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목소리]
50대 여성 노동자들, 고공농성, 노숙농성하며 힘나는 이유
-전국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본부지부 부지부장 박순향 인터뷰
최민 / 상임활동가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도 한국도로공사 정규직 노동자였던 때가 있었다. 비정규직이라는 말이 이렇게 흔해지기 전 얘기다. 1997년 외환위기 후 도로공사는 요금소 수납 업무를 점차 민간용역업체에 위탁 운영하게 됐다. 용역업체 사장은 대부분 도로공사의 명예 퇴직자들이었고 계약 연장을 빌미로 요금수납원에 대한 횡포가 만연해졌다.
노동자들은 도로공사의 지휘와 명령에 따라 요금 수납 업무를 하고 있다며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냈다. 법원은 노동자의 손을 들어줬다. 1, 2심에서 모두 도로공사가 요금수납원들을 직접 고용하라는 판결이 났다. 2017년의 일이다. 하지만 도로공사는 상고했고 현재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문재인 정권 출범 후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발표가 있었지만 도로공사가 내놓은 건 '자회사 전환'이었다. 대법원판결만 나면 도로공사가 직접 고용해야 하는 상황에서 노동자들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제안이었다. 게다가 도로공사는 자회사 전환 과정에서 노동자들에게 '소송에서 노조 측이 승소하더라도 직접 고용으로 가지 않고 자회사에 잔류하겠다'는 내용의 서명을 받기도 했다.
6월 1일부터 일부 톨게이트영업소에서 자회사 전환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자회사 전환을 거부한 요금수납원들이 해고되기 시작했다. 7월 1일 전국의 톨게이트 영업소를 자회사로 전환함에 따라 6천여 명의 요금수납원 중 자회사 전환에 동의하지 않은 요금수납원 1500명이 일시에 해고됐다.
이에 6월 30일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43명이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서울 톨게이트 지붕에 올랐고, 500여 명이 청와대와 서울요금소 주변에서 노숙 농성을 시작했다. 고공과 노숙 농성 41일째인 8월 8일 박순향 전국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본부지부 부지부장을 만났다.
고용 매개로... 위탁업체 사장과 관리자들의 폭력
"우리는 지금까지 하루살이 인생이었다. 단기간 근로계약을 맺고 계약 연장 때문에 온갖 눈치를 보았다. 너무 억울해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했고 직접고용해야 한다는 판결을 받았다. 곧 직접고용이 되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자회사라니. 직접고용을 회피하려는 꼼수로밖에 볼 수가 없다.
7월 1일부로 대량 해고 됐지만, 우리는 그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해고당했다. 내가 안 잘리면 옆 동료가 잘렸다. 아 소리도 못 냈다. 싫다 소리 못하고 뒤돌아서 울고, '내가 아니라 다행이다' 한숨 쉬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어차피 잘리던 삶이니, 두렵지 않다. 쥐도 구석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 우리가 그렇다. 정규직 전환으로 해고 고통에서 벗어나자는 것이고 대법원 판결에 자신감이 있어서 더 잘 버틸 수 있는 것 같다."
농성에 참여하는 여러 노동자들이 자주 하는 말은 '이기적인 요구가 아니'라는 것이다. 임금 인상이 아니라 이미 법원에서 판결한 직접고용의무를 다하라는 것이다. 거기에는 고용불안을 매개로 수년 동안 당해온 위탁업체 사장과 관리자들의 폭력과 전횡이 있다.
"모여서 얘기해보니 정말 별의별 일이 다 있다. 중년 여성노동자들이 대부분인데 바로 그런 특성을 이용하는 갑질들이 많았다. 한 조합원의 얘기다. 오전 6시에 교대를 들어가느라 남편 밥도 못 차려주고 나왔는데, 출근해서 외주업체 사장을 위해 밥을 지어줬다고 한다. 전기밥솥에 지은 밥은 안 먹는다고 해서 1인용 돌솥에 밥 지어주고 일 시작했다고 한다.
술을 못 먹는 조합원을 대리기사로 쓰려고 회식 자리에 부른 적도 있다고 한다. 성추행은 비일비재다. 사장을 싣고 집에 가고 있는데 뒤에서 가슴에 손을 집어 넣은 사례도 있었다. 도로공사랑 위탁업체가 회식을 하면 비교적 젊고 예쁜 조합원들은 억지로 불려나갔다. 우리끼리 못생겨서 다행이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였다. 회식 후에 노래방에 갔는데 어떤 도로공사 직원은 못볼 꼴을 보여주기도 했다. 심지어 도로공사 본사에만 권한이 있는 사항에 대해 전화로 요청을 했더니 '나랑 자면 삭제해주겠다'고 말한 직원도 있었다.
앉아서 하는 일이다 보니 지체 장애가 있는 직원들도 꽤 많다. 계단 다니는 게 어렵다든지, 의족이나 의수 쓰는 분들도 있다. 장애인 고용하면 보조 수당이 3년간 지원된다. 3년이 지나면 그들 말로는 쓸모가 없는 셈이다. 서로 다른 영업소랑 장애인 직원을 교환한다. '너무 멀어 못 가겠다'고 하면 계약 만료되는 거다.
조합원들에게 마이크를 줬더니 이런 얘기가 터져나왔다. 우리가 얼마나 우스웠으면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싶다."
'중년 여성' 노동자들의 저력이 빛을 발하다
막상 싸움이 시작되자 그들이 무시하던 바로 그 '중년 여성' 노동자들의 저력이 드러났다. 현재 한국노총 소속의 톨게이트노동조합 조합원들은 서울요금소 근처에서, 민주노총 투쟁본부 소속의 노동자들은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200여 명이 장기간 노숙농성하는 경우는 처음이다.
"처음 청와대 앞 노숙농성 시작했을 때 고데기를 가져온 조합원이 있을 정도였다. 노숙농성이 이 나이대 여성들이 흔히 겪는 경험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뭐가 뭔지 몰랐던 거다. 텐트도 천막도 없이 맨바닥에서 홑이불 하나씩 덮고 잤다. 단 며칠만에 조합원들이 정말 잘 적응해줬다. 대부분 중년이라 엄마 손이 한참 가는 어린 자녀를 둔 조합원이 많지 않았다. 도로공사에서는 남편들이 투쟁을 방해하고 괴롭힐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조합원들은 '남편이 투쟁하지 말라고 하면 이참에 갈라선다'고 농담 반 진담 반 말했다. 중년 여성들한테는 이혼 얘기가 두렵지가 않다. (웃음). 남이 해 주는 밥 먹으면서 온 종일 투쟁만 하면 되니 너무 좋다는 조합원도 있다.
늘 집안 일 챙기던 여성들이라 노숙 농성도 잘 하는 것 같다. 자고 일어난 자리 청소, 분리수거도 정말 잘한다. 매주 금요일은 서울요금소에 와서 지붕 위 동지들을 만나고 여기서 자는데, 우리가 떠난 자리 바닥에 떨어져 있는 건 가로수 은행잎 뿐이다. 빌려 쓰는 경찰서 화장실 휴지통이 꽉 차면 우리 조합원들이 봉투 가지고 가서 직접 다 치운다.
노숙 농성은 3박4일씩 2조로 나눠서 교대하고 있다. 여성 조합원들은 집에 가도 나머지 3일을 제대로 쉬는 게 아니다. 밀린 집안일 하고, 농성하면서 입었던 옷 몰아서 빨고, 다음 농성하러 올라갔을 때 가족들이 먹을 밑반찬 만들다보면 3일이 금세 지나간다. 그러면 다시 1인용 텐트랑 돗자리 챙겨 전국에서 버스타고 기차타고 서울로 올라온다."
7월 1일부터 해고 상태이기 때문에 현재 투쟁에 참여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급여가 나오지 않는다. 벌써 급여 없는 월급날이 한 번 지나갔다. 노동조합은 해고와 동시에 실업급여를 신청하고, 실업급여 받아가면서 같이 싸우자고 설득했다. 첫 번째 월급날 조합원들이 충격 받지 않을까 걱정되었는데 큰 흔들림 없이 지나갔다.
"생각보다 다들 정말 잘 해주고 있다. 청와대 앞에서는 매일 오후 6시 문화제를 한다. 열명씩 조를 짜서 트로트 가사 바꿔 부르기 대회를 했는데 준비하는 4시간 동안 팀별로 구석에서 노래 틀어놓고 율동을 만들었다. 정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걸 보고 톨게이트 지붕 위에 있는 조합원들이 자기들도 참여하겠다며 'DOC와 춤을' 노래를 '톨게이트와 춤을'로 개사하고, 핸드폰에 대고 불러 녹음하고, 율동까지 만들어서 공연했다.
양대 노총에 5개 노동조합 조직 소속 노동자들이 함께 투쟁하고 있다. 한 조직이 아니기에 같이 싸우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 친해지기 어렵기도 하다. 하지만 수납원으로 십수년을 같이 살아왔다. 공동의 정체성, 끈끈함이 있다. 지금도 도로공사는 나누고 회유하려고 온갖 시도를 하지만 우리에겐 함께 해야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
박순향 부지부장은 투쟁이 끝나면 조합원들과 같이 1박2일로 여행을 간다고 했다. 노숙은 문제 없으니 버스만 대절해 계곡이든 바다든 산이든 가서 신나게 놀고, 아무 데서나 하루 자고 오자고 약속했다고 한다. 40일이 넘게 노숙하고 '사람 있을 곳이 못 되는' 톨게이트 지붕 위에서 버티면서도 이런 신나는 약속을 할 수 있는 힘은 이기적인 싸움이 아니라는 자신감, 우리가 옳다는 확신, 수납원으로 함께 고생한 노동자 사이의 연대감이다.
기자와 인터뷰를 한 날 저녁, KBS1 <거리의 만찬>에는 '고속도로 로망스'라는 제목으로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노동자들의 농성 이야기가 방송됐다. 투쟁과 연대로 성장하는 노동자 이야기가 로망스다.
"우리가 옳다는 확신이 투쟁의 동력"
박순향 부지부장과 인터뷰를 마친 후, 서울톨게이트 농성 현장으로 이동해 지붕 위의 도명화 지부장과 전화 인터뷰를 했다. 박순향 부지부장은 지붕 위 조합원들에게 미안하다며 울었는데, 도명화 지부장은 밑에서 싸우는 조합원들에게 미안하다고 한다. 이런 끈끈한 마음이 조합원들을 계속 한 자리에 묶어 세워두고 있었다.
다음은 톨게이트 지붕 위 도명화 전국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본부 지부 지부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매우 더울텐데 어떻게 지내나?
"비 올 때는 비가 와서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폭염이 오니 비오는 게 낫다. 그늘막 밖에 햇빛을 피할 곳도 없다. 더울 때는 그냥 죽은 듯이 숨만 쉬고 있다."
- 건강 문제는 없나?
"오늘도 설사가 심해서 한 분이 내려갔다. 다른 조합원은 진드기에 얼굴을 물려 진물이 나고 퍼져서 내일 내려가기로 했다. 나는 발가락이 부러졌는데 일단 임시처방으로 붕대를 감아뒀다. 토요일마다 인도주의실현의사협의회에서 올라와 진료해주는데 엑스레이가 안 되니 한계가 많더라. 청년한의사회는 수요일마다 올라와 침을 놔주신다."
- 정신적으로도 힘들지 않나?
"힘든 것은 오히려 무감각해졌다. 소음과 진동 때문에 잠 못자는 것도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잠을 잘 자면 그것도 이상하다며 받아들이자고 했다. 서로 얘기하면 자꾸 눈물짓는 분들도 있지만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는 게 좋다 해서 얘기하는 시간 자주 가지려고 하고 있다."
- 아래 있는 조합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올라올 때까지만 해도 밑에 있는 동지들이 잘 싸워줄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다. 우리는 버티기만 하면 되지만 밑에서는 시간을 내 몸을 움직여 싸워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밑에 있는 동지들이 우리를 걱정하고, 우리를 내려오게 하려고 애쓰는 마음에 항상 미안하고 고맙다. 생각보다 잘 싸우고 있어서 매일 감동이다."
- 이렇게 잘 싸우고 있는 동력은 무엇일까?
"처음 하는 투쟁이라 잘할까 불안했는데 지나고 보니 처음이라 잘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같이 버틸 수 있는 동지들이 많고 우리가 하고 있는 투쟁이 욕심으로 얘기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 우리가 옳다는 확신이 투쟁의 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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