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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Z 노동이야기] 우체국에서 보내는 편지 / 2014.5 우체국에서 보내는 편지 '동서울우편집중국 양현순 조합원 인터뷰' 최민 선전위원 ‘동집’. 동서울 우편집중국을 동집이라고 한다. 서울 지역의 우체국에서 모아 온 우편물을 권역별로 분리하여 보내는 곳이다. 통신회사의 청구서와 같은 대량 우편물은 동집에서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다루는 우편물 양이 어마어마하다. 소포와 택배, 등기 우편물을 모두 합치면 1일 평균 600여만 통의 물량을 처리한다. 대량 우편물은 대부분 기계로 분류하지만, 개인들이 보내는 우편물, 대량 우편물 중 반송 물량 등은 일일이 손으로 분류해야 한다. 양현순 씨는 동서울우편집중국에서 12년째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다. 저는 지금은 ‘소형계’에서 일해요. 일반 우편물을 분류하는 부서예요. 잡지나 책자 다루는 ‘대형계’, 등기나 카드.. 더보기
월 간 「일 터」/[A-Z 다양한 노동이야기]

[A-Z 노동이야기] 우체국에서 보내는 편지 / 2014.5

우체국에서 보내는 편지
'동서울우편집중국 양현순 조합원 인터뷰'

최민 선전위원

 

‘동집’. 동서울 우편집중국을 동집이라고 한다. 서울 지역의 우체국에서 모아 온 우편물을 권역별로 분리하여 보내는 곳이다. 통신회사의 청구서와 같은 대량 우편물은 동집에서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다루는 우편물 양이 어마어마하다. 소포와 택배, 등기 우편물을 모두 합치면 1일 평균 600여만 통의 물량을 처리한다. 대량 우편물은 대부분 기계로 분류하지만, 개인들이 보내는 우편물, 대량 우편물 중 반송 물량 등은 일일이 손으로 분류해야 한다. 양현순 씨는 동서울우편집중국에서 12년째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다.

 

저는 지금은 ‘소형계’에서 일해요. 일반 우편물을 분류하는 부서예요. 잡지나 책자 다루는 ‘대형계’, 등기나 카드 배송 등을 분류하는 ‘특수계’, 택배 물건 다루는 ‘소포계’, 우편물 뭉치를 차에 싣고 내리는 ‘발착계’로 나뉘어 있어요. 소포계는 3g짜리 일반 우편물을 분류하는데, 한 박스가 4~5kg 쯤 돼요. 이걸 꺼내서 분류하고 다 되면 또 박스를 올려놓고 또 분류하지요. 이러니 근골격계질환은 누구나 가지고 있죠.

 

여성 노동자의 몸, 엄마 노동자의 몸


양현순 씨는 동집에서 근무한 12년 중 10년을 야간 근무로 일했다.

 

두 가지 이유죠. 첫째는 애들, 둘째는 임금이에요. 처음에는 오로지 애들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애들이 초등학생이었는데, 어린 애들이 학교 갔다가 집에 왔을 때 집이 텅 비어 있는 게 싫었어요. 애들 집에 오면 숙제나 밥 챙겨주고, 잠자리 봐 주고 나서 밤 10시에 출근하는 거죠. 그리고 아침에 들어가서는 애들 등교 준비 챙기고요. 지금 와서 보면 정말 못 할 짓 한 거예요.


다른 이유는 임금입니다. 요즘 주변에는 급여 때문에 야간 하는 동료들이 더 많은 것 같기도 해요. 야간 근무를 하면 주간보다 쩜오(야간 수당 0.5배)를 더 받잖아요. 그런데 돈 때문에 야간 근무하는 것은 정말 말리고 싶어요. 제가 10년 근무하고 남은 건 골병뿐이에요. 골병 든 것 때문에 쓴 돈이 천만 원은 넘는 것 같아요. 지금도 9개월째 한의원 다니고 있거든요. 약값, 차비, 침 맞는 돈, 그 전에 다녔던 정형외과, 원인 찾아보겠다고 갔던 대학병원, 마사지, 부황... 거기다 아파서 쉰 날도 있고. 그렇게 치면 돈 때문에 야간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죠.


그래도 버티는 이유요? 지금 나이에 아줌마가 할 수 있는 일은 서빙이나 설거지뿐이죠. 출퇴근 시간이 일정하고, 공휴일에 쉴 수 있는 직업이 거의 없어요. 주부들은 대소사가 많잖아요. 그런데 식당에서 일하면서 연차를 쓸 수 있나요? 이런 게 장점이죠. 그러니까 이렇게 힘들어도 못 벗어나는 거죠.

 

근로기준법에서는 여성의 야간근로와 휴일근로를 제한하고 있다. 18세 이상의 여성이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일하기 위해서는 ‘근로자의 동의’가 있어야만 한다. 이 경우에는 여성의 무거운 육아 부담, 낮은 임금, 중년 여성에게 닫혀 있는 취업 기회가 ‘근로자의 동의’를 강제하고 있는 것이다. 

 

전적으로 야근만 하는 기업이 있을까요? 웬만한 데는 3교대는 하지 않나요? 이렇게 따져 물으면 관리자들도 말을 못 해요. 기능직 공무원들은 같은 일을 하지만, 24시간씩 교대근무를 하거든요. 그 사람들은 양반이고 우리는 상놈인가요? 야간 10년 하는 동안 하루에 잠을 3~5시간밖에 못 잤어요. 이러니 몸이 망가지지 않고 배기겠어요? 

 

 

낮은 임금, 고된 노동, 차별과 갈등


교대제뿐이 아니다. 임금을 보면 무기계약직 동료들이 야간 노동을 선호하는 까닭을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힘들게 일하고 급여를 받으면 기뻐야 하는데, 받으면 다들 인상을 써요. 급여가 그만큼 적어요. 이러니 또 연장, 시간 외 근무에 목을 매는 거죠. 아프다고, 이렇게는 일 못 한다고 하다가도 시키면 다 해요. 시간 외로 근무하면 1.5배를 받잖아요. 지금 시급이 5,410원인데, 이게 쩜오가 되면 7,500원이 넘잖아요. 일하는 노동자들이 연장 근무를 받아들이니까, 인력을 충원 안 하고 연장으로 이걸 다 돌려서 처리하는 거죠.

 

실제로 우편물량이 양현순 씨 입사 초기였던 10년 전보다 많이 줄었다. 택배가 늘었지만 출혈 경쟁으로 수익이 남지 않아 통신 회사 등의 대량 소형 우편물이 주된 수입원이라고 한다. 우정사업본부에서도 적자라고 볼멘소리를 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더 많은 비정규직을 골자로 하는 인력 계획을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다. 동서울 우편집중국은 직접고용 노동자 600여 명 중 무기계약직을 포함한 비정규직의 비율이 60~70%에 이른다. 우편집중국까지 오는 시간 하루, 집중국에서 하루, 발송에 하루. 이렇게 3일 내에 우편물을 배송한다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부족한 인력을 충원하는 대신, 지금 근무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노동 시간을 늘리고 노동 강도를 강화한다.

 

2년 전부터 ‘중근’을 하고 있어요. 오후 2시부터 밤 11시까지 근무하는 조를 그렇게 불러요. 그런데 2시간 연장하면 새벽 1시, 집에 가서 씻고 나면 3시에 자게 돼요. 그러니 중근을 해도 4~5시간 자는 거죠. 근로기준법에 8시간 일하라고 돼 있잖아요. 왜 그렇겠어요? 8시간은 일 하고 나머지는 쉬고, 자기 일도 하고 해야 사람이 건강을 유지하면서 계속 일할 수 있다는 거 아니겠어요? 그러니 8시간 일한 뒤에 2~3시간 연장근무 하고 나면 몸이 녹아나죠. 이걸 다 비정규직이 감내하는 거예요.

 

임금이나 교대제뿐 아니라, 일하면서 현장에서 부딪치는 기능직 공무원과의 갈등도 스트레스다.

 

기능직 공무원들은 정말 우리랑 똑같은 일 하거든요. 그런데도 자기들은 관리자라고 생각하면서 우리를 막 부려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나도 못난 사람 아니거든요. 열심히 일하고, 당당하고 떳떳하죠. 그런데도 말투, 태도에서 벌써 권력 있는 사람 행세를 해요. 이제라도 공무원 시험을 보라고 하면 공부해서 보겠어요. 그런데 이제는 비정규직만 뽑잖아요.

 

기능직 공무원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함께 일하는 공공기관에서는 이 같은 갈등이 어디나 있는 것 같다. 이런 고용 구조는 노동자들 사이에 갈등을 만들고, 각자 서로 다른 작은 이해에 집중하게 하고, 노동자들의 단결과 조직화를 저해한다. 우체국에는 총 5개의 복수노조가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양현순 씨는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공공운수노조 전국우편지부에 속해있는데, 우정노조 조합원인 기능직 공무원들은 우편지부의 싸움이 자기들 밥그릇을 뺏어가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하거나 거부감이 많다.

 

꿈이 없는 일


양현순 씨는 노동조합 활동도 열심히 하고 일도 여전히 하고 있지만, 우편집중국이 ‘꿈이 없는 직장’이라고 한다.

 

우리 기본급이 108만 원이예요. 저야 나이 50에 아줌마지만, 젊은 총각이라면 이걸로 결혼 못 하죠. 처음에는 취직만 해도 좋고, 기쁘죠. 신나게 일하고 인생에 계획도 있어요. 그런데 일하다 보면 꿈이 없어져요. 그러니 늘 술 마시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그 술값은 어디서 나와요? 겨우 그 108만원에서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 옆에서 보면 속상하죠. 젊은 애들 들어오면, 좀 쓸만하다 싶으면 나가라고 해요. 여기 있지 말라고. 다른 데 가서 일자리 찾으라고요.

 

양현순 씨는 에너지가 넘치는 분이었다. 1개월 치 한약 상자를 들고 스스로 ‘종합병원’이라고 말하면서도 연신 웃으면서, 자신의 노동에 대해 자세히 얘기해주었다. 노조 활동 탄압하는 관리자에게서 언제든 문제의 발언이 튀어나오면 녹취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다니는 배짱 있는 ‘언니’이며, 우편지부 활동이 매스컴에 많이 나오게 됐다며 기분 좋아하는 멋진 ‘언니’였다.


이런 선배가 ‘우리 일은 이런 점이 좋다, 우리 잘해 보자’ 할 수 있으면 참 좋을 것 같은데, ‘꿈이 없는 직장’이라고, ‘너는 젊고 쓸 만하니 나가라’고 말한다니 씁쓸하다. 12년간 일하고 얻은 것은 골병뿐이라고 말하니 안타깝다. 우편집중국에서 새로 일하게 된 젊은 노동자가 ‘나도 십년 일하고, 이런 선배같이 되고 싶다’고 꿈꾸고 희망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되기 위해 현순 언니도, 공공노조 우편지부도 파이팅!

* 연구소 홈페이지에서 2013년 12월 발간된 ‘전국우편지부 노동자의 노동환경과 건강실태 연구보고서’를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