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과로사통신] 노동시간 제한이 부재한 과로사회, 일본 / 2020.05

노동시간 제한이 부재한 과로사회, 일본

이와하시 마코토 POSSE

 

일본은 '과로사'라는 말을 만들어낼 정도로 과로가 심각한 나라입니다. 그런데도 2019년까지 의미 있는 법적 노동시간 제한이 없었습니다. 이는 회사가 노동자에게 1년 동안 하루 24시간, 365일 일을 시켜도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었습니다. 지금은 고용주들이 한 달에 100시간 이상의 연장근무를 시킬 수 없도록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여전히 '과로사 역치'라고 불리는 월 80시간의 연장근무보다 20시간이나 많은 장시간 노동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일본의 과로사 현황

1980년대에 노동법률가, 의사, 노동운동가들이 함께 '과로사'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 직장에서의 일 때문에 발생하는 죽음과 질병의 숫자는 극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일본 정부의 과로사 백서에 따르면, 2018년 과로에 의한 뇌혈관, 심혈관질환 혹은 그 사망으로 산업재해보상보험에 보상을 신청한 사례는 모두 877건입니다. 이 중 업무관련성이 있다고 승인된 것은 238건 뿐이고, 이 중 82건이 사망 사건이었습니다. 2017년에는 업무상 과로에 의한 질환으로 승인된 것이 253건, 이 중 92건이 사망 사건이었습니다. 2002년 이후, 일본에서는 매년 100여 건의 과로사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고, 이는 4일에 한 명씩 과로로 사망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일반적으로 한 달에 100시간 이상의 연장 노동을 하거나, 2~6개월 동안 한 달에 80시간 이상의 연장 노동을 한 경우에만 과로사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산업재해로 인정하고 있는 사례들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는 점을 지적해야 합니다. 자신의 가족 중 한 사람을 잃은 유가족들이 나서, 그 죽음이 업무와 관련됐다고 '증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과로사 사례가 아예 보고되지 않거나, 특별한 이유가 없는 '급성심장사'로 처리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이런 점에서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과로 때문에 자신의 삶을 잃고 있는지 제대로 정보도 모으지 않고 있습니다.
  

▲  일본에서 과로사는 1980년대부터 꾸준히 문제제기되었다. 그럼에도 2015년 일본의 대기업 광고회사 덴츠에서 일하던 다카하시 마쓰리 씨가 과로자살로 유명을 달리했다. 여전히 장시간 노동과 블랙기업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 ⓒ ANN 방송화면 캡쳐

 
일본의 블랙기업과 과로자살

과로자살은 말 그대로 과로에 따른 자살이라는 뜻입니다. 과로자살은 장시간 노동이나 업무의 양적, 질적인 변화에 따른 정신질환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2018년 자살을 포함해 과로로 인한 정신질환으로 산재 보상을 신청한 건수는 모두 1820건으로, 역사상 가장 많은 숫자였습니다. 이 중 정부가 산재로 인정한 것은 465건이고, 이 중 76건은 노동자의 자살 혹은 자살 시도였습니다. 과로사 피해자들이 주로 40대~50대의 남성 노동자들인 데 비해, 과로자살은 성별에 관계없이 젊은 노동자들 사이에서 많이 발생합니다. 과로자살이 매년 늘어가는 이유는 노동자를 일회용품 취급하는 '블랙기업'들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에 만연한 장시간 노동과 일터 괴롭힘을 생각해보면, 465건이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은 아주 명확합니다. 경찰청에서 자살 사건을 수집해 분석한 결과, 2천여 건의 자살은 업무와 관련해서 발생한다고 합니다. 매년 2천여 명의 노동자가 업무와 관련된 이유로 자신의 목숨을 던지고 있는데, 정부는 이 중 100건도 안 되는 사례에 대해서만 보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산재인정을 위해 넘어야 할 난관들

이렇게 많은 사례들이 보고도 제대로 안 되는 이유는 1) 과로사라고 생각하는 경우, 가족을 잃은 누군가가 자료를 모아 산재보상을 신청해야 하고 2) 유가족이 스스로 과로의 증거를 충분히 모았을 때에만 정부로부터 산재 승인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노동자 가족들이 산재 보상 신청을 하지 않으면, 이 사건은 그대로 숨겨지게 됩니다. 그 죽음이 과로에 의해 발생했거나, 다른 업무 관련 문제와 관련이 높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노동자나 유가족이 신청하지 않으면, 정부나 지방 노동 관서에서는 먼저 나서 회사를 조사할 권한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유가족이 최소한 그 죽음이 업무와 관련되었다고 의심을 하고, 이 노동자가 극심한 장시간 노동이나 일터괴롭힘 혹은 다른 어떤 이유 때문에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다는 믿을만한 증거를 수집하는 것이 과로자살로 보고되는 데 필수적이라는 뜻입니다.

많은 고용주들은 직장 내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노동자들에게 연장근무를 강요해서 발생한 손해에 대해 책임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일터 괴롭힘과 관련된 많은 경우에서, 자살의 원인이 업무와 관련돼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유가족들이 중요한 증거를 성공적으로 수집한다 해도, 정부가 그 죽음을 업무와 관련되었다고 승인하고 보상을 제공할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가족들이 그 질병이 과로 때문이라고 생각한 사례는 877건이었지만, 그 중 238건만 업무와 관련이 있다고 승인되었습니다. 수백 명의 노동자, 유가족 들은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남겨졌습니다.

일본의 고용주들은 노동자들에게 장시간 노동을 시키는 것으로 악명이 높습니다. 노동자들은 수백시간에서 심하면 수천 시간에 해당하는 자신의 삶을 일하느라 빼앗기게 됩니다. 이를 멈추기 위해 노동조합과 사회단체들은 노동자들과 가족들이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고, 정부나 회사로부터 정당한 보상을 요구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