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노동건강상식] 생리, 아무도 소리 내어 말하고 싶지 않은 단어 / 2021. 04

[여성노동건강상식]

생리, 아무도 소리 내어 말하고 싶지 않은 단어

조이 산부인과 전문의, 여성노동건강권팀

산부인과 진료실에 내원하는 환자들은 산모를 제외하면 생리와 관련된 증상과 질환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산부인과 의사로 살면서 남들보다 몇백 배, 몇천 배 많게 입 밖에 내게 되는 단어가 ‘생리’일 것이다. 생리 (Menstruation), 즉 월경이란 가임기 여성의 자궁에서 호르몬의 작용으로 임신을 준비하기 위해 자궁내막을 두껍게 만들었다가 그 달에 수정과 착상이 발생하지 않는 경우 황체 호르몬 분비의 감소와 함께 자궁내막이 탈락하여 자궁 밖으로 배출되는 현상이다.

이처럼 생리는 말 그대로 건강한 여성에서 한 달에 한 번 일어나는 생리현상일 뿐인데, 우리는 왜 ‘그 날’, ‘마법’ 등의 단어로 생리를 표현하며 아무도 소리 내어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일까? 생리라는 단어는 왜 터부시되어 왠지 부끄럽거나 떳떳하지 못한 단어가 된 것일까?

생리의 불편함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생리혈이 배출되는 느낌을 말로 표현하려고 해도 쉽지 않다. 생리혈은 자궁에서 질을 통해 신체 밖으로 배출되는데 혈액은 공기와 접촉하면 정상적으로 굳는 특성이 있어서 생리혈로 배출되는 혈액은 완전한 액체보다는 조금 더 젤 형태에 가깝다. 인터넷에 돌았던 유머 중에는 ‘뜨거운 굴을 낳는 느낌’이라고 묘사된 바 있으며, 요새 아이들이 많이 갖고 노는 슬라임이나 달걀 노른자의 느낌에 가까워서 그 느낌이 유쾌할 수 없다.

종종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생리는 대소변처럼 조금이라도 참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생리하고 싶은 날은 지정할 수 있는 것은 더욱 아니며, 주기가 매우 규칙적인 소수의 경우를 제외하자면 1~2일 정도의 주기 차이는 정상적으로 존재하기에 그 날짜를 완벽하게 예측하기도 어렵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는 이러한 자세한 묘사가 불편하거나 이 정도도 모르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을 수 없는 분들도 있겠으나 진료실에서 만나는 많은 수의 환자와 보호자들이 잘 모르거나 오해하고 있는 사실들임을 밝힌다. 더불어 궁금하더라도 입 밖으로 내어 묻기 어려워하는 환자와 보호자들도 많다.

출처 : Mashable India



월경과 관련된 질환들

월경은 매달 반복되는 생리현상이지만, 그 주기에 따른 여러 질환을 동반하는 경우도 있다. 생리통(Dysmenorrhea)은 생리 기간 중 다양한 경로와 강도로 느껴지는 통증을 말하는데, 이는 자궁내막이 탈락될 때 작용하는 프로 스타글란딘이라는 물질이 복부 혈관을 수축시키며 신경을 자극하여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생리통의 유무와 강도, 지속 기간은 개인차가 심하여 생리통이 없는 사람도 있고 생리 기간 내내 진통제 없이는 일상생활이 어려운 사람도 있다. 생리의 양과 생리 기간 역시 개인차가 크며, 이는 생리통과 관련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미국의 한 통계에 따르면, 여성의 20% 정도는 일상생활에 영향을 주는 정도의 생리통을 겪으며 유방통 및 두통, 설사 또는 변비, 몸살, 어지럼증, 구역감을 함께 겪는 경우도 있다. 흡연하거나 생리를 일찍 시작했거나 생리기간이 긴 경우 생리통의 정도와 관련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생리통이 심한 경우, 자궁내막증, 자궁선근증 등의 산부인과 기저질환을 의심할 수 있기에 진료가 필요하다.

규칙적인 생리주기란 28~30일을 의미하지만, 다수의 여성이 생리주기 자체의 불규칙함과 생리 기간이 아닐 때 발생하는 출혈을 호소한다. 이는 대부분 생리주기를 조절하는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난포자극호르몬, 황체 호르몬 등의 불균형 때문인데 이러한 호르몬 불균형의 원인은 스트레스, 저체중, 과체중, 극심한 다이어트, 영양 불균형, 불규칙한 생활, 야간 노동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생리 기간뿐 아니라 생리 1주 전부터 생리 시작 직전까지 신체적, 정서적 증상으로 고통 받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월경전증후군(PMS, Pre-Menstrual Syndrome)이라고 한다. 한 통계에 의하면,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월경을 하는 여성 중 75%가 월경전증후군을 호소하며 4~5% 정도는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을 정의 증상을 호소한다고 한다. 월경전증후군의 증상은 집중력 저하, 건망증, 초조함, 예민함, 긴장감, 불안감, 급격한 기분변화, 분노조절 장애, 공격성 증가, 식욕 증가, 의욕 상실, 업무능력 감소, 유방통, 요통, 두통, 부종 및 체중증가, 과도한 수면, 불면증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원인은 명확히 밝혀져 있지 않으나 프로게스테론의 비정상적 박동적 분비, 지나치게 높은 에스트로겐 레벨, 도파민 감소에 따는 프로락틴 분비 증가와 엔도르핀 및 세로토닌의 감소 등 호르몬 변화 및 이상이 증상을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피임약을 복용하여 호르몬 변화를 감소시키거나 우울증 약으로 쓰이는 세로토닌 재흡수 차단제 (SSRI)를 복용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생리휴가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5인 이상의 노동자가 근무하는 사업장의 여성노동자에 대해 월 1일의 생리휴가를 주도록 되어 있으며 이를 어길 때에는 5백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생리휴가는 노동자가 청구하는 날에 무조건 줘야 하는 휴일로, 당일 청구해도 부 여하도록 되어 있다. 즉, 회사 측에서 생리휴가 사용 며칠 전 휴가원 제출 요구, 생리휴가가 가능한 요일의 지정 등을 통해 사실상 근로자의 자유로운 생리휴가 사용을 제한하는 행위는 규정상 인정될 수 없다.

생리휴가는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에서 월 1회의 유급휴가로 규정되었으나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여성노동자들이 생리휴가 보장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중반이다. 노동시간 단축이나 모성보호법 등의 법률의 제개정이 논의될 때마다 사업주들은 그 전제조건의 하나로 생리휴가 제도 폐지를 주장해 왔다. 이는 생리휴가 제도가 여성을 육체적으로 취약한 존재임을 증명하여 오히려 차별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라든가, 여성을 재생산을 위한 도구로 취급함으로써 생리휴가가 여성비하에 해당한다는 식으로 그럴싸하게 포장되었지만, 실제로는 여성 노동자가 하루 동안 노동하지 않음에도 임금을 받으면, 그만큼 사업주의 이윤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근대적 경영관에 비롯된 주장이었다.

2004년 주 5일 근무제의 도입으로 1,000명 이상 사업장의 경우 생리휴가는 무급으로 전환되었으며 2012년부터는 20인 이상 사업장까지 확대되어, 실질적으로 한국의 생리휴가는 현재 무급휴가에 해당한다.

2014년에 시행된 한 조사(유한킴벌리&인 크루트 조사)에 따르면, 생리휴가가 무급휴가로 전환된 이후 76%의 여성이 생리휴가를 한 번도 쓴 적이 없으며 주변의 눈치 때문에 사용이 어렵다고 답했다. 당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생리휴가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42%가 “상사에게 눈치가 보여서”를 꼽았으며 36%는 “주위에서 아무도 안 써서”라고 응답했다. 이에 대해 남성들은 “생리휴가는 다 꼼수”라고 응답했다.

생리휴가, 모두에게 온전히 보장되어야

생리는 말 그대로 생리적인 현상으로 많은 신체적 증상과 불편함을 유발한다. 생리휴가의 무급화 당시 경영계가 생리휴가 폐지를 주장하며 펼친 근거 중에는 “선진국에는 생리휴가가 없다”는 것이었는데, 이는 선진국에서는 생리 휴가를 특별히 제도화하지 않아도 노동자가 몸이 불편할 때 언제든지 쉴 수 있는 권리가 보장 되어 있으며, 그건 근무평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임을 간과한 것이다. 즉, 생리휴가를 없애려면 생리휴가가 적극적으로 보장되고 그에 따른 비용을 기꺼이 부담할 수 있어야 한다.

2021년의 한국 사회에서 생리 중인 모든 여성 노동자들에겐 생리휴가라는 ‘사회적 배려’ 가 정당하게 보장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