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게 일할 권리,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진우 운영집행위원
지난 3월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한 활동가에게서 다급하게 연락이 왔다. 사측에서 갑자기 ‘보건관리대행’이라는 것을 하겠다며, 노동자들에게 정보공개 동의서에 서명을 받으려 안달이라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건강과는 담쌓고 지내던 바지사장들이 보건관리를 하겠다고 나서니, 황당하기도 하고 뭔가 꼼수가 숨어 있을 것 같아 연락을 취해 온 것이다.
삼성전자서비스 AS기사 노동자들은 S 기업 역사상 처음으로 대규모의 노동조합을 만들고 2013년 7월 민주노총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를 출범시켰다. 이들은 S 기업의 직접 지휘 감독을 받는 한편, 노동조건, 임금까지 S 기업의 관리를 받았다. 또한, 근로기준법에 위배되는 건당 수수료 임금체계로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며 비인간적인 삶을 살아왔다. 이를 개선해달라는 노동자들의 요구에 협력업체 사장들은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S 기업 측에서는 하청업체 소관이라는 이유로 모두 책임을 회피했다. 부조리한 현실을 딛고 인간다운 삶을 살고자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고 투쟁해왔다.
이러한 투쟁 과정에서 삼성전자서비스의 문제점들이 언론에 오르내리게 되었고, 사측은 산업안전보건법에 규정된 보건관리대행을 구색 맞추기 차원에서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S 기업에서 운영하는 서비스센터에는 소비자들이 센터에 직접 방문하여 만나게 되는 내근직 AS기사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에어컨 등의 대형가전을 수리하러 다니는 외근직도 포함된다. 따라서 센터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보통은 보건관리대행을 반드시 해야만 하는 50인 이상 사업장이 대부분이다. 국내 굴지의 기업 S 에서 지난 20여 년간 산업안전보건법 따위는 무시하다가 이제야 사업주의 의무를 시작한 것이다.
마침 필자가 일하는 기관에서도 지난 3월 말부터 S 기업에서 운영하는 서비스센터 한 지점의 보건관리대행을 맡게 되었다. 오후 3시경 방문했는데, 외근직 AS기사 노동자들은 모두 외근 중이라 상담이 불가능했고, 내근직 노동자들과의 상담도 여의치 않았다. 센터 관리자는 S 기업 측의 지시로 보건관리대행을 시작하긴 했지만, 어떤 제도인지, 시행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본인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대행팀을 맞았다. 센터 관리자는 내근직과 외근직 둘이었으나, 생소한 일이라 업무 맡는 것을 서로 꺼리는 것처럼 보였다. 결국, 외근자들은 모두 외근 중이라는 이유로 내근직 관리자가 보건관리대행 업무를 맡기로 결정되었다. 그런데, 우리를 창고방으로 안내하던 관리자는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내근 AS기사 노동자들이 너무 바빠서 상담을 올 수가 없다는 것이다. 쉬는 시간이 언제인지 묻자, 그런 건 없다는 대답뿐이었다. 나는 상담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으니, 한 사람 당 3분이라도 시간을 내달라 요청했다.
출처 : 미디어 충청
결국, 대행팀이 도착한 지 30분이 지나서야 AS 기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첫 방문이라 기존의 검진자료 등은 제공받을 수 없었고, 과거력, 가족력, 현 상태에 대한 간단한 문진과 혈압, 맥박만 체크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이상한 공통점이 발견되었다. 특별한 질환도 없는 20~30대의 젊은 노동자들 다수의 맥박이 100회 전후로 높은 편이었던 것이다. 어떤 노동자의 경우 맥박이 너무 높아 추가 문진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노동환경에 대해 더 질문하려고 붙잡자, 계속 시계를 쳐다보았다. 너무 바빠서 당장 나가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 뒤에 상담한 노동자들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었다. 20~30대의 젊은 노동자들의 맥박이 높은 원인은 쉴 틈 없는 노동강도 때문으로 판단되었다. 조합원 중 다수는 관리자의 감시에 비교적 자유로운 외근직 노동자들이고, 내근직은 아직 많지 않은 것도 그 이유였을 것으로 보인다. 짧은 상담 시간이 끝나고 관리자에게 이 같은 사실에 관해 얘기하긴 했지만 무슨 소용인가 싶다.
사측이 형식적으로나마 보건관리대행을 시작한 것은 분명 노동조합의 힘 때문일 것이다. 지난 3월 방문 이후 노동조합은 큰 변화가 있었다. 염호석 분회장이 자결하고, 800여 명의 조합원이 45일간 삼성 본사 앞 노숙농성투쟁을 벌였다. 6월 28일에는 76년 무노조 S 기업에서 민주노조의 첫 단체협약이 만들어졌다. 조합원이든, 비조합원이든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인간다운 삶’을 살겠다는 당연한 요구가 더욱 거세졌을 것이다. 노동자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보건관리제도가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힘이 중요하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의 건강권을 쟁취하기 위한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다가올 8월 방문에는 센터의 분위기가 달라졌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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