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Z까지 다양한 노동 이야기] 봄을 타고 전해 온 땅을 일구는 농민 이야기 / 2019.05

[A-Z까지 다양한 노동 이야기] 

 

봄을 타고 전해 온 땅을 일구는 농민 이야기 

 

나래 / 상임활동가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점. 서늘하게 코끝을 감쌌던 기운은 말랑해져 새삼스레 다가오고, 눈길이 잘 가지 않았던 길가엔 어느새 푸른 새싹들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길거리뿐만 아니라 시장과 마트에 가면 계절의 변화가 확연하다. 푸른 잎의 채소들이 가득하고, 심심했던 과일 코너가 알록달록한 색으로 채워진다. 건조한 아스팔트가 가득 깔린 도시에 어떤 이들이 봄기운을 전해주는 걸까. 봄기운이 완연한 지난 4월 11일에 경기도 연천에서 농사 짓는 농민 이석희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이석희씨는 올해로 58세다. 계절의 기운을 온몸으로 받은 그의 얼굴은 유난히 단단했다. 농사지은 횟수만 30년이 넘었다. 20대에 군 제대를 하고 부모님이 일궜던 땅에서 농민의 삶을 이어 나갔다. 부모님이 짓던 방식으로 농사를 짓다가 7년 전부터 친환경 재배를 하고 있다. 벼, 사과, 감자, 마늘, 양파 등 다양한 경작물을 그의 손으로 직접 키운다. 정성이 가득 담긴 친환경 무농약 인증 농산물은 학교 급식 재료로 출하되고 있다. 그러면 땅을 일구는 농민의 하루는 어떨까?

"새벽 5시 반에 일어납니다. 전날 스케줄을 확인해서 수첩에 적어요. 오늘은 사과 작업을 했죠. 내일 또 사과 작업을 해야 해요. 친환경이기 때문에 기계유제로 불리는 기름을 뿌려줘요. 아침밥은 오전 7시 정도에 먹고, 작업을 계속하고 저녁 6시 반까지 일을 합니다. 올해가 내 나름의 고비거든요. 그래서 일을 좀 많이 하는 편이라 그 시간에 끝나요. 보통 오후 6시 반 정도면 종료하거든요. 사실 이렇게 오래 일하면 몸이 못 버텨요."

경기도 연천에서 땅을 일구고 있는 농민 이석희씨.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날씨와 기상이 농사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매년 가을이 되면 그해 벼농사가 풍년이었네, 흉년이었네 하는 기사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성공 여부가 하늘에 달렸단 말인즉슨 농민들의 수입 역시 하늘에 달려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각각의 계절을 이석희씨는 어떻게 보내고 맞이하는지 궁금했다.

"겨울엔 공부를 많이 해요. 유투브로 공부한 걸로 마늘농사 덕을 봤어요. 겨울에도 쉬지 않아요. 미리 해둘 게 많습니다. 예를 들어 땅 일은 안 하지만 돌을 줍는다든지, 각종 주변 정리도 해야죠. 개인적으론 책을 많이 읽기도 해요. 농사에 필요한 물리적 일도 하고 나를 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요. 본격적으로 일하기 위해 준비하는 시기죠. 올해 3월 27일에 감자를 심었어요. 농작물은 빨리 심는다고 빨리 나는 게 아니거든요. 너무 더운 여름날에는 작업 시간을 조정해요. 그땐 기상시간이 빨라져요. 새벽 5시 정도요. 일어나서 오전 10시까지 일하고 오후에는 쉬는 식이에요."

그해 날씨와 환경에 따라 수확이 일정치 않기 때문에 사실상 농민들의 수입은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풀리지 않을듯한 문제를 해소하려고 농민수당 시행이 최근 농민들 사이에서 요구되고 있다.

 '농민수당'은 농가의 기본소득을 보장해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를 지킬 거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중앙정부가 직접 입안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자체별로 시행여부가 나뉜다. 지난해 6월 전국 최초로 농민수당 지급을 시작하기로 한 곳은 전남 해남군이다. 관내 전 농가를 대상으로 하며 지역상품권으로 연 60만 원을 상·하반기 농가별 균등 지원할 계획이다. 이 외에도 부여군, 고창군, 강원도 등이 시행 예정에 있다. 이석희씨가 속한 경기도는 경기 기본소득위원회가 출범해 경기농민기본소득제를 검토하고 있다.

"농작물에 따라서 수확시기가 다 달라요. 감자는 5월 말, 마늘은 6월 말 정도요. 그럼 수익금은 그 이후에 들어오죠. 그 다음에 사과는 8월 말이고요. 벼는 11월 말에 탈곡해서 보내고요. 그럼 그 이후에 출하대금이 들어오는 거죠. 최근에 좋아진 점은 농민수당이 등장하기 시작한 거예요."

 이석희씨는 농민수당에 대한 고민, 요구와 함께 친환경 농업의 지속성도 중요한 문제라 얘기했다. 친환경 농업은 합성농약, 화학비료 및 항생·항균제 등 화학자재를 사용하지 않거나 사용을 최소화해서 농업생태계와 환경을 유지·보전하면서 안전하게 농·축·임산물을 생산하는 농업을 가리킨다.

"저도 솔직히 말하면 돈을 벌기 위해 친환경 농법을 선택한 것도 있어요. 동시에 농민으로서 자부심도 중요했죠. 저 말고 다른 농민 분들도 친환경으로 재배를 하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토양을 지키고, 수자원 보호할 수 있고요. 친환경을 할 수 있으면 당당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려움이라고 한다면 풀 문제죠. 솔직히 제초제 한 방이면 끝나거든요. 그걸 극복해야 해요. 친환경으로 하니까 안정적으로 가격을 받을 수 있으니 선순환으로 친환경 작업이 가능해요."

 그는 친환경 농업이 지금보다 더 확산되고, 많은 농민들이 할 수 있으려면 필요한 재원을 정부가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렇지 않으면 온전히 경제적 부담을 개인이 져야하기 때문이다.

"경제적 측면에서 사실은 어려워요. 제가 그나마 희망을 갖는 건 작년부터 제 값을 받을 수 있는 학교에 출하 한다는거에요. 귀농하는 사람들이 어떤 작물이 좋을지 물어봐요. 특용작물은 없다고 대답해요. 예전엔 업체들도 무조건 싼 값을 찾아 다녔는데, 이제는 식품 유통 딜러들도 상품을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걸 중요시 여기기 때문에 약간의 희망이 보인달까요."

농민들은 시민들의 건강한 밥상을 책임지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들의 안전과 건강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농민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의무가입 대상이 아니다.

여러 어려움에 봉착하면서도 이겨낼 힘과 농민으로서 자부심을 다지고 있는 이석희씨에게 '그럼에도' 농민으로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주변 친구들 보면 정년퇴임해서 노후 걱정을 많이 하거든요. 그런데 저 같은 경우엔 이제 조금씩 빛을 보기 시작하고 있어요. 전 팔십 정도까진 농사일을 하려고 해요. 더 오래 농사지으려고 운동도 하고 있고요. 일단 농업은 매력적입니다. 기회가 주어지거든요."

그러나 시민들의 건강한 밥상을 책임지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들의 안전과 건강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에 의하면 농업은 타 산업에 비해 재해율이 높아 건설업, 광업과 함께 3대 위험산업으로 분류될 정도다. 우리나라에서도 광업, 임업, 어업 다음으로 재해율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농민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의무가입 대상이 아니다. 자영업자로 분류되거나, 농업사업장이 대부분 5인 미만이라 제외됐던 것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고자 2016년 '농어업인의 안전보험 및 안전재해예방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긴 했지만 임의가입이며, 민영보험을 채택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제도도 제도지만 이석희씨는 농민들이 산재로 인식하지 못하고 피로가 누적되어도 잘 느끼지 못하는 등의 문제도 있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최근 기계 작업이 활발해지면서 관절염 같은 질환은 많이 줄어들었다 했다. 기본적으로 농사일은 중량물 취급이 흔하고, 무릎을 꿇거나 쪼그려 앉거나 허리를 구부려 일하는 부담 작업이 많기 때문에 신체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관절염은 농업인의 가장 흔한 질병 중 하나이기도 하다.

"제가 봤을 때 최근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정책은 지자체 농업기술센터의 농업기계임대 사업이에요. 저도 필요시 5천원~8만원 정도 저렴한 임대료 내고 해마다 대여하고 있어요. 바뀌었으면 하는 정책은 프로젝터처럼 뭉텅이로 몇몇에게만 지원하는 사업 말고, 농민수당처럼 모든 농민들에게 골고루 나눠줬으면 좋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농업기계임대사업의 경우 돈이 많은 농민이든 가난한 농민이든 모두 저렴하게 필요한 기계를 대여할 수 있어서 좋아요. 있는 사람이 계속 지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골고루 사람들이 나눠 쓸 수 있는 사업이 더 필요하다고 봅니다."

 농업의 기계화도 산재 위험과 동시에 농민들의 노동강도 부담을 완화하는 큰 변화 중 하나지만 이주노동자의 농촌 유입도 영향이 크다. 이석희씨도 농촌에서 이주노동자는 아주 중요하다고 했다. 이주노동자 없으면 한국의 농촌이 망한다는 말도 공공연하다. 그럼에도 농촌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문제로 임금차별, 그 중에서도 여성/남성 이주노동자들 간의 성별임금격차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그쵸. 확실히 예전보다 힘든 일이 덜하니까요. 내일도 이주노동자 1명 와달라고 요청했어요. 이 근처에도 인력사무소가 2군데 있어요. 말레이시아 분들이 오는데 일을 잘하세요. 덕분에 외국어번역 어플도 깔았고요. 일당은 여성 6만원, 남성 9만원이에요. 일의 차이가 없는데 말이죠. 한국문화의 나쁜 예에요. 이주노동자 본인들도 그 부분을 참 이상하게 생각해요. 자기 나라에서는 안 그렇다고요."

 현재 그는 농민의 권리 향상과 현실 변화를 모색하기 위해 전국농민총연맹 활동도 함께 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같은 조직이 있잖아요. 왜 농민들은 없을까 싶었죠. 현재 전국농민회총연맹 연천군 미산면 회장을 맡고 있어요. 요즘엔 지역 문제에 집중하고 있고, 농민수당을 얘기 많이 하고 있어요. 아이들에게 좋은 세상을 열어주고 싶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을 묻자 이석희씨는 무엇보다 농민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농민들의 과제가 더 큰 것 같아요. 농민들이 먼저 소비자에게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와 함께 해결해 나갈 것들을 알려나가야 해요. 우리가, 농민들이 진실을 알릴 때만이 소비자에게 당당히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