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현장 개선은 어떻게 해야 할까 / 2019.02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현장 개선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선웅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필자는 보건관리전문기관에서 중소규모 사업장의 산업보건의를 맡고 있다. 산업보건의는 직업성 질환의 예방과 조치에 대한 업무를 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22조 산업보건의의 직무 등에 개괄적으로 명시되어 있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에서 노동자의 직업성 질환을 예방하기 위해 현장의 문제를 개선하고자 할 때는, 사업장에 어떻게 접근하여야 하며 또 어떻게 설득을 이루어 낼지 난감하게 된다.

어느 날 노동자 한 분이 상담 중 자외선을 바르는 작업을 하면 눈이 따갑다는 표현을 하셨다. 현장을 방문해 보니 새로 설치된 자외선 경화도장 공정의 문제였다. 특수 도료의 하나인 자외선 경화도료를 교반기에 넣은 후 컨베이어에서 자동 도포되면 자외선을 이용해 속성으로 경화시키는 공정이었다. 노동자분은 도료를 교반기에 투입할 때 바로 그 증상이 발생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도료의 물질안전보건자료를 확인하였고, 도료내의 성분 중 각막 자극이 강한 물질(2-hydroxypropyl acrylate)이 원인으로 생각되었다. 이 물질은 자외선 경화 도료에서 흔히 사용되는 성분이었고 공정상 도료의 변경은 힘든 것으로 보였다. 노동자분의 증상이 간헐적이라 일단 보안경과 방독마스크의 보호구 착용을 필수로 하였고, 교반기 개선과 국소 배기 설치도 권고했으나 현장 상황상 국소 배기 설치는 힘들 것 같다고 하였다. 얼마 후 노동자분의 증상은 보안경 착용과 특히 본인이 작업 시 주의하여 증상이 거의 없다고 하셨다.

하지만 얼마 후 간호사를 통해 심각한 얘기를 듣게 되었는데, 타 지역 계열사의 동일 공정 노동자 한 분이 동일 기계의 정비 작업 중 바로 그 도료가 눈에 튀어 심한 시력 손상을 입었다는 사실이었다. 현재 담당 노동자의 증상은 심하지 않지만, 전체 작업은 언제든 위험요인이 있는 작업이었고 이를 예방하기 위해 개선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였다. 현장의 문제 중 교반기 개선과 응급 세안시설 설치를 우선적으로 요구했고, 부장님과 만나 위험성을 설명했다. 하지만 그 후 몇 달째 현장의 변동은 없으며, 사업장은 수도라인 설치의 힘듦 등을 호소하고 있을 뿐이다. 꼭 필요한 개선조치일지라도 산업보건의의 개선 지도사항 이행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사업장 입장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것이 일차적 원인일 것이다. 만일 발생 할 산재신청과 그로 인한 노동부 점검 시 받을 수 있는 불이익 등의 불안감을 이용해서, 사업장 상황에 따른 임기응변으로 현장 개선을 유도하는 것이 그나마 가능한 현실인 것이다.

두 번째 사례는 건축자재용 샌드위치 판넬 생산 사업장으로, 천식 유발 물질로 매우 잘 알려진 메틸렌 디이소시아네이트(MDI)가 주성분인 접착제가 연속 자동 투하되고 있는 공장이었다. 현장 확인을 하면 직업성 천식의 위험을 느끼게 된다. 두 개의 라인에서 월 8톤의 접착제가 지속적으로 투하되고 있는데, 투하 위치 근접하여 접착제의 경화를 방지하기 위해 온풍기가 상시 가동되고 있었으며, 국소 배기는 없었고 공정은 협소하며 전체 환기는 미흡했다. 작업환경측정 결과는 정상이었지만 라인 수리/세척 또는 점검과 같이 접착제 투하 위치에 근접할 수 있는 업무 상황에 따라 노출 수준은 충분히 높을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그 공정의 천식 발생이 걱정되는 상황이었고, 환기시설 강화를 지시하였으나 역시 질환 예방에 대한 현장 개선 지도는 사업장에 적용되기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접착공정 노동자 두 명이 천식 치료를 받고 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들에 대한 수시 건강진단을 의뢰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 결과에 따라 행정기관의 의무적인 현장 개선이 시행될 수 있게끔 된 것이다. 일종의 불행 중 다행으로, 직업병 또는 증상 발생을 통해서야 동료 노동자를 위한 예방조치와 개선이 가능한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산업 보건 전문가가 현장의 위험에 대해 사전 예방 개선안을 내고 그것을 현장에서 현실화시키는 일은 산업보건사업의 핵심이지만, 우리의 현실에서는 실현되기 매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꼭 필요한 개선조치에 대해서조차 사업주와 독립적인 사회적 권위를 인정받지 못한 채, 사업장 내부 상황에 의존한 개인의 노력과 방법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현재 우리의 사업장 보건관리의 작동방식으로는 아무도 그 일을 시키지 않았으며, 아무도 그 결과를 평가하지 않는다는 것이 체감되는 현실일 수 있다. 하지만, 실제적인 현장 개선에 중점을 둔 사업장 보건관리의 방향성은 결코 모호해져서는 안 될 것이며, 2015년 국제산업보건위원회에서 제안된 직업건강 전문가를 위한 국제 윤리강령에서는 개선조치에 대한 추적조사를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현장 개선에 중점을 둔 산업보건의의 의무와 그와 동반된 사회적 권위 그리고 업무 평가방법에 대해 앞으로 관심과 논의가 형성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