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환경의사가 들려주는 노동자 건강 이야기] 보험을 보험답게 쓰도록 알리고 장려해야 / 2018.12

보험을 보험답게 쓰도록 알리고 장려해야

권종호 (회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얼마 전 출장 검진에서 양손에 손목터널 증후군수술을 한 노동자를 만났다. 아직 수술 자국이 조금 빨갛게 남아있어 나는 그분의 검진 항목인 이소프로필 알코올보다 수술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올해 초에 정형외과에서 양 손목을 한꺼번에 수술하셨다는데 무릎까지 한꺼번에 해서 조금 싸게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손 저림은 현재 공장에서 일 시작하면서 점점 안 좋아지기 시작해 올해 딱 10년째인데 더 참을 수 없어 수술했고 그동안 해온 작업이 물건을 집어 돌려보며 불량 확인하고 이물질 닦아내고 하는 일이라 손을 많이 쓰는 상황이었다. 일 때문에 생긴 질환인데 산재 신청은 안 하신 거냐고 묻자 도리어 일하다 아프면 치료받으라고 월급 받는 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어차피 산재라고 해도 본인은 신청 방법도 모르고 복잡할 거고 회사에 싫은 소리 하기도 싫고 해서 그냥 수술받은 거에 만족한다고 했다.

매년 회사는 일정 금액의 보험금을 산재 발생에 대비해서 내고 있다.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한 보험료를 회사가 열심히 내고 있으니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회사가 앞장설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실제 회사는 마치 우리가 자동차 보험금 올라갈 것을 걱정해서 함부로 쓰지 못하는 것처럼 반응한다. 산재나 직업병이 많을수록 관리 감독이 심해지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다른 하나의 요인으로 산재 보험금 산정에 있어서 개별실적요율제를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개별실적요율제란 간단히 말해 산재 보험금사용액 비율에 따라 개별 사업장의 보험료를 할인해주거나 할증하는 제도이다. 예를 들면 납입 한 산재 보험료의 5% 미만을 사용한 사업장은 보험료를 50%까지도 감면해주게 된다. 물론 반대의 경우 50% 할증이 되기도 하지만 실제 할증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개별실적요율제 해당 사업장 중 89.8%)의 사업장은 할인을 받고 있다.

원래 취지는 산재 보험금 사용을 줄이기 위해 안전 설비에 더욱 투자하고 실제 산재가 줄어 할인받는 선순환을 의도한 것일지 모르나 결과는 산재 보험료 할인을 받기 위해 산재 신청에 비협조적이거나 공상 처리를 종용하는 행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의 개별실적요율제는 매우 불평등한 구조로 되어 있다. 개별실적요율제를 적용받을 수 있는 사업장은 노동자 10인 이상, 3년 이상 산재 보험 가입한 사업장으로 한정하고 있는데 이는 2015년 통계로 보면 전체 사업장의 4.45%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사업장 전체 보험료의 29.6%(1조 4,037억 원)를 감소시키고 있고 규모별로 할인율에 차등(30인 미만 사업장 ± 20% ~ 1000인 이상 사업장 ±50%)을 따로 두어 대기업일수록 더 높은 할인을 받게 만들어 놓았다. 그 결과 2017년 산재보험료 감면자료(개별실적요율 적용현황)에 따르면, 최다 감면 기업은 1위 삼성 (1031억 원)이었고 뒤를 이어 현대자동차 (836억2300만 원), LG (423억1200만 원), SK (347억5400만 원) 순이었다. 이렇게 할인된 금액은 결국 개별실적요율 적용 대상이 아니거나 할인 폭이 적은 소규모 사업장의 부담으로 돌아가게 된다.

다행히 2018년 1월부터 시행되는 산재보상보험법 등의 개정 내용에서는 개별실적요율 할인수준을 규모와 관계없이 20%로 통일하였다. 노동부 보고서인 「개별실적요율제의 산업재해 예방에 대한 효과분석 및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이로 인한 보험료 징수 증가분은 7,136억 원 정도로 예상되었다. 적용 시까지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불합리한 제도를 개선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또한 같은 시기 제도 개선을 통해 출퇴근 산재 인정, 산재 신청 시 사업주 확인제도 폐지 등이 이루어졌고 올해 6월 말 기준 산재신청 건수가 전년 대비 19.4%(1만 618건) 증가했다고 한다. 그중 출퇴근 재해와 인정기준 완화로 재신청된 건수를 제외한 13.2% (7,240건) 정도는 사업주 확인제도 폐지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대기업 위주의 산재 보험료 할인 특혜, 불필요한 사업주 확인제도 등 이제 겨우 몇 가지 문제가 개선되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노동자의 생각처럼 여전히 산재 신청의 과정은 복잡하고 껄끄럽고 어떤 제도인지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쉽게 다가가기 어렵다. 할인받기 위해 보험료를 내고도 최대한 안 쓰려는 제도로서의 산재 보험은 의미가 없다.

차라리 할인을 없애고 보험료를 낸 만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가벼운 산재나 흔하게 발생하는 직업병에 대한 산재 신청 시 불이익을 없애고 보건관리자나 사업주에게 신청을 장려하여야 한다. 또한, 신청과정을 간소화하고 적극적으로 홍보해 이를 통해 은폐된 산재를 양성화하는 것이 산재 예방 관련 지표 조작보다 훨씬 중요하고 시급한 일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