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_여성노동건강상식] 내가 나일 수 있는 권리를 위해

내가 나일 수 있는 권리를 위해

 

다른 전공과는 다르게 산부인과를 선택한 필자가 의사로 살면서 환자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여성뿐일 것이라고 흔히 생각한다. 일견 사실이긴 하지만, 하지만 그러한 경계에 속하지 못하는 성소수자들이 우리 주위에 있다. 혹자는 여성노동건강상식코너에서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다루는지에 대한 의문점을 가질 수도 있다. 애초에 노동건강상식이 아닌, ‘여성노동에서의 건강 상식을 연재하기 시작한 것은 노동 및 건강분야에서 남성보다 소외돼온 여성의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었다. 성소수자의 범위 안에 여성역시 포함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해당 코너가 그동안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자 했던 취지를 떠올릴 때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에 더욱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성소수자(sexual minority)는 트랜스젠더·양성애자동성애자·무성애자·범성애자·젠더퀴어·간성·3의 성 등을 포함하며 성 정체성, 성별, 신체적 성적 특징 또는 성적 지향 등과 같이 성적인 부분에서 사회적 소수자의 위치에 있는 이들이다. 성소수자들은 이성애자에 비해 질병에 더 취약하며 일상생활에서 사회적인 폭력 및 차별에 더 쉽게 자주 노출되며,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적절하게 받지 못한다. 2016년 대한가정의학회에서 김승섭 교수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의료인의 성소수자 차별·성소수자 진료에 대한 경험과 지식 부족·제도적 차별 등이 그 원인이 된다. 또한 한국 LGBT 커뮤니티의 사회적 욕구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7%가 의료기관에서 성소수자를 차별하거나 배제하는 일이 종종 또는 자주 일어난다고 답했다. 이러한 차별과 혐오의 경험으로 인해 성소수자들은 의료기관 방문을 연기하거나 회피하게 된다.

성소수자 중 트랜스젠더는 태어나면서 생물학적으로 지정된 성별과 본인이 인식하는 성별(남성, 여성, 혹은 양성, 중성, 무성)이 다르거나 불편하다고 느끼는 사람을 말한다. 트랜스젠더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대부분의 이성애자가 느끼지 못하는 불편함과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간다. 신분증상 두 개의 성별로만 나뉜 표기가 그대로 적용되는 사회 체계는 학교나 병원·은행·화장실·목욕탕 등의 공간에서, 트랜스젠더는 성별 정체성을 인정받거나 보호받지 못한다. 그래서 많은 트랜스젠더는 지정된 성별과 본인이 인식하는 성별 사이의 불일치감을 해결하기 위해 옷차림이나 생김새, 체형 등의 겉모습을 바꾸기 원한다. 이를 위해 호르몬 요법이나 외과적인 수술 등의 의료 조치를 받고, 개명 신청 및 성별 정정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일련의 모든 과정을 통틀어 트랜지션(transition, 이행)이라고 한다. 이행과정에 있어 각자가 원하는 이행의 방식은 개개인의 차이가 있을 수 있고 건강의 문제나 경제적 부담 등으로 그 이행 정도 역시 다양하다. (본문의 해당 내용 외에도 본고의 트랜지션에 관한 대목 중 여러 부분은 해당 홈페이지의 내용을 참고했음을 밝힌다. http://transroadmap.net/transgender/#footnote-3)

트랜지션의 과정 중 의학적인 조치에는 호르몬 요법과 외과적인 수술이 있다. 대표적인 외과적인 수술은 부여받은 성별의 생식기관을 제거하는 수술과 본인이 인식하는 성별을 표현하는 성 기관을 형성하는 수술이다. 성 기관 형성 수술을 포함한 트랜지션의 여러 외과 수술은 절차가 어렵고 복잡해, 기술적인 면에서도 숙련된 의료진이 필요하고 비용도 많이 발생한다. 또한 수술을 시행하기 전에 호르몬제를 투여해야 하고, 그 이전에 정신의학과 진료를 통해 본인의 성별 정체성을 진단명과 진단서로 증명받아야 한다.

현행 국민건강보험제도상 트랜지션에 필요한 일련의 과정들은 보험 미적용 대상이다. 한국은 신분증과 공공문서상의 성별을 변경하는 것, 즉 주민등록번호 뒷자리의 첫 번째 숫자를 변경하기 위해서 필요한 외과적 수술을 모두 완료하도록 요구한다. 이는 다른 국가와 비교할 때 과도한 수준이다. 현실적인 경우 대부분의 트랜스젠더는 겉모습과 신분증상의 성별 불일치로 인해 고용이 불안정하고 취업의 기회도 제한적이다. 결국 국가의 무리한 요구와 과다한 비용으로 인해 자신이 선택한 성별로 살아갈 권리를 보장받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아직 국내에서 트랜스지션에 필요한 의료적 조치를 시행하는 의료기관은 매우 제한적이다. 대부분의 의료인은 의과대학 재학과 전공의 수련과정에서 성소수자와 관련된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다. 따라서 성소수자와 관련된 의학적 지식과 의료적 조치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 글을 쓰는 필자 역시 그러했다.

현재 국내에서 트랜스젠더의 의료적 조치를 적극적으로 시행하는 대표적인 의료기관으로는 살림 의료복지사회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살림의원을 꼽을 수 있다. 살림의원은 가정의학과· 산부인과·정신건강의학과·치과 등의 진료를 시행하고 있는데, 가정의학과 및 산부인과 전문의가 트랜스젠더의 호르몬 대체요법을 진행하고 있다.

필자는 올해 7월부터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향남 공감의원에서 산부인과 진료를 준비하고 있다. 해당 의원의 산부인과 진료 내용에 트랜스젠더 호르몬 치료를 포함할 계획을 갖고 관련된 공부를 하던 중 살림의원으로부터 트랜스젠더 호르몬 대체요법에 필요한 정보를 공유 받을 수 있었다. 사실 트랜스젠더 진료라는 게 의사 1명의 의지와 관심만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다. 의원 및 병원은 성소수자 친화적인 의료 환경을 갖춰야 하고 이에 대한 직원들의 교육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환경 측면에서는 남/여 화장실이 아닌 성중립 화장실을 갖추는 등의 변화가 필요하다. 또한 의료기관을 방문하는 성소수자의 호칭에 대해 성소수자 본인의 의견을 존중하며, 그들을 편견이나 호기심으로 대하지 않기 위한 내부 교육이 필요할 수도 있다. 진료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약국과의 연계 역시 필요하다.

트랜스젠더의 건강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의료시스템, 특히 의학교육 과정의 개선 또한 중요한 필요조건이 된다. 현재 의과대학과 간호대학 등의 교육과정에는 성소수자 의료에 관한 교육과정이 거의 없다. 이 때문에 많은 의료인은 트랜스젠더에게 어ᄄᅠᆫ 의학적 문제점이 발생하는지, 이에 어떤 조처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은 올해 3,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성소수자 건강권과 의료에 관한 강의를 개설했다. 미국과 캐나다 등에서는 의과대학 수업 과정에 성소수자 과정을 포함하는 곳이 절반 가량 되지만 이들 역시 실제 수업 시간은 4년간 평균 5시간에 불과하다. 관련 강의를 개설한 윤현배 교수는 의료사각지대에 놓인 성소수자들의 실상을 파악하고, 이들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는 게 해당 수업의 목표라고 말했다. 이밖에도 한림대학교 강동성심병원은 성소수자를 위한 성중립 화장실을 설치하고, 각 관련 진료과에 성소수자를 전담하는 엘라이(성소수자와 연대하는 사람)’ 의료진을 배정했다. 병원에 성소수자 환자가 늘어나면서 성소수자 친화적 진료환경을 만들기 위한 직원 교육도 진행했다. 해당 교육을 담당한 성형외과 김결희 교수의 교육 영상을 유튜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고려대학교 안암병원도 성별 재지정 수술 및 호르몬 치료와 정신과 진료 등의 포괄적 진료를 제공하는 젠더클리닉을 개설했다.

우리나라 인구의 5%가량이 성소수자일 것이라는 통계가 존재한다. 이는 성소수자가 우리 주위에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성소수자가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권리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 한 명이라도, 의료인으로서 트렌스젠더 진료에 이제 막 걸음마를 떼는 필자와 함께 우리 모두가 나아가야 할 길에 함께해 주길 기원해 본다.

(조이 회원, 산부인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