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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노동안전보건활동가로 거듭나기 위해 뒷받침되어야 할 것들 / 2020.03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노동안전보건활동가로 거듭나기 위해 뒷받침되어야 할 것들 -KB오토텍 지회 원종만 노동안전보건부장 인터뷰 박기형 / 상임활동가 지난 2월 24일 노안활동의 모범사례로 많이 언급되는 금속노조 충남지부 KB오토텍 지회를 찾아갔다. KB오토텍 지회는 오랜 기간 노동조합의 재생산과 활동의 지속·강화를 고민하였다가, 올해 드디어 집행부의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이러한 세대교체는 사업장의 상황에 따른 것인데, 1990년대 말 이후 신규 입사자가 없었다가 2010년대에 들어서 신규채용이 이뤄졌다. 그러다 보니 조합원 간에 20년의 격차가 발생했고, 노동조합 지도부도 큰 변화 없이 지속해 온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정년 문제 등을 고려해 노조 내에서도 지도부 교체를 고민했지만, 사측의 노조.. 더보기
월 간 「일 터」/[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노동안전보건활동가로 거듭나기 위해 뒷받침되어야 할 것들 / 2020.03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노동안전보건활동가로 거듭나기 위해 뒷받침되어야 할 것들

-KB오토텍 지회 원종만 노동안전보건부장 인터뷰 

 

 

박기형 / 상임활동가 

 

 

 

 

지난 2월 24일 노안활동의 모범사례로 많이 언급되는 금속노조 충남지부 KB오토텍 지회를 찾아갔다. KB오토텍 지회는 오랜 기간 노동조합의 재생산과 활동의 지속·강화를 고민하였다가, 올해 드디어 집행부의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이러한 세대교체는 사업장의 상황에 따른 것인데, 1990년대 말 이후 신규 입사자가 없었다가 2010년대에 들어서 신규채용이 이뤄졌다. 그러다 보니 조합원 간에 20년의 격차가 발생했고, 노동조합 지도부도 큰 변화 없이 지속해 온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정년 문제 등을 고려해 노조 내에서도 지도부 교체를 고민했지만, 사측의 노조파괴에 맞선 일련의 투쟁들이 전개되면서, 세대교체를 충분히 준비할 수 없었다. 이후 2020년에서야 노조 내에서 세대교체를 위한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노안활동에서도 새로운 담당자가 선임되었고, 바로 인터뷰이인 원종만 노동안전보건부장(이하 노안부장)이다.

 

   2019 민주노총 노안활동가 대회에서 발표하는 원종만 노동안전보건부장의 모습이다.


머리만이 아닌 몸으로 익혀가는 노안활동

원종만 노안부장은 2018년부터 노안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노안위원을 2년간 맡았고, 올해부터 신임 노안부장으로 지회의 노안활동을 담당하게 되었다. 지난 2년 동안의 활동에 대한 후기를 듣고 싶었다. 노안부장으로 활동을 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본격적으로 노안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노안위원을 시작하면서 사업장이 특별근로감독을 받게 되었어요. 근로감독관과 함께 사업장 곳곳을 함께 점검했었죠. 다른 사업장의 경우엔 근로감독관이 사업주와 논의해서, 지적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도 있었을 텐데, 노안부에서 주도적으로 감독관과 사업주에게 문제를 제기하고 위험성을 지적했어요. 그러니까 감독관도 하나라도 더 보려고 하고, 사업주도 더 신경을 쓰게 되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노조의 적극적 역할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죠.

그리고 특별근로감독을 함께 한 경험이 이후에도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금속노조 노안활동가 양성학교에 참여했는데, 거기서 기초부터 응용까지 다양한 내용을 배우잖아요. 현장에서 체감하고서 교육을 들으니 더 잘 이해가 되었어요. 예를 들어, 다른 노안간부들은 '저걸 어떻게 해', '저런 것까지 지적해야 하나'라고 많이들 얘기하세요. 하지만 사소하다고 생각되는 사항들이 큰 위험을 초래하기도 하잖아요. 실제로 사업장을 점검하다 보니, 어떤 게 유해위험요소인지, 어떤 게 산안법상 위반사항인지, 그리고 그걸 개선하도록 어떻게 요구해야 하는지를 느낄 수 있었죠.

정확한 말이나 법률용어로 설명할 수는 없어도, 이게 문제야 또는 이건 바꿀 수 있어 이런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교육 내용이 더 잘 와닿고 사업장에 돌아가서도 교육내용을 잘 실천해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원종만 노안부장은 지난 2년간 활동 내용 외에도 현장과의 소통에 대한 중요성도 배울 수 있었다고 얘기했다.

"노안위원 2년 차인 2019년도에 사업장에서 근골격계유해요인조사와 위험성 평가를 진행했어요. 그때 한노보연의 손진우 상임활동가가 자문을 맡아주셔서 큰 힘이 되었죠. 당시 노안부에서 주요 업무를 맡되, 조합원의 현장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안전보건 지킴이'라는 실행위원을 선정했어요. 각 공정별로 30여 명을 구성했죠. 이 조사들을 진행하면서, 현장을 많이 알게 되었어요.

제가 속한 곳 외에 다른 부서나 라인에서 어떤 작업을 하는지, 어떤 게 위험한지,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하는지 등을요. 그리고 실제 조사를 수행하면서 조사 방법도 배우고, 자료를 정리하는 법도 알게 되었고요. 무엇보다 조사가 조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개선과 예방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속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자세도 갖게 되었어요. 그래서 20년도에는 작년에 위험성 평가의 결과를 바탕으로 개선사업을 중점적으로 진행해보려고 해요. 그리고 '안전보건 지킴이'를 상시 운영해서 일상적으로 사업장 내 유해위험요인을 진단하고 개선할 수 있는 현장과의 소통 창구를 내실화하려고 해요."

떠맡듯 시작한 노안활동, 그 뒤에 자리한 산재 경험

활동을 배워가면서 건강과 안전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지만, 정작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는 내 일터에서 건강을 챙기고, 안전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소중한 일인지를 알기란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어떻게 노안활동을 낮은 수준에서라도 시작해보겠다고 마음먹은 것일까 궁금했다.

"처음 노조 간부를 맡은 것은 문체부장이었어요. 그때는 별 고민이 없었던 것 같아요. 문체부장을 제안받은 친한 형이 해낼 수 있을지 고민하며 힘들어했어요. 그때 제가 맡아보겠다고 나섰어요. 그런데 갑자기 '너도 이제부터 노안위원이야'라고 되어버린 거예요. 고민할 틈도 없었어요. 얼떨결에 노조 간부와 노안위원을 겸직하게 된 거죠. 뭔지도 모른 채 시작한 거죠. 만약 그때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으면 그만뒀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현장에서 안 보이던 게 보이고, 바뀌는 게 보였어요. 그래서 계속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저에게도 산재경험이 있었더라고요. 로봇 협착사고였죠. 다행히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병원에서 2주 진단이 나왔어요. 당시 회사 관계자와 함께 갔었는데, 2~3일만 쉬고 나오라고 하는 거예요. 입사한 지 3달 좀 안 되었을 때니까, 더 쉬겠다고 말하는 게 눈치가 보여서 말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당시 노안부장이었고 지금은 부지회장인 안재범 동지가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문제제기했던 게 기억나요. 2주 이상 충분히 치료를 받고 요양할 수 있도록 하라고요.

'한쪽 손이 아프면 다른 손으로 일하면 되겠지', '조금 참고 일하면 괜찮겠지' 이렇게 생각했던 거죠. 그건 제 잘못이 아니라, 노동자의 위치와 조건을 생각하면 회사가 작업자 탓으로 돌리듯, 노동자 스스로도 개인 책임으로 생각하기 쉬운 거죠. 노조활동, 특히 노안활동을 통해서 노동자의 권리를 쟁취하고 안전과 건강을 지켜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막연하게나마 느꼈죠. '모르면 빼앗긴다.', '알아야 하고 스스로 맞서서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는 것을요."

그런데도 원종만 노안부장은 직책을 맡은 이후의 걱정과 부담을 토로하기도 했다.

"산재처리 외에도 일상 노안활동이 있잖아요. 다른 지회들에서는 노안부장이 비전임인 경우도 많은데, KB오토텍 지회는 전임이어서, 일상 노안활동과 함께 다양한 것들을 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아무래도 저는 배우면서 하다 보니, 이전에 10개면 10개를 다 할 수 있었던 선배들에 비해, 업무가 계속 부하가 걸리는 어려움이 커요. 아직은 배우는 단계라고 생각하고, 더 열심히 해보려고 해요.

이보다 더 어려운 것은 노안위원과 달리, 노안부장은 결정하는 자리라는 거죠.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내 할 말만 해버리는 것으로 그칠 수 없어요. 회사와 협상도 해야 하고, 안건에 관한 결정도 내려야 해요. 이에 따른 부담도 확실히 있죠. 그런데도 이걸 이겨내고, 지회에서 유지해온 노안활동의 기풍을 유지해나가야죠."
 
노안활동을 뒷받침하는 건 바로 노조 전체의 관심과 지지다

원칙적으로 산재처리를 하는 기풍을 유지해나갈 것이라고 얘기하며, 원종만 노안부장은 산재처리를 하는 데 있어서, 이전 활동가들의 도움이 크다고 덧붙였다.

"지회에서 산재처리 프로세스를 잘 만들어놨다고 생각해요. 솔직히 처리 프로세스가 갖춰져 있지 않다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산재 하나를 신청하고 승인받을 수 있도록 하는데,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투여되잖아요. 자료 준비를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판단도 어렵고, 자료 자체를 준비하는 것도 오래 걸리고요. 그래도 KB오토텍 지회에는 전 노안부장이 명감으로 활동하고 있고, 안재범 동지도 부지회장으로 있다 보니, 조언을 구할 수 있죠.

노조 차원에서 경험 많은 노안활동가가 계속해서 노조 내에서 활동하는 것이 정말 소중한 거로 생각해요. 그리고 관련 사례를 많이 축적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어요. 신청서류부터 각종 자료가 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에 보관되어 있어요. 이렇게 축적된 자료를 참고하고 활용해서 산재를 진행할 수 있는 게 큰 도움이 되죠."

활동 경험의 공유와 자료축적이 새내기 노안활동가가 성장하는 데 있어서, 나아가 노조의 노안활동을 유지·강화하는 데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원종만 노안부장은 이러한 모든 요소를 뒷받침하는 건 노동조합 전체의 노안문제에 대한 관심과 지지라고 강조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원종만 노안부장은 노안활동의 연속성을 보장하기 위한 시스템 구축의 필요성 또한 언급했다.

"2주 전에 신임간부학교에 참석했고, 노안간부들도 많이 왔었어요. 그때 다른 지회 간부들과 얘기를 나눠봤어요. 그런데 산재처리 관련해서 배운 것들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분들도 있었어요. 배웠다고 해서, 사업장에 돌아가 산재처리를 원칙대로 할 수 없다고요. 소속 지회의 지회장과 임원들이 여태 공상처리를 해왔다고 하면서, 지회 차원에서 제동 거는 경우도 빈번하다고요. 한 번 공상처리를 용인하면, 계속 공상처리할 수밖에 없는 어려움이죠. 아무리 좋은 교육을 하고 배운들. 활동가와 지회의 의지가 없으면 실현하기 어렵다는 걸 느꼈어요. 결국 임원과 지회의 분위기가 따라줘야 하는 것이죠.

금속노조 소속 경주의 어느 지회 사례가 인상 깊었어요. 집행부가 바뀌더라도, 노안팀을 해체하거나 완전히 새롭게 바꾸지 않아요. 생뚱맞게 노안활동을 안 하던 사람이 하는 게 아닌 거죠. 이전 집행부에서 노안활동을 해온 담당자들과 노안위원들 내에서 노안팀을 꾸리는 것이죠. 일부 신규 활동가를 충원하겠지만, 지도부와는 독립적으로 노안팀의 활동이 갖는 성격을 감안해, 연속성을 보장하고, 활동가를 재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이런 독립적 운영 시스템을 KB오토텍 지회에서도 잘 구축해 나가보려고 하고, 노안활동 전반에도 자리 잡았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