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다 죽고 다치는 것은 기업의 책임
최민 상임활동가
안전한 일터, 노동자만 서약하면 되나요?
2016년 말, 안전보건공단에서 발행한 ‘이륜차 안전배달 가이드’ 소책자를 받았다. 2013~2015년 음식업종 사망자 125명 중 80%에 해당하는 99명이 이륜차 이용 배달 중 사망자였던 만큼, 이륜차 안전배달은 고용노동부나 안전보건공단 서비스 산재예방 부문에서 관심을 많이 쏟는 분야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소책자를 펼쳐보았으나 ‘이륜차 안전운행 실천을 위한 서약서’의 내용은 역시 실망스러웠다.
사업주와 노동자가 함께 ‘서약’한다는 수칙에는 ▲복장을 단정히 하고 헬멧, 무릎보호대 등 보호 장비를 착용한다. ▲과속, 난폭운전, 신호위반 등 불법운행을 하지 않는다. ▲운행 중 흡연, 휴대전화 통화 등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가 전부였다.과속과 난폭 운전을 할 수밖에 없는 건당 수수료나낮은 임금을 개선하고, 30분/40분 배달제를 없애겠다는 사업주의 ‘서약’은 찾아볼 수 없었다. 사고없는 안전한 일터는 온전히 노동자 개개인의 책임이 되었다. 일터에서 발생하는 사고와 사망을 기업의 책임이 아닌 다친 노동자의 책임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다른 접근은 가능하다
하지만, 산업재해·사망재해를 보는 다른 시각은 가능하다. 2016년 아주 인상 깊었던 기사 중 하나는 1년에 40건ㄱ 발생하는 사망재해 수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들어 ‘단 한 명도 일하다 죽어서는 안 된다.’며장기적인 시각에서 자국의 노동환경 개선 전략을 발표한 스웨덴 정부에 대한 소식이었다.(송지원, 스웨덴 정부의 근로환경 개선전략, 국제노동브리프, 2016년 6월호, 77쪽. 한국노동연구원) 1년에 2천여 명이 일하다 죽는 한국에 비해 아주 적은 사망재해 숫자도 놀라웠고 (스웨덴 인구는 950만 명 정도로 한국의 1/5~1/6 수준이다.) 이에 대한 대책이 분명하게 기업의 책임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도 우리와 달랐다. 교육, 안전문화 확산 등 모호하고 노동자들의책임을 강조하는 접근 대신 스웨덴 정부는, 근무 중 발생한 사고와 질병에 대한 신고와 등록 체계를 정비하고, 3년간에 걸쳐 스웨덴 기업들의 근로환경법 위반에 대한 점검 및 조사를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미 줄일 만큼 많이 줄였다고 생각되는 사망사고 숫자임에도, 이를 더 줄이기 위해 제일 먼저 내놓은 대책은 사고와 질병을 더 많이 드러내게 하고, 이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묻는 것이었다. 산재 신고 대상을 축소시켜 사실상 산재 은폐를 조장하는 한국 정부의 태도와 사뭇 다르다.
일본, 과로기업 공표
2016년 연말에, 일본 최대 광고회사 신입사원이 과로로 자살한 사건이 ‘과로사’로 인정되었다는 보도 후, 일본 정부의 여러 대책이 한국 사회에서도 화제가 됐다. 사건 이후 관심을 끌었던 일본 정부의 대책 중 하나는 월간 80시간 이상의 초과 근무를 시키는 기업 혹은 두 군데 이상의 지역에서 과로사나 과로 자살이 확인된 기업의 이름을 공표하는 것이다.
산업재해 다발 사업장 이름을 공표하는 것처럼 과도한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거나, 그 결과로 과로사나 과로 자살이 발생한 경우도 블랙 기업으로 기업 이름을 공개하고 사회적으로 압력을 가하겠다는 것이다.
역시 과로사, 과로자살 문제가 명확하게 기업의 책임이며, 기업의 변화를 통해서만 이를 줄일 수 있다는 철학의 반영이라고 생각한다. 개별 노동자들의 일중독이니, 늘어난 경제적 필요와 같은 얘기를 중심에 두고 대안을 논의하는 것과는 다른 접근이다.
기업의 책임을 묻는다는 것
기업의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단순히 더 강한 처벌, 형사적 처벌을 하자는 주장이 전부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고 이것이 사고의 재발을 방지하는 예방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기업의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겉핥기식 사고분석 대신 사고의 본질적인 이유를 밝히는 것, 그리고 이런 사고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노력까지 포함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사망사고 등 중대한 재해는 기본적으로 기업의 안전기준 및 규칙의 문제이며, 생산과정 전반에 걸친 의사 결정 과정에서 다양하게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에, 경영 전반의 수준에서 책임을 묻고, 그런 수준에서 이후 대책을 내놓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나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등 구체적인 정책, 입법 방안은 이미 수년 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었고, 여러 차례 국회에서 진지하게 검토/ 토론되기도 했다.
그러니 이번 대선에서 주목할 부분은 ‘우리가 당하고 있는 산업재해를, 일터에서의 사망 사고를 어떻게 보고 있고, 누구의 책임이라 생각하는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아닐까 한다. 기업들이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자신의 노동자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하도록 하는 기본적인 책임을 방기하는 현재의 상황을 계속해서 묵인할 것인가! 대선 주자들 뿐 아니라, 벚꽃 대선 정국을 만들어낸 우리 자신이 대답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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