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5. 문송면·원진 산재사망 30주기 추모위 발족하다 / 2018.06

문송면·원진 산재사망 30주기 추모위 발족하다

[문송면·원진레이온 직업병 30년 무엇이 달라졌나]

이진우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부장) 


19876월 항쟁 이후 대통령직선제 등 민주화를 일부 쟁취한 1988년의 여름. 고도성장과 서울올림픽에 대한 기대로 전국이 들썩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참혹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있었다. 그해 72일 수은중독으로 15세 노동자 문송면이 사망했고, 원진레이온 섬유 공장에서 집단직업병도 발병했다. 숨길 수 없는 한국 노동안전보건의 민낯이었다. 

1987년 말 중학교 졸업을 앞둔 문송면은 집안 형편을 생각해 낮에 일하고 밤에는 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말에 끌려 현장실습 명목으로 온도계·압력계 제조 공장(서울 양평동 소재)에 들어갔다. 낮에는 온도계에 수은을 주입하는 일을 하고, 밤에는 공장 기숙사에 배정받지 못해 수은이 널린 공장에서 자면서 온종일 수은에 노출된 것이다. 입사한 지 2달 만에 두통과 전신 통증, 불면증, 피가 날 때까지 긁을 정도로 심한 피부 가려움, 14kg의 체중감소, 잦은 구토에 시달렸다. 

결국, 2월 초 문송면은 휴직계를 내고 고향으로 돌아와 병명도 알지 못한 채 여러 병원을 전전했고, 굿까지 했지만 낫지 않았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3월에 찾아간 서울대병원에서 직업병을 의심하는 의사를 만났고, 수은·유기용제 중독으로 진단받았다. 회사는 시골에서 농약 중독이돼 아픈 것이라며 인정하지 않았다. 노동부는 "사업주 날인이 없다" "서울대 병원은 산재지정 병원이 아니다"라며 산재신청 접수 자체를 거부했다. 

1988511일 자 <동아일보>에 기사가 실리면서 노동부는 역학조사를 진행했고, 결과는 수은중독이었다. 6월에 겨우 산재 승인을 받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하고 말았다. 노동운동가와 진보적 보건의료인들은 '()문송면 산업재해노동자 장례위원회'를 결성하고 16일간 장례투쟁을 진행한다. 장례투쟁은 산재직업병 문제의 심각성을 세상에 알렸고 본격적인 직업병투쟁의 시발점이 되었다. 이 소식을 듣게 된 원진레이온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이 "우리도 직업병 피해자"라며 직업병 인정을 요구하는 투쟁에 나서게 된 것이다. 

원진레이온(경기도 구리시 소재)은 펄프에 이황화탄소, 황화수소, 황산 등을 써서 인견사(레이온)를 만드는 곳으로 종사자 1500여 명 규모의 중견기업이었다. 하지만, 노동자들을 보호할 보호구나 안전설비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고, 수많은 노동자가 이황화탄소에 중독되어 전신 마비, 언어 장애, 팔다리 마비 등의 병을 얻었다. <한겨레> 보도로 이들의 비참한 현실이 드러났고 노동자들은 시민사회단체, 전문가들은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직업병 인정 투쟁을 시작했다. 노동부와 원진레이온 회사는 직업병 사태를 축소하는 데 급급했다. 

대책위원회는 원진 노동자 고 김봉환의 장례를 137일간 치루지 못한 채 투쟁했고 1991년에야 비로소 이황화탄소 중독에 대한 업무상 재해 인정기준이 만들어졌다. 1993년에야 투쟁이 일단락되었지만 이황화탄소 중독 직업병으로 인정된 915명 중 현재까지 230명이 사망했다. 공장폐업과정에서 치료와 보상 그리고 자활사업을 위해 원진직업병관리재단이 설립되었다. 

문송면·원진레이온 직업병 인정 투쟁은 87년 이후 폭발한 민주노조 성장 속에 시작된 진정한 의미의 노동안전보건운동이었다. 이후 현장 변화와 제도 개선 등 발전을 거듭해왔지만, 1988년의 문송면과 원진레이온이 이름과 대상을 달리한 채 30년이 지난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현장실습이라는 명목으로 엘지유플러스 고객센터에서 '콜수'를 채워야 했던 여고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제주도의 한 고교 실습생은 프레스에 끼여 사망했다. 외주 업체 소속으로 스크린도어를 혼자서 수리하던 '김군'은 문과 열차 사이에 끼여 사망했다. 문송면과 같은 청소년·청년 노동자들의 죽음이 30년이 지난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자취를 감춘 메탄올 중독이 2016년 삼성과 LG 핸드폰 부품 하청공장에서 발생해 7명의 불법 파견노동자가 실명했다. 

이제는 사례조차 찾기 힘든 수은중독이 2015년 광주 남영전구 공장 철거 과정에서 하청노동자 20여 명에게 집단 발생했다. 삼성 직업병 산재사망 노동자는 11년간 118명에 달하고, 해결을 요구하는 반올림의 농성투쟁은 이제 곧 1000(201872)에 다다르고 있다. 

정권이 바뀌고 여러 노동안전보건 대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청소년 노동자의 건강권, 취급하는 물질에 대한 노동자의 알 권리, 치료받을 권리 등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할 권리는 여전히 답보상태다. 

문송면·원진노동자 산재사망 30주기를 맞아 노동안전보건 문제를 다시 사회적 의제로 전면화하고자 범사회적인 추모조직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산재사망자에 대한 추모를 넘어, 노동자와 시민이 안전한 세상을 만들고자 한다. 지난 516일 추모위 발족을 시작으로, 6월에는 추모위원을 전국적으로 모집하고, 사업을 홍보할 계획이다. 71일에는 문송면·원진노동자 산재사망 30주기 합동추모제, 2일에는 노동자·시민 안전보건의 달 선포 기자회견, 7일에는 서울에서 추모식과 추모문화제를 진행할 계획이다. 7월 첫 번째주는 사진전, 두 번째 주는 노동자건강권 전국 순회 뮤지컬 공연, 세 번째 주는 노동안전보건운동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과제에 대한 제 대토론회를 준비하고 있다. 이후 내년까지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 조형물 및 동판 건립을 할 계획이다.


1988년으로부터 30년이 흐른 2018년에도 여전한 산업재해와 산재사망 문제에 경종을 울리자. 일하다 다치거나 병들거나 죽지 않는 사회, 노동자와 시민이 안전한 사회를 30주기를 디딤돌로 함께 만들어 나가자. 문송면·원진노동자 산재사망 30주기 사업에 많은 연대와 관심을 기대한다.

특집4. 청소년 노동자의 건강권은 어떠한가 / 2018.06

청소년 노동자의 건강권은 어떠한가

[문송면·원진레이온 직업병 30년 무엇이 달라졌나] 부산지역 10대 청소년 노동자 인터뷰

이숙견 (한노보연 상임활동가)

 

올해는 15세 문송면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한 지 30년이 되는 해입니다. 2018년 문송면처럼 노동을 하고 있는 청소년 노동자들의 현실을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청소년 노동자들은 어떠한 노동을 하는지, 어떤 문제와 고민에 직면해 있는지 지난 531일 인터뷰를 통해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올해 만 17세이고,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청소년과 관련한 활동을 하는 청소년 인권운동가입니다." 

지금까지 어떤 일을 했었나요? 

"여러 일을 했어요. 14세 때에는 전단지를 주로 했었고, 그 이후에는 편의점 일을 많이 했었어요. 그 사이에 찜질방 일도 했었고요. 기간은 편의점은 2년 정도, 찜질방은 2개월, 전단지는 6개월 정도 했습니다. 단기 알바로 하루 동안 떡 공장에서도 일했어요." 

일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독립된 저만의 비상금을 어릴 때부터 모아두고 싶었던 이유가 있었고요, 나중에 탈 가정 이후 생활비를 벌어야 했기 때문에 일을 시작했어요. 사람이 숨만 쉬어도 돈이 들잖아요. 최근까지는 활동하면서 드는 비용 때문에 알바를 했었어요. 지금은 안 하고 있습니다." 

일할 때 어떤 하루를 보냈나요? 

"찜질방에서 했던 일을 말씀드리면 저녁 8시에 출근해서 다음날 아침 8시에 퇴근했어요. 야간 12시간 근무가 기본이었는데 주간 작업자랑 교대를 원래 근무시간 30분 전에 하고 퇴근을 30분 늦게 했어요. 일찍 오지 않으면 눈치를 줬어요. 저는 주로 카운터를 보느라 금액 정산하고, 손님들에게 입장권 끊어 주는 일을 했어요. 일이 고되기 보다는 밤새 계속 깨어있어야 하고, 불편한 의자에 12시간 내내 앉아 있을 때 힘들었어요. 게다가 8월 한여름에 일했는데 카운터라 에어컨 없이 일했어요. 아르바이트에게 맡기면 안 되는 일도 시켜서 여러 개 찜질방에 들어가서 온도 조절하는 일은 했는데 그때마다 약품이 이상해서 그런지 냄새도 많이 나고 오래 들어가 있으면 머리가 아팠어요." 

그밖에 월급이나 휴일 등 노동조건은 어땠나요? 

"찜질방은 주말개념이 없기 때문에 한 달에 휴일이 이틀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일해도 월급은 겨우 120만 원을 받았고요. 그때가 2015년인데 최저임금에도 모자랐고, 상시 5인 이상 사업장이었는데도 야간수당, 주휴수당은 당연히 없었어요. 상여금도 없었고 근로계약서 작성하자고 3번 이상 말했는데 결국 안 써줬어요. 한 달은 하루 12시간씩 밤에 일했는데 낮에는 인권단체 활동을 하느라 잘 못 쉬었어요. 평소에 일할 때도 4시간 동안 쉬는 시간이 없었어요. 저녁도 알바비로 알아서 먹었어요. 이렇게 두 달 정도 하고 그만뒀어요." 

일하면서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요? 

"다들 이러한 노동환경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는 게 충격적이었어요. 찜질방 일도 만 18세 이상만 할 수 있어서 다른 사람 명의를 빌려서 했었거든요. 사장님들도 다 알아서 자기들이 불법을 저질러도 신고 못 한다는 걸 알아요. 편의점에서 일했을 때는 점주가 직고용을 안 하고 직영 노동자가 무슨 일 생기면 땜방으로 부르는 거예요. 한 달에 3~4번 정도 그렇게 2년을 했으니까 사실상 단기도 아니고 고용된 장기 알바라고 보는 게 맞죠. 제가 20살이었으면 고용을 했을 텐데 청소년이라 고용시장에서 배제되는 거예요. 이렇게 청소년들이 배제되니까 편의점뿐만 아니라 알바 구직 사이트에서 청소년 알바를 검색해보면 대부분 사람이 기피하는 일자리 (제일 싸고, 제일 부려먹을 수 있는 곳)만 있어요." 

믿을 수 없었던 노동환경도 있었나요? 

"떡 공장에서 단기 알바로 일을 한 적이 있었는데 정말 떡 사먹지 마세요. 위생적이지 못해서 구정물같은 데 떡을 씻고 정말 더러웠어요. 대부분 알바생들이 처음 여기를 오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무슨 일인지 전혀 모르고 오는 거죠." 

일하면서 가장 어렵다고 생각했던 점이 있었나요? 

"제 이름으로 안정된 고용 계약을 할 수 없었던 점이 제일 어려웠어요. 옛날에는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서 부모동의라는 제도를 뒀다고 생각하지만, 이제는 족쇄로 작용한다고 생각해요. 여러 집안 문제로 탈가정, 탈학교를 했는데 '부모님 동의서''학교장 동의서'를 받아야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 너무 이상하고 불필요한 점이 많아요. 이렇게 되니까 일을 못 하게 막는 게 아니라 청소년들이 안전하지 못한 위험한 현장으로 내몰린다고 생각해요. 문제가 생기거나 불이익당했을 때 신고를 할 수 없는 사각지대에 있거든요."

 반대로 일하면서 가장 즐거웠던 기억이 있나요? 

"(단호하게) 없었던 거 같아요. 그나마 좋았던 기억은 편의점에서 유통기한 지나서 폐기해야 하는 밥먹었을 때? 근데 그것도 먹을 수 있는 게 그날 그날 다르거나 아예 없는 날도 있어서 그럴 때는 굶었어요." 

일하다 다치거나 아픈 적도 있었는지요. 그럴 때 대처는 어떻게 했나요? 

"아픈 경우엔 사장님한테 자기 관리를 못 한다는 이야기만 들었던 거 같아요. 아플 때도 당연히 일했어요. 한 번도 도움을 줬다거나 그런 적은 없어요." 

요즘 특성화고 현장실습생들이 일하다 사망하거나 자살하는 일이 많이 벌어지는데 알고 있나요?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건 그분이 정말 죽는 거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거잖아요. 제대로 된 노동/안전교육도 한번 못 받고 숙련도가 낮고 어리다는 이유로 얼마나 많이 혼나고 그랬겠어요. 게다가 학교에서는 아무리 일이 힘들다고 해도 못 그만두게 하잖아요. 저는 그게 가장 문제라고 생각해요. 너희가 이렇게 무책임하게 그만두면 내년부터 이 회사로 후배들 실습 못 보낸다 그런 말을 들을 때요." 

그렇다면 이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하기 위해 어떤 대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해결하려면? 간단하죠. 업체 관리를 계속하는 거, 취업률을 중심으로 학교를 평가하지 못하도록 해야죠. 이런 문제 때문에 교사는 교사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스트레스를 받는 거잖아요. 그리고 노동법 교육이 과목으로 꼭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노동법 교육이 안 되니깐 별로 어렵지도 않은데 내가 어디에 연락해야 할지조차 막막해하거든요." 

1988년에 온도계에 수은을 주입하는 일을 하다 사망한 문송면이라는 노동자가 있었어요. 이분이 올해로 돌아가신 지 30년 되는 해라 민주노총을 비롯한 시민사회에서 집회, 문화제, 토론회 등 개최하고 있는데 30년 동안 계속해서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청소년 노동자 건강과 안전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떤 변화가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직고용과 고용 확대라고 생각해요. 노동하지 않아도 잘사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하는데 자본주의사회에서 어떻게 일을 하지 않고 잘 살겠어요? 청소년 복지가 잘 되어있지도 않고, 기본소득 제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다 고칠 수는 없으니깐 청소년의 노동시장 진출 확대가 필요하고, 청소년 노동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중요해요. 더불어 청소년이 많이 일하는 직종을 분석해서 감시할 필요가 있고요." 

얼마 전 전국특성화고졸업생 노동조합이 설립되었고, 청소년 유니온, 알바노조 등 청소년 노동자의 권익을 위한 여러 조직 등이 있는데요. 노동조합이나 이러한 조직체가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청소년노동의 노동환경과 건강을 위해선 해야 할 역할이 뭐가 있을까요? 

"노동법 교육 정말 중요하죠. 입시 과목에 노동법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알 거 같아요. 지금은 문제가 생겨도 어떻게 상담받을지 잘 모른다고 생각해요. 더불어 청소년만을 위한 전문적으로 다루는 상담단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청소년 노동 활동가들이 자발적이고 계속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다고 생각해요. 청소년 노동 활동가의 존재는 정말 중요한데 운동조직에서도 정규노동이 아닌 형태로 차별받거나 별로 신경을 안 쓰는 거 같아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글쎄요. '그만두고 나와도 괜찮다.'라는 말과 '우리 존재 파이팅'이요. 대부분 청소년은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청소년은 노동자라고 생각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이미 평일에 학교에 가고 주말에 알바하는 청소년이 많고 생계가 아니더라도 알바를 하는 경우도 많아요. 결국에 노동한다는 것은 나만의 경제적이고 독립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인데 그것을 모르는 거죠. 너무 극단적으로만 생각하는 거예요. 경험 아니면 생계중간이 없는 거예요. 비청소년들도 노동을 하는 이유가 여러 가지인거처럼 청소년도 노동 하는데 수많은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특집3. 2018년의 문송면을 만나다 - 1973년생 금속노동자 김현호 님 인터뷰 / 2018.06

2018년의 문송면을 만나다

[문송면·원진레이온 직업병 30년 무엇이 달라졌나] 1973년생 금속 노동자 김현호 님 인터뷰

 나래 (한노보연 상임활동가)


1973년생 15살 문송면. 그는 온도계 공장에서 일하다 2개월 만에 수은중독에 걸려 숨졌다. 가난했기 때문에 그 시절엔 고향을 떠나 서울로, 모두가 서울로 몰려들었다. 문송면도 그런 사연을 안고 고향인 충남 서산에서 혼자 서울까지 올라왔다. 

문송면은 병원을 전전한 지 한 달 만에 서울대병원에서 수은중독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노동부는 서울대병원이 산재지정병원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회사는 맹독성 물질인 수은에 관한 설명, 교육도 하지 않았다. 무방비 상태에 놓여있는 15세 청년 노동자를 밤낮으로 일만 시켰다. 이 사건은 많은 노동자, 시민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장례식 때는 영등포 로터리에서 수천 명의 시민이 운집한 가운데 노제를 치렀다. 노동자, 활동가, 의료인, 시민들이 일터를 안전하게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를 외쳤다. 그의 죽음은 원진레이온의 집단 이황화탄소 중독 사건을 알리고, 직업병 문제가 이슈화되는데 큰 발화점이 되었다. 

그의 죽음 이후에도 우리 사회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죽음을 견뎌왔다. 직업계고 현장실습생, 구의역 청년 노동자, 청년 드라마 PD, 메탄올 실명 사건, 반도체 노동자 직업병 문제 등 1973년과 2018년을 교차하는 노동자들의 아픔, 죽음 그리고 희망을 2018년의 문송면과 만나고 싶었다. 지난 525일 동네의 작은 카페에서 자동차 엔진부품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김현호 님을 만나 30년 전 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김현호 님은 1973년 문송면 님과 같은 해에 태어났다. 자동차 엔진 부품을 생산하는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신한발브에 다니며 노동조합에서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아버지 고향도 충남 서산이라고 했다. 만약 아버지가 서울로 올라오지 않았다면 본인도 충남에 살면서 우연이라도, 어쩌면 문송면을 만나지 않았을까라며 말을 이어나갔다. 

"문송면 님이 서울에 올라와 수은공장에 다니지 않았다면, 수은중독에 걸릴 회사가 아니었다면 만나지 않았을까요? 제가 일한 곳도 구로였어요. 지금 다니고 있는 신한발브에 입사해서 노동조합운동 할 때까지 살아계셨으면 벗으로, 동지로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요."

 30년 전 문송면 님이 일했던 온도계 공장은 액체 수은이 깔렸고, 수은증기가 가득했다. 노동자가 보호받지 못하는 열악한 환경에서 그는 직접 수은을 온도계에 주입했다. 결국 일을 시작한지 한 달 조금 지나 이상 증후가 나타났고 불면증, 발열, 두통 등에 시달렸다. 30년이 지난 지금 노동자들이 일하는 일터의 모습은 어떨까? 

"제가 다니는 신한발브라는 곳은 자동차 엔진 부품을 생산하는 공장입니다. 원재료를 절단해서 열로 가열하고, 프레스로 성형해서 성형된 원재료를 가공해 완제품을 만들어요. 그 과정에서 심각한 문제는 소음입니다. 소재 운반, 포장, 기계 장착할 때 중량물 취급도 많아요. 그래서 근골격계 질환도 많고, 오일미스트, 분진이 많이 날려서 심각한 피해를 입기도 해요. 설비가 비좁게 들어서 있어서 노동자들이 많이 부딪혀 찰과상, 좌상을 입는 경우도 많아요. 모든 재해 가능성을 품고 있는 곳이죠." 

18년 동안 일 한 본인 역시 작년에 어깨에 염좌가 생겨 치료를 받았다. 주변에 요양 중인 동료들도 있고, 요양까진 아니더라도 파스로, 물리치료로 버티는 이들이 많다. 2017년에만 현장에서 드러난 재해가 50건인데, 드러나지 않은 재해는 더욱 많다. 2014년도에는 경기도에서 재해율 2위를 차지했다. 회사는 특별근로감독을 받기도 했다.

[출처: 김현호]


김현호 님은 공장의 유해화학물질과 중량물 취급, 소음, 비좁은 공간 등도 문제지만 심야노동, 장시간 노동도 본인을 비롯 동료들을 신체적·심리적으로 고통스럽게 하는 주요 문제라고 지적했다. 

"공장은 주간·야간 맞교대로 돌아갑니다. 주간근무는 오전750분에 시작해서 오후530분까지 8시간 근무를 합니다. 2시간 잔업이 있는 날은 저녁730분까지, 4시간 잔업은 저녁930분에 끝나요. 야간근무는 밤 10시에 시작해서 다음날 새벽6시까지 8시간 근무를 합니다. 잔업이 있으면 오전 8시까지 일 하죠. 보통은 잔업이 있어요. 제가 알고 있기론 71년에 신한발브가 창립해서 지금까지 한 번도 바뀌지 않은 근무시간표예요."

 2013년 완성차 공장에서 주간연속 2교대제를 시행한 이후 자동차 부품회사들이 연속적으로 교대제 변경을 진행했다. 장시간 노동과 심야노동 단축에 대한 노동운동의 요구와 싸움이 있었기에일궈낸 결과였다. 하지만 완성차 1차 하청업체인 신한발브에 바로 적용되진 못했다. 만성피로, 소화불량이 일상인 조합원들에게 장시간노동, 심야노동 철폐는 간절한 염원이기도 하다.

 1969년 전태일 열사가 근로감독관에게 쓴 자필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오늘날 여러분께서 안정된 기반 위에서 경제번영을 이룬 것은 과연 어떤 층의 공로가 가장 컸다고 생각하십니까? 여기에는 숨은 희생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어린 자녀들은 하루 15시간의 고된 노동으로 경제발전의 밑거름이 돼 왔습니다." 전태일도, 1988년 문송면도, 2018년 김현호도, 장시간·심야노동은 노동자의 몸과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몬다. 

"인간을 표현하는 여러 단어가 대체로 맞겠지만, 절대 틀린 게 바로 하나 있습니다. 바로 '적응하는 인간'이라는 표현입니다. 제가 주야 맞교대를 18년 동안 일을 했지만 절대 적응할 수 없는, 몸이 적응하지 못하는, 심리적으로 적응하지 못하는 게 바로 심야노동이고 교대근무입니다." 

일터에서 다친 동료의 문제를 상담해주고 안전한 현장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활동하는 그에게도 노동안전보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중요한 계기가 있었다. 

"제가 2000년에 입사하고 얼마 안돼서 아내가 아이를 낳았어요. 현장에서 일하고 돌아와 샤워하고 방바닥에 잠깐 누웠다 일어났는데, 제가 일어났던 자리에서 아이가 쭉 미끄러져 뒤통수를 부딪 혔어요. 제 몸 자체가 오일미스트에 쌓여있었기 때문이죠. 그런 현장에서 일하고, 동료들이나 저 역시도 중량물 취급 작업 하면서 재해를 입게 되고, 이 재해를 산재로 받지 못하고 공상조차도 쉽지 않았죠. 동료들이 그렇게 다치는데도 회사의 반응은 '너가 잘못해서 다쳤잖아, 너가 다친걸 우린 이해할 수 없다'고 얘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노동안전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어요."

 아이의 넘어짐으로 김현호 님은 세상을 다르게, 좀 더 곧게 바라보게 됐다. 그런 그에게 1973년 동갑내기 문송면 님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문송면 님이 돌아가시고 10년 후쯤 제가 27~28세에 신한발브에 입사하고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습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문송면, 원진레이온 등 노동안전보건운동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살아남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문송면 님의 삶을 들여다볼수록 감회가 새롭습니다.

우리 사회 전체가 노동자의 안전, 사회 전체 안전에 대한 내용들을 깊고 넓게 바라보면서 인식을 확장해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이윤이 아니라 사람의 건강, 안전이 먼저 고민되고 우선시 되는 사회로 나아가야죠. 이 문제는 결코 우리 사회 지도층이나 자본에 맡길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일터에서 일하고, 아프고, 다치는 노동자가 직접,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하는 문제라고 봅니다. 몸으로, 물리적으로 함께 하고 있진 못하지만 우리가 함께 하고 있다는 생각, 그런 인사를 문송면 님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특집2. 노동안전보건 운동, 직업병 예방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 2018.06

노동안전보건 운동, 직업병 예방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문송면·원진레이온 직업병 30년 무엇이 달라졌나]

 아이구 (한노보연 상임활동가)


예방에 앞서 드러나지 않은 직업병을 찾아야 

일하다 노동자들이 다치고 병들며 죽는 현실은 노동존중의 실상을 보여준다. 인권 유린 생명경시 그 자체다. 노동자의 몸, 마음, 삶보다는 이윤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사회구성원들 특히 노동자들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해야 할 정부는 책임을 다하지 않아 왔다. 자본은 법 뒤에 숨거나 법 자체를 우롱해왔다. 법에 걸리더라도 돈으로 때우면 된다는 식이었다. 아래 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금속 및 중금속 중독, 유기화합물 중독, 기타 화학물질 중독으로 인한 사망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  2017년 산업재해 통계 중 질병사망자 현황 (안전보건공단 2017년 산업재해 통계 자료중 인용)


 2017년 정부 통계상 사고 사망자 수는 964명이고, 질병 사망자 수는 993명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사고사망자 수를 질병사망자 수의 14%로 추정한다. 대략 5890명이 직업병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는 여전히 재래형 사고로 인한 재해가 만연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턱없이 부족하고 부실한 업무상 재해 즉 직업병에 대한 인식과 대응 수준을 의미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직업성 암을 비롯한 희귀질환과 뇌심혈관계질환으로 인한 직업성 사망 재해가 심각하게 은폐되고 있는 현실 역시 놓쳐서는 안 된다. 직업성 질환 재해 역시 마찬가지다.

 

직업병 예방을 위한 과제 

산업재해와 직업병에 대한 인식, 제도, 체계, 행동의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노동자들이 병들고 다치고 죽는다. 당사자는 물론이고 가족의 삶까지 망가졌다. 참혹한 인권유린과 생명경시의 현실이 지속되어 온 이유는 명백하다. 제대로 바꾸지 않고 생색내기식의 대응을 반복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책임을 제대로 지지 않는다.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것도 규제의 대상으로 삼아서 경제력 강화에 장애가 되지 않는 선에서 해야 한다는 헛소리가 여전하다.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수를 임기 내 절반으로 줄이고, 재해율과 사고율을 낮추겠노라는 말뿐이다. 이 순간에도 노동자들은 다치고 병들고 죽는데 말이다. 

이윤보다 노동자의 몸과 삶을 중시하지 않는다면 안전제일이라는 구호는 거짓이다. 경제와 산업의 필요에 종속된 접근으로는 산업재해로 인한 사회적 경제적 손실을 막거나 줄일 수 없다. 소수의 전문가들에게 의존하기보다는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 각자에게도 스스로의 몸과 삶을 보다 건강하고 윤택하게 할 수 있는 구체적인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턱없이 부족한 보호 예방을 위한 예산과 인력의 문제에 대처해 나갈 수 있다. 또한 직업병을 일으키는 유해위험요인을 실질적으로 없애고 개선할 힘을 갖출 수 있다.

 정부의 책임을 노사자율에 떠넘기는 짓은 당장 멈추고 재해 발생 후 사후약방문식의 대응이 아니라 보호와 예방을 위해 책임을 다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조직의 획기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고용노동부에 기획재정부와 같은 위상의 권한과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 그것이다.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것을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실효성조차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 안전보건 관련 사적 시스템을 공적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 

산업재해와 직업병으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 첫걸음은 산업안전보건법을 제대로 만들고 지키는 것을 통해 직업병은 물론이고 산업재해에 대한 보호 예방의 의무를 정부와 사업주들이 다하는 것이다. 특히 유해위험요인이 더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떠넘겨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노동자 스스로도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해 안전 및 보건을 유지하고 증진해야 할 기준을 구체적으로 만들고, 이를 위해 필요한 쾌적한 작업환경에 대한 요구를 분명히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일상적이고 지속해서 사업장의 유해위험요인에 대한 실태를 파악·평가하여 관리·개선하는 권리 주체로 경험과 행동을 쌓아나가는 것에 애써야 한다.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의 경우 관행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검진, 측정, 점검, 근골조사, 위험성평가,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등 일상적인 안전보건 관련 활동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것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싶다. 



해당 사업장에 납품하는 회사의 노동자들이 처한 유해위험요인을 들여다보고 개선할 힘을 보태는 것도 의미 있는 시도다. 단위 사업장의 벽을 넘어 지역과 업종차원의 산업재해와 직업병에 대한 공동의 대응을 해보면 좋겠다. 산업재해와 직업병으로 위협받는 노동자들의 몸과 삶을 최우선시하고 제대로 지킬 경험과 힘을 키워나갔으면 좋겠다. 우선 산업안전보건법을 제대로 읽어보고, 자신과 현장의 노동을 제대로 보고 기록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노동안전보건 운동의 과제는 인식, 제도, 체계, 실천의 패러다임을 바꾸는데 나름의 역할을 하는 것이지 싶다. 그 과정에서 대행적인 활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어깨 걸고 또 다른 한 걸음을 내딛을 주체들을 만나서 머리를 맞대고 실천하며 힘을 키우는 것. 노동자들과 노동안전보건 활동 관련 주체들이 그 중심에 있다. 현실로 만들기 위한 꿈을 꾼다.

 

2015년의 경우, 암으로 사망한 76855명중 5% 내외가 직업성 암으로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한 대한의사협회의 의견을 반영하면 직업성 암 환자의 예상 수는 3500명에 이르지만, 직업성 암으로 인정받은 경우는 35명뿐이었다. 

뇌심질환으로 인한 사망역시 업무관련성 여부를 제대로 따지기 보다는 개인질환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절대적으로 많다는 현실 역시 주목해야 한다.

특집 1. 문송면과 원진 노동자 산재사망 30주기를 맞는 단상 / 2018.06

문송면과 원진 노동자 산재사망 30주기를 맞는 단상

[문송면·원진레이온 직업병 30년 무엇이 달라졌나] 과거와 현재의 만남과 헤어짐

김동수 (한노보연 회원, 직업환경의학전문의)

 

올해로 문송면과 원진 노동자들의 산재사망이 일어나고 사회화된 지 30년이 된다. 이 글은 한국의 노동자 직업병 문제를 대표하는 커다란 두 사건이 30년을 맞는 해에 어떤 부분이 해결되었고 어떤 부분이 문제로 있는지, 왜 그러한지에 대한 단상을 다소 논쟁적으로 기술한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은 그간의 30년을 연대기적으로 정리한 것도 과학적·체계적으로 분석한 글도 아니다. 

이 글은 30년이 주는 무거움을 나누고자 작성하기 보다는 필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떠오르는 단상들을 펼쳐놓은 글이다. 따라서 독자들께서 이 글 속에 등장하는 여러 사건과 수치들은 보기에 따라서 동의하기 힘든 부분도 있고, 숫자나 통계가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양해해주시기 바란다.


문송면, 원진레이온, 김봉환 장례투쟁과 한국 노동보건운동의 시작

 문송면은 1973년생이다. 충남 서산에서 태어난문송면은 중학교 3학년인 1987125일 서울의 협성계공에 입사한 후 2개월이 지난 198828일 병가를 내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후 고향의 의원들에서 원인을 못 찾고 39일 서울대에서 수은중독과 유기용제 중독의심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629일 성모병원으로 병원을 옮겨 치료를 받다가 72일 사망하였다. 사망할때 그의 나이는 15세였다. 또한, 1988년 원진 노동자들의 투쟁과 1991137일간의 김봉환 씨의 장례투쟁은 한국 노동보건 문제의 획을 그은 사건이었다.

1988년에 당시 나는 의과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1987년 군부독재 타도와 호헌철폐의 거대한 물결과 그해 여름을 달구었던 노동운동과 노동조합 조직화는 의과대학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의과대학의 경우 1980년대 초반부터 '민중의료'라는 고민이 있어서, 사회문제와 학내 문제에 대한 노력이 거부할 수 없는 대세였다. 

1988년 여름 문송면의 죽음을 직면한 젊은 예비의료인(의대, 치대, 약대, 간호대, 한의대)들은 어떠한 의료인이 될 것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에 자유로울 수 없었다. 문송면이 질병에 이르게 된 사회적 문제와 질병의 진단과정, 산재요양의 어려움 등의 첩첩한 문제들은 당시의 의료계에 매우 큰 고민과 직업적 진로에 대한 고민을 던져주었다. 이러한 동기를 가지고 배출된 의료계의 전문 인력은 이후 보건의료의 사회적 역할이라는 명제에 충실히 하고자 하는 운동과 흐름을 이루게 된다.

 

노동안전보건 문제, 30년 전과 현재 공통점과 차이점 

문송면의 질환을 진단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는 현재에도 비슷한 양상을 보여준다. 수은중독을 산재로 인정하는 과정은 매우 지난하였으며, 수은중독을 의심하는 의료진도 소수였으며 진단을 증명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현재의 시점에서 석면환자의 경우 과거에는 결핵으로 진단하여 결핵 치료를 받은 경우가 대다수였고, 본인들도 결핵으로 알고 가족과의 살가운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였던 이야기를 우리는 흔히 접할 수 있다. 호흡기내과 의사들 역시 석면폐를 미만성 간질성폐 질환(폐섬유화증)으로 진단하는 경우가 다반사고, 영상의학전문의들도 석면폐 판독을 쉽게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현상이 이렇게 유사하다고 하더라도, 과거와 현재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과거에 수은중독은 매우 희귀한 경우였고, 현재의 석면폐증 또한, 다른 질환에 비해 유병률과 발병률이 낮은 희귀한 질환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의료진들 관심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과거 중독을 밝히기 위해 생체시료를 분석할 수 있는 곳이 몇 곳밖에 없었다면, 현재는 전국의 많은 기관에서 분석할 수 있다.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보면 사회/의료계의 관심이 부족하다는 공통점을 가지면서, 기술적인 발전의 측면에서는 다른 면을 갖고 있다. 과거에 기술적 측면에서 유해물질의 측정과 분석의 어려움이 있었고, 이 때문에 전국의 소수 기관이나 외국에 분석을 보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면 현재에는 시장성의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2015년 말~2016년 초에 집단적으로 발견된 메탄올 중독의 경우, 이를 진단하기 위한 생체시료 분석은 한국에서 실시하는 기관이 거의 없으며 외국에 분석을 보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 이유는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시장성이 없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건강문제를 시장성의 문제로 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반성적 성찰이 필요하다. 

수은중독의 문제는 문송면 이후에도 여러 번 발생하였다. 2000년 경북 안동의 폐기물재생사업장의 3명의 노동자에서 집단 발생하였고, 2015년 광주 남영전구에서 형광램프제조시설 철거 작업을 했던 노동자에서 집단적으로 발생하였다. 이 문제들은 수은이라는 공통점 외에 차이점이 존재한다. 과거 문송면의 경우에는 전국의 거의 모든 작업장의 작업환경이 열악하였고 노동자들의 건강에 관한 의식이 낮았다면, 최근 수은중독의 문제는 소규모사업장과 하청노동자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제도 개선의 성과, 아직 남은 과제 

중금속, 유기용제 중독 등에 대한 제도적 진전은 여러 가지 경로로 이루어졌다. 과거 진폐를 중심으로 노동자 건강검진 제도가 발전해왔다면, 문송면의 사망과 원진레이온 중독을 시작으로 하여 중금속과 유기용제 등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산업재해추방 운동으로 표현되는 노동자 건강권 운동이 시작되었다. 대표적인 노동자들의 노력은 1995년경의 쇠사슬 투쟁이라고 일컬어지는 대우조선 노동자들의 집단유기용제중독 투쟁이었다.


[출처: 전국노동자연대] 


당시 노동자들은 조선소 노동자들에 대해 특수검진과 작업환경을 제대로 시행하고 임시건강 진단 시행을 요구하였다. 이 결과 1996년 전국 선박건조와 수리조선 업체 도장작업자들을 대상으로 유기용제 임시건강진단을 실시하였고, 요식행위로 인식되던 특수검진과 작업환경측정제도의 실질적 개선을 이루는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후 금속노조를 중심으로 노동조합이 특수검진과 측정의 기관선정권을 획득하는 사업장이 늘어났다. 이 외에도 포항의 망간중독 집단 발병, 부산의 D.M.F. 중독사망 사건 등을 통해 특수검진의 실효성 증대를 위한 사회적 여건이 마련되었다.

그 결과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작업환경의 개선과 특수검진 유소견자의 감소 등의 효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성과의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과제가 남아있다. 과거에는 열악한 작업환경과 전통적인 직업병의 문제가 일반적인 현상이었다면, 현재에는 소규모사업장과 이주노동자, 하청노동자 등 취약계층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 취약한 소규모·하청·이주노동자 

이러한 전체 노동자의 문제로부터 소규모 취약 계층 노동자들로의 문제의 중심이동에도 불구하고, 제도는 여전히 과거의 형태와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특수검진과 작업환경측정은 시장에 맡겨졌고, 시장을 어렵게 하는 행위는 이적행위(?)로 간주하기 일쑤다. 최근에 와서 노동자 일반에 대한 특수검진 상 유소견율과 작업환경측정상 기준 초과율이 1%가 채 안 됨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를 현행대로 유지하여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반면, 10인 미만 사업장과 하청, 건설업 등에서 작업환경측정과 특수검진 실시율이 매우 낮다는 점과 전통적 직업병이 이들에서 주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보면 어디에 중심을 둘 것인가는 명확하게 보인다. 

말하자면 대기업 등에서는 기존의 작업환경측정과 특수검진의 유효성이 거의 없어져 가는 상황이지만, 소규모 취약계층 노동자들은 이들 제도의 혜택을 받고 있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교통 오지, 소규모사업장, 취약계층에 대해서는 상업성이 없어서 제도적 접근이 이뤄지고 있지 않다. 이러한 점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지만, 누구도 진지하게 접근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2016~2017년의 야간 노동 특수검진 제도 시행을 앞두고서 벌어졌던 일련의 상황에서, 직업환경의학전문의 제도는 이제까지의 전통적 지지세력이자 이 제도의 산파로 자임하던 노동계로부터 차가운 대접을 받았다. 문송면의 사망과 원진레이온 집단 직업병 시절에 직업병 진단을 두고 임상의와 예방의학 간의 갈등이 있었으며, 임상적 직업병(환경병) 진단을 제대로 하는 노동자를 보호하는 학문의 일환으로 출발점을 가진 직업환경의학전문의 제도는 전통적 직업병의 감소와 작업환경의 개선이라는 시대적 변화와 함께 동반 성장하기 보다는 자신의 정체성과 생존이라는 생물체로서의 자기 보호적 측면이 더 강화되는 내외적 성장의 불균형 상태로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전통적인 직업병의 규모가 줄어들고 대기업 중심으로 노동환경의 개선에 따라 노동안전보건 운동의 관심도 변화 확장되었다. 2000~2003년 근골격계 질환 집단요양 투쟁은 몇 안 되는 노동안전보건 문제의 사회적 의제화이자 승리한 투쟁으로 판단된다. 근골격계 질환 문제를 IMF를 지나고 노동강도 강화와 결합하면서 노동운동의 핵심영역으로 위치 지웠던 것 또한, 건강의 문제를 사회적 맥락에서 풀어내려는 중요한 시도로 판단된다. 전국에서 들불처럼 일어났던 집단요양 투쟁의 성과로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라는 제도적 성과를 얻었다. 그러나 이러한 조직화와 제도적 성과라는 긍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씨앗으로 하여 조직적인 확장과 함께 의제의 확장으로 나아가는 데는 부족한 것으로 판단된다.

 

노동안전보건운동, 다시 변화 모색해야 

이러한 점에서 현재까지도 노동안전보건 운동진영은 문제제기집단으로 자신의 역할을 한정하거나 제한되어있고, 대안세력으로 자신을 확장하는 시각을 갖고 계속적인 시도와 연습을 통해 단련되는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 저러한 이유로 근골유해 요인조사제도는 몇몇의 사업장을 제외하고는 시행되지 않거나 형식화되어버렸다. 

30년 전 문송면과 원진 직업병 문제가 산재의 인정과 보상의 문제에서 시작하였고, 그 이후에도 상당 기간 동안 집단요양 투쟁과 산재 인정의 문제가 노동안전보건 운동의 주요한 이슈였던 점은 부인하기 힘들다. 또한, 문제의 해결방식 또한 매우 투쟁적이고 자기희생적이었다. 그러나 전술하였듯이 노동자 건강 관련 이슈는 주요한 대상과 문제가 변화하고 있다고 볼 때, 노동안전보건 운동의 대응도 변화할 필요가 있다. 

산재 인정의 문제가 한국에서 첨예하게 된 이유는 모두가 알고 있다. 사회적 안전망(개인적으로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용어다)이 부실한 한국에서 산재로 인정받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너무 극명해서, 이를 무시하는 것은 노동보건 활동가의 책무를 내버려 둠과 동시에 인도적이고 감성적인 문제까지 일으키게 된다. 알다시피 OECD 국가 중에서 상병수당(또는 상병급여)이 없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아플 때 일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며, 국가가 존재하는 이상 노동능력이 없더라도 생계를 보호하는 것은 당연한 국가의 의무이다.

 따라서, 현재 산재인정 투쟁 중심의 노동보건운동의 방식은 변화해야 한다. 상병수당을 도입하고, 산재인정은 곧 예방과 재발 방지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고의에 가까운 산재유발사업장에 대해서는 중과실 책임을 묻게 해야 하며, 건강하지 않은 노동자 상태를 가진 사업장은 사회에 공개되고 사회적 비판과 참여를 통한 시장 퇴출의 과정을 겪게 해야 한다. 

위 필자의 부정적 견해에도 불구하고 노동안전보건 운동의 지평 확장 또는 다른 출발점을 가지는 시도는 여러 가지 형태로 진행된 바 있다. 반올림 활동은 삼성반도체 노동자 백혈병 산재인정투쟁으로 시작해서, 최근 삼성 작업환경측정 보고서 공개의 문제라는 기업 영업비밀 대비 알 권리와 건강 문제라는 사회적 가치판단의 이슈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 문제는 작업환경측정보고서에 실제 영업비밀이 들어가 있는가 아니냐는 기술적인 문제를 넘어서, 경제성장과 형평의 문제, 이윤과 생명의 문제라는 핵심적 가치충돌을 내포하고 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노동시간센터 등을 중심으로 한 장시간 노동과 야간노동에 대한 문제 제기는, 여러 가지 정치적 상황과 맞물리면서 야간노동 및 장시간 노동의 축소라는 사회적 흐름을 만들고 있다. 다른 예로는, 노동환경건강연구소의 발암물질에 대한 여러 가지 시도는 노동안전보건의 영역을 넘어서 시민사회까지 확장되어가고 있으며, 작업장의 여러 가지 문제가 매개가 되어 노동안전보건 이슈가 시민사회와 연대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해외 사례에 비추어 본 노동안전보건 문제 

핀란드의 높은 수준의 노동자 보호제도는 노동조합의 높은 노동자 조직률과 함께 노사정 합의에 근거한 바 있다. 한국에서 이제까지 노동안전보건 영역의 운동은 주로 대기업과 금속노조를 비롯한 민주노총이 주요한 추동력이었다. 그러나 노동자건강문제를 조직노동자들에게만 의존하는 것은 한국 상황에서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한국에서 아직 노동안전보건 문제는 노사정 핵심적 이슈로써 제기된 바가 드물었으며, 다른 의제에 묻히거나 노사정 관계가 어려워지면 자동 소멸되는 상황이다. 물론 노동안전보건 문제가 다른 사회적 또는 노동문제에 우선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문제가 해결되면 연속적으로 해결되는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상대적 독자성을 가지면서 지속해서 문제를 제기할 주체와 시도가 필요할 것이다. 

또한, 노동자의 안전과 보건의 문제가 독자적으로 떨어진 섬과 같은 존재가 되어서는 다른 사회세력과 연대도 어려울뿐더러 사회적 주요 이슈로 자리 잡을 가능성도 낮아진다. 네덜란드와 핀란드 등 국민의 수가 수백만 정도로 소규모 경제를 가지면서 수출 등 외부 국가와의 교역이 중요한 국가에서는 노동력이 국가생산력의 근간이며 노동력 고령화는 이를 가로막는 중요한 문제이다. 

이들 국가에서 노동자의 안전보건의 문제는 국가생산력의 문제로 접근한다. 한국에서 이러한 접근의 필요성과 가능성에 대해서는 철학적·윤리적 정당성과 함께 현실적인 경로와 주체의 문제 등 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이 시대의 화두이다. 4차 산업혁명은 플랫폼 노동 등 노사관계의 변화와 노동형태의 변화 등을 일으키고 있다. 수많은 비정형 노동과 아동과 취약계층 노동이 증가할 것이다. 이러한 노동형태의 변화와 새로운 직업성 질환과 상태에 대한 고민과 대응이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4차 산업혁명을 바라보는 다른 각도에서의 우리의 시각 확대도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오는 기술적 발전과 변화를 일하는 사람들의 건강 보호에 활용할 방법을 고민하는 것은 아직 노동보건 운동의 시야에 들어와 있지 않다.

 

30년을 넘어, 새롭게 나아가야 

문송면과 원진 문제로부터 30년이 흘렀다. 30년이 한 세대라면, 이제 그 이후에 태어난 세대가 성인이 된 시대가 되었다. 노동자 건강과 관련 한 문제 또한 과거의 전반적인 열악한 노동조건과 엄혹한 사회적 억압에 대한 투쟁과 희생의 시대에서 이제 소수 또는 취약계층에게 문제가 집중되는 반면 노동자 건강문제에 대한 지평과 연대의 확대가 필요한 다양한 중층구조로 변화되고있다. 

문송면과 원진 30년이 지난 시점에 이제까지 직업적 원인으로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의 희생 위에 수많은 노동자 건강권의 발전과 함께 과제도 쌓여있다. 과거의 유산과 부채로부터 자유로운 세대들이 중첩된 문제들을 다양하고 다른 관점에서 풀어가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특집3. 나는 성소수자 노동자입니다 / 2018.05

나는 성소수자 노동자입니다

- 웹디자이너 소리 님 인터뷰

나래 상임활동가


내가 다니는 직장에는 성소수자 동료가 있을까. 이상한 질문 같지만 우리 사회, 일터의 성평등, 인권감수성을 돌아보게 하는데 중요한 질문이다. 대부분의 성소수자들이 차별과 혐오로 인해 직장에서 진짜 자신을 꽁꽁 감춘다. 자신을 보호하려는 방법으로 말이다. 이전보다 인권 감수성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직 우리 사회가 갈 길이 멀다. 노동과 성소수자, 그리고 건강 문제를 나눠보기 위해 마케팅 회사에서 웹디자이너로 일하는 성소수자 노동자 소리 님을 지난 4월 24일에 만났다.

“지금 다니는 직장까지 총 4년간 직장생활을 했어요. 지금 제가 28살인데, 20대 초반부터 일했죠. 그때부터 겪은 일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인터뷰에 응하게 됐어요.”

웹디자이너 소리 님은 게이이면서 HIV/AIDS 감염인이다. 일하게 된 계기도 군 휴학을 하고 입대를 앞둔 찰나 에이즈 확진을 받게 됐고, 군대 면제가 됐다. 애니메이션 전공을 한 그는 당장 복학을 하기 어려웠고, 마침 아는 지인이 회사를 소개해줘 웹디자인과 연을 맺게 되었다. 현 직장은 10명이 채 안 되는 소규모 SNS 온라인 마케팅 대행사인데, 소리 님은 콘텐츠 제작 업무로 기획이 완성되면 웹자보, 카드뉴스 등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웹디자이너의 하루는 어떨까?

“집이 멀어서 회사까지 1시간 반이 걸려요. 출근하면 컴퓨터를 켜고 담배 한 대를 피우죠. 그래야 정신이 들어요. 앉아서 하루 스케줄 확인을 하는데 SNS콘텐츠를 몇 개 만들어야 하는지, 잔업이 있진 않은지 확인하고 만약 잔업이 있으면 오전에 잔업을 처리해요. 그 이후에 콘텐츠 작업을 하죠. 보통 SNS콘텐츠 작업을 끝내면 오후 4시 정도가 돼요. 추가업무로 블로그 체험단 운영 관리도 하는데, 이 일을 끝내면 딱 퇴근 시간이예요. 그런데 꼭 퇴근 시간에 대표가 일을 줘요. “이거 해야돼.” 이러면서 휙 던지죠. 그러면서 내일까지 해야한데요. 그런 일이 잦아요. 보통 그런 일이 있으면 야근이에요. 얼마 안 하면 저녁 8시에 퇴근하는데, 아니면 밤 12시죠. 모아니면 도에요.”

야근 문제는 웹디자이너에게 뗄래야 뗄 수 없는 문제다. 첫 직장도, 지금 다니는 직장도 야근이 일상적이었다. 지금도 최소 주 1회, 많게는 4일 야근이다. 개인에게 떨어지는 할당량이 항상 두 배로 떨어지고, 급작스럽게 처리해야 할 일도 매번 많다. 소위 을입장의 회사이다 보니 의뢰인의 말대로 무리하게 작업을 한다. 결국 ‘과로’는 웹디자이너의 몫이다.

또 한 가지 소리 님을 힘들게 하는 건 체계적이지 않은 회사 운영 구조다. 

“문제는 회사의 체계적이지 않은 운영구조예요. 보통 회의를 통해 기획이 완성되고 디자이너에게 업무를 주는데 그런 게 없이 일이 막 떨어져요. 대표가 일을 막 던지죠. 그러다 보니 당연히 이직률도 높아요. 제가 들어오고 나서 이미 절반 이상이 나갔어요. 보통 마케팅 회사는 기획자가 많아야 하는데 이 회사는 1명이에요. 얼마나 문제인지 아시겠죠? 심지어 제가 입사하고 1개월도 채 안 됐을 때 명함 디자인 업무를 줬어요. 디자인을 새로 하자고 해서 12개 시안을 만들었죠. 수정도 네, 다섯 번을 했어요. 처음엔 대표가 만족하더라고요. 그런데 갑자기 다음주에 저한테 와서 ‘이거 너무 쓰레기 같아서 못쓰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때 너무 속상했죠.”

그래도 일의 보람은 본인이 했던 작업물이 많은 곳에 뿌려졌을 때다. 기존에 있던 것들을 조합하고, 새로 창작하는 디자이너에게 최선을 다한 결과물을 ‘쓰레기’라고 평가당했을 때의 참담함은 곧 자신의 자존감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오로지 그 즐거움과 보람으로 회사생활을 버티는데 디자이너로서의 자존감마저 무너지면 너무 힘든 일이 된다고 서글프게 말했다.

당연히 과로와 스트레스는 몸에 좋지 않다.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 장염, 역류성 식도염에 시달린다. 소리 님은 덤덤하게 ‘장기는 포기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근골격계 질환도 당연히 심각하다. 목, 허리, 손목, 다리 안 아픈 곳이 없다. 

“아예 직종을 옮기지 않는 이상 똑같은 문제를 겪죠. 어디를 가도 똑같으니까요. 하다 정 힘들면 퇴사하고 다른데 들어가서 똑같이 스트레스받잖아요. 그렇다고 무급휴가를 회사에서 선뜻 내줄리도 없고요. 그러니 차라리 월급을 덜 받고, 덜 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정도예요.”

성소수자 노동자인 소리 님에게 직장 내 스트레스 문제는 더 복잡하고, 괴롭다. 단순히 스트레스 수준이 아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문제다. 그는 평균적인 틀에 맞추려고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집단이 회사라고 했다. 처음 다녔던 곳도, 2개월 짧게 다녔던 회사도 3년 가까이 일하는 지금의 직장도 마찬가지다.

“모든 회사에서 제가 들은 말이요, ‘게이처럼 굴지마라’였어요. 제가 첫 직장 다닐 땐 마른 체격이었거든요. 그때 저한테 ‘너는 너무 말라서 밤일이나 제대로 할 수 있겠냐’라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성차별적 발언에 쉽게 노출됐고, 심지어 성소수자인지 집요하게 묻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런 사람이 모든 회사에 꼭 한 명씩 있었죠.

지금 직장에선 무슨 얘기까지 들은 줄 아세요? ‘너는 성소수자이고, LGBT¹ 쪽인거 상관없는데, 제발게이인거 티 좀 내지마라’고 하더라구요. 그 얘기를 한 사람은 나이도 많고, 직급도 높은 남성이에요. 사실 그 상황이 두렵기도 했죠. 아마 첫 직장이었으면 아무 얘기도 못 했을 거예요. 그런데 이번엔 무서운 것도 잊을 정도로 화가 났죠. 그래서 ‘내가 게이이건 말건 무슨 상관이냐, 지금 말한 거 불쾌하다. 그 말은 장애인한테 장애인 티 내지 말라고하는 것과 똑같다. 내가 만약 진짜 게이면 어쩔거냐, 말실수 했다고 생각하지 않냐.’라고 물으니깐 그러더라고요. ‘아직 우리 사회가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있다, 내가 나이가 많아서 너를 걱정해서 그런 거다’라고 대답하더라구요. 웃으면서 상황을 마무리하기 했는데, 그리고 나서 갑자기 그 상황이 무섭더라고요.”

성소수자 노동자들에게 직장은 생존을 위해 필요한 곳이지만 동시에 끔찍한 곳이다. 차별적이고 혐오적인 언행이 대부분 직장에서 벌어진다. 사실 혐오와 차별, 배제는 약한 사람에게 향한다. 그렇기 때문에 소리 님의 경험이 여성인 필자에게도 낯설지않다.

“어디를 가든 물어봐요. 여자친구 있냐, 결혼할 거냐, 결혼 생각 없냐. 계속 물어봐요. 여자친구 없고, 결혼할 생각 없다고 한번 말을 하면 안 해야 되는데 결혼이 얼마나 좋고, 여자친구가 있어야 하고 그런 설교를 해요. 심지어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 혹시 남자 좋아하냐고 얘기하는데 정말 스트레스예요. ‘아니 왜 여자친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런 생각부터 들죠. 저는 굳이 애인이 있는지를 회사에까지 얘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저보고 매정하데요. 인정머리가 없다고요.”

최근 결남출이란 신조어가 있다. 면접을 보는 구직자에게 ‘결혼, 남자친구, 출산’에 관해 묻는 면접관의 질문을 줄인 것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채용과정부터 직장생활까지 성차별을 당하는 대표적 예다. 그런데 성소수자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마치 검열을 하듯, 세상이 정해놓은 평균을 강요하듯 끊임없이 묻고, 또 묻는다. 그들에게 너무 쉬운 질문이지만, 소리 님에겐 너무나 힘들고, 괴로운 질문이다.

“이거는 포괄적 문제죠. 여자면 무조건 남자친구가 있을 것이고, 남자면 여자친구가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이성애중심적이죠. 그리고 연애도, 결혼도 내가알아서 할 문제잖아요.”

소리 님은 커밍아웃²을 하지 않았다. 본인의 성정체성, 적적지향은 극히 개인적인 정보이고 사생활인데 그것을 굳이 회사에 얘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최근 ‘게이 티를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사건을 겪은 후 얘기를 해야 하나 고민을 최근에 하기 시작했다.

“최근 그 일을 겪고 나서 되게 무서워졌어요. 내가 게이라는 얘기를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게이 티를 내지 말았으면 좋겠단 얘기를 들으니깐 회사에서 커밍아웃 했을 때 엄청난 후폭풍이 있지 않을까.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게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고민은 드는데, 얘기해야지 편해지지 않을까 싶기도하고요. 그런데 후폭풍이 두렵죠.”

성정체성, 성적지향을 밝히는데 가장 큰 벽은 사람들의 차별, 혐오다. 문제는 그것이 일터 괴롭힘으로 작용하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2015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성적지향·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에 따르면 직장에서 본인의 정체성으로 인한 따돌림, 협박, 반복적 지적, 비난, 조롱, 물품훼손, 신체적 폭력, 성희롱, 성폭력 중 어느 한 가지라도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비중이 전체 516명 중 41.7%(215명)에 달했다.



“성소수자로서 받는 스트레스는 또 달라요. 차별적인 단어를 들었을 때 밝힐 수도 없고, 오히려 숨겨야 하죠. ‘게이들 너무 더러운 것 같아, 죽었으면 좋겠어’라는 혐오/차별적 말을 듣고 심지어 맞장구를 쳐야할때도 있어요. 자기를 숨기고, 부정까지 하면서 겪는 스트레스는 정말 심각하죠. 그래서 우울증도많아요.”

그렇다면 성소수자 차별, 혐오 문제에 대해 정부관계 기관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받을 순 없을까? 하지만 소리 님은 있는 법제도 조차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는 문제를 지적했다. 한국은 2002년 ‘국가인권위원회법’을 제정했다.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에 ‘성적 지향’을 포함해 동성애 차별 금지를 강조했다. 지방자치단체 인권조례 등 자치규범이 있지만 최근 기독교, 보수집단 등에 의해 조례가 폐기 되거나 성적지향을 존중한다는 내용이 삭제되고 있다. 오히려 성소수자 인권이 후퇴되고 있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도 성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폭력을 중단할 것을 한국정부에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혐오, 차별, 폭력 없는 평등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 노동조합의 노력 또한 적극적으로 요구되는데 노동조합, 사회운동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물었다. 

“차별/혐오로 인한 폭력에 대한 규제가 필요해요. 일터에서 표현의 자유라는 게 어느 정도까지 규제가 되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성정체성, 성적지향을 혐오하고 차별하는 것은 폭력이죠. ‘너는 게이처럼 굴지마, 여자처럼 굴지마, 남자처럼 굴지마, 화장하고 다녀’라는 식의 표현은 문제가 있는거잖아요. 언어에 대해 생각하고 조심하게 되다보면 행동도 조심스러워진다고 생각합니다. 말이 폭력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 것들을 일터에서 풀어내는 게 노동조합의 역할이지 않을까요.”

소리 님은 성소수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HIV/AIDS 감염인으로서 겪는 문제가 많다고 했다. 많은 사람이 에이즈는 ‘죽음의 병’, ‘문란한 사람들이 걸리는 질병’, ‘동성애자들이 걸리는 질병’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정보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뒤엉켜 사회적 낙인과 편견으로 왜곡된 것이다.

“채용 건강검진, 직장 건강검진에 혹시 HIV/AIDS항목이 있진 않을까 두려움이 커요. 회사에 알려지면 어쩌지, 알려서 내가 해고되면 어쩌지. 그런 걱정을 많이 해요. 만약 입사 해도 계속 두려움에 떨어요. 감염인은 하루에 한번씩 약을 먹어야 하는데 낮에 복용할 땐 주변 눈치가 보여요. 몰래 숨어서 먹기도 하죠. 사람들이 ‘무슨 약이냐, 비타민이냐, 나도 달라’ 이렇게 얘기하기도 해요. 

약값 지원 문제도 심각해요. 대상은 늘고 있는데, 예산이 감소하고 있거든요. 약값을 선불로 내는 병원이 있어요. 그런데 예산이 부족해서 약값 환급금을 1년 뒤에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제일 먼저 확보되어야 하는 게 치료제 예산이예요. 예산이 부족하면 약을 못먹는 사람이 발생하게 돼요. 그러면 감염인수는 증가할 테고, 감염인이 크게 고통받게 되죠. 그런데도 최대로 잘 하는 게 현상유지예요. 아니면 심지어 예산을 깎기도 하고요.”

감염인을 터부시하고, 감염의 책임을 개인의 부주의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감염 사실을 알리기는 더욱 쉽지 않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모임에서 발행한 「행성인 회원을 위한 HIV/AIDS 가이드북」엔 10가지 에티켓 항목이 있다. 항목 중 가장 첫번째가 지지와 공감이다. 차별과 배제가 아닌 지지와 공감이 성소수자를, HIV/AIDS 감염인을 평등한 사회, 일터에서 건강하게 살아가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소리 님이 우리에게 던지는 마지막 메시지의 울림은 크다.

“저는 사람들이 오지랖 좀 그만 떨었으면 좋겠어요.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도 없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로 가득찬 오지랖이요. 오지랖을 필거면혐오와 차별 없이 상대방을 먼저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요?”


※ 각주

1) 레즈비언(lesbian)과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트랜스젠(transgender)를 가르키는 말로 성소수자를 가리키는 단어다.

2)  ‘벽장 속에서 나오다(Coming out of the closet)’라는 뜻에서 유래된 말로, 성소수자가 자기 주위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성적 지향이나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특집] 노동조합과 함께, 성소수자 평등한 세상으로 한 걸음 더! / 2018.05

노동조합과 함께, 성소수자 평등한 세상으로 한 걸음 더!

곽이경 민주노총 대외협력국장


노동자들과 ‘성소수자 노동권’ 이야기를 하면 꼭 나오는 이야기가 “주변에선 성소수자를 본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노동조합이건 어디건 정책이나 제도, 문화가 변화하려면 그 필요성이 두루 인정되어야 한다. 다양한 방식으로 노동조합에서 성소수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통로, 지지를 드러내는 사업, 실제로 제도를 바꾸는 과정, 연대의 경험이 쌓여야 한다.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성장과 함께 노동조합의 인식 변화도 그에 맞춰 필요성이 더 커지는 것은 물론이다.

성소수자를 위해 노동조합이 할 수 있는 일은 상상 이상으로 많다. 민주노총은 노동자 대중조직이므로 성소수자 노동자도 그 일부이고, 이는 모든 노동자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노동조합이 성소수자의 요구를 모두를 위한 요구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 노조는 성소수자 노동자들이 자연스럽게 커밍아웃하고 지지받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 아래는 일터에서 성소수자 노동자의 평등을 위해 노동조합이 할 수 있는 몇 가지 예시들이다.

노동자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많다

10여 년 전 한 전교조 조합원이 찾아왔다. 당시 차별 때문에 학교를 나오지 못하는 성소수자 학생을 돕고 싶어 성소수자 단체를 찾은 것이다. 나는 청소년 성소수자 편에 서고자 하는 그를 보면서, 교육노동자가 청소년 성소수자의 중요한 연대자이자 주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전교조는 최근 성소수자 청소년을 배제하는 성교육 표준안에 반대하는 신문광고를 싣고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교육노동자라면 평등한 학교를 만드는 주체가 될 수 있다. 모든 일터에서 이런 실천은 가능하고, 필요하다. 보건의료노동자라면 병원에서 성소수자 가족을 평등하게 대우하고, HIV/AIDS(후천성 면역 결핍 증후군)감염인에게 필요한 의료기회를 제공하도록 할 수 있다.

입원 또는 수술을 앞두고 보호자란에 서명이 필요한 경우를 대부분 겪어봤을 것이다. 보호자 서명은 실제로 가족관계를 확인하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이것은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성소수자들에게 큰 벽으로 다가온다. 보호자 서명을 위해 먼 곳의 원가족이 급히 병원에 와야할 때도 있다. 언론노동자라면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인권에 기반한 보도원칙을 세우는데 힘쓸 수도 있다.

성중립화장실 설치 요구도 노동조합의 요구가될 수 있다. 왜 노동조합이 성소수자와 연대해야 할까? 사람을 중심에 놓는 가치관이 자신을 바꾸고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과 모든 이들의 삶을 바꾼다. 제대로 된 세상을 만드는데 노동자가 중요하다. 이것이 노동조합운동의 역할이다.


① 교육노동자가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안전한 학교를 만들어보자!

- 혐오와 괴롭힘을 당하는 청소년/학생 편에 서기

- 교사 및 학교 구성원을 위한 성소수자 인권교육, 성평등 교육을 진행해보기

② 일할 권리를 빼앗긴 에이즈 감염인과의 연대

- 채용시 검진을 포함한 직장검진에서 동의 없는 에이즈 검진 금지, 차별구제 노력

- 직장 내에서 에이즈에 관한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는 교육 진행

③ 트랜스젠더 노동자들이 평등하게 일할 수 있는 일터 만들기

- 성전환수술에 대한 의료보험 적용 및 병가 등 치료기간에 대한 지원. 성별변경 이후에도 직장에서 계속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교육 및 인

식전환 노력하기

- 채용시 굳이 성별을 기재하지 않도록 하는 성평등 이력서 요구

④ 양성으로만 구분된 일터를 바꾸기

- 남녀화장실이나 탈의실, 휴게실을 성중립 공간으로 바꾸기 (개인 화장실, 탈의실 등)

- 유니폼을 자유롭게 선택하게 하거나 성중립적인 유니폼을 제공하기

⑤ 가족 바깥의 권리를 보장하기

- 병원 등에서 가족만 보호자가 될 수 있는 제도를 바꾸기

- 기존 가족 중심의 각종 수당 및 복지 혜택을 가족 바깥의 사람들로 확대하기


커밍아웃이 가능한 일터, 지지받는 일터로의 변화

성소수자 노동자들의 바람은 자신을 숨기지 않고도 평등하고 안전하게 일하는 것이다. 일상의 대부분을 보내는 일터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못한 채 생활해야한다면 얼마나 답답하고 불안할까? 일터가 변하려면 같이 일하는 동료들의 생각이 먼저 변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성평등 교육 등에서 성소수자 인권을 포함하여 교육하기 시작했다. 이런 교육은 더욱 확대 심화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성소수자를 직접 만날 때 사람들의 인식은 많이 바뀔 수 있다. 민주노총은 작년 영화 <런던프라이드> 상영회를 성소수자 단체와 공동주최했다. 성황리에 진행된 이 상영회를 통해 우리는 보수적이었던 노동자들이 어떻게 성소수자를 이해하고, 연대로 나아가는지알게 되었다. 이후 전국 각 지역에서 민주노총 지역본부가 단체들과 함께 상영회를 추진했다.

또한, 민주노총은 수년 전부터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하고 있다. 최근 2년은 기념 티셔츠를 만들어 전국 가맹·산하조직에 배포하고, 참가단을 꾸려 조합원과 함께 행진하기도 했다. 연대는 가장 효과적인 교육이기도 하다. 또한, 단위노조의 조합원이 나서서 성소수자 군인을 처벌하는 군형법 92조 삭제를 요구하는 민주노총 연대성명을 조직하기도 했다. 작지만 큰 움직임이다.


① 조합원 전반을 대상으로 하는 정기적이고 지속적인 교육

- 성소수자 노동인권 교육 진행하기. 또는 성평등 교육 등 정기교육에 관련 내용 포함하기

- 교육 진행시 성평등, 성인지적 관점을 견지하기

② 성소수자를 직접 만나고 연대하며 인식을 바꾸기

- 성소수자들과 함께 하거나 이해를 넓히기 위한 사업 진행하기. 영화상영회나 간담회 등을 개최하며 편견의 벽을 허물고 서로에게 필요한 것들을 알

아가보기

- 성소수자들의 투쟁에 함께하기. 퀴어문화축제 참여 등 성소수자와 연대할 수 있는 자리에 함께하기. 성소수자 혐오와 차별에 맞서는 현장에 연

명, 연대 등으로 함께 하기

③ 지속적인 캠페인으로 노동조합이 성소수자를 지지한다는 사실 알리기

- 성소수자들은 직장에서 커밍아웃하지 않았기 때문에 먼저 노동조합이 성소수자에게 열려 있고 이들의 권리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것

을 알려야 함

-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곳에 성소수자 동료를 지지하는 내용의 포스터나 리플렛 비치

-‘나는 성소수자 동료를 지지합니다’ 스티커 일터와 소지품에 붙이기 캠페인


성소수자들에게 실제로 도움 되는 노동조합

민주노총은 2015년 사무총국 처우 규정 개정을 통해 동성 배우자 및 혼인신고서를 작성하지 않은 배우자에게도 가족수당을 지급하기로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무처 상근자들이 이 조항을 통해 가족수당을 받게 되었다. 이 사례는 사회단체 등의 규약개정에 좋은 선례로 남아있다. 물론 비혼 등 가족을 이루지 않는 이들도 함께 적용받을 수 있는 내용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노동조합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노조 규약, 단체협약 등에 차별금지 규정을 넣도록 노력할 수 있다. 노조가 먼저 시작하면, 사회가 바뀐다.


① 단체협약에 성소수자 차별 금지 조항을 넣고 성별정체성이나 성적지향 때문에 배제되는 권리를 회복하기

- 직장 내 성폭력과 함께 혐오표현과 괴롭힘을 금지하는 조항 넣기

- 가족수당, 복지수당 등 이성애자 가족을 기준으로 부여되는 임금 및 혜택에 있어 평등을 실현하는 방법 찾기

- 단협에서 성소수자 가족들도 간병휴가, 가족돌봄휴가 등을 보장함으로써 현행법에서 배제된 권리를 노조가 먼저 보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기

- 입사 공고, 채용, 교육, 회의 등에서 개인의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을 존중하고, 혐오 및 차별을 근절하기

② 노동조합 강령 및 규약에 성소수자 평등의 가치를 명확히 하도록 개정하기

공공운수노조는 강령에서 성소수자를 포함하고있다.“우리는 장애인, 노령자, 실업자, 이주노동자, 성소수자 등 사회적 소수자의 권익옹호가 평등사회 건설의 바탕임을 인식하며 모든 형태의 차별을 철폐하고 인간존엄성 유지에 필요한 생활조건을 확보하기 위해 투쟁한다.”

③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함께 노력하기


성소수자 노동자가 주인공이 되는 노동조합

대중조직인 노동조합의 매력은 각양각색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한목소리를 내며 함께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노동조합에서도 여성과 성소수자, 이주민, 장애인, 청소년들이 목소리를 내고, 노동조합의 주요한 역할을 맡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노동조합에는 이 모든 사람이 함께 섞여있다. 민주주의는 ‘참여적 평등’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때 보다 확장되고 깊어질 수 있다. 참여적 평등이란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모습 그대로 의사결정과 각종 실천의 장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목소리가 더 작고, 존재감이 없고, 더 차별받는 사람들이 평등하게 참여하려면 더 각별한 노력을 쏟아야 한다.

민주노총은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이 보장되는 참된 민주사회를 실현”하겠다는 과제를 지닌 노동조합이다. 더 다양한 조직, 평등한 조직, 이를 기반으로 단결하는 민주적 조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도도 필요하고 제도의 정비도 필요하다. 성소수자 조합원이 모일 수 있는 당사자 모임을 지원하는 것, 성소수자들이 노조를 대표할 수 있도록 할당제도 및 조직을 정비하는 것, 성소수자들이 걱정없이 상담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하는 것이 그 방법 중 하나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무엇이든 시도해보자.


※ 이 글은 민주노총에서 발행 예정인 성소수자 노동인권소책자를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특집1. 성소수자의 건강과 삶은 어떠한가 / 2018.05

성소수자의 건강과 삶은 어떠한가

재현 선전위원장


성소수자는 누구인가

성소수자는 남녀 동성애자를 포함하여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퀘스쳐닝(자신의 정체성에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특정 젠더 또는 섹슈얼리티로 자신을 한정 짓지 않는 자), 간성 등을 포함하는 LGBTQI (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Questioning, Intersex)를 총칭한다. 한국의 성소수자는 그 자체로 혐오에 대상이다 보니 많은 이들이 자신의 성적 지향을 밝히지 못하고 살아간다.

성소수자가 문제가 되는 사회

이 사회에서는 성소수자를 정신질환자로 여긴다. 그래서일까? 성소수자를 정신병 환자로 여기는 사람들은 성소수자가 꾸준히 전환 치료를 받으면 이성애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미 의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이러한 주장은 틀렸음이 여러 연구를 통해 확인했다. 1973년 미국 정신의학회는 전 세계적으로 정신과 질환 진단에서 표준으로 사용하는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매뉴얼의 정신질환 목록에서 동성애를 삭제하기로 했다. 1990년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동성애를 정신질환 목록에서 삭제하며 더는 성소수자가 정신질환자가 아니라는 점을 밝혔다. 이후 성소수자의 전환 치료를 주장하던 세력은 설득력을 갖지 못했다.

오히려 전 세계는 1990년 세계보건기구 결정이 있었던 5월 17일을 기념하여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International Day Against Homophobia, Transphobia, and Biphobia)' 행사를 진행하면서 성소수자의 인권 증진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 한편, 보수개신교는 자의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면서 성소수자를 죄악으로 여기는데 전념한다. 그러면서 이들은 차별금지법 제정, 인권조례 제정 등 성소수자의 인권 증진을 가로막는 데 일조하고 있다. 보수정치 세력역시 반공 이데올로기로 지지층 결집이 쉽지 않자, 성소수자에 대해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정치세력을 동성애 집단으로 매도하며, 자신들의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있다.

혐오는 성소수자의 삶 자체를 위협

지난 2017년 육군 A대위는 군대 밖에서 상호합의하에 업무와 무관한 사람과 성관계를 맺었는데, 상대가 동성이라는 이유로 군형법 92조 6항('군인 또는 준군인'에 대하여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하는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으로 형사처벌 할 수 있다)에 의해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러한 반인권적인 판결은 당시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의 지시로 진행되었음을 확인했다. 당시 군은 의심이 가는 대상자 군인들에 통화 기록을 파헤치고, 개인의 성적지향을 강압적으로 진술하게 하는 면담 등을 통해 성소수자의 인권을 짓밟았다. 무엇보다 A대위는 성적지향이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일터에서 감옥에 갇히며 본인이 원치 않는 상황에서 성정체성이 밝혀지고, 생존권 자체가 박탈되었다.

문제는 한국 사회처럼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낙인이 판치는 세상에서 A대위와 같은 일은 어떤 성소수자 그리고 성소수자 노동자에게 나타날수 있는 일이라는 거다. 게다가 한국 사회는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이 알려졌을 때 일상적인 생활을 계속 이어가기가 결코 쉽지 않은 사회다. 한국 성소수자 건강 연구 '레인보우 커넥션 프로젝트' 연구팀 역시 '모든 인간은 일상생활에서 스트레스를 경험하지만, 성소수자는 자신이 놓여있는 소수자 지위로 인해 차별과 폭력 등 편견적 사건을 겪게 되고 이들은 배제에 대한 예상, 정체성에 대한 숨김, 내재화된 동성애 혐오 등의 소수자만이 느끼는 스트레스를 경험한다'고 말했다(<한겨레 21> 낙인과 고립 그리고 죽음 2018.01.02).

몸과 마음의 건강마저 위협받는 성소수자

성소수자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고통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 역시 비일비재하다. 성소수자 인권포럼이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성소수자가 일반 인구보다 자살 경험이 9.25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낙인이 결국 생명까지도 위협한다는 사실을, 혐오 세력들이 반드시깨달아야 한다. (2017 성소수자 인권포럼, 한국인 LGB(레즈비언·게이·바이섹슈얼) 건강연구)

성소수자들은 의료 영역에서도 방치되어 있다. 특히 트렌스젠더의 경우 성전환 과정과 이후 받아야 하는 의료적 조치가 있지만 대부분 건강보험에서 비급여 항목이기 때문에 이 모든 비용을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대부분 트렌스젠더들은 성정체성을 이유로 사회적으로 이른바 괜찮은 일자리에서 일할 확률도 낮고, 가족으로부터 지지와 동의를 구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성전환 수술에 들어가는 비용과 몇 년씩 호르몬 치료에 필요한 비용을 홀로 감당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미국이나 캐나다, 아르헨티나 등 해외에서 트랜스젠더의 성전환과 관련된 비용을 국가 의료보험 체계에서 보장하는 사례를 고민해야 한다.

성소수자를 포함해 모든 사람은 자신의 성적지향에 맞게 사랑하며 살아갈 권리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성소수자를 혐오하고 차별하는 사회를 모든 성소수자가 건강하고 자유롭고 평등한 연대적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함께 해야 한다.

특집4. 장애인 차별 철폐를 위해 일합니다 / 2018.04

장애인 차별 철폐를 위해 일 합니다

-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최영은 권익옹호활동가 인터뷰

나래 상임활동가


차별에 맞서 배제에 맞서 희망을 일구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장애인이 지역사회 내 동등한 주체와 구성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접근권, 이동권, 자립생활권리 확보를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활동하는 ‘장애인 권익옹호활동가’다. 지난 3월 29일,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권익옹호활동가로 일하는 장애인 노동자 최영은 님을 만나 장애인 노동자로서 겪고 있는 어려움과 보람, 장애인 노동권 쟁취를 위한 과제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최영은 님은 지체 장애와 뇌병변 장애를 가진 중복장애 1급으로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장애인을 위한 의사소통 어플 「진소리」를 이용했다. 그리고 활동보조인¹ 정지원 선생님도 함께했다.

(사진출처: 최영은 님) 

“올해 권익옹호활동가로 일한지 3년째예요. 저를 포함한 4명의 장애인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다른 일도 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멘토를 하기도 하고, 지금은 장애인인권교육을 나가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영은 님은 5살 때부터 장애인시설에서 살다가 3년 전 탈시설을 하게 되면서 권익옹호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장애인은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으로주한다. 보호의 대상으로 시설에 들어가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이것은 일터와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을 볼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최영은 님도 3년 전에야 시설에서 나올 수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 나오게 됐다. 탈시설을 통한 자립생활 그리고 노동자로서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장애인이 일하는데 가장 심각한 문제는 최저임금 적용 제외 규정이다. 이 규정은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의 원칙에도 어긋나고, 이 위원회가 2014년에폐지를 권고한 사항이다. 무엇보다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여 노동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향상을 기한다는 최저임금제도의 취지 자체에 어긋난다. 다행히 영은 님은 보건복지부의 장애인 일자리 지원 사업으로 재정지원을 받기 때문에 최저임금보다 약간 웃도는 임금을 받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장애인 보호작업장, 직업재활시설에서는 최저임금조차 주지 않고 있는 문제가 심각하다. 더 많은 장애인에게는 일할 기회마저 주어지지 않는다.

“올해 주 20시간 일하고 77만8천 원을 받고 있어요. 노동조건도 많이 좋아졌어요. 연차도 있고, 퇴직금도 있고 센터 측에서 많은 도움을 주고 있어요. 종로청에 요구해서 명절 선물도 받게 됐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이 자기실현, 자기발전의 기회인지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일하면서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자기발전의 기회를 엊는다. 하지만 장애인들은 애초에 노동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영은 님에게 일은 자기 안의 기쁨과 어려움을 발견하는 소중한 순간이다. 3년 동안 활동보조인을 하고 계시는 정지인 선생님께서도 장애인 동료에게 멘토 역할을 하며 서로 사는 이야기, 안부도 전하면서 그분이 자립하자 영은 님이 큰 기쁨을 얻은 적이 있다고 했다.

“전장연에서 발언 요청도 들어오면 A.A.C²로 발언 준비해서 집회에서 발언하는 게 보람돼요. 발언하고 나면 기쁘고, 저 스스로 너무 뿌듯해요. 자신감을 상시키고,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과 경력을 쌓는과정에서 당당한 모습으로 변한 것 같아요. 한편으론 장애인 인권에 대한 집회나 행사에 다 참여하거든요. 가끔 주말에도 나가야 할 때가 있어서 힘들 때가 있어요.”

장애인 일자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정부의 장애인에 대한 관점은 시혜적이기 때문에 일자리 역시 그렇다. 속도와 방식이 다를수밖에 없는 중증장애인들을 같이 일하기 불편해하고, 힘들어한다. 그렇기 때문에 보건복지부의 일자리는 손발과 말이 자유로운 경증 장애인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중증장애인 역시 한 사회의 일원으로써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많은 제도개선과 노력이 필요하다. 영은 님에게 장애인 당사자로서 일하는 장애인이 왜 극소수일 수밖에 없는지 이유를 물었다.

“장애인들의 경제활동이 너무 없다 보니 이런 제도를 알아도 장애인들의 취업 정보가 잘 안 알려지고, 최저임금이 너무 적기 때문에 경제활동을 잘 못 하고 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어요.”

인터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우러지며 배제와 차별 없이 일 할 수 있는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가 되려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영은 님은 어플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전했다.

“장애인, 비장애인 할 것 없이 노동하고 안전한 장소에서 안정적으로 일해야 좋은 일터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장애인이 노동하게 된다면 다양한 정보와 장애유형별로 안내와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용어를 풀어서 설명하고, 휠체어가 다닐 수 있도록 편의시설과 여러 가지 정보가 필요하겠죠.”


* 각주

1) 장애인 활동보조인은 중증장애인이 자기결정권을 갖고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생활하기 위해 일상생활(식사, 신변처리, 세면 등)과 사회활동(외출, 등하교, 교우관계 등)을 원만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활동을 지원해주는 사회서비스 노동자이다. 만 6세 이상 만 65세 미만의 「장애인복지법」상 등록 1급~3급 장애인이 대상이다.

2) A.A.C(Augmentative Alternative Communication)이란 보완대체의사소통을 의미한다.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의 말을 ‘보완(Agumentative)’하거나 말 이외의 방식으로 ‘대체(Alternative)’해서 ‘의사소통(Communocation)’능력을 향상시켜주는 다양한 방법이다. 예를 들어 컴퓨터, 스마트폰 등 장비들을 이용해 장애인이 하고 싶은 말을 기기가 대신 출력해줄 수 있다.

특집3. 사용자에게 부속품 취급 당하는 산재 노동자 - 산재 노동자 유○○ 님 인터뷰 / 2018.04

사용자에게 부속품 취급 당하는 산재 노동자

- 산재 노동자 유○○ 님 인터

재현 선전위원장


장애인 노동자의 건강권을 고민하면서 현장에서 일하다 산재로 장애나 장해가 남은 노동자들이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일하면서 겪는 어려움은 무엇인지 들어보고자 3월 13일 인천에서 한 노동자를 만났다.

일하다 언제 산재 요양을 갔던 건가요?

저는 1978년도에 입사해서 지금까지 ○○○ 회사에서 일하고 있어요. 업무는 자동차 지붕을 칠하는 업무였는데 이 작업을 하다가 낙상해서 허리 척추 1, 2번 4, 5번을 다쳤었죠. 그게 1998년 4월인데 산재를 인정받아서 그해 11월까지 쉬다가 현장으로 복귀했어요.

복귀해서 일할 때 별다른 문제는 없었나요?

그때만 해도 작업 발판이 낮고 미끄러워도 안전조치라는 게 특별히 없었어요. 그러다 사고가 나서 산재 요양을 받고 현장에 복귀했는데 2001년도에 해고를 당했어요. 해고는 왜 당했냐, 기준이 명확한 건 아닌데, 그때 IMF가 오면서 회사 관리자들이 정리해고자 명단을 만들었거든요. 들리는 이야기로는 20점 만점에 10점 이상을 받으면 정리해고 대상자가 된다고 했는데, 산재를 나갔다 복귀한 노동자는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기본 5점을 받았어요. 그러니까 산재 노동자들은 쉽게 해고 대상자가 되었죠. 결국, 1,750명이 해고됐는데 100명 정도가 산재 노동자였고 심지어 요양 중이거나 통원치료 중인 노동자들도 쫓겨났어요.

정리해고도 그렇고 산재 요양 중인 노동자에게 해고는 불법 아닌가요?

노동부 찾아가서 항의하고 그랬죠. 당시에 정부가 400억인가 투자해서 정리해고자들 재취업 기회를 만들겠다고 희망센터를 운영했는데 저처럼 산재 요양을 받았거나 현재 요양 중인 노동자들은 희망센터에서 전화도 안 받아 줬어요. 일하다 다치고 해고당한 것도 억울한데 아무도 나를 받아준다는 곳이 없으니 동료들이랑 복직 투쟁에 전념했죠. 저랑 같은 처지인 산재 노동자 30∼40명 정도가 투쟁했는데 시간이 길어지고 생계가 어려워지니까 다들 떠나가고 5명이 남았어요. 그러다 2002년 12월 23일에 5명이 복직했는데 이미 저는 왕따였죠. 은근히 따돌린다고 해야 하나 동료들이 저랑 얘기도 안 하고 밥도 같이 안 먹고요. 회식이라도 있으면 저는 일부러 늦게 가요. 눈치가 보이니까. 회식자리 가보면 구석에 제 자리가 하나 비어 있었어요. 술따라 주는 사람도 없고 대화도 안 하고 저랑 누가 얘기라도 하면 관리자들이 뭐라 하고요.

대체 왜 그런 거예요?

제가 계속해서 산재 노동자 해고는 불법 아니냐고 복직시키라고 투쟁을 했으니까, 다시 현장을 시끄럽게 할까 봐 감시한 거예요. 하도 왕따 당하고 감시받으니까 나중에는 공황장애가 오더라고요. 지금도 그때 기억이 떠오르면 마음이 아프고 고통스러워서 잠도 안와요.

산재 이후 장해가 남으셨다고 들었는데 일할 때 눈치가 보이거나 압박감을 느끼거나 그런가요?

아무래도 능률이 떨어지죠. 근로복지공단에서 충분히 요양 기간을 주는 것도 아니니까 완전히 회복해서 현장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거든요. 열심히 일하려하는데 몸은 안 따라주고 동료들은 내가 못 따라가는게 보이니까 도와준다고는 하는데 마음이 계속 불편하고 눈치가 보이죠. 그러다 2016년 12월에 오른쪽 어깨가 파열돼서 산재 요양을 한 번 더 나갔고요.

장해가 남은 동료들도 비슷한 상황인가요?

아무래도 그렇죠. 아시겠지만 산재는 로또고 고통이고 파산이에요. 산재 신청을 한다 해도 될지 안 될지 늘노심초사하고, 된다 해도 고통은 남아있고 산재가 안되면 돈이 없으니까 파산하고 가정생활은 불화가 생기고요. 주변에 장해가 남아서 이혼하고 사회생활 못하는 사람도 4명이나 봤어요. 장해 급여를 받으면 돈은 있겠지만 산재 노동자와 가족들 마음에 편안함을 주지는 않거든요. 게다가 중증장애인은 누군가의 보조가 필요하고 도움을 받아야 움직일 수 있으니까 그러다보면 우울증도 생기고 극단적으로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거죠. 그거 아시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다는 거요.

산재 이후 현장에 변화가 없나 봐요?

작업장은 잘 안 바뀌어요. 설비를 투자해서 바꾸려면 돈이 많이 들잖아요. 부서를 바꿔준다고는 하는데 그래 봐야 작업에 부담이 있는 건 비슷하고, 저 같은 경우는 부서를 옮기고 싶어도 다른 라인 작업자들 물들인다고 바꿔 주지도 않았거든요.

요즘 경제도 어렵고 회사도 다시 위기라고 하잖아요. 어떤 심정인가요?

요즘은 잠도 잘 못 자요. 산재 노동자에게 해고는 살인인데 다시 희망퇴직서를 쓰라니 그냥 죽으라는 거죠. 장애나 장해가 없는 사람도 고통스러운데 정말이지 산재 노동자는 회사에 부속품이에요! 부속품!!


특집2. 중증장애인 노동권 실태와 노동권 투쟁의 의의 / 2018.04

중증장애인 노동권 실태와 노동권 투쟁의 의의

정다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중증장애인의 경제 활동 실태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과 빈곤은 별개로 생각할 수 없는 문제이다. 굳이 수치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일단 중증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경우를 보기가 드물고, 직장 생활을 하는 경우는 더 드물다. 장애로 인한 경제적인 부담은 고스란히 가족 구성원에게 떠넘겨지고, 가족이 부양의 부담을 감당하지 못 하는 경우 장애인은 거주시설에 보내진다.

고용과 관련된 여러 가지 통계 자료 중에서도, 전체 인구 통계와 비교하면 눈에 띄게 차이 나는 중증장애인 통계는 바로 현격히 높은 ‘비경제활동인구’이다. 전체 인구의 경우, 10명 중 3.6명이 비경제활동인구지만 중증장애인 비경제활동인구는 10명 중 7.8명이다. 이처럼 중증장애인의 현격히 높은 비경제활동비율은 더욱 질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하면 취업을 하지 않은 중증장애인을 경제활동인구인 실업자로 볼 것인가, 비경제활동인구로 치부하고 기생적 소비계층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이다. 실업자는 노동을 제공할 ‘의사’와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구직활동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중증장애인은 전체 인구보다 노동할 ‘의사’가 부족한가? 혹시 노동할 ‘능력’을 의심받는 존재로 여겨지는 것은 아닐까? 중증장애인은 왜 구직활동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가?

중증장애인에게 노동권이란 단순히 생존의 문제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의 독립된 구성원으로서 자기 삶을 계획하고 결정할 수 있는 기반의 문제이기도 하다. 대부분 중증장애인은 노동할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 비장애인 중심의 노동 환경에서 ‘능력’을 의심받으며 ‘훈련’만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왜 중증장애인들이 구직을 포기하겠는가? 중증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일자리와 제도가 뒷받침된다면 중증장애인도 노동을 선택할 수 있다. 이 사회는 그 선택지 자체를 고려하지도, 만들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을 뿐이다. 장애인이 ‘노동할 수 없는 사람’으로 복지서비스에 머무르며 보호받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노동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노동을 선택할 수 있도록 ‘중증장애인이 접근 가능한 노동’을 정책으로 만들어야 한다.

중증장애인이 접근 가능하며 사회 통합적인 노동

‘중증장애인이 접근 가능한 노동’으로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제14조’에서는 보호 고용을 정의하고 있다. ‘보호 고용’이란 정상적인 작업 조건에서 일하기 어려운 장애인을 위하여 특정한 근로 환경을 제공하고 그 근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보호 고용의 본 취지는 근로 경험이 없는 중증장애인에게 일할 기회를 제공하고 후에 일반 고용으로의 전환을 유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보호 고용을 제공하는 직업재활시설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선 짚어볼 문제점은, ‘최저임금법 제7조 장애인 최저임금 적용 제외’에 따른 최저임금 적용 제외 인가 인원의 94.4%가 직업재활시설에서 노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저임금법 제7조에 따라 장애인을 고용한 사업주는 지방고용노동관서에 장애인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제외 인가를 신청한 후, 정해진 절차를 거쳐 인가를 받으면 장애인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직업재활시설은 이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매년 20~30개씩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최저임금 적용 제외 인가 장애인 인원수도 3,436명(`12년)→8,108명(`16년)으로 늘어나고 있다.

또한, 중증장애인 생산품 우선 구매 제도, 기능보강사업, 고용장려금 등의 여러 가지 직업재활시설 지원 제도에도 불구하고 직업재활시설의 많은 중증장애인은 보호 고용에서 경쟁 고용으로 전환되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 복지라는 이름으로 장애인을 지역사회로부터 격리하고 배제했던 ‘장애인 거주시설’과 마찬가지로 직업재활시설도 장애인의 노동에 있어서 사회 통합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된 것이다. 요컨대 모든 일터가 중증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장애인의 사회통합이 가능하다. 중증장애인을 한데 모아 그들만이 노동하는 보호 고용은 ‘중증장애인이 접근 가능한 노동’일 수는 있어도, 사회 배제적인 요소가 다분하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방향이 될 수 없다. 실제로,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는 ‘한국의 장애인권리협약 이행 상황에 대한 유엔의 최종 견해’¹에서 ‘심리사회적 장애를 가진 장애인이 결과적으로 최저임금 이하의 보상을 받는 것과 개방된 노동시장으로 진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 보호 작업장이 지속되는 것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민간 기업에 책임을 떠넘기는 ‘의무고용제도’는 이미 한계를 드러내 

장애인고용법 시행 25년이 되어가고 의무고용 이행률도 많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의무고용률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의무고용을 준수하지 않았을 때 내는 고용부담금 현황을 살펴보면 2016년 기준으로 민간 기업은 4,424억 원, 공공기관은 150억 원, 국가 및 지자체는 28억 원을 냈다. 특히 대기업일수록 의무고용 이행률이 낮다는 것은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다. 부담금을 내지 않기 위해 장애인을 고용하려고 하기보다는 부담금을 내는 방식을 간편하게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의 이와 같은 행태에도 고용노동부와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기업의 의무고용 이행을 위해 과연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왜냐하면,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기업들이 낸 고용부담금으로 조성된 ‘장애인 고용촉진 및 직억재활 기금’으로부터 운영비와 사업비를 출연받기 때문이다. 의무고용제도는 한국의 주된 장애인 고용 정책이지만 그것을 이행하면 운영비가 고갈된다. 정부가 장애인 고용 정책에 대하여 일반 회계를 투여하지 않는 한, 모순적인 상황일 수밖에 없다.

「기업체 장애인고용실태조사(2016)」를 통하여 장애인 근로자 채용이 쉽지않은 이유를 조사하였는데, ‘장애인에게 적합한 직무가 부족해서(32.0%)’, ‘업무 능력을 갖춘 장애인이 부족해서(20.6%)’, ‘장애인 지원자 자체가 없어서(12.1%)’라는 응답 결과가 나왔다. 기업의 이윤과 효율을 중심으로 문제를 진단한다면, 장애인의 노동력은 평가의 대상일뿐이며 비장애인보다 능률이 떨어지는 존재일 뿐이다. 결국, 장애인 고용률을 높이기 위한 처방으로 장애인을 기업이 원하는 수준만큼 훈련만 반복하는 것 이상이 제시되지 않는다. 

중증장애인 노동권 정책 요구 3가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장애인 고용 정책은 그 심각성에 비해 민간의 영역으로만 떠넘겨져 있기 때문에 국가 주도의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2017년 11월 21일부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소속 장애인 당사자와 장애인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은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사에서 중증장애인 노동권 보장을 위한 3가지 정책을 요구하며 85일간 점거 농성을 했다. 그 결과 고용노동부와 장애계 간의 민관협의체가 구성되어 정책협의를 진행 중이다.

정책 요구 첫 번째는 중증장애인 특성과 속도를 고려한 신규 ‘공공일자리’ 1만 개를 창출하는 것이다. 중증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한 사회적 활동, ▲장애인동료 상담 활동 ▲장애인 인권 옹호 활동 ▲장애인인식개선 활동 ▲장애인 민원 안내 활동 ▲장애인문화 예술 활동 등을 종합적인 직무로 구성하여, 그 업무를 신규 ‘공공일자리’로 만들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로 장애인 최저임금 적용 제외 규정 (최저임금법 제7조) 폐지 및 지원 대책 마련하는 것이다. 최저임금제도의 취지는 취약한 노동자 계층을 지나친 저임금으로부터 보호한다는 사회적인 관점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에 가장 취약한 노동자 계층인 중증장애인에 대해서도 예외일 수 없다.

세 번째로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사업을 중증장애인 중심으로 전면 개혁하고 선 배치·후 훈련 제도인 ‘지원 고용’을 확대하는 것이다. ‘지원 고용’이란 일반 사업장에 중증장애인을 우선 취직시키되, 중증장애인의 적응을 돕는 ‘직무지도원’이라는 인력을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직무 지도원은 장애인의 직장으로 찾아가 작업 분석, 직무 분석, 환경 분석, 고용주와 직장동료와의 대화 등을 통해 장애인이 직업기술을 현장에서 배우고 적응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²을 한다. 장애인 고용 패러다임이 분리에서 통합으로 전환되고 있는 시점에서 지원 고용은 대폭 확대되어야 한다.

마치며

중증장애인은 노동시장에서 지워진 유령 같은 존재였다. 소득과 직업이 필요한 중증장애인이라 할2009지라도 ‘실업자’라는 인정도 받지 못했고, 오랜 시간 동안 비경제활동인구로 방치됐다. 즉, 노동하고자 하는 의지와 능력이 없는 사람들로 취급받아온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라는 출연기관에 모든 것을 떠넘겼고, 공단은 기업이 내는 부담금으로 근근이 연명하며 기업이 원하는 대로 장애인의 노동력을 평가하고 관리·감독하는 기관이 되었다. 직업재활시설은 중증장애인의 노동을 저임금·사회 분리 정책으로 전락시켰다.

돌이켜보면 ‘장애인 운동’이란 교육권·이동권·사회서비스권리·주거권 등 수많은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를 조금씩 바꾸는 것이었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통해 일반 버스를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탈 수 있는 저상버스로 바꾸었더니 모든 사람이 버스를 편리하게 탈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모든 일터가 중증장애인이 접근 가능한 일터가 된다면? 모든 사람이 성과와 효율 중심으로 평가받지 않고, 고유의 특성을 존중받으며 안전하게 일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중증장애인의 노동권 투쟁은 단지 장애인만의 문제로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윤과 효율 중심의 한국 사회 전체를 바꾸는 투쟁으로 나아갈 것이다.


* 각주

1) 한국 국회는 2008년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함. 이에 한국 정부가 제출한 국가 보고서를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 심의하여 2014년 9월 30일에 채택함.

2) 네이버 지식 백과 참조

- 국립특수교육원, 특수교육학용어사전, 2009

특집1. 만인을 위한 노동사회의 유니버설 디자인 - 노동시장으로의 참여를 넘어 공공시민노동 체제로 / 2018.04

만인을 위한 노동사회의 유니버설 디자인

- 노동시장으로의 참여를 넘어 공공시민노동 체제로

노들장애학궁리소 김도현 연구활동가


장애인 노동권, 그 엄혹한 현실에 대하여

3년마다 보건복지부가 시행하는 장애인실태조사 자료에 의한 2014년 장애인의 실업률은 6.3%로 같은 기간 전체 인구 실업률 3.5%의 1.8배 정도이다. 그러나 정부가 얘기하는 실업률이라는 것이 워낙 기만적이어서 실제 사람들이 느끼는 실업률과는 큰 차이가 난다. 장애인의 경우 15세 이상 노동 가능 연령 인구 중 2/3에 가까운 61.0%가 비경제활동 인구로 분류되어 있어(전체 인구에서는 36.9%가 비경제활동인구임), 사실 공식적인 실업률은 별 의미가 없다. 더구나 보건복지부는 오랫동안 장애인 실태조사에서 실망실업자가 포함된 실업률을 산정하였고 이것이 공식적인 실업률로 주로 사용되었지만, 2008년도부터는 아예 이를 누락시켰다. 그래서 장애인계에서는 경제활동인구와 비경제활동인구를 구분하지 않은, 전체 노동 가능 연령 인구 중 미고용률 63.4%가 훨씬 더 의미 있는 수치라고 보며 전체 장애 인구 중 70% 가까이가 실업 내지는 반실업 상태에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사진 출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그러나 이렇게 취업해 있는 36.6%의 장애인들이 처해 있는 노동 환경 역시 열악함을 면치 못하고 있다. 임금 노동자 중 임시직(28.8%)과 일용직(31.4%) 비율의 합이 60.2%로, 고용계약 기간이 1년 이상인 상용직의 비율은 39.8%에 불과하다. 그리고 취업 장애인의 임금 수준은 153만 원으로 우리나라 전체 상용 노동자 평균임금 329만원(고용노동부,「사업체 노동력조사」(2014년 2/4분기), 5인이상 사업체)의 46%에 불과한 수준이다. 한마디로 장애인에게는 건강한 일자리가 존재하지 않으며, 일하면서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불인정노동자로서의 장애인

소위 자본주의 중심부 국가이자 장애 정책이 잘되어 있다고 하는 나라들도 장애인의 고용률에서는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은 수치를 보여준다. 한국의 장애 인권이나 장애인복지 관련 지표들을 살펴보면 거의 모든 것들이 OECD 34개 회원국 중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지만, 2000년대 후반 장애인 고용률은 OECD 국가 평균과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¹ 그리고 이는 ‘장애(인)’이라는 근대적 범주의 형성 과정을 이해한다면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다.

자본주의의 형성기, 즉 본원적 축적기는 토지에서 쫓겨났지만 임노동 관계에 편입되지 못했던 소위 ‘부랑자’가 대량으로 양산된 시기였다. 느리고 자율적이며 유연한 형태의 노동에 익숙해 있던 많은 사람은 칼 맑스(Karl Marx)가 『자본』에서 사용한 표현을 빌자면 “별다른 도리가 없어서” 그렇게 부랑자가 되었는데, 이들을 임노동 관계로 포섭하기 위해 국가는 강제 수용과 훈육 정책을 실시하게 된다. 서구 사회복지 역사에서 등장하는 구빈원(workhouse)은 바로 이러한 강제 노동과 결합한 수용소였다.

그런데 구빈원에서는 일정 시점부터 효과적인 훈육과 나태의 방지를 위해 수용자들을 분류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핵심적인 목표는 ‘일 할 수 없다고 간주한 사람들’을 일할 수 있지만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로부터 분리하는 것이었다. 구빈원과 같은 시설 밖에서의 구제 조치(원외 구제)를 폐지한 영국의 1834년 「개정구빈법」(The Poor Law Amendment Act)은 빈민들을 분류하면서 아동, 병자, 광인, 심신결함자(defective), 노약자(the aged and infirm)를 특별히 중요한 다섯 개의 범주로서 설정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범주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잔여적인 방식으로 노동 능력자로서 간주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러한 다섯 가지 범주 중 아동을 제외한 네 가지 범주가 바로 장애인을 구성하게 된다.

즉, 일을 할 수 있는 몸(the able-bodied)을 선별하기 위해 일을 할 수 없는 몸(the disable-bodied)을 명확히 규정하고자 했고, 이로부터 오늘날과 같은 ‘장애인’(disabled people)라는 개념이 발명된다.² 요컨대, 근대 사회로의 전환기에 생겨난 장애인이라는 범주는 근대의 자본주의적 노동에서 배제 당해온 사람들, 즉 ‘불인정 노동자’(不認定 勞動者, unrecognized worker) 집단을 가리켰던 개념인 것이다.³

노동개념의 혁신과 공공시민노동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장애인의 노동권이 보장되는 사회로의 전환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 필자는 그러한 전환을 ‘공공시민노동’이라는 개념의 확립과 시스템의 구축을 통해 만들어가자고 제안하고 싶다.

기본적으로 공공시민노동이라는 ‘개념’은 다음과 같은 문제의식을 전제로 한다. 첫째, 노동은 상품이 아니라는 것. 오스트리아 출신의 경제인류학자 칼 폴라니(Karl polanyi)는 근대 자본주의가 노동·토지·화폐를 상품처럼 다룸으로써 시장경제 체제를 확립했지만, 그것은 단지 ‘상품 허구’(commodity fiction)일뿐이며 노동·토지·화폐는 결코 본래적인 의미에서의 상품일 수 없다고 말한다. 상품이란 판매를 위해 생산되는 것인데, 토지는 자연의 다른 이름이고, 노동이란 인간의 다른 이름이며, 화폐는 신용관계의 매개물이기 때문에, 판매를 위해 더 생산하거나 덜 생산할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1944년 개최되었던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서는 통상 ‘필라델피아선언’이라고 불리는「국제노동기구의 목표와 목적에 관한 선언」을 채택하게 되는데, 이 선언에서 가장 먼저 제시되고 있는 원칙도 바로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둘째, 노동은 헌법의 정신에 따라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시민권, 즉 ‘권리’로 존재해야 하며, 더구나 노동(근로)은 단지 ‘권리’인 것만이 아니라 교육과 마찬가지로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라는 것. 대한민국의 헌법은 제32조 ①항에서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라고 노동할 권리를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②항에서 “모든 국민은 근로의 의무를 진다”라고 적시하고 있다. 그런데 어떤 것이 이처럼 권리이자 동시에 의무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교육의 예에서 명확히 드러나는 것처럼 민간(시장)의 영역에 방치되어서는 안 되며, 공적인 개입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만 한다. 예컨대 공교육이 존재하지 않고 사교육(교육시장)만이 존재한다면, 혹은 공교육+‘α’의 위상으로 사교육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교육+‘α’의 위상으로 공교육이 존재한다면, 교육은 결코 권리도 될 수 없고 국가가 부과하는 의무도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노동이 하나의 권리이자 의무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노동 역시 시장이 아닌 공공의 영역에 존재하거나 최소한 공공의 영역에 의해 통제될 수 있어야만 한다. 즉 공공시민노동+‘α’의 위치에 노동시장이 자리매김 되도록 함으로써, 일정 연령 이상의 모든 이들에게 기본적으로 공공이 노동의 기회를 보장해야만 하는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공시민노동 ‘정책’은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원칙을 따른다. 첫째, 공공시민 노동을 통해 제공되는 급여는 전체 상용노동자 평균 임금의 50% 이상(2014년을 기준으로 하자면 최저 약 165만원)에서 정해진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터무니없이 낮은 민간영역의 최저임금을 견인하는 효과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공공시민노동으로 인정되는 활동은 국가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흔히 ‘제3섹터’라고 불리는 광범위한 시민사회의 다양한 단위들과 공공시민노동을 하려고 하는 개인들 자신으로부터 신청을 받는다. 그리고 그러한 단위 및 개인이 신청한 활동이 공공시민노동에 합당한지는 기초지방자치단체 단위로 꾸려지는 ‘공공시민노동위원회’에서 심의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위원회에는 여성·성소수자·장애인·노인·이주민·청소년 등의 소수자를 포함해서 지역사회를 대표할 수 있는 다양한 시민위원들이 2/3 이상 참여를 한다. 물론 이러한 위원회와는 별도로 ‘공공시민노동청’도 중앙과 지방에 필요한데, 공공시민노동청은 기본적인 행정 업무를 총괄하는 것과 더불어, 보다 핵심적으로는 공공시민노동을 하기를 원하지만 스스로 적절한 활동을 찾거나 개발하지 못한 이들을 지원하는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한편, 공공시민노동위원회에서 이루어지는 공공시민노동으로의 인정에 대한 심의 기준은 ‘해당 개인이 지닌 현재적 조건 및 능력’에 비추어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물질적·정신적·정서적 삶에 기여’를 하는가의 여부 이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기준을 적용할 경우 현재 매우 심각한 정신적 장애를 지니고 있거나 식물인간 상태에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그들의 생존 활동 자체를 노동으로 인정하게 된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노동이란 ‘해당 개인이 지닌 현재적 조건 및 능력’에 비추어 판단되며, 그/그녀의 생존(활동)은 그/그녀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회구성원들에게 상당한 정신적·정서적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도 학업노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인정하여 일정 수준의 급여를 단계별로 지급하게 되는데, 왜냐하면 학생들의 학업은 이 사회가 유지·발전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활동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상이 실현될 수 있다면,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출현과 더불어 노동을 할 수 없다고 치부됐던 중증장애인이나 발달장애인들도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한 만큼은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여성(또는 남성)의 가사 활동도 새롭게 그 가치를 공인받을 수 있으며, 현재 광범위한 사회문제가 되는 청년실업 문제도 실질적인 돌파구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공공시민노동의 적용 집단이 점차 확대되고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아가면서 노동에 대한 정의와 관념이 일정하게 재구성될 수 있다면, 그 토대 위에서 기본소득 제도의 도입도 병행해 추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동의 재구성을 통해 만인을 위한 노동사회가 구축될 때에만, 노동은 다른 사람을 밀어내야만 내가 앉을 수 있는 ‘의자놀이’가 아니라 장애인을 포함한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자기 삶의 가치를 실현해 나가기 위한 하나의 시민권으로서 자리매김 될 수 있을 것이다.


* 각주

1) 김성희 외, 『장애인 복지지표를 통해 살펴 본 OECD 국가의 장애인 정책 비교 연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1, 122쪽.

2) Michael Oliver, The Politics of Disablement, St. Martin’s Press: New York, 1990, pp. 32~34.

3) 김도현,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 메이데이, 2007, 72쪽.

특집 3. ‘일하는 사람’이 빠진, ‘일하는 사람’을 위한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 / 2018.03

‘일하는 사람’이 빠진, ‘일하는 사람’을 위한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

권종호 선전위원


한국은 OECD 가입 이후 꾸준히 산재 사망률 1·2위를 차지해왔다. 2016년 한 해에도 1,776명이 산재로 사망하였고 그중 969명은 업무상 사고로 사망(전체 산재 사망자-업무상 질병 사망자)하였다. 업무상 질병으로 인한 사망이 일반 질병에 의한 사망으로 과소평가될 가능성을 고려해 업무상 사고사망으로만 한국의 노동안전보건 수준을 평가하기 위해 지금까지 발표된 자료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지난 2008년부터 2016년까지 사고사망 만인율은 지속해서 감소하여 0.53까지 감소하였다. 하지만 아직도 969명의 목숨이 안타까운 사고로 사망한다는 점에서, 일본, 독일 등의 사고사망만인율은 0.19, 0.16에 불과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심지어 영국은 0.04에 달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산재 사망은 아직도 심각한 수준이다. 여기에 그동안 은폐되고 저평가되어 온 업무상 질병 사망까지 생각해 본다면 한국의 노동안전보건 상황은 처참한 지경이다.

고용노동부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2월9일,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법률안’을 입법예고하였다. 그동안 다른 노동 관련법보다 상대적으로 빈번하고, 꾸준히 부분 개정되었음에도 법 개정 요구가 끊이지 않았던 산업안전보건법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부개정이라는 강수를 둔 것이다. 1990년 이후 28년 만에 이루어지는 전부개정이라는 점이나 2022년까지 산업재해 사고사망자를 절반 수준으로 감축하기 위해 그간 발표한 중대 산업재해 예방대책 등의 내용을 모두 포함하려 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고용노동부는 이번 개정의 취지를 다음과 같이 명시했다.¹⁾ ‘산업재해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모든 사람이 안전한 일터에서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하여 법의 보호 대상을 일하는 모든 사람으로 넓히고, 발주자ㆍ도급인 등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책임 주체를 확대하며, 법 위반에 대한 처벌 수준을 상향하고 제재수단을 다양화하여 법의 실효성을 제고하고자 함. 

아울러, 산업재해 발생의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근로자가 작업을 중지하고 긴급대피 할 수 있음을 명확히 하고, 사업주가 작업을 중지하고 긴급대피한 근로자에게 불이익 처우를 한 경우에는 형사적 제재를 할 수 있도록 함. 한편, 생산기술이 급속하게 발전함에 따라 산업현장에서는 새로운 화학물질이 생산 공정에 경쟁적으로 도입되고 있으며, 특히, 유해하거나 위험한 물질의 경우에는 근로자의 안전과 건강에 치명적인 위험이 될 수 있으므로 이를 국가가 관리하기 위하여 유해하거나 위험한 화학물질을 제조하거나 수입하는 자로 하여금 물질안전보건자료를 작성하여 고용노동부장관에게 제출하도록 하고, 영업 비밀을 이유로 화학물질의 구성성분 등 일정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기 위해서는 고용노동부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함.

그 밖에 국민이 내용을 파악하기 쉽도록 법체계를 정비하고, 법 문장 중 어려운 용어를 쉬운 용어로 바꾸고, 길고 복잡한 문장을 간결하게 하는 등 국민이 법 문장을 이해하기 쉽게 하려는 것임. 

위와 같은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의 ‘취지’는 그 자체로 환영할 만하다. 노동자와 노동 안전보건운동진영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와 요구가 일부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정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러한 취지를 실현하기에는 매우 역부족이다. 다음은 이번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에 대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입장²을 정리한 것이다.

첫째, 법의 보호 대상 확대가 매우 제한적이다. 개정법안 제77조(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산업재해 예방), 제78조(배달종사자에 대한 안전보건조치), 제79조(가맹본부의 산업재해 예방 조치) 등은 변화되는 다양한 고용형태 속에서 노동자 보호의 확대라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나 특수형태 근로종사자의 일을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점, 플랫폼(platform) 노동자 중 유독 배달중개업의 이륜차 배달노동자만을 특정하여 보호 대상으로 한 점 등은 ‘법의 보호 대상을 일하는 모든 사람으로 확대’하겠다는 취지에 비춰볼 때 한참 부족하다. 개정법안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나름 혁신적인 개념을 도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이에 대해 제대로 된 ‘정의’가 법안 어디에도 없고, 보호 대상의 확대나 사업주의 책임에서 효과적인 규정 또한 없다는 점은 법 개정의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

둘째, 급박한 위험시 작업중지 강화 및 중대재해 발생 시 조치 강화가 미흡하다. 개정 이유에서‘산업재해 발생의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근로자가 작업을 중지하고 긴급대피 할 수 있음을 명확히 하고, 사업주가 작업을 중지하고 긴급대피한 근로자에게 불이익 처우를 한 경우에는 형사적 제재를 할 수 있도록 함’으로 명시하였으나 개정법은 현행법을 분리하여 재배치하고, 대피 노동자 불이익 처우에 대한 벌칙을 추가하였을 뿐 내용적 진전이 없다. ‘급박한 위험’은 그 해석이 매우 협소하여 중대재해를 막을 수 없기에 최소한 ‘급박한 위험’과 더불어 산업안전보건법에 규정된 ‘안전과 보건조치가 미비할 경우’를 추가해야 할 것이고, ‘일하는 주체’로서 노동자의 중지(거부 및 대피권)를 명시적으로 부여해야 하며, 동시에 근로자대표, 산안위 위원 또는 명예산업안전감독관에게 작업중지를 할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또한, 작업 재개 시에도 해당 작업 노동자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

셋째, 유해하거나 위험한 작업의 도급 제한, 도급인의 산업재해 예방 책임확대/건설공사에 관한 특례 등을 통해 위험의 외주화를 막고자 하였으나 여전히 부족한 지점이 많다. 개정법안에서 는 도금, 수은, 납 등 12개 물질에 한정하여 도급을 금지하고 있고, 도급금지 범위확대에 대한 논의나 절차 관련 조항이 전혀 없다. 원청이 적격수급업체를 선정하도록 하는 안도 적격기준의 세부 내용을 찾을 수 없고, 이를 위반할 시 처벌조항도 없다. 또한, 노동 현장의 다양한 기형적인 임대차 계약 형태에 대한 이해와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포괄적인 책임 부과 및 외주화 제한은 법안에 담기지 못했고 발주처의 책임 강화를 건설공사로 한정함에 따라, 하청의 산업재해가 다발하고 있는 대표적인 화학 산업단지, 제철소, 발전소 등에 대한 근본 대책도 빠졌다.

넷째, 물질안전보건자료와 관련하여 비공개 정보에 대한 사전 승인제도를 도입하고 비공개 승인의 유효기간(3년)을 정하는 한편, 대체정보 기재의무를 규정한 것은 바람직하다. 다만 관련 심의(비공개 승인 여부와 대체정보의 적정성에 대한 심의)를 산재보상보험예방심의위원회에 맡기는 것이 적정한지 의문이며(개정안 제115조제6항), 심의의 기준과 절차에 대한 세부규정이 구체적으로 마련되어야 할 것이며, 심의위원회의 구성과 운영에 있어 노동계의 참여를 구체화하여야 한다. 아울러 심의를 위해 제출되어야 하는 자료와 그 자료의 보관, 공개에 관하여도 세부적인 규정이 필요하다. 정보 요구권자를 확대한 것은 바람직하나, 여전히 개별 근로자에게는 정보 요구 권한을 부여하지 않고 있고, “근로자의 안전ㆍ보건을 유지하거나 직업성 질환 발생원인을 규명하기 위하여 근로자에게 중대한 건강장해가 발생하는 등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경우”로 요건을 엄격하게 정하고 있으며 대상물질을 양도ㆍ제공하는 자 또는 이를 취급하는 사업주에게 해당 정보를 제공하게 되어있어 과연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다섯째, 개정이 필요한 사항임에도 언급조차 되지 않은 부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먼저, 산업안전보건위원회의 필참 성원이며, 주로 노동자 조직 추천으로 선임되는 ‘명예산업안전감독관’임에도 불구하고, 작업 현장에서의 별다른 권한(예컨대 대체정보로 기재된 구성성분의 명칭 및 함유량 정보에 대한 자료 제공 요구권, 자료 열람권, 작업중지권 등)이 없다. 개정법안이 이에 대해 어떠한 고려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실망스럽고, 노동자의 참여와 권리 보장에 대한 정부의 기본 태도가 무엇인지 재차 확인하게 되는 지점이다.

또한, 건강은 신체와 정신의 조화라는 점, 노동현장에서 정신건강의 문제가 크게 대두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개정이 진정한 ‘전면 개정’이되기 위해 정신 건강에 대한 내용이 적극적으로 포함되었어야 한다. ‘업무수행이나 이와 관련한 인적·물적 환경에 따른 신체적 피로 및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건강장해’에 대한 예방의 의무를 사업주에게 부과하여, 고객 응대뿐만 아니라, 일터 괴롭힘을 포함한 정신건강을 저해하는 노동환경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현행법의 매우 모순된 규정에 의하여 산업안전보건위원회의 심의 자체를 무시할 수 있는 법 불비 사항이 존재하고 있다. 의결된 사항을 지키지 않으면 처벌을 받게 되나, 아예 명시된 심의안을 올리지 않으면, 사업주 임의대로 할 수 있다는 맹점이다. 전부개정안에서는 이점이 개선되어 사업주의 악의적인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심의절차 무시를 제어하여야 한다. 이상의 내용으로 볼 때 정부의 개정안은 방향에 있어 일부 타당하나, 그 내용은 부실하여 전부개정에 부합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강조한 생명존중, 노동존중 그리고 산업재해의 획기적 감소의 핵심 관건은 ‘일하는 사람’의 참여와 권리 보장이다. 

이를 제대로 실현하기 위해 다음의 내용을포함하여 구체화되어야 한다.

첫째, 보호 대상의 확대가 ‘일하는 사람’으로 전면화되어야 하고 이에 대한 보호 책임자도 사업을 통해 이득을 보는 자로 확대되어야 한다. 둘째, 보호 대상자는 보호의 대상임과 동시에 권리의 주체로 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작업중지의 주체, 정보청구와 수합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셋째, 신체 건강과 동시에 정신 건강이 보호 예방의 영역에 속해야 한다. 진정한 의미의 ‘전면 개정'이라면 업무 성과를 만들기 위한 졸속인 짜깁기가 아니라 현재 법에 부족한 철학을 보충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녹여내는 것부터 시작해 그것이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틀을 짜내는 것으로 마무리되어야 할 것이다.


* 각주

1) 고용노동부공고제2018-66호,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법률(안) 입법예고, 1. 개정이유

2)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 법률안에 대한 입장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2018.02. http://www.kilsh.or.kr/

특집 2. 작업중지권 개정안이 한계적인 이유 / 2018.03

작업중지권 개정안이 한계적인 이유

중대재해 예방과 작업중지권 실현을 위한 당장멈춰 상황실


현대 위험사회와 산안법의 제도적 한계

지난 2월 9일 고용노동부가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전부개정법률안’을 입법 예고했다. 정부는 ‘제안 취지’에서 ‘산업재해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모든 사람이 안전한 일터에서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하여’ 산안법 전부 개정을 실시한다고 이유를 밝혔다. 이는 기존의 산안법이 변화된 노동환경과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효과적인 예방을 달성하기에는 일부 개정만으로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개정안의 취지는 그 자체로 매우 반가운 것이다. 1981년 제정되어 현재까지 수많은 개정을 거쳐 왔지만 여전히 산안법은 현대 사회의 위험을 관리, 통제하는 예방적 기능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구조적으로 엄청나게 위험성을 내포하게 된 현재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과 물자, 자본과 정보의 이동, 엄청난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 위험이 대형화, 고도화, 집적화, 복합화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국지적이고, 지엽적인 수준의 사고가 한국사회를 뒤흔들 정도로 폭발력이 향상됐고, 사고가 대형화되고, 국가적 재난이 되고 마는 현실에 놓이게 됐다. 언론을 통해 종종 마주치는 산업단지에서의 화학물질 누출 사고와 폭발, 건설현장에서의 크레인 붕괴 등 의 예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그렇지만 그동안의 성장 위주의 경제개발 정책은 이러한 위험을 관리, 통제하는 데 소홀했다. 그에 따른 결과 OECD 국가 중 ‘산재 사망 1위’라는 오명으로 이어졌다. 한마디로, 경제성장 속도만큼 노동자는 더욱 취약한 노동환경에 내몰리고, 그 위험을 고스란히 일차적으로 노동자가, 그리고 그 결과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사회가 떠안아야 했다.

따라서 정부의 ‘산업재해를 획기적으로 줄이겠다’는 선언은, 선언 그 자체로 달성될 수 없고, ‘보호와 예방’을 강화하기 위한 관련 법 제도의 정비를 비롯하여 인력, 예산 등의 투입이 동반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더불어 재해 예방 활동에 가장 적극적인 주체로 노동자가 자신의 현장에서 대응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살펴본다면, 고용노동부의 산안법 전부 개정안 중 작업중지권에 대한 개정안은 매우 실망스러운 결과이다.

정부의 작업중지 개정안의 한계

개정법안은 ‘근로자가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수 있음을 명확히 하고, 대피한 근로자에게 불이익 처우를 하는 경우에는 형사책임을 부담하도록 함’을 주요한 내용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개정법은 기존 제26조의 각 항을 각 조문으로 분리하여 재배치¹하고, 대피 노동자에 대한 불이익 처우에 대한 벌칙을 추가하였을 뿐 내용적 진전이 없다. 오히려 작업중지의 행사 주체를 명확히 분리함에 따라 마치 적극적 작업중지권은 사업주에게 있고, 노동자에게는 소극적인 대피 권한만이 부여될 뿐이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 


신설된 조항 제53조와 제54조에 있어, 중대재해 발생 시사업주와 고용노동부의 역할을 명확히 하고, 고용노동부의 작업중지 명령 근거, 요건, 절차를 구체화한 것은 진일보한 측면이라고 평가할 만 하다. 그러나 이조차도 문재인 대통령이 작년 7월3일, 제50회 '산업안전보건의 날'에 "사망사고 발생 사업장의 안전 확보는 현장 근로자의 의견을 듣고 확인하겠다"는 메시지를 발표한 이후 고용노동부가 '작업중지 해제를 판단할 경우 현장 노동자의 의견을 청취하고 외부 전문가가 포함된 심의위원회에서 현장의 위험 개선 사항과 향후 작업 계획의 안전 여부를 검토해 결정토록 한다'고 운영기준을 제시한 것을 법 제도적으로 반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이 지침에서 가장 중요하게 강조했던 작업중지 해제 시 노동자의 의견 청취 등은 개정안에 반영하지 않았다. 따라서 작업중지 관련 개정안에서 여전히 노동자는 보호받는 객체일 뿐, 재해예방의 적극적 주체가 아니다.

일터에서 작업중지를 통한 예방 활동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현행법을 개정하여 노동자 대표, 산업안전보건위원, 명예산업안전감독관 등에게 작업중지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개정안에는 그동안 지속해서 문제 제기 됐던 독소조항인 ‘급박한 위험’이 그대로 살아있다. 그 해석이 매우 협소하여실제 사고가 발생한 현장에서 작업중지를 한 노동자에게 회사가 ‘급박한 위험이었냐, 아니냐’를 두고 해고위협을 포함한 손배 청구 등 유무형적 압박을 가했던 점을 돌이켜본다면, ‘급박한 위험’이라는 독소조항을 제거하지 않는 한 작업중지나 대피한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처분할 수 없고, 처벌을 하겠다고 명시한 것이 어떤 실제적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 각주
1) 
제51조(사업주의 작업중지), 제52조(노동자의 긴급대피), 제53조(고용노동부장관의 사용중지 명령 등), 제54조(중대재해 발생 시 사업주의 조치)

특집 1. 일하는 사람은 언제까지 보호의 대상일 뿐인가 / 2018.03

일하는 사람은 언제까지 보호의 대상일 뿐인가

-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에 대해서

재현 선전위원장


문재인 정부가 지난 1월 10일 신년사를 통해 앞으로 5년간 자살, 교통사고, 산업재해 분야에서 사망자 수를 대폭 줄이기 위한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에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프로젝트 목표로 2022년까지 2016년 대비 산업재해 사망자 수를 50%로 감축하겠다고 한다. 지난 1월 23일 이낙연 국무총리는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국민생명 3대 지키기 프로젝트’를 위한 산업재해 사망사고 감소대책을 의결하였다.

이어서 고용노동부는 지난 2월 9일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 실현을 위한 방안으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 법률안’을 입법 예고하였다. 반쪽짜리 프로젝트가 아니려면 이번 프로젝트는 대선 후보 시절부터 대통령 당선 이후 안전 사회를 위해 한국 사회의 프레임을 바꾸겠다며 팔을 걷어붙였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를 실현하기 위해선 범정부 차원의 노력은 물론, 개별 자본을 강제해야 하는 등 험난한 과정을 앞두고 있다. 게다가 설령 정부와 자본이 나선다고 해도 현재 노동자의 권리와 권한을 보장하고 확대하는 방안이 언급조차 안 되고 있어 이 프로젝트가 ‘빛 좋은 개살구’가 되는 건 아닌지걱정이 앞선다.

안전보건에 있어서 노동자 참여 보장해야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 첫 번째 중점 추진과제로 ‘주체별 역할. 책임 명확화 및 실천’을 꼽았다. 가령 지금의 산재 사망을 줄이기 위해 우선 법 제도를 개정하여 발주자의 안전관리 의무를 규정하고, 원청의 안전관리 역할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이로써 원청이 관리하는 모든 장소에서, 원청 회사는 하청노동자의 안전까지 관리하고 책임지도록 의무를 부여 하였다. 수은, 납, 카드뮴 제련 등 고유해 위험 작업 역시 도급 자체를 금지한다는 입장이다. 마지막으로 사업장에서 노사가 함께 위험요인을 평가하여 자체적으로 개선하도록 하는 ‘위험성평가’제도가 실효성 있게 이행되는지 점검하겠다고 하였다.

이러한 결정은 위험의 외주화로 인해 하청 노동자의 산재 사망이 집중되는 문제를 예방하기 위한 노력이 진전하고 있음을 확인시켰다. 그러나 ‘위험성평가’ 제도에 있어서 실제 현장에서 노사가 참여하고 실행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적극적인 고민이 모색되어야 할 것 같다. 만일 이러한 고민 없이 위험성평가 제도 이행 여부를 점검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실제 원하는 효과와 뜻을 실현하는데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노동자의 참여로 현장 안전보건 관리 시스템 구축해야

두 번째 중점 추진과제로 정부가 현장 관리·감독 시스템을 체계화를 꼽았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도 노동자의 참여는 비어있다. 지금 현재 산업안전감독관 인력은 1명당 약 6,000개 사업장을 담당해야 하는 열악한 조건이다. 참고로 독일은 1명당 493개, 미국은 1059개, 일본은 2,120개를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정부가 현장 안전보건문제를 사전에 예방하도록 하고 법 위반 사항은 적발하여 개선하는 안전보건시스템 구축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만일 산업안전감독관 인력을 일부 늘린다고 해도 현장에서 매일같이 고위험 작업을 하는 노동자가 현장을 스스로 진단하고 위험 상황을 개선할 수 있도록 권한과 시간을 부여하는 것 만이 근본적으로 산재 사망을 예방하는 방안일 것이다. 이번 대책에서 노동자의 참여와 권한을 보장하는 방안으로 고민해봄 직한 산업안전보건위원회와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제도 등에 있어서도 전혀 언급조차 없었다는 사실이 무척 아쉽다.

노동자에게 제대로 된 안전교육 참여부터 보장해야

세 번째 중점 추진과제로 안전인프라 확충과 안전중시 문화 확산을 꼽았다. 특히 안전 교육을체험과 현장 중심교육으로 재편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현장에서 진행되는 안전 교육도 작업 전 10분 안전 교육이 생활화되도록 지도하겠다고 하였다. 이러한 결정은 현장에서 실질적인 안전교육이 단 10분조차 안 되는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다. 전혀 안전 교육이 이뤄지지 않다 보니 10분이라는 짧은 시간이라도 투자해서 위험 작업을 하는 작업자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것이다. 그러나 현실이 이렇다고 안전교육의 중요성을 고려했을 때 작업 전 10분 안전 교육을 장려하는 결정은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정부는 사업장 개별로 열악한 조건으로 인해 안전보건교육을 제대로 운영하기 어려운 조건인 것이 확인된다면 다른 방안을 모색했어야 한다. 가령 중소영세사업장과 같은 공장의 경우 같은 지역/업종/구역 등에서 공동으로 제대로 된 안전교육을 하도록 방안을 마련하면 된다. 만일 개별 사업주를 강제하기 어렵다면 공공기관부터 우선해서 모범적인 현장 안전교육 사례를 만들고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방안도 고민해 볼 수 있다. 안전보건교육은 단지 모르는 것을 알려주는 것을 넘어 위험 상황에서 작업자가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대처할 수 있는 힘을 기르도록 기여할 수도 있다.

끝으로 

정부는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에서는 물론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안에서까지 안전보건에 있어서 노동자의 권리와 권한을 부여하지않았다. 단지 일하는 모든 사람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 할 수 있도록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위치 지웠을 뿐이다. 이렇게 해서는 진정으로 바라는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도 할 수 없다는 걸 정부가 깨우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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