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1. 이 사회에서 “이주노동자”는 어떻게 존재하는가! /2017.6

이 사회에서 “이주노동자”는 어떻게 존재하는가!

 



재현 선전위원장



“가난하고 시컴한 사람”

“사장님 나빠요라는 한국말부터 배우는 사람”

“불법체류자” “연쇄살인범”

"한국인들이 하지 않으려는 더러운 일 하는 고마운 사람”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왔으니 고생해도 되는 사람”

 

우리와 아주 가까운 곳에 이주노동자가 있다

필자의 큰아버지를 비롯해 작은아버지 식구들까지 4가구가 시골에서 고추 비닐하우스 농사를 짓는다. 2년 전쯤 명절에 갔을 때 낯선 이주노동자 부부가 있었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베트남과 태국에서 온 노동자들이었다.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주노동자들은 이 집안에서 “말하는 소(牛)”였다. 

왜냐? 일이 힘들어도 이주노동자들은 대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 할머니, 아줌마 일꾼들은 꼭 퇴근 10분 전에 꼭 장갑을 벗고, 새참이 시원찮다고 핀잔주고 커피를 마신다며 꾀부리는데 이주노동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해가 질 때까지 일해도 군말이 없었다. 월급은 간단하게 100만 원이었다. 

컨테이너에 방을 주면서 숙박비는 떼었다. 그래도 쌀은 실컷 준다면서 이 동네에서 그나마 양심이 있는 주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명절 시골에 갈 때면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어쩌다 이주노동자들과 눈이 마주칠 때면 그 찰나의 눈빛에 많은 감정이 교차했다.

 

죽어야만 세상에 드러나는 이주노동자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국내 체류 비전문 취업 및 방문 취업자 이주노동자는 51만 명. 비자 만료 시한을 넘긴 미등록 이주노동자까지 다 하면 약 80만 명이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나 많은 노동자는 중소 영세 사업장, 농축산업, 서비스업 등에서 일하며 한국 사회를 지탱하고 있다. 더는 집안 고추 비닐하우스는 이주노동자들 없이 돌아가지 못한다. 그런데도 이주노동자들은 노예와 다를 바 없이 살아간다. 살아있을 땐 투명인간 취급받다가 산업재해로 죽어야 세상에 드러난다.

 

지난 대선 때 잠시 주목을 받았지만, 선거는 끝났다

지난 대통령 선거기간 대통령 후보도 이러한 실태에 대해 인식은 하고 있었다. 특히 대통령이 된 문재인 후보와 진보정당 심상정 후보는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변경했다는 이유로 비자 연장과 갱신 신청이 제한되거나 거부되는 고용허가제 법률을 개정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일터에서 다루는 근로기준법 63조는 폐지하고 근로기준법에서 보장하는 노동시간, 일일 휴식시간, 유급 주휴일 등에 대한 권리에서 이주노동자가 배제되지 않도록 확대 적용하겠다고 약속했다.

심상정 후보는 한 발 더 나가서 노동영주권 제도를 도입하여 이주노동자들이 숙련도와 관계없이 일정 기간 혹은 법이 정한 최소 요건을 충족하면 영주권을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선거는 끝났고 과연 새 정부는 약속을 지킬 것인가가 남아있다.

 

이주노동자와 어깨를 걸자

노예제와 같은 고용허가제, 온종일 허리 한번 펴지 못하게 하는 근로기준법 63조, 단기간 이주노동자를 착취하는 계절 이주노동자 제도, 불법체류자를 방지하기 위해 이주노동자에게만 출국 후에 퇴직금을 지급하는 제도 노동조합 인정받는데 만 10여 년 등등. 오늘날 우리 곁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설명하는 것들이다. 만일 내국인 노동자의 일상이 이러한 제도들로 구속받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과연 이것이 정상적인 사회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기 위해 이주노동자와 어깨 걸고 억압과 차별의 굴레를 함께 벗어던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