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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Z 노동 이야기] "오늘 뭐 먹지?" 말고 "오늘 뭐 먹이지" 고민하는 이들 /2016.4 천안 소재 공장 구내식당 노동자들 이야기 정하나 선전위원 평일, 직장인의 로망은 모름지기 점심시간이다. "오늘 뭐 먹지?" 매일 점심시간마다 김치찌개와 된장찌개 중에, 아니면 짜장과 짬뽕 중에 무얼 고를지 고민한다. 하지만, 구내식당이 있는 회사라면 이런 고민은 줄어든다. 오늘의 메뉴를 식판에 얼마만큼 담을지만 정하면 되니까. 오늘 찾아간 충남 천안에 있는 OO공장에도 구내식당이 있다. 직원이 500여 명인 이 공장은 2교대 근무를 하는 곳이다. 식당에서는 점심 외에 아침 일찍 출근하는 사람을 위한 아침 식사, 오후 야간조에 근무하는 이들을 위한 저녁 식사를 제공한다. 삼시 세끼 동료 노동자들의 식사를 만드는 이들은 어떻게 일하고 있을까? 새벽 3시부터 공장의 구내식당은 돌아간다 식당을 찾은 건 아침 9.. 더보기
월 간 「일 터」/[A-Z 다양한 노동이야기]

[A-Z 노동 이야기] "오늘 뭐 먹지?" 말고 "오늘 뭐 먹이지" 고민하는 이들 /2016.4

천안 소재 공장 구내식당 노동자들 이야기


정하나 선전위원



평일, 직장인의 로망은 모름지기 점심시간이다. "오늘 뭐 먹지?" 매일 점심시간마다 김치찌개와 된장찌개 중에, 아니면 짜장과 짬뽕 중에 무얼 고를지 고민한다. 하지만, 구내식당이 있는 회사라면 이런 고민은 줄어든다. 오늘의 메뉴를 식판에 얼마만큼 담을지만 정하면 되니까. 오늘 찾아간 충남 천안에 있는 OO공장에도 구내식당이 있다. 직원이 500여 명인 이 공장은 2교대 근무를 하는 곳이다. 식당에서는 점심 외에 아침 일찍 출근하는 사람을 위한 아침 식사, 오후 야간조에 근무하는 이들을 위한 저녁 식사를 제공한다. 삼시 세끼 동료 노동자들의 식사를 만드는 이들은 어떻게 일하고 있을까?


새벽 3시부터 공장의 구내식당은 돌아간다



식당을 찾은 건 아침 9시가 조금 넘은 시각. 이미 아침 7시에 출근한 직원 150명의 아침 식사가 끝나고 설거지와 홀 정리가 한창이었다. 공장의 식당 일에 배치된 인원은 총 9명이다. 하지만 1일 주방에서 같이 일하는 인원은 6명이다. 1명은 공장 밖에 있는 직원 기숙사를 담당하고, 1명은 홀 정리만 담당한다. 남은 7명은 모두 주방을 담당하는 인원이지만 그중 1명은 전날 야간 당직을 하기 때문에 다음날은 오프이다.


구내식당 식사 담당이 웬 야간 당직이냐 싶지만, 이유가 분명히 있다. OO공장이 바로 교대제 사업장이기 때문이다. 사무직이 대부분인 회사의 구내식당과는 달리, 이곳은 아침 7시 40분에서 16시까지는 오전 근무조가, 16시에서 24시까지 오후(야간) 근무조가 번갈아가면서 공장을 돌리는 2교대 사업장이다. 따라서 식당도 그에 맞춰 돌아가야 한다. 오전조 노동자들이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하기 전, 아침 7시에 식당을 문을 연다.


"아침 식사는 7시부터 시작하지만, 그 전에 밥이랑 반찬이랑 다 만들고 배식대에 올려놓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겠어요? 최소한 2~3시간 전에는 일어나서 해야 하는데, 아침 조리와 배식을 다같이 하려면 근무시간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나겠죠. 그래서 당번을 정해서 한 명씩 돌아가면서 회사에서 자는 거죠. 저기 주방 안쪽에 보면 숙직실이 있어요. 거기서 자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그날 아침 메뉴 다 조리하고 배식대에 차려놓는 것까지 담당해요. 재료 손질이 많이 필요하거나, 전처럼 손이 많이 가는 반찬이 있으면 새벽 3시에는 일어나야 해요. 아침 당번은 그 일까지 하고 퇴근한답니다." (OO공장 구내식당 반장 A씨)


아침 당번이 식사를 다 차리고 나면 나머지 6명 인원이 7시 20분까지 출근을 한다. 출근하자마자 20~30분 정도 그날 할 일을 분담하고, 곧바로 아침 설거지와 주방 정리를 한다. 무거운 스테인리스 식판을 20여 개씩 들고 옮겨서 한번 헹구고 식기세척기에 넣는다. 아침 조리와 설거지로 지저분해진 주방 가재도구와 조리대, 바닥도 싹 치운다. 40~60세의 여성들이 무거운 식판을 나르고,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고 주방 여기저기를 누비는 모습을 보며 '누가 밥 해 먹이는 일이 쉽다고 했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나마 아침에는 식당 이용자가 적어서 수월한 편이라고 했다.


체계적으로 움직이는 주방 시스템, 하지만 쉴 시간은 '제로'

각자 맡은 곳의 청소를 마치면, 바로 12시 점심 식사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 꽤 신체를 많이 쓰는 일인데 점심 식사와 정리시간이 끝날 때까지는 쉴 틈이 전혀 없다. 500인분의 식사를 준비하고 뒤처리해야 하는 이 시간은 대략 오전 10시부터 오후 14시까지. 이 4시간은 OO공장 식당노동자들이 하는 노동이 가장 절정에 이르는 시간이다. 이때는 옆에 가서 말 붙이는 것뿐만 아니라, 분주하게 돌아가는 주방 안에서 일도 안 하면서 같이 있는 게 매우 송구스러울 정도였다.


"다리 많이 아프죠. 집에서 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을 준비해야 하고, 큰 조리도구 써가면서 해야 하고. 근데 보시다시피 쉴 틈이 전혀 없어요. 무조건 12시까지는 (점심밥 먹을) 모든 준비가 완료되어 있어야 하니까요. 비빔밥같이 재료가 다양하게 들어가고 손질을 많이 해야 하는 메뉴가 있거나, 오늘처럼 철판에 내도록 부쳐내야 하는 동그랑땡 같은 게 있으면 아주 죽음이에요. 특히 전 요리 같은 건 여름에는 최악이겠죠. 재료 다듬어서는 것도 압권이지만, 철판이 너무 뜨거운데 주방에 달리 냉방시설을 달기 어려우니... 정말 힘들지요." (OO공장 구내식당 노동자 B씨)


주방에서 하는 일이 단순할 거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조리' 부문만 해도 모든 메뉴의 재료 전(前)처리는 별도의 공정이며, 큰 솥을 쓰는 밥과 국은 따로, 반찬 3~4종류의 조리도 다 각각 조리법이 다르다. 6명의 인원이 제한된 시간에 식사(점심) 500인분을 만들어야 하고, 재료 손질과 조리의 난이도가 매 끼니 달라서 누구 한사람에게 어렵고 힘든 일이 몰리지 않도록 손질·조리·보조 당번이 매일 다르게 짜인다. 게다가 저녁 식사 당번 2인, 숙직하고 다음 날 아침 식사 준비하는 당번 1인도 매번 돌아가면서 담당해야 하니 순서를 잘 맞춰야 한다. 이처럼 주방은 생각보다 훨씬 더 체계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제일 바쁜 점심시간은, 주방에서 조리하는 것뿐만 아니라 홀 청소도 싹 해놓고 식판이랑 수저들, 음식들까지 잘 올려놔야 해요. 12시에 배식 시작하고 직원들이 밥 먹을 때 떨어진 반찬이랑 식기 계속 채워 넣어놓고. 그렇게 500명의 식사를 마치고 1시 반쯤부터 저희도 점심 먹어요. 점심 먹기 전까지는 아침 7시쯤 출근해서 7시간 정도는 꼬박 서서 분주하게 일하는 셈이죠." (OO공장 구내식당 노동자 B씨)


그래도 노동조합이 있어서 주방 시설과 환경이 좋아졌다

이른 시간 출근했기는 하지만 그래도 오전 시간에는 비교적 안색도 좋고, 표정도 밝은 편이었던 구내식당 노동자들은 점심 식사 시간이 마칠 때쯤 되니, 그야말로 기진맥진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20년 넘게 이곳에서 일해 온 반장 A씨도, 오전에는 웃는 낯으로 주방 전체 돌아가는 상황을 상세하게 일러 주었는데, 고된 일을 몇 시간 하고 난 오후가 되니 어느 순간부터는 마치 몸 어딘가에 통증이 있는 듯, 미간을 찌푸린 채로 일하고 계셨다. 


소위 건설현장 같은 곳처럼 육체 하중이 많은 노동을 하는 분들이 처음 몇 주는 힘들어도 나중에는 '인이 박여서'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의 몇 배가 되는 일을 해낸다는 말이 있다. 정말 인이 배였다 할지라도 왜 그 등짐이 무겁지 않겠는가. 이곳의 식당 노동자들도 짧게는 2~3년부터 길게는 20여 년씩 일했기 때문에 인은 충분히 배겼을 테지만, 하루 약 1천 명의 끼니를 정해진 시간 안에 만들어 내고 치우는 일은 해내며 생기는 몸의 부담은 점점 늘어가고 있다.


"저는 여기 온 지 3년 조금 안 되었어요. 그 전에는 어린이집 주방일 했었는데, 거기하고는 차원이 다르더라고요. 아무래도 애들 먹는 양이랑 성인들 먹는 양이 다르니까 더 그렇겠죠. 저는 아직 크게 다치거나 아픈 적은 없어요. 물론 파스는 늘 붙이고 다니긴 하지만요. 근데 오랫동안 일한 언니들 보니까 다치기도 하고 몸이 아파서 쉬기도 하고 그러시더라고요. 사고야 뭐... 주방이 밥하는 데라 안전할 거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불도 쓰고, 물도 쓰고 하니 말이죠. 우리 주방 바닥은 처리를 잘해놓긴 했지만 그래도 저쪽에 계신 언니는 한번 미끄러져서 팔 부러지고 3개월 쉬셨어요. 그리고 아까 전 부치던 철판 같은데... 거기에서 일하다 보면 얼굴이나 팔에 기름 튀는 건 뭐... 사고도 아니죠. 칼질도 많이 하고 무거운 식자재들 솥단지에 옮기고 주걱으로 젓고 하다 보니 손목 염증이나 어깨에도 문제가 많이 생겨서 몇 개월씩 쉬시는 경우도 많아요." (OO공장 구내식당 노동자 C씨)


그래도 OO공장은 노동조합이 영향력이 있어서 공장 노동자의 작업 환경뿐만 아니라, 몇 명 되지 않는 식당 노동자에 대한 처우와 노동 환경도 많이 개선되었다고 한다. 최근 많은 학교와 회사의 구내식당들이 외주·위탁을 하고 있어서 노동조합이 있다 하더라도 식당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을 고려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이 공장의 경우 노동조합에서 꼼꼼하게 조합원들의 상황을 살피고 있다니 다행이었다.


"그래도 우리 공장은 계속 작업환경을 몸에 무리가 안 가게 바꿔줬어요. 여기 노동조합이 잘 되어 있어서, 조합에서 나와서 식당·주방에서 어떻게 일하는지 자주 물어보고, 사진도 찍어가고 그러더라고요. 무거운 식기류나 쓰레기 버릴 때 편리하게 경사로도 곳곳에 잘 되어 있고, 수레도 높낮이까지 조절하는 것으로 바꿨고. 주방 안에서 물을 많이 쓰니까 사실 예전엔 미끄러지기도 많이 했는데, 장화도 좋은 것으로 지급하고 바닥도 특수 처리를 해서 이제는 살짝 '미끌' 할 때는 있어도 넘어지거나 하는 일은 없어요." (OO공장 구내식당 반장 A씨)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40~50대의 식당 노동자들이 몸의 나이에 맞게 적절한 노동량으로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으려면 인력 보충이 필요해 보였다. 구내식당 노동자들은 "일하면서 뭐 이만큼도 안 힘들면 어떡해, 이만하면 많이 좋아진 거야"라고는 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