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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리포트] 문화예술노동자의 노동시간 / 2019.10 문화예술노동자의 노동시간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기업들은 ‘노동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며 노동자들이 더 많은 일을 하도록 만든다. 그런데 노동자들은 기계가 아니기에 적정한 노동시간, 적정한 노동강도로 일을 해야 하고, 충분한 휴식을 보장받아야 한다. 그래서 노동시간을 둘러싼 기업과 노동자들의 투쟁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문화예술노동자도 마찬가지다. 1. 노동시간을 둘러싼 투쟁 기업들은 가급적 노동시간을 늘리려고 한다. 장시간노동을 시킬수록 시간당 노동비용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업들은 노동시간을 늘리는 것만이 아니라 노동시간에 대한 주권을 빼앗아서, 언제라도 기업이 원하는 시간에 노동자들이 일하도록 만들고자 한다. 노동하지만 노동시간으로 인정되지 않는 부지불노동시간을 늘리기도 한.. 더보기
월 간 「일 터」/[연구리포트]

[연구리포트] 문화예술노동자의 노동시간 / 2019.10

문화예술노동자의 노동시간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기업들은 노동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며 노동자들이 더 많은 일을 하도록 만든다. 그런데 노동자들은 기계가 아니기에 적정한 노동시간, 적정한 노동강도로 일을 해야 하고, 충분한 휴식을 보장받아야 한다. 그래서 노동시간을 둘러싼 기업과 노동자들의 투쟁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문화예술노동자도 마찬가지다.

1. 노동시간을 둘러싼 투쟁

기업들은 가급적 노동시간을 늘리려고 한다. 장시간노동을 시킬수록 시간당 노동비용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업들은 노동시간을 늘리는 것만이 아니라 노동시간에 대한 주권을 빼앗아서, 언제라도 기업이 원하는 시간에 노동자들이 일하도록 만들고자 한다. 노동하지만 노동시간으로 인정되지 않는 부지불노동시간을 늘리기도 한다. 이것은 표준화된 노동시간이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프로젝트 노동이나 플랫폼 노동 등 표준적이지 않은 노동의 경우에도 노동시간에 대한 통제는 이루어진다. 건당수수료 등 임금체계를 바꾸면 노동자들은 생존을 위해 장시간노동을 택한다. 개인도급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은 기업에게 선택되기 위해 경쟁하면서 임금을 낮추고 그러다 보면 더 장시간노동을 하게 된다. 준비 비용도 노동자들이 감당한다. 겉으로는 자율적으로 시간을 쓰는 것처럼 보이지만 생존경쟁은 더 시간에 매달리도록 만든다. 이 경우 노동자들의 권리는 더 이야기 되기 어렵다. 법은 표준적인 노동시간을 기준 삼기 때문에, 비표준적인 방식으로 일하는 노동자들 은 권리에서 배제된다. 때로는 자신이 표준적인 노동시간에 해당한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그러므로 표준적인 노동시간을 기준으로 만든 법에 얽매이지 않고, 노동시간에 대한 권리의 원칙을 수립해야 한다.

예를 들어 건강권을 지킬 수 있는 충분한 휴식시간이 보장되어야 한다. 불규칙하지 않아서 예측할 수 있는 노동시간이 보장되어야 한다. 노동하기 위한 준비시간과 마무리 시간이 노동시간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지나치게 짧거나 단속적인 노동시간을 강요해서, 생계를 위해 투잡을 하도록 하면 안 된다.” 등 원칙을 수립하고, 그 원칙 위에서 제도적 방안 등을 논의해야 한다.

2. 문화예술노동자들의 노동시간

문화예술노동자들은 프로젝트형 노동도 많고 단시간 노동도 많다. 부지불노동도 일상이고, 행이라는 이름으로 장시간노동도 강요된다. 문화예술노동자들의 노동시간에 대한 권리를 생각해보자.

단속적 노동시간(프로젝트형 노동)

문화예술노동은 일하는 시기와 휴지기로 나누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휴지기라 하더라도 온전한 휴식시간이 아니라, 대기시간이거나 일을 구하는 시기일 확률이 높다. 그리고 그 시기에는 생계유지가 안 된다. 언제 일을 구할 수 있을지도 알기 어렵다. 고용보험 가입률은 24.1%¹이므로 사회적 보장도 안 된다. 문재인정부가 약속한 예술인 고용보험’²을 공약했지만, 아직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다. ‘예술인고용보험을 하루 빨리 도입하고, ‘실업부조등 문화예술가들의 목소리를 반영하여 휴지기의 생계를 보장해야 한다. 여기에서 또 다른 질문이 필요하다. 정말로 문화예술 노동자들은 단속적 노동을 하고 있는 것일까? 문화예술노동자들은 계약을 체결하여 일하는 시기가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노동을 위한 준비를 한다. 사람을 만나고 미술관을 가고 현장을 찾아 가는 모든 활동이 축적의 시간이다. 그런데 단속적 노동이라는 특성은 계약 이외의 시간을 모두 불필요한 시간으로 간주하고, 예술활동 바탕의 축적을 모두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긴다. 휴지기가 일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준비기간임을 사회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문화예술은 사회서비스의 성격도 갖고 있다. 문화예술이 사회적으로 미치는 좋은 영향은 이미 많은 연구가 증명한다.

따라서 문화예술가들과 향유자들의 공적 문화예술활동을 늘리고 많은 예술가가 여기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활동만이 아니라 공적 문화예술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예술가들의 휴지기가 사회적인 가치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장시간·고강도 노동시간

예술노동자들은 프로젝트로 일을 하는 경우, 그 기간에는 매우 집중적인 장시간 노동을 한다. 그런데 장시간 노동이 인정되지 않거나, 높은 노동강도가 제대로 보상되지 않는다. 1년간 해야 할 일을 몇 달에 몰아서 하도록 요구하되, 단지 일을 한 시간만 인정해주는 셈이다. 그러면서도 이것을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한다. 그런데 이 관행은 문화예술노동자들의 권리를 배제하는 수단에 불과하며, 충분히 변화 가능하다.

이런 장시간 고강도 노동을 해결하려면 문화예술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아야 한다. 그런데 회사는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고용노동부는 계약의 형식을 문제 삼아서 근로기준법 적용을 회피하려고 한다. 문화예술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2018년 말 산업안전보건법의 적용 대상을 노무를 제공하는 자로 확장했던 것처럼 노동자성 인정 여부와 무관하게 노동시간 제한이 법적으로 보장되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 ‘적정노동시간을 표준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업종별 T/F’를 통해 연구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작품 전체에 들어가는 비용과 그 안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공개되어야 하고프로젝트 당 얼마라는 도급계약 구조도 바뀌어야 한다. 이 경우 계약기간의 적정성이 노동시간과 연계될 수밖에 없다. 계약서상에 노동시간이 명시되어야 하며, 숙련에 따른 시간당 임금도 명시되어야 한다. 또한 계약기간보다 기간이 더 늘어났을 때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면 안 된다.

문화예술노동자의 단시간노동

문화예술노동자들은 근로계약서를 쓰더라도 단시간노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예술강사들이 대표적인데, 이들은 2017년 기준 연 최대 374시간 근무하는 초단시간 노동자이기도 하다. 이 초단시간 노동에는 준비시간과 상담시간 등이 제외되어 있다. 제대로 지불되지 않는 노동시간인 것이다. 단시간 노동으로 인해 생계유지가 어려운 문화예술노동자들은 겸업할 수밖에 없다.

<2018년 예술인 실태조사>에 의하면 42.6%가 겸업예술인이다. 불규칙한 소득 때문인데 겸업을 할 때 예술관련 직업은 기간제와 계약직 혹은 임시직, 비예술직업은 파트타임과 형태가 많았다. 겸업을 하다보니 예술활동 외 직업 투입비율이 74.8%로서 예술활동을 충분히 하지도 못하며, 단시간노동을 하지만 겸업이다 보니 실제로 평균 주 58.6시간의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다.

문화예술활동을 전업으로 한다는 것은 예술활동에 충분한 시간이 투입된다는 의미이다. 그러려면 문화예술노동자들에게 많은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런데 인적 네트워크에 따라 하고 예술활동을 하게 되는 구조라서 어떤 네트워크 안에 포함되어 있는가가 예술노동자들의 노동시간에 영향을 미친다. 인적 네트워크에 의존하지 않고도 문화예술노동에 종사할 수 있도록 창작활동이나 교육활동의 기회를 늘려야 하고, 노동조합이 모든 문화예술노동자의 열린 네트워크로 기능해야 한다.

노동시간을 측정하기 어려운 노동

노동시간을 측정하기 어려운 문화예술노동도 많다. 기획을 하고 창작을 하는 과정은 사람마다 다르며 매우 큰 시간의 편차를 보이기 때문이다. 노동시간 평균적 측정이 어렵고, 노동시간이 개인마다 다르다고 해서 이 시간을 보상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간주근로시간제등 노동시간을 합의하는 방식도 있다. 즉 노동시간을 엄격하게 측정해서 계산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기획이나 준비에 들어가는 시간 자체를 노동시간으로 인정하지 않는 관행에 제동거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문화예술노동자들 스스로가 이런 관행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도 서울시향 교향악단 단원의 개인연습시간은 노동시간으로 봐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 경우에도 개인연습시간을 간주근로로 인정한 것이다. 개인마다 연습시간의 양은 차이가 있겠지만 합주를 하기 위한 기본 연습시간은 평균적으로 특정할 수 있고, 그 시간을 인정한 것이다. 서울시향의 사례에서 해당 노동자는 연습시간을 노동시간으로 인정받아 연차휴가를 받을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고용보험에 편입되더라도 근무일수가 확인되어야 한다. 노동시간을 측정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표준적 노동시간을 정하고 그 시간을 제대로 인정받는 것은 임금만이 아니라 부가적 복지와 사회복지 시스템에 잘 편입되기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3. 문화예술 노조의 과제

문화예술노동자들의 건강권과 재생산을 위해서 노동시간은 매우 중요하다. 우선 법적인 측면에서, 근로기준법상 노동자 개념을 확대하여 프로젝트형으로 일하는 문화예술 노동자들이 노동자성을 인정받도록 해야 한다. 근로기준법의 적용 대상이 되어야 노동시간에 대한 강제도 가능하다.

또한 고용보험과 실업부조 제도를 통해 문화예술가 재생산을 위한 시간을 사회적으로 인정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문화예술노동조합의 교섭에서도 노동시간의 권리가 중요하다. 준비시간과 교육훈련 시간을 노동시간으로 인정하도록 하고, 적정노동시간을 명문화하기 위한 협약도 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나 사용자단체에 업종별 적정노동시간을 산출하는 T/F 구성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 충분한 휴식과 노동자들의 관계형성이라는 면에서 휴일과 휴게시간 명문화도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예술가들에게 더 많은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노동조합이 노력해야 한다. 문화예술 노동자들은 창작물을 만들고 공유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 교육과 훈련의 기회도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 정부가 공적 예술활동의 공간을 만들어야 하고, 노조가 교육훈련을 담당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노조는 시민사회 및 지역사회와의 교류와 협력을 통해 예술가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를 위해 문화예술노동조합은 지역사회 및 시민사회와 지속적인 연관을 가질 필요가 있다.

01. 문화체육관광부, <2018년 예술인실태조사>

02. 문화예술노동연대에서는 프랑스의 앙떼르미땅과 같은 제도 도입을 고민한다. 그런데 앙떼르미땅의 경우 최근 재정문제가 발생하고 있고, 수급자들의 대상이 확대되지 못하고 수급 기간도 줄어드는 추세이다. 독립적인 고용보험제도를 활용할 것인지, 전체 고용보험 구조 안에 포함되도록 하고, 문화예술인의 특성에 맞는 실업부조의 성격을 보충할 것인지는 검토가 필요하겠지만 독립적인 고용보험 구조가 자칫 ‘권리’가 아닌 ‘시혜’가 되지 않도록 전체 고용보험 안에 편입하는 방안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

03. 건설산업 공공입찰에서는 표준품셈을 적용하도록 되어 있다. 표준품셈이란 시설공사의 대표적이고 보편적인 공종, 공법을 기준으로 하여 작업당 소요되는 재료량, 노무량, 장비사용시간 등을 수치로 표시한 표준적인 기준으로서 매년 정부가 발표한다. 물론 이것은 입찰상의 기준일 뿐, 현실에서 이 표준품셈에 훨씬 못 미치는 임금이 지급된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집단적 요구를 하는데 주요 기준이 되기도 한다.