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하는 노동자 잡는 손배가압류에 우리 함께 손잡고 희망을!
- 손배가압류를잡자! 손에손을잡고! ‘손잡고’ 윤지선 활동가 인터뷰
나래 상임활동가
227, 225, 195, 159, 13…등. 무슨 숫자일까? 로또 번호일까? 뒤에 '억'을 붙여보자. 227억, 225억,195억, 159억, 13억 등 듣기만 해도 '억'소리 나는 금액이다. 철도노조, 현대차울산비정규직지회, MBC노동조합, 쌍용자동차지부, 유성기업지회 등 투쟁하는 노조에 사측이 청구한 손해배상 금액이다. 여기에 가압류까지 더해지면 금액은 더 어마어마해진다. 2016년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의 손배소 총액은 1600억 원, 가압류 금액은 175억 원에 달한다.
손배가압류로 인한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손배가압류로 인한 노동자들의 고통과 죽음을 막고, 진정한 노동권 회복을 위해 2014년 2월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가 설립됐다. 지난 3월 21일, 올해 3주년을 맞이한 손잡고의 윤지선 활동가를 만났다.
'손잡고'의 탄생, 공감과 참여가 만들어낸 기적
손잡고는 노동자 손배가압류 문제 때문에 만들어졌어요. 2013년 11월 쌍용자동차 47억 판결이 나왔고,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고공농성을 200일 넘게 하고 있었죠. 마침 사회적으로 손해배상가압류 문제에 관심이 모였어요. 그 직전 12년 2월 한진중공업 최강서 열사가 박근혜 당선 이틀 후에 목숨을 달리하셨는데, 그때도 158억이라는 손배소 언급을 했어요. 이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겠다는 시민사회, 전문가, 학계가 모여 제도적으로 바꿔보자고 한 게 손잡고의 시작이었어요. 마침 시민들이 4만7천 원씩 모아 보내는 노란봉투 캠페인을 시작해서 불과 한 달 사이에 10억이 모였어요. 기적 같은 일이었죠."
현재 상임대표 배춘환 님이 노란봉투 캠페인의 첫 번째 발송자였다. 당시 셋째를 임신했던 상황. 내 아이가 태어나면 노동자가 될 테고, 나도 노동자고, 남편도 노동자인데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의 아이들이 학원비도 내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첫째 아이 태권도 학원비였던 4만7천 원과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가 불씨가 되었다. 시민도 자신이 노동자라는 걸 알아가면서 손잡고가 탄생할 수 있었다고 윤지선 활동가는 힘주어 말했다.
"손배압류 사업장만 20여 곳이 되는데, 만나다 보면 계속 사건이 빵빵 터져요. 그러다 보면 힘들 틈이 없고, 분노가 차올라요. 먼저 시작한 사업이 생계의료비지원이었는데 최소한의 서류와 신청서류를 받아보니 손배가압류로 고통 받는 분들의 제각각 사연이 있어요. 내가 어떤 고통을 받고, 내가 왜 지금 힘들고, 나한테 어떤 빚이 있고, 회사가 나한테 무슨 짓을 했고…. 이런 내용이 쭉 있는데, 한마디로 정리하면 '대체 나한테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다'거든요."
헌법에는 노동 3권이 명시돼 있다. 하지만 노동조합을 만들고,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주장한 일이 '불법'이 됐다. 평생 벌어볼 수도, 만져볼 수도 없는 천문학적인 돈을 내라고 판결하는 상황. 노동자들은 억울함, 분노, 좌절을 겪는다고 한다.
당당한 노동자이고 싶던 피해자들
"어느 부분에 지원이 필요하냐, 이 돈을 어떻게 사용하고 싶냐는 질문에 '쌀값 곱하기 12달'을 써놓은 거예요. 쌀값, 그게 너무……. 그 정도까지라고는 생각 안 하니깐. 그리고 처음 수요조사를 했을 때 적어도 500가구는 넘을 거라 생각했는데, 신청서 접수된 게 139가구였어요. 지원대상자 발굴 기간에 한 달 통신비가 20만 원 가까이 나왔어요. 일반 전화로 하면 절대 전화를 안 받는 분들이 많은 거예요. 독촉 전화일 거라고 생각해서 그랬던 거죠. 문자라도 남겨야 통화가 겨우 됐고요."
실제 손배가압류 문제가 노조 안에서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 노동자 개인이 이 사건과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확인해야겠단 생각을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직접 피해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지원금 받기를 꺼려했던 분들에게 '이 기금을 받는 것은 더 당당히 싸우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라고 설득했단다.
"아까 얘기한 것처럼 상황이 너무 억울하고, '이건 사회가 잘못된 건데'라는 생각 때문에 피해자로 규정되고 싶지 않은 거예요. 왜냐면 정당히 싸웠으니깐. 나는 피해자가 아니라 당당해야하는데, 이걸 신청하고 기금을 받으면 피해자가 되니깐. 다른 한편으로 나는 당장 죽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본인보다 힘든 사람이 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신청도 안 하고 양보하신 분들이 계셨어요. 그때부터 저희가 현장을 가기 시작했죠."
삶이 망가지는 손배가압류 문제
손잡고는 설립 초기 모금액으로 생계의료지원 배분 사업을 시작하며, 법제도개선위원회, 노동현장 간담회, 노동법 관련 모의법정 경연대회, 연극제 등 활동 영역을 넓혀나갔다.
"생계의료비지원을 두 번 할 수 있을까의 고민은 있어요. 노란봉투캠페인 시즌2를 하려고 준비 중이예요. 벌써 2년이 지났거든요. 그런데 손배가압류 상황은 더 나빠지기만 하고, 제대로 해결된 사업장이 없어요. 기금 받은 사업장 중 노조가 완전히 무너지거나, 회사 강요에 못 이겨 합의를 하지 않으면 거기서 벗어나기 힘든 거예요. 승소해서 이긴 곳은 상신브레이크밖에 없어요. 이렇게 상황이 심각해지니깐 지원을 하지 않으면 버티기가 정말 너무너무 어렵겠단 생각을 한거죠."
윤지선 활동가는 피해 노동조합에 '합의를 하지 말라'고 얘기하기 어려운 현실을 털어놓았다. 천문학적인 손배가압류 금액의 압박, 인지대법률 비용에 대한 부담감, 길고 지루한 법정 다툼, 사측의 탄압과 회유. 피해노동자를 버티지 못하게 하는 환경과 조건은 수없이 많다.
"피해노동자분들 인터뷰를 하다보면 공통적으로 나오는 얘기가 이거예요. 자기는 살면서 주차위반 한 번 해본 적이 없는데, 노조 활동하고 나서 전과자가 됐대요. 도로교통법위반부터 업무방해, 얘기도 들어본 적 없는 죄명으로요. 그렇게 전과자가 되더니 어느 날은 몇 백 억 빚쟁이가 됐다는거예요. '내가 뭘 잘못했지?'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런데 법원에서 노동자가 잘못했다고 판결을 내려요. 이 분들은 살면서 제일 정의로운 게 '법'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정의롭다고 생각한 것에서 내버려졌다고 생각해요. '내버려졌다'는 표현을 하세요. 그러면 살아가기에 정의로운 사회가 아닌 거예요."
손배가압류 피해노동자들은 단순히 생계문제만 겪지 않는다고 했다. 사회적 관계도 파괴되고 투쟁과정에서 폭력을 당한 이들의 경우 트라우마로 남아 본인이 폭력적으로 변하는 것에 스스로 괴로워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금지원 뿐만 아니라, 심리적 치료와 지원이 시급함을 강조했다.
"이분들이 버틸 수 있으려면 생계비 지원도 필요하지만 억울함을 조금이라도 해소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봐요. 치유 관련된 지원이나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쌍용자동차투쟁을 계기로 만들어진 '와락치유단'이나, 유성의 '두레공감' 같은 곳이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노란봉투법 입법청원운동에 함께 해주세요
활동을 시작한 지 3년 동안 손잡고. 윤지선 활동가가 다녀본 많은 현장 중 가장 기억에 남는곳이 있느냐고 물어봤다. 윤지선 활동가의 답을 듣자마자 이 질문이 우문(愚問)이었음을 깨달았다.
"다 기억에 남아요. 어느 하나 기억에 안 남을 수 없어요. 정부가 노동탄압을 집중적으로 하던 시기가 이명박 때였는데, 그 시기에 대다수 사업장들이 탄압을 받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모든 사안이 다 알려질 수 없고 더구나 주요 언론사에서는 노동 사안을 잘 다루지 않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잘 몰라요. 사람이 죽어야 알죠. 누가 특별하다가 아니라, 저마다 사연이 기구해요. 다 말도 안 되고요."
윤지선 활동가는 손배가압류를 '악마의 제도'라고 표현했다. 스스로 권리를 포기하게 만들고, 경제적 활동과 사회적 관계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결국 노동자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게 된다.
손잡고를 통해 꿋꿋이 손배가압류 피해 노동자들과 함께 해온 윤지선 활동가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물었다.
"지금 노란봉투법 입법청원운동을 하고 있어요. 이 법의 취지는 노동3권에 따른 쟁의행위에 대해서는 손해배상 청구 제한하고, 개인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을 금지하고, 천문학적 규모의 손해배상을 제한하는 법이에요. 19대 국회에서 입법이 좌절되면서 2015년 이후에 새롭게 손배 청구된 사업장들이나 혹은 이미 손배 판결이 나버린 사업장들, 이런 사업장들이 너무 가슴 아픈 거예요. 그땐 환경노동위원회 과반을 차지했던 새누리당이 격렬하게 반대했거든요.
손해를 입혔으면 갚아야 한다는 민사법의 가치를 국회의원들이 주장하더라고요. 지나간 일이지만 그때 좀 더 노력했더라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요. 20대 국회에서는 일찍 준비해서 발의했는데, 논의안건에 못 올랐어요. 정치권을 실제 움직이게 하는 힘은 시민과 노동자들에게 나오기 때문에 6월 국회 전까지 입법청원운동을 계속할 거예요. 그러니 입법청원 운동에 함께해주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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