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과로사통신] 대만의 COVID-19 판데믹과 과로 / 2020.07

[동아시아 과로사통신] 

 

대만의 COVID-19 판데믹과 과로

 

 

황이링 / 대만OSHLink 활동가 

 

코로나19가 2019년 말 중국에서 처음 시작되자, 대만 정부는 바이러스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재빨리 국가 차원의 방역 조치를 취했다. 2020년 1월, 대만의 질병관리본부는 중앙방역대책본부(Central Epidemic Command Center)를 출범하고 여러 정부 부처를 아우르는 코로나19와의 싸움을 시작했다. 

이로부터 140여 일 동안 중앙방역대책본부는 매일 대만 국민들에게 감염병의 전세계적 유행과 관련한 최신 소식을 뉴스 브리핑으로 발표했다. 이 일일 뉴스 브리핑은 6월 7일을 마지막으로 일간 발표에서 주간 발표로 전환하였다.

6월 7일 현재, 대만의 COVID-19 감염 사례는 총 443명이고, 이 중 사망자는 7명, 현재 입원 중인 환자는 6명뿐이다. 나머지 감염인은 모두 회복됐다. 6월 7일은 대만 내 감염이 56일째 보고되지 않은 날이기도 하다. 하지만 코로나19 방역 성공은 방역과 보건의료 노동자들의 희생을 치르고 얻은 것이다. 방역과 보건의료 노동자들은 대만의 감염병 예방 활동의 최전선에 서 있었다. 코로나19와 지치지 않고 싸우면서 그들의 건강은 위험에 처했다. 

팬데믹 영향을 받은 노동자들

방역과 보건의료 노동자들은 분명 팬데믹으로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은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장시간 노동과 연장 근무를 수행해야만 했다. 또한 대만에서 매일 2천만 장의 마스크를 생산하기 위해, 92개의 수술용 안면 마스크 생산 라인이 추가됐고, 여기서 일한 노동자들 역시 장시간 일해야만 했다. 마스크 배급을 위해 약국이나 편의점에 이 마스크를 배송한 우체국 집배원이나 민간 기업의 택배 노동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또한 대만의 청소, 위생 노동자들 역시 심각한 과로에 시달렸다. 예를 들어, 타이베이 도시철도(Taipei Rapid Transit Corporation)에서는 방역 정책 중 하나로, 모든 역에서 소독 단계를 상향했다. 기차 차량 출발 전 소독은 8시간당 한 번, 승차권 자동 발매기는 4시간마다 한 번 소독했다. 

지역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일부 청소 노동자들은 강화된 소독 주기 때문에 식사도 제때 하기 어렵다고 한다. 은행 직원들의 노동강도도 최근 크게 증가했다.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정부에서 보조금 및 수당을 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지원 절차를 진행해야 하는 은행 직원들에게는 큰 업무 부담이다.

노동시간은 같지만, 추가 업무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도시철도 차량이나 승차권 자동판매기를 소독하는 청소 노동자들의 경우, 노동시간이 늘지는 않았지만, 전에는 하루 2번 하던 소독을 이제 훨씬 더 많이 수행하게 되었다. 건물 경비 노동자들의 경우 예전에는 하지 않았던 업무, 예컨대 건물 출입자의 체온을 재고, 손소독제를 사용하도록 하는 추가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팬데믹 시기의 장시간 노동

대만 근로기준법 32조와 40조는 "천재지변이나 사고, 예기치 못한 상황"이 있을 경우 고용주가 노동자에게 연장 근무를 요청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에 의해 고용주는 노동자에게 휴가 사용을 중단하도록 요청할 수 있고, 하루 노동시간으로 제한된 12시간을 초과하는 노동을 요구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현재 감염 상황이 "천재지변이나 사고, 예기치 못한 상황"에 들어가는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노동부는 1998년부터 대규모 감염병은 근로기준법이 규정하는 '이 범주'에 속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동시간 연장은 반드시 노동조합의 동의를 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의 경우 노동시간 연장 문제 논의는 노사협의회의 승인을 받아 이루어져야 하며, 노동청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하지만 노동자가 미루었던 휴가를 나중에 쓴다고 하더라도 장시간 노동이나 휴가의 중단은 노동자의 부상이나 건강 문제 위험을 높인다. 

 

▲   대만의 노동자들이 코로나 방역과 감염 예방을 하면서 과로에 시달리고 있다. 노동자들이 건강을 헤치지 않도록 적절한 절차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건강 위험으로 이어지는 과로

이미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진 많은 연구에서, 하루 11시간 이상 일하면 하루 7~9시간 일하는 경우보다, 급성심근경색 발생 위험이 2.9배 높아진다고 한다. 일주일에 66시간 일하는 노동자는 이보다 짧게 일하는 노동자보다 업무 관련 사고를 경험할 위험이 1.88배 높다. 일주일 단위로 규칙적으로 쉬지 못하거나 6일 이상 연달아 일하는 노동자는 죽상경화증, 비만, 이상지질혈증, 대사증후군 등이 발생할 위험이 증가하고, 업무 관련 사고의 발생 위험도 커진다.

바로 얼마 전에도, 창화시 중앙의 마스크 생산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업무 도중 손가락 끼임 사고가 발생하여 손가락을 절단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장시간 노동은 어깨, 허리, 목 등 근골격계에 통증과 경직을 가져오고 스트레스나 정신 건강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산재 보험 당국이 제공한 통계에 따르면, 대만에서는 8일마다 1명씩 과로로 사망하거나 장해를 입는다. 과로가 이 나라의 매우 중요한 문제라는 점을 보여주는 끔찍한 진실이다.

코로나19 싸움은 적절한 방역 물품의 생산과 제공, 백신 개발, 바이러스 검체 채취와 검사 등의 측면에서 시간과의 싸움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장시간 노동 역시 큰 건강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코로나19와의 장기전을 이겨내기 위해서도, 관련 공공기관이나 민간 부문 모두, 필요한 곳에 더 많은 인력을 사전에 배치하고, 좀 더 효율적인 작업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동아시아 과로사통신] 코로나 재난과 공무원 과로사 / 2020.06

[동아시아 과로사통신] 

 

 

코로나 재난과 공무원 과로사 

 

 

김영선 / 노동시간센터 연구위원 

 

재난 때마다 공무원 과로사가 발생한다. K-방역모델이 국제표준으로 추진될 만큼 주목을 받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코로나19에 따른 비상상황으로 주말에도 출근해야 했던 전주시 공무원(43세)과 성주군 공무원(47세)이 2월 말 3월 초에 연이어 과로사했다. 

비상 근무로 20여 일간 하루도 쉬지 못하면서 쓰러졌다가 다시 현장으로 복귀한 포항시 북구보건소 감염관리팀장(53세) 또한 과로사 위험에 노출되기는 마찬가지였다. 4월 말 코로나19 관련 업무를 관리하던 합천군 공무원(56세)도 과로로 사망했다.

되짚어 보면, 폭염 등 기후 변화로 인한 재난 시기에도 사망 사건이 발생했고 이제는 매년 발생하다시피 하는 동물 전염병 때에도 방역 공무원의 과로사가 반복됐다. 지난 3월 말 파주시에서 수의사로 일하던 주무관(52세) 또한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매일 사무실에서 숙식하며 방역 업무를 담당하던 중에 과로사했다. 

일련의 사건은 재난 시기 공무원이 비상 근무에 따른 과로 위험에 어떻게 노출되어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   공무원 과로사는 재난 상황의 예외적인 사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누적되어 있던 과로위험이 재난 시기에 격발되어 표출된 시스템 상의 고질적인 문제라고 보아야 한다.


노동인권은 재난과 양립할 수 없는가?

재난은 길을 잃은 상태를 말한다. 재난의 영어 단어인 disaster의 어원은 행성이 궤도에서 벗어난 탓에 발생하는 미지의 사태들을 가리킨다. 전례 없는 사태는 안전을 위협하는 것은 물론 한 사회에 잠재되어 있던 문제들을 한꺼번에 드러낸다. 

무대 뒤편에 감춰졌던 사회의 취약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계기다. 노동자가 어떻게 취급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점이기도 하다. 최전선, 초토화, 쑥대밭, 대란, 대공포, 창궐, 초유의 사태, 전시 상황, 군사작전, 포화 속, 총동원, 코로나 전사, 최전선 영웅 등으로 묘사되는 재난 상황에서는 권리와 원칙들이 쉽게 유예되거나 무력화되기 일쑤다. 무권리 상태로 내몰리는 형국이다.

재난 대응 시 휴게시간이나 쉴 공간 또는 숙소 등을 포함한 편의 조치는 찾아보기 어렵다. 방호복을 착용하는 경우 피로와 스트레스가 평상시보다 더 쌓인다. 방호복을 입고 있으면 한겨울이어도 땀이 비 오듯 흐른다고 말할 정도다. 

그렇기에 반드시 한두 시간 정도 쉬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언제 휴게시간을 가져야 할지, 그 규정은 어떻게 되는지 모른다고 토로한다. 주말 근무가 연속되지만 대체 휴무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하소연도 다반사다. 재난은 그런 권리들을 쪼그라들게 만든다.

복무 규정과 봉사자 이데올로기

과로사가 양산될 수밖에 없는 장치들을 보자. 

하나, 공무원은 복무 규정 탓에 과로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 긴급 상황의 동원을 가능하게 하는 '복무 규정'(비상 근무와 근무시간의 변경 조항 등)으로 근무시간이 고무줄처럼 늘어나거나 수시로 변경되기도 한다. 

비상 근무의 종류, 발령 일시, 발령 사유 등의 기준은 꽤 구체적으로 명시된 데 반해 그 사용 제한에 대한 내용은 사실상 찾기 어렵다. '주말에도 출근(대체 휴무 없음)' 식 비상 근무를 방기하는 복무 규정은 공무원 과로사를 반복 양산하는 하나의 원인이 된다. 초과근무만 월평균 150~200시간에 달할 정도다. 비상 근무를 '여는' 조치와 함께 '닫는' 조치를 병기해야 할 것이다.

둘, 공무원에 부여된 헌신, 봉사, 수호, 사명감, 책임감 등 봉사자 이데올로기도 장시간의 비상 근무를 정당화한다. 봉사자 이데올로기는 재난 상황일수록 과로 위험에 대한 사회적 발언을 어렵게 만든다. 재난 상황의 공무원도 안전권, 건강권, 시간 권리가 전제되어야 하는 노동자임에도 말이다.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사명감을 갖추는 일과 별개로 휴게시간, 최소한의 휴식 시간, 대체 휴무, 초과근로 제한 등의 시간 권리를 가리는 방식의 비상 근무는 제한되어야 한다. 재난 시 공무원 과로사가 발생할 때면 헌신과 희생으로 미화되곤 한다. 재난 상황에서 봉사자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동원되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명감, 헌신, 희생이 전면에 내세워지는 가운데 죽음을 유발하는 '과로'의 문제는 은폐되는 효과가 발휘된다는 점이다. 봉사자 이데올로기는 공무원 과로사를 반복 양산하는 또 하나의 원인이다.

예외적 사례라고?

공무원 과로사를 재난 상황에서 발생하는 예외적인 사례라고 생각할 수 있다. 비상 근무 탓도 탓이지만 이러한 관점은 그간에 켜켜이 누적된 과로 위험을 간과하게 한다. 한국의 공무원 수는 OECD 국가와 비교해 최저 수준이다. 

이는 인력의 과소 상태를 방증하는 대표적인 지표다. 평상시 초과근무만 월평균 150시간에 달하는 경우도 발견된다. 과로 상태가 만성화되어 있음을 가늠케 한다. 지자체 현업 공무원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공무원 과로사는 재난 상황의 예외적인 사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란 얘기다. 누적되어 있던 과로 위험이 재난 시기에 격발되어 표출된 시스템상의 고질적인 문제라고 보아야 한다. 

바이러스 감염병 재난은 '신종'이라 이름을 갈아가며 반복 발생한다. 빈도도 높고 주기도 짧아지고 있다. 그 종류도 많아지고 있다. 재난의 반복성만큼이나 공무원 과로사도 예감될 수밖에 없는 문제다.

비상 근무에 따른 공무원 과로사, 되풀이될 문제인가? 그 고리를 끊어야 한다. 노동인권에 기초한 원칙에 따라 대응할 필요가 있다. 안전권, 건강권, 시간 권리를 명문화하는 것을 포함한 대응 원칙 말이다. '긴급 상황'이란 이유로 과로를 조장하는 방식의 대응은 또 다른 문제를 유발한다. 

OOO 전사나 영웅으로 호명하거나 직업정신을 앞세워 희생을 동원하는 방식의 대응은 또 다른 사회적 갈등을 낳을 뿐, 재난 대응으로는 부적절하다. 노동자 인권을 명시하는 것이 재난 대응의 첫걸음이자 모두의 안전을 담보하는 최선의 방역이다.

[동아시아과로사통신] 노동시간 제한이 부재한 과로사회, 일본 / 2020.05

노동시간 제한이 부재한 과로사회, 일본

이와하시 마코토 POSSE

 

일본은 '과로사'라는 말을 만들어낼 정도로 과로가 심각한 나라입니다. 그런데도 2019년까지 의미 있는 법적 노동시간 제한이 없었습니다. 이는 회사가 노동자에게 1년 동안 하루 24시간, 365일 일을 시켜도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었습니다. 지금은 고용주들이 한 달에 100시간 이상의 연장근무를 시킬 수 없도록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여전히 '과로사 역치'라고 불리는 월 80시간의 연장근무보다 20시간이나 많은 장시간 노동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일본의 과로사 현황

1980년대에 노동법률가, 의사, 노동운동가들이 함께 '과로사'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 직장에서의 일 때문에 발생하는 죽음과 질병의 숫자는 극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일본 정부의 과로사 백서에 따르면, 2018년 과로에 의한 뇌혈관, 심혈관질환 혹은 그 사망으로 산업재해보상보험에 보상을 신청한 사례는 모두 877건입니다. 이 중 업무관련성이 있다고 승인된 것은 238건 뿐이고, 이 중 82건이 사망 사건이었습니다. 2017년에는 업무상 과로에 의한 질환으로 승인된 것이 253건, 이 중 92건이 사망 사건이었습니다. 2002년 이후, 일본에서는 매년 100여 건의 과로사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고, 이는 4일에 한 명씩 과로로 사망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일반적으로 한 달에 100시간 이상의 연장 노동을 하거나, 2~6개월 동안 한 달에 80시간 이상의 연장 노동을 한 경우에만 과로사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산업재해로 인정하고 있는 사례들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는 점을 지적해야 합니다. 자신의 가족 중 한 사람을 잃은 유가족들이 나서, 그 죽음이 업무와 관련됐다고 '증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과로사 사례가 아예 보고되지 않거나, 특별한 이유가 없는 '급성심장사'로 처리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이런 점에서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과로 때문에 자신의 삶을 잃고 있는지 제대로 정보도 모으지 않고 있습니다.
  

▲  일본에서 과로사는 1980년대부터 꾸준히 문제제기되었다. 그럼에도 2015년 일본의 대기업 광고회사 덴츠에서 일하던 다카하시 마쓰리 씨가 과로자살로 유명을 달리했다. 여전히 장시간 노동과 블랙기업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 ⓒ ANN 방송화면 캡쳐

 
일본의 블랙기업과 과로자살

과로자살은 말 그대로 과로에 따른 자살이라는 뜻입니다. 과로자살은 장시간 노동이나 업무의 양적, 질적인 변화에 따른 정신질환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2018년 자살을 포함해 과로로 인한 정신질환으로 산재 보상을 신청한 건수는 모두 1820건으로, 역사상 가장 많은 숫자였습니다. 이 중 정부가 산재로 인정한 것은 465건이고, 이 중 76건은 노동자의 자살 혹은 자살 시도였습니다. 과로사 피해자들이 주로 40대~50대의 남성 노동자들인 데 비해, 과로자살은 성별에 관계없이 젊은 노동자들 사이에서 많이 발생합니다. 과로자살이 매년 늘어가는 이유는 노동자를 일회용품 취급하는 '블랙기업'들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에 만연한 장시간 노동과 일터 괴롭힘을 생각해보면, 465건이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은 아주 명확합니다. 경찰청에서 자살 사건을 수집해 분석한 결과, 2천여 건의 자살은 업무와 관련해서 발생한다고 합니다. 매년 2천여 명의 노동자가 업무와 관련된 이유로 자신의 목숨을 던지고 있는데, 정부는 이 중 100건도 안 되는 사례에 대해서만 보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산재인정을 위해 넘어야 할 난관들

이렇게 많은 사례들이 보고도 제대로 안 되는 이유는 1) 과로사라고 생각하는 경우, 가족을 잃은 누군가가 자료를 모아 산재보상을 신청해야 하고 2) 유가족이 스스로 과로의 증거를 충분히 모았을 때에만 정부로부터 산재 승인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노동자 가족들이 산재 보상 신청을 하지 않으면, 이 사건은 그대로 숨겨지게 됩니다. 그 죽음이 과로에 의해 발생했거나, 다른 업무 관련 문제와 관련이 높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노동자나 유가족이 신청하지 않으면, 정부나 지방 노동 관서에서는 먼저 나서 회사를 조사할 권한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유가족이 최소한 그 죽음이 업무와 관련되었다고 의심을 하고, 이 노동자가 극심한 장시간 노동이나 일터괴롭힘 혹은 다른 어떤 이유 때문에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다는 믿을만한 증거를 수집하는 것이 과로자살로 보고되는 데 필수적이라는 뜻입니다.

많은 고용주들은 직장 내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노동자들에게 연장근무를 강요해서 발생한 손해에 대해 책임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일터 괴롭힘과 관련된 많은 경우에서, 자살의 원인이 업무와 관련돼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유가족들이 중요한 증거를 성공적으로 수집한다 해도, 정부가 그 죽음을 업무와 관련되었다고 승인하고 보상을 제공할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가족들이 그 질병이 과로 때문이라고 생각한 사례는 877건이었지만, 그 중 238건만 업무와 관련이 있다고 승인되었습니다. 수백 명의 노동자, 유가족 들은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남겨졌습니다.

일본의 고용주들은 노동자들에게 장시간 노동을 시키는 것으로 악명이 높습니다. 노동자들은 수백시간에서 심하면 수천 시간에 해당하는 자신의 삶을 일하느라 빼앗기게 됩니다. 이를 멈추기 위해 노동조합과 사회단체들은 노동자들과 가족들이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고, 정부나 회사로부터 정당한 보상을 요구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동아시아 과로사통신] 대만의 과로사와 업무관련 정신질환 / 2020.04

[동아시아 과로사통신]

 

 

 

대만의 과로사와 업무관련 정신질환 

 

 

 

황이링 / 대만 OSHLink 활동가 

 

 

 

첫 번째 대만 소식으로 대만의 과로 이슈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과로 문제는 특히 동아시아에서 두드러지는 문화현상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오직 일본, 대만, 한국에서만 과로 때문에 발생한 뇌심혈관계질환을 직업병 보상의 범주에 넣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대만에서는 과로와 관련된 질병의 산재 보상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산재보험국의 통계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9년까지 모두 679명의 노동자가 업무관련 뇌심혈관계질환으로 인정되었습니다. 이 중 236명은 사망하였고, 173명은 영구적인 장애를 입게 되었습니다.

 

과로는 중요한 업무 유해요인입니다. 대만에서는 8일에 한 명씩, 노동자가 과로 때문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건 빙산의 일각일 뿐입니다. 노동 시간을 증명하기 어렵거나, 엄격한 인정 기준 때문에 산재로 보상받지 못한 숨겨진 사례가 많기 때문입니다. 대만에서는 1991년 처음으로 뇌심혈관계질환의 업무상 질병 인정 기준이 발표되었습니다. 그러나 뇌심혈관계질환이 공식적인 직업병 목록에 오르지는 못했기 때문에, 업무관련성이 의심되는 사례들은 개별적으로 승인 여부가 결정되었습니다.

또, 업무상 질병 인정 기준이 매우 엄격했습니다. 직장에서 발생한 사례만 업무관련성이 인정됐고, 뇌심혈관계질환이 발병하기 바로 직전의 업무 부담만 고려됐습니다. 그래서 인정기준은 1991년 만들어졌지만, 2006년에서야 뇌심혈관계질환으로 산재 보상 승인을 받는 첫 사례가 나타납니다. 그 뒤로도 인정 기준은 몇 차례 수정되다가, 가장 큰 변화가 2010년에 일어났습니다. 난야테크놀로지(Nanya echnology Company)에서 일하던 추샤오핑(徐紹斌)의 과로사 때문입니다.

출근시간이 되어도 추샤오핑이 방에서 나오지 않자 이를 이상하게 여긴 아버지가 방으로 들어갔고 그의 주검을 발견하였습니다. 당시 29세였던 그는 매일 12시간씩 일했고, 어떤 때는 16~19시간 일하기도 했습니다. 사망 전 달에는 연장 근무만 111.5 시간이었습니다. 그의 가족들은 그의 죽음이 과로사라고 확신하고, 산재 보상을 신청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무실이 아니라 집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당시로는 업무상 질병에 해당하지 않았습니다. 회사는 그가 사망하자 정기적인 연장근무는 없었다고 발뺌했고, 결국 그의 유가족은 산재 보상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 저는 입법의원 황수잉(黃淑英)의 보좌관이었고, 추샤오핑의 가족들은 황수잉 의원의 사무실에 와서 도움을 청했습니다. 우리는 유가족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관심을 촉구했고, 기자회견 이후 추샤오핑의 가족들은 대만사회의 많은 지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대만 노동부는 사회의 큰 압력을 받은 끝에 일본을 따라 직업병 인정 기준을 낮추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다음 해인 2011년, 직업병 인정 가이드라인이 개정되고 나서, 총 88명이 업무관련 뇌심혈관계질환으로 산재 보상을 받았습니다. 가이드라인 개정 전보다 2.6배 늘어난 숫자입니다.

업무 관련 정신질환과 자살

업무 관련 뇌심혈관계 질환 외에, 최근에는 업무 관련 정신질환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점점더 많아졌습니다. 2009년 업무관련 정신질환 인정 기준이 수립되었지만, 그 후로 10년간 산재로 승인된 사례는 36건뿐입니다. 승인 사례 대부분은 산재 사고 후 발생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입니다.

그러나 많은 대만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 성과 압박, 직장 내 성폭력, 일터 괴롭힘과 관련된 정신질환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산재 보상 청구를 뒷받침할 수 있는 충분한 증거를 모으기 어렵습니다.

2009년 이후 대만 정부가 업무 관련성이 있다고 인정한 자살 사례는 7건에 불과합니다. 첫 사례는 2012년에 발생한 장페이퐁(張倍逢)의 자살 사건입니다. 그는 포모사 플라스틱 그룹(Formosa Plastic Group)의 안전관리자였습니다. 그는 공장 건설 현장의 안전보건 감독을 맡았는데, 하청 회사에서 안전 규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상사에게 상황을 보고하려고 했지만, 돌아온 답은 예정된 기한 내에 건설이 마무리되도록 눈감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막중한 부담감을 느낀 그는 결혼식을 1주일 남겨둔 2011년 10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죽기 전 그는 "정부, 회사의 안전요구사항을 충족시킬 수 없었습니다. 회사에 너무 미안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 책임을 다하겠습니다"라는 문자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그의 자살은 대만에서 처음으로 업무관련 자살로 승인되었습니다.
       
너무 많은 죽음이 계속되고 있기에, OSHLink는 2015년 <과로의 섬, 대만>이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우리는 이 책에 과로로 사망한 대만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과로 문제가 왜 발생하는지 다루고자 했습니다. 책 발간 이후 대만 입법 의원들은 노동부에 과로 실태를 보고하도록 했고, 이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해, 드디어 의회에서 2주에 84시간이던 노동시간 기준을, 1주에 40시간으로 줄이는 법 개정안이 통과됐습니다. 우리가 해낸 일은 대만의 과중한 노동을 변화시키기 위한 작은 걸음에 불과했지만, 앞으로도 자신의 안전과 노동권을 지키려는 모든 노동자의 싸움에 계속 함께할 것입니다.

[동아시아 과로사통신] 한국은 과로자살이 뜨거운 이슈입니다 / 2020.03

[동아시아 과로사통신] 

 

 

한국은 과로자살이 뜨거운 이슈입니다 

 

 

 

최민 / 상임활동가 

 

 

 

대만과 일본, 한국의 독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일하는 활동가입니다. 동아시아는 역사적, 문화적 공통점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공통점 중 하나는 노동시간이 길고, 과로사와 과로자살이라는 말이 일상적인 곳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한국과 대만, 일본의 노동인권과 노동자 건강을 위해 활동하는 NGO들이 모여 '동아시아 과로사 감시'를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세 나라의 과로사나 과로자살 사건을 공유하면서, 서로가 처한 상황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하고 싶습니다. 이를 통해 노동자들이 스스로 일터의 주인이 되어 과로사나 과로자살이라는 말이 사라지도록 만들기 위해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 보려고 합니다.

   "동아시아 과로사 통신"을 통해 공통적인 문제 양상을 발견하고, 동아시아 국가 차원에서 공동의 대응을 모색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첫 번째 이야기는 한국의 '과로자살'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과로사 못지않게, 과로자살이 뜨거운 이슈입니다. 과로사는 조금씩 변화를 기대해보고 있습니다. 2018년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그전까지 매주 68시간까지 합법적으로 일 시킬 수 있던 조항이 바뀌어 이제 주당 노동시간이 52시간으로 제한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운수업이나 감시 업무 등은 여전히 이 조항의 예외가 되어 무제한 노동을 시킵니다. 결국 많은 택시운전기사나 경비노동자들이 뇌심혈관질환으로 사망하고 있습니다. 연장노동시간 제한이 엄격해지자, 노동강도가 높아진 일터도 많습니다. 여전히 남은 과제가 많습니다.

그에 비해 과로자살은 최근에야 관심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은 자살률이 매우 높은 나라입니다. 2018년 총 1만3670명이 자살로 사망했습니다. OECD 평균 자살률의 2배가 넘습니다. 교통사고사망자 수의 3배에 달하는 숫자입니다. 한국의 자살률은 동아시아 경제위기가 있던 1998년 급격히 증가했고, 그 뒤 신자유주의 체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이래로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뚜렷한 사회경제적 변화 상황에서 자살률이 크게 늘어났는데도, '노동자들이 일터에서의 괴롭힘과 스트레스 때문에 자살하고 있다'는 인식은 최근에야 높아졌습니다.

한국 정부의 자살예방대책 역시 사회적 원인을 찾아 해결하기보다 자살에 대한 인식 개선, 자살예방을 위한 홍보와 정신보건 서비스 강화, 정신의학적 고위험군 관리에만 맞춰져 왔습니다. 사회적으로 자살자는 '유리 멘탈'이라는 낙인이 강해 일 때문에 발생한 자살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경우가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노동자의 자살이 언론에서 다뤄지고 있습니다. 2019년 연말과 2020년 연초에도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과로자살(Karo-jisatsu)이 여러 건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장시간 노동'뿐 아니라 업무과정에서 발생한 과중한 스트레스로 인해 노동자가 선택한 자살을 모두 과로자살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점을 먼저 말씀드려야겠네요.

이런 정의는 먼저 과로사와 과로자살이 이슈가 된 일본의 사례를 따른 것입니다. 사실상 한국에서 하는 과로자살은 '업무 관련성 자살'(Work-related suicide)과 같은 말입니다. 2019년 12월 5일,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시범사업의 동료지원가였던 25살 뇌병변장애인 설요한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취업을 원하는 중증장애인 참여자를 발굴하고 상담을 제공하는 역할이었습니다. 그에게는 한 달에 60시간 일하면서 4명의 참여자를 발굴해서 한 명당 5번씩 상담을 해야 한다는 목표가 주어졌습니다. 임금은 고작 66만 원이었습니다. 사업을 주관한 공공기관은 중간 실사를 진행하겠다면서 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그 동안 받은 임금 일부를 반납하라고 압박했습니다. 실적 채우랴 실사 준비하랴 부담이 컸던 설요한씨는 동료들에게 미안하다는 문자를 남기고 생을 저버렸습니다.

그런가 하면 2019년 11월에는 42세의 경마 기수가 자살했습니다. 한국에는 공식 경마장이 세군데인데, 그 중 부산경남경마장에서만 지난 10년간 7명이 자살했습니다. 이번에도 그 경마장이었습니다. 문중원씨는 경마장 운영과 관련된 비리를 고발하고, 말을 타다 다쳐도 보상도 받지 못하며, 위험한 말이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수 없는 기수의 현실을 알리는 유서를 남겼습니다. 그의 고용상 지위가 노동자가 아니었기에 통계상 산업재해로 계산되지 않겠지만, 우리는 그의 죽음 역시 '노동자가 일 때문에 선택한 과로자살'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조금은 달라 보이는 두 사건을 모두 과로자살이라고 부릅니다. 일터에서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되지 못하고, 성과 압박과 경쟁 구조에 노동자가 벌거벗은 채 던져져 발생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극도의 스트레스가 무기력과 절망감으로 이어지는 순간 노동자 자살은 어디서든 발생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런 문제가 동아시아만의 문제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미국의 직장에서 벌어지는, 총기 난사 후 자살 사건이나 프랑스에서 대규모 구조조정 이후 연달아 발생한 자살 사례들도 같은 맥락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플랫폼이다, IT 혁명이다 하면서 노동자가 점점 더 개별화되는 지금, 더 많아지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듭니다. '동아시아 과로사 감시'가 이런 걱정스러운 상황을 바꿔나가는 작은 힘이 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