에 휴식시간에 대해서는 자세히 명시되어있지 않았다. ‘휴게시간 1시간, 이는 점심시간으로 활용될 수 있음’ 정도만 쓰여있을 뿐이다. 선영 씨는 ‘스스로 쉬는 시간을 찾아야 한다’고 했으나, 산모와 신생아의 생활 전체를 관리해야 하는 중에 자율적으로 1시간을 쉬는 게 영 쉽지 않은 모양이다

 

“중간에 산모 좌욕 돌봄도 있고, 산모 복부 마사지도 1주일에 3번 하게 되어있어요. 그리고 아기 예방접종 스케쥴에 맞춰서 산모랑 같이 병원 가는 것도 포함되어 있고요. 거의 하루 종일 일을 하는 것 같아요. 원래 한 시간을 쉬어야 하는데, 그렇게 쉬게 되지는 않더라고요. 많아 봤자 30분 정도 쉬는데... 내가 잘못된 경우예요. 토요일도 30분 쉬도록 되어있는데, 아직 한 번도 쉬어본 적이 없어요.

 

‘어머니’와 ‘어머니’ 사이에서

 

“제가 어영부영 이 일을 하고 있지만, 사실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사를 생각하게 된 게 제가 산후 조리를 정말 못 받았거든요. 첫째 낳을 때 뿐 아니라 둘째 때도요. 아니 막내 때는 더 심했죠. 그래서 정말 힘든 사람들 생각해서, 힘들지만 바우처 일 쪽을 제가 많이 하고 싶었어요. 일을 해도 좀 보람이 있어야 하잖아요, 돈도 돈이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그 생각해서 일을 하는 거예요.”

 

선영 씨의 경우 일한 3달 동안, 2명의 산모와 아기를 만났다. 바우처 지원사업으로 파견되면 평균 한 가정당 2주 정도 기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3개월이면 더 많은 가정을 돌았을 수 있다. 그런데 그녀는 첫 산모는 1달, 두 번째 산모는 2달, 한 가정에서 꽤 오랜 기간을 일했다. 다른 산모들이 자신처럼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일을 한다는 선영 씨의 마음이 통했는지, 한번 만난 산모들이 더 일해 달라고 업체에 따로 요청했기 때문이다. 산모가정과 확실한 신뢰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힘든 일일 것이다.

 

“산모들이 처음에는 아무래도 경계심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조금 지나다 보니 달라지더라고요. 지금 산모는 산후조리원에 2주 있었고 1주를 친정집에 있다가, 집으로 오면서 저를 부른 거에요. 그러다 보니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가 도와줄 수 없거나 조금 부족할 수 있는 부분들을 바로 옆에서 관리해줄 수 있고, 먼저 이런 경험을 해봤던 사람으로서 작지만 도움을 줄 수 있을 때가 많죠. 그러다 보면 산모도 저를 믿어주시게 되고요.”

 

막 출산을 마쳐 힘들기 이를 데 없는 산모와 가장 연약하고 도움이 필요한 신생아. 이들을 위해 식사 준비, 빨래, 위생 관리, 육아 지도, 정신적 지지까지 모든 부분을 ‘전문가’로서 관리해주는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사는 그야말로 ‘친정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단지 이 역할이 현대의 서비스 산업 형태로 전환된 것으로 보였다. 한 업체의 광고 문구처럼 이선영 씨는 짧게는 2주, 길게는 몇 달 동안 다른 집 산모와 신생아의 ‘친정엄마’가 된다. 선영 씨의 집에서 자식들의 ‘어머니’였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고 보니, 그녀가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나면 다시 본인의 가정으로 돌아가 밀린 가사노동을 그대로 떠안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퇴근해도 또 비슷한 일을 해야 하지 않느냐고요? 사실 나잇대가 비슷한 다른 동료들은 아이들이 다 커서 좀 다를 텐데요, 저희 집은 막내가 아직 어려서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있죠. 집안일까지 신경 쓰면서 그렇게 하루하루 생활하다 보면 몸이 힘들어서 고생이긴 하죠. 그렇게 힘들긴 해도, 애기가 너무 예뻐요. 지금 애기는 60일 되었는데, 뭔가 보이고 그러나 봐요. 막 웃고 그러는데, 그럴 때마다 정이 새록새록. 끝날 때 좀 아쉬울 것 같기도 해요.”

 

인터뷰를 마무리 하며 선영 씨는 ‘산모들이 나에게 의지를 많이 한다,’ ‘아기를 자주 안다 보니 손목이 아프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얼마나 예쁘냐’, ‘이 일 하니 4대 보험도 되고, 나이 들어 자식들한테 손 안 벌릴 수 있어 좋다’고 덧붙였다.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사로 오랜만에 직장생활을 재개한 그녀와의 인터뷰를 통해 모습 속에서 ‘어머니인노동자’ 그리고 ‘어머니 노동을 하는 여성’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정과 일터 모두에서 ‘엄마’의 역할로 이 사회의 돌봄을 책임져야 하는 여성의 존재를 말이다.

[A-Z 노동이야기] 6만 명을 매일같이 안전하게 떠나 보내죠 /2015.8

6만 명을 매일같이 안전하게 떠나 보내죠

- 인천국제공항 보안요원 신용쾌 부장 인터뷰


정하나 선전위원




푹푹 찌는 삼복더위, 그래도 휴가가 있어 다행이다. 7월 말 8월 초 피서철이 되면, 각지의 계곡과 해변이 인산인해를 이룬 광경이 뉴스에 종종 나오곤 한다. 그런데 이 휴가 기간에 마치 유명 관광지처럼 사람이 넘쳐나는 곳이 또 있다. 바로 인천국제공항이다. 2014년 기준 1년 이용객이 4500만 명을 웃도는 인천공항은 명실상부 아시아 항공교통의 허브다. 하루 평균 6~7만 명이 드나들고, 요새 같은 휴가철 혹은 연휴 시즌이면 이용객이 2배 정도 증가한다. 신용쾌(인천공항지역지부 보안검색지회 홍보부장)씨는 이 많은 사람이 들고 나는 공항에서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 공항을 이용하는 승객들이 안전하게 비행기를 이용할 수 있도록, 그리고 우리나라의 '관문', 즉 국경과 같은 이곳에서 사고가 나지 않게 '안전'을 책임지는 일을 하고 있다. 해외 출국비행기가 주로 아침에 뜨는 탓에 공항은 오전이 더 붐빈다고 들었는데, 저녁인데도 사람이 꽤 많다는 나의 지적에, 신씨는 "어휴, 7,8월에 이 정도면 정말 한산한 거예요. 올해는 메르스 여파가 있어서 휴가시즌답지 않게 정말 이용객이 적은 겁니다"라고 답한다.


청와대 빼고 다 있는 작은 도시


"인천국제공항은 거의 하나의 도시나 마찬가지예요. 은행, 병원, 식당, 각종 생활편의시설이 없는 게 없어요. 관세청부터 국토해양부, 법무부, 심지어 국정원까지 정부기관도 다 들어 와있죠. 청와대만 빼고 말이에요. 일하는 사람만 해도 거의 4만 명이에요. 면세점이나 커피숍 같은 입점업체 직원들 제외하고도 말입니다. 저는 공항공사 공항보안처 내의 보안경비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공항에 오면 맨 처음 탑승 수속하고 짐 부치지요. 그다음에 하는 게 출국장 들어가면서 본인인지 확인받고, 짐에 뭐 위험한 거 안 들어 있는지 검사받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게 바로 저희 보안처 요원들이 하는 일입니다."


보안요원은 두 종류로 나뉜다고 했다. 신용쾌씨처럼 '보안경비' 요원은 주로 출국장으로 들어가는 문이나 VIP 전용 출입구 바로 앞에서 승객들이 본인인지 확인하는 일, 그리고 공항 상주직원들의 출퇴근 시 신원 및 소지품을 체크하는 일을 주 업무로 한다. 그 외 '보안검색' 요원은 탑승객의 신체와 기내수하물에 폭발물이나 무기 같은 위험한 물건이 들어있는지 검색하는 일을 한다. 금속탐지기로 승객의 몸을 검색하는 것, X-ray 검색대에서 짐 가방을 검사하는 일을 이 팀 요원들이 담당한다.


"공항이라는 곳이 사실 그렇잖아요. 한 나라와 다른 나라 사이의 관문 같은 곳이지 않습니까? 국경과 같은 느낌도 들지요. 게다가 외국인들도 많이 드나들고. 그런 곳이다 보니 보안·안전에 각별히 주의하라고 매 순간 주의를 듣습니다. '보안검색·보안경비가 뚫리면 공항 안전이 다 뚫리는 거다'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보안팀 직원들에게 반경찰, 반군인에게 하듯 엄밀함을 많이 요구하지요. 아이러니 한 건, 중요한 직무라며 엄청난 주의를 요구하면서 정작 신분이나 권한은 비정규직으로 내버려 둔다는 것입니다. 검색대에서 잡아내려고 하는 물건들이 '대테러 관련 유해 물품'이거든요. 승객들 보시는 안내문에는 '기내 반입금지 물품'이라고 쓰여 있지만, 그런 물품들이 테러로 연결될 수 있다는 가정을 하고 일단 잡아내는 것이지요. 그런데요, 솔직히 제일 잘 걸리는 건 여성들이 주로 사용하시는 미용용 눈썹 칼이나 손톱깎이 같은 것이긴 해요. 아, 9.11테러 이후에는 기내 소지할 수 있는 액체량도 엄격하게 제한하니 더 걸리는 게 많아졌지요. 만에 하나 이런 종류의 물건들이 다른 승객의 안전을 위협하는 흉기나 폭탄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에 정말 별거 아닌 것 같은 생활용품도 공항에서는 엄격하게 제한을 하는 것입니다."


밤이고 낮이고 고도로 집중해야 하는 보안요원


▲  출국장 앞에 줄지어 서있는 여행객들. 경비보안요원은 몇몇씩 조를 이루어 각 출국장 문 앞에서 티켓을 소지했는지, 그리고 여권 사진과 승객 얼굴이 일치하는지 확인하고 안으로 들여보낸다.


'보안' 업무라는 것은 일하는 곳, 지키려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일단은 매우 집중해야 하는 일일 것이다. 공항의 경우 신용쾌씨처럼 보안경비요원일 경우 출국장으로 들어가는 승객들의 얼굴이 여권 사진의 그가 맞는지 잘 살펴야 하고, 티켓의 작은 글씨도 주의해서 봐야 한다. 13년째 이 일을 해온 신씨 같은 경우라면 노하우가 생길 법도 한데도, 까딱하는 사이에 실수가 나올 수도 있다고 했다.


"예를 들면 자매인 분들이 오셨단 말이에요. 자신들도 모르게 여권을 바꿔 들고 출국장 경비요원한테 검사를 받아요. 여권이 바뀌었다 한들, 자매이다 보니 얼굴이 아주 비슷할 거 아닙니까? 사진이랑 약간 달라도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잘 모르는 거죠. 본인으로 판단해 들여보냈는데, 출입국심사대(법무부 소속)에서나 아니면 비행기 탑승 직전 티켓이랑 여권 이름 재확인할 때 걸린 겁니다. 그럼 바로 보안처 실책으로 접수되어 버리는 거죠. 보안검색에서도 마찬가지예요. X-ray 통과할 때 앞뒤 손님들 짐 정리를 한다든지 잠시 고개 돌리는 사이에 가방에 있는 금지 물건을 못 볼 수 있거든요. 그러다 탑승 후 어떻게 알려지면 비행기가 떴다가 다시 돌아오는 상황도 있을 수 있죠."


안 그래도 일하는 시간 내내 집중하기가 쉽지 않은데, 게다가 하루에도 몇만 명씩 드나드는 곳에서 하루 10시간 이상씩 장시간노동에 어떨 땐 밤샘근무까지 해야 하니, 있던 집중력도 다 닳아 없어질 판이다. 인천공항의 경우 '국제공항'이기 때문에 김포공항 같은 곳과는 달리 24시간 운영한다. 그래서 보안부문 노동자들은 야간노동을 기본으로 하게 된다.


"밤샘 교대는 정말. 10년 넘게 이 짓을 하고 있지만, 전혀 적응이 안 되고, 하면 할수록 더 힘든 거 같습니다. 제가 있는 보안경비 팀은 24시간 공항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3조2교대로 하루는 주간(08:30~18:30), 하루는 야간(18:30~08:30), 그리고 비번 이렇게 돌아갑니다. 쉬는 날요? 주로 잡니다! 정작 잠자리에 누우면 항상 잠이 잘 안 오고, 다음날 또 피곤하고. 시차 바뀌는 거 때문에 아주 미칩니다. 그리고 제가 원래 혈압이 없었는데, 공항 근무 10년 넘게 하면서 혈압 딱 30 올랐어요. 검색 쪽은 밤새는 날은 없습니다. 올데이(all-day)근무라고 아침 6시 반부터 저녁 8시 반까지 하루 14시간 꼬박 일하는 날 하루가 있어요. 보안검색 동료들, 올데이 뛰는 날은 얼굴이 아주 말이 아니지요. 그 다음 날엔 오전 6시 반 출근해서 오후 1시까지, 셋째 날에는 오후 출근(1시)해서 밤 10시까지 일하고 하루 쉬는 4조3교대로 돌아가는 겁니다. 보안검색 팀은 비록 밤샘근무는 없지만 그래도 노동 강도가 경비 못지않아요. 검색 요원들은 기내 가지고 들어가는 짐들도 계속 들었다 놨다 해야 하고, 근무시간 중간에 쉬는 시간이나 식사시간도 잘 보장이 안 되는 분위기입니다. 노동조합이 조직되어 있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말이에요. 승객들 없는 한산한 시간에 눈치껏 구석 소파 몇 개 놓여있는 데에서 쪽잠 자고 다리 잠시 뻗고 그게 다인 거죠."


이처럼 긴 시간 서서 일하면서 휴식도 잘 못 취하고, 식사도 불규칙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보안요원 노동 몇 년이면 만성 위장병, 손목이나 어깨 등의 관절질환, 발바닥에 염증이 생겨 발생하는 족저근막염 따위는 달고 산다고 한다. 


안전 업무를 충실히 하다 보면


이런 만성 신체질환과 더불어, 보안요원들이 일상적으로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도 상당하다고 했다. 사람이 특별히 많은 방학, 연휴 기간에도 물론이지만, 국제행사가 잡혀 보안등급이 올라가는 경우에 출국장의 줄이 길어지고 검색을 보다 꼼꼼하고 오랫동안 하게 되면 탑승객들의 불만이 바로 앞에 있는 보안요원들에게 쏟아지는 까닭이다.


"그럴 때를 대비하여 인원보충이 꼭 되어야 해요. 아니 평상시, 장시간·주야 교대하며 일하는 것도 힘든데 보안등급까지 올라가서 손님들 많아지고, 검색시간 길어지면 정말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장난 아닙니다. 하기야 오랫동안 서서 짐 들고 기다리다 보면 저 같아도 짜증 날 텐데, 거기에 짐 다 뜯어보면서 이것저것 검사하고 안 된다고 하면 승객들이 화 폭발하는 게 당연지사 아니겠어요? 보안단계라는 것이 5단계로 되어 있는데요, 아무 특별 상황이 없는 경우가 '평시', 최근 메르스 사태처럼 외국에서 발생한 특수 사안이 있는 경우가 '관심', 한국에서 국제행사가 개최된 경우가 '주의', 그 다음이 '경계', 마지막으로 9.11 때처럼 테러가 발생한 매우 위험한 단계가 '심각'이에요. 각 보안등급에 따라 손 검색이나 가방을 열어보는 개장 검색, 그리고 승객 아무나 찍어서 검색하는 랜덤(random) 검색의 빈도가 확연히 늘어나거든요. 그럼 가뜩이나 서 있는 사람도 많은데, 기다리는 시간이 확 늘어나는 거죠."


아무리 '평시'인들 매일 몇만 명의 사람들을 일일이 돌아봐야 하는 이 일이 쉬울 리 없다. 부디 이 여름, 즐거운 바캉스의 안전한 출발을 위해 애쓰는 인천공항 보안요원 노동자들에게도 유쾌하고 안락한 휴가가 꼭 허락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