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어느 응급의학과 의사의 고백 / 2019.03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어느 응급의학과 의사의 고백

 

 

 

 

 

응급의학과 의사 L

 

 

 

 

최은영의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에는 아치디에서라는 제목의 짧은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주인공 랄도는 브라질에서 엄마와 누나의 노동에 의존해 방에서 마리화나나 피우며 목적 없이 살아가는 청년이다. 잠깐의 연인이었던 여자를 아일랜드까지 만나러 왔다가 화산폭발로 발이 묶이게 된다. 더 이상은 그를 경제적으로 지원할 수 없다는 엄마의 뜻에 어쩔 수 없이 돈을 벌 곳을 찾게 되고, 그렇게 찾아간 작은 마을 아치디에서 그는 하민이라는 한국인 여자를 만난다. 무뚝뚝하고 항상 화난 표정이던 그녀와 몇 번의 만남을 통해 약간 친밀해진 그는 그녀가 한국의 대도시에서 3교대로 일하던 간호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왜 좋은 직업을 놔두고 여기까지 왔냐는 물음에 그녀는 대답한다. 한 간호사가 있었는데 그녀를 너무너무 싫어했었다고, 여기까지 모든 것을 버리고 올 정도로. 그러면서 그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일이 몰릴 때가 있어. 한시도 앉지 못하고 거의 뛰어다니다시피 해야 하는 때가.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계속 일을 해. 그런 날 중 하루였어. 거의 백 살이 다 된 할머니가 환자로 들어온거야. 딸은 팔십 먹은 노인이고. 그 노인이 그녀에게 부탁한거지. 자기 엄마 욕창에 드레싱 좀 해달라고. 그녀는 짜증이나. 그리고 생각하지. 왜 노인들은 이렇게 짜증나는 존재들인가. 다른 일들도 많으니까 조금만 기다리라고 해. 정신없이 일해. 할 일이 너무 많아. 노인이 다시 찾아오니. 할머니, 기다리시라고 했잖아요. 네 시간 기다렸어. 노인이 대답해. 조금만 더 기다리세요. 우리 엄마가 아파서 울잖아. 기다리세요. 그녀는 차갑게 말해. 급한 일들을 다 끝내고 가서 드레싱을 하지. 손길은 빠르지만 거칠어. 그리고 생각하는 거야. 왜 백 살까지 살아서 모두를 귀찮게 하느냐고. 왜 이렇게까지 살고 싶어 하냐고. "

 

 

그녀가 그렇게 싫어하게 된 간호사는 자기 자신이었다.

 

 

책장이 넘어가지 않았던 이유는 예전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전공의로 일하던 때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커피와 에너지음료로 매일을 겨우 버티던 그 시기에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차마 입 밖으로는 꺼내놓지 못했지만 사실 '왜 이렇게까지 살고 싶어 하냐고' 푸념하듯 속으로 중얼거릴 때가 있었다. 그 전에 스스로 상상했었던 따뜻하고 유능한 의사의 모습이 아니라 분노와 피로와 짜증으로 뭉쳐있는 싸가지 없는 전공의가 된 자신을 발견했던 시간이었다.

응급실에서 일하는 이상, 밤낮이 바뀌는 건 당연했다. 식당 시간을 맞추지 못해 식은 배달음식이나 편의점 음식으로 식사를 때웠다. 야간 근무가 연달아 있을 때에는 밤을 꼴딱 새고 컨퍼런스에 졸면서 참석한 후 편의점에서 빵과 음료수를 사서 머리맡에 놓고 잠이 들었다. 자다가 배가 고파 깨면 머리맡에 있는 음식을 주섬주섬 먹고 다시 잠이 들었다. 그러다 맞춰놓은 알람이 울리면 깨서 다시 밤 근무를 위해 응급실로 향했다.

 

전국에서 환자가 몰려들었다. 건강하게 지내다가 갑자기 청천병력 같은 이야기를 듣고 황망히 내원한 이들도 있었고, 타병원에 몇 달째 입원해 있다가 해결되지 않아 사전만큼 두꺼운 의무기록을 가지고 응급실로 오는 환자들도 있었다. 환자 수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베드는 이미 찬지 오래라 목도 가누지 못하는 노인들이 휠체어에서 수십 시간이 넘게 버티고 있었고 보호자들은 그 뒤에서 환자분의 머리를 붙잡고 힘들게 서 있다가 때때로 분통을 터트리곤 했다. 가벼운 질환으로 내원한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의무기록 한 페이지에 다 들어가지 않는 긴 병력을 가졌고 많은 약과 시술과 수술을 필요로 했다. 충분한 시간을 들여 정보를 알아내고 적절한 진료를 제공하는 일은 시간도 경험도 없던 나에겐 너무 어려웠다.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접수되는 환자들이, 항상 무언가를 요구하는 보호자들이, 계속해서 들이닥치는 구급차가 원망스러웠다. 이미 한 설명을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이면 짜증이 치밀어 올랐고 끊임없이 전자차트에 새로 뜨는 이름들을 보면 분노마저 느끼곤 했다. 모두가 아픈 환자고 각자의 긴 이야기가 있었지만 귀를 기울여 들을 여유가 없었다. 그들의 고통이나 불안함, 아픔을 느끼고 연민하거나 위로하기에는 너무 둔감해져 있었다.

 

근무가 끝나고 몸이 좀 편해지면 후회했다. 환자를 환자로만 보지 않겠다고, 하나의 인격으로 보고 존중하겠다고 생각했던 나는 어디로 갔는지, 나는 왜 이리 체력도 약하고 잠도 많고 성격도 더러운지, 자주 자책했고 그러지 않으려 다짐했다. 새롭게 다짐하고 근무를 시작했어도, 피곤하고 배고플 때가 되면 또 짜증을 냈다. 간혹 같이 일하던 동료나 선후배 중 한 두 명이 말없이 도망가거나 사정이 있어 빈자리가 생길 때가 있었고 그럴 때면 그 부재를 누군가는 채워야 했다. 인력이 부족하다고 해서 아픈 환자가 덜 생기는 건 아니니까. 근무 때 마다 진료를 하면서 부지런히 환자를 퇴원시키거나 다른 병원으로 전원 시켜야 했다. 입원하고 싶어 하는 환자와 원망 섞인 보호자의 비난을 들으면서도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들에게 '어쩔 수 없다고'만 반복했을 뿐. 그 과정에서 하민이란 여자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내 자신이 싫어하는 의사가 되어 있었다.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이 시간이 끝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전공의와 전임의 시절이 끝나고 나는 그곳을 빠져 나와 전보다 건강해진 몸과 정신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누군가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의료현장에서 여전히 과중한 노동을 하고 있다. 주로 인턴, 전공의, 그리고 펠노예 (펠로우+노예를 합친 말이다)라고 우리가 부르는 전임의들 이다. 어떠한 사명감을 가지고 헌신하고자 하는 이들도 그 곳이 열악하고 위험부담이 많으며 보수가 적은 자리임을 안다.

 

그러나 여전히 그 현장을 지키고 있고, 그 대가로 건강을 위협받는다. 아주대 외상센터의 이국종 님은 한쪽 눈이 거의 실명 상태이며 어깨와 다리도 잘 못쓰신다고 한다. 아마 함께 일하는 팀의 대부분이 수면장애를 포함 자잘한 질병에 시달리실 거라고 짐작된다. 고 윤한덕 님은 응급의료 시스템을 위해 과도한 근무를 하면서 과로와 수면부족에 시달리다 기저질환도 없이 심정지로 사망하셨다. 한 대학병원의 33세 소아과 전공의는 36시간 연속근무 중 당직실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간호사들의 현실은 어떤가. 현재 신규 간호사의 이직률은 38.1%이고 간호사 평균 근속년수는 5.4년이다. 수면부족과 과중한 업무, 감정적인 스트레스 및 부담감 속에서 그중 몇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고, 그 외의 많은 이는 위염과 수면장애를 얻은 채 그곳을 떠난다. 하민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나의 경우, 내가 부족해서 그랬던 것인지도 모른다. 많은 시간을 자책하면서 보냈다. 비슷한 상황에서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들도 있다. 같은 환경에서도 어떤 이들은 더 친절하고 공감하는 태도를 보여줬고, 틈틈이 환자들과 라뽀(rapport)를 쌓는 모습도 보였다. 그렇지만 모두에게 그런 것을 기대할 수는 없는 법이다. 나를 포함한 보통의 많은 사람들은 최소한의 수면시간을 보장받고 예측 가능한 근무 속에서 적절한 노동 강도로 일할 때 인간을 인간으로 대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이 책에서 랄도는 궁금해 한다. 왜 하민은 항상 자신은 열심히 살았다라고 하는지.

 

나는 살다라는 동사에 열심히라는 부사가 붙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 hard’는 주로 부정적인 느낌으로 쓰이는 말 아닌가. ‘hardworking’이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사는 게 일하는 건 아니니까.”

 

사는 게 일하는 것은 아니다. 새삼스러운 말이다. 열심히 일하고, 헌신하는 것,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러한 헌신을 높이 평가하고 추앙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헌신과 희생에 대한 강요가 되어서는 안 된다. 누군가 자신의 몸을 갈아가며, 삶을 바쳐가며 일하지 않아도 무리 없이 돌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꼭 전쟁터에 나간 장수처럼 비장하게 일하지 않아도 되는, 누군가 과로로 죽거나 아프고 나서 안타까워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 내가 소명의식 없고 게으른 사람이라 그런지는 모르다. 하지만 나는 너무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보통 정도로 적당히 일해도 문제없이 굴러가는 곳에서 스스로의 몸을 돌보며 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