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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국과수가 해야 할 일은 사인을 밝히는 것이지 택배노동자 과로사 폄훼가 아니다 국과수가 해야 할 일은 사인을 밝히는 것이지 택배노동자 과로사 폄훼가 아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창설 목적에서 드러나고 있듯이 ‘범죄수사 증거물에 대한 과학적 감정 및 연구활동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고 범인을 검거할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그런데 10월 29일자 문화일보 기사를 통해 알려진 바에 따르면 경찰청에서는 “정확한 사망 경위는 국과수의 서면 검증이 완료돼야 알 수 있을 것”, “1차 구두 소견에 따르면 현재까지 과로사와 관련해 인과관계가 검증된 부검 대상자는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올 해 확인된 택배노동자 과로 사망만 14명에 이르고 있고 앞으로 또 어떤 사망이 일어날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는 노동·시민사회단체의 마음에 불을 지르는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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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국과수가 해야 할 일은 사인을 밝히는 것이지 택배노동자 과로사 폄훼가 아니다

<성명>

국과수가 해야 할 일은 사인을 밝히는 것이지 택배노동자 과로사 폄훼가 아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창설 목적에서 드러나고 있듯이 ‘범죄수사 증거물에 대한 과학적 감정 및 연구활동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고 범인을 검거할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그런데 10월 29일자 문화일보 기사를 통해 알려진 바에 따르면 경찰청에서는 “정확한 사망 경위는 국과수의 서면 검증이 완료돼야 알 수 있을 것”, “1차 구두 소견에 따르면 현재까지 과로사와 관련해 인과관계가 검증된 부검 대상자는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올 해 확인된 택배노동자 과로 사망만 14명에 이르고 있고 앞으로 또 어떤 사망이 일어날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는 노동·시민사회단체의 마음에 불을 지르는 기사이다. 


읽은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우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과로와 노동자 사망 간 인과관계를 부검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의료인들의 입장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그런데 최종 결론이 난 것도 아닌 상황에서 경찰에 1차 구두 소견을 통해 ‘인과관계가 검증된 부검 대상자가 한 명도 없다.’고 밝힌 이유는 무엇인가. 경찰이 아직 마무리가 되지 않은 조사를 닦달해 의견을 빨리 내라고 채근했거나 국과수가 최종 검증이 완료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결과를 조기 발표해야만 했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또는 문화일보에서 오보를 내는 실수를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내용이다. 


그 이유는 앞서 지적 했듯이 부검을 통해 과로와 사망 간 인과관계를 밝힐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는 많은 선행연구를 통해 높은 인과관계를 검증해 왔고 확인된 바에 따라 과로와 질병 간 인과관계가 밝혀지면 산업재해로 인정하고 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별표 3과 고용노동부 고시 ‘뇌혈관 질병 또는 심장 질병 및 근골격계 질병의 업무상 질병 인정 여부 결정에 필요한 사항’에 따르면 최근 사망한 택배노동자의 대부분은 명확히 과로사 한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돌연사가 발생했거나 심장 통증을 호소하다가 사망한 노동자들은 충분히 ‘심근경색’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고 모두 주당 60시간 내외의 노동은 기본이었고 여기에 야간노동, 옥외노동을 수행하였기 때문에 노동시간이 30% 가산된다. 과로할 수밖에 없었던 업무 조건에 심근경색증이 동반되었다면 이는 빼도 박도 못하는 과로사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살을 선택한 노동자의 경우도 과로사가 분명하다. 유서가 명확한 단서이다. 대리점주로부터 가혹한 경제적 위협행위를 받았고 불법적인 ‘보증금 묻기’가 이루어졌고 이 때문에 생활고를 겪어야 했고 결국 빚,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빚의 무게 때문에 노동자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건 분명 직장 내 괴롭힘이고 이 때문에 사망한 것이다. 이 또한 현행 산업재해 인정기준에서도 충분히 인정하고 있는 과로사에 해당한다. 


따라서 국과수의 역할은 최종 결론도 안 난 사건을 유포하거나 부검을 통해 장시간 노동의 인과관계 밝혀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사망 노동자들의 사인을 분명히 밝혀내는 것이 진짜 해야 할 역할이다. 또한 경찰의 경우 나오지도 않을 결과를 다그쳐 내라고 닦달을 할 것이 아니라 과로사의 근본원인인 장시간 노동, 장시간 노동에 더한 옥외노동, 야간노동을 무리하게 지시한 원청과 원청의 요구를 가감 없이 받아 수행한 대리점주들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는 것이 진짜 해야 할 일이다. 언론은 국과수가 불러주거나 경찰이 과도하게 중간결과를, 그것도 구두로 이루어져 신뢰하기 어려운 결과를 발표하는데 단 한 조각의 의심도 없이 그대로 옮겨 적는 기사작성 과정을 반성해야 한다. 남들이 주는 기사를 의심하거나 팩트인지를 확인할 능력이 없다면 언론의 기능을 잃은 것이다. 


건강하던 노동자가 힘들다는 말을 하다가 어느 날 유언도, 유서도 없이 우리 주변에서 스러져 가고 있는 황망한 상황을 겪고 있는 이 때 생뚱맞은 언론의 보도 내용은 그 저의를 의심하게 한다. 분노에 가득 찬 모두에게 ‘웃기지마, 그 농민의 진짜 사인은 심정지야’라고 했던 과거 어느 대학병원 교수의 사망진단서를 보는 느낌이 드는 것은 아직도 우리 사회가 정상사회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과수, 경찰, 언론은 더 이상 택배노동자들의 죽음을 폄훼하지 말라. 아무 이유 없이 죽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상상 자체가 불쾌하기 짝이 없다. 연이은, 더 이어질지도 모를 택배노동자의 죽음에 통탄해야 한다.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라. 시민사회는 눈 부릅뜨고 똑똑히 지켜볼 것이다. 

2020. 10. 29

과로사아웃공동대책위원회·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