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로자살의 위험을 거둬내기 위하여
김영선 노동시간센터 연구위원
하반기 동안 '과로자살'에 대한 문제를 다룬 노동시간에세이를 연재한다. 앞으로 여러 필자가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사회복지사,이주노동자, 외국사례 등을 비롯해 여러 주제를 다룰 예정이다.
과로자살의 행렬 한복판에서
장시간 노동이 유발하는 문제들은 널려있다. 그 가운데 하나로 ‘과로자살’을 들 수 있다. 과로자살은 과로사와 마찬가지로 일본에서 만들어진 개념으로,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고의적으로 자기의 생명을 끊는 행위를 일컫는다.
생경한 어휘다. 과로와 자살, 딱히 납득될만한 조합은 아닌듯하다. 그렇게 힘들면 회사를 그만두면 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장시간 노동의 문제를 설명하는데 과로자살을 사례로 드는 건 꽤 불편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어이가 없을 정도로 과로로 인한 자살 사건이 최근 잇따르고 있다.
얼마 전 34세 사회복지 공무원이 과로로 인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자살했다. 그는 자살 전 3개월 동안 하루도 쉬지 못할 만큼 격무에 시달리다 “나에게 휴식은 없구나. 사람 대하는 게 너무 힘들다. 일이 자꾸만 쌓여만 가고, 삶이 두렵고 재미가 없다. 아침이 오는 게 두렵다”는 심경의 일기를 남기고 열차에 투신했다.
언뜻 드문 일이고 예외적인 사례라고 치부할 수 있다. 또한 자살의 원인은 다양한데 과로만으로 설명하는 건 억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억지스럽고 예외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지만, 그 해에만 4명의 사회복지 공무원이 잇따라 자살했다.
왜 과로자살이 반복 발생하는가?
비극의 공통분모는 한 사람이 2~3인분의 일을 짊어지게 하는 업무구조에 있었다. 현장에서는 사업은 늘어나는데 반해 정작 담당 인력이 뒷받침되지 않아 깔때기 모양처럼 업무가 한꺼번에 몰리는 상황을 ‘깔때기 현상’이라고 일컫는다. 이럴 때면 사회복지 공무원이나 누구나 할 것 없이 살인적인 초과에 시달린다.
과로자살의 원인은 업무적인 요인 외에도 개인 요인, 경제 요인, 제도 요인, 사회문화 요인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장시간 노동, 과도한 업무, 병영적 조직문화, 직장내 괴롭힘, 억압적 노무관리, 가족 문제, 생활고까지 다양하고 복합적인 원인들이 맞물린 비극이다. 한 사람이 목숨을 포기한다는 결정까지 수많은 복잡성을 고려하면 자살의 원인을 하나로 단정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특정 작업장에서 자살이 반복된다면, 공통의 구조적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러한 가설에 기초해 자살이 반복적으로 발생한 작업장을 분석한다면, 죽음을 야기하는 구조적 위험의 공통 요인을 추적할 수 있을 것이다.
우연이 반복되면 필연이라고 하지 않던가. IT개발자, 드라마 PD, 대기업 연구원, 로펌 변호사, 지하철 기관사, 우편 집배원, 현장실습생, 은행원, 증권맨, 제약 영업사원, 대학교 교직원, 지자체 공무원, 서비스센터 기사, 항공사 승무원, 대기업 협력업체 직원 등 반복된 자살 그 자체가 과로사회의 구조적 위험을 드러내야 하는 이유다.
어떠한 시간 구조에 발을 딛고 있느냐에 따라 삶의 결은 달라진다. 시간 구조는 나를 구성하는 생각, 관계, 감정, 현재와 미래, 사랑, 행복, 꿈, 희망까지 모든 것을 모양 짓는 핵심 변인이다. 시간 구조가 어떻게 조직되고 구성되느냐에 따라 삶의 결은 물론 사회의 질까지 달라진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장시간 노동은 우리네 삶을 ‘쪼그라들게’ 만드는 폭력 그 자체다.
새로운 현상으로서의 과로자살
우리가 과로자살을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는 과로자살이 신자유주의 시대의 새로운 현상이기 때문이다. 물론 노동자들의 업무에 기인한 자살은 있어 왔다. 그렇지만 과로자살 현상은 90년대 중반 이후 30~40여분 마다 1명 꼴로 자살하는 자살의 폭증이라는 맥락에서 진단하고 해결해야할 새로운 문제다. 이전의 과로자살과는 어떻게 다른지 유형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실적 압박이나 성과 평가 같은 개별화된 경쟁 장치가 극단적인 경우 자살까지 내몰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과로자살을 유발하는 새로운 위험 요인들을 포착해 제거해 나가는 작업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죽음의 스펙터클』을 쓴 프랑코 베라르디는 끊임없는 경쟁이 노동자들의 삶을 한없이 불안정하게 만들어 극단적인 경우 자살로 내몬다고 지적한다. 매일 같이 서로 간에 전쟁을 벌이도록 하는 경쟁 구조는 극도의 스트레스, 무기력·절망감 등 정서의 사막화, 모욕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그는 신자유주의적 경쟁 이데올로기가 폭력과 모욕을 ‘그럴싸하게’ 합리화하는 수단이라고 비판하고 이러한 곳에서는 자살이라는 죽음의 행렬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일갈한다.
'월 간 「일 터」 > [문화로 읽는 노동] 구)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동시간 에세이] “오늘 또 한명의 이주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 2017.10·11 (0) | 2017.11.17 |
---|---|
[노동시간 에세이] 처음 만난 일터에서 일 때문에 생을 마감한다,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자살 / 2017.9 (0) | 2017.09.28 |
[노동시간 에세이] 플랫폼 노동시대, 크로노토프는 누가 쓰는가 /2017.7 (0) | 2017.08.09 |
[노동시간 에세이] 야간노동, 교대제를 줄이려는 정책적 접근 /2017.6 (0) | 2017.07.17 |
[노동시간 에세이] 법정 노동시간을 무색케 하는 노동시간 특례제도 /2017.5 (0) | 2017.05.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