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에세이] 표준적으로 혹은 비표준적으로 일한다는 것 /2015.6

 표준적으로 혹은 비표준적으로 일한다는 것 


송한수

노동시간센터(준), 광주근로자건강센터 부센터장, 조선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노동자 대상으로 건강검진·상담 업무를 하다보니, 노동시간의 특성에 따라 건강수준이 패턴화되어 있다는 점을 느끼곤 한다. 예를 들어 하루 12시간 정도 연장근무를 하는 제조업 노동자들에게서 콜레스테롤 수치들이 비정상적으로 크게 나빠져 있는 경우를 흔히 본다. 그 이유에 대해 면담하다보면, 과도한 음주, 피로의 누적, 영양의 불균형이 있었고, 그 이면에는 장시간노동이 있었다.


시내버스 운전자들의 노동시간을 보자. 그들은 오전근무조와 오후근무조로 나뉘어 1주일 단위로 근무를 순환한다. 오전근무조의 경우 새벽 5시에 업무를 시작하려고 새벽 4시에 기상하여 출근한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다 보니 아침식사를 거르는 경우가 많다. 아침근무를 마치고 오전 10시경에 30분 간의 휴식시간 동안 버스 기종점에 있는 식당에서 늦은 아침식사를 먹는다. 그리고 낮 근무를 마친 후 오후 3~4시쯤 식사를 하게 된다. 그들이 집에 귀가하면 가족들의 저녁식사시간과 엇갈린다. 그래서 늦은 밤 시간에 식사하게 될 가능성이 높고, 이 때문에 아침식사를 하지 않게 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짧은 기간 동안 빠르게 건강이 나빠지는 경우는 아이러니하게도 의사들에게서 발견하였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전공의를 대상으로 야간작업 특수건강진단을 하였는데, 100kg이 넘는 고도비만자가 여럿 생겼다. 이들은 병원근무를 시작하면서 체중이 급격히 증가하였다. 빈번한 야간당직과 과중한 노동이 일상화된 전공의들에게 차분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고, 밤늦게 과식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그 시간대에 먹을 수 있는 식사는 고열량의 배달음식뿐이었다.


소방공무원, 경찰공무원, 응급구조사, 장례지도사와 같은 야간작업 종사자들은 언제 일이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대기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긴장도가 매우 높은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업무가 갑자기 많아지면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한계에 이를 정도의 혹독한 노동을 감당하기도 한다. 과도한 스트레스로 음주와 흡연과 같은 나쁜 생활습관을 갖고 있고, 식사를 제때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밤에 일해도 야간 특수건강진단 못받는, 이상한 기준


2014년부터 야간작업 종사자에 대한 특수건강진단이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다. 그리고 2016년부터는 50인 미만 사업장의 야간작업 종사자들도 특수건강진단을 받게 된다. 야간작업으로 인한 생체리듬의 교란이 건강악화의 주요 원인으로 인정받게 되면서 취해진 조치다. 고용노동부는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연속되는 작업을 월 평균 4회 이상 수행하는 경우를 특수건강진단 대상 야간작업으로 보았다. 이 기준에 따르면 야간작업을 32시간 이상 수행하면 특수건강진단 대상에 해당된다.


그러나 교대근무 중 야간작업을 밤 10시가 아닌 밤11시나 12시에 시작하는 경우도 있고, 새벽에 몇 시간의 수면을 취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시간대의 작업을 월 평균 60시간 이상 수행했을 때 야간작업 특수건강진단 대상이 된다. 야간근무의 시작 시간이 오후 10시가 아니라 오후 11시라면 적용기준이 크게 달라진다. 예를 들어, 3교대 간호사들의 한 달에 4~8회, 보통 40~60시간 정도 야간근로를 수행한다. 월평균 야간작업 시간이 60시간 이상이어야 한다는 규정에 따르게 되면 상당수의 3교대 간호사들이 야간근로 특수건강검진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 아파트경비원은 일반적으로 격일제로 근무하면서 하루15~17시간을 근무한다. 그리고 밤 12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 사이에 약 4~5시간 정도 수면시간이 주어진다. 한 달에 15일을 근무한다고 하면 야간작업시간은 약 45시간 정도여서 야간작업 특수건강진단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간호사나 아파트 경비원은 특수건강진단을 받아야 할 야간작업 종사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비표준적 노동시간의 폐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야간작업이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수많은 근거들 때문에 야간작업 특수건강진단이 시행되었다. 그런데 더 엄밀하게 말하면 비표준적 노동시간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더 합당한 것 같다. 낮근무, 저녁근무, 야간근무를 교대로 순환하는 경우는 단순히 야간작업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주어진 노동시간에 따라 수면시간, 식사시간, 여가시간, 가사노동시간이 달라지고 이로 인해 일상생활의 규칙성이 훼손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식사 전에 퇴근하는 것을 ‘표준적인 노동시간’이라고 하자.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표준적인 노동시간’에서 벗어난 다양한 형태의 ‘비표준적 노동시간’ 종사자들이 있다. 여기에는 규칙적으로 노동시간이 변화되는 순환교대근무도 있으나, 노동시간이 과도하게 연장된 경우도 있고, 통상적인 노동시간대에서 벗어나 일하는 경우도 있다. 비표준적 노동시간은 노동자에게 ‘적응’이라는 과제를 부여한다. 잘 적응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경우는 잘 적응하지 못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교대근무 부적응증후군’이라는 용어가 나왔다. 이 증후군은 교대근무자가 수면을 적절하게 취하지 못하여 주간졸림증이나 업무효율저하를 경험하거나, 소화불량, 속쓰림, 위산역류와 같은 위장증상을 빈번하게 경험하거나, 혈압이나 혈당이 잘 조절되지 않는 등의 건강상의 문제가 발생한 경우를 일컫는다.


비표준적 노동시간 종사자의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비표준적 노동시간이라는 개념이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통계는 없다. 그러나 김현주 등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야간작업 종사자의 규모는 약 127만 명∼197만 명으로 전체 임금근로자의 10.2∼14.5%에 해당하였다. 그리고 주당 52시간 이상의 장시간 근로자의 수는 약 170만∼410만 명으로 추정되었는데, 이는 전체 임금근로자의 15.0∼31.9%에 해당한다. 이들 중 야간 및 장시간 근로에 동시에 노출되는 노동자들은 약 49만 명∼약 76만 명 정도로 추정되었는데, 이는 전체 임금근로자의 3.3∼5.8%에 해당한다.


비표준적 노동시간 종사자들의 상당수는 산업보건 관리의 사각지대에 있다. 가령 50∼60대 고령노동자들이 가장 쉽게 얻을 수 있는 일자리는 아파트 경비원과 요양보호사다. 이들의 대부분은 산업보건 관리 역량이 부족한 50인 미만 사업장에 속해 있다. 고령 노동자들은 뇌심혈관계질환이나 수면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청장년층보다 더 높다. 게다가 격일제 장시간 노동과 야간작업에 종사하게 됨으로써 건강에 더 나쁜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비표준적 노동시간에 주목하자



비표준적 노동시간은 일부 노동자들에게 노동시간 선택의 자유일 수 있지만, 대다수 노동자에게는 일상생활의 안정성을 교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야간작업은 이제 건강을 악화시킬 수 있는 요인으로 주목받으며, 산업보건관리의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야간작업에만 머무르지 않고, ‘비표준적 노동시간’ 이라는 개념을 적극적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다.


모든 노동자들에게 보다 안정적인 노동시간에 일할 수 있고, 불가피하게 비표준적 노동시간에 종사하게 할 경우에는 적응을 돕는 실질적인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이와는 별도로 지금 바로 할 수 있는 것으로 제시하고 싶은 것이 있다. 첫 번째는 퇴근시간을 지키는 것, 두 번째는 제시간에 좋은 질의 식사를 보장하는 것, 세 번째는 업무에 의해 방해받지 않는 편안한 휴식시간을 보장하는 것이다.

[노동시간에세이] 심야노동과 서비스 정신 / 2015.4

[시간의 재발견] 노동시간 에세이

심야노동과 서비스 정신



노동시간센터(준) 이혜은

가톨릭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한국은 세계굴지의 장시간 노동의 나라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초 단시간, 단기간 일할 수 밖에 없는 불안한 노동시간의 나라이기도 합니다. 노동시간의 길이와 불안정성은 비단 일터에서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일상의 시간에 까지 막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노동시간센터(준)은 지난 기획 [노동시간에 대해 말해야 하는 것들]을 마치고, 일상에서  느낀 시간과 노동을 에세이로 풀어나가는 [시간의 재구성] 연재를 시작합니다. ‘노동시간’에 방점을 두고 재구성하는 삶의 이야기에 많은 관심 바랍니다.



내가 하고 있는 업무 중에 직접 간호사나 의사를 고용하지 않은 사업장들에게 위탁받아 사업장의 보건관리를 수행하는 일이 있다. 주기적으로 계약을 맺은 사업장들을 방문해야 하기 때문에 서울의 다양한 지역으로 출장을 다니게 되는데 시간도 절약하고 편하게 다니고자 주로 택시를 이용하여 이동한다. 



한 달쯤 전 역시 낮에 택시를 타고 출장을 가던 중이었다. 택시 안에서 조용히 흘러나오던 라디오를 갑자기 기사님께서 음량을 높이셨다. 가만히 들어보니 서울시에서 택시 운행과 관련된 새로운 계획을 발표했었나 보다. 그 중 특히 개인택시에게 밤 12시부터 2시까지의 시간에 대해 의무적으로 운행하도록 한다는 내용에 대한 서울시 관계자와의 인터뷰였다. 



인터뷰가 끝나자 집중해서 듣고 있던 기사님은 이내 “이런 탁상머리들!” 이라며 분통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마침 차에 타고 있던 내게 하소연하신 내용은, 몸도 힘들고 취객들 상대하는 것도 스트레스 받아서 수입을 좀 포기하더라도 주간에 주로 운행을 하고 있는데 강제로 밤에 운행하라고 하는 것은 정말 너무하다, 밤에 택시 잡기 힘들다고들 하지만 특정지역에, 주로 주말에 쏠린 문제인데 이렇게 해서 해결이 되겠느냐는 것이었다.



노동시간 문제에 항상 관심을 가져야 함에도 이런 뉴스를 모르고 있었다는 것에 살짝 부끄러움을 느끼며 인터넷 검색을 해봤다. 2월에 발표된 <서울형 택시 발전모델>에 포함된 사업이었다. 아마도 서울시가 택시와 관련된 민원 때문에 꽤나 골치가 아팠던 모양이다. 민원의 두 축은 ‘승차거부’와 ‘불친절’이었는데 이번 개인택시 심야 의무운행은 승차거부를 해결하겠다고 제시한 방법이다. 



서울시 발표자료에 의하면 개인택시가 서울 택시의 67%로 법인택시의 두 배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나 심야시간대 영업이 매우 저조하다고 한다. 서울시가 작년 12월 한 달간 24시~02시의 개인택시 결제실적을 분석해 본 결과 심야시간대에 한 번도 운행하지 않은 개인택시가 15,261대(30.9%)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달에 20일 운행하고 있는 개인택시들에게 의무적으로 24시~2시 운행을 하도록 하고 6일 미만으로 운행 시에는 12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10일 미만으로 운행할 때는 카드결제 수수료와 관련된 보조금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것이 요지이다. 불이익이 없으려면 일하는 날의 절반은 새벽 2시까지 운행을 해야 하다니 평소 야간 운행을 안 하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부담이 될 것이 쉽게 예상된다. 


이후 다른 기사님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여 택시를 탈 때 시간이 있으면 노동시간과 서울시 정책에 대해 여쭤보았다. 한번은 꽤 젊은 기사님의 차를 타게 되었는데 “전 어차피 회사택시라 상관없어요. 2교대로 일하니까 절반은 야간에 일하고 있으니까요. 만약에 돈 벌고 나이 들어서 개인택시 하게 되었는데 강제로 밤에 운전시키면 당연히 싫겠죠”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말투에서 살짝 체념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긴 법인택시 노동자의 심야노동과 장시간 노동은 훨씬 심각한 문제인 게 틀림없다. 또 다른 기사님께 자세히 들어보니 보통 2인 1차, 즉 2교대로 운행하기 때문에 거의 하루 12시간씩 일을 하고 교대를 하지 않는 ‘1인 1차’의 경우 노동시간은 더 길어서 보통 15시간 많게는 17시간까지 일을 한다고 한다. 



물론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에 노동시간에 대한 제한이 있지만, 택시의 경우 ‘공익성 사업의 근로시간 특례’라는 제도에 따라 연장근로에 대한 제한 규정에서 벗어날 수가 있어 이런 장시간 노동이 가능하게 된다. 만났던 분 중 한 분은 장시간 노동에 대해 “사납금이란 게 있어서 12시간씩 하고 야간을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어요” 라고 하기도 하고 “실제로는 12시간씩 일하는데 근로계약에는 왜 6시간 반 일하는 거로 하는지 모르겠어요.” 라는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이는 서울시에서 노사합의로 결정된 임금지급 시간이 6시간 40분이기 때문이다. 2012년도 서울시 조사에 의하면 법인택시 노동자의 평균 수입은 월 187만 원에 불과했다.[각주:1]

 


심야의 택시수급 문제에 대해 여쭤봤던 기사님들께 공통으로 들을 수 있었던 얘기는 심야의 택시 수요는 종로와 강남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고 90% 이상의 손님들이 유흥을 즐기고 귀가하는 시민들이라는 것이다. 택시를 타는 곳은 몰려있는데 내리는 곳은 서울 전 지역으로 흩어지니 손님을 내려주고 다시 강남이나 종로로 돌아가기에 시간이 걸린다는 해석을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역시 강제 택시 운행보다는 심야시간대에만 합승을 할 수 있게 해주거나, 수요 분석을 더 자세히 해서 심야버스를 충원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의견도 들을 수 있었다.   

  


운수업에서의 장시간노동과 심야노동은 노동자 자신뿐만 아니라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서울시 조사결과, 택시 관련 교통사고 건수는 2011년 기준 전체 교통사고의 23.8%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고 특히 법인택시 교통사고가 개인택시 교통사고의 5.7배 수준으로, 전체 택시 교통사고의 80.9%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만대당 교통사고 건수를 비교하자면 법인택시는 2,092건이었던 것에 비해 개인택시는 366건에 그쳤다. 사납금을 채우기 위한 무리한 운전과 장시간 노동이 개인택시와 확실히 비교되는 부분으로 이러한 법인택시의 높은 교통사고율 원인으로 추정된다. 2006년에 출판되었던 우리나라 법인택시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 의하면 한 달 중 야간운행 비율과 수면시간은 교통사고 건수와 통계적으로 유의한 관련성이 있었다.[각주:2] 



공익성 사업의 근로시간 특례’라는 말처럼 공공성을 내세워서 심한 노동강도를 강요하는 일은 종종 있었다. 법인택시에서도 장시간노동과 심야노동을 줄여야 할 텐데 이것으로 모자라니 개인택시에도 심야 운행을 의무화하자는 서울시의 발상은 참으로 폭력적이다. 더욱이 개인택시 운전자들은 현재 60대 이상이 절반을 넘는다. 고령자는 야간노동에 더욱 민감한 집단으로 건강에 대한 영향이 더욱 클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해 찾아보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모 인터넷 신문에서 뽑은 기사 제목으로 “서울 심야택시, 서비스정신이란 이런 것” 이다. “서울은 전 세계에서 몇 안되는 밤의 도시이다”로 시작되는 기사는 “서울 심야택시, 말 안 들으면 면허 취소를 해서라도 관철해야 한다” 와 같은 이를 지지하는 일부 과격한 누리꾼들의 반응으로 끝을 맺고 있었다. 밤의 도시인 것이 별로 그리 자랑스럽지 않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밤에 일하지 않고 잘 수 있는 서울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정말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심야의 교통 서비스는 누군가의 희생으로 제공되는 게 아니라 착취당하지 않고 존중받는 노동을 통해서 제공되어야 할 것이다.






  1. https://traffic.seoul.go.kr/archives/11838 [본문으로]
  2. 윤간우 등. 일부 법인 택시노동자의 교통사고와 불안전운전행동에 미치는 인적요인. 대한산업의학회지 제 18 권 제 4 호 2006년 ; 307-317. [본문으로]

[노동시간에세이] 행복과 통근시간 / 2015.5

[시간의 재발견-노동시간에세이]


행복과 통근시간

출퇴근 시간도 노동시간의 일부로 인정해야


노동시간센터(준) 김재광


한국은 세계굴지의 장시간 노동의 나라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초 단시간, 단기간 일할 수 밖에 없는 불안한 노동시간의 나라이기도 합니다. 노동시간의 길이와 불안정성은 비단 일터에서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일상의 시간에 까지 막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노동시간센터(준)은 지난 기획 [노동시간에 대해 말해야 하는 것들]을 마치고, 일상에서  느낀 시간과 노동을 에세이로 풀어나가는 [시간의 재구성] 연재를 시작합니다. ‘노동시간’에 방점을 두고 재구성하는 삶의 이야기에 많은 관심 바랍니다.


지난 가을 지속되는 전세난 와중에 다행히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곳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서울인 듯 서울 아닌 듯 한 서울인 이곳은 주변에 텃밭이라고 하기는 상당히 넓은 경작지가 있고, 새로 들어선 교회 이름도 전원교회다. 말인 즉 공기는 좋으나, 참 외진 곳이라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출근 시간이 40여 분 더 늘어 출퇴근 시간이 도합 2시간 40 여분이 되었다. 이 긴 시간을 길바닥에서 보내려니 책도 읽어보고, 음악도 듣고, 이러 저러하게 의미 있게 써보려 앙탈을 부려보지만, 피곤하고 무료함을 이겨 낼 수가 없다. 출퇴근 시간을 정확하게 지킬 필요가 없는 직업인지라 그나마 다행이지 일반 직장이라면 아마도 우울과 무기력에서 못 벗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출퇴근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의 사정이 어떤지 궁금해진다. 그래서 이것저것 찾아보니 출퇴근 시간이 길어지고 내가 느끼고 있는 부정적인 무언가는 다행히(?)나 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삶의 질도 좌우하는 통근시간

OECD는 Well-being 측정 지표로 진작에 ‘통근시간’을 놓고 있다. 그만큼 출퇴근 시간이 삶의 질을 좌우하는 한 요소라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역시나 기대를 배반하지 않고 출퇴근 시간이 OECD국가 중 터키 다음으로 길어 당당히 2위를 차지하고 있다. OECD 국가의 평균 통근시간은 38분(편도)인데 비하여, 한국의 경우는 58분으로 보고되고 있다. 한편 리저스 그룹 조사(2010년)에 의하면 한국 직장인 네 명 중 한 명은 출퇴근을 위해 매일 90분 이상을 버스나 지하철에 안에 있으며, 평균 통근 시간(편도)은 62분이며, 통근 시간이 2시간 이상인 직장인도 전체의 8%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2010년 통계청 조사를 근거로 하여 추산할 경우 2015년 현재 출근 소요시간이 1시간 이상인 직장인의 수가 500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니 역시 나만의 아픔이 아니었던 것이다. 주택비용으로 인해 직장이 있는 도심에서 외곽으로의 이주하는 경향이 한동안 멈추지 않을 것을 고려하면 그 수는 좀처럼 줄어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진 : MBC 다큐스페셜, 2시간째 출근중, 길 위의 미생)



얼마 전 방영된 [MBC 다큐스페셜]은 장시간 출퇴근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경우 만성피로와 사고위험에 노출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이 다큐는 출퇴근하는 직장인을 대상으로 스트레스 조사를 하였는데 출근 시간이 1시간 30분이 넘는 집단에서는 스트레스를 나타내는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농도가 평균보다 높게 나타나 의학적으로도 1시간 30분 이상 출근 시간이 인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 밖에도 장시간 통근으로 유발되는 스트레스는 혈압 상승, 근·골격계 질환, 적대감 증가 및 인지 기능에 부정적인 영향을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0년 영국의 ‘The Argus’지는 통근에 따른 스트레스로 인해 영국 브라이튼 앤 호브 지역 주민 중 런던으로 통근하는 근로자들의 기대 수명이 평균 1년 단축됐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한편 장시간의 출퇴근 시간은 생체 문제를 일으킬 뿐 아니라 가족 및 사회관계까지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출근시간이 1시간 증가하면 수면시간은 13분이 줄어들고, 이혼율은 약 53%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하고, 심지어 출퇴근 시간이 정치참여에 연관이 상당하다는 미국의 연구결과를 접하면 장시간의 출퇴근 문제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확신이 선다. 앞서 밝힌 리저스의 조사에 따르면 출퇴근 시간이 줄어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의 설문(복수응답)에 ‘운동과 몸매 관리에 시간을 보내겠다’(82.0%), ‘가족친구 연인과 시간을 갖겠다’(76.0%), ‘학술적 능력제고에 투자하겠다’(65.0%)로 답한 점을 비추면 장시간 출퇴근 시간이 건강과 사회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통근시간 스트레스, 결국 노동시간의 문제

2013년 한국교통연구원은 흥미로운 보고를 한 바가 있다. 보고에 따르면 수도권에 거주하면서 서울(강남 기준)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의 통근시간에 따른 행복상실을 분석한 결과 통근시간(편도)이 1시간인 수도권 통근자의 행복상실, 그 가치가 월 94만원이라는 것이다. 수치로 나타난 행복상실의 정도가 실로 충격적이다. 행복의 가치를 단순 산술화 했다는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장시간의 출퇴근 시간이 삶의 질을 주요하게 결정하고 있다 점에서 큰 시사점을 준다. 월 94만원이면 최저임금 노동자 입장에서는 대부분의 경제적 가치인 것이다. 이 보고의 조사에 의하면 대상자의 62.7%가 통근시간의 불만족 하며, 응답자의 69.8%가 통근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응답하였으며, 46.6%는 업무효율에 지장을 주며, 29.6%는 이직을 생각할 정도라고 하니 수도권 출퇴근자의 스트레스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 : MBC 다큐스페셜, 2시간째 출근중, 길 위의 미생)



이렇듯 익숙하면서도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닌 장시간의 출퇴근 시간과 그에 따른 건강상, 사회관계상의 문제는 교통체계의 혁신, 주택 및 거주 방식의 혁신 등도 있겠으나, 노동시간의 문제로 따지자면 우선 유연한 출퇴근 시간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아무래도 집중된 출퇴근 시간을 피한다면 상대적으로 덜 스트레스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한들 출퇴근 시간 자체가 혁신적으로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차라리 출퇴근 시간을 노동시간으로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근본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출근 시간은 노동력을 제공하기 위해 노동자의 불가피한 시간으로 이에 대한 보상과 인정이 필요하다. 즉 통근시간의 전부 또는 일정 시간 이상의 시간에 대해서는 노동시간으로 인정하고 그만큼 실 노동시간을 면제하는 것이다. 최근 ‘벼룩시장 구인구직’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응답자의 66% 정도가 30분 이내의(편도) 출퇴근 시간을 원한다는 점을 참고한다면, 30분 이상의 통근 시간에 대해서 노동시간으로 인정한다면 장시간의 출퇴근 시간의 부담이 한층 덜어질 것이다. 물론 이러한 발상에 여러 가지 반대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개인의 부담을 사업주가 분담하는 것이 옳지 않다’ 라든가 ‘출퇴근 시간을 노동시간으로 인정하면 오히려 장거리 출퇴근자의 고용이 불안해 질 것’이라는 등등의 주장 말이다.



출퇴근 시간을 노동시간에 포함시키자는 나의 발상은 노동력을 제공하기 위해 장시간 자신의 시간을 할애하고 이로 인하여 건강과 사회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문제를 개인에게 모두 전가하는 것이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것에 전혀 부합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노동을 하는 이유는 노동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기초를 형성하기 위한 것이다. 그로 인해 불행해지는 것이 목표가 될 수 없다. 이 사회의 존립 이유가 누구를 일부러 고생스럽게 만드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면, 상당히 많은 사람이 곤란을 겪고 있으며 노동생산성에서도, 행복의 척도에서도, 사회관계 및 정치의 참여에서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장시간 통근시간의 문제를 모른척하는 것이 정당한지 묻고 싶다. 또한 노동시간의 문제는 단순히 노동에 몰입하는 시간뿐 아니라, 그것을 준비하는 시간, 그것에 부수하는 시간,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시간(출퇴근, 휴식, 재충전) 모두와 연관되어 있으며, 이 모두를 종합적으로 파악할 때 노동시간의 문제를 제대로 보는 것이 아닌가 한다.


(출처 : MBC 다큐스페셜, 2시간째 출근중, 길 위의 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